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188화 (188/233)

〈 188화 〉 친우의 결혼식.

* * *

“도착했습네다.”

“고생했네.”

김두환… 아니 드숀은 마차에서 내리며 경례를 하는 마부에게 손짓했다.

그에 마부가 감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차를 돌려서 사라졌다.

오랜만에 돌아온 제국의 수도는 드숀이 떠날 때와는 모습이 전혀 달랐지만, 드숀은 제국 특유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맡는 제국의 냄새에 드숀을 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애써 참았다.

믿기지 않지만, 자기는 한 단체의 수장이니까.

“이쪽으로 가시지요.”

옆에 있던 해미가 부드럽게 드숀의 팔을 움켜잡았다. 공화국 생활을 하며 자신의 하녀이던 해미를 연인으로 맞이한 지 오래였다.

그녀의 외모는 평범했지만, 드숀은 더는 얼굴을 보지 않았다. 엘프 둘과 동침을 한 그가 여자의 얼굴을 본다면 평생을 혼자 살아갈 게 분명했기에.

다만, 해미는 드숀을 편하게 해줬다. 그녀는 드숀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차갑게만 대하던 해미가 친해질수록 따뜻하게 챙겨주는 것은 드숀의 마음을 활짝 열어버렸다.

“알겠습네다.”

“제국 출신이라고 했었지요?”

“예. 오랜만에 오니 감회가 새롭습네다.”

“이번에 결혼하는 분이 친우라고요?”

“같은 아카데미 출신이었죠.”

해미의 질문에 대답하던 드숀은 아련한 눈빛으로 예전 기억을 떠올렸다. 샤워실에서 서로를 보며 중지를 들던 철없던 때를.

아카데미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우리 둘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평민과 별 차이도 없는 백작가라는 작위를 소중한 보물처럼 자랑하고 다니던 소년은 어쩌다 보니 공화국의 수장이 되었고.

용사 아카데미에서 유급이라는 유일무이한 업적을 달성한 노답 소년은 용을 잡는 영웅이 되었다.

‘근데 이 새끼 진짜 용 잡은 거 맞아?’

드숀은 문득 차오르는 의문에 고개를 저었다.

어찌 됐건 친우라면 그의 성공에 박수를 쳐주는 게 당연하니까. 그가 성공했다면 자신은 박수를 치며 칭송하는 게 옳다.

“친우분이 황녀와 결혼이라니. 대단하네요.”

“그러게 말입네다. 그녀가 황녀였다니…. 처음 알았을 때는 정말….”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했다.

“방 하나 주시겠어요? 특실로 부탁합니다.”

해미가 나서서 방을 잡고 다시 드숀의 손을 이끌었다. 여자 경험이 없는 드숀은 이렇게 주체적인 여자에게 약했다.

방으로 올라가자 해미는 드숀을 잠시 앞에 세워두고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 아마, 방에 숨어든 살수를 확인하는 거겠지.

처음에 드숀은 그녀가 과장한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차를 대신 마신 다른 하녀가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나서는 군말하지 않고 그녀의 말을 따랐다.

‘그 녀석이 결혼이라니…. 심지어 케이트와? 그녀는 아카데미 안에서도 아름답고 가슴도 큰 것으로 유명했거늘…. 물론 그 성격에 모두가 혀를 내두르고 피했지만.’

드숀은 생각하면서 문득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그놈보다 뭐가 못해서….

“들어오시지요.”

그런 생각은 미소 지으면서 문을 여는 해미의 모습에 사라졌다.

‘그래. 나에게는 해미가 있다.’

드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해미가 내민 손을 잡고 들어갔다.

“식사부터 하시겠습니까? 아직 결혼식까지는 시간이 있으니까요.”

“아니요. 조금 쉬고 싶습니다.”

“그럼….”

드숀은 둘만의 암호를 말했고 그에 잠시 얼굴을 붉힌 해미가 천천히 옷을 벗었다.

‘그래 얼굴은 평범하지만…. 몸매는 끝내주잖아.’

드숀은 이내 에이든에 관한 생각을 접고 그녀를 안았다.

***

“사람이 정말 많네요.”

“그러게 말입네다. 이렇게 많을 줄은….”

해미의 말에 드숀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해미는 그런 드숀과 떨어지지 않기 위해 드숀의 팔을 잡았다.

그런 해미를 내려보면서 작게 웃은 드숀이 걸음을 옮겼다.

“비키라우!”

“밀지 말라우!”

주변에 있는 경호 인력들은 밀려드는 사람들을 막아내기에 급급했다.

‘도대체 그 녀석의 결혼이 뭐라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수도의 광장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정말 발 디딜 곳 하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은 가득 차서 연신 용을 잡은 영웅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가 검을 내려치니 드래곤이 단 일 검에 반으로 나누어졌다고 하네!”

“설마! 삼일 밤낮으로 싸웠다고 하던데?”

“그는 공화국에서는 검귀라고 불렸다던데… 베어 넘긴 공화국 놈들이 산처럼 쌓였다더군!”

“허허! 공화국 놈들을 그랬다니! 영웅이군! 영웅이야!”

주변에서 들리는 말에 드숀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계속 움직였다. 강물을 거스르는 심정으로 한참을 움직이자 마침내 귀빈석에 도착할 수 있었다.

광장은 중간에 큼지막하고 높은 시계탑이 있었고 그 주변에 있는 공터를 갈색 건물들이 둘러싼 형태였다. 건물의 중간에는 테라스가 광장 쪽을 향해 나 있었는데, 저기가 귀빈석이었다.

건물에 다가간 드숀과 공화국 무리를 제국군이 나와서 맞이하고, 테라스로 안내했다.

전과 달리 지금의 공화국과 제국은 강력하고 끈끈한 우방국이었으니까.

테라스에 앉자 광장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공터의 삼분지 일은 천으로 가려져 있고 그 앞을 기사들이 지키고 있었는데, 귀빈석에서는 그 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뒤에는 유독 높은 단상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연극 공연장의 모습과도 비슷했다.

단상 위에는 산처럼 큰 케이크와 화려한 장식들이 있었고 사람들이 바삐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것 좀 드시지요. 모래 맥주라고 합니다.”

“오… 어떻게 알고 가져왔소?”

“저번에 말씀하셨잖아요.”

“고맙소.”

자신의 손에 들린 모래 맥주에 감동하며 드숀은 꿀꺽꿀꺽 마셨다. 김두환 연기를 꽤 오래 한 덕분에 드숀의 주량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늘었다.

“캬하­. 이 맛이야!”

“그렇게 맛있나요?”

“제국의 맛이지. 드셔보겠습네까?”

“…됐어요. 저는 술을 못해서.”

“아­ 그랬지. 아쉽겠소.”

다시금 모래 맥주를 마시면서 내려다보는 드숀의 시선에 잔뜩 기세를 뿜어내는 어떤 늙은이가 보였다.

“감히!! 누구 마음대로 내 손녀를 결혼시킨단 말인가!! 나와라!! 이 찢어 죽일 놈! 내가 직접 찢어 죽일 테니!!”

“녹지 않는 왕국의 비헨 베네딕트군요. 최상급을 넘어선 자라고 알고 있습니다.”

드숀은 흥미진진한 전개에 눈을 떼지 않고 옆에서 들리는 해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에이든의 결혼식인데, 아무 문제 없을 리가….’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건 제국의 신성한 행사….”

“오냐! 너부터 찢어 죽여주마!! 다 찢어 죽이면 제 놈도 못 버티고 나오겠지!!”

“하라부지!!”

베네딕트가 말리는 기사의 턱주가리를 큼지막한 손으로 잡았을 때,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케이트가 뛰어나왔다.

“…에포닌.”

언제 화를 냈냐는 듯, 베네딕트는 금세 함박웃음을 지으며 케이트를 반겼다.

“하라부지!!”

“오냐! 할아버지가 왔다! 어떤 핍박을 받았길래 결혼을 결심한 지는 모르겠지만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뛰어오는 사랑스러운 손녀를 보며 베네딕트는 안아주기 위해 양손을 펼쳤고.

“하라부지! 왜 나대!! 손녀 펀치!!”

케이트의 주먹이 베네딕트의 열린 가슴에 시원하게 박혔다.

“에…에포닌아? 할아버지다! 이놈들이 저주까지….”

“뭐라는 거야!! 내 결혼 방해할 거면 가라고! 안 그래도 지금 바쁘단 말이야!!”

“결…결혼이라니! 내 사랑스러운 손녀가 결혼이라니!! 도대체 어떤 말라 죽일 놈이….”

“말조심해!! 내 낭…군이 될 사람이란 말이야.”

“왜 얼굴을 붉히는 것이냐!! 이것들이 내 손녀에게 약을….”

“조용히 하라고 진짜!! 주책맞게 뭐 하는 거야!!”

드숀은 아래에서 펼쳐지는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보며 모래 맥주를 한 모금 더 삼켰다.

“용납할 수 없다! 이 결혼 용납할 수 없어!! 내 사랑스러운 손녀는 나와 적어도 30년은 더….”

“30년 뒷면 쭈그렁 할망구일 텐데!! 무슨 소리하는 거야 진짜!!”

“에포닌은 늙어도 귀엽고 아름답고….”

“나 바쁘다고!! 그리고 내가 결혼하는데 하라부지 허락을 왜 받아!!”

“내가 할아버지지 않느냐?! 어떤 놈이 우리 손녀를 이렇게 만들었느냐?!!”

드숀은 베네딕트의 말에 아카데미 시절의 케이트를 떠올렸다. 확실히 에이든과 엮이기 전에는 조용하기는 했지. 그때도 왈가닥이기는 했지만.

“케이트? 무슨 일이야?”

소란에 무대 뒤에서 깔끔하게 정장을 빼입은 에이든이 올라왔다. 오랜만에 본 에이든은 전보다 몸이 단단해 보였고 얼굴에는 흉터가 늘어 있었다.

드숀은 그 모습에 반가움보다는 속이 배배 꼬이는 기분이 들었지만, 이내 헛기침하듯 날리고 얼굴에 웃음을 지었다.

‘좋은 날이니까.’

드숀은 자기 생각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 낭군님까지 나올 필요는 없는데…. 잘 어울려! 멋있어!”

“낭군이라니 그게 무슨 개소리….”

“감히 내 손녀한테 개소리라니!!”

“누… 누구야 이분은?”

“내 할아버지야. 어떻게 알고 찾아왔나 봐. 이럴까 봐 초대를 안 했는데….”

“초대를 하지 않다니!!”

“아… 안녕하세요. 케이트의 남편 에이든….”

“누구 마음대로!! 짐은 용납 못 한다!! 이런 결혼 용납 못 해!!”

“용납 못 하신다는데? 허락 안 받았어?”

“할아버지 허락을 왜 받아!! 멍청아!”

“내… 내 허락을… 내 허락을….”

케이트가 에이든의 손을 잡고 베네딕트를 향해 혀를 빼꼼 내밀었다.

‘물론 그래도 케이트가 아깝군.’

그런 둘의 모습이 의외로 잘 어울려서 드숀은 작게 감탄했다.

자신의 손녀가 벌거숭이 같은 놈의 손을 잡고 행복하게 웃는 모습에 베네딕트가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허락 하지 않으면 어찌할 건데!! 이미 늦었거든!”

“늦다니… 그게 무슨 소리느냐?”

“야! 또 뭔 개소리를….”

황급히 케이트의 입을 막으려던 에이든은 베네딕트의 흉흉한 눈초리에 재빨리 말끝을 흐렸다.

“나 임신했어!! 여기 애가 있다고! 이름은 콩콩이야!”

케이트가 돌연 자신의 홀쭉한 배를 가리키며 당당하게 소리쳤다.

“그게 무슨….”

“이 찢어 죽여 시원찮을 놈이!! 감히 우리 손녀를 건드려?!!”

케이트의 폭탄선언에 결국 참지 못한 베네딕트가 솥뚜껑 같은 손을 내밀어 에이든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그 동작이 얼마나 빨랐는지 에이든은 반응도 못 하고 끌려갔다.

“임신 아니에요! 이 새끼 구라라고요!! 아니… 이 새끼는 취소! 안에 싸기는 했지만, 피임은 확실하게… 안에 싼 것도 취소!! 취소!! 밖에 쌌어요! 악!! 아파요!!”

“하라버지!! 이거 놔! 놓으라고!! 누구 미망인 만들 일 있어?! 우리 아가가 아빠 없이 살면 좋겠냐고!!”

“이…이게 무슨… 도대체 무슨… 일이….”

드숀은 아래에서 펼쳐지는 모습에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에이든이 저렇게 붙잡혀서 쥐어짜지고 있다니.

“아니라고요!! 임신 아니라고!!”

“이거 놔!! 내 낭군님 괴롭히지 마!! 이 괴물아!”

“에… 에포닌아 할아버지다… 할아버지야…”

결국, 에이든의 옷을 모두 다 쥐어뜯고 나서야 베네딕트는 떨어졌다.

“…우리 에포닌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라도 나왔다가는­ 네 놈이 용을 잡았건­ 제국의 공작이건­ 상관없이 찾아내어 찢어발겨서 마물의 먹이로 던져주겠다. 알겠나?”

베네딕트의 흉흉한 눈빛에 앞섬이 다 뜯긴 에이든은 무릎 꿇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에이든 옷 다 뜯겼잖아! 어찌할 거야! 이거 비싼 거라고!! 진짜 짜증 나! 초대 안 했는데 왜 오냐고!!”

“에포닌아… 할아버지다… 너를 키워주고 보듬어준….”

“꼰대 짜증 나!!”

케이트의 잔뜩 날이 선 목소리에 베네딕트도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

잠시의 시간이 지나가고 드숀이 있는 테라스의 옆으로 시무룩한 베네딕트가 올라왔다.

얼굴에는 벌겋게 손바닥 자국이 난 베네딕트는 세상을 잃은 듯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꺼이꺼이 울었다.

녹지 않는 왕국의 전설적인 영웅의 이면을 본 듯한 느낌에 드숀은 애써 그쪽을 보지 않기 위해 애썼다.

고개를 돌린 드숀에게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광장의 무대 앞에도 일정 신분 이상만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었는데, 서아와 서윤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그곳에 서 있었다. 다만, 문제는….

‘쟤네들은 또 왜 드레스를 입고 있어?’

그 모습에 드숀은 서아와 서윤이 에이든과 결혼했다는 소문이 돌았던 게 생각났다.

에이든이 저런 미인 두 명과 동시에 결혼했다는 소문에 드숀은 땅을 치면서 비웃었는데….

당황한 드숀은 황급히 손짓으로 공화국 사람을 불렀다. 저들이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지는 몰라도 결혼식에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지는 않았다.

지금 공화국은 너무 위태로운 상황이라 제국과 척을 지면 정말 모래성처럼 순식간에 무너질 수도 있었다.

공화국 사람이 다가오는 사이에 드숀은 군중들 사이에 섞여 있는 또 다른 얼굴을 봤다.

깊은 중절모를 쓰고 갈색 트렌치코트를 입었지만, 숨길 수 없을 정도로 큼지막한 가슴과 슬쩍 보이는 갈색 얼굴.

그 얼굴에 담겨 있는 결연한 의지를 보며 드숀은 말을 잃었다.

저거는 막을 수도….

“무슨 일이십네까?”

공화국 사람이 다가왔고 드숀은 일단 서아와 서윤이라도 끌어내자는 생각에 입을 여는 순간.

무대를 가리고 있던 천막이 걷어졌다.

“…아닙네다.”

말리기도 전에 시작한 결혼식에 드숀은 고개를 저으며 다가온 사람을 뒤로 물렀다. 드숀은 공화국이 무너질 상황을 대비해 자신의 수염을 매만졌다.

‘그래 무너지면 수염 떼고 다시 드숀으로 돌아가지 뭐. 공화국 음식 입에 안 맞았잖아.’

무대에 제일 먼저 올라온 것은 안드레아 성녀였다.

하늘색 머리를 질끈 묶고 단아한 미소를 뽐내는 안드레아의 모습은 인간을 벗어난 듯한 아름다움에 성스러운 기운까지 담겨 있어서 마치 방금 하늘에서 내려온 여신 같았다.

그런 청초함과 아름다움을 지닌 성녀의 등장에 군중들이 감탄하며 환호했다.

다만, 이상한 점은….

“저분이 신부입니까? 아까 그 여자는….”

“크흠. 아닐겁네다. 아마 주례를 맡았다던 성녀 안드레아일 겁니다.”

“그런데 왜 복장이….”

해미의 의문처럼 안드레아는 마치 자신이 신부라도 되는 것처럼 하늘거리고 고급스러운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상태였다.

그 모습은 당장이라도 결혼 서약을 올려도 부족함이 전혀 없어 보였다.

다른 귀빈석에 앉아있는 교황복을 입은 사내는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손에 들린 성물을 매만지고 있었다.

“아아….”

안드레아가 막대에 대고 목을 가다듬자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그러면 지금부터.”

안드레아의 목소리에는 묘하게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힘이 담겨 있었다.

사람들은 풀어진 얼굴로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안드레아를 멍하니 쳐다봤다.

“용을 잡은 영웅 에이든 님의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안드레아가 단아한 미소를 지으며 선언했다.

‘보통 신부도 소개하지 않나…?’

드숀은 자신이 품은 의문에 고개를 비스듬히 세웠다.

상황은 이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빠른 속도로 절벽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에이든에이든에이든. 참아야 해? 참아야 해. 참아야 해? 참아야 해. 왜?”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자그마한 목소리에 드숀은 이유모를 한기를 느껴 몸을 잘게 떨었다.

‘그…그냥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드숀은 옆에 있는 해미의 손을 잡으며 불안한 마음을 다잡았다.

***

“그놈이 결혼한다니….”

차갑게 생긴 미남자가 짐을 챙겨 수도를 벗어나고 있었다.

‘설마 자기 결혼식도 그러겠어?’

그런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엮여서 좋을 게 하나도 없는 놈이었다. 언제나 냉철한 이성의 말을 따르는 게 옳으니까.

저번 암흑 시장 때도 조금만 늦었으면….

“스칼. 본인 맞습니까?”

앞에 앉아 있는 사내의 목소리가 스칼의 정신을 깨웠다.

“예.”

“본인 확인됐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스칼은 표를 받아 큼지막한 마차에 몸을 실었다.

공화국을 벗어나 다시 수도로 돌아온 스칼은 수도에서 열린다는 그놈의 결혼 소식에 조금이라도 멀어지기 위해 대륙 횡단 마차 행렬에 몸을 실었다.

“아하하핫! 또 다른 분이 있었군요! 반갑습니다!”

마차에 먼저 타고 있던 눈이 찢어진 사내가 우스꽝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스칼입니다.”

스칼은 사내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꺼림칙함을 애써 무시하며 손을 마주 잡았다.

“저는 음… 아무개라고 합니다.”

사내의 찢어진 눈이 불길하게 호선으로 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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