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화 〉 대륙을 지키는 영웅.
* * *
에이든은 천천히 지금 상황을 되짚었다.
솔직히 엘프 왕국으로 향한다고 했을 때, 기대한 마음도 적잖이 있었다.
엘프 왕국은 타 종족을 거의 받지 않아서 알려진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미의 종족으로 불리는 엘프였기 때문에 기대감은 더욱 컸다.
그런 에이든의 기대에 걸맞게 엘프 왕국은 들어선 순간부터 밖에서 보기 힘든 미남, 미녀가 넘쳐났다.
계속 툴툴거리던 루크도 어느 순간부터 입 닫고 멋진 척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밖에서는 굉장한 미인이었던 이지수와 천오도 여기에 오니 조금 이쁜 정도였다.
이지수는 그에 불안함을 느꼈는지 갑자기 옷을 벗어 던지고 나체로 돌아다녔다.
대부분이 마른 체형인 엘프들 사이에서 그런 이지수의 선택은 탁월했다.
엘프들조차 이지수의 큼지막한 가슴에서 눈을 떼지 못했으니.
‘아니 그냥… 나체로 돌아다니는 미친년이라 그런가.’
아마 후자일 가능성이 클 듯했다.
모든 게 괜찮았다.
회의장에 들어오기 전까지.
하늘을 향해 쭉 뻗어있는 초록색 나무 사이에 지어진 집들도 이색적이었고 왕국 전체에서 풍기는 향긋한 꽃냄새도 밖의 암울한 상황을 잠시 잊게 해줬다.
그렇게 나는 기분 좋은 상태에서 회의장에 입장했다.
회의장에 있는 엘프들의 기세를 보니 다들 한가락씩 하는 듯했다. 이는 수명이 짧은 인간에 비해 몇십 배는 오래 사는 엘프로서 당연하기도 했다.
다만, 벽을 넘어선 엘프는 몇 없었다.
그렇게 나는 회의장의 가장 높은 의자에 있는 엘프 앞에 섰다.
상석에 앉은 엘프는 미의 종족 엘프들 사이에서도 뛰어나게 아름다웠다.
‘0.9 키아나 정도 되겠네.’
대부분의 엘프가 0.5 키아나정도 인 것에 비하면 매우 뛰어난 외모였다.
다만, 그 고고하고 우아한 외모와 다르게 엘프의 표정이 이상했다.
‘저거… 절정하기 전 표정이잖아.’
왜 나를 보며 저런 표정을 짓는지 모르겠지만, 금방이라도 절정할 것처럼 보였다.
나는 불안한 마음을 접고 케이트에게 몇 날 며칠을 걸려 배운 대로 엘프의 귀찮고 가식적인 예법을 천천히 따라 올렸다.
‘뭔 놈의 인사가 이리 거추장스럽냐.’
엘프의 예법은 내가 하면서도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릿느릿했다.
“오오… 인간이 엘프의 예법을.”
“역시 엘프의 문화가 대륙을 지배한다는 것이 사실이었어. 인간의 영웅마저 알고 있다니.”
주변에서 들리는 괴상한 말들은 무시했다.
문제는 내 예법이 끝나고 잠시 뒤에 터졌다.
갑자기 상석에 앉은 엘프가 돌연 다리를 양쪽으로 넓게 벌려 옅은 금색 음모가 난 음부를 드러내더니, 나를 향해 물을 쭉쭉 뿌려댔다.
그 모습에 피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내가 모르는 엘프의 예법일 수도 있으니 일단은 가만히 있었다.
결국, 나는 0.9 키아나 엘프의 애액을 정통으로 맞았는데, 그 양이 얼마나 많은지 내 온몸을 적시고도 땅에 뚝뚝 떨어졌다.
다행인 점은 엘프라 그런지 애액에서 향긋한 레몬 냄새가 풍겼다. 마치 레몬 농축액으로 샤워한 듯했다.
‘…화를 내야 하는 건가?’
애매한 상황이었다, 0.9 키아나에 준할 정도의 미인이 첫 만남에 내게 애액을 뿌리다니.
‘좋아해야 하는 건가?’
정말 판단하기 어려웠다.
[…내게 저런 눈부신 미인이 직접 뿌려줬다면 나는 좋았을 거 같네. 소년.]
그런 건가.
슬쩍 혀를 내밀어 맛을 보니 레몬 맛이 났다.
[입맛이 도는 맛이군.]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처음 본 상대에게 절정하며 애액으로 샤워시켜주는 게 일반적인 엘프의 예법이 아닌 듯, 회의장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그런 조용한 분위기에서 이지수는 이상한 것에 분노하며 0.9 키아나 엘프에게 화를 냈다.
“이게 무슨 무례입니까!!”
상석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있던 짙은 연녹색 머리의 엘프가 자리에서 일어나 0.9 키아나 엘프를 손가락질했다.
‘쟤는 0.7 키아나 정도 되겠네.’
얼굴에 줄줄 흐르는 애액을 손으로 대충 닦으며 소리치는 엘프를 살폈다.
“사절로 온 영웅에게 포션을 뿌리다니요!! 심지어 저 인간은 엘프의 예법도 완벽히 구현할 정도로 우리를 존중했는데 이 얼마나 큰 무례입니까!!”
0.7 키아나 엘프는 이지수와 맞먹을 정도로 언성을 높이며 0.9 키아나 엘프를 힐난했다. 당당한 목소리를 보니 제법 높은 지위를 가진 듯했다.
“크흠… 이번에는 알레트리스님이 조금….”
“처음 본 인간에게 포션 원액을 뿌리다니… 그건 그렇고 알레트리스 님이 저렇게 많이 생산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0.7 키아나 엘프의 큰 목소리에 회의장에 있는 다른 엘프들도 동조했고 그럴수록 0,7 키아나 엘프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물론 0.9 키아나 엘프는 주변을 신경 쓰지 않는 듯했지만.
“아흐응 주인님 제게 빨리 벌을 어떤 벌이라도 좋으니.”
0,9 키아나 엘프는 연신 허리를 튕기며 내게 음부를 뻐끔거리고 있었다.
‘애미 시발.’
그 고고한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모습에 나는 애써 고개를 돌렸다.
“이익!! 저도 질 수 없습네다!! 저도 한 보짓물 하니… 정면 승부입네다!!”
“가만히 있어. 제발.”
“말리지 마십쇼! 저 이지수! 걸려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습네다!! 에이든 동무! 이이이익!! 필살 마사지!!”
돌연 자신의 사타구니에 손가락을 넣고 빠르게 움직이는 이지수의 모습을 보며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이 돌아간 것을 보니 이미 말릴 수도 없는 상태였다.
“주인님 이 천박한 엘프에게 제발 빨리 벌을”
“이익!! 질 수 없습네다! 내 보지! 힘을 내는 것입네다!! 이지수 보지가 엘프 풀 보지보다 낫다는 걸 증명하는 것입네다!”
“저저… 저런 포션 대결을?!”
“저런 참신한 대결이….”
주변의 상황에 머리가 어지러워 정신이 혼미해질 때쯤,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온 0.7 키아나가 내 손목을 잡았다.
“일단 나가시죠.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아, 네.”
에이든은 0.7 키아나의 손에 이끌려 혼란스러운 회의장을 나섰다.
“저 소녀도 한 포션 제조 하는 군!! 알레트리스님의 포션 제조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이야!”
“아니야! 잘 보게! 저 소녀의 물이 가속도가 붙더니 점점 양이 늘고 있어!! 이런 이대로면 알레트리스님이 지고 말 것이야!”
“그…그래도 알레트리스님의 포션은 특상품이지 않나! 그에 반해 저 소녀는 인간이라 아무 소용 없을 것이네!”
“포션 제조면 양으로 판가름해야지! 질이 아니라!”
“그게 무슨 소리인가! 당연히 질이 우선으로….”
에이든은 여기가 어디인지 점점 가물가물해졌다.
***
‘이건 기회야….’
니하바나는 사내의 손목을 잡자마자 찌릿한 느낌이 들었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인간 영웅의 무력은 엘프 왕국의 손꼽히는 전사 니하바나가 보기에도 충분함을 넘어섰고 체격도 듬직했다. 일단 합격점은 넘어섰다.
‘이 수컷을 놓치면 다음이 없을 수도 있어… 섹스 못 해봤다고 놀림 받는 거 지겹단 말이야! 나는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 섹스할 수 있다!’
나하바나는 더는 마을 아이에게 놀림 받기 싫었다.
지금까지 로맨스 소설만 몇천 권을 읽은 니하바나는 자신의 연애 지식을 믿고 있었다.
비록 실전은 한 번도 없었지만, 지금까지 연애를 못 한 것은 시간이 없었을 뿐. 자신이 마음만 먹었으면 이미 수십 번은 결혼했을 거라고 장담하는 니하바나였다.
사내는 손쉽게 끌려 나왔다. 어디로 갈지 잠시 고민하던 니하바나는 다른 노처녀 엘프가 보기 전에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이건 마치… 연회장에서 모욕받는 여주를 구출한 상황 같지 않은가!!’
로맨스 소설 안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에 니하바나는 자꾸만 아래가 뜨거웠고 물이 찔끔찔끔 흘렀다. 땅에 떨어지는 액이 아까웠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평소에는 그렇게 가깝던 자신의 나무가 지금은 왜 이렇게 멀게만 느껴지는지, 니하바나는 사내의 눈치를 보며 발걸음을 좀 더 빨리했다.
한참이나 걷고 나서야 자신의 나무에 도달할 수 있었다. 자신의 오두막을 본 사내의 눈빛에 의구심이 담겨 니하바나는 황급히 변명을 생각해냈다.
“일…일단 조금 씻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포션이 아무리 피부에 좋다고 하지만, 그래도 조금 찝찝하니까요.”
“아 알겠습니다. 그러면 여기는…?”
“그… 제집입니다. 개인 성향이 강한 엘프는 공동 샤워 시설이 없어서요.”
니하바나의 말에 남자는 조금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순진하게 따라 들어오는 사내를 보며 니하바나는 조용히 문을 잠갔다.
‘그… 대사가 어떻게 됐었지?’
니하바나는 자신이 제일 재밌게 읽었던 소설의 내용을 떠올렸다.
그 소설의 제목은 ‘쓰레기 악당 공작의 약혼자가 되었다.’ 였다. 노처녀 엘프들에게 최다 판매를 기록한 명작 소설이었다.
다만, 니하바나는 그 소설의 작가도 결혼하지 못했다는 걸 몰랐다.
***
‘뭐지 이 꿉꿉한 냄새는.’
엘프의 집에서는 연녹색 머리를 찰랑거리는 엘프와 어울리지 않는 냄새가 났다. 마치 독거노인의 집에 온 듯한 냄새였다.
회의장 이후부터 상황이 너무 급변했고 내 예상과 다른 엘프의 모습에 정신이 없었다.
대뜸 애액을 뿌리지 않나, 이지수와 분수 대결을 하지 않나.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전개였다.
다만, 워낙에 케이트가 신신당부한 터라 일단 성질을 죽였다.
‘해달라는 건 뭐든 다 해줘. 그 정도로 사안이 급박해. 거기서 또 여자를 끼고돌아와도 상관 안 할 테니까. 그냥 협상만 제대로 진행해. 대신 최대 하나야!! 두 개 데리고 오지마! 최대 하나라고 했어!’
평소에 다른 여자라면 그렇게 길길이 날뛰던 케이트가 저렇게 말할 정도였으니, 사안이 중대한 건 틀림없었다.
두 달 전 돌연 하늘이 열리고 나서부터 해는 더 이상 뜨지 않았고 세상은 영원히 지속되는 밤에 빠져들었다.
하늘에 길게 벌어진 틈에서는 계속해서 악마나 마물 같은 것들이 넘어왔는데, 틈이 벌어진 덕분인지 악마들과 마물들은 전보다 더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돌연 대륙 곳곳에서 발견되는 고대 신의 조각들까지.
모든 것들이 대륙을 착실하게 절벽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그를 막기 위해 대륙의 인간과 이종족들은 그동안의 반목과 다툼을 잊고 하나로 뭉쳤다.
그렇게 모두가 뭉친 대륙 연합에 들지 않은 마지막 이종족이 엘프였다.
엘프 왕국은 내부에 있는 하늘에 닿을 정도로 까마득하게 높은 세계수 덕분에 유일하게 어둠에 젖어 들지 않은 곳이었다.
그 때문에 대륙 연합의 필요성을 뒤늦게 깨달은 엘프 왕국은 한참이나 늦은 회신을 보냈다.
대륙 연합은 엘프 왕국이 지금까지도 어둠에 잠식되지 않은 게 세계수의 영향이라고 보고 세계수를 해결책이라 생각해 사절로서 나를 보냈다.
왜 이런 중한 임무에 나를 보냈는지 모르겠지만, 케이트가 대륙 연합에서 꽤 중책을 맡았다는 것을 보니 그 입김이 작용한 듯했다.
사안의 중대함을 떠올린 나는 최대한 화를 죽이고 앞에 있는 엘프의 말을 최대한 따랐다.
엘프의 정확한 직위는 잘 모르겠지만, 회의장에서 언성이 높았던 것을 보면 꽤 높을 듯했다.
엘프가 안내한 곳에 들어가 조금은 허름한 샤워 시설에서 몸을 대충 씻고 나오자 의자에 앉아 혼자 중얼거리는 엘프가 보였다.
나를 확인한 엘프가 화들짝 놀라 뭔가를 뒤에 숨겼다. 언뜻 봤을 때 책인 듯했다.
“아… 그… 씻고 오셨습…군. 이쪽에 앉게.”
말을 더듬던 엘프가 돌연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턱을 쳐들더니 침착한 목소리로 자신의 앞에 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근데 말투가 왜 저래.’
방금까지만 해도 정상적이었는데, 씻고 오니 상태가 이상해져 있었다.
“알레트리스가 원래 이상한 엘프라 신경 쓰지 않아도 될걸세. 그녀가 잠깐 사라졌던 적이 있는데… 인간들의 성노예로 굴렀다고 하더군. 아마 진명도 말했겠지…. 그녀는 겉모습과 다르게 참으로 천박한 엘프니 신경 쓰지 말게. 다른 엘프들 눈은 속여도 내 눈은 못 속이지! 걸레 엘프!”
“그렇군요. 저는 에이든이라고 합니다.”
통성명도 없이 대뜸 뒷담부터 시작하는 엘프의 모습이 당황스러웠지만, 일단은 인사를 건넸다.
“아! 그 저는… 아니! 나는! 니하바나라고… 아니! 세르나다. 엘프 왕국의 대공 세르나!”
자신의 이름을 번복하는 모습이 조금 이상했지만,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에이든은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내가 이래 봬도 꽤 높은 지위에 있으니 협상은 무리 없이 진행될 것이다. 다만….”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푸흐흐… 뭘요! 이 정도로! 크흠. 제가 보기보다 능력이 좋습니다. 아시겠어요? 에이든?”
‘시발 말투가 왜 저래.’
자꾸만 급변하는 세르나의 말투가 소름이 돋았지만, 일단은 장단을 맞췄다.
“하하하. 그렇군요. 세르나 님을 만나서 다행입니다. 듬직합니다. 하하….”
“그래요! 그래! 에이든은 이 세르나만 믿으면 된다는 겁니다. 아시겠어요?”
내 입에서 ‘세르나’라는 단어가 나오자 세르나의 통이 넉넉한 치마 아래로 물이 뚝뚝 흘렀다.
‘무슨 시발 엘프들은 죄다 분무기를 가지고 있나….’
그쪽을 쳐다보지 않기 위해 세르나의 연녹색 눈동자를 마주 봤다. 그러자 잠시 머뭇거리던 세르나가 대뜸 고운 손가락을 내밀어 내 턱을 부드럽게 쓸어넘겼다.
전혀 맥락도 없고, 이해되지 않는 행동의 연속이었지만, 애써 웃었다.
나는 지금 대륙을 구하는 영웅이었으니까.
“그… 예. 알겠습니다.”
“좋아요. 그런 순종적인 자세. 내 것이 될 만해. 그러면 증명을 해야겠지요?”
“…증명이요?”
“내 호의를 받을 가치가 있는지 말이야….”
좆같은 말투의 연속이었지만, 애초에 세르나의 외모가 뛰어나 귀엽게 보였다. 그것과는 별개로 매콤 주먹이 자꾸만 떨렸지만.
“…어떻게 말입니까?”
내 물음에 세르나가 돌연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고 나서 한참이나 혼자 중얼거리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세르나의 얼굴에는 전처럼 차가운 표정이 담겨 있었지만, 볼은 잘 익은 홍시처럼 붉었다.
“빠…빠빠… 빨아! 주세요! 내게 증명을 해! 주세요!”
잠시 또 머뭇거리던 세르나가 눈을 질끈 감더니 대뜸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양다리를 활짝 벌리며 자신의 치맛자락을 올렸고.
옅은 초록색 털이 조금 난 음부가 내게 활짝 보이면서 익숙하고 달콤한 냄새가 확 풍겼다.
그 익숙한 냄새에 나는 코를 킁킁댔고 이내 어디서 맡은 냄새인지 떠올릴 수 있었다.
‘이…이건 시발 고구마 냄새잖아. 심지어 그것도 군고구마. 군고구마 보지라니 시발….’
세르나는 내게 음부를 보이며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발끝은 덜덜 떨리고 있었고 치맛자락을 집은 얇고 하얀 손가락은 부들부들 흔들렸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협상을 성사시켜야 해! 알았어?! 진짜 중요하단 말이야! 너한테도 그렇고! 우리한테도 그렇고!’
케이트의 신신당부와 옅은 초록색 군고구마 음부가 겹쳐 보였다.
왜 돌연 저 이상한 엘프가 내게 이런 것을 요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엘프의 음부에서 끔찍한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었고 달콤한 군고구마 향이 났으니까.
심지어 내게 부탁하는 저 엘프는 0.7 키아나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 정도면 대륙 어디를 가도 인정받고 추앙받을 외모였다.
그런 엘프의 음부를 빠는 것은 어쩌면 포상일지도 모른다.
대륙을 구하기 위해.
고민을 마친 나는 천천히 세르나 앞에 쭈그려 앉았다.
가까이 갈수록 짙어지는 향긋한 군고구마 냄새에 자꾸만 군침이 돌며 허기가 느껴졌다.
“후우…후우….”
내가 고개를 숙이자 엘프의 숨이 가빠졌다.
사실 음부 빨기는 내게 익숙한 것 중 하나이다. 이미 부인들의 맛이 궁금해 한 번씩 다 맛본 적 있었으므로.
고개를 올리니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는 세르나가 보였다.
아래에서 보는 각도임에도 턱이 하나도 접히지 않은 모습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래 이건 포상이야.’
나는 그동안 부인들을 대상으로 수련한 비기를 천천히 엘프에게 펼쳤다.
‘맛도 군고구마네.’
나쁘지 않은 맛이었다.
“푸흐흐흐… 그대는 내 것이 될 자격이 있다! 후으으… 내…내가! 연합을 꼭 성사시키겠다!! 아흐… 인간 영웅 정말 최…최고에요!!”
[…소년이여. 자네는 이미 영웅이네.]
그렇게 나는 여자의 음부를 빨고 대륙을 지켰다.
***
케프하는 계속해서 얼굴을 적시는 빗물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며 바다 건너 저 멀리 있는 섬을 응시했다.
파도가 너울거리는 바다에는 한때 벨리마 왕국이 자랑했던 호화로운 배들이 주인을 잃고 출렁이고 있었지만, 그 너머의 모습 때문에 배에는 시선이 가지도 않았다.
…꿀꺽.
케프하는 한때 벨리마 왕국이 있었던 섬의 살벌한 모습에 마른 침을 삼켰다. 해가 뜨지 않는 게 당연한 세상에서 더 이상 놀랄만한 게 뭐가 있겠냐 싶다만은….
저 멀리 보이는 외딴 섬 위로 전설에서나 나올법한 용들이 불을 내뿜으며 날아다니는 모습은 상상하는 것도 힘들 정도로 비현실적이었다.
‘…저걸 어떻게 막아.’
용들은 뭐가 그렇게 화가 났는지 하늘을 향해 연신 불을 뿜어냈고 그럴 때마다 하늘의 균열이 조금씩 넓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만약 저 용들이 대륙으로 향한다면… 케프하는 불길한 상상을 떨치기 위해 애써 고개를 흔들었다.
케프하의 턱을 타고 굵은 빗방울들이 주변으로 흩어졌다.
딸깍
빗소리 사이로 희미하게 들린 소리에 케프하는 고개를 돌려 제일 앞에 서서 섬을 응시하는 소녀를 보았다.
그 어둠조차 빨아들이는 듯한 흑발은 바닷바람에 연신 휘날리고 있었지만, 이질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소녀의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소녀는 그저 섬을 응시하며 무언가를 재듯 손에 들린 구슬들을 굴리며 중얼거렸다.
딸깍
“크흠….”
결국, 공포를 참지 못한 케프하는 목을 가다듬었다. 저 소녀 다음으로 케프하의 지위가 높았으니, 자신이 말려야 했다.
케프하의 헛기침에 주변에 부복해 있던 마법사들이 고개를 돌려 응원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케프하는 그 눈빛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루나 님 지원을 요청해야 합니다. 저 수많은 용 하나하나가 제국의 수도를 박살 냈다는 용과 같습니다. 저희끼리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소녀는 케프하의 말이 들리지 않는지 섬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천천히 손에 들린 구슬을 돌렸다.
그 이질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에 작은 짜증이라는 감정이 떠올랐다.
그에 케프하는 황급히 다른 마법사처럼 고개를 숙였다.
딸깍.
“왜 벌써….”
작게 중얼거린 소녀는 다시금 손가락을 움직여 구슬을 맞부딪혔다.
“…계산이 맞지 않아. 틀어졌어. 뭔가가 달라졌어. 근데 …어디서부터?”
소녀는 중얼거리더니 굴리던 구슬을 멈췄다.
이내 정적이 찾아왔고 요란한 빗소리와 파도 소리만이 주변을 가득 채웠다.
딸깍.
“…상관없잖아. 어차피 다 치울 거였는데. 거기 쓰레기.”
다시 구슬을 돌린 소녀가 케프하를 가리켰다.
“예옛!!”
케프하는 그에 황급히 달려나가 소녀의 앞에 부복했다. 딱딱한 땅에 찧은 무릎이 깨질 것처럼 아팠지만, 소녀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
“다른 쓰레기 데리고 돌아가. 그리고 에이든한테 좀 많이 늦을 것 같다고 전해줘. 청소할 게 너무 많다고. …짜증 나.”
“…네! 알겠습니다! 꼭 전하겠습니다!”
냉큼 대답한 케프하는 소녀에게서 황급히 떨어졌다.
딸깍.
다시 구슬을 매만지던 소녀는 이내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더니 뭐라 중얼거리고 사라졌다.
콰르르르르릉!!
그리고 저 멀리 용들이 있는 섬에 해가 뜨지 않아 칠흑처럼 어두운 세상을 환하게 밝힐 정도로 큼지막한 천둥이 내려쳤다.
천둥에서 느껴지는 신적인 마나에 부복해 있던 마법사들은 모두 전율을 느끼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크롸롸롸롸롸롸롸롸!!!””
저 멀리 떨어진 섬에서 용들이 일제히 울부짖는 소리가 대지를 진동시켰다.
‘…그리고 골든 쓰레기들한테도 늦는다고 전해.’
케프하는 소녀가 사라지기 전 자신의 머릿속에 들린 목소리가 말한 골든 쓰레기가 뭔지 깊게 고민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