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5화 〉 태양신의 성녀.
* * *
“기각한다고 했을 텐데요?”
어둠을 인간으로 표현한다면 이 여자만큼 어울리는 인물은 없을 것이다. 여자는 칠흑처럼 검고 긴 머리를 만지며 따분한 듯 하품했다.
“그…그렇지만, 이미 병력도 충분히 모였고….”
여자의 단호한 거절에 뿔이 수십 개는 난 악마가 쩔쩔매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기각.”
계속된 악마의 제안에 여자의 대답은 점점 더 짧아지고 단호해졌다.
“다시 한번 재고를….”
“기각. 입 아프게 자꾸만 똑같은 질문 할래요?”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인간 쪽에서 먼저 마왕성 쪽으로 진격하고 있다고….”
“어머! 오랜만에 손님이 오겠군요. 준비를 철저히 하라고 말해둬야겠어요. 쿠키는 많이 있나요?”
“손님이 아니라….”
“아직도 거기에 있었어요?”
뿔이 수십 개 달린 악마는 마왕의 서늘한 눈빛에 겁을 찔끔 먹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저렇게 겁이 많으면서 뭘 하겠다고….”
“…대비하는 게 옳지 않은가?”
“어머! 벨. 내 걱정 해주는 거예요?”
여인의 옆에 석상처럼 조용히 서 있던 금발의 사내가 시선을 돌려 여인을 마주 봤다.
“…걱정이라기보다는.”
뒷말을 찾던 남자는 마땅한 단어를 떠올리지 못했는지 이내 입을 닫았다.
“흐응… 재미없기는. 손님이 한두 번 온 것도 아니고 무슨 준비를 해요.”
여인은 따뜻한 눈길로 벨이라고 불린 사내를 보며 팔을 쓰다듬었다.
“쟤네들도 참 혈기 왕성하다니까. 애들도 아니고 무슨 세계정복이야. 그렇지 않아요?”
“…악의 종족에게는 저게 당연한 것 아닌가? 나는 오히려 네가 이상하군.”
“또또… 일부러 차갑게 하지 말라니까요? 아직도 내가 일으킨 것에 대해 삐져 있는 거예요?”
여인의 말에 사내는 잠시 인상을 찡그렸다가 시선을 돌렸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다. 악의 왕이라고 불리는 네가 왜 이런 성에 만족하고 있는지.”
“오랜만에 길게 말했네요? 좋은 신호인가? 흐응… 특별히 벨이 물어보는 거니까 대답해줄게요.”
여인의 말에도 불구하고 사내는 관심이 없는 듯 시선을 돌리지 않고 그저 멀리 있는 큰 문을 응시했다.
“관심 없는 척하기는…. 세계정복을 하든, 인간을 몰살하든, 아니면 신이라고 불리는 꼬맹이들을 죄다 잡아서 곤장을 치든, 다 의미가 없어서 그래요. 제가 안 해봤겠어요?”
여인은 그런 사내를 보며 작게 웃고 말을 이었다.
“…의미가 없다?”
“벨은 내가 몇 살인 줄 알아요?”
“많겠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으니.”
“어머. 그건 좀 실례되는 말인데. 이 세상의 끝은 정해져 있어요. 그것은 억겁의 세월 동안 마왕으로 불린 나도, 저 위에 꼬맹이 신들도, 막을 수 없는 정말 말 그대로 끝이에요. 끝에 도달하고 나면… 아… 이건 안 되네.”
“…그건 네가 이미 수백 번 이야기 했다. 끝부분도 같군.”
무뚝뚝한 사내의 말에 여인이 사내의 팔을 찰싹! 소리가 나도록 쳤다.
“그럴 때는 그냥 듣는 척해주는 거예요. 저러니까 여자가 이상한 나사 빠진 신관이랑 바람이 나지….”
“그렇게 말해도 내게는 기억이 없어서 소용없다.”
“…진짜 재미없어. 아무튼, 끝이 정해져 있는 것들을 죄다 가진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어차피 상할 것들이고, 어차피 땅에 떨어질 것들이고. 어차피… 아 이것도 안 돼? 진짜 빡빡하네.”
“….”
“그러니까 그냥 그 시간에 여기서 벨이랑 뒹구는 게 더 낫지. 그렇지 않아요? 제 취향에 맞춰서 만든 벨이랑….”
사내는 여자의 말에 관심 없는 듯 그저 대문을 보며 검 손잡이를 매만졌다.
“진짜 재미없다니까. 이번 손님들은 재밌으면 좋겠는데….”
여인은 중얼거리면서 사내의 사타구니 쪽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역시 고추를 크게 해놓길 잘했다니까. 어머? 그렇게 무뚝뚝한 표정으로 볼 거에요? 나 같은 미인이 올라탔는데, 눈물이라도 흘려야죠. 인간일 때는 나를 보며 침을 삼키더니만….”
“…감각이 없는 나를 안으며 좋아하는 꼴이 우습군.”
사내가 무감정한 눈빛으로 여인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조금 짜증 나네?”
작게 웃은 여인이 사내의 입꼬리를 잡아 억지로 올렸다.
여인의 손에 의해 사내의 굳은 입꼬리의 끝부분이 위로 올라갔지만, 사내의 시선은 문에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았다.
여인은 별 상관없는 듯 흥얼거리며 검은 드레스를 벗어 던지고 몸을 움직였다.
“사정도 안 하고 풀리지도 않는… 역시 이건 최고라니까.”
적막한 공간에 여인의 비음 섞인 신음이 울려 퍼졌다.
***
“애미 터진 마왕을 죽이자!! 우와아아아!!”
““애미 터진 마왕! 애미 터진 마왕!””
에이든은 지치지도 않고 병사들 사이에 섞여서 목이 터지라 외쳤다.
그런 에이든의 열기가 전염됐는지, 병사들은 두려움도 잊고 마왕을 고아로 만들었다.
“진격! 또 진겨어어어억!!!”
““진격!!”
수천 명 앞에 선 에이든은 이제 이지수까지 불러들여 그 위에 올라타 병력을 이끌고 있었다.
그런 에이든을 막기 위해 몇 번이나 지휘부에서 사람을 보냈지만, 병사들의 호응에 잔뜩 신난 에이든은 듣지 않았다.
그를 말리기 위해 갔던 키아나는 에이든에게 안겨 병사들에게 힘을 준다는 이상한 이유로 손을 흔들면서 한 바퀴 돌아야만 했다.
키아나는 그때 처음 사람이 부끄러워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이후로 되도록 에이든 쪽으로 가지 않았다.
“이지수!! 사기 증진 가슴 돌리기!!”
“오오옷! 이지수! 대장군의 명! 받았습네다!! 풍차 돌리기!!”
““와아아아!!””
이지수는 그를 말리기는커녕 같이 신나서 허리에 양손을 올리고 큼지막한 가슴을 돌렸다.
병사들은 그 모습에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말려야 하지 않을까요?”
“에이든 님이 좋아하시니까요. 전 좋아요.”
키아나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안드레아가 작게 입술을 깨물었다.
안드레아는 슬쩍 자신의 가슴을 매만졌지만, 이지수처럼 큼지막하지 않아서 돌릴 수 없었다.
“저…저놈이 내 손녀의 짝이라니!! 내가 어떻게든 뜯어말려야 했었거늘!! 크흑!”
“심호흡하세요. 심호흡. 후…하….”
녹지 않는 왕국의 병력은 따로 집결해 있었는데, 그들을 이끄는 비헨 베네딕트는 이제 목에 부목까지 대고 있었다.
“인류의 영웅님은 조금 활기차시네…? 병사들과 거리낌 없이 지내시기도 하고… 소탈하신가 봐!”
“성녀님. 관심 두지 마세요.”
“과…관심이라니! 그냥 보이니까… 아! 봉사 갈 시간이다!”
“매번 말씀드리지만, 성녀님이 일반 병사들의 상태까지 봐줄 의무는 없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긴장에 의한 복통 아닙니까.”
“그래도 내가 도와드리면 한 분이라도 고통을 덜 수 있잖아. 지금은 내가 딱히 할 일도 없으니까…. 응~?”
태양교 성기사 단장 브리다는 올망졸망한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성녀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런 눈빛으로 부탁하면 거절할 수가….’
“대신 조심해야 합니다. 사내는 언제나 위협적으로 돌변할 수 있는….”
“알아! 알아! 내가 너무 이쁘니까! 맞지?”
장난스레 꽃받침을 하고 뻔뻔한 표정을 짓는 성녀의 모습에 브리다는 웃고 말았다.
결국, 브리다는 오늘도 병사들을 직접 돌본다는 성녀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내가 저딴 인간을 일생의 짝으로?”
뾰족했던 엘프 귀가 축 처진 세르나의 등을 천오가 툭툭 두드렸다.
“고아! 마왕! 애미! 터진! 마왕!”
다시 이지수의 등에 올라탄 에이든이 검까지 뽑아 붕붕 휘두르며 목소리를 높였다.
옆에서 은근슬쩍 기마자세를 취하는 안드레아의 모습에 키아나는 고개를 돌렸다.
***
“그래. 헤르메스.”
“헤…헤르메이입니다! 아니! 오늘부터 헤르메스입니다!”
헤르메스가 내 앞에 부복하여 존경 어린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크면 좆같이 잘 생겨지겠네.’
일국의 왕자를 보는 듯한 외모에 괜히 심사가 꼬이는 듯했다.
“자네의 장기가 무엇이라고?”
“저는! 인류의 영웅님에 못 미치지만, 꽤 뛰어난 재능과 좋은 검을 가지고 있습니다!”
쓸만한 검이군. 이 몸에 비하면 별거 아니지만, 어쭈? 노려봐? 소년 저 검에게 잠깐 가져다주게. 이게 버릇없이….
이해 못 할 검의 말이었지만,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에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예?”
녀석이 내 신호를 이해 못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똘똘한 눈빛과 다르게 녀석은 눈치가 조금 별로인 듯했다.
“검 좋아 보인다? 구경 좀 하자?”
“…네넷!! 여기 있습니다!”
잠시 멍청히 있던 소년이 황급히 허리춤에서 검집째로 풀어서 내게 건넸다.
소년의 검은 소년에게는 조금 큰 듯했는데, 내가 잡는 순간 스파크가 튀었다.
놓아라! 어떻게 그런 무력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너처럼 쓰레기 재능을 가진 놈이…!
‘그러고 보니 이 검 새끼도 처음에….’
크흠… 첫 만남을 이야기하는 남자는 매력 없네. 나를 저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 위로 올려주게. 내가 혼쭐을 내주지! 감히 소년을 거부하다니! 희대의 영웅을 몰라보고!
‘…검 새끼들은 하나같이 좆같네.’
내 검을 뽑아 소년의 검 위에 올렸다. 내가 검을 뽑자 소년이 눈에 띄게 놀라면서 움찔했지만,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뭐…뭐냐 이건!! 치워라! 노인네 냄새가 풀풀….
어린놈 새끼가 버릇없이! 뭐하냐! 어른을 봤으면 인사부터 박지 않고! 네 놈은 어미·아비도 없는가!
검이 무슨 아비 어미를… 놓아라! 이놈! 어디를 건드리는 것이냐!!
요놈! 검신이 참으로 반지르르 하구나… 흐흐….
검들이 엉겨 붙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기이한 빛을 터뜨렸다. 공중에서 검들이 움직이는 모습은 전설에서나 나올 광경이었지만, 그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는 내게는 그저 발정 난 검과 순결을 지키고 싶은 검의 처절한 몸싸움으로 보였다.
혹시나 소년이 다른 행동을 취할까 확인했지만, 소년은 그저 굳은 얼굴로 가만히 서 있었다. 아마 헤르메스는 검들의 대화가 안 들리는 듯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고 엉겨 붙었던 검들이 떨어졌다.
후… 어린놈 새끼가 감히 눈을 새파랗게 뜨고 말이야. 물론 검이라 눈은 없지만. 하하!
흐으윽… 이게 무슨… 이렇게 강제적으로….
흐흐… 오랜만에 몸보신 좀 했네.
들리는 대화가 심상치 않아 괜스레 기분이 찝찝해졌다.
“좋은 검이군.”
이유는 모르겠지만, 스파크가 옅어진 헤르메스의 검을 주워서 건네줬다.
헤르메스의 손에서 잠시 반짝이던 검은 이내 빛을 잃고 검집으로 사라졌다. 그 속도가 제법 빨랐다.
“…감사합니다. 인류의 영웅이시여.”
잠시 표정이 굳어있던 헤르메스가 미소를 띠면서 예의 존경 어린 눈빛으로 돌아왔다.
“그럼 오늘도 열심히 사기를 증진해 볼까.”
나는 검을 갈무리하고 병사들에게 향했다.
“어엇! 영웅이시여! 대륙!”
“그래그래 대륙. 편히 쉬어.”
삼삼오오 모여 있던 병사들이 내가 등장하자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했다.
그들의 경례를 대충 손으로 받아주고 빈자리에 같이 앉았다.
내가 가까이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지 병사들이 웃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매일 돌아다니니 이제 낯익은 병사들이 몇 있었다.
‘일개 병사들의 얼굴과 이름까지 기억하다니… 나 같은 명장이 또 있을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벌써 성장한 나 자신이 느껴져 대견함에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래 무슨 이야기 하고 있었나? 칼?”
“저는 베하르…. 아! 그냥 이번 원정이 끝나고 복귀하면 할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주황색 머리가 꼭 드숀을 연상케 하는 녀석이 싹싹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 새끼들은 살아 돌아가기 글렀네.’
위험한 대화 주제에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칼 자네는 원정이 끝나면 뭘 할 생각인가?”
내 질문에 녀석이 잠시 목을 가다듬고는 입을 열었다.
“크흠… 영웅님의 여인들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저도 고향에 연인이 있습니다. 풍성한 금발이 매력적인 여자죠. 가슴도 제법 커서 탐내는 마을 청년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차마 용기가 없어 말하지는 못했지만… 만약 살아서 돌아간다면 저는 그녀에게….”
‘…글러 먹은 놈이구만.’
얼굴을 붉히며 정확하게 사망 플래그를 내뱉는 칼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에게?”
기왕이면 편하게 죽기를 속으로 빌어주면서 녀석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별을 고할 겁니다. 아무래도 옆 마을의 순이가 가슴이 더 큰 것 같아서요. 여자는 가슴 아니겠습니까? 순이는 빵집을 하는데 제가 매번 사러 갈 때 보이는 가슴골이….”
내 옆에 차렷 자세를 취하고 있는 이지수를 슬쩍 훔쳐보면서 녀석이 말했다.
“눈깔 파버리기 전에 눈 돌리십쇼! 이건 에이든 동무 전용 젖입네다!”
이지수의 엄포에 녀석이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
예상치 못한 녀석의 말에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이 새끼는 살 것 같기도….’
뭔가 예상과 다른 흐름에 녀석의 운명이 예측 안 됐다.
나는 죽음을 앞둔 녀석들과의 의기 넘치는 대화를 기대했는데….
“그럼 칼 옆에 있는 부스는? 자네는 돌아가면 뭘 할 건가?”
나는 황급히 옆에 앉아서 수프를 뒤적이고 있는 녀석을 가리켰다.
“저는 후리스입니다만…. 아! 저는 돌아가면 일단 아내를 볼 생각입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 배가 슬슬 불러오고 있었으니까 지금쯤이면 만삭일 겁니다.”
‘이거지! 이 새낀 무조건 죽겠네.’
도저히 피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사망 플래그에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 임신인가? 축하하군. 자네가 아니라 자네의 부인을 닮아야 그럭저럭 괜찮은 인생을 살 텐데 말이야! 하하하!”
“하하하!”
부스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웃자 옆의 병사들이 황급히 따라 웃었다.
‘역시 나는 사기 진작에 최고라니까.’
금세 훈훈해진 주변 분위기에 에이든은 만족하며 부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돌아갔을 때… 만삭일 테니까… 그 시발년을 족칠 생각입니다.”
조금 전과 전혀 다른 얼굴을 한 부스에 순간 주변이 얼었다.
‘…?’
“저는 어릴 적 나무를 오르다 떨어지면서 불알을 다쳐서 씨가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껏 안에다 싸질렀는데, 이 미친년이 임신했다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일단 책임진다고 하고 결혼했습니다. 그 개년이 결혼식에서 울던 모습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납니다. 우리 집안이 꽤 잘사는데 아무 능력도 없는 년이 앞날은 모르고 떵떵거리며 사는 꼴이 얼마나 우습던지…. 돌아가면 정식으로 재판을 신청해서 그 걸레년을….”
증오를 줄줄이 뿜어내며 말하는 녀석의 모습에 나는 또다시 할 말을 잃었다.
앞으로의 일은 잘 모르지만, 왠지 이 녀석들은 살아 돌아갈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그래 자네의 계획이 성공하기를 빌지. 나도 최선을 다해 자네가 살아 돌아갈 수 있도록 돕겠네. 하하….”
“역시 인류의 영웅! 영웅님과 함께라면 지옥의 불 속도 두렵지 않습니다! 하하하!”
‘그건 내가 두려워 시발.’
뜬금없이 나를 끌어들이는 모습에 나는 황급히 손을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는 이만 가보겠네. 이지수! 가슴 돌리기!”
“하아압! 기술이 좀 더 늘었습네다! 이제는 위아래로도 가능합네다!! 필살 젖 돌리기!!”
““와아아아!!””
대부분이 남성으로 구성된 병사들 사이에서 이지수의 가슴 돌리기는 사기 진작에 최고였다.
잔뜩 흥분해 손뼉을 치는 녀석들과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데, 흙투성이가 된 여인과 마주쳤다.
주황빛이 섞여 태양을 연상케 하는 금발에 오밀조밀하게 모인 이목구비 속 큰 눈망울은 강아지를 떠올리게 했다.
거기에 흰 성녀 복은 흙이 잔뜩 묻어있으니 영락없는 산책 갔다 온 강아지 꼴이었다.
여인의 귀여움은 아담한 키에 배가 되어 보면 자동으로 미소가 지어지는 수준이었다.
‘…태양교의 성녀라고 했나?’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다.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러 돌아다니는 나처럼 그녀는 병사들을 치료하기 위해 매일같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고.
‘…어제는 일개 병사의 배탈도 치료해줬다던데.’
그녀는 안드레아와 다른 의미로 성녀에 걸맞은 인물이었다.
“오… 안녕하세요! 인간의 영웅이시여! 영광입니다! 인간의 영웅님도 병사 사찰을… 업무로도 힘드실 텐데 대단하십니다!!”
붙임성이 상당히 대단한지, 여인은 금세 눈을 빛내면서 내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진짜 강아지 같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었는데, 옆에서 날카로운 기세가 느껴졌다. 그에 시선을 돌리니 성녀의 뒤에 서 있는 여자 성기사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감히 인류의 영웅을 노려보다니… 저 눈을 뽑….’
“그그… 영웅님! 용을 잡은 이야기 해주시면 안 돼요?”
그 무엄한 모습에 화가 났지만, 주인에게 놀아달라는 강아지처럼 제자리에서 뛰는 성녀에 의해 정신이 돌아왔다.
‘그래도 가슴은 있네.’
귀엽게 생긴 외모와 달리 적당히 튀어나와 있는 가슴이 성녀의 움직임에 맞춰서 보기 좋게 흔들렸다.
‘사…사도야! 드디어 다른 성녀를 찾았네!! 태양신?! 평소에 나를 무시하는 완전 재수 없는 애야! 지가 위에 있어서 내가 아래라나?! 벌 받아도 완전히 싼 애라니까? 완전히 밥맛이야! 밥맛! 평소에 내가 뺨 한 대 올리고 싶었는데 애가 키가 얼마나 큰지! 손이 닿지 않는다니까!! 그러니까 사도야….’
대지신이 어울리지 않게 뜸을 들였다.
그 어울리지 않는 망설임이 불안했다.
‘저 태양신의 암캐년! 강간하자! 암캐 타락을 시켜서… 포인트 벌이로 만들자! 뺑뺑이 돌리는 거야!! 치…치료하면 되잖아! 쓰고 고쳐두면 되는 거잖아! 그렇지?! 사도가 잘하는 거잖아! 태양신에게 한 방 먹이자고!’
뭐라는 거야 이 미친 새끼가.
머릿속에 울리는 잔뜩 흥분한 목소리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