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189화 (189/233)

〈 189화 〉 즐거운 합동결혼식.

* * *

“용을 잡은 영웅… 공화국의 혁명을 일으켜낸 장본인! 단 일 년 만에 아카데미 학생에서 최상급 용사를 넘어서는 업적을 이룬 자!”

밖에서 계속해서 들리는 안드레아의 잔뜩 흥분한 목소리에 기분이 묘해졌다.

저렇게 계속해서 늘여놓는 수식어들을 듣고 있자니 정말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괜히 뿌듯했다.

“쟤는 뭔 설명이 저렇게 길어! 이거 불편하단 말이야!”

그런 나와 다르게 순백색의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케이트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툴툴거렸다.

“저거 들리냐?”

“당연히 들리지! 저렇게 꽥꽥 소리를 질러대는데!”

“흠흠….”

“그건 무슨 표정이야? 은근 열 받는데?”

“감사한 줄 알아라. 내가 저렇게 대단한….”

“멍청한 소리 하지마! 너야말로 고마워해야지!”

“내가 왜?”

내 반문에 케이트가 턱을 비스듬히 쳐들더니 피식하고 작게 웃었다.

“이렇게 아름답고 매력적인 황녀가 결혼해준다는데 말이야. 내가 많이 봐준 거야! 알았어? 진짜 어이없어 너 같은 거랑 내가…. 흥 명령만 아니었으면!”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거만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케이트는 정말 아름다웠다. 평소의 그 말썽꾸러기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고고하고 우아했다. 황족이라는 게 조금은 믿길 정도로.

“…그래. 고맙다.”

“뭐…뭐야! 왜 인정해!! 이상해!”

“인정해도 지랄이야 얘는.”

“지랄이라니! 결혼식인데 이쁜 단어 써!”

“땍땍거리지 마! 귀 아프니까.”

“땍땍 이라니! 내 우아한 목소리에 그게 무슨….”

“제국의 영웅! 공화국의 살아있는 악몽!! 나의 영웅 에이든 님을 소개합니다!!”

“저거 왜 너만 소개해? 진짜 멍청해.”

“처음이라던데 그래서 그런가 보지. 나갈까?”

“…응.”

케이트가 잔뜩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작게 숙이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흰 장갑이 씌워진 그 작은 손을 잠시 보다가 마주 손을 내밀어 잡았다.

“빨리 해치우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결혼식을 빨리 해치우면 어떻게 해! 이 멍청아.”

우리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무대로 나갔다.

광장의 수도는 대단히 큰 편이었는데, 그 광장이 지금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리의 끝부분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와아아아아!!!””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입을 맞춰 환호성을 지르자 발생한 큰 소리에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야! 괜찮아?”

“…어? 어. 사람이 좀 많네.”

“멍청이. 이러면서 어떻게 용을 잡았는지… 내 손 잡고 나만 따라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케이트가 작게 웃더니 손을 끌어당겼다. 나는 케이트의 손에 이끌려 무대의 중심으로 향했다.

“저… 저년… 복장이 왜 저래.”

중앙에는 케이트보다 더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안드레아가 서 있었다. 그에 케이트가 이를 갈며 눈을 가늘게 떴다.

“저게 새로운 성녀 복이라던데?”

“저년… 무슨 짓을 할 게 분명해. 어떻게 막지?!”

“안드레아가 얼마나 착한데. 그게 무슨 소리야.”

“멍청이 진짜! 너는 아무것도 몰라.”

케이트와 말하며 무대의 중심에 서자 안드레아가 단아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케이트도 케이트였지만, 안드레아는 정말 하늘에서 여신이 내려온 것처럼 청초하게 아름다웠다. 케이트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야! 뒤질래?! 뭐 하는 거야?!”

“어? 아니 그게 사람이 많아서.”

“진짜 죽여버릴 거야.”

케이트의 욕지기에 나는 황급히 입에 흐르던 침을 닦고 표정을 고쳤다.

“에이든 님.”

우리 앞에 다가온 안드레아가 단아하게 웃으며 나를 불렀다.

“아, 안드레아. 오늘 정말 이쁘네요.”

“야! 개같은 소리 하지마! 그리고 너! 무슨 음모를 꾸미는지 모르겠지만, 하지마! 내 결혼식이야!”

“안드레아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좀 닥쳐!”

안드레아는 케이트의 거친 욕지기에도 시선을 주지 않고 그저 단아하게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용기를 내는 게 힘들었어요.”

“안드레아?”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은 붉어진 얼굴 그리고 흔들리는 동공. 안드레아는 겁에 질린 사람처럼 보였다.

“야야! 하지 말라고! 내 결혼식이야!! 일단 나 결혼하고 나서는 봐줄 테니까 결혼부터….”

케이트가 길길이 날뛰었지만, 안드레아는 나를 보며 작게 웃더니 뒤돌았다.

“영웅 에이든 님과 그냥 황녀와의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안드레아의 목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졌고 사람들은 다시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그…그냥 황녀?! 야! 나도 이름 있거든?! 저걸….”

“참아! 지금 결혼식이잖아!! 결혼식에서 성녀를 쥐어패려고 하면 어쩌자는 거야!”

대뜸 안드레아에게 달려들려는 케이트를 애써 뜯어말리며 안드레아를 쳐다봤다. 지금 안드레아는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긴장되는지 움켜쥔 주먹은 덜덜 떨리고 있었고 애써 말하는 목소리는 자꾸만 힘을 잃었다.

“저… 저거 사고 칠 거 같잖….”

“그럼 결혼식에 앞서서 이 결혼에 반대하시는 분이 있으시면 지금 손을 들고 말씀해주세요.”

보통 저건 결혼식 제일 마지막에 하지 않나? 반대가 없다면 앞으로도 평생 조용히 하라는 뜻으로….

“저 미친년.”

“야! 왜 안드레아한테 욕을… 어?”

케이트의 욕지기에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손을 번쩍 든 안드레아가 보였다.

“…사랑해요. 에이든 님.”

다른 드레스와 다르게 안드레아의 드레스는 윗부분과 치마 부분이 나뉘어 겹쳐져 있었는데, 안드레아가 잔뜩 붉어진 얼굴로 드레스의 배 부분을 들어 올렸다.

거기에는 선명하고 굵은 글자로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에 나는 꿈인 줄 알았던 그 날이 현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알던 안드레아와 진짜 안드레아 모습 사이의 간극에 머리가 멍해졌고. 순간 배신감도 들었다.

다만, 그게 꿈이 아니라면 안드레아도 내가 품은 여자였다.

안드레아는 그저 배에 적힌 글자를 내게 보여주며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내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주인의 처분을 기다리는 노예처럼 보여서 묘한 느낌이 들었다.

“너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닌 거야?!!”

“아무것도 안 했어. 진짜야. 안드레아?”

너무 예상을 벗어난 상황에 케이트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에 나는 황급히 변명하며 내 눈치를 보는 안드레아를 불렀다.

“…네 에이든 님.”

안드레아의 목소리가 촉촉한 것이 조금 거슬렸다. 다만, 지금은 케이트와의 결혼식이었다. 주인공은 케이트여야만 했다.

“그… 일단은 결혼식을….”

“…네.”

내 말에 조금은 씁쓸한 얼굴로 안드레아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배 부분을 다시 가렸다.

그리고 다시 안드레아가 입을 열려는 찰나.

“서방님!!”

“예?”

안드레아처럼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서아가 낑낑대며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 뒤에 따라온 서윤은 그저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서아와 서윤의 드레스는 화려했지만, 결혼식 드레스라기보다는 어느 고급 창부가 특별히 돈을 많이 받은 날 이벤트로 입은 드레스 같았다.

몸에 착 달라붙어 서아의 육덕지고 탐스러운 몸매가 여실히 드러났다. 그에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아! 시발 얘네도 있었지.’

그런 둘의 등장에 나는 등에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사실 잊고 있었다.

“서아! 서윤! 오셨군요!”

하지만 밖으로 티 내지 않기 위해 애써 웃으며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네! 서방님! 서윤! 내가 말했지! 서방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셨다니까!”

“…저거 딱 봐도 당황한 표정이잖아.”

“서방님!!!”

서아가 명품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내게 양손을 뻗었다.

“야!! 어딜 올라와!! 이…이… 첩아!! 내가 오냐오냐해주니까 아예 보이는 게 없지?! 다 꺼져! 다 내려가라고!! 내 결혼식이야!!”

“아앗! 아파요!”

그런 서아의 손을 쳐내는 케이트를 보며 나는 마음을 놓았다.

상황은 이제 내 손을 떠났다.

나는 좆됐다.

“꺼져! 내려가! 첩이 어딜 감히 겸상하려고!! 내 결혼식이야!!”

“욕심 좀 그만 부려요!! 같이 좀 해요!! 같이하면 절약하고 좋잖아요!! 그리고 첩 아니에요!”

“뭘 같이 해!! 이 멍청아! 꺼지라고!”

둘이 옥신각신하는 것을 보며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찔끔 놀라며 나를 보는 안드레아와 눈이 마주쳤다.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시발 망한 거.’

“안드레아.”

“…네. 에이든 님. 죄송해요. 제가 주제넘게….”

“저도 사랑해요.”

“아….”

안드레아의 얼굴이 돌연 굳더니 그 큼지막한 하늘색 눈망울에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러면서도 밝게 그리고 해맑게 웃었다. 그 모습이 바보 같아 나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야!! 너네는 또 뭐 하고 있어!! 낭군! 저것들 내려보내라고! 내 결혼식이잖아!! 약속했잖아!! 나중에 저것들을 다 첩으로 들이든 말든 신경 안 쓸 테니까!! 일단은….”

“모르겠다. 나도 이제.”

“서방님. 오늘 복장 정말 잘 어울려요. 얘!”

“…서방님. 멋있어요.”

“뭐야. 서윤 너까지.”

“닥쳐! 나도 하고 싶어서 하는 거 아니니까!”

“얘! 내가 말했잖니!! 하늘 같은 서방님에게….”

“뭐 하는 거야 너네!! 다 꺼지라고! 꺼져!!!”

돌아가는 상황에 관중들은 말을 잃었다. 제국의 가장 큰 행사로 황녀의 결혼식이 열린 데서 대륙 곳곳에서 왔더니….

다른 의미로 가장 큰 결혼식이었다. 신랑 하나에 신부가 다수인.

“쓰레기네요.”

“크흠…. 원래 그런 기질이 다분했습네다.”

드숀은 신랄한 해미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넷이나 무대에 올라가서 난리를 치고 있었다. 저 많은 관중도 돌아가는 흥미진진한 상황에 집중하여 침묵하고 있었다.

‘도대체 저놈이 무슨 매력을….’

드숀은 무대 위에 올라온 여성들을 보며 감탄했다. 하나하나가 아름다운 것으로는 대륙 어디를 가도 인정받을 외모였다. 그런 여자들이 서로 에이든과 결혼하겠다고 수많은 관중 앞에서 저런 난리를 피고 있다니.

‘꿈인가?’

그런 생각에 드숀은 슬쩍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었지만, 아팠다.

그 선명한 통증에 드숀은 배가 매우 쓰렸다. 위액이 거꾸로 올라오는 것처럼.

“동작 그만!!!”

군중 사이에서 누군가가 무대로 올라오며 크게 소리쳤다.

피처럼 붉은 머리, 터질 것 같은 몸매, 비키였다. 비키는 다른 여자들처럼 드레스를 입지는 않았다.

속옷처럼 중요 부위만 가린 복장이지만, 그 파멸적인 가슴 크기로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의 존재감을 가볍게 지웠다.

드숀은 오랜만에 보는 비키의 모습에 습관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비키가 자신을 보기에는 거리가 있었지만, 아카데미의 기억이 드숀에게 시선을 내리는 것을 강요했다.

무대 위로 올라간 비키는 거침없이 에이든에게 가더니 진하게 입을 맞추었다. 에이든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거부하지 않고 비키의 허리에 손을 둘렀다.

‘아니… 아마 아무 생각이 없겠지.’

“야야!! 너는 또 뭐야!! 꺼져!! 내 결혼식이라니까! 이 미친 것들이 진짜!!”

케이트는 그런 둘의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둘을 떼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둘은 한참이나 입을 맞추고 떨어졌다.

“내가 말했잖아. 얘는 내 꺼라고.”

“에이든이 왜 너 꺼야! 내 결혼식이니까 내 꺼지!”

“그 다들 흥분을 가라앉히고….”

드숀은 무대를 보고 있다가 옆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기운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저… 개 같은 놈이… 감히 에포닌을 건드린 것으로 모자라서… 여자관계까지 복잡하다니….”

그곳에는 얼굴에 핏줄이 잔뜩 올라온 베네딕트가 손을 덜덜 떨면서 분노를 토해내고 있었다.

드숀은 그 서슬 퍼런 기세에 고개를 돌리며 에이든의 안부를 빌었다.

자신의 친우가 이 결혼식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 걱정되면서도 쓰린 속이 조금이나마 풀렸다.

***

“잠깐! 다들 싸우지 말아요! 저한테 좋은 해결책이 있어요.”

“해결책?”

“그래! 내 낭군 말 좀 들어! 너희 다 꺼지래!”

“서방님. 저희는 서방님 말이면 어떤 것이든….”

내가 손을 번쩍 들자 여자들이 다툼을 멈추고 나를 응시했다. 그 눈빛에는 다들 내가 자신의 편을 들어줄 거라는 기대감이 담겨 있어서 제법 부담스러웠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올 사람은 다 온 건가? 뭔가 부족한 거 같기도 한데.’

나는 그들의 수를 마음속으로 세면서 머리를 굴렸다.

“우리 사이좋게 다 같이 결혼식 하면 되잖아요? 마침 여기는 무대도 크니까 다 같이 해도….”

“개 좆같은 소리 하지마!! 내 결혼식이야!! 정실 인정받는 자리라고! 싫어! 다 꺼져!! 나 혼자 할 거야!”

“저는 좋아요! 서방님!”

“흐응­.”

“저도 괜찮습니다. 황녀님은 싫으시면 내려가시죠. 저희끼리 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너! 내가 성녀라고 못 팰 거 같아?! 나 황녀야 황녀! 이건 황녀 결혼식이라고! 너희 효수된다니까?! 효수가 우스워?!”

투덕거림을 한 귀로 흘리며 내 바지 속에 넣어둔 반지를 확인했다. 아직 여유분이 제법 있어서 무리는 없을 듯했다.

“일단 줄을 좀….”

“에이든에이든에이든. 내가 다 치울까?”

나는 돌연 내 바로 앞에 나타나 나를 끌어안는 루나 때문에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아, 맞다. 얘가 있었지.’

루나의 눈에는 늘 그렇듯 초점은 사라져 있었고 몸은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루나. 네가 첫 번째야. 첫 번째가 넓은 아량으로 나머지를 감싸줘야 하는 거 알지? 네가 저들의 대장이야.”

“…내가 대장?”

“응. 나는 루나를 믿고 맡기는 거니까 잘할 수 있지?”

“응응응. 알았어!”

이제 루나를 다루는 게 제법 익숙했다.

“얘는 또 뭐야!! 떨어져!! 내 낭군한테서 떨어지라고!”

“시끄러워.”

루나의 작은 손짓에 땍땍거리던 케이트의 입이 조용해졌다.

“이 노오오오옴!!!”

그때 옆쪽에서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강대한 기운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니 대검을 뽑아 들은 베네딕트가 뛰어내리고 있었다.

그 대검에는 차마 외면할 수 없는 선명한 존재감이 담겨 있었다.

“으아아아악!! 애미 시발!!”

그 흉흉한 기세에 나는 화들짝 놀라 옆에 있던 케이트를 끌어와 앞에 세웠다. 케이트가 그런 나를 도끼눈으로 노려보고는 한숨을 쉬며 팔을 벌리고 베네딕트를 막아섰다.

베네딕트가 우리에게 도달하기 전. 은빛 갑옷을 멋지게 차려입은 키아나가 먼저 막아섰다.

쾅­.

“이게 무슨 짓입니까. 베네딕트.”

“비켜라!! 내 저 호로자식을 찢어 죽이고 말 터이니!!”

“루나. 케이트 입 좀 풀어줘.”

“응응응.”

베네딕트를 노려보며 손을 움찔거리던 루나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야!! 그렇다고 나를 앞에 세워?! 진짜 개 어이없어!”

“네 할아버지잖아. 너는 안 베겠지.”

“…진짜 내가 왜 이딴 거랑.”

“에포닌!! 일로 오거라!! 무엇보다 소중한 너를 저 쓰레기 같은 난봉꾼에게 줄 수 없다!!”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하라버지!! 내가 나대지 말랬지!!”

잔뜩 화가 난 케이트가 씩씩거리며 베네딕트에게 다가갔다.

“저놈이 너한테 무슨 마법을 걸었는지는 몰라도 나는 용납 못 한다!! 이런 결혼!!”

“내가 한다는데 하라버지가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하라버지도 첩 많잖아!”

“그…그것과 이건 다르다!! 너는 안 된다! 너는 보물이야!!”

“됐어!! 이런 년들이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고!! 설마 결혼식에 난입할 정도로 무식한 줄은 몰랐지만.”

“에이든 님. 이것 좀 마실래요?”

“아. 안드레아. 고마워요.”

나는 안드레아가 내미는 불투명한 액체를 받아들여 마셨다. 병에 마법이라도 걸려 있었는지 액체는 시원했다. 익숙한 맛이 미세하게 나기는 했지만.

“아흑….”

“안드레아! 어디 아파요?”

붉어진 얼굴로 휘청이는 안드레아를 황급히 잡아 세웠다.

“하라버지 그러면 얘네들 다 데리고 내려가!! 나 결혼하게! 이것들 다 치워!! 그리고 제국 애들은 뭐 하는 거야!! 이렇게 시장판처럼 난입하는데! 다들 올라와서 효수시켜!!”

“데…데리고 내려가라니!! 에포닌아! 그만 정신 차리고 할아버지랑 같이 녹지 않는 왕국으로….”

“거기 싫어!! 춥고 재미없다고!! 거지 같아!”

“그… 그렇지 않단다. 에포닌….”

분명 나를 죽일 기세로 올라온 베네딕트였지만, 케이트의 입에서 연신 나오는 거친 말들에 초기의 목적은 잊은 듯했다.

“사제! 결혼 축하해. 다들 축하하려고 올라온 건가?”

“아! 사저. 잘 있었어요? 요즘 바쁘시던데. 사저도 이쪽으로 와서 줄 서요.”

“응. 의외로 하는 일이 많더라고. 스승님이 늘 놀고 계시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근…데 아직 결혼식 도중 아닌가?”

키아나가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여자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손짓에 따라 뒤에 가서 섰다.

‘그래도 이 정도면 끝난 거겠지? 여자 더 없겠지?’

나는 내 앞에 나열한 여자들의 숫자를 세며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일이 많았지만, 이제 끝나간다는 생각에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애마!! 이지수!! 이히이이이잉!! 대령했습네다!!”

군중 사이에서 갈색의 무언가가 무대로 뛰어 올라왔다.

‘아차! 저게 있었구나!’

별을 박은 것처럼 강렬하게 빛나는 눈을 한 이지수는 부끄러움도 없는지 완벽한 나체 상태로 내 앞에 부복했다.

‘저러면 시발… 다 볼 거 아니야.’

자세가 자세인지라 셀 수도 없는 사람들 앞에 대놓고 음부를 자랑하는 모양새였지만, 이지수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심지어 이지수는 털도 없어서 적나라할텐데….

“저도 에이든 동무의 평생의 반려자가 되고 싶습네다!! 그게 비록 말이라도!”

나를 보는 이지수의 눈을 활활 타올라서 너무 뜨거웠다.

“미친 새끼….”

이지수의 기행으로 조용해진 가운데 케이트의 나지막한 욕지거리만 울려 퍼졌다.

‘그래 하얀 것만 있으면 좀 심심하니까 옅은 갈색이라도 넣어야지. 시발 이제 나도 모르겠다.’

출렁이는 이지수의 탐스러운 가슴을 보며 나는 주머니 속 반지를 매만졌다.

“그… 반지가 없으신 분은 제 앞에 줄 서세요. 반지 배급부터 하고 그다음에 합동결혼식을 시작할 테니까. 저와 결혼하고 싶은데 반지가 없으신 분들은 이쪽에 일렬로….”

안드레아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앞에 서서 가늘고 하얀 손가락을 내밀었고 그 뒤로 서아와 서윤 그리고 이지수가 황급히 섰다.

“절벽녀도 언능 오십쇼! 이럴 때 빼면 안 됩네다! 그쪽은 가슴이 작아서 에이든 동무 아니면 시집가기 힘들 겁네다! 빨리 오십쇼!”

“…아? 네? 이게 무슨…? 그런데 당신… 왜 나체입니까? 다 큰 처자가 어찌 이런 많은 사람 앞에서….”

“제 장점을 강조하는 복장입네다. 태초의 인간들은 옷을 입지 않았던바. 오히려 옷을 입고 있는 그대들이 자연스럽지 않습네다!”

그런 이지수의 손에 이끌린 키아나도 얼떨결에 제일 뒤에 섰다. 어차피 이제 하나 더 늘어도 별 상관 없을 듯했다.

“…이 난봉꾼 미친 발정 난 개새끼야!!! 뭔 줄을 서 !! 내 결혼식이라고!!”

나는 옆에서 들리는 케이트의 욕지기에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몰라요. 시발 아무것도 몰라요.’

[…이게 되네? 이게 왜 되는 거지? 진짜 되다니? 왜 안 찢기는 거지? 소년. 좀 찢겨 주게. 이제 나도 더는 못 참겠네.]

반지를 끼워주자 펑펑 우는 안드레아의 모습을 애써 외면했다.

몰라요. 시발.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