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169화 (169/233)

〈 169화 〉 뿔 달린 여자.

* * *

들어오는 따사로운 햇빛에 드숀은 무거운 잠에서 깼다. 벌써 이 방 안에서만 며칠이나 있었는지… 드숀은 밖으로 나가서 잔디라도 밟고 싶었지만, 절대 나가지 말라는 김지훈의 신신당부에 참았다.

드숀은 그런 김지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혹시라도 밖에서 돌아다니다가 진짜 김두환이 아니라는 것을 들키게 되면 모든 게 수포가 될 테니까.

다만, 이해와 별개로 몸이 찌뿌둥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똑똑똑.

“식사입니다.”

단정한 메이드 복을 입은 여자가 들어와서 식탁에 음식을 세팅했다. 여자는 평범한 목소리처럼 얼굴도 수수하게 생겼다.

이 여자는 여기서 드숀이 유일하게 소통할 수 있는 여자였다. 만약 이 여자마저 없었으면 드숀은 정신병에 걸렸을 것이다.

“해미 씨도 앉아서 같이 드시죠.”

드숀이 자리에 앉으며 빈 의자를 가리켰다.

그에 잠시 고민하던 여자가 드숀이 가리킨 의자에 앉았다. 처음에는 여자가 계속해서 거절했었지만, 드숀이 같이 먹지 않으면 안 먹겠다고 으름장 놓으니 그제야 자리에 앉았다.

“오늘은 해가 참 맑네요.”

“그렇군요.”

하지만 같이 식사를 하더라도 여자는 말이 별로 없는 성격인지 단답형만 했다. 물론, 외로움에 사무친 드숀에게는 그 정도로도 감지덕지했다.

“이 요리는 정말 감칠맛이 뛰어나네요. 해미 씨도 요리를 잘하시나요?”

“…요리는 잘 못 합니다.”

여자는 드숀을 쳐다보지도 않고 포크로 음식을 깨작거리며 대답했다. 드숀은 그에 작게 웃으며 고기를 집어 입에 넣었다.

‘역시 공화국 음식은 간이 너무 세.’

똑똑.

그렇게 조용하고 평화로운 식사를 이어가고 있을 때, 방문을 누군가가 두드렸다.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없을 텐데?’

“들어오세요.”

드숀의 허락이 떨어짐과 동시에 방문이 열렸고, 그 앞에 가득 서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드숀은 그 모습에 무언가가 잘못된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지금까지 이 방을 찾아온 사람이라고는 해미와 김지훈밖에 없었으니까.

“김두환 님!!!”

방문이 열렸지만, 사람들은 들어오지 않고 복도에서 김두환을 불렀다. 그 상기된 얼굴과 격양된 목소리에 드숀은 언젠가 섰던 단두대를 떠올렸다.

‘이거… 혁명 실패했다고 나 죽이는 거야? 어쩐지 에이든이 하는 일이 성공할 리가 없지. 에이든의 계획에 올라타다니… 내가 미쳤지 미쳤어.’

드숀은 지레 겁먹고 테이블 위에 있는 작은 나이프를 챙겨서 손에 꽉 쥐었다. 다른 건 몰라도 아카데미 학생으로서 한 명을 데리고 가리라!

“축하드립네다!!”

언젠가 봤던 남자가 앞으로 나오면서 잔뜩 물기가 담긴 목소리로 소리쳤다. 남자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절절함에 드숀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뭡네까?”

드숀은 습관적으로 목소리를 가다듬고 반문했다. 이제는 익숙한 낮은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공화국의 수장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네다!! 혁명이 성공했습네다!!! 아아! 혁명의 불길이여 타올라라!!”

““불길이여!! 타올라라!!””

남자의 격양된 목소리에 다른 사람들도 남자를 따라 외치기 시작했고 이내 방은 사람들의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가득 찼다.

‘수장? 공화국의?’

드숀은 남자의 말을 곰곰이 되새겼다. 한 세 번 정도 곱씹자 그 속에 담긴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잔뜩 흥분했던 사람들이 숨죽이며 김두환의 다음 말을 기대했다. 그들은 안수성에서 드숀이 했던 명연설에서 받은 감동을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연설을 적은 연설문은 혁명단에 보급된 지 오래였다.

그런 명연설을 했던 김두환이 마침내 혁명이 성공했다는 사실에 어떤 말씀을 해주실까….

김두환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기대감에 가득 차 반짝반짝 빛났다.

잠깐의 가벼운 침묵이 지나가고, 마침내 김두환의 입술이 열렸다.

“예? 제가요?”

그 입에서 나온 것은 평소와는 다르게 한없이 경박한 목소리였다. 마치 사춘기를 지나지 않은 소년과도 같이 가벼운.

드숀과 같이 식사하던 여자의 입꼬리가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 약간 올라갔다. 여자는 조용히 허벅지 안쪽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그에 여자의 손가락에 낀 반지가 작게 반짝였다.

***

그 후로 드숀은 정신없이 사람들에게 끌려다녔다. 계속해서 김두환을 흉내 내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 드숀은 자신의 존재를 잊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혼잣말로 제국어를 했다.

드숀은 드넓은 홀로 안내됐다. 홀에는 제국의 기사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고,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공화국 사람들은 하나같이 억지로 웃음을 참고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고 기사들은 어두운 얼굴로 무거운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드숀은 제국의 갑옷을 보며 묘한 향수감에 젖어 들었다. 그 감성을 깨운 것은 어느 여인의 차가운 목소리였다.

“공화국의 김두환. 이리로 오도록.”

드숀은 그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이는 금발의 차가운 인상의 미인. 제국민이라면 모를 수 없는 여자였다.

제국의 제1 황녀. 엘리아스 시나 비헨 드 프라타. 케이트도 황녀였지만, 둘의 느낌은 전혀 달랐다.

황녀의 말에 공화국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불편한 듯 헛기침을 했지만, 황녀가 인상을 쓰자 다들 고개를 돌렸다.

그에 잠시 고민하는 드숀을 뒤에서 누군가 슬쩍 밀었다. 고개를 돌리자 잔뜩 굳은 얼굴의 김지훈이 작게 끄덕이고 있었다.

드숀은 프라타의 외모를 훔쳐보며 천천히 그리고 점잖게 걸음을 옮겼다. 프라타는 남들보다 높은 자리에 앉아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만, 무언가 심기가 불편한지 인상이 잔뜩 굳어 있었다.

“공화국의 올바른 혁명의 성공을 축하한다. 다만, 공화국의 수장 자리가 비어있으니 가장 승계 순위가 높았던 김두환을 임시로 수령 자리에 앉힌다.”

프라타는 차가운 목소리로 거침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마치 제국이 공화국의 수장을 임명하는 듯한 모습에 작은 소란이 발생하자 기사들은 거침없이 검을 뽑아 사람들을 겨눴다. 목 끝에 겨눠진 검에 사람들은 금세 입을 다물었다.

드숀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며 대답을 골랐다. 이런 일이 있을 거라면 김지훈이 먼저 해줬을 텐데, 아마 제국 측에서 일방적으로 선언한 게 분명했다.

드숀의 대답이 늦어지자 프라타의 고운 아미가 찌푸려졌고, 다시금 입을 열었다.

“공화국의 혁명을 지원하다가 황실 기사단의 상위 조 3개를 잃었다. 승계 순위를 맞춰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양보했다 생각하는데?”

프라타가 싸늘한 눈빛으로 주변을 훑어봤다.

그에 공화국민들은 시선을 피하며 말을 삼켰다.

“네. 알겠습네다.”

예상외의 빠르고 가벼운 승낙에 프라타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여기서 반발이 있어야 새로이 출범하는 공화국에게 제국의 인식을 강하게 심어둘 수 있는데…. 새로 수장을 맡게 된 녀석은 배알도 없는 듯했다.

‘나라 하나를 바치다니… 그럼 나는 애국자인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드숀의 가슴속에서 애국심이 차올랐다. 공화국 따위야 드숀이 상관할 바 아니었다.

공화국의 음식은 너무 짜고 사람들은 너무 드셌다. 차라리 공화국이 빨리 무너져서 어떻게든 가문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단두대 아래에서 사형수들과 다짐했던 마음도 식은 지 오래였다.

“그…그래. 알겠다. 그럼 수령이 된 기념으로 공화 국민에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도록.”

당황한 프라타는 어울리지 않게 말을 더듬었다. 그리고 다시금 상대가 불편하게 느껴지도록 명령하는 투로 말했지만, 개의치 않고 바로 목을 가다듬는 상대의 모습에 눈썹이 잔뜩 찌푸려졌다.

‘할 말이라….’

드숀은 프라타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골랐다. 공화국민들은 뭐가 그리도 원통한지 울 것 같은 얼굴로 드숀을 보고 있었고, 기사들은 원한 서린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중 김지훈은 드숀을 보며 열심히 고개를 젓고 있었지만, 드숀은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분위기가 왜 이래? 성공했다며. 이런 칙칙한 분위기에는….’

“여러분! 결국, 우리는 큰일을 해냈습네다! 마침내 이룬 우리의 혁명을 위해 곳간을 열어 연회를 엽시다!”

드숀은 우렁차게 말하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전과 다르게 환호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프라타는 그 모습을 뒤에서 보며 울화통이 터지는 느낌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이번 공화국 행은 처음 예상과 다르게 손해가 너무 컸다. 황실 기사단 상위 조 3개의 몰살. 최상급 기사 2명의 죽음.

이는 공화국을 점령한다고 해도 메꿀 수 없는 손실이었다.

심지어 막상 공화국의 수도를 탈환하고 내부 사정을 확인하니 공화국은 악마들에게 휘둘리고 점령당해 내실이 흔들리는 중이었다. 거기다 전쟁까지 벌였으니… 곧 망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태였다.

현재의 공화국은 탐나는 음식이 아니었다. 속이 죄다 썩은 음식 그게 현재의 공화국이었다.

물론, 흡수해서 잘 돌린다면 언젠가 이득이 발생하겠지만, 그럴만한 여유가 지금의 제국에게는 없었다. 악마에게 제국이 입은 피해도 공화국보다 컸으면 컸지 절대 작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프라타는 공화국의 수령을 자신의 손으로 세우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게 현재 상황에 제일 적합할 것이다.

“곳간을 풀어 굶주렸던 민생들에게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

‘주먹왕이라니….’

앞에서 열심히 연설하는 김두환의 뒤통수를 보며 프라타는 자신의 실수를 복기했다.

주먹왕은 전설 중에서도 소재지가 불분명하기로 유명했다. 대륙 끝에서 봤다는 목격담도 있었고 바다에서 봤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다만, 그 재수 없는 황태자 놈이랑 연관이 있다는 소문이 예전에 잠깐 돌았었다.

아마 이번 사태도….

“이 음흉한 개새끼가.”

“연회를 여는 겁네다! 우리의 성공을… 예?!”

열심히 연설하던 드숀이 프라타의 욕지기에 매우 놀라며 말을 잠시 멈추었다가 프라타의 손짓에 다시금 말을 이었다.

황태자는 공식적으로 제국 수호용의 관리를 맡는다. 그동안은 수호용이 잠자코 황실 제일 깊은 곳에서 잠만 자고 있었기 때문에 승계 순위가 제일 높은 이의 찬란한 명예였지만, 이번 사태 이후로 상황이 급변했다.

꼬장꼬장한 우리의 늙은이는 늘 그렇듯 책임자를 찾았고 운 나쁘게도 그날 창부들과 술을 마시고 있던 녀석이 걸렸다. 그에 제국의 승계 서열이 요동쳤고 이제는 황녀인 자신의 이름까지 거론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제 살 깎아 먹기를 할 줄이야.

하지만 상황은 이미 벌어졌고 그것을 수습하는 게 문제였다. 최상급 기사 2명과 상급 기사 다수…. 그렇다고 주먹왕과 황태자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도 없을 것이다.

프라타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연회래 연회! 조슈아! 저거 그거잖아! 파트너를 구해서 참석하는 파티!”

“그… 황녀님 지금은 분위기가….”

“이번에 확실히 이 건방진 년들에게 정실이 누구인지 인지시켜야겠어!”

심각한 프라타와 정반대로 케이트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자그마한 주먹을 굳게 움켜쥐었다.

***

북쪽의 흰색으로 가득 찬 설산 어딘가.

녹지 않는 왕국보다도 더 북 쪽에 있는 산.

물을 흘리면 금방 얼어서 굳어버릴 정도로 극심한 추위 때문에 인간에게는 미개척 지로 남은 곳이었다. 다만, 추위에 적응할 정도로 가죽이 두꺼운 마물들만이 남아서 나름의 생태계를 꾸리고 있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몰아치는 눈보라 속에 바람 부는 소리만이 주변을 가득 채웠다.

눈이 발을 내디디면 발목까지 들어갈 정도로 깊게 쌓인 곳을 누군가가 걷고 있었다.

“아하핫…. 정말 뼈가 다 얼어버릴 정도로 아득한 추위군요!”

눈을 가늘게 뜨고 있는 사내는 우스꽝스럽게 웃으면서도 열심히 발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 발이 얼어서 부서지면 냉큼 털어 새로운 발을 뽑아내며 걸음을 계속 옮겼다.

“이 멍청한 놈은 어찌 이런 깊은 곳에 숨었는지!!”

사내의 목소리에는 장난기와 기대감이 잔뜩 담겨 있었다.

그렇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설산을 계속해서 오르자 사내의 앞에 자그마한 오두막이 보였다. 사내는 주변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오두막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곳은 사람이 올 수 없는 곳인데 말이죠? 오두막이라니 의심스러운 것입니다?”

사내는 끊임없이 혼잣말하며 오두막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오두막에 가까이 가자 이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열기가 밖으로 새어 나왔다. 사내는 고개를 뿌드득 소리가 나도록 한 바퀴 돌려서 가볍게 몸을 풀었다.

“마물일까요? 마물이 불을 피울 수 있을까요? 아하핫!”

사내는 가볍게 웃으며 조금 더 걸음을 빨리 움직였다. 그에 얼어붙은 다리가 자꾸만 부서졌지만, 사내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윽고 사내는 오두막의 문고리를 잡고 당겼고, 아련히 잊고 있었던 열기가 사내를 녹였다.

“어라? 왜 아무도 없는 것일까요? 설마 귀신이 곡할 노릇?! 아하핫!”

사내는 과장되게 웃고 벽난로 옆에 달라붙었다. 얼어붙은 손이 녹고 이내 타들어 갔지만, 사내는 몸을 부르르 떨며 더욱 깊게 집어넣었다.

이윽고 탄 손이 사내에게서 떨어져 나와 떨어졌고, 사내는 고기를 손으로 꺼내서 입에 쑤셔 넣었다. 탄 맛과 사람 고기 특유의 노린내가 났지만, 몇 주를 굶은 사내에게는 진수성찬이었다. 그렇게 몸을 녹이고 배를 채우니 잠이 솔솔 왔고 사내는 바닥에 대놓고 누웠다.

사내가 잠에 빠지고 한참 뒤­.

누군가가 눈보라를 뚫고 오두막으로 오고 있었다. 붉은 머리가 허벅지까지 길게 내려온 키가 큰 여자였다. 여자는 검은색 마물 가죽을 길게 늘여 망토처럼 둘러매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검은색 마물 가죽으로 중요 부위만 대충 가린 상태였다.

다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큼지막한 가슴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서인지 가슴 부위에 매인 마물 가죽이 특히나 단단하게 묶여 있었다.

바람에 빨간 머리가 휘날리고 그 사이로 마치 정말 전설 속의 용처럼 단단해 보이는 뿔 두 개가 정수리에서 삐쭉 올라와 있었다.

“질긴 놈이었어.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렸잖아.”

그녀는 눈보라에도 아무 영향을 받지 않는 듯 그저 무표정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여자는 오두막 문을 열고 들어갔고, 이윽고 방 안에 엎어져 있는 사내를 봤다.

여자의 흉포한 기세에 사내는 눈을 떴고­.

여자의 엉덩이춤에 달려 있던 꼬리가 사내를 박살 냈다.

“…응? 아닌가 보네. 느낌이 이상했는데?”

여자가 중얼거리면서 피떡이 된 사내를 지나쳤다. 여자는 피 웅덩이를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며 짐을 챙겼다. 짐이라고 해봤자, 큼지막한 귀 몇 개가 다였지만.

“언제 또 내려가지. 너무 멀다니까. 그래도 에이든이 제국에 있으니…. 근데 이 뿔은 너무 이상하게 보이려나? 그냥 뽑을까. 꼬리는 그래도 쓸모가 많은데 말이지. 흐응… 뿔이 건강에 좋다던데, 에이든에게 달여 먹이면 되려나.”

짐을 다 챙긴 여자는 툴툴거리면서 아무렇지 않게 다시 오두막을 나가서 눈보라 사이로 사라졌다.

여자가 사라지고 잠시 뒤.

피 웅덩이가 모이더니 빠르게 사내의 형태를 갖추었다.

“히이이! 죽을 뻔했습니다! 아니 죽었나? 여하튼 인간이 저런 흉포한 기세라니…. 역시 세상은 참 넓습니다! 아하핫!”

사내는 피 웅덩이 속에서 옷들을 다시 주워 몸에 걸치고 오두막을 나섰다.

사내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눈보라 속을 계속해서 걸었고, 이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오언! 마녀님이 주신 안배를 가지러 왔습니다! 당신은 이런 후미진 곳에서 안배를 낭비하고 있으니 순순히 넘겨주십쇼! 아하핫!”

눈이 산처럼 쌓인 곳 앞에 선 사내가 당당히 외쳤다.

“으응? 왜 조용하지? 여기가 맞는데.”

뿌드득­.

아무 반응이 없자 사내가 얼굴을 빙그르르­ 한 바퀴 돌리더니 산처럼 우뚝 솟은 곳을 맨손으로 긁어냈다.

뼈를 아리는 추위에 손이 얼어 부서지면 털어서 다시금 새로운 손을 만들어내며 한참을 긁어내자 눈 아래 묻힌 무언가가 드러났다.

그것은 먼 옛날에 존재했다던 거인이었다.

정말 작은 산과 비견될만한 크기의 거인.

거인은 죽음이 원통한 듯 큼지막한 세 개의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거인의 몸 구석구석에는 인간의 치아 자국과 살점이 뜯힌 자국이 남아 있었다.

“역시! 여기 숨어 있었군요! 아하핫! 그렇게 숨는다고 제게서 달아날 수가…? 어? 뒤졌습니까? 영겁의 거인이?”

사내는 현재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얼굴을 몇 번이나 뿌드득­ 소리가 나도록 빙글빙글 돌렸다.

“그…근데 왜 귀 한쪽은 어디다 버린 겁니까? 그게 가장 중요한 부위인 것을…!”

인상을 잔뜩 쓴 사내가 몇 번이나 거인을 발로 걷어차더니 눈 위에 털썩 앉았다. 짙은 눈보라 때문에 사내의 무릎에는 금세 눈이 가득 내려앉았다.

“어쩐지 아까 그 여자에게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지더라니…. 영겁의 거인이 고작 인간 여자한테 죽은 겁니까? 참으로 한심합니다. 아하핫! 마녀님은 역시 나를 선택하신 게 분명합니다! 저번부터 거저먹으라고 이렇게 나타나니 말입니다. 아하핫!”

사내가 중얼거리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사내가 꺼낸 것은 식당에서 익히 볼 수 있는 포크와 나이프였다. 사내는 과장되게 냅킨까지 꺼내서 목에 둘렀다.

“뭐… 그건 나중에 가져오면 되고! 그럼 잘 먹겠습니다! 아하핫!”

사내는 마치 고급 요리를 먹듯이 우아하게 포크와 나이프를 움직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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