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화 〉 어차피 좆됐어.
* * *
루나의 눈물이 멈춘 것은 한참이 지난 후였다.
우는 것을 멈춘 루나는 늘 그렇듯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코를 킁킁대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루나의 머리를 그저 쓰다듬었다.
“있잖아… 에이든.”
“응?”
루나가 고개를 살짝 올려 눈만 나를 올려다봤다. 루나는 무언가 고민되는지 잠깐의 뜸을 들이고는 말을 이었다.
“에이든과 다른 쓰레기가 뒹구는 것을 내가 참아서 감동 받았어?”
루나가 내 몸을 세게 안으며 물었다. 그에 나는 아까 루나에게 둘러대기 위해 황급히 말했던 게 생각났다.
앞으로 이런 일은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미리 교육을 해두긴 해야 했다.
‘얘는 고통을 사랑이라고 생각하니까.’
대답을 갈구하는 루나의 머리를 다시 한번 쓰다듬으면서 할 말을 골랐다.
“응. 내가 다른 여자와 뒹구는 걸 볼 때 루나는 속이 끓어질 것 같다고 했지?”
“응응응. 끊어질 것 같고 다 갈기갈기 찢어서 가루로 만든 다음….”
“응. 그러니까 루나는 나를 위해서 그런 고통을 참을 만큼 사랑한다는 거잖아? 그래서 감동 받았어.”
나는 살벌한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루나의 말을 황급히 자르고 말을 이었다.
“…그런 거야?”
나를 올려다보는 루나의 큰 눈망울은 입에서 나오는 살벌한 말과 전혀 안 어울릴 정도로 순수했기 때문에 약간의 죄책감이 들었지만, 이제 어지간한 죄책감은 느껴지지도 않았다.
“응. 그 정도로 루나가 나를 사랑한다는 거니까.”
“…응응응. 루나는 에이든을 위해 뭐든 다 할 수 있어. 다 참을 수 있어. 내 모든 걸 에이든을 위해 사용할 수 있어.”
다시 내 가슴에 얼굴을 비비는 루나를 쓰다듬으며 손을 슬쩍 아래로 내렸다.
‘상을 확실히 줘야 교육이 될 테니까.’
흠뻑 젖어 있었기 때문에 좁았지만, 바로 넣을 수 있었다.
“에…에이든! 사랑해사랑해사랑해.”
루나는 금세 어색하게 허리를 움직이며 내 몸이 터질 정도로 거칠게 끌어안았다.
‘저 시발… 세 번씩 말하는 건 고쳐지지 않네.’
“나도.”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말이 나왔다.
“…응.”
내 한없이 가벼운 말에 루나가 펑펑 눈물을 흘리며 밝게 웃었다.
***
밤새 루나를 교육하고 다음 날 일찍 밖으로 나왔다.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미리미리 준비를 해둬야 했다.
유비무환이라는 말이 있으니까.
제국의 수도는 이제 거의 재건축이 끝나고 있었다. 저번의 경험 덕분인지 그 속도는 전보다 훨씬 빨랐다.
그리고 저번보다 아름다운 건물들이 들어섰다. 이번에는 지구 단위로 나눠서 지구마다 색을 넣었다고 들었다.
내가 있는 곳의 색은 금색이었다. 가장 상위층이 머무는 지구였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다들 고급 옷을 입고 뛰지 않고 여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에일 버드 튀김을 찾았지만, 여기 지구에는 없는 듯했다.
결국, 포기하고 처음 목표인 액세서리 상점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깔끔하게 정장을 입은 사내가 나를 반겼다. 사내의 정리된 콧수염이 묘하게 고급스러움을 더해줬다.
“반지를 보러 왔는데요.”
“어떤 반지를 찾으십니까?”
“결혼반지요.”
“아 결혼반지라면 이쪽에 있습니다.”
사내는 정중하게 왼쪽을 양손으로 가리켰다.
‘뭐 어차피 내가 본다고 아는 것도 없고.’
“대충 가격 적당한 것들로 한… 열 개 정도 주세요.”
굳이 하나하나 고르기 귀찮았기 때문에 손을 저으면서 사내에게 말했다.
“…열 개 말입니까?”
내 말에 사내의 친절한 표정이 일순간 굳었다.
“네. 그래도 조금 다르게 생긴 게 나을 것 같기는 한데…. 뭐 상관은 없어요.”
“크흠… 열 개라니…. 결혼반지 맞습니까?”
사내가 습관적으로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되물었다.
“예. 10 개요.”
“결혼반지를요? 열 개요?”
“예. 제가 준비성이 철저한 성격이라서요.”
“결혼반지는 약지에만 끼는 걸 알고 계시는 거 맞습니까? 결혼반지는 모든 손가락에 하나씩 끼는 게 아닙니다.”
“당연히 알죠. 누굴 병신으로 알아요?”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손님. 이런 경우가 처음이다 보니… 당황했습니다.”
자꾸 반복되는 질문에 내가 인상을 쓰자 사내가 황급히 고개를 숙이더니 걸음을 옮겼다.
한 번 더 물었으면 매콤 주먹을 먹여 주려 했는데, 남자는 꽤 눈치가 좋았다.
사내는 반지들이 전시된 곳 앞에서 나를 한 번 더 돌아보더니 고개를 살짝 젓고는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반지들을 하나씩 꺼냈다.
그 모습이 고급스러운 가게와 어울리지 않게 길바닥에서 돌멩이를 줍는 아이 같아 조금 우스웠다.
“여…여기 있습니다. 서로 다른 결혼반지 10개. 우선 설명을 해드리자면… 이 반지는 오리하….”
“아! 설명은 필요 없어요. 가죽 주머니 같은 데에 다 넣어주세요. 들고 다니다가 꺼내기 편하게. 막 닌자들이 수리검 꺼내는 것처럼요.”
“수…수리검이요? 이 반지 하나당 가격이 꽤 나가는데….”
“가격이요? 상관없어요.”
“알…겠습니다.”
사내가 주춤거리며 대답을 하더니 잠시 고민을 하다가 테이블 아래에서 고급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주머니는 가죽임에도 광이 나고 있었다.
“이것은 마법이 부여된 주머니입니다. 저장 공간이 꽤 넓고 온도 유지 마법이 걸려 있으니 반지들을 보관하기에도 쉬울 것입니다. 본래 제공되지 않는 주머니지만…. 많은 반지를 구매하셨으니….”
사내가 찜찜한 표정으로 주머니 안에 손을 넣어 안에 담긴 것들을 끄집어냈다. 마법이 걸려 있다는 게 사실인 듯 도저히 저 작은 주머니에 들어갈 것 같지 않은 물건들이 튀어나왔다.
사내는 안에 담긴 물건을 빼고 옆에 두었던 반지들을 숫자를 세면서 조심스럽게 넣었다.
“…결혼반지 열 개가 맞습니까?”
“네. 훌륭하네요. 얼마에요?”
잠시 침묵을 지키다 사내가 입을 열고 말한 금액은 억 소리가 나올 정도였지만, 별 상관없었다. 프라타 황녀에게 받은 돈은 그것보다 훨씬 많았으므로.
프라타 황녀가 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사내에게 지급하고 반지 주머니를 돈주머니 옆에 묶었다.
돈도 두둑하고 결혼반지도 두둑하게 있으니 이제 나는 무서울 게 없었다.
유비무환을 마친 지금의 나는 무적이다.
[맙소사… 그 친구가 이 모습을 봤어야….]
***
“내 꺼? 오늘치 쓰러 왔어.”
“아! 비키. 마침 잘 왔어요.”
“응?”
문을 열고 들어온 비키가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옷을 벗어 던졌다. 얼마나 급했는지 문을 여는 순간부터 비키는 옷을 벗고 있었다.
애초에 옷이라고 해봤자 중요 부위를 아슬아슬하게 가린 게 전부였지만.
나는 비키의 환상적인 몸매를 감상하며 내게 다가온 비키의 손을 잡았다.
대뜸 내 위에 올라타려던 비키는 내가 손을 잡자 멈추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미 흠뻑 젖어서 준비된 비키의 모습에 잠시 헛기침을 하고 반지 주머니에서 꺼낸 반지 하나를 비키의 손가락에 끼워줬다.
“결혼반지에요.”
“….”
비키는 굳은 상태로 자신의 왼쪽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멍하니 쳐다봤다. 아무거나 꺼냈지만, 반지는 비키와 어울리는 옅은 붉은 색을 띠고 있었다.
“아….”
잠시 굳어있던 비키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졌다. 늘 당당하던 비키의 얼굴이 저렇게 붉어진 것은 처음 봤다.
“그… 내 꺼… 아니지… 남…편?”
“응? 비키?”
비키가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매만지며 말을 더듬거렸다. 그리고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머리를 작게 흔들었다.
“남편.”
“네?”
비키가 뭔가를 결심한 듯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봤다.
“빨아줄까?”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진 비키가 조심스럽게 묻는 말에 나는 냉큼 고개를 끄덕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주저하던 비키는 내 앞에 다소곳이 무릎을 꿇더니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은 늘 패기롭게 모든 것을 짓누르던 비키와는 다르게 내 처분을 기다리는 처녀의 모습과도 같아서 내 하체를 금세 단단하게 만들었다.
나는 비키의 머리 위에 난 손잡이를 하나씩 잡았다. 뿔을 잡자 비키가 움찔하며 신음을 흘렸지만, 무시했다.
‘역시 이건 손잡이가 맞아.’
몸이 단단하고 회복력이 뛰어나서 거칠게 대해도 되는 비키의 입은 내가 겪은 것 중의 최고였다.
비키는 신음도 흘리지 않고 그저 나를 붉은 눈망울로 올려다보며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매만졌다.
예상외로 너무 감동한 듯한 비키의 반응에 미래가 걱정되기는 했지만, 그저 아래에서 느껴지는 촉촉함과 따뜻함에 집중했다.
‘어차피 좆됐어 시발.’
[허허… 허허….]
***
결혼식이 이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케이트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온갖 관리란 관리는 다 받아서 지금 케이트의 몸은 윤이 날 정도로 부드러웠다.
눈물이 나올 정도로 아팠지만, 온몸에 있는 털이란 털도 다 뽑아냈다.
물론 너무 화가 나서 털을 뽑은 여자의 머리를 몇 대 쥐어팼지만.
‘결혼이라니… 에이든과.’
케이트는 신기할 정도로 부드러운 자신의 피부를 쓰다듬으며 조용하게 혼자 읊조렸다.
결혼이라는 단어는 아무리 입에서 돌려도 그 달콤함이 가시지 않는 마법의 사탕 같았다.
그 멍청한 녀석 때문에 혼자서 끙끙 앓았던 밤은 셀 수도 없었지만, 이내 열매를 맺었다.
어쩌다 자신이 그런 멍청이에게 빠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에이든 생각을 하니 금세 또 얼굴이 붉어지며 몸이 뜨거워졌다.
조금은 화가 나기도 했다. 이놈은 자신의 신부가 결혼 준비를 하는데도 한 번을 찾아오지 않았으니까.
‘용을 잡았으니까 바쁜 일이 있었겠지.’
서운함이 올라왔지만, 케이트는 혼자 합리화를 하며 그를 애써 넘겼다.
먼저 데이트하자고도 안 하고 사랑한다는 말도 하지 않는 그런 남자지만, 그래도 에이든이니까.
다른 잡것들과는 비교조차 불가능했다.
모든 준비를 끝마친 케이트는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당장 내일 있을 결혼식에 최상의 상태를 보여줘야 했으니까.
여신이 내려온 것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줘서 감히 정실의 위치를 노렸던 패배자들에게 모욕과 멸시를 안겨줘야 하니까.
“첩들! 너무 어감이 센가? 첩들아… 이건 너무 늙은 것 같아. 우히히힛….”
당장 내일 그들을 비웃어 줄 생각에 케이트는 자꾸만 새어 나오는 웃음을 베개에 묻었다. 케이트는 그 후로도 한참이나 발을 동동 구르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안 돼! 자야 해! 자야 해! 나! 황녀는 잠을 잔다!”
혼잣말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려는 순간.
탁.탁.탁.
무언가가 창문을 톡톡 두드리는 게 느껴졌다.
케이트는 금방이라도 잠에 빠질 것 같은 기분에 그를 무시하려고 했지만, 그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탁.탁.탁.
결국, 화가 잔뜩 난 케이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창문을 거칠게 연 다음 아래를 보며 소리를 바락바락 질렀다.
“어떤 개자식이야! 너! 또 이런 장난치면 효수시킬 거야 효수! 나 황녀라고! 자야 한다니까!”
“공주님. 보러 왔어요. 이게 맞나?”
그 아래에는 머쓱하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고 있는 에이든이 서 있었다.
“너… 네가 왜 여기 있어?”
케이트는 에이든을 보자마자 고장 난 것처럼 붉어지는 얼굴을 들키지 않기 위해 슬쩍 고개를 빼면서 물었다.
“공주님 보러 왔다니까.”
에이든이 가볍게 뛰어서 케이트의 창문에 쪼그려 앉았다.
“…황녀라니까.”
에이든의 말에 케이트는 예전에 자신이 했던 말이 생각나서 고개를 푹 숙였다.
“공주든 황녀든 케이트잖아. 무슨 상관이야.”
“…멍청이. 왜 왔냐고.”
케이트는 습관처럼 삐뚤어지게 나가는 자신의 말에 입을 막고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유부녀가 아닌 케이트에게 박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니까.”
“뭐… 뭐래!! 됐어! 나 자야 해! 내일 결혼식이란 말이야!”
“어? 나도 결혼식인데!”
“…진짜 나 후회되게 멍청한 말 자꾸 할래?”
케이트는 허탈한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때 에이든이 케이트의 손을 부드럽게 붙잡았다.
‘안 된다고 해야 하는데….’
케이트는 생각과 다르게 도저히 에이든의 손을 뿌리칠 수 없었다. 케이트는 그저 눈을 감고 에이든의 손이 다음에는 어디로 갈지 기대했다.
‘저 에이든의 거친 손이….’
돌연 전의 기억들이 떠올라 아래가 뜨거워졌다.
“짠.”
눈을 감고 있던 케이트는 에이든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진 금색 반지였다.
조금은 촌스럽지만, 아름답고 고아한 매력을 뽐내는 반지가 케이트의 왼쪽 약지에 끼워져 있었다.
사실 결혼 전에 반지를 주지 않는 에이든에게 섭섭한 마음도 있었다. 원래 에이든은 바보라고 혼자 되새기며 넘겼지만.
“…뭐야!! 이 싸구려 반지는!!”
케이트는 터질 것 같은 눈물을 애써 참으며 반대되는 말을 쏘아붙였다. 자신의 입을 때리고 싶었지만, 눈물이 줄줄 흘러 못나 보일까 봐 그러지도 못했다.
“별로인가? 그럼 다시….”
“됐어! 나 자야 한다니까!”
에이든은 냉큼 손을 뒤로 숨기는 케이트를 보며 소리 내 웃었다. 그에 케이트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에이든을 노려보더니 침대로 달려가서 엎어진 다음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그런 케이트를 보면서 한 번 더 웃고 나가려는 순간.
“…빨리 끝내.”
“응?”
“나 자야 하니까 빨리 끝내라고 멍청아!”
케이트가 어색하게 엉덩이를 위로 삐쭉 들더니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올리고는 곰돌이가 그려진 팬티를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털이 한 올도 없는 깨끗한 그곳이 에이든에게 적나라하게 보였다.
“…빨리 끝내야 해.”
“그건 모르지.”
“야!야! 아흐으윽! 헤으….”
케이트의 귀여운 신음에 에이든은 결국 케이트의 말을 들어주지 못했다.
“해 떴잖아!! 멍청아!! 진짜! 못 잤잖아! 결혼식인데 어떡할 거냐고! 내가 빨리 쓰라고 했지!!”
온몸에 붉은 자국이 난 케이트가 에이든을 발로 걷어차면서 울분을 토해냈다.
“맛있었다. 유부녀가 되기 전 케이트.”
“뭐라는 거야! 이 멍청이가!! 정실 펀치!!”
에이든의 명치에 박히는 케이트의 작은 주먹에는 힘이 전혀 실려 있지 않았다.
***
제국에서 열리는 행사의 초대장은 대륙 곳곳에 퍼졌다.
그에 대륙에 있는 왕국 대부분이 제국의 건재함을 확인하기 위해 참석했다.
전보다 훨씬 크게 지어진 제국의 수도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제국의 정문 위에 떡하니 걸려 있는 붉은 용의 머리에 제국을 방문한 사람들은 저절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크루트와 벨라토도 그런 의미에서 파견된 사절이었다.
“저…저게 드래곤이라는 건가?”
“정말 잡기는 잡았나 보군. 그렇다고 저걸 걸어놓을 줄이야.”
“제국다운 오만함이군….”
둘은 정문 위에 걸린 용의 머리를 보면서 감탄하며 고개를 숙였다. 역시 무너졌다 해도 제국은 제국이었다.
그런 둘의 옆으로 파란색 문양이 그려진 큼지막한 마차가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둘은 마차에 치이지 않기 위해 황급히 옆으로 피했다.
“크루트! 괜찮나?!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저 마차는 어쩌자고!”
“어후 뭐가 저렇게 빨리… 근데 저 문양은 그곳 맞지?”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녹지 않는 왕국’의 문양이 맞을걸세. 하긴 제3 황녀가 비헨 베네딕트 왕의 손녀니까….”
“그…근데 베네딕트 왕의 얼굴이 조금….”
둘은 지나가는 마차에 타고 있는 베네딕트 왕의 악귀처럼 구겨진 얼굴을 보고는 침음성을 삼키면서 고개를 돌렸다.
일반인이 느낄 정도로 베네딕트 왕은 무시무시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으므로.
분명 손녀의 결혼식인데 어찌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둘이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이어 수도 안으로 들어온 둘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분명히 무너졌다고 했던 제국의 수도가 전보다 더 크고 화려하게 지어져 있었다.
심지어 계획하고 지어서인지 그 통일성마저 지켜져서 수도 자체가 인간이 만든 가장 큰 예술 작품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둘의 옆을 지나는 마차 안.
“너…너무 작은 거로 한 거 아니야? 걷기가 너무 힘든데…?”
서윤이 드레스임에도 자신의 엉덩이골이 보일 정도 딱 달라붙은 모습에 얼굴을 붉히며 손으로 가렸다.
“어쩔 수 없어! 엉덩이를 강조해야지! 우리의 장점은 엉덩이잖아! 서방님도 매번 명품 엉덩이라고… 부끄러워….”
혼자 말하면서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는 서아를 보며 서윤은 고개를 저었다.
딱 달라붙는 드레스를 입은 서아의 몸매는 같은 여자인 서윤이 보기에도 아름다웠다.
가슴도 가슴이지만, 누구든 침 흘릴만한 엉덩이는 드레스에 딱 달라붙어서 그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쿵.
“뭔가 떨어지는 소리 나지 않았어?”
“얘! 지금 그런 데 신경 쓰지 말고 집중하렴! 자 걸을 때 이렇게….”
“무… 무슨 창부도 아니고 왜 그렇게 걸어!”
“이렇게 걸을 때 서방님의 눈이 돌아갔다니까! 잔말 말고 따라 해!”
그런 마차 밑에 흙투성이가 된 여자가 땅을 뒹굴고 있었다.
“…애마 도착했습네다. 에이든 동무!”
빠르게 주변을 훑어본 이지수는 가장 가까이에 보이는 여관으로 향했다.
흙을 씻고 윤을 내기 위해.
마차에서 들리던 말은 이지수에게도 큰 영감을 줬다.
장점을 부각하는 것. 훌륭한 전략이었다.
자신의 무기는 압도적인 가슴과 훌륭하고 매끈한 음부.
그리고 타고난 골반까지.
자신이 보기에도 자신의 갈색 몸은 잘빠졌다.
“역시… 장점을 보이기 위해서는 옷을 입지 않는 게 낫겠슴둥.”
이지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여관의 문을 밀고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자신의 가슴을 쳐다보는 직원의 눈빛에 이지수는 만족감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 하나 주쇼. 씻고 잠깐 쉬다 바로 나갈 겁네다. 그리고 돈을 더 줄 테니 트렌치코트 하나 사다 주겠습네까?”
“예…? 예. 알겠습니다.”
직원에게 열쇠를 받아 위로 올라가는 이지수의 얼굴에는 결사대의 굳은 의지가 담겨있었다.
‘혁명 나체 난입 작전.’
계단을 오르며 이지수는 대업의 이름을 정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