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화 〉 음부 마법사 스칼.
* * *
“안드레아 성녀. 본인이 성녀라는 자각은 하고 있습니까?”
안드레아는 자신을 둘러싼 꼬장꼬장한 노인들의 얼굴을 보며 치솟는 화를 애써 참았다. 벌써 화를 낼 필요는 없으니까.
“…예.”
다만, 대답하는 목소리가 까칠한 것은 차마 참을 수 없었다.
“크흠…. 근데 결혼을 하시다뇨! 대대로 성녀는 신을 위해서만 일생을 살아갔거늘!!”
주변에 자기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이 많아져서인지 교황은 평소와 다르게 언성을 높였다.
“그것도! 성녀가 제국 황녀의 결혼식에 대뜸 난입해서 끼워팔기로 결혼을 하다뇨! 이게 말이나 됩니까! 성녀라는 사람이!! 귀족이 해도 손가락질당할 짓을 수없이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하다뇨! 당최 성녀라는 자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교황의 입에서 튄 침이 땅바닥에 떨어졌고 안드레아는 그를 보면서 에이든을 떠올렸다. 이제 아침마다 몰래 들어가서 에이든의 액을 챙기는 게 일상이 됐는데, 그 덕분에 안드레아는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오늘 아침의 농도는 특히 짙었지….’
에이든 생각에 안드레아의 입꼬리가 금세 헤실거렸다.
“… 듣고 있습니까?!!”
외침에 고개를 돌리니 얼굴이 벌게진 노인이 보였다. 그 늙고 못생긴 얼굴에 안드레아는 짜증을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아니요.”
“그…그게 무슨…. 안드레아 성녀?!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청문회입니다. 이건!”
“으음… 그래서 저보고 어떻게 하시라는 말씀이시죠?”
안드레아는 이 의미 없는 노인들과의 자리를 빨리 끝내기로 했다. 얼른 돌아가서 방에서 뒹굴고 있을 에이든에게 성수를….
‘아아….’
생각만으로 찔끔해버려서 밑으로 흐르지 않도록 허벅지를 딱 붙였다.
“그 결혼을 무르고! 성녀에 걸맞은 자각을 가질 수 있도록 봉사와 저희가 구상한 계획에 맞춰서 행동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너무 맞춰주다 보니 안드레아 성녀는….”
“그럼 관두겠습니다. 성녀.”
하품이 나올듯한 말에 안드레아는 고민하지도 않고 대답했다.
“…예?”
안드레아의 거침없는 말에 청문회는 순식간에 얼음장이 됐다.
성녀란 모든 수녀의 꿈과도 다름없는 자리였다. 마치 시골의 어린아이가 전설의 용사를 꿈꾸는 정도로 희박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그런데 그 자리를 저렇게 쉽게 포기한다니…. 청문회의 늙은이들은 생각지도 못한 안드레아의 폭탄 발언에 순간 사고가 멈췄다.
그들도 안드레아를 조금만 압박해서 결혼 정도만 무르는 선에서 그치려고 했다. 성녀는 교에서도 소중한 자원이니까. 하지만 안드레아의 반응은 그들의 범주를 벗어났다.
“안드레아 성녀!! 지금 그게 무슨 발언인지 아십니까! 어찌 성녀라는 중책을 가지고 그런 망발을….”
“잠깐만요. 착각하고 있으신 것 같습니다.”
교황은 손을 들어 자신의 말을 자르는 안드레아의 모습에 내심 안도했다.
‘그래… 성녀 자리를 저렇게 쉽게 버릴 수 없지.’
교황은 표정이 풀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안면에 힘을 잔뜩 주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대지신님의 성녀인 것은 제가 대지신님에게 선택을 받아서이지 그쪽 늙은이들의 선택을 받아서가 아닙니다. 제가 지금 대지신교를 나선다고 제 신성력과 날개가 사라질까요?”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는 안드레아의 차가운 시선에 노인들은 헛기침을 흘리며 고개 돌리기 바빴다.
교황은 자신을 보는 안드레아의 시선을 애써 피하지 않으며 대답할 말을 생각했다.
“대…대지신님도 안드레아 성녀의 그런 행동에 분노하실 게 분명합니다!! 대지신님이 신성력을 거둬가시면….”
“거둬가라고 하세요. 그분에게 도움이 못 되는 것은 조금 슬프지만, 그분은 제가 신성력을 잃었다고 버리실 분이 아니니까요.”
안드레아의 거침 없는 대답에 청문회는 다시 조용해졌다. 안드레아는 주름진 얼굴로 애써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늙은이들을 훑어보고 청문회장을 나서기 위해 일어났다.
청문회장의 문에 서서 안드레아가 다시 교황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에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던 교황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아… 그리고 바다신 교에서 제안이 왔더군요. 종교를 바꾸면 황제도 부럽지 않게 해주겠다고. 돌아가서 진지하게 고려해봐야겠습니다.”
말을 마친 안드레아는 아쉬울 것 없는 걸음걸이로 청문회장을 나섰다.
‘안…안드레아…?! 아니야! 나는 안드레아한테서 절대 신성력 못 뺐어! 나는 안드레아가 제일 이쁘다고 생각한다니까?! 그 내 사도에 붙어있는 다른 여자들 보다! 우리 성녀 안드레아가 피부도 뽀얗고 가슴도 적당하고! 또! 골반도 널찍하잖아! 막! 처녀막도 스스로 재생해서 매번 바치고!! 안드레아…? 내 말 듣고 있어? 저저 노인네 새끼들!! 기다려 봐! 내가 포인트 모아서 지진을 일으켜서 땅밑에 박아 버릴 테니까!! 안드레아! 안드레아! 야이 바다신 새끼야!! 신끼리 상도가 있지!! 남의 성녀를 가로챌 생각을 해?! 뭐?! 내가 먼저 했다고?! 내가 언제!!’
안드레아 성녀가 홀연히 떠나자 청문회장은 다시 시끌시끌해졌다.
“떠…떠난다니요! 어떻게 성녀가 교를 떠날 수 있습니까! 말도 안 되는 협박입니다!!”
“바다신 교에서 우리 몰래 접촉을 하다니… 이는 상도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상도라뇨! 우리는 종교인입니다! 종도라고 하십쇼!!”
“그러면 종도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당장이라도 바다신교 쪽에 압박을….”
“현재 안드레아 성녀 덕분에 입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안드레아 성녀가 바다신 교로 가버린다면… 끄응….”
교황은 주변에서 들리는 말들을 들으며 안드레아 성녀가 나간 문을 노려봤다.
물론 그 눈에는 주름이 너무 많아서 그냥 응시하는 것 같기도 했다.
***
마치 시련 같았던 신혼여행이 무사히 끝났다. 돌아가는 마차에서도 몇몇이 달려들어서 버겁기는 했지만, 무사히 제국의 수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우리는 일단 케이트의 별채에 머물기로 했다. 신혼여행 동안 내가 방에서 머물 동안 여자들은 나름의 체계를 구축했는지, 한 집에 모여 살아도 별다른 다툼은 없었다.
서아와 서윤은 집안일을 도맡아 했고, 이지수는 정신 차렸는지 키아나에게 간간이 검술을 배우며 온종일 훈련하기 바빴다. 천오는 그 옆에 누워서 햇볕을 쐬며 꾸벅꾸벅 졸았다.
키아나와 케이트는 처리할 일이 많은지 매일같이 황실에 출근했고 루나는 며칠씩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곤 했다.
비키는 배를 긁으며 뒹굴다가 이따금 사냥하러 집을 나섰고 안드레아는 성당에 좀 나가다가 이제는 대부분 나와 붙어있었다. 안드레아는 마치 내 손처럼 내가 필요한 대부분을 옆에서 처리해줬다. 심지어 화장실 갈 때도 같이 가려고 해서 말리느라 진땀을 뺐다.
그들은 순번을 정해놓고 요일에 맞춰서 나를 사용하기로 타협을 본 듯했다.
너무 많은 수에 쉬는 날도 없이 매일 밤 힘을 써야 했지만, 그녀들은 내 사정을 고려하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매일 같이 정기를 보충해 주는 약물과 음식을 챙겨 먹으며 악착같이 버텨야 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니 내 정력이 점점 느는 게 느껴졌다. 스승을 흡수했음에도 검술의 벽을 넘지 못하는데 정력만 늘어난다는 게 조금 꺼림칙했다.
“안드레아 성녀님!! 죄송합니다!!”
어느 날 머리가 허옇고 성복을 입은 노인들이 잔뜩 몰려오더니 무릎을 꿇고 안드레아에게 사과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싸늘한 안드레아의 표정은 처음 봤다.
잠시 그들을 보고 있던 안드레아는 대뜸 나를 잡더니 노인들이 보는 앞에서 혀를 밀어 넣었다. 안드레아는 입에서 침이 흐를 정도로 거칠게 내게 입을 맞추었다.
그를 바로 앞에서 보고 있던 노인들은 침음성을 흘리다가 이내 고개를 숙이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한참이나 입 맞추던 안드레아가 잔뜩 들뜬 얼굴로 내게서 떨어졌다. 나는 안드레아의 성녀 복의 사타구니 부분이 젖어 있는 것을 애써 못 본 척했다.
‘오늘 밤은 안드레아겠네.’
안드레아는 늙은이들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나름 평화로우면서도 전쟁 같은 몇 주가 지나고 대륙 아카데미에서 제안이 왔다.
대륙 아카데미는 키아나에게 스승을 대신해서 검술 담당 교수직과 나에게 조교를 제안했다.
대륙 아카데미가 위치한 공화국이 난리가 나자 대륙 아카데미는 잠시 휴교를 한 상태였다.
슬슬 집에서 뒹구는 것도 지루해졌고 아카데미에 조교로 돌아가면 갑질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나는 냉큼 승낙했다.
거기에 매일 같이 종마처럼 착즙 되니 닳아가는 생명력도 내 결정에 힘을 실어줬다. 이상하게 아침에 일어나도 전혀 개운하지 않았다.
원래는 아침마다 발딱 서 있던 물건이 이제는 아침에도 흐물흐물했다.
시간이 좀 더 지나고 대륙 아카데미와 이야기 한 날이 다가왔다.
내가 대륙 아카데미로 간다는 말에 이지수와 천오도 복학하기로 했고 안드레아는 다시 의료진으로 복직하기로 했다. 늘어지게 자던 비키는 그저 하품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조교였던 케이트도 복직해서 우리는 공화국에 구해둔 케이트의 별채에서 머물기로 했다.
‘도대체 얘는 건물을 몇 채나 가지고 있는 거야?’
어디를 가던 건물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모양새에 케이트 재력의 끝이 궁금해졌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대륙 아카데미로 복귀했다.
오랜만에 돌아온 대륙 아카데미의 모습은 떠나기 전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
“아하핫! 파도입니다! 파도!! 으갸갸갹!!”
스칼은 얼굴에 쏟아지는 바닷물을 손으로 쓸어 닦으며 앞에 있는 놈을 노려봤다.
마차를 타고 가던 도중 스칼은 저놈이 처녀교의 그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에 몰래 도망치려고 했지만, 녀석은 스칼을 놓아주지 않았다.
녀석에게 끌려온 스칼은 생전 처음으로 큼지막한 배에 올라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한복판까지 왔다.
얼마나 운이 없는지 때마침 몰아치는 폭풍우에 눈앞이 분간되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졌고 바다는 화라도 난 듯 거칠게 파도치며 배를 뒤흔들었다.
그에 스칼은 자신을 삼키려는 바다에 먹히지 않기 위해 옆에 있는 굵직한 밧줄을 잡고 버텼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감도 안 왔다.
“하하핫! 스칼은 바다에 나와본 적 있습니까?!”
녀석은 정신을 놓은 듯 아무것도 잡지 않은 상태로 흔들리는 배 위에 서서 양손을 들어 중심을 맞추고 있었다.
위태로우면서도 묘기처럼 균형을 잡고 연신 박수치며 좋아하는 녀석의 모습에 스칼은 욕지기를 뱉으며 얼굴에 쏟아진 바닷물을 다시 한번 닦아냈다.
“하하하핫!! 어디 있느냐!! 나와라!!”
배 위의 모든 사람이 사색이 되어 어딘가를 붙잡고 버티는 와중에 녀석은 비틀거리면서 조금씩 움직여 배의 끝부분으로 갔다.
거기에는 탈 때부터 준비해둔 사람의 두 배는 될 것 같은 크기의 물고기가 묶여 있었다.
녀석은 거기에 붙어서 굵은 밧줄을 푼 다음 물고기를 품에 안아 다시금 비틀거렸다.
“자자! 나와라!! 마지막 안배여!!”
녀석이 이해 못 할 소리를 지껄이면서 물고기를 바다에 던졌다. 몰아치는 빗소리에 그 큰 물고기가 바다에 떨어졌음에도 풍덩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와! 나와! 나와!”
녀석은 물고기를 던지고 배 바닥을 발길질하며 리듬을 맞췄다.
스칼은 차오르는 멀미에 배 끝부분을 잡고 연신 오늘 먹은 것들을 토해냈다. 애초에 먹은 게 이상한 콩 요리들밖에 없었지만.
한참을 구역질하고 있는데 애초에 검었던 바다가 미묘하게 더욱 거뭇거뭇해졌다.
마치 아래에서 뭔가가 다가오는 모양새에 스칼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거뭇거뭇한 무언가는 점점 커졌고.
이내 사람의 세 배는 될 듯한 크기의 문어 다리 하나가 위로 솟구쳤다.
“크… 크라켄이다!! 크라켄이야!”
“신이시여… 대지신이시여… 바다신이시여… 바람신이시여….”
“우리는 다 죽을 거야…. 이래서 내가 안 탄다고 했는데!!”
큼지막한 문어 다리가 배를 감자 선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절규했다.
“아하하핫!! 왔구나! 월척이다! 월척이야!!”
공황에 빠진 다른 선원들과는 다르게 녀석은 옆에 굴러다니는 창을 하나 줍고 박장대소하며 난간에 위태위태하게 섰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기운차게 외친 녀석은 정말로 정신을 놓았는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스칼은 점점 끌려 들어가는 배를 보며 자신이 가진 마법을 고민했다.
‘보지 쪼임 늘리기 마법… 이건 아니야. 색조 변환 마법… 이것도 아니야. 성감대 극대화 마법…. 이거다!’
스칼은 자신이 가진 마법 중 유일하게 전기 속성을 띄고 있는 마법을 생각해내고 요동치는 배 위에서 악착같이 집중력을 발휘해 마법을 완성해 나갔다.
‘집중해라! 스칼! 집중해! 그 좆같은 냄새가 나는 보지 앞에서도 마법을 구상한 나 아닌가!’
흐트러지는 정신을 애써 붙잡으며 스칼은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했다. 삶에 대한 끈질긴 의지 덕분인지 집중을 전혀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스칼은 마침내 ‘성감대 극대화 마법’을 완성했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서 꾸물거리며 천천히 배를 작살내는 큼지막한 문어 다리 위에 손을 올렸다.
끈적끈적하고 매끈한 촉감에 기분이 더러워졌다.
‘성감대 극대화 마법’은 다른 전기 마법과는 다른 작동 방식이었다. 성감대란 것이 몸 내부에 심오한 곳을 자극해야 하는 곳이라, 외부에서부터 태우며 침투하는 다른 전기 마법과는 궤를 달리했다. 밖은 전혀 건드리지 않고 내부로 침입하는 마법. 그게 ‘성감대 극대화 마법’ 이었다.
‘통할까…?’
누가 봐도 껍질이 두꺼워 마법 면역력이 높아 보이는 문어 다리였지만, 어차피 다른 방법이 없었다.
마나를 한계까지 끌어모으자 오른손에 파란색 스파크가 계속해서 튀었다. 결심을 내린 스칼은 입을 질끈 깨물면서 마법을 완성했다.
파지직 파지직
스파크가 문어의 다리 속으로 사라졌지만,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역시… 무리였나…?’
그에 깊은 절망감과 탈력감을 느낀 스칼은 넘어져 옆에 놓인 밧줄을 다시 움켜잡았다.
변화가 보인 것은 배의 삼분지 일이 바다에 잠겨 스칼이 체념하고 있을 때였다.
“꾸루루루루륽 꾸루룱!!!”
돌연 바다가 갈라지더니 세상을 가릴 것처럼 큼지막한 적붉은색의 외눈박이 문어가 솟구쳤다.
그 눈은 큼지막하게 떠 있었고 어울리지 않는 보라색 눈동자는 연신 좌우를 살피고 있었다.
그 모양새는 마치….
‘소변 마려운 사람 같지 않은가.’
“꾸르르르륽!! !”
스칼의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문어가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입에서 물을 뿜어냈다. 그 물의 양이 얼마나 많은지 공중에 폭포가 생긴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절…절정했다?’
눈앞의 믿기지 않는 모습에 스칼이 입을 쩍 벌리고 있을 때, 아까 사라졌던 놈이 문어의 입 주변에서 나타났다.
“아하하핫!! 스칼 잘했습니다!! 덕분에 일이 조금 더 쉬워졌습니다!!”
녀석은 고민도 하지 않고 물을 뿜어내는 문어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문어는 잘못된 것을 느꼈는지 덜컥 움직임을 멈췄고.
“꾸르르르르륽!!!!”
돌연 비명을 지르며 다리를 마구잡이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겨우 버티고 있던 배는 개작살이 나서 뿔뿔이 흩어졌고 바다에 빠진 스칼은 큼지막한 나무 조각 하나를 잡아서 버텼다.
잡은 나뭇조각이 물에 뜨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런다고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꾸르르르륽!!”
아하하하핫!
옆에서 들리는 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스칼은 눈을 질끈 감고 아까 본 선원처럼 신들의 이름을 돌려가며 불렀다.
천사가 악마보다 음부 냄새가 덜할 것 같으니.
그렇게 얼마나 버텼을까.
저물었던 해가 다시 떠오르고 거칠었던 바다도 잠잠해졌다.
‘살…살았다?’
스칼은 망망대해에 나뭇조각 하나 품에 안고 떠도는 처지였지만, 일단 살았다는 생각에 기뻐했다.
“으하하하!! 살았다!! 나는 이상한 문어 절정에서도 살아남았다!!”
스칼은 호탕하게 웃으며 지금을 만끽했다.
그런 스칼의 앞으로 무언가 다가왔고.
“푸후후후… 아하핫! 역시 살아있었군요! 스칼은 명줄이 길 것 같았습니다!”
꼴도 보기 싫은 그놈이 앞에 나타났다. 녀석은 영롱하게 빛나는 진주를 손에 들고 있었는데, 거기서 나오는 빛에 스칼은 자신도 모르게 잠시 홀렸다.
“아하하핫! 이번 건 작아서 한입에 되는군요! 그럼 마녀님의 마지막 안배! 잘 먹겠습니다!!”
과장되게 웃은 녀석이 진주를 입안에 넣고 꿀꺽 삼켰다. 그 모습에 스칼은 이유 모를 아쉬움을 느꼈다.
잠시 눈이 멍해졌던 녀석이 힘을 잃고 나뭇조각에서 떨어져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쯧쯧… 아무거나 먹으니 저렇게 탈이 나지.’
말동무가 없어졌지만, 녀석이라면 차라리 혼자인 게 나았다. 스칼은 고민도 하지 않고 천천히 손을 저어 육지가 있을 만한 곳으로 헤엄쳤다.
스칼이 사라지고 시간이 지나자 뭔가가 수면으로 떠 올랐다.
그것은 사람의 등이었는데, 잠시 꿈틀하더니 돌연 뒤집혔다.
수면 밖으로 나온 그것의 얼굴은 진주를 삼키고 사라진 사내의 얼굴과 같았지만,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랐다.
초점이 잡혀 있지 않았던 전과 다르게 눈은 가라앉아 있었고 아련한 무언가를 떠올리는 것처럼 아득히 먼 곳을 보고 있었다.
잠시 물 위에 덩그러니 떠 있던 사내의 입이 열리고.
“…에이든 …사랑해.”
얼마의 세월이 담겼는지 떨어지는 물방울에 갉아 부스러진 돌처럼 낡디 낡은 문장이 새어 나왔다.
이내 정신을 차린 사내는 천천히 한 방향으로 헤엄쳤다.
그 방향은 방금 스칼이 사라진 방향과 같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