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화 〉 수도 탈환 작전.
* * *
키아나는 즉위식이 끝나고도 한참이나 바쁘게 돌아다녔다. 황실 기사단의 기사들과 인사를 나누며 통성명했고 몇 남지 않은 귀족들과 친분을 교류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그런 키아나의 횡보에 제국군 측의 불안함이 작게나마 줄어들었다.
“멍청이… 언제 올 줄 알고 여기서 기다리는 거야.”
“싫으면 가라니까. 너보고 남으라고 한 적 없어.”
“내가 그…그냥 가면! 너희 둘이 뭐 하려고! 절대 안 되지! 절대 안 돼!”
케이트가 졸린 눈을 손으로 비비면서 하품을 늘어지게 했다. 작게나마 키아나를 축하하기 위해 키아나의 방에서 대기했지만, 이렇게 늦어질 줄은 몰랐다. 덕분에 나와 케이트는 키아나의 침대에 누워서 뒹굴고 있었다.
“팔 좀… 빌려줘 봐. 평민… 여기 베개 너무 딱딱하단 말이야.”
자꾸만 옆에서 징징거리는 케이트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고 팔을 옆으로 뻗었다. 케이트가 작은 몸을 비비적거리며 내 팔에 기대어서 슬그머니 몸을 붙였다.
“바보 멍청이 병신.”
“야… 마지막 말은 좀 그렇다.”
내 팔에 누워서 나를 올려다보는 케이트를 보며 작게 웃었다. 케이트는 작은 코를 킁킁거리며 내 냄새를 연신 맡았다.
“뭘 잘했다고 웃어. 이 멍청아.”
“얘는 사사건건 시비야 시비는.”
“네가 자꾸 짜증 나게 하잖아. 이상한 애들이랑만 어울리고….”
“그래그래 내가 잘못했다.”
“말투 개 띠꺼워 진짜. 재수 없어!”
“아! 따가워!”
케이트가 작은 손으로 꼬집으면서 나를 노려봤다. 그 눈에 담긴 살벌함에 또 웃음이 터질 뻔한 나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진짜 멍청이. 별 같잖은 것들이랑 놀고. 나는 보이지도 않고….”
“네가 보이지 않는다니… 이렇게 큼지막한 가슴을 어떻게 안 볼 수! 악!”
“또또! 이상한 헛소리로 넘어가려고! 안 통해!”
“어어? 입꼬리 올라간다.?”
“안 올라갔거든!! 개소리하지마! 진짜! 어이없어! 어이없다고!”
“억! 올라갔는데! 내가 봤는데!”
“진짜 왜 이딴 놈이랑 엮여서! 로맨스라고는 쥐뿔도 없고! 센스도 없고! 여자라면 환장하고!”
“야! 아파! 아프다고! 아악! 왜 이래! 갑자기!”
“어떻게 데이트 가자고 한 번을 안 할 수가 있어?! 내가 꼭 이렇게 말을 꺼내야 해?! 병신이야? 맨날 가슴이나 훔쳐보고! 병신이던 놈이 좀 멋지다 싶어서 좋아하게 된 내가… 이건 취소! 그런 적 없어! 안 좋아해! 멍청이! 속았지?!”
진짜 병신인가 얘는.
자기 혼자 말하고는 냉큼 고개를 도리질하며 말을 바꾸는 모습이 못내 웃겼다. 내가 웃자 케이트가 뜨거운 콧김을 뿜어내며 내 가슴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퍽퍽 소리가 날 정도로 그 강도가 강했지만, 나는 그저 웃으며 그런 케이트의 폭력을 받아줬다. 좆고수인 내가 좆밥인 케이트의 성질을 참아야지.
“야! 어디 만져! 어디를 그렇게 아흑! 세게 잡지마! 문지르지 말라고! 여기 키아나 방이잖아! 손을 어디에 넣는 거야!”
“마사지해 주려고 그랬지. 싫어?”
“진짜! 거지 같은 놈이야! 어?! 로맨스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내 창문에 자그마한! 야아! 세게 만지지 마! 쥐어짜지 말라고! 돌을 던져서 하응.”
“자그마한 돌을 던져서?”
잔뜩 붉고 일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흔들면서도 내 손을 밀어내지 않는 케이트의 모습에 나는 다시금 작게 웃었다.
“그러니까! 로맨스 있게! 내가 자는 방에 누군가가 작은 돌을 자꾸만 창가에 던지는 거지! 하아아… 너?! 왜 이렇게 능숙해졌어?! 어떤 녀언….”
“말 이쁘게 해야지.”
“아니… 그니까… 그래서 자꾸만 나는 톡톡 두드리는 소리에… 내가 창문을 여는 거야! 그러면 그 아래에 딱 너가 서 있는 거지! 손에는 내가 제일… 아흑! 좋아하는 물양지꽃을 잔뜩 든 채로… 공주님 데리러 왔습니다! 이렇게…. 그니까! 그냥 이런 이야기가 소설에 있었다고! 내가 생각한 거 아니야! 내가 꾼 꿈이 아니야!”
케이트가 자그마한 양손으로 내 오른손을 꾸욱 누르고는 계속해서 고개를 작게 흔들며 열심히 말을 이었다.
“그…그만해… 멍청아 여기 키아나 방이라니까… 할 거면 네 방으로….”
슬금슬금 케이트의 몸이 덜덜 떨리면서 반응이 올라오려고 할 때, 멀리서 작은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에 황급히 케이트의 아래에 들어가 있던 손을 빼냈다.
밖으로 다시 나온 내 손은 물에 담근 것처럼 흠뻑 젖어있었다.
“진…진짜 빼라는 말이 아니라! 그걸 진짜 멈추면 어떻게 해! 잠…잠깐만! 눈 감아!!”
대뜸 언성을 높인 케이트가 자신의 옷으로 내 손을 비벼 닦았다. 그리고 때맞춰서 키아나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방으로 들어오는 키아나의 얼굴은 피곤함에 가득 절어 있었다.
“서프라이즈!”
“멈추라고 진짜 멈추는 바… 서! 프! 라! 이! 즈!”
내 손을 닦으면서 툴툴대던 케이트가 황급히 나를 따라서 어색하게 양손을 펼치면서 소리쳤다.
“사제? 황녀님?”
우리를 발견한 키아나의 얼굴이 잠시 멈칫거리더니 환하게 밝아졌다. 그 모습은 마치 퇴근한 부모가 잠을 자지 않고 자신을 기다리는 자식을 보는 모습과 흡사했다.
물론, 나는 잘 모르지만. 대충 그럴 것 같았다.
“사저를 작게 축하하려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흥 나는 그냥 이 멍청이가 또 허튼짓할까 봐 감시하는 거야. 오해하지마.”
“이거는 케이트가 준비한 케이크인데, 황실 주방장이 만들었데요.”
“준비 안 했거든! 그냥 내가 억지로 황실에서 끌고 나온 주방장인데, 이번에 수도가 다시금 터진 것을 보고 그 녀석이 멋대로 감사를 표시한다고 케이크를 만들어서 준거야! 오해하지마! 이 멍청이들아!”
“고마워요. 황녀님. 케이크라니 정말 맛있을 거 같아요.”
“오해하지 말라니까! 이 멍청아! 그… 그리고 그렇게 웃지도 마! 나를 보면서 따뜻하게 웃지 말라고! 오해라니까!”
“사저가 피곤할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작게나마 초를 불어볼까요?”
나는 길길이 날뛰는 케이트를 무시하고 침대에서 일어나 테이블에 올려둔 케이크에 불을 붙였다.
“고마워 사제. 이제야 숨을 좀 쉴 수 있을 것 같네.”
키아나가 작게 웃으며 갑옷의 이음새 부분을 손으로 두드려 벗었다. 갑옷이 꽤 더웠는지 안에 받쳐입은 옷은 땀에 흠뻑 젖어 키아나의 몸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그러자 드러난 늘씬한 키아나의 몸매에 나도 모르게 작게 감탄했다.
“야야! 눈감아! 너! 뭐 하는 거야 지금!! 빨리 가서 씻고 와!”
케이트가 내 눈을 손으로 막으면서 키아나를 향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아 음… 그러는 게 나을 것 같네. 갔다 올 게 사제.”
그에 자신의 몸을 내려다본 키아나가 볼을 작게 붉히며 샤워실로 향했다.
“진짜 너는 어떻게 틈만 나면 다른 여자를…. 심지어 방금까지도 내 가슴이랑 아래를 주물렀던 놈이!!”
키아나가 샤워실로 사라지자 케이트가 도끼눈을 뜨고 나를 노려보며 내 가슴팍을 손가락으로 콕콕 찔렀다.
“남자의 본능이라니까. 이렇게 태어난 걸 어떻게 하라고. 이제 그만 인정해.”
“하! 이 새끼! 뻔뻔한 것 봐! 부끄러움이라도 좀 느끼라는 말이야! 자제랑 절제라는 걸 좀 하라고!”
“시끄러워! 초 붙이는 데 방해되잖아!”
“초 하나도 못 붙여서 뻘뻘 거리는 애가 욕심은 그득그득 하기는! 줘 봐! 이 멍청아!”
내 손에서 마법 성냥을 가져간 케이트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더니 능숙하게 불을 붙여서 초에 옮겼다.
그렇게 준비를 하는 동안 가벼운 옷차림에 머리가 젖은 키아나가 나왔고.
“이게 지금?! 이런 꼴로 나올 거야?! 들어가! 들어가라고!”
케이트가 득달같이 달려가서 키아나를 데리고 샤워실로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나온 키아나는 긴 팔에 긴바지까지 입어 완전히 무장한 상태였다.
키아나는 옷이 불편한 듯 약간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내 나를 보며 미소지으며 테이블 반대편에 앉았다.
흥
작게 콧방귀를 낀 케이트가 슬그머니 내 옆에 앉았고 우리는 초를 보면서 눈을 살짝 감았다.
“맛있네요. 이거.”
“그러니까요. 진짜 맛있네.”
“흥! 내가 괜히 그놈을 끌고 나온 줄 알아?”
우리는 밤늦게까지 케이크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키아나는 그제야 편하게 웃으면서 답답했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
“그러니까 용을 잡으러 간다고요?”
나는 내가 들은 말을 믿지 못하고 되물었다.
“응. 황실 기사단 1조와 2조가 어제 합류했데, 본격적으로 제국 수도 탈환 작전을 시작할 거야.”
키아나가 복장을 고치며 대답했다. 휘황찬란한 은빛 갑옷과 그 위에 붉은 망토까지. 지금의 키아나는 전설에 나오는 용사 그 자체였다.
“그… 사저도 그때 그 도마뱀 보지 않았어요? 입에서 불 뿜어내면서 주변을 씹… 아니 부수던.”
“그랬었지. 그래도 그 당시와 지금은 다르니까. 황실 기사단 분들도 있고, 또… 수도를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진짜 미친 새끼들인가?
그 도마뱀을 잡으러 기어코 기어들어 간다고?
나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어차피 씹창 난 수도 그냥 옆에다가 새로 지으면 되잖아. 그 폐허는 도마뱀 우리로 주고. 가끔 악마들 잡아다가 먹이로 던져주면 어떻게든 사이좋게 살아가지 않을까.
“그때와 달리 지금은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 걱정하지마 사제. 금방 돌아올게.”
키아나가 시원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따뜻한 눈으로 나를 보며 웃는 키아나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며 나는 고민했다.
‘대륙을 지키거라….’
알았다고요. 시발!
[빨간 도마뱀….]
“저도 같이 갈게요. 사저가 가면.”
언뜻 보이는 스승의 쭈글쭈글한 얼굴에 황급히 고개를 흔들면서 대답했다.
“응…? 사제가 갈 필요는 없는데.”
“사저가 위험하잖아요. 당연히 제가 가야죠. 저 검귀에요 검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하는 키아나의 태도에 내 언성이 저절로 높아졌다.
‘나 검귀라니까 시발. 왜 다들 무시하는 거야.’
억울한 심정도 있었다. 전쟁터에서는 공화국군들이 모두 나를 보며 공포에 절어 몸을 덜덜 떨었는데, 주변에서는 죄다 나를 좆밥으로 보고 있었다.
“하하 응. 고마워 사제. 사제가 같이 가준다면 정말 든든할 거 같아.”
잠시의 어색한 침묵이 지나가고 키아나가 나를 보며 귀엽다는 듯 웃으며 내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싸우면 내가 지기 때문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대륙을 지키기 위한 첫걸음은.
둥지를 잘못된 곳에 자리 잡은 도마뱀 사냥이었다.
***
“뭐?! 도마뱀 잡으러 가는데 너는 왜 가?! 너는 좀 낄 때 껴! 거기를 네가 어디라고 가냐고!”
“나 검귀라고 검귀! 공화국의 악몽 검귀! 시발! 왜 다들 나를 좆밥으로 생각하는 거야!!”
“좆밥이잖아!! 맨날 얻어맞고 다니고! 그냥 가만히 좀 있으라니까! 왜 사고를 못 쳐서 안달이야! 안달은! 그냥 여기서 나랑 커피나 마시면서….”
“사고 치는 게 아니라… 제국의 수도를 탈환하여 대륙을 지키는 원대한….”
“네가 지키기는 뭘 지켜!! 그냥 좀 가만히 있어! 다들 어련히 알아서 하는데 왜 나서냐고!”
“몰라! 나 검귀라고!! 대륙 지켜야 해! 안 지키면 늙은이가 나를…! 됐어!”
“야! 어디가! 잠깐만!! 이거 챙겨서 가!”
케이트가 잔뜩 불만에 가득 찬 얼굴로 빵빵한 배낭을 내밀었다. 배낭의 입구 사이로 삐져나온 초콜릿에 나는 그만 웃고 말았다.
***
가슴속에 가득 차 있던 대륙을 지킨다는 사명감은 수레에 앉으면서 천천히 사라졌다.
“시…시발. 이거 수레 존나 불안하지 않아요?”
달그락거리며 굴러가는 수레에 나는 차오르는 욕지기를 뱉었다. 수레는 전에 곡물을 옮기던 용도였던 듯 언뜻 맡아지는 풀 내음이 자꾸만 내 정신을 흐리게 했다.
“응? 무엇을 말인가. 이 수레는 어쩔 수 없다고 들었네. 그 도시에 여분의 마차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내 옆에 앉은 찰스가 대답하며 수레를 탕탕 두드렸다.
“아니 뭐 어쩔 수 없다고는 해도… 왜 이렇게 탁 트여 있고 헤져서… 왜 하필 용을 잡으러 가는 길에… 이런 허름한 수레에… 그리고 왜 또 말은 하나고! 이거 진짜 불안하다고요!”
자꾸만 비틀거리며 제대로 마감이 되지 않은 도로의 상태를 전달하는 수레 때문에 불안감이 가중되었다.
“하하하! 걱정하지 말게! 이거 검귀라더니 속은 완전히 겁쟁이구만!!”
찰스 옆에 앉아있는 덥수룩한 사내가 크게 웃으며 자신의 방패를 두드렸다.
“용을 잡는다니… 이거 성공하면 평생 술안주 걱정은 없겠구만! 크하하하!”
“술안주뿐이겠나! 술집에서 이야기만 풀어도 그 주변에 있는 여자 용병은 다 자네 것이 될 테지!”
좆같은 소리를 허허거리며 이야기하는 기사들을 애써 무시하며 다시금 내 아래에 있는 수레를 응시했다.
그 수레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괴리감에 자꾸만 더 불안해졌다.
“그 시발… 용이라는 거 전에도 잡은 적이 있기는 한 거예요?”
“응? 만약 그랬다면 용이 괜히 용이겠나! 하하하! 당연히 우리가 처음이지! 원래 자고로 남자란 처녀를 뚫을 때….”
대뜸 음담패설로 넘어가는 사내의 말을 흘려들으면서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예전에 신살자 세누트 잉리스라고 있지 않은가! 그녀는 신도 베어냈다고 하던데, 고작 도마뱀이 문제겠나! 하하하!”
“그거는 전설 속 이야기 아닌가. 그래도 저번 수도에서 탈출할 때 벨 아테스님이 한차례 용과 전투를 벌이셨는데 멀쩡하시지 않나. 거기에 차기 제국 제일검까지 합류했으니 이번에는 무리 없을 걸세.”
“그나저나 차기 제국 제일검님의 외모를 봤는가? 나는 그야말로 눈이 멀어버릴….”
이내 다시 여자 이야기로 빠지는 기사들의 대화를 흘려들으면서 긴장을 애써 풀었다.
그래 시발.
벨 어쩌고 뭐시기가 이미 한차례 싸워봤다니까.
[빨간 도마뱀이라….]
[벨이라….]
둘 다 시발 왜 그래.
장난치고 있지만, 기사들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긴장감이 담겨 있었다. 그들도 나처럼 어떻게든 사지로 걸어 들어간다는 생각을 떨치기 위해 노력하는 듯했다.
“정말 아름답던데 그분도 남자가 있을까?”
“이미 모든 혼사를 거절했다는 걸로 유명하지 않은가. 그 당시에 대륙의 내로라하는 젊은 검사들은 다 모였었으니. 그 기개와 아름다움을 품은….”
“거기까지! 그만 말해요! 제 미래 아내니까.”
나는 또 음담패설로 빠질 것만 같은 대화를 황급히 막았다.
“…제국 제일검 님이 자네 미래의 부인이라고?”
“예. 그러니까 그런 파렴치하고 저속한 말은 자제 부탁드립니다. 저만 할 수 있거든요.”
나는 경건함을 잔뜩 담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나의 기개에 감동한 기사들이 잠시 침묵을 지켰고.
“푸하하하하!! 자네 농담을 정말 재밌게 하는 구만!!”
“하하하! 진짜 웃겼어! 자네와 제국 제일검님이 혼인을 한다니!!”
기사들이 크게 웃으면서 내 어깨를 마구 두드렸다.
“진짜라니까요 시발… 내가 사저 가슴도….”
“그래그래! 포부는 크게 갖는 게 좋지!”
“하하! 정말 재밌는 친구구만!”
기사들은 끝까지 내 말을 믿지 않았고 나는 키아나와 황녀가 타고 있는 마차를 손가락질하며 계속해서 주장했다.
“시발! 진짜라니까!”
결국, 끝까지 기사들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
곧 부서질 것처럼 달그락거리며 움직이던 수레는 폐허가 된 수도의 성벽이 보이는 곳에서 멈췄다.
계속해서 웃고 떠들던 기사들은 이제 더는 입을 열지 않고 그저 굳은 얼굴로 검을 갈무리했다. 그에 나도 머쓱해져서 주장을 그만하고 그들을 흉내 냈다.
으흐으응… 거기 좋네! 거기를 조금 더 긁어보게.
닥쳐 좀 시발.
수도 탈환 작전은 소수 정예로 구성됐다. 그는 50명 정도 되는 숫자였는데, 그중 제일 약한 기사가 상급일 정도로 전체적인 수준이 높았다.
그리고 스승처럼 그 경지가 감이 오지 않는 늙은이가 하나 껴 있었다.
듣자 하니 벨 어쩌고인데, 황실 기사단장이라는 듯했다.
벨 늙은이와 키아나가 황녀 앞에 부복하여 명령을 받고 있었다. 그런 둘의 모습에 꽤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이미 도마뱀과 한차례 교전을 겪은 벨 어쩌고가 승산이 충분하다고 보증도 한 상태였다.
‘그래도 시발. 제국의 황실 기사단장이라니까….’
나는 검 손잡이를 매만지며 불안한 마음을 애써 진정시켰다.
“이쪽으로 모이도록.”
이내 벨 어쩌고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모두를 불렀다.
벨 노인네는 우리 늙은이와 다르게 키와 덩치가 정정한 늙은이였다. 깔끔하게 정리된 수염과 머리의 허연 색만 아니면 미중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정정했다.
근데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크흠….]
기사들이 금세 벨 늙은이의 앞에 정렬했고 나는 제일 뒤에 섰다.
“우리의 손에 제국의 운명이 달려있다. 저 후안무치한 도마뱀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임무에 나가 있었던 나는 바로 막지 못했지만, 그 뒤에 다시 수도로 접근해 남은 기사들과 백성을 구출할 수 있었다. 물론 자네들이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이해된다. 상대는 그 전설 속에만 나오던 드래곤이니까.”
벨 늙은이가 잠시 말을 멈추고 낮게 가라앉은 눈으로 앞에 늘어선 기사들을 훑어봤다. 그리고 다시금 입술을 열었다.
“하지만 이미 도마뱀과 한차례 교전한 나는 놈의 수준을 알고 있다. 도마뱀은 강하기는 하지만 전설 속에 나올 정도의 신화적인 존재는 아니다. 만약 그때 제국 제일검 놈이 있었다면 아마 둘이서도 충분히 막을 수 있을 정도의 존재다. 뭐… 이미 죽은 그놈만큼은 아니더라고 제법 쓸모 있는 그놈의 제자가 있으니 너무 긴장하지 말도록.”
벨 늙은이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와 그 안에 담긴 힘이 내 안에 있던 불안함을 줄였다. 다른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도마뱀의 특성상, 한번 크게 사고를 쳤으니 지금은 잠을 자고 있을 게 분명하다. 제국에서 관리할 때도 대부분의 시간을 잠을 자는데 소요하던 놈이니까. 이 기회를 틈타서 일단 기습을 하는 것으로….”
“크롸롸롸롸롸롸롸!!!”
벤 늙은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폐허가 된 수도 안에서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고 흉포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안에 담겨 있는 강대한 힘과 깊이를 알 수 없는 분노에 나는 몸을 작게 떨면서 숨을 곳을 찾았다.
‘사도야 저거는 수지 타산이 안 맞아! 옳지! 옳지! 굳이 저런 포인트도 안 주는 놈들이랑 싸울 필요 없어요’
[도망가지 말게 소년. 내게 빨간 도마뱀을….]
뭐라는 거야 시발….
지금 당장이라도….
그때 갑자기 수도에서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우리 쪽을 향해 날아왔다.
기사들은 황급히 피했고.
날아오던 그것은 땅에 몇 번이나 튕기면서 그 속도를 점점 늦췄다. 얼마나 강한 힘이 담겼는지 부딪혔던 부분들이 죄다 잔뜩 움푹 파였다.
그리고 그것은 마침내 땅에 크게 자국을 내며 멈추었다.
주변의 시야를 가릴 정도로 일어난 먼지가 천천히 가라앉았고, 그제야 구덩이 속에 있는 것의 모습이 보였다.
잔뜩 엉망이 된 빨간 머리와 그 아래로 드러난 절대 잊지 못할 파멸적인 크기의 가슴.
“흐하 이거 꽤 아프네. 퉤! 이렇게 재미있는 게 또 있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몸을 작게 웅크렸던 비키가 주섬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길게 켰다.
그러고는 의문에 찬 눈으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기사들을 둘러보다가 이내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어? 내 꺼네? 오랜만이야.”
비키가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은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나를 응시했다.
누나가 왜 거기서 나와요?
다만,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강대한 기운에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마주 손을 흔들었다.
얘는 또 왜 이렇게 강해졌어 시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