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8화 〉 시골 감자는 맛있다.
* * *
수천의 병력이 어우러진 악마들과의 첫 전투는 인간 측의 승리로 끝났다.
하늘의 균열이 열리면서 강해진 악마들은 나와 네임드들에게는 어렵지 않았지만, 일반 병사들에겐 꽤 힘든 듯 인간 측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궤멸에 가까운 악마 측 피해에 비하면 연합의 피해는 적었지만, 일반 병사 삼분지 일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적지 않은 피해를 보았다.
다만, 네임드들 중에서는 단 하나의 사상자도 나오지 않아서 계획에는 차질이 없었다.
‘어차피 끝에 가면 네임드들의 싸움이니까.’
조금 냉정한 말이지만, 마왕을 상대하면서 일반 병사는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다.
일반 병사의 용도는 마왕까지 네임드들이 피해 없이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꺼억.
무슨 검이 트림까지 해.
싸구려 음식을 잔뜩 먹은 기분이군.
나는 검의 말에 헛웃음 지으면서 검을 고쳐 잡았다.
악마들이 주는 포인트와 힘에 한껏 매료된 나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움직였다. 그 결과로 내 아래에는 악마들의 사지로 이루어진 작은 산이 있었다.
나는 그 끔찍한 산의 정상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피가 거의 묻지 않은 키아나와 눈을 제외한 모든 곳에 피가 묻은 비키의 모습이 대조됐다.
하지만 악마에 관해서는 비키도 키아나도 다른 네임드들도 나를 따라오지 못했다.
사도인 나는 악마에 한해서는 압도적인 성능과 위력을 자랑했다.
팔이 베이면 금세 새로운 팔을 뽑아내는 악마였지만, 내 검에 베이면 더는 회복하지 못했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지금까지 그저 회복을 돕는 용도로만 사용했던 신성력이었지만, 막상 악마들이 주 무대인 곳에서 사용하니 신의 힘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거기에 악마를 잡으면 신성력이 회복되니, 나는 악마에 관해서는 지치지 않는 무적의 포식자였다.
아직도 몸 안에 한가득 남은 신성력을 움직이며 미묘한 갈증을 느꼈다.
‘신성력이 조금만 더 있으면….’
약간은 부족한 신성력에 느껴지는 아쉬움을 접고 주변의 병사들을 살폈다.
‘삼분지 일 이상 죽었군.’
무슨 저런 좆밥 악마에 그렇게 많이 죽었나 싶었지만, 애초에 악마의 수가 너무 많았다.
살아남은 병사들이 굳게 입을 다물고 나를 올려다봤다.
인간 측의 승리였지만, 나를 올려다보는 그들의 눈동자에는 티끌만큼의 승리감도 담겨 있지 않았다.
나를 보는 병사들의 눈빛에는 가지각색의 감정이 담겨 있었지만, 끝은 한가지로 귀결되었다.
공포.
자신의 동료를 씹어먹던 악마에 대한 공포일까, 아니면 온몸이 검은 피로 가득한 나에 대한 공포일까.
‘뭐든 상관없지.’
생각을 가볍게 접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할 말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대륙을 위하여.”
““대륙을 위하여.””
전쟁 전과 다르게 그들의 목소리에는 작은 격양도 담겨 있지 않았다.
아직 심지가 많이 남았음에도 더는 타오르지 못하고 꺼진 초들을 기리며 검을 고쳐 잡았다.
***
첫 전투에서 꽤 큰 피해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대륙 연합은 계속해서 진군했다.
악마들이 더 모이기 전에 마왕을 제거한다는 목적으로 최대의 병력을 모았으니, 여기서 결과를 내지 못하면 이후에 악마를 막을 수 없었다.
우리는 쏘아진 화살이었다. 목표에 박히든지 중간에 힘을 잃고 땅을 뒹굴던지 둘 중 하나였다.
마왕의 목에 박히면 대륙을 지켜내는 것이고, 닿지 못하고 땅에 뒹굴면 대륙도 같이 흙에 처박히는 것이다.
물론, 나와 지휘부는 대륙 연합이 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병사들의 피해는 컸지만, 주요 인물들의 피해는 없었고, 아무리 악마의 수가 많다고 해도 이번처럼 많은 수를 기용하기는 힘들 테니까.
조무래기라고 해도 저 많은 악마를 조무래기들만 보내 버렸는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우리에게는 호재였다.
다만, 문제는 논리를 더해가는 이 녀석이었다.
‘봐봐! 저 여자의 처녀가 병사들 수천의 목숨보다 중요해?! 사도야! 네가 진작 저 성녀를 강간했으면 수백은 더 살릴 수 있었어! 언젠가 누군가 쓸 거 사도가 잠깐 먼저 쓰는 거라니까?! 저 해맑은 애도 성녀니까 자신의 희생을 받아들일 거라고!’
“헤헤… 영웅님 이번에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아! 이거요? 제가 고향에서 가져온 건데… 제법 인기가 많아서… 한번 드셔보시겠어요?”
강아지처럼 한껏 눈을 크게 뜬 태양신의 성녀가 내게 감자를 내밀었다.
감자에서 모락모락 나오는 김과 티 하나 묻지 않은 해맑은 미소에 괜히 가슴이 무거워졌다.
태양신의 성녀는 얼마나 부지런히 움직였는지, 전투가 끝나고 꼬박 하루가 지났지만, 여전히 피가 잔뜩 묻은 성녀 복을 입고 있었다.
어젯밤 내 침대로 찾아온 안드레아의 먼지 하나 묻지 않은 성녀 복과는 정반대였다.
왜 그렇게 태양신을 싫어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대지신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만약 이 여자의 처녀와 수많은 병사의 목숨을 저울질하면 당연히 병사들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인류의 영웅인 내가 이 해맑은 성녀를 강간할 수 없잖아.’
심지어 나는 교미에 굶주린 상태도 아니었다. 매일 밤 여자들이 번갈아 가면서 찾아오고 있었으니까. 오히려 교미를 피하고 싶었다.
‘왜! 강간이 뭐 어때서! 역사적으로 영웅들은 하나같이 다 강간을 했다니까?! 사도야 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가 본데….’
[소년… 저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저 소녀에게 사정을 말하면….]
‘…네 처녀를 가지면 내가 강해져서 더 많은 병사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잘도 믿겠다. 입에 담는 나도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오는데, 얘가 그런 걸 의심 없이 믿을 정도로 멍청하겠어?’
대뜸 태양신의 성녀가 흙이 잔뜩 묻은 손으로 나를 잡아, 상념이 깨졌다. 내 옷깃을 잡은 성녀는 주변을 한껏 경계하면서 까치발을 했다.
그러고는 마치 정말 대단한 비밀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릴 듯 말 듯 한 작은 목소리로 내 귀에 속삭였다.
“헤헤. 실은 이 감자에 비밀이 하나 있거든요? 다른 분들에게 드리는 것과 다르게 영웅님에게 드리는 이 감자는 제가 특별히! 칭찬해서 키운 감자에요! 이건 저만의 비법인데… 칭찬을 계속해주면서 감자를 키우면 맛이 더욱 달고 싱싱해져요!”
‘…멍청하네.’
정말 진지한 얼굴로 멍청한 소리를 길게 늘이는 성녀를 보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씨… 강간이 더 많이 줄 거 같은데… 그냥 먼저 강제로 하고 설명하면 안 될까?’
“…성녀님. 제가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라도 더 많은 병사를 구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인데 들어주실 수 있나요?”
“히이잇…! 인…인류 영웅의 부탁! 저만 가능한 건가요?!”
태양신의 성녀가 마치 소꿉놀이에서 엄청난 배역을 맡은 아이처럼 눈을 잔뜩 빛내며 양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 순진한 모습에 마음 한편이 쓰렸지만, 더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네. 태양신의 성녀님만 가능한…. 아… 이름이 뭐라 그랬죠?”
“아…아델라! 아델라에요!”
“아. 압둘라 님만 가능한 거예요. 이번 악마 원정에서 꼭 필요한 거입니다.”
“압둘라가 아니라… 아델라인데….”
“네. 아불라 님만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수천의 악마들 사이에서 맹수처럼 홀로 발톱을 휘두르던 영웅에게 자신이 필요하다는 말에 아델라의 가슴이 콩닥거렸다.
‘나…나도 도움이 될 수 있어.’
아델라는 수많은 부상자에 잠도 자지 않고 밤새 열심히 움직였지만, 아침에 개운한 얼굴로 나타난 대지신의 성녀가 가볍게 뿌린 신성력보다 효과가 적었다.
마치 산책하듯 나타나 여유롭게 신성력을 뿌리고 사라지는 대지신 성녀의 모습에 아델라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의심했다.
자신에게 감사 인사를 표하는 병사조차 곁눈질로 대지신 성녀의 뒷모습을 쫓고 있었다.
그런 압도적인 차이 앞에 아델라는 자신이 마치 감자를 캐다가 줄기에 걸려 곁다리로 올라온 못난이 감자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자신은 태양신 님의 실수가 아닐까.
해가 뜨지 않은 이후부터 들리지 않는 태양신의 목소리는 아델라의 초조함을 더욱 부추겼다.
그런데 수천의 악마에 당당히 맞선! 승리의 주역인 인류의 영웅이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다니!
그 어떤 고된 일이라도 자신이 해내야만 했다. 자신은 신의 선택을 받아 대륙을 지켜야 하는 성녀이므로.
인류 영웅의 미묘하게 올라간 입꼬리가 보였지만, 아델라는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푸하하하!”
“헤헤… 헤헤?”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는 영웅의 모습에 아델라는 황급히 따라 웃었다.
***
“이…이렇게요? 조금 부끄러운데.”
“가만히 있어요.”
영웅의 말에 따라 치마를 걷어 올리고 엉덩이를 뒤로 쭉 내뺀 아델라였지만, 민망함은 참을 수 없었다.
‘내 엉덩이를 인류의 영웅에게 보이다니…! 어릴 적 개울에서 놀 때 말고는 아무한테도 보인 적 없는데!’
도무지 따라갈 수 없는 상황에 아델라의 머리는 빙글빙글 돌았다.
“엉덩이 좀 더 빼고.”
“…네넷! 엉덩이 좀 더 빼고!”
아델라는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부끄러웠지만,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 애써 참으며 엉덩이를 쭉 내뺐다.
‘이…이러면 오줌 나오는 곳까지 보이는데?!’
문득 떠오른 생각에 벽을 짚은 아델라의 손이 잔뜩 오그라들었지만, 아델라는 입술을 씹으며 참았다.
‘…대륙을 위한 거야! 병사분들을 위한 거야! 영웅님을 위한 거야! 나는 할 수 있어. 해내야 해!’
“조금 따끔해요. 하지만 참아야 해요. 원래… 음… 순교란 아픈 거잖아요?”
“네넷! 참을 수 있습니다!”
“그래요. 안 참아도 어쩔 수 없지만.”
이윽고 자신의 맨살에 올라온 영웅의 뜨거운 손길에 아델라는 전처럼 아랫배가 뜨끈하며 간지러웠다.
가까이 붙은 영웅의 숨결이 아델라의 귀를 간질였고.
“따끔.”
영웅은 거리낌 없이 아델라의 하체를 당겼다.
“…이에에에에엣!!!”
아델라는 영웅의 경고에 참으려고 입을 질끈 깨물었지만, 하반신이 뚫리는 듯한 통증에 단 1초도 버티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런 자신이 한심했지만, 도저히 견딜 수 있는 통증이 아니었다.
힘을 잃고 쓰러지는 아델라의 머리 체를 우악스러운 손이 잡았다.
움직이지 못하게 목까지 붙잡힌 아델라의 귀에 영웅이 속삭였다.
“순교는 원래 아픈 거잖아요. 못 참아요?”
생전 처음 느껴보는 끔찍한 고통에 순박한 처녀 아델라는 눈물이 핑 돌고 온몸에 힘이 빠졌지만, 마치 주문처럼 속삭이는 영웅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순…순교의 길….’
아델라는 눈을 질끈 감으며 움츠렸던 엉덩이를 다시 내밀었다.
“…옳지.”
“헤헤….”
그제야 자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손길에 아델라는 고통도 잊고 웃었다.
“그럼 다시 따끔.”
“…이에에에엣!!”
“좀 시끄럽네.”
“…웁.”
영웅이 아델라의 한껏 벌려 침이 흐르는 입에 흙이 잔뜩 묻은 감자를 쑤셔 넣었다.
아델라는 그렇게 감자 순교자가 되었다.
‘…근데 순교는 죽는 거 아닌가?’
되는대로 뱉은 말이지만, 연신 컥컥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순박한 성녀를 보며 에이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골 처녀는 생각보다 잘 익어서 맛이 좋았다.
***
“비키라고 했습니다! 거기 아델라 님 계신 거 아닙니까?!”
태양신의 성기사단장 브리다는 자신을 막아서는 소년에 답답함을 표했다.
“여기가 어디라고 행패입니까. 인류의 영웅, 대륙의 희망, 악마 도살자, 에이든 님의 텐트입니다.”
소년은 그런 브리다의 호통에도 전혀 기죽지 않고 되려 언성을 높였다.
검 손잡이를 잡으며 자신을 노려보는 소년을 보며 브리다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확실히 이 소년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강하다.’
브리다는 어제의 전투에서 소년이 보여준 모습을 떠올리며 자신과 가늠했다.
분명 자신과 아득한 나이 차이가 있었지만. 소년의 힘과 재능은 기묘한 구석이 있었다.
어제 전투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소년은 자신의 상대가 못 되었다. 하지만 전투를 거친 지금의 소년은 가늠이 안 됐다.
‘…그리고 만약에 성녀님이 저기 안에 없다면 큰 낭패다.’
브리다는 핏발 선 눈으로 앞에 놓인 회색빛 천막을 노려봤다.
상대는 지금 대륙에서 제일 유명한 영웅이었다.
자신의 모든 감이 저곳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만약 자신의 감이 틀렸을 때는….
“…혹시라도 저희 성녀님을 보시면 알려주십시오.”
숙인 브리다의 말에도 소년은 귀찮다는 듯이 손을 저었다. 그 건방진 태도에 브리다는 참기 힘들었지만, 자신의 순진한 성녀를 생각하며 애써 고개를 더욱 깊숙이 숙였다.
브리다의 목숨은 자신의 것도, 신의 것도 아닌 자신의 성녀 아델라의 것이니.
‘…안 넘어오네.’
성기사단장의 부리부리한 눈에 핏발까지 섰을 때, 헤르메이는 다음 수를 기대했다.
다만, 성기사 단장의 인내심이 제 생각보다 뛰어났다.
전투해야 강해지는 자신의 특성상 어떻게든 갈등을 유발하고 싶었지만, 성기사단장은 좀처럼 넘어오지 않았다.
“쯧… 배알도 없기는.”
헤르메이는 에이든처럼 침을 땅에 탁 뱉고는 뒤에 있는 텐트를 쳐다봤다.
“에에에에엑… 히이잇….”
예민한 헤르메이의 귀에 거의 다 죽어가는 여자의 숨소리가 들렸다.
‘…젠장 나도 영웅님에게 이런 잔심부름 말고 진정한 도움이 돼야 하는데.’
주변에 더 이상 접근하는 이가 없음을 확인한 헤르메이는 슬그머니 천막으로 다가가 조용히 살짝 열었다.
그러자 개운한 얼굴로 몸을 푸는 자신의 영웅과 나체로 책상에 엎드려서 밑으로 액과 피를 줄줄 쏟아내고 있는 성녀가 보였다.
얼마나 피를 많이 흘렸는지, 얼굴이 창백한 게 금방이라도 죽을 듯한 모습이었다.
처음 보는 여자의 나체에 헤르메이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아. 압둘라 님만 가능한 거예요. 이번 악마 원정에서 꼭 필요한 거입니다.’
조용히 내부의 상황을 지켜보던 헤르메이는 아까 들은 영웅의 대화가 떠올랐다.
‘…저 구멍으로 영웅을 도와준 것인가?’
잘은 모르겠지만, 뻐끔거리며 한껏 벌어진 여자의 하체를 보니 맞는 듯했다. 만족스러운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는 영웅의 얼굴로 보아 큰 도움이 된 듯했다.
‘…고작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영웅님에게 도움이 된다니. 아무 쓸모없는 것이.’
고작 성별로 자신의 영웅에게 편애를 받은 여자를 향해 타오르는 지독한 질투에 헤르메이는 검 손잡이를 꽉 움켜잡았다.
그러다 헤르메이는 뻐끔거리는 여자의 하체 위에 또 다른 구멍이 있는 것을 봤다. 그 구멍은 자신에게도 있는 것이었다.
‘…저 구멍은 나도 있다. 어차피 똑같은 구멍… 그럼 나도 영웅님을…! 고작 저런 쓸데없는 년보다 내가 더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헤르메이는 총기 넘치는 눈동자를 빛내며 자신의 바지를 고쳐 잡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속옷이 꽉 끼었다.
에이든은 헤르메이의 기척을 눈치채고 있었지만, 사춘기의 소년이 여자의 나체를 보고 싶은 건 당연하다 생각해 그냥 넘겼다.
‘어차피 본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아름다운 성녀의 나체이니, 보여주지 않으면 평생 원망할 게 분명했다.
‘그래도 저 녀석은 뭔가… 여자에게 관심이 없는 듯했는데. 다행이네.’
무력도 괜찮고 자신의 말이라면 껌뻑 죽는 헤르메스가 게이는 아닐까 고민했던 에이든은 마음이 조금 풀리는 듯했다.
나사 풀린 이지수와는 다르게 영리하고 동작이 빠른 헤르메스는 버리기에는 꽤 유용했으니까.
녀석 덕분에 생활이 제법 편해지기도 했고.
‘…게이라면 절대 내 옆에 못 두지. 으… 시발.’
끔찍한 상상에 몸을 살짝 떨면서 아델라의 엉덩이를 내려쳤다. 아델라는 그에 찔끔 놀라며 습관적으로 엉덩이를 치켜 올렸다.
“…순교, 대륙, 태양신님, 영웅님…을 위해서”
아델라가 뭐라 작게 중얼거렸지만, 목소리가 너무 작아 들리지 않았다.
피를 많이 쏟은 게 조금 위험해 보이기는 했지만, 성녀니 알아서 치료할 것이다.
사춘기의 소년을 위해서 에이든은 아델라의 새하얀 허리를 잡아서 들었다.
물론, 손가락도 들어간 적 없는 아델라의 맛이 뛰어났던 것도 한몫했지만.
어디까지나 사춘기의 소년에게 성교육을 해주려는 성격이 강했다.
***
“…골든 와이브스 수칙 1. 비처녀가 접근할 시 처단한다.”
경건하게 무릎 꿇고 앉은 이지수는 앞에 놓인 종이를 정독했다. 이는 상부에서 문서로 만들어서 정리한 골든 와이브스의 행동 수칙이었다.
“이는 혹여나 상대가 처녀가 아닐 때 에이든 님에게 성병을 옮길 가능성이 있으므로, 필히 지켜져야 한다. 맞습네다. 현명합네다.”
이지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문서를 읽어내려갔다.
“…우리의 중심은 에이든 님이다. 당연한 것을 왜 적어놨습네까?”
볼펜으로 메모까지 하면서 이지수는 한껏 집중했다.
세 장으로 구성된 행동 수칙에는 꽤 자세한 판단의 기준이 적혀 있었다. 이는 지금까지 애매했던 것들에 대한 정리로 사소한 분쟁을 줄여줄 듯했다.
마침내 마지막 조항에 도착한 이지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자가 에이든 님에게 성적인 목적으로 접근할 때 이후 불문 처단한다. 음?”
지금까지 전혀 상상해보지 못한 가정에 이지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종이에 얼굴을 바싹 가져다 댔다.
“…이는, 남색에 빠지면 답도 없다는 옛말에 관한 내용으로 줄여서 게이살(Gay?)이라고 한다. 흐음… 에이든 동무가 남자를 좋아하는 것도 상상이 안 되지만…, 제 보지가 고작 남자 똥구멍에 질 것 같지는 않습네다만….”
마지막 종이를 들고 잠시 고민하던 이지수는 대뜸 자리에서 일어나 굳은 얼굴로 종이에 경례를 올렸다.
“하지만 규율은 규율! 엄격해야만 합네다! 저! 이지수! 골든 와이브스의 행동 보지! 명 받았습네다! 와이브스!”
공화당 출신인 이지수는 엄격한 규율의 중요성에 대해 매우 잘 이해하고 있었다. 심지어 공화국과는 달리 현명한 케이트와 혜진, 서아가 세운 규율이니 옳을 것이다.
경례를 올리는 이지수의 가슴골 사이로 번쩍이는 총의 자루가 슬쩍 보이다가 다시 파묻혔다.
“와이브스!”
옆에서 졸던 천오가 이지수의 고함에 습관적으로 따라 외쳤다가 목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게 대륙 연합은 마왕성이 보이는 대지까지 전진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