소설리스트

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167화 (167/233)

〈 167화 〉 가정 교육 시간.

* * *

도대체 쇠다리가 몇 개나 있는지 베어내도 끊임없이 나에게 쏘아졌다. 나는 그저 내 자리를 지키며 검으로 그것들을 베어냈지만, 학습하는 모양인지 이제는 내 사각지대로 퍼져서 찔러 들어왔다.

애매한 시간차를 두고 내게 짓쳐 드는 쇠다리를 베어냈는데, 내가 인지하지 못하게 뒤에서 다가온 쇠다리 하나가 내 배의 옆을 긁었다. 그나마 닿기 전 눈치채서 몸을 틀어 관통은 피할 수 있었다.

다만, 완전히 피하지 못해 옆구리에서 화끈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에이든 동무! 으아아아!! 괜찮습네까!! 으아아!”

이지수가 열심히 굴러다니면서 내게 물었다. 천오가 내게 집중한 상태라 이지수에게는 한 개의 쇠다리만이 붙어있었다.

“어 괜찮아. 천오야! 우리라고 우리! 시발!!”

이번에는 열 몇 개가 뭉쳐서 다가오는 쇠다리를 수평으로 베어냈다.

“천오 동무! 정말 호로 새끼가 된 겁네까!! 으아아!!”

이지수가 비명 지르며 몸을 다시 한번 굴렀다.

내 시야를 가득 채울 만큼 쏟아지는 쇠다리들을 베어내면서 방법을 생각했다.

소설 속에서는 보통 동료가 저렇게 변질하면 추억들을 외치면서 감동으로 치료하던데… 그 방식으로 가야 하나?

푸욱­.

쪼개서 떨어진 쇳조각 중 하나가 급작스럽게 뛰어오르면서 내 복부에 박혔다. 정신을 번쩍 드는 통증에 황급히 박힌 것을 빼내고 자리를 옮겼다.

기기기긱.

뒤에서 쇠다리들이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나를 따라왔다.

천오는 아직도 그 자리에 서서 무감정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나마 그 초록색 광선을 쏘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결심한 나는 땅을 박차고 천오 쪽으로 뛰었다. 기운을 실은 다리로 땅을 박차니 금세 거리가 좁혀졌다. 내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나갔던 쇠다리들이 돌아오고 천오의 등에서 수백 개의 새로운 쇠다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도대체 저 작은 몸에 어디서 저렇게 나오는 거야 시발.’

[집중하게 소년.]

그래 어차피 다 베어내면 되니까.

진중한 목소리가 어지러운 머리를 가라앉혔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내게 쏘아지는 쇠다리들을 확인했다. 조금 전과 다르게 이번에는 활짝 펴져서 한 번에 베지 못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다가온 쇠다리들이 내 주변을 반원처럼 가득 감쌌고 그에 더는 해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인위적인 어두움 속에서 들이마셨던 숨을 내뱉으며 검을 고쳐 잡았다. 그리고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다시금 검강을 피워 올렸고.

검강에서 뿜어져 나오는 회색빛이 해가 사라진 어둠을 밝게 깨웠다.

굳이 다 막을 필요는 없었다.

내가 갈 길만 뚫으면 되니까.

왼발을 내디디며 상체를 오른쪽으로 팽팽하게 당겼다.

다시 오른발을 내디디며 복부에 힘을 주어 기운을 더욱 쏟아부었고.

마지막 왼발에 터질 것처럼 당겨진 양손으로 휘둘렀다.

그에 나를 가뒀던 세상이 수평으로 갈라지며 햇빛이 쏟아 들어왔다. 나는 그 틈으로 몸을 집어넣어 밖으로 뛰쳐나왔다.

내 바로 위에는 멍한 표정의 천오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고 천오의 뒤에서는 다시금 몇십 개의 쇠다리들이 나와 내게 쏘아졌다.

‘진짜 좆같은 꼬맹이네.’

비명을 지르는 양손을 애써 무시하며 발에 담아둔 기운을 터뜨렸다. 그에 내 몸이 순식간에 위로 올라갔고 거리가 가까워지는 만큼 쇠다리의 공격이 매서워졌다. 속도도 전보다 빨랐고 공중이라 베어내지 못하는 걸 피할 수 없었다.

오른쪽을 베어내니 왼쪽에서 날아온 쇠다리가 내 복부에 박혔다. 이를 악물고 내 몸에 박힌 쇠다리를 베어내고 그 끝을 잡아 다시금 천오에게 다가갔다.

천오와 점점 가까워질수록 내 몸에 박히는 쇠다리들이 늘어났다. 그 모습이 마치 가시가 잔뜩 난 동물을 맨손으로 쓰다듬는 것 같아 내가 병신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천오의 바로 앞에 도착했을 때, 내 몸에는 굵직한 쇠다리가 다섯 개나 박혀 있었다.

천오의 초점 없는 눈이 나를 응시했다.

나는 그를 보며 대사를 골랐다. 소설에서는 보통 이럴 때 뭐라고 말하더라.

대사를 고르는데 다시금 천오의 등에서 쏘아져 나오는 쇠다리들이 내 마음을 급하게 만들었다.

“천오야 우리 그동안 좋았던 나날을 다 잊은 거니. 우리 같이 파전도 먹고 성벽 위에서 막 브레스도 쏘고 너 납치돼서 이상한 미소녀 구토 쇼 할 뻔한 거 내가 구해주기도 하고 아카데미에서는 같이 아카데미를 뒤집기도 하고 너 이상한 거 집어 먹어서 토하면 내가 다 닦아주고 너 내가 머리도 얼마나 빗겨줬는데….”

다급해진 나는 황급히 입을 움직여 모든 기억을 꺼냈지만, 어떤 말을 쏟아내도 천오의 표정은 그대로였다.

“에이든 동무!! 너무 구차합네다! 으갸갸갹!! 이럴 때는 함축적이고 멋진 말을 해야!! 으아악! 효과적입네다!!!”

멀리서 이지수의 외침이 들렸다.

그래 함축적이고 멋진 말….

그때 그 소설의 주인공이 뭐라고 했더라….

내게 쏘아져 오는 쇠다리들을 보면서 말을 다시금 다듬었다.

“…데리러 왔다 천오야.”

고통에 자꾸만 일그러지는 얼굴을 억지로 피며 입꼬리를 올렸다.

존나 멋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주인공이 할 법한 대사였어.

내 멋진 말에 천오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고­.

내 몸에 다섯 개의 쇠다리가 추가로 꽂혔다.

“아아아악!! 시발 존나 아파!! 이 개 호로 새끼!!”

그 끔찍한 고통에 내 머릿속에 뭔가가 뚝 하고 끊어졌다.

검을 움직여 내 몸에 박힌 쇠다리들을 베어내고 왼손을 뻗어 천오의 흰 머리채를 강하게 움켜잡았다.

나를 보는 천오의 눈동자에 의문이 떠올랐다.

“가정 교육 시간이다. 이 호로 새끼야.”

나는 그 눈빛에 시원하게 웃어주면서 검을 쥐고 있는 오른손으로 천오의 안면에 시원하게 매콤 주먹을 먹였다.

“으갸갸갹!! 에이든 동무! 아까 천오 동무의 얼굴은 때리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네까?!”

나는 이지수의 말을 무시하며 매콤 주먹을 계속해서 천오에게 먹여줬다. 다시금 내게 쇠다리들이 쏘아져 나왔지만, 나는 무시하며 계속해서 매콤 주먹을 움직였다.

파지직­.

이윽고 뭔가가 작게 터지는 소리가 나면서 천오의 몸이 흔들렸다. 그리고 등 뒤에 있던 쇠다리들이 힘을 잃으며 땅으로 쓰러졌다.

나는 기운을 잃은 천오를 품에 안으며 다가올 충격에 대비했다. 이윽고 땅에 부딪히며 느껴지는 아찔한 고통에 정신이 흐려졌다.

“시…시발 존나 아파 미친.”

“에이든 동무! 괜찮습네까!? 어? 천오 동무 얼굴이 씹창 났습네다! 와하하! 꼴 좋습네다! 호로 새끼! 천오 새끼!”

먼지가 잔뜩 묻고 몸 곳곳에 피가 묻은 이지수가 밝게 웃으면서 기절한 천오의 머리에 작게 꿀밤을 먹였다.

나는 내 몸에 박힌 쇠다리들을 하나씩 빼냈다. 하나 뺄 때마다 느껴지는 아득한 고통에 새어 나오는 신음을 억지로 참았다.

“어? 에이든 동무! 제가 도와드리겠습네다! 얍!”

“으아악!! 시발!! 존나 아프다고! 살살! 살살!”

“이잇! 진득하게 좀 있으십쇼! 야압!!”

마치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한 눈빛으로 다가온 이지수가 내 몸에 박힌 쇠다리들을 거침없이 뽑아냈다. 그에 뭉텅이로 빠지는 피에 정신이 흐려졌지만, 기운과 신성력을 돌리자 다시 돌아왔다.

우습게도 방금까지 내 정신을 흐리게 할 정도로 극심한 고통도 치료하고 나니 흐리게만 느껴졌다.

“죽어!! 죽어!!”

“밀리면 안 된다!! 막아! 밀리면 공화국은 끝이야!”

“제국의 이름으로! 우리는 제국이다!”

아직 피곤함이 남아 조금 더 누워있고 싶었지만, 주변이 낮잠 자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호로 새끼 천오 동무. 아주 잘 잡네다.”

이지수가 얼굴이 퉁퉁 부은 천오의 볼을 손가락으로 꾹꾹 찌르면서 말했다.

이지수의 말처럼 천오는 세상 모르게 자고 있었다. 그 모습에 몇 대 더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은 처리해야 할 일이 남았다.

“이지수. 너는 천오 데리고 복귀해 있어. 일단 안드레아에게 데려가면 치료해줄 거야.”

“에엑!? 저도 혁명에 가담해야 합네다! 저 혁명 숙녀 이지수! 일평생을 이 순간을 보고 살았습네다!”

“닥쳐 좀. 네 평생의 어쩌고저쩌고 혁명은 내가 해결할 테니까. 일단 천오 데리고 빠져 있어. 저 상태인 애를 데리고 갈 수 없잖아. 그게 합리적이야.”

“…이익! 이런 호로 새끼 천오 동무!!”

잠시 침묵하던 이지수는 내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에이든 동무의 목숨이 위험하면 도망쳐도 됩네다. 혁명도 중요하지만, 에이든 동무가 더 중요합네다.”

이지수가 어울리지 않게 진지한 얼굴을 하며 내 손을 붙잡았다. 이지수의 굳은살 잔뜩 박인 손이 내 마음을 포근하게 했다.

“뚫어!! 이 짐승 같은 공화국 놈들을 다 쳐 죽여!”

“뚫리지 마라!! 막아라!”

다만,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래.”

나는 작게 대답하고 돌아서 걸음을 옮겼다. 심장을 찌르는 검이 지나간 곳은 시체들이 깔려 있었기 때문에 방향을 가늠하기 쉬웠다.

이지수는 멀어져가는 에이든의 등을 한참이나 쳐다봤다. 마음 같아서는 같이 따라가고 싶었지만, 짐만 될 게 분명했다.

천오라도 없으면 어떻게든 따라가서 칼이라도 대신 한 번 맞아주겠건만.

괜히 기절한 천오가 얄미워진 이지수는 천오의 자그마한 얼굴에 주먹을 몇 대 더 쥐어박았다.

에이든이 얼마나 씹창을 내놨는지 몇 대 더 쥐어박아도 티 나지 않았다.

***

주변에서 겁 없이 달려드는 공화국군 놈들을 베어내면서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방금까지 쌓였던 피로함도 검에 칼을 묻히지 다시 사라졌다.

이거 완전 무한 동력 아니야?

­ 소년이여 내가 번번이 말하지 않았나. 전설의 검이라고.

잔뜩 거만한 목소리를 애써 무시했다.

시체들로 이루어진 길은 수도의 중심부의 큼지막한 성까지 이어져 있었다. 얼마나 많은 적을 베어 넘겼는지 길을 걸을 때마다 발아래에서 피가 눌어붙었다 떨어졌다.

그리고 시체들의 길을 채운 공화국군들은 내 검에 쓰러져서 길을 덧칠했다.

성안으로 들어오자 시체도 없었고 막는 이들도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는 내 눈에 바닥에 찍힌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찍힌 자국은 일정하게 특정 방향으로 향해 그려져 있었다.

나는 그를 따라 계속 움직였다. 성은 정말 좆같이 넓었다. 다만, 그 넓은 크기임에도 불구하고 인기척이 하나도 없었다. 묘하게 불쾌한 그 분위기에 머리를 작게 흔들었다.

흔적은 복도의 끝까지 이어져 있었고, 나는 그를 따라 왼쪽으로 꺾었다.

그러자 정말 큼지막한 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앞에 덩치가 산만한 노인이 마치 작은 산처럼 구부정하게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심장을 찌르는 검의 기사들이 곤죽이 되어 터져 있었다.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다.

신나게 플래그 꽂을 때부터 알아봤다.

시발 새끼들.

나는 터지려는 욕지기를 애써 참으며 구부정하게 앉아 있는 노인네를 살폈다. 슬프고 애석하게도 노인네의 수준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런 경우는 미친 노망난 노인네밖에 없었다.

그렇다는 건 저 노인네가 미친 노망난 노인네와 비슷한 경지라는 건데… 그렇다면 내가 살아갈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졌다.

무슨 노인네들은 죄다 강해? 이 좆같은 세상에서 오래 살려면 저 정도로 강해야 하는 건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반응하지 못하고 있을 때 노인네가 고개를 들었다.

노인네의 얼굴은 마치 호랑이 같았다. 흰색 털이 잔뜩 난 호랑이. 하지만 이빨이 빠지지 않은. 나이가 들었으면 이도 좀 빠져야지 시발.

그 시선과 눈이 마주치자 다시금 눈이 탈 것처럼 뜨거워졌다. 나는 억지로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다.

[위험하다 소년.]

[…강하군.]

나도 알아 시발.

“하하! 이거 대단합네다! 혹시나 위험할까 봐 재빨리 달려왔는데 다 처리하셨다니!”

나는 이지수의 말투를 흉내 내며 과장되게 행동했다. 그래도 내게서 떨어지지 않는 노인네의 시선에 자꾸만 몸이 덜덜 떨렸다.

그때 내 옆에 쓰러져 있는 녀석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후로아…라고 했었나? 녀석은 자기 죽음을 인지하지 못했는지 생기가 없는 얼굴에 그려진 감정은 단단한 각오였다.

“이런 애미 나이 터진 자식들!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와! 헤헤!”

나는 냉큼 녀석의 얼굴을 밟아 터뜨리며 억지로 웃었다. 밟혀 터진 녀석의 얼굴에서 뿜어진 피가 내 발에 끈적하게 달라붙으며 내 발을 무겁게 했다. 그 충격에 녀석의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가 흔들리며 밖으로 나왔다.

그 목걸이에 달린 반지가 내 시선을 무겁게 잡아끌었다.

‘이해하지? 시발 나라도 살아야 할 거 아니야.’

억지로 웃으며 머리를 밟아 터뜨렸지만, 노인네의 시선은 내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 주제도 모르는 녀석들! 하하! 동무 잘 했습네다!!”

나는 몇 번이나 돌아다니면서 머리를 터뜨렸지만, 노인네의 시선은 끝끝내 내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재밌군. 무슨 일인가.”

마지막 놈의 머리까지 내가 터뜨리자 노인네가 두꺼운 입술을 열었다. 노인네의 목소리는 지하에서 말하는 것처럼 굵고 낮았다.

그 목소리가 마치 저승에서 부르는 것처럼 느껴져 괜스레 오한이 들었다.

“밖의 상황을 김익한 주석에게 보고하기 위해서 왔습네다!”

나는 황급히 경례를 올리며 노인네에게 보고했다.

“그렇군.”

노인네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고개를 내렸다.

‘역시 내 영특한 머리로는 해결되지 않는 게 없다니까. 머리를 쓰니 이런 위기 속에서도 살아나가면서 목표까지 달성하고. 역시 사람은 머리를 써야 돼.’

노인네의 반응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옮겼다. 마치 스스로 악마의 주둥이에 걸어 들어가는 느낌에 자꾸만 몸이 움찔거렸지만, 애써 억누르며 걸었다.

“그런데 말이야….”

이윽고 노인네의 옆을 지나칠 때, 노인네가 입을 열었다.

“예?”

나는 그 짧은 말에 간담이 서늘해지며 검 손잡이를 잡고 고개를 돌렸다. 노인네는 어느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나를 뚫어지라 보고 있었다.

“공화국 놈들은 주석이 아니라 수령으로 부르더군.”

“미친 노인네 새끼들 시발!!”

노인네의 입꼬리가 비틀렸고, 나는 황급히 검을 뽑았다.

콰앙!

노인네의 솥뚜껑만 한 주먹을 검으로 막자 내 양손이 부서지며 짓이겨졌다.

콰직.

이윽고 내게 뻗는 노인네의 두 번째 주먹을 억지로 몸을 비틀어 피했다. 분명 스쳤는데 내 옆구리의 반 이상이 짓이겨지며 피를 뿜어냈다.

그에 나는 몸에 힘이 빠지며 무너졌고, 노인네의 마지막 주먹이 내게 다가왔다.

주먹 뒤로 보이는 노인네의 표정에는 귀찮음이 잔뜩 담겨 있었다. 마치 벌레를 잡는 것 같은 모습.

내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보는 게 저 모습이라는 생각에 화가 잔뜩 치솟았다.

“시발 노인네 새끼들 다 좆같아!! 시발!!”

억지로 소리를 질렀지만, 노인네의 주먹은 멈추지 않았다.

노인네의 주먹이 내 얼굴에 닿기 바로 직전.

내 눈이 순간적으로 불타올랐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무거운 기시감이 나를 잡아먹기 바로 직전­.

쾅!

익숙한 검이 노인네의 주먹을 막아 세웠다.

“내가 조금 늦었지? 길이 복잡하더라고.”

마치 여신이 내려온 것처럼 아름다운 미소를 얼굴에 그린 키아나가 서 있었다.

“존나 적절했어요. 시발.”

너무 결정적인 등장에 나도 모르게 욕지기가 터져 나왔다.

“다행이야. 여기는 내가 맡을게. 사제는 할 일 하러 가. 혁명인가? 재미난 거 한다며.”

키아나가 다시금 미소 지으며 나를 부드럽게 밀어냈고­.

“어린 나이에 실력이 제법이군.”

노인네가 으르렁거리듯 작게 웃었다.

쾅!

이내 귀가 먹먹할 정도로 큰 폭발음이 터지며 노인네와 키아나가 맞붙었다.

[어허 사도여. 고작 저 정도로 여신이라니. 불경하도다.]

닥쳐 이 쓸모없는 신 새끼야.

[불…불경하도다! 빨리 사과해! 빨리 사과하라고! 나 신이야 신! 너! 사과 안 하면 배에 빵꾸 뚫린 거 안 고쳐준다?!]

진짜 이거 좆같은 신이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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