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화 〉 제자가 계승 중입니다 스승님.
* * *
에이든이 나가고 방 안에는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키아나야. 수준이 더 올랐구나.”
“예. 이번 여행에서 깨달은 게 많아서요.”
에이든이 방을 나서자 금세 생기를 잃은 모습으로 돌아온 스승님의 모습에 키아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너는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하기 때문에 딱히 할 말은 없다. 다만, 저 밖에 있는 못난 놈. 저놈이 마음에 걸리는구나. 죽을 때가 돼서 마음이 약해졌는지 원….”
“사제요? 사제는 지금까지 잘한걸요. 공화국에서는 검귀로 유명해요.”
“크흘흘…. 저놈이 검귀라니. 저렇게 사람 구실 하나 하게 만드는 것도 힘들 줄이야. 그나마 다행이구만…. 키아나야 앞으로 끝이라는 게 다가올 거다.”
“끝이요? 그게 무슨…,”
‘끝이라니….’
키아나는 입에 담자 어색하게 굴러가는 단어를 몇 번이나 되새김질하며 되물었다.
“끝이라는 단어 말고는 따로 표현할 단어가 없구나. 끝에서는 벽을 넘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힘들 거야. 그래서 나는 저 못난 놈의 손에 죽을 생각이다. 저 못난 놈의 검은 상대방의 피를 먹는 것으로 유명한 검이니까. 왜 저 검이 저놈의 손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몸은 늙고 팔도 하나 없지만… 피는 꽤 쓸만할 테니까 끌끌.”
“스승님! 그게 무슨! 사제에게 왜 그런 큰 짐을 지게 하시려고!”
키아나가 돌연 표정을 굳히면서 대답했다.
“키아나야. 끝이 다가오고 있다. 끝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든 저 쓸모없고 불쌍한 녀석을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쓰레기 같은 재능을 가진 녀석이 살아남으려면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다 해야 해.”
“….”
키아나는 그저 검 손잡이를 매만지며 늙고 주름진 스승의 얼굴을 응시할 뿐이었다. 스승을 자신의 손으로 죽인다니 그 무게에 대해서 키아나는 감도 오지 않았다.
“녀석은 애미, 애비도 없는 고아라 감정에 서투르다. 안쓰러운 놈이지…. 신에게 미움이라도 받은 모양인지 가문도 없는 놈이 재능까지 없어. 끌끌끌. 아마 단단히 미운털이 박힌 게 분명해.”
스승이 잠시 말을 쉬며 길게 숨을 내뱉고는 다시금 말을 이었다.
“그나마 누군가가 녀석의 머릿속에 무언가를 주입해 놓은 덕분에 저기까지 겨우 끌어올릴 수 있었던 거지. 만약 그것을 키아나 네게 주입했으면 단번에 내 수준까지 올라갔을 것이야. 그러니 키아나야….”
말을 하던 스승님이 힘들었는지 말을 멈추고 침을 퉤하고 옆에 뱉어냈다. 침에 섞인 피에 키아나는 작게 침음성을 삼켰다.
“저 못나고 불량품에다가 패배 근성이 끝까지 박혀 있는 놈을 잘 보살펴주거라. 내 인생의 유일한 오점이라 자꾸만 마음에 걸리는구나.”
“당연하죠. 제게도 소중한 사제인걸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힘없이 웃는 스승님의 모습에 키아나가 따라서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그래. 이제야 안심이 되는구나. 그럼 저 못난 놈 좀 불러주거라.”
키아나는 그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심한 듯한 스승의 굳은 얼굴에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걸음을 옮겼다.
“…고맙다. 내 제자가 되어줘서.”
문고리를 잡은 키아나의 뒤로 스승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키아나는 다시금 솟구치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문고리를 돌렸다.
정말 죽을 때가 되긴 했나 보군. 이런 닭살 돋는 말도 하고 말이야. 끌끌끌.
문 앞에는 초조한 얼굴로 손톱을 비비고 있는 에이든이 있었다. 에이든의 눈가에는 차마 닦지 못한 물기가 옅게 남아 있었고 몸을 덜덜 떨리고 있었다.
‘어찌 그런 큰 짐을 저 아이에게.’
‘끝이 다가오고 있다. 끝에서 살아남으려면….’
키아나는 작게 고개를 흔들면서 무거운 입을 억지로 열었다.
“…스승님이 들어오래.”
“저를요…? 그 미…아니 스승님 정정한 거 같은데…. 괜찮은 거죠? 그 기운 좋은 늙은이가 죽을 리 없잖아요.”
불안한 듯 자꾸만 흔들리는 에이든의 눈을 보면서 키아나는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조금이라도 웃는 낯으로 보이도록.
다만, 굳은 눈은 도저히 움직이지 않았다.
“걱정하지마. 사제.”
키아나는 덜덜 떨리는 에이든의 어깨를 손으로 두드리고 옆으로 비켜섰다.
잠시 숨을 고르던 에이든이 그런 키아나를 지나쳐서 방 안으로 들어갔다.
키아나는 마지막까지 웃으면서 문을 닫았고.
그제야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
‘시발 이거 갑자기 뒤통수치는 거 아니야? 근데 눈물은 왜 자꾸 나는 거야. 눈에 뭐가 들어갔나?’
나는 미심쩍은 마음을 가지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서 문고리를 돌렸다.
침대 위에는 아까와 똑같은 자세로 정정하게 앉아 있는 노인네가 있었다.
“못난 놈. 이리로 오거라.”
노인네가 나를 보며 언제나처럼 굳은 얼굴로 말했다.
나는 그 모습에 돌연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예전 소설에서 보면 늙은 스승이 제자의 몸을 빼앗아서 회춘하는… 그런 거 하는 거 아니야?’
“빨리 오거라. 내 아직 발은 정정하다.”
노인네가 한쪽 발을 까닥거리며 재촉했다.
잠시 숨을 내쉬고 노인네의 옆으로 향했다.
가까이에서 본 노인네는 저번보다 훨씬 살이 빠져 있었다. 노인네의 눈 아래로는 죽음의 그림자가 깊게 들어있었다.
“못난 놈. 주어진 게 그렇게 많고 하물며 대륙 제일인 나도 일 년 가까이 돌봐주었건만, 결국 그 수준밖에 안 되는 것이냐! 그리고 눈깔은 또 왜 그래?!”
노인네가 정말 노망이 났는지 돌연 호통을 쳤다.
“그… 저도 노력했어요! 그리고 시발! 저도 이제 검귀라고요. 아주 공화국 놈들이 제 별명만 들으면 부들부들 떨면서 오줌을 지리는 걸 스승님이 못 봐서 그렇다니까요! 그리고 눈깔이 뭐 어때서요! 섹시하다는 여자가 줄을 섰거든요! 부인도 이미 둘이나 있어요!”
“끌끌끌… 네 놈에게 여자라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그리고 검귀라니 참으로 광오한 별명이구나. 검구라면 또 모를까.”
“검구요?”
“검 호구라는 말이다. 쯧. 이런 것도 설명해줘야 한다니.”
“누가 늙은이 아니랄까 봐! 이상한 것 좀 줄이지 말아요.”
“아무튼, 그래. 제자야 끝이 다가오고 있다.”
“끝이요? 그래 보이기는 하는데. 막 눈앞이 흐려져요? 누군가가 손을 흔들고 있나요? 아마 지옥에 가실 게 분명한데, 잘 골라서 가세요.”
“…나 말고 이 세계의 끝 말이다. 이런 못난 놈! 하늘 같은 스승님을 보고 그런 말버릇이라니! 에잉 쯧.”
“…그러게 평소에 잘 좀 하지 그랬어요.”
나는 혹시나 노인네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쥐어팰까 봐 걱정하면서 입을 놀렸다.
“끌끌끌…. 쓰레기 같은 재능을 가진 네 놈을 최상급으로 올려둔 것만 해도 충분히 잘한 일 아니냐.”
“…그거는 뭐 고맙게 생각해요. 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지 제게 말해봐요. 제가 나중에 존나 강해져서 혹시나 마주치면 손 봐 드릴 테니까.”
“됐다! 이 놈아! 네가 무슨 깡패냐! 손을 보긴 뭘 봐! 크할할할!”
노인네가 돌연 기운이 돌아왔는지 큰 소리로 웃었다. 그에 나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아무튼, 네 놈의 검. 피를 마시지?”
“히익! 역시 노망난 노인네! 이 검으로 내 정기를 뺏으려고! 안 당한다!”
나는 황급히 검을 뽑아 노인네를 가리켰다.
“…어디까지 고장 났는지 감도 안 오는 녀석이구나. 아마 그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 때문이겠지. 그래 그 상태 그대로 내 가슴을 찔러라.”
노인네가 마치 차 심부름을 시키는 것처럼 가벼운 목소리로 죽음을 종용했다.
“…예? 왜요. 시발. 어차피 곧 뒤질 거면서. 그냥 곱게 뒤져요. 왜 나까지 지옥에 데리고 가려고 해요. 저는 천국 갈 거예요.”
저 노인의 말을 따라라! 어서 내게 저 노인의 피를 주게 소년! 저 피는 지금까지 마신 피와는 수준이 다르다! 저것만 마시면….
닥쳐 병신아.
“지금 네 놈의 힘으로는 미래를 헤쳐나갈 수 없다. 지금까지 어떻게 요행으로 살아남았지만, 앞으로는 그게 불가능해. 네 검에게 내 피를 마시게 하면 앞으로의 일에 도움이 될 것이다.”
“싫어요. 시발! 늙은이의 피 따위 별로 안 당기니까 개 같은 소리 좀 하지마요. 시발 진짜 노망이 났나.”
결국, 억지로 참고 있었던 눈물이 다시금 터졌다.
‘아이 시발 이거 왜 이래 진짜. 눈에 뭐가 들어갔나 봐.’
“제자야.”
“그렇게 불러도 소용없어요. 약한 척하다가 내가 공격하면 벌떡 일어나서 나를 쥐어팰 생각이죠? 그런 얕은수에 당할 정도로 저는 병신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런 개 같은 소리는 집어치우고 약한 연기도 그만하고 일어나요. 시발 그렇게 누워 있는 거 존나 안 어울려요.”
“끌끌끌… 제자야.”
“그만 불러요. 에베베벱.”
나는 억지로 혀를 내밀면서 귀를 막았다.
소년 개 같은 짓 그만하고 저 노인의 말에 따라서 나에게 피를 먹여주게! 그럼 내가 소년에게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겠네!
필요 없다고 병신아. 나 혼자서도 충분히 올라갈 수 있다니까. 나 주인공이야.
“크할할할! 정말 가지가지 하는구먼. 내 피를 공짜로 주는 게 아니야. 아무리 죽는다고 해도 벽을 넘은 내 피는 꽤 비쌀 테니까.”
“에베베벱벱.”
“진짜 화나니까 그만하거라.”
“…예. 스승님이 자꾸만 개 같은 소리를 하니까….”
“현실적인 말이다. 너는 이대로면 끝을 버틸 수 없어.”
“그걸 누가 알아요. 저 검귀라니까요! 시발! 공화국놈 들의 악몽! 검귀!”
“…내 피를 마셔라. 대신 내 의무였던 대륙을 지켜라.”
노인네의 호랑이처럼 서슬 퍼런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그 눈빛이 내 마음을 종용했다.
나를 저 노인에게 꼽아주게! 소년.
개 좆같은 새끼들. 왜 나한테만 지랄이야.
“그… 시발 대충 지킬 거에요.”
자꾸만 무거워지는 검에 손이 덜덜 떨렸다. 검은 지금까지 내가 들었던 어느 때보다도 무겁게 내 어깨를 짓누르고 가슴을 짓뭉개고 있었다.
“여기쯤이 적당할 것 같군. 잘 보아라 여기니까.”
노인네가 명치 부근을 손으로 가리켰다.
“걱정하지 말아요. 이미 머릿속으로 수만 번 돌려본 상황이니까 시발. 이날만을 꿈꿨다고요.”
“…끌끌끌. 불초한 제자로다.”
마치 대륙을 든 것처럼 무거운 검을 억지로 움직여 천천히 노인네의 명치에 찔러 넣었다.
지난 일 년간 꿈꿔온 상황이었지만, 생각보다 즐겁지 않았다.
늘 그렇듯 살을 파고드는 검의 감촉이 내 기분을 더럽게 했고.
내 검이 노인네의 명치 안쪽으로 깊숙하게 파고 들어갔다.
“…끌. 사내가 이 정도로 울어서야 되겠느냐.”
“안 울어요. 시발 좆같은 소리 하지마요. 눈에 뭔가 들어간 것 같다니까요.”
“제자야. 크흡… 끝까지 발버둥 치거라. 목에 칼이 바로 앞까지 들어와도 쿨럭.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 크흠. 발버둥 치면 수면으로 뜰 수 있을 것이야. 끌끌끌.”
크하하하하! 맛있다! 맛있어! 아니 맛있다는 말로는 부족해! 정말 산해진미로다!!
잔뜩 흥분한 검의 목소리와 동시에 검을 통해서 막대한 양의 기운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기운은 내가 늘 이를 갈던 노인의 기운이었다.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정순하고 어울릴 정도로 포악한 기운.
그 좆같은 느낌에 욕지기를 내뱉으면서 천천히 감기는 스승님의 눈을 응시했다.
“발버둥…치거라. 계속….”
“그거는 제가 제일 잘하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요. 거기서는 시발 성질 좀 죽이면서 살아요. 그러니까 그 나이가 돼서도 결혼을 못 하지…. 시발.”
마침내 스승님의 눈이 편하게 감겼고, 그제야 나는 무겁던 검을 뽑아냈다.
쓰러지는 스승님의 마르고 생기 없는 몸을 벽에 기대어 세웠다.
생기를 잃은 스승님은 그 어느 노인보다도 작았다.
이렇게 작았나 싶을 만큼.
하하하! 맛있다! 맛있어! 오랜만에 배가 부르군! 기분이 좋으니 내 소년에게 선물을 하나 주도록 하겠네!!
검이 광오하게 웃으며 내게 뭔가를 쑤셔 넣었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눈앞이 흐려졌고,
‘크큭… 저번처럼 내게 즐거움을 안겨주면 좋겠군. 제국 제일검. 크큭….’
해골 안대를 쓴 철수 녀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순간적으로 내 기억을 의심했다.
저 새끼가 왜 저기 있어?
정말 개 병신인 철수가 저기에 서서 검고 깊은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기억은 철수와 붙으면서 순간적으로 끊겼다.
그리고 이어서 이어진 기억은 쓰러진 노인네의 팔을 철수가 뽑는 장면이었다.
‘크큭… 오히려 저번보다 강해졌군… 크큭… 대륙 제일이라고 불릴만해…. 첫 회차의 나였으면 힘들었겠군… 크큭….’
오른팔이 통째로 찢긴 철수는 남은 왼손으로 노인네의 팔을 하나하나 뜯어냈다.
그리고 노인네가 의식을 잃으며 기억이 흐려졌고.
나는 다시금 방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 미친 애미 터진 시발 새끼가.
마치 내 손이 뜯긴 것처럼 생생한 기억에 내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다가 돌연 의문이 다시금 떠올랐다.
근데 저 새끼가 왜 저기 있어?
그리고 시발 저 새끼 왜 저렇게 강해?
나는 찝찝한 느낌으로 이제는 싸늘하게 식은 스승님의 모습을 확인했다.
“그… 시발 고마웠수다. 스승님. 대륙은 뭐…. 대충 지켜볼게요.”
들고 있던 검이 너무 무거워 놓쳤고 가슴이 무너질 것처럼 답답해 피를 토하듯 헛기침을 했다.
덜덜 떨리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편안히 누워있는 스승님에게 절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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