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4화 〉 부인이 둘.
* * *
큼지막한 유리병이 잔뜩 놓인 어두운 공간 속.
천오는 오랜만에 돌아온 곳에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봤다.
유리병 안에는 나체의 아이들이 하나씩 들어가 있었다. 익숙한 모습이었다. 천오의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곳이니까.
“에이든이 나를 믿는데….”
천오는 옆에서 중얼거리는 루나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유리병으로 다가갔다.
유리병에는 흰색 글씨로 ‘3153’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안에 있는 천오 또래의 소녀가 천오를 멍한 눈빛으로 응시했다. 소녀의 배에도 ‘3153’이 적혀 있었다.
‘너는 삼천백오십삼이구나. 이름이 길어서 불편하겠다.’
천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소녀와 눈을 맞췄다. 소녀가 뻐끔거렸지만, 목소리가 들리지는 않았다. 아마 들리더라도 의미 없는 울음에 불과할 것이다. 신생아 시절부터 저 유리병에 넣어버리니까.
천오도 유리병에서 나온 뒤 언어 팩을 받고 나서야 말을 구사할 수 있었다. 다만, 그 이후로도 말을 할 때마다 느껴지는 불쾌함에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입을 열지 않지만.
천오는 소녀의 시선에 자신의 옷을 슬쩍 들어 올려서 배에 적힌 숫자를 보여줬다. 그제야 소녀에게서 격렬한 반응이 나왔다.
아마 저 소녀에게는 지금의 천오가 꿈과 같을 것이다. 그때의 천오도 매일 같이 밖을 꿈꿨으니까.
천오는 소녀의 반응을 보면서 혀를 내밀었다. 그러면서도 유리병을 빙글빙글 돌면서 출구 버튼을 찾았다. 과거의 자신 같아 그냥 둘 수가 없었다.
“거기 누구입니까!”
그때, 옆쪽에서 손전등을 든 남자가 나타났다. 익숙한 흰색 가운. 여기에서 근무하는 연구원이 분명했다.
“에이든이 나를 믿는데….”
루나가 중얼거리면서 손을 뻗자 남자는 무형의 힘에 잡힌 듯 캑캑거리면서 끌려왔다. 루나는 남자의 머리에 손을 올리더니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그리고 남자를 놓았지만, 이미 남자는 눈을 뒤집고 게거품을 뿜어내고 있었다. 루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손을 털더니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천오는 혹시나 여자를 잃어버리면 다시 유리병 안에 들어가게 될 것 같은 느낌에 황급히 여자를 따라서 뛰었다.
‘미안.’
유리병 안에서 자신을 보는 소녀를 보며 작게 속삭였다. 소녀는 다시금 감정 없는 눈동자를 감을 뿐이었다.
루나는 거침없이 연구소를 돌아다녔다. 중간부터 레이저와 화기류 무기들이 등장했지만, 루나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했다.
“에이든에게는 루나가 최고야! 에이든에게는 루나밖에 없어! 말 잘 듣는 루나는 에이든이 사랑해!”
루나는 그저 들뜬 표정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마치 동네 뒷산을 산책이라도 하듯이 걸었다.
그러던 중 익숙한 얼굴의 여자가 천오의 눈에 들어왔다. 유일하게 자신을 챙겨줬던 연구원이었다.
“당…당신 뭐야!”
여자가 품에 든 서류를 소중하게 끌어안으면서 루나에게 소리쳤다. 루나는 그저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손가락을 들었고, 천오는 그 앞을 황급히 막았다.
살짝 찡그려지는 루나의 눈썹에 천오는 죽음을 직감했다. 천오를 이를 악물어 구토감을 참으면서 입을 열었다.
“이 여자 나랑 관련 있음. 필요.”
말을 마치자 타인의 입이 자신의 몸에 들어있는 듯한 불쾌함에 천오의 속이 메스꺼웠다.
“…그래.”
뭔가를 재는 듯이 손가락을 까닥거리던 루나가 흥미를 잃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흐읍….”
천오는 땅에 엎어져서 거친 숨을 내쉬는 여자를 잡아서 일으켰다.
“천…오?”
천오의 얼굴을 본 여자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을 더듬거렸다. 여자의 말에 천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 있었구나!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여자는 눈물을 흘리면서 천오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 어색한 따뜻함에 천오는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가만히 있었다.
“부…부작용은 어때?! 괜찮아?”
여자는 그 후로도 한참이나 천오의 몸 곳곳을 확인하며 이것저것 물었다. 천오는 그런 여자의 말에 손짓과 고개로 대답을 하면서도 루나가 사라진 위치를 기억했다.
“근데 저 여자는 누구야…?”
여자가 루나가 사라진 위치를 곁눈질하며 물었다.
손으로 표현하기 어려웠으므로 천오는 대충 고개를 저었다.
“관심 가지지 말라고? 아무튼, 네가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그 악랄한 놈들이 네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라고 여기서 쫓아냈을 때는 나도 같이 가고 싶었다니까. 근데 그것조차 녀석들은….”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여자의 말을 들으면서 천오는 쓴웃음 지었다. 여자는 천오가 유리병 안에 있을 때도 매일같이 찾아와서 말을 걸었었다.
천오는 여자의 말을 손짓으로 자르며 자신이 궁금했던 걸 손짓으로 물었다.
“응…? 가슴? 가슴을 더 키울 수 없냐고? 가슴은 왜? 지금 네 모습에는 그 정도 가슴이 딱 좋은데?”
여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천오의 가슴 부근을 손으로 문질렀다. 천오는 좀 더 열심히 손을 움직여 자신의 주장을 피력했다.
“음…. 잘은 모르겠지만, 꼭 가슴을 키우고 싶다면 보형물을 넣으면 되기는 하는데…. 그러면 전투 중에 터질 수도 있어. 상관없다고? 그래도 가슴 크기가 크면 불편할 수도 있는데…. 뭐? 꼭 필요하다고? 너만 없는 것 같다고? 으음….”
천오는 그 후로도 한참이나 여자와 가슴에 대해서 논의했다.
루나는 에이든의 부탁을 충실하게 수행한다는 생각에 들뜬 기분으로 연구소를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청소했다. 그러던 중 연구소의 깊은 곳에 마법과 기계로 보호되고 있는 공간을 발견했다.
꽤 상위 마법으로 보호하고 있는 듯했지만, 루나에게는 허점투성이였다.
가볍게 턱짓으로 보호 마법을 해제한 루나는 문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잔뜩 문을 잠그고 있던 흑 철이 휴짓조각처럼 흩날렸다.
안에는 밖처럼 유리병이 잔뜩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 담겨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밖과는 달랐다.
밖은 그래도 사람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에 안에 있는 것들은 사람과 마물을 합친 듯한 모습이었다. 꽤 흥미를 끄는 모습에 루나는 돌아다니면서 확인했다.
“누구냐! 으아악!”
“경고 눌….”
“비상! 비상!”
물론, 방해하는 쓰레기들을 청소하는 것도 있지 않았다.
그러던 중 루나의 시선에 하나의 유리병이 보였다. 제일 깊은 곳에 있고 유난히 쓰레기들이 모여서 지키고 있던 것.
다른 것들보다는 사람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등 뒤에 솟구쳐 있는 날개 그리고 몸 안에서 미약하게 느껴지는 이질적인 힘까지.
루나가 회귀 후에 그토록 찾았던 천사라고 불렸던 참새들.
악마들을 다 잡아 죽이고 고대의 신전이란 신전은 다 뒤졌지만, 녀석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분명 셀 수 없이 쏟아져 나왔던 숫자를 생각하면 금방 찾을 것 같았는데도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주제도 모르고 나의 에이든에게 상처를 입혔던 것들.
“찾았다. 쓰레기들.”
루나의 눈이 밝게 빛났다.
이로써 마지막 장의 퍼즐 조각이 맞춰지고 있었다.
***
눈을 뜨니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에이든 님? 정신이 들어요?”
옆을 보자 큼지막한 눈망울에 걱정을 잔뜩 담고 있는 서아가 보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 상체를 숙이느라 여실히 보이는 가슴골이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예. 제가 왜 여기에?”
대답하면서 내 마지막 기억을 되짚었다. 분명 케이트와 입 맞추고 고개를 돌렸는데….
“갑자기 비명을 지르면서 기절했다고 하셨어요. 혹시 몸에 불편한 곳이 있는 건가요?”
서아의 말에 마지막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 흉악하게 생긴 돌덩어리가 스티루마로 떨어지고 있었지!’
떠오른 기억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그냥 떨어진 거 아닐까? 천…천재지변인 거지! 아무리 루나라고 해도 그렇게 큰 돌덩어리를 그렇게 높은 위치에서 소환할 수 없을 거야. 거의 하늘 밖에서 들어온 것 같았는데 그걸 어찌 인간이 해 하하!
나는 억지로 생각을 돌렸지만, 가슴 깊숙한 곳에서는 알고 있었다.
루나가 스티루마를 씹창냈다는 것을.
“에이든 님? 괜찮아요?”
“아 네 괜찮아요. 그냥 조금 피곤했나 봐요.”
나는 굳어있는 입꼬리를 억지로 올리면서 대답했다.
“걱정했어요. 안드레아 님이 상태는 괜찮다고 하셨는데, 꽤 오랜 시간 누워있으셔서요. 그래서 저희가 교대로 간호하고 있었는데….”
서아가 크게 숨을 내뱉으며 내 머리를 쓸어넘겼다.
‘이미 돌이키기에는 늦었어. 어차피 씹창이 난 건 난 거니까. 다만, 나와의 관계가….’
서아의 손길을 느끼면서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어차피 루나가 벌인 일이니까 나와는 아무 상관없을 것이다. 내가 보내기는 했지만….
그리고 어차피 루나가 다 해결하지 않을까?
“에이든 님? 역시 그런 거죠?!”
“예?”
돌연 내 팔을 붙드는 손길에 다시금 정신이 돌아왔다. 옆을 보자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서아가 보였다.
“…그거잖아요! 청소를 제때 안 해서! 제가 해줘야 하는데 제가 요즘 바빠서 도통 못 해줬으니까요! 그때 청소를 못 해서 쌓이면 막 그렇게 된다고 하셨잖아요!”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진 서아가 소매를 걷으면서 소리쳤다.
그 뜬금없는 말이 순간 이해되지 않았지만, 내 하체는 머리보다 빠르게 반응했다.
“그러게요. 서아 씨가 도와주지 않아서 힘들었어요. 약속했으면서.”
그래 시발. 스티루마가 좆되던 말던 나랑 무슨 상관이야. 루나가 한 일인데.
나는 시발 아무것도 몰라. 진짜 모른단 말이야.
“죄…죄송해요. 제가 약속했는데, 요즘 혁명단 일이 너무 바쁘다 보니까…. 에이든 님이 저를 많이 도와주셨는데… 저는 에이든 님을….”
서아가 내 타박에 눈에 눈물이 금세 그렁그렁 맺혔다. 그 순수한 얼굴과 순결한 태도에 죄책감이 올라왔지만, 성욕이 그를 까분히 이겼다.
무엇보다 자꾸만 움찔거리는 서아의 엉덩이가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럼 벌을 받아야겠죠?”
“벌…이요?”
“예. 혹시 말로만 죄송하다고 하는 거였나요…?”
“아니에요! 정말 죄송해요!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을게요!”
서아가 황급히 고개를 저으면서 몸을 파르르 떨었다. 긴장했는지 손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에 뿌려지는 눈물에 가슴이 조금 더 무거워졌지만, 이미 칼을 뽑았으니 뭐라도 썰어야지.
그리고 혹시나 나쁜 사람에게 이 순수한 처녀가 당하기 전에 내가 먼저 교육해둘 필요가 있었다. 요즘 세상이 얼마나 험한데….
“공화국에서는 사죄할 때 절을 한다면서요?”
“…예. 맞아요. 낡은 풍습이기는 하지만…. 그럼 제가 절을 올릴까요? 그걸로 에이든 님의 마음이 풀린다면 얼마든지….”
서아가 내 말에 냉큼 자리에서 일어나서 뒤로 살짝 물러섰다. 그리고 깊게 숨을 내쉬더니 절을 하기 위해 무릎을 굽혔다.
“아니요. 그냥 절하면 진심이 안 느껴지잖아요.”
나는 그런 서아를 황급히 말렸다.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예? 그럼 어떤?”
엉거주춤하게 멈춘 서아가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아직도 흐르고 있는 눈물이 가학심을 불러일으켰다.
“진심을 보여야죠.”
나는 서아의 몸을 가리키며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렸다.
내 손짓을 잠시 멍하게 보던 서아가 의미를 깨달았는지 몸을 작게 떨었다.
“진심이요? 에엣?! 하…하지만 그러면 너무 부끄러운데….”
서아가 손으로 가슴 춤을 가리면서 몸을 비틀었다.
“저는 매번 서아 씨에게 제 것을 보여드렸는걸요. 저는 서아 씨가 제게 의미가 큰 사람이라 그랬던 건데, 서아 씨에게 저는 그런 게 아닌가 보군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라! 정말 부끄러워서! 해볼게요! 해볼 테니까 그런 실망한 표정 짓지 말아요….”
입술을 굳게 다문 서아가 옷고름을 잡으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부들부들 떠는 손으로 천천히 옷을 벗었다.
나체가 된 서아가 주춤거리면서 양손을 이마에 대고 천천히 절을 올렸다.
“죄…죄송해요.”
서아는 몸을 덜덜 떨면서도 완벽하게 절을 끝마쳤다. 나는 그 황홀한 모습을 보며 마음 안에 남았던 죄책감을 박멸시켰다. 죄책감 따위 아무 쓸모없는 감정일 뿐이니까.
“정말 죄송해요….”
절을 마치고 정자세로 선 서아가 중요 부위를 손으로 가리면서 나를 곁눈질로 쳐다봤다. 다만, 가리지 못한 엉덩이가 내 시선을 계속 잡아끌었다.
“그럼 그동안 못다 한 청소를 마저 해야겠죠?”
나는 그런 서아를 보며 결국 참지 못하고 입꼬리를 올리며 바지를 내렸다.
터질 것처럼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크게 끄덕인 서아가 천천히 내 앞에 무릎 꿇었다.
서아의 들뜨고 부드러운 숨결이 느껴졌다.
***
쾅쾅쾅!
“언니 그 자식 아직도 안 일어났?”
“아흑! 다음 아흑! 담당이! 서윤이었구나! 아흑!”
“이 미친 새끼가!! 나한테 하라고! 우리 언니 건드리지 말라니까!!”
“몰라! 나는 아무것도 몰라! 다 몰라! 나랑은 다 상관없는 일들이야!”
“뭐…뭐라는 거야 이 새끼가! 빼! 나한테 하라고!”
서윤은 냉큼 자신의 옷을 벗어 던지고 침대로 달려갔다.
그 발걸음은 언니를 대신해 전쟁터에 나가는 것만큼 경건했다.
***
똑똑똑.
“사제?”
노크 소리에 다시 잠에서 깼다.
양옆에 나란히 누워있는 서아와 서윤의 모습에 깊은 만족감이 가슴 속부터 솟구쳤다.
드디어 내가 자매 덮밥을…!
슬그머니 양옆의 가슴을 하나씩 쥐어서 크기를 비교했다. 서윤도 크고 아름다웠지만, 역시 서아의 압승이었다. 좀 더 주무르자 옅은 신음이 들렸다.
똑똑똑.
“사제.”
그런 내 정신을 문밖에서 들리는 키아나의 목소리가 일깨웠다.
“네! 금방 나가요!”
나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아래에 떨어져 있는 옷을 챙겨 입었다.
“서방님….”
그에 서아가 눈을 비비면서 일어났고, 나는 황급히 검지를 입에 대서 조용히 시켰다.
근데 왜 나보고 서방님이라는 거야?
‘그…그렇지만 하게 되면 저를 책임 지실 건가요? 혼인하지 않은 남녀가 이런 것을 한다는 것은….’
‘걱정하지 마요! 서아 씨는 제가 책임질 테니까! 닥치고 벌리기나….’
아뿔싸!
잔뜩 흥분한 고추가 조종하는 바람에 묘하게 타던 선을 넘어버린 듯했다. 그렇다고 이미 약속까지 한 마당에 되돌릴 수도 없었다.
나는 그런 서아에게 애써 웃어주고 문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앞에는 굳은 표정에 중무장한 키아나가 서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해 보이는 키아나의 모습에 나는 묘하게 불안해졌다.
“…사저? 무슨 일이에요?”
“사제….”
내 물음에 키아나가 말끝을 흐리면서 침음성을 삼켰다. 그리고 잠시 뒤 결심을 내렸는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면서 입을 열었다.
“스승님이 위독하시데.”
키아나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물기가 담겨 있었다.
‘그 미친 노망난 노인네가 위독하다니? 정정하기로는 용도 때려잡을 만큼 정정한 양반이 무슨….’
키아나에게서 나온 말은 너무 의외여서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필요했다.
“그리고 제국의 수도가 반파돼서 지금 급하게 복귀 명령이 떨어졌어.”
키아나의 목소리가 내 어지러운 머리를 깨웠다.
“일단은 나는 제국군 소속이라 먼저 복귀하는데 사제는 제국민이기는 하지만, 특별히 소속된 건 아니니까 굳이 복귀하지 않….”
“저도 갈게요. 잠시만 기다려줘요.”
나는 키아나의 말을 자르며 문을 닫았다. 언뜻 키아나의 한숨이 들린 듯했다.
어느새 일어난 서윤이 서아의 몸 상태를 확인하면서 몸을 부둥켜안고 있었다.
문을 닫고 들어온 나를 둘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쳐다봤다.
“서방님? 무슨 일이에요? 왜 울고 있어요?”
자리에서 일어난 서아가 내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물었다.
“울기는 누가 울어요. 그냥 눈이 건조해서 그런 거예요.”
서아의 부드러운 손이 내 볼을 간지럽혔다.
“쓸데없이 센 척하기는…. 무슨 일인데? 서방?”
서윤이 굳은살이 잔뜩 박인 손으로 반대쪽 볼을 닦아줬다.
뭐야 시발? 너도였어?
서윤의 말에 나오던 눈물이 쏙 들어갔다.
‘내가 다 책임질게! 너도 벌려! 둘이 나란히 벌려! 누구 보지가 더 이쁜지 확인해볼 테니까! 쌍둥이 보지! 쌍보지!’
‘정…정말이지? 너 시발 나중에 다른 소리 하면 죽일 거야.’
‘죽이던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고! 일단 벌리라고! 특급 보지 감별사가 확인할 게 있으니까!’
아뿔싸!
고추 이 미친 새끼.
고추에게 자율 주행을 맡긴 게 내 패착이었다.
다시금 떠오르는 어젯밤 기억에 헛기침하며 고개를 저었다.
“제 스승님이 위독하데요. 그래서 제국으로 복귀해야 할 것 같아요.”
나는 내 얼굴을 쓰다듬는 둘의 손을 밀어내고 검 손잡이를 잡으며 솟구치는 화를 억지로 다스렸다.
차가운 검 손잡이의 감촉이 내 어지러운 머리를 조금이나마 진정시켰다.
어떤 애미 터진 새끼가 감히 내 소원을.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열기가 안에서 솟구치며 내 장기들을 태우며 타오르고 있었다.
그 미친 노망난 노인네는 내가 배때지를 갈라서 노인정으로 보낼 거였다고.
내 평생의 숙원을 가져간 이름 모를 녀석에 대한 분노에 자꾸만 시야가 흐려졌다.
어떤 애미 터진 새끼야 시발.
“너 시발 이렇게 싸 재끼고 튀려는 거 아니지?”
자신의 중요 부위를 손가락으로 벌리는 서윤의 모습에 참지 못한 헛기침이 다시금 터졌다.
“에이 설마! 우리 서방님을 어떻게 보고! 서윤! 서방님한테 그렇게 말하지 마! 자고로 부인이라면 남편을 하늘같이 떠받들고….”
그런 서윤을 타박하는 서아의 허벅지 아래로 길게 늘여지는 피가 섞인 타액을 보며 나는 마른세수를 했다.
타오르는 분노와 하룻밤 사이에 코를 두 번이나 꿰였다는 당혹감이 내 머리를 뒤흔들었다.
[하룻밤에 부인을 둘이나 들이다니! 역시 소년은 이런 쪽으로는 대단하구만!]
[고작 교미 한번 했다고 부인으로 들이다니 교미왕으로서 실격이다. 암컷이라면 응당 좆집으…. 알았네. 그만 말하지. 자네가 있는지 깜박했다니까!]
자매 덮밥의 가격이 내 생각보다 비쌀 듯했다.
좆 됐네 이거 시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