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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168화 (168/233)

〈 168화 〉 입이 문제야.

* * *

나는 눈대중으로 키아나와 노인네를 비교했다.

키아나의 재능은 확실히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재능이었다. 천재라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의 규격 외의 재능.

다만, 아무리 뛰어난 재능이라도 상대와 비교하면 나이가 너무 적었다.

쫄깃한 키아나와 달리 상대는 흰 머리가 뿌옇게 난 노인네였기에.

쾅!

마치 거인끼리 부딪치는 것처럼 굉음이 터지며 둘이 살짝 거리를 벌렸다.

여유로운 노인네와 다르게 키아나의 눈썹이 미묘하게 일그러진 게 보였다. 살짝 이지만 키아나가 밀리는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내가 도와주기에는 내 수준이 너무 낮았다. 괜히 방해만 될 게 분명했다.

근데 시발 나 강한 거 아니었어?

­ 강함은 상대적이니까. 소년.

[약하네.]

[약하지.]

닥쳐 시발.

초조함에 손바닥에서 나는 땀을 바지에 비벼 닦고 키아나를 보며 검을 고쳐 잡았다.

“사제. 가도 돼. 안 지니까.”

그런 나를 본 키아나가 작게 웃었다.

이긴다고는 하지만, 내가 볼 때는 키아나가 부족했다. 약자인 키아나에게는 ….

그래 동기부여!

키아나에게는 각성하기 위한 동기부여가 필요했다.

이전에 암흑 시장에서 탈출할 때의 나처럼….

“사저!”

나는 노인네의 눈치를 보며 키아나를 불렀다.

“응?”

키아나도 마찬가지로 노인네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대답했다.

“이거 이기면 제 고추 만지게 해줄게요!”

나는 자신감을 듬뿍 담아 소리쳤다.

“…사제? 그게 무슨?”

내 말에 키아나가 황급히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키아나의 얼굴은 잘 익은 사과처럼 순식간에 붉어져 있었다.

“크하하하하! 정말 신기한 놈이구나! 재밌어!”

노인네가 공간이 흔들릴 정도로 크게 웃었다.

이게 아닌가?

생각과는 다른 둘의 반응에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사저 이기라고 동기부여 하려고 한 건데… 싫어요?”

“그…그게 싫다기보다는… 아니 사제 좋아! 그래. 나 꼭 이길게!”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진 키아나가 소리치면서 노인네로 시선을 다시 옮겼다. 다만, 검을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으로 보아 내 동기부여가 효과적으로 적용된 듯했다.

“그럼 사저 꼭 이기고 와요! 제 고추 만지게 해줄 테니까!”

“알았으니까! 사제 빨리! 그냥 가! 빨리 가!”

“요새 젊은것들은 발랑 까졌구만! 크하하하!”

“조…조용히 하세요. 그냥 유난히 친한 사제 관계일 뿐입니다.”

전보다 미묘하게 부드러워진 둘의 분위기에 나는 노인네를 빙글 돌아 큼지막한 문으로 향했다. 그런 나를 노인네가 호랑이 같은 눈으로 응시했지만, 굳이 나를 막지 않았다.

혼자 쫄았다는 생각에 괜히 헛기침하며 큼지막한 문을 응시했다.

큼지막한 문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발. 나 지금 보스 방에 혼자 들어가는 거야?’

그 생각에 갑자기 들어가기 싫어졌다. 내가 왜 굳이 여기를 혼자? 안에 뭐가 있을지 알고.

보스 방에 제일 강한 놈이 있는 건, 상식 중의 상식이다. 밖에서 문을 지키는 노인네조차 저렇게 강한데, 안에는 도대체 뭐가 있을까.

그런 생각들에 빠져 어디 도망갈 창문 없나 확인하고 있을 때.

콰아앙!!

귀를 먹먹하게 할 정도로 큰 폭발음이 들렸다.

키아나와 노인네의 전투가 점점 거칠어지며 둘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이제는 희뿌연 하게 보이는 둘과 큼지막한 문을 번갈아 가며 봤다.

만약, 여기에 남는다면 눈치가 보이기 때문에 억지로 저 전투에 끼어들어 키아나를 도와야 했다.

콰직­.

마침 노인네의 빗나간 주먹이 벽을 강타했고, 벽이 무슨 거인이 망치질 한 것처럼 큼지막하게 파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긴 아니야.

똑똑똑.

나는 황급히 큼지막한 문에 노크했다.

똑똑똑.

안에서 별다른 반응이 없자 다시 한번 크게 노크를 했다.

아무도 없나?

아무도 없나 봐.

그냥 돌아갈까.

“…누구냐.”

그때 안에서 잔뜩 피로에 젖은 목소리가 들렸다.

시발 있네.

나는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큼지막한 문을 힘을 주어 밀었다. 관리자가 평소에 기름칠을 성실하게 해뒀는지, 문은 부드럽게 밀렸다.

안은 무슨 대궐처럼 넓었다. 물론 대궐을 본 적은 없지만.

회색빛의 널찍한 공간의 중간에 회의용 테이블이 길게 늘어서 있었는데, 그 위에 몇 명의 사람이 엎어져 있었다. 다만, 그들에게서 더는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남자가 끝쪽에 앉아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거… 김익한입니까?”

나는 그를 보며 검을 고쳐잡았다.

느껴지는 기세로는 남자는 별 볼 일 없었다. 얼마나 약한지 이지수에게도 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천오도 내가 느끼지 못했지만, 강했으므로 긴장을 풀지 않았다.

“그렇지. 자네는 누군가.”

사내의 눈은 퀭했고 목소리는 갈라질 듯 건조했다. 그 모습이 마치 며칠 잠을 못 잔 사람 같았다.

나는 남자의 물음을 무시하고 기감을 넓게 퍼뜨려 주변을 확인했다. 확실히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여긴 나밖에 없네. 요즘 원체 귀가 시끄러워서 말이지.”

나를 본 사내가 건조하게 큭큭­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 새끼 무슨 자신감이지.

사내의 여유로운 태도에 묘하게 불안해졌다.

“고대 신의 조각과 주먹왕까지 뚫고 왔다니. 공화국의 운명도 여기까지인가 보군.”

사내가 허탈한 목소리로 읊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먹왕이래.

병신 같은 칭호네.

“깔끔하게 가도록 하지. 이쪽을 베어주게.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 이제 그만 쉬고 싶거든.”

사내가 자신의 목 부근을 손가락으로 그었다.

사내의 반응은 아무리 봐도 자포자기한 사람이었다. 이 새끼 정말 아무것도 없는 거야? 나는 혹시나 해서 다시금 기감을 넓게 펼쳤다.

내 기감에 걸리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자꾸만 내 귀에 헛소리를 불어 넣는 놈이 있거든. 빨리 좀 부탁하네. 참수에서는 아프지 않게 단번에 베는 게 제일 중요하네.”

사내가 마치 예전의 일을 떠올리는 것처럼 눈알을 위쪽으로 굴리며 말했다.

근데 이 새끼.

“단번에 목을 베지 못하면 끔찍한 비명을 얼굴로 질러대며 피를 질질 흩뿌리면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죽더라고. 내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니 믿어도 되네.”

사내가 우스꽝스럽게 킬킬대며 웃으며 말을 이었다.

왜 이렇게 당당하지?

그러니까 시발 지금 좆밥 혼자 있다는 거잖아.

“머리가 시끄러워 자꾸만 말하게 되는군. 뭐하는가? 병신처럼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어서 와서 목을 베게나. 혹시 검을 든 놈이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게 두려운 건가?”

사내가 갑자기 호통을 치며 내게 손짓을 했다.

마침 내게 화풀이할 곳이 필요했는데 말이야.

“이 좆밥 새끼가.”

“천박하게 욕은 하지 말게. 나도 국가의 수장이었던 몸이니.”

나는 냉큼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내가 검을 집어넣자 사내가 고개를 비스듬히 움직이며 의문 섞인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개 같은 공화국 새끼들! 애미 터진 저능아 새끼들!”

“자…잠깐! 그냥 목을 으아악!!”

사내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기 때문에, 나는 주먹에 들어가는 힘을 조절하며 천천히 사내를 쥐어팼다.

“애미 터진 새끼! 진 새끼가 꼭 이긴 놈처럼 행동하네? 터져라! 터져!”

“그그만!! 위험하니까! 더는 날 자극하지 말게!”

흠씬 두들겨 맞던 사내가 돌연 손을 내밀어 나를 말렸다.

“위험?”

“그…그래! 자네가 왜 내게 폭력을 행사하는지 모르겠지만, 내 안에는 악마가 있네! 공화국의 앞날을 위해 악마를 억지로 누르고 있지만, 이 이상 날 자극하면 내 안의 악마가 터질 수도 있어! 그럼 세상이 위험해지네! 그러니까 의미 없는 폭력 그만 휘두르고 검으로 내 목을 빨리 날리게!”

사내가 내 물음에 빠르게 말하며 자신의 목을 다시금 내밀었다.

“악마…?”

“그렇다네! 악마! 내 안에는 세상을 멸망시킬 정도로 강력한 악마가 숨어 있어! 지금 여기에 아무것도 없는 이유도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

“지랄하네! 병신이. 맞기 싫어도 그렇지. 그 나이 돼서 내 안에 악마가 있다! 이 지랄 하고 싶어? 그냥 처맞아! 매콤 주먹! 사도 주먹! 혁명 펀치! 이건 이지수의 몫이다!”

“으아악! 그만! 그만!!”

나는 사내의 만류를 무시하고 다시금 열심히 주먹을 움직였다. 공화국의 수장을 패고 있다는 생각이 내게 묘한 고양감을 가져다줬다.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마음이 후련해졌다.

“좆같은 공화국! 그리고 시발! 병신 같은 네 아들이 머저리처럼 도망가다가 혼자 떨어져 죽은 걸 왜 내 탓을 해! 진짜 생각할수록 좆같네! 내가 그거 때문에 무슨 고생을….”

“설…설마 자네가 우리 재환이를….”

“우리 재환이는 무슨 염병할 우리 재환이! 떨어져 온몸이 터진 스크램블 재환이라고 말해야 알아듣지! 매콤 주먹! 스크램블 주먹!”

이 좆같은 새끼 때문에 선량한 내가 공화국에서 얼마나 구른 거야. 그동안 공화국에서 굴렀던 일들이 스쳐 지나가며 내 주먹이 점점 매워졌다.

그렇게 신나게 주먹을 움직이다가 문득, 사내가 더는 반응하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응? 뭐야? 재환이 따라갔냐?”

“…재환아.”

작게 읊조린 사내의 몸에서 돌연 끔찍한 기운이 솟구쳤다. 그 이상한 기색에 나는 황급히 사내의 목을 날리기 위해 검을 뽑아 휘두르며 기운을 운용했다.

검이 검집에서 나오며 검강을 뿜어냈고­.

이내 사내의 목을 향해 빠른 속도로 휘둘러졌다.

깡.

깡?

내 검은 사내의 목을 베어내지 못했다. 사내의 손이 내 검을 잡고 있었는데, 검강을 두르고 있음에도 내 검은 사내의 손을 베어내지 못했다.

시발 새끼야! 다 벨 수 있다며.

­ 자네는 아직 벽을 못 넘어서 그렇네. 그나저나 저거는 좀 많이 위험해 보이는군.

병신 깡통 같은 검 새끼.

까드득.

사내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며 사내의 몸이 점점 붉게 부풀어 올랐다.

그 흉흉한 기세에 나는 황급히 검을 회수하고 뒤로 물러섰다.

사내는 점점 커져 높았던 천장까지 닿을 정도로 키가 커졌다. 이윽고 사내의 피부가 불타오르며 검은색 피부로 변했고 머리에는 큼지막한 뿔이 마구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잠시 뒤 그런 끔찍한 변화가 지나가고 사내는 정말 악마로 변해 있었다. 지금까지 봤던 악마 중에서 제일 끔찍하고 강대한 기운을 뿌리는 악마로.

악마는 한쪽 눈이 불타오르고 있었고 남은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 시선에 나는 마치 늪에 빠지는 것처럼 몸이 무거워지며 죽음에 절로 걸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시발 진짜 악마잖아!!”

나는 억지로 욕지기를 뱉어내며 내 정신을 일깨웠다.

­ 분명 저 사내가 악마 들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좀 더 절실하게 말했어야지! 당연히 구라인줄 알았지! 애미 시발!! 목소리에 진정성이 없었잖아! 진정성이!”

나는 무거운 몸을 움직여 황급히 큰 문으로 뛰었다. 내 약자 레이더가 그 어느 때보다도 거칠게 경고를 표시하고 있었다.

시발 그래.

내 일이 이렇게 쉽게 끝날 리가 없지.

좆같은 세상.

­ 그냥 소년의 입이….

닥쳐 조롱을 어떻게 참냐고 시발.

[사도!! 포인트다!! 아니! 악마다! 빨리 죽이자! 이야아압!! 악마를 죽이거라! 아니 심판하거라! 사도여! 신의 명령이다!!]

지랄하지마. 딱 봐도 나보다 세 보이잖아.

[네가 선택한 사도의 길이다.! 악으로 깡으로… 아악! 도망가지 마!! 맞서 싸워!]

네가 내려와서 싸우던지 시발.

[이이익!! 딱 봐도 대박이란 말이야! 멈추거라! 사도여! 신의 말씀이닷!]

마치 내 목에 검이 겨눠진 듯한 기분에 고개를 억지로 돌리지 않고 계속해서 발을 움직였다.

“…아. 너무 부족하군. 부족해.”

무저갱에서 올라온 듯한 목소리가 내 귀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했다.

“내 눈을 바라보게나. 그럼 자네는 자유로워지고….”

악마의 말이 끝나기 전 가까스로 문을 통과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밖에는 엉망진창이 된 키아나가 자리에 앉아 숨을 돌리고 있었다. 그 호랑이 노인네는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사람 일은 한 치 앞도 모른다고 했던가, 아까 그렇게 좆같았던 노인네가 지금은 몹시도 그리웠다. 엉망진창이 된 키아나는 더는 싸울 수 없어 보였다.

“아! 사제. 그…그게 내가 이긴 건 아니야. 어엄청 강하시더라고! 그냥 싸우다 보니까 그분이 그냥 가셨어. 그…그게 이긴건가?! 아닌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얼굴이 잔뜩 붉어진 키아나가 말을 더듬으며 손을 꼼지락거렸다.

“뛰어요!! 존나 뛰어요!!!”

“응?”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보는 키아나의 손을 황급히 잡아 다시 부지런히 뛰었다. 키아나의 손이 내 손 안에서 움찔하다가 깍지를 꼈다.

왜 갑자기 여기서 깍지를 껴.

“내 눈을 바라보게 인간들이여!!! 그럼 지옥이 현신하리니!!!”

쾅!쾅!쾅!쾅!

뒤에서 무언가가 크게 터지는 소리가 들리며 끔찍한 소리가 밖으로 울려 퍼졌다. 그에 잡생각이 다시 지워졌고 나는 부지런히 발을 움직였다.

아무리 빠르게 뛰어도 악마의 끔찍한 숨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사…사제? 저건 무슨?”

“몰라요! 시발!! 갑자기 악마가 튀어나오잖아요!”

키아나의 질문을 어물쩍 넘기며 계속해서 뛰었다. 계속되는 무리한 기운의 운용에 발이 터질 것 같았지만, 애써 참으며 기운을 계속해서 터뜨렸다. 내 굳은 얼굴과 뒤의 흉흉한 분위기에 키아나도 더는 질문하지 않고 나를 따라 움직였다.

“사제!”

키아나가 크게 외치며 내 손에서 손을 빼내고는 검을 잡아 뒤쪽으로 휘둘렀다. 키아나의 검에서 마치 해가 떠오르듯 밝은 금색 기운이 뿜어져 나오며 악마가 휘두른 주먹을 막아냈고, 그 반발력에 키아나가 빠른 속도로 튕겼다.

그 모습에 나는 이를 악물며 모든 기운을 발에 모아 터뜨렸다. 끔찍한 고통과 함께 내 발이 씹창났고 내 몸이 빠른 속도로 쏘아졌다.

나는 공중에서 정신을 잃고 날아가는 키아나의 몸을 안아 들고 마침내 보이는 입구로 날아갔다. 성을 나온 내 몸은 이내 땅을 굴렀고, 나는 품에 안은 키아나를 몸으로 둥글게 말아 지켰다.

땅에 뒹굴면서 등에서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이를 악물며 조금이라도 성에서 멀어지기 위해서 발버둥 쳤다.

“끄르륽­!!!”

밖에는 싸우던 병사들이 전투도 멈추고 괴성이 들리는 성을 보고 있었다.

콰아아앙!

이윽고 성문이 박살 나며 애꾸눈 악마가 밖으로 뛰쳐나왔다.

“아…악마다!! 진짜 김익한이 악마였어!!”

“신이시여 어찌 공화국을 버리나이까….”

인간들은 늘 그렇듯 더 강한 존재 앞에서 다툼을 잊고 서로 뭉쳤다. 제국군과 공화국군들은 언제 싸웠냐는 듯같이 진영을 꾸리며 악마를 둘러쌓았다.

“내 눈을… 아.”

잠시 중얼거린 악마가 한쪽 눈을 감았고, 말 갈퀴 같은 악마의 머리카락들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치솟은 각 머리의 끝부분에 자그마한 눈동자들이 생겼고 몇천, 몇만 개의 눈동자가 사방으로 퍼졌다.

하늘이 어두워지며 악마의 눈동자들이 사방에 있는 인간들을 응시했다. 그 끔찍한 모습에 사람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내 눈을 바라보게. 그럼 지옥이 현신하리니.”

악마의 목소리에서 전에 없던 흡족함이 담겨 있었다. 마치 뷔페에 온 거지처럼.

시발 존나 위기다.

나는 금방이라도 목이 달아날 듯한 위기감에 황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키아나는 아직도 내 품 안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고, 주변의 병사들은 악마의 끔찍한 모습에 의지가 꺾여 하나둘 무기를 떨구고 있었다.

[잠…잠깐만 기다리게 소년. 야만인! 내가 기억해뒀네! 전처럼 또 엎기만 해봐!]

[크흠….]

뭐라는 거야 시발.

오른쪽 눈이 뜨거워지며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큼지막한 나무 뒤 익숙한 고깔모자가 보였다.

연한 보랏빛이 도는 검은 고깔모자가 나무 뒤에서 움찔거렸다.

살았다 애미 시발.

고깔모자를 보자 몸에 힘이 한 번에 풀렸다.

“루나!!!”

나는 어린 시절 맞고 와서 동네의 친한 형을 부르는 아이처럼 우렁차게 루나를 외쳤다.

“으…으응?! 아앗! 보였어?!”

내 부름에 고깔모자가 움찔하더니 작고 하얀 얼굴이 나무 뒤로 쏙­ 하고 튀어나왔다. 루나의 큼지막한 눈이 불안한 듯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우습게도 그 모습이 귀여웠다.

근데 저 새끼는 내가 부르지 않았으면 안 나올 생각이었던 거야?

“저것 좀 치워봐.”

나는 손가락으로 열심히 눈알을 굴리고 있는 악마를 가리켰다. 이 와중에도 악마는 끔찍한 기세를 뿜어내며 하늘을 어둡게 만들고 있었다.

하늘이 마치 종말의 날처럼 어두워지며 햇빛이 가려졌다.

“응응! 얍!”

내 말에 루나가 고개를 힘껏 끄덕이더니 귀여운 기합성을 내며 손바닥을 짝하고 내려쳤다.

그리고….

까드득.

빠직.

방금까지 흉흉한 기세를 내뿜던 악마가 잠깐 저항 뒤에 마치 손바닥에 짓이겨진 벌레처럼 터졌다.

그 갑작스러운 모습에 주변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사람들은 지금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해 그저 멍한 눈빛으로 악마였던 검은 피 웅덩이를 보고 있었다.

나도 그 허무한 결말에 가슴 속에서 의구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저 악마 그냥 개 좆밥이었던 거 아닐까?

우리가 괜히 겁먹은 거 아니야?

“내가내가내가 에이든 구한 거야? 에이든 나 기다렸어? 에이든은 나밖에 없어?”

어느새 내 앞에 나타난 루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빠른 속도로 내게 물었다. 루나의 큼지막한 눈이 보기 좋게 호선으로 휘었는데, 그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모여 있었다.

“…미친년.”

방금까지 세계를 멸망시킬 것처럼 흉흉한 기세를 내뿜던 악마를 손짓 한 번에 죽이는 루나의 모습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헤헤­. 나도 에이든 사랑해.”

내 욕지기에 루나가 세상을 밝힐 것처럼 환하게 그리고 때 묻지 않은 아이처럼 해맑게 웃는 것을 보며 정신이 흐려졌다.

[오옷! 대박!! 왜 포인트가 나한테 들어오지?! 에라 모르겠다!! 나는 이제 부자다! 부자야!! 야! 거기 떨거지들 차 한잔 타와! 선착순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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