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화 〉 용을 잡은 영웅.
* * *
비키는 나를 엎고 호텔의 홀로 내려갔다. 나를 홀의 멀쩡한 의자에 앉혀두고는 본인은 주방으로 들어가서 요리를 시작했다.
짐승처럼 나를 범하던 비키에 대한 두려움이 주방에서 솔솔 풍겨오는 향기로운 냄새에 조금씩 풀어졌다.
나체 상태인 비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부지런히 움직여 이것저것 볶고 구웠다. 탄력적인 엉덩이 뒤에 튀어나온 굵직한 꼬리가 좌우로 자꾸만 흔들리는 것을 보니 기분이 매우 좋은 듯했다.
처음에는 엉덩이에 있는 굵직한 꼬리가 이상했지만, 침대 위에서 악착같이 범하는 비키에게서 생명의 위협을 받았을 때, 나를 살려준 유일한 생명줄이었다.
내 아래가 부서질 것 같은 느낌에 나는 황급히 손을 내밀어 꼬리를 힘껏 움켜잡았었다. 그러자 비키는 어울리지 않게 얇은 목소리로 신음을 하고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물을 침대가 흠뻑 젖을 정도로 뿜어냈다.
그 이후로도 나는 죽을 것 같으면 비키의 꼬리를 잡아서 힘껏 애무했다. 그러면 비키가 물을 뿜어내며 절정했고 5분 정도는 쉴 수 있었다. 그 이후에 비키의 눈빛이 더욱 돌아가기는 했지만.
나는 정신을 잃으면 위험해질 것 같았기에 자꾸만 흐릿해지는 정신을 애써 붙들었다.
얼마나 뽑혔는지 비키의 탄력적인 엉덩이와 파멸적인 가슴을 봐도 아무런 음심이 생기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금방이라도 등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순간 정신이 흐려졌고 다시 눈을 뜨니 내 앞에 음식이 잔뜩 차려져 있었다.
“피곤한가 봐? 아 해 봐.”
“아….”
비키는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며 조심스럽게 스프를 뜬 스푼을 내 입에 넣었다. 입안에 들어온 스프의 달콤한 맛에 정신이 살짝 돌아왔다.
“그…근데 비키. 뿔 하나는 어디 갔어요?”
“자기가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몸보신하라고 갈아 넣었어. 뿔이 정력에 그렇게 좋다잖아.”
“아… 하하….”
나는 애매한 웃음을 흘리며 비키의 빛나는 눈동자를 외면했다. 당장에라도 또 내 위에 올라타려고 할 것만 같아서.
“아.”
“아….”
비키는 다정하게 기운이 없는 내 입에 음식을 조금씩 흘려줬다. 그 안에 담긴 딱딱한 것이 조금 거슬렸지만, 애써 몸에 좋은 것이라 생각하며 꼭꼭 씹었다. 불안한 마음을 애써서 달래며 살기 위해 음식을 섭취했다.
상에 가득 올라와 있던 음식을 다 먹자 비키는 디저트를 만들기 위해 흥얼거리면서 주방으로 들어갔다.
똑똑.
“크흠. 에이든 님 맞으십니까?”
그때, 황실 기사단의 갑옷을 입은 사내가 식당으로 들어왔다. 어디서부터 봤는지 기사는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내게는 그 모습이 괴물에게 납치된 공주가 마주한 왕자처럼 보였다.
“네 맞습니다! 맞아요!”
“그… 황녀님이 호출하셨는데… 바쁘시면….”
“안 바쁩니다! 저를 데리고 가주세요! 어서요! 괴물이 돌아오기 전에!”
“예? 아 알겠습니다.”
내 간절한 말에 기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슬그머니 들어와서 내게 어깨동무했다. 나는 나가기 전에 식당 카운터에 있는 종이에 대충 글을 끄적인 다음에 테이블에 놓았다.
기사는 연신 주방 쪽을 흘깃거리면서 나를 어딘가로 데려갔다. 나는 발에 힘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기사에게 기대어 이동했다.
호텔 밖으로 나온 나는 주변의 바뀐 모습에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호텔에 들어가기 전에는 주변이 다 폐허였는데, 지금은 그 부스러기들이 정리되고 건물들이 하나둘씩 세워지고 있었다.
“지금… 며칠이 지난 거죠?”
“용을 잡은 이후로 말씀하신다면 나흘이 지났습니다.”
“애미 시발…?”
“예?”
“아 아닙니다.”
자그마치 나흘 동안 그 침대 위에서 뽑혔다니. 내가 죽지 않은 것만 해도 기적이었다. 내 팔꿈치까지 그려진 검은 선들을 애써 비벼 닦았다.
기사는 그중에서 제일 멀쩡하고 큰 건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 건물 주변에서는 많은 사람이 바쁘게 움직이며 활기를 띠고 있었다.
“용을 베어낸 영웅이여….”
나를 본 기사들이 고개를 숙이며 존경을 표했다. 그 모습에 내 입꼬리가 참을 수 없이 헤실거렸다.
“아 여러분도 노력하시면 저처럼 되실 수 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기사에게 이끌려 계속 움직였다.
마침내, 큼지막한 문이 활짝 열린 곳에 도착했다. 그 방안에는 사람들이 종이를 들고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사람들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푸르죽죽했다.
그리고 그 안에 종이가 가득 쌓여있는 곳에 언젠가 봤던 프라타 황녀가 얇은 금테 안경을 쓰고 앉아 있었다.
“빨리빨리 움직여! 잠을 줄이란 말이야! 어디서 지금 잠을 자려고 해!”
“넵! 알겠습니다!”
황녀의 호통에 그 앞에 종이를 들고 졸던 사람이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크흠… 황녀님.”
“아 데리고 왔군. 그런데 왜 그런 꼴로 온 거지?”
“그…. 크흐음.”
“부상이 아직 좀 남았습니다.”
황녀의 물음에 기사가 등에 업힌 나를 슬그머니 보며 헛기침했고 나는 그 뒤의 말을 이어받았다.
“아 그렇군. 검귀는 회복력이 뛰어나다고 들었는데, 용은 좀 무리였나 보군. 그래 그럼 이리로 따라오게. 자네는 계속 부축하고. 거기! 자지마! 지금 잠을 잘 시간이 있나? 자네 어디 가문이라고 했지?”
“브…브리스터 백작가입니다! 죄송합니다! 잠은 죽어서 자겠습니다!”
“브리스터 백작가! 기억하겠어! 눈 똑바로 떠!”
가벼운 옷차림의 황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가벼운 걸음걸이로 뒤에 있는 방으로 향했다. 그 방은 밖에 있는 방보다 조그마한 방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방인 듯 꽤 좋아 보이는 침대와 이것저것이 잔뜩 놓여 있었다.
‘잠을 여기서 자는 거야? 진짜 독하네… 이 여자.’
나는 자연스럽게 방의 중앙에 있는 의자에 앉는 황녀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앉게. 아 앉히게.”
“넵.”
기사는 황녀의 말에 나를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혔다.
“자네는 물러나 있고 내가 말하기 전까지 누구도 들이지 말게.”
황녀가 손을 휘저으며 기사를 내보냈다.
“흐음….”
기사가 나가자 황녀는 턱받침을 한 상태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나를 해체하는 듯한 시선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자네가 용을 해치웠다고? 나는 자네가 그렇게 강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내 예상 밖이야.”
“평소에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은 덕분이죠.”
“그래? 여기 적힌 정보와는 다르군. 뭐 상관없지만. 일단 제국을 대표해 용을 처치해줘서 정말 감사하다.”
황녀가 돌연 내게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러자 살짝 옹골찬 가슴골이 보였지만, 딱히 별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지금의 내게는 더 이상 성욕이 없었기 때문에.
“자네가 용을 쓰러뜨린 덕분에 제국은 수도를 다시 탈환할 수 있었고 이는 제국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전설 속의 용을 해치운 것은 영웅으로서 부족함이 없는 업적인 터….”
황녀가 잠시 말끝을 흐리면서 헝클어진 자신의 머리를 정리했다. 머리카락 색과 눈동자 색은 케이트와 닮았지만, 케이트와는 전혀 다른 이지적이 분위기가 풍겼다.
“그에 대해 보상을 하는 게 응당 옳다. 그래서 묻겠다. 용을 베어낸 영웅이여, 그대가 원하는 보상이 있는가?”
황녀가 케이트와 같은 밝은 파란색 눈동자를 빛내며 물었다.
‘사실 막타만 친 거지만…. 굳이 말할 필요는 없지.’
다만, 갑자기 저렇게 보상을 물어보니 뭐로 답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욕심을 잃은 상태이기도 했고.
“보통이라면 황실의 비고를 열어 전설이 담긴 신물을 선사하는 게 옳겠지만, 어떤 쥐새끼 같은 놈이 다 털어 갔더군. 그래서 이렇게 자네에게 묻지만, 사실 보상은 이미 대강 정해져 있네.”
내가 대답하지 않자 황녀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첫째, 자네에게 공작의 작위를 하사하겠다. 이는 제국에서 황족을 제외하면 가장 높으니 보상으로 적합하다. 둘째, 또한 그에 걸맞은 금화를 하사하겠다. 이는 자네가 평생 써도 다 쓰지 못할 정도이니 보상으로 적합하다. 셋째, 자네가 에포닌에게 관심 있는 것으로 확인되니 자네에게 에포닌을 하사하겠다. 셋째는 첫째와 연관이 있다고 볼 수도 있겠군.”
황녀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면서 마치 상품을 설명하듯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그것들은 모두 입이 벌어질 정도로 큰 보상이었다.
공작이라면 제국에서 황족을 제외하고 누구를 쥐어패고 다니든 어떤 죄를 묻지 않을 정도로 높은 작위였다. 그 뒤에 나온 돈은 이루 말할 것도 없었고.
다만, 거기에 케이트도 껴 있다는 사실이 조금 거슬렸다.
“그… 세 번째는 굳이….”
“필요 없는가? 자네가 에포닌과 어울린다는 보고가 많았는데, 한낱 불장난이었나? 뭐 크게 상관은 없지만.”
“그런 건 아니지만… 보상으로 받기에는 마음이 조금 그래서. 그리고 지금은 서로를 알아가는 상황이라 결혼은 조금 급박한 것 같기도 하고….”
“흐음… 자네가 거절하면 에포닌은 다른 왕국과의 교류에 대한 증거로 사용될 걸세. 그게 왕좌에 오르지 못한 황녀의 최후니까. 지금이라면… 아스트론 공화국이 제일 적합하겠군. 마침 거기 김두환 수령이 아직 미혼이라고 하니….”
마치 케이트를 상품처럼 다루는 황녀의 말에 기분이 나쁘다가 마지막에 나온 김두환이라는 단어에 머리가 멍해졌다.
‘케헬헬헬.’
순간 드숀이 케이트를 향해 혀를 날름날름 내미는 모습이 상상되어 내 기분을 시궁창에 처박았다.
‘드숀! 이 개새끼가 은혜도 모르고!’
드숀에 대한 용암처럼 뜨거운 분노가 가슴 속에서 차올랐다.
“아닙니다! 제가 받겠습니다!”
“알았군. 그러면 보상은 내가 말한 것처럼 하사될 걸세. 아! 그리고 에포닌 같은 경우에 성격이 워낙 왈가닥이니 자네를 위해 특별히 주인 각인을 새겨줄 수 있네. 이번에는 하사의 개념이 크니까 말이야. 주인 각인을 새기면 에포닌은 자네의 말에 복종하게 될 거야. 그러면 훨씬 다루기 편할걸세. 자네가 어떤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던지 에포닌이 받아줄 테고 말이야. 원하는가?”
황녀가 자신의 관자놀이 부근에 손가락을 올리고 빙글 돌리면서 나를 보며 물었다. 나를 보는 눈빛은 뭔가를 계산하는 듯했다.
순간, 내 말에 순종하는 케이트가 상상됐다. 그 모습도 재밌을 거 같지만, 지금도 충분히 재밌으므로 굳이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요. 그런 거 필요 없습니다.”
“오호 그래. 알겠네. 결혼식은 일주일 뒤에 열릴걸세. 그쯤이면 수도가 대강 정리가 될 테니 말이야. 제국이 건재함을 알리기 위한 것도 합쳐서 제일 성대하게 열어주지. 그대들의 결혼식은 제국의 행사가 되어 만인이 그대의 결혼을 축복할 것이네. 그럼 이만 나가보게. 나는 좀 쉬어야 할 것 같으니.”
말을 마친 황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에 누웠다. 그에 뭐라 할 말이 없어진 나는 어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내 동생을 잘 부탁하네.”
방문이 닫기기 전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
“야! 하! 참! 내가 너랑 결혼?! 결혼?! 하! 어이없어! 누구 마음대로! 하!”
나는 내 앞에 서서 연신 ‘하! 참!’을 연발하는 케이트를 보며 황녀의 제안을 거절한 것을 후회했다. 주인 각인인지 뭔가를 박아뒀으면 지금 닥쳐! 라고 외치면 될 텐데. 역시 사람은 주는 걸 거절하면 안 돼.
“닥쳐!”
“닥…닥쳐?! 하! 어이없어! 평민! 그게 지금 황녀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혹시나 해서 말해봤지만, 애석하게도 효과가 없었다. 케이트는 새빨개진 얼굴로 연신 뜨거운 콧김을 뿜어내며 언성을 더 높였다.
…거절하지 말 걸 시발.
“아 시끄럽다고! 나 잘 거야! 피곤해! 꺼져.”
“꺼… 꺼져?! 어떻게 나한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지금 결혼하기 전에 그… 기 싸움?! 그거 하는 거야?! 하! 내가 질 것 같아?!”
시발….
“평민! 아니지 이제 평민이 아니구나… 공작! 그래! 공작! 일어나! 일어나라고! 대뜸 결혼하는 법이 어디 있어! 아직 데이트도 몇 번 안 했는데! 나한테 데이트하자고도 안 하고! 진짜! 완전 어이없다니까!”
시발 시발….
“흥! 그렇게 기 싸움을 한다고 내가 질 거 같아?! 내가 말이야 황실에서는….”
프라타 황녀의 혜안을 무시한 우민의 최후는 처참했다.
귀에서 피가 흐르는 듯한 기분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지…지금이라도 새겨달라고 할까?
“일어나라고!! 드레스 고르러 가게!!”
결국, 나는 케이트에게 멱살을 붙잡혀 끌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