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209화 (209/233)

〈 209화 〉 신장이 될 상.

* * *

“대지신! 이 미친년 어디 갔어!!”

몽실몽실한 구름 위 금발의 소녀가 열을 내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소녀의 입에서 나온 ‘대지신’이라는 말에 주변의 소녀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시선을 돌렸다.

‘대지신’ 이름을 외치며 길길이 날뛰는 신이 저 소녀가 처음이 아니었고 또한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한참 눈에서 불을 뿜어내며 돌아다니던 소녀는 처음 보는 호화로운 구름 집 앞에서 멈췄다.

“뭐…뭐야 이건?”

애초에 서로 숨길 게 없는 이곳에서 포인트가 억 소리 나게 들어가는 건물을 지은 이는 지금까지 없었다.

고운 눈살을 찌푸리며 건물을 둘러보던 소녀는 떡하니 쓰여있는 ‘대지신’ 세 글자에 눈알이 뒤집혔다.

“이… 이 미친 신이!!! 어디서 난 포인트야 이거!!”

소녀는 길길이 날뛰면서 뭉실뭉실한 구름 문을 밀었다.

내부의 바닥에는 처음 보는 호화로운 물건이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었다.

‘저…저것들 다 명품이잖아!’

가장 가까이에 있는 물건을 확인한 소녀는 기절할 뻔했다.

“어? 태양신이네. 안뇽!”

천진난만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예전에 친했던 구름신이 해맑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쟤…쟤가 무슨 포인트로 저런걸…?’

구름신의 목에 걸린 빛나는 목걸이와 손가락마다 껴있는 반지들에 불안함이 가중됐다.

‘…애초에 구름교는 제일 세가 약할 것인데?’

“너! 대지신님을 만나러 왔구나?”

“…님?”

모두가 동등한 신들끼리는 존칭을 붙이지 않는 게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대지신에게 존칭을 붙이는 구름신을 보며 태양신은 뭔가 잘못됨을 느꼈다.

“응! 대지신님! 이쪽으로 와! 안내해줄게!”

“….”

해맑게 손을 젓는 구름신을 보며 태양신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찐따들이 모여서 뭔가를 하는가 싶었는데… 이렇게까지 될 줄은….’

대지신, 바다신, 구름신, 바람신 이 네 명이 모여서 뭔가를 한다는 소문이 돌기는 했었는데, 평소에 괴팍한 애들이었으니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건물까지 지어놓았다니….

춤추듯이 양팔을 휘저으면서 걷는 구름신에게서 차르릉­ 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구름신을 따라 도착한 곳에는 처음 보는 샹들리에가 걸려 있었다.

‘어둠이 다가오지 못하는 이곳에서 왜 샹들리에를….’

그리고 바닥에 쌓인 명품들까지.

이 방은 사치의 정점이었다.

방의 제일 정중앙에 마치 인간의 왕좌처럼 큼지막한 의자에 대지신이 삐딱하게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붙은 신들이 대지신의 짧은 팔다리를 열심히 주무르고 있었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대지신의 얼굴을 본 순간 태양신의 머릿속의 무언가가 끊어졌다.

“이… 미친 신이!! 뭔 짓이야!!!”

태양신은 냉큼 대지신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아 틀었다.

대지신에게 붙어있던 신들은 익숙하게 뒤로 물러났다.

“…뭐야? 태양신이네? 잘 지냈니?”

“잘…지냈니?! 이 미친 신이! 내 성녀한테 무슨 짓이야!!!”

“네 성녀? 어떤?”

뻔뻔한 대지신의 눈빛에 순간 태양신은 자신의 판단을 의심했다.

‘…대지신의 사도가 한 짓이라고 대지신을 나무랄 수 없다. 신이 사도의 행동을 통제하지 못하는 건….’

진정하기 위해 애써 심호흡을 하던 태양신에게 대지신의 비틀린 입가가 보였다.

“아! 생각났다! 그 입에 감자 처박히고 내 사도한테 개처럼 박히던 애 말하는 건가? 맞아? 그렇게 박히고 나니까 감자만 보면 보지에서 물을 질질 흘리는 그 애를 말하는 거야? 나는 창부인 줄 알았는데…, 네 성녀니?”

태양신은 대지신의 입에서 나온 거칠고 저급한 말에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신이 돼서 무슨 저런 단어를.’

너무 큰 충격에 태양신은 대답조차 잊고 그저 입을 벌리며 앞의 갈색 소녀를 멍하니 쳐다봤다.

“맞나보네? 야… 태양신아.”

“…으응?”

전과 달리 기세등등한 대지신의 태도에 태양신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잔뜩 움츠린 태양신을 보는 대지신의 눈이 반짝 빛났다.

대지신은 태양신의 눈부신 머릿결을 잡아 가까이 당겼다. 그에 태양신은 작은 저항도 없이 끌려갔다.

“…태양이 가려지고 더는 성녀랑 연락이 안 된다며?”

대지신의 속삭임에 태양신의 금색 눈동자가 한껏 커졌다.

“우리 사도가 말이야… 암컷 타락은 정말 잘 시키거든? 내 사도한테 박힌 것 중에 정신이 남은 애가 없어요…. 흐응… 근데 우리 태양신이 연락까지 안 된다라….”

간질이는 듯한 대지신의 목소리에 태양신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다음 성녀 선발전은 언제가 될지 모른다…. 만약 대지신이 이번 선발전에서 이긴다면….’

태양신은 눈을 굴려 주변의 구름 집을 살폈다. 얼마가 들어갔는지 감이 안 왔지만, 이런 집까지 가지고 있을 정도라면 대지신의 승리는 확실했다.

‘아무리 멍청이라도 가진 포인트를 죄다 집에 박지는 않았을 테니까… 여유 포인트가 집을 살 정도라면….’

태양신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네 성녀의 보지에는 감자가 몇 개나 들어갈지 궁금하지 않아?”

또다시 대지신의 입에서 나온 상스러운 단어에 태양신의 상념이 끊겼다.

“그…그걸 왜 거기다가 넣어?”

“왜냐니… 그야 재밌잖아? 덤으로 포인트도 주고.”

자신을 보며 입꼬리를 비트는 대지신은 여신답게 아름다웠지만, 그 미소는 예전 신마대전때 봤던 악마와 똑 닮아 있었다.

“아… 그…그게.”

“어? 아직 서 있네?”

태양신은 대지신의 말을 이해 못 했다.

“너도 궁금하지? 그 순박한 성녀의 보지에 몇 개가 들어갈지?”

대지신의 상스러운 말에 정신을 못 차리던 태양신의 시선에 무릎 꿇고 있는 주변 신들이 보였다.

자신의 어깨를 잡은 대지신의 조막만 한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니까… 말해봐.”

“뭐…뭐를?”

신들끼리는 서로 영향을 줄 수 없어 어깨를 잡은 대지신에게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야 했지만, 태양신의 어깨는 점점 무거워지는 듯했다.

그 무거움에 태양신의 무릎이 점점 굽혀졌고.

“내가 신장이 될 상인가?”

마침내 땅에 닿은 태양신의 무릎을 보며 대지신이 예의 그 미소를 지었다.

***

“애미 애비 터진 마왕!”

““애미 애비 터진 마왕!””

예의 그 구호를 힘차게 뱉으며 망설임 없이 악마들 사이로 뛰어드는 영웅의 모습에 아델라는 아래가 찌릿했다.

영웅의 뒤에는 신성력이 뿜어져 나와 마치 빛의 망토처럼 펄럭였다. 그 모습은 대륙을 구할 진정한 영웅 그 자체였다.

더욱 강해진 듯한 영웅의 모습에 아델라는 뿌듯함을 느끼며 성물을 고쳐잡았다.

‘앗….’

아델라는 성물의 끝에 묻어 있는 피를 누가 볼세라 황급히 닦았다.

어제의 일은 아델라에게 죽음을 연상시킬 정도로 너무 고통스럽고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부끄러웠지만, 이겨낼 수 있었다.

‘아마… 태양신님이 도와주셨겠지.’

작게 성호를 그으며 감사함을 표한 아델라는 이상할 정도로 뜨거워진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숨을 골랐다.

‘…그래도 내가 해내야만 해.’

더욱 흉흉해진 기세로 악마들을 도륙 내는 영웅의 모습을 훔쳐보며 아델라는 각오를 다졌다. 자신이 고통받아 다른 이를 구할 수 있다면 아델라는 이겨낼 수 있었다.

“…괜찮습니까?”

옆에서 걱정스럽게 묻는 성기사단장을 보며 아델라는 부드럽게 웃었다.

“네. 각자가 최선을 다해야 하니까요.”

“…알겠습니다.”

성기사단장은 이해 못 할 아델라의 말에 인상을 찡그리며 검을 뽑았다.

아델라는 그런 성기사단장의 모습에 듬직함을 느끼며 천천히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신성력이 늘었어. 역시 태양신 님이….’

늘어난 신성력에 아델라는 자신의 예상이 맞았음을 깨달았다. 아랫배가 좀 더 간지러워졌다.

“제…제발 살려주세요.”

“저는 고향에 아이가!”

“크흐으윽­ 신이시여….”

주변의 스러져가는 생명들에 나오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아델라는 걸음을 옮겼다.

어제의 고행 덕분인지, 늘어난 신성력에 전보다 더욱 많은 이를 구할 수 있었다.

‘…나도 할 수 있다. 도움이 될 수 있다.’

자신에게 감사를 표하는 병사의 손을 맞잡으며 아델라는 각오를 다졌다. 오늘도 아델라는 고행을 스스로 찾아갈 것이다. 대륙을 위해.

“쓸모없는 년.”

아델라의 옆으로 무언가가 빠르게 지나가면서 속삭였다. 그에 놀란 아델라가 고개를 돌렸을 때, 악마를 손쉽게 도륙 내는 헤르메이가 보였다.

분명히 어린 나이임에도 헤르메이의 무력은 빠른 속도로 강해지고 있었다.

헤르메이는 영웅의 뒤를 따라 악마들 사이로 깊숙이 뛰어들었다.

불과 저번 전투까지만 해도 악마 하나에 빌빌대던 소년이었지만, 이제는 강해진 악마들 상대로도 수월하게 전투를 이끌어 나갔다.

그 이해 못 할 재능에 아델라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옆에서 들리는 신음에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 아델라의 성녀 복 아래로 잔뜩 젖은 작은 감자가 떨어져서 땅에 뒹굴었다.

***

‘…진짜로 신성력이 늘었다.’

순박한 성녀와 교미를 했다고 늘어난 신성력에 혀를 차며 검을 고쳐 잡았다.

신의 힘이란 게, 무슨 교미를 했다고….

‘그래도 제법 재미가 있었지.’

흰 도화지인 아델라는 내가 원하는 색이 무엇이든 마음껏 칠할 수 있었다. 내가 어떤 색의 물감을 들던 지식이 없는 아델라는 거부하지 않고 숭고한 표정으로 받아들였다.

쩌억­ 벌린 악마의 주둥이에서 풍기는 끔찍한 냄새가 나를 상념에서 깨웠다.

마치 물병의 입구 부분을 연상케 하는 악마의 둥근 주머니에는 수백 개의 날카로운 이빨이 살아있는 것처럼 꾸물거렸다.

전의 전투보다 악마의 질이 훨씬 올랐지만, 아직 내게 위협이 될 수준은 아니었다. 증가한 신성력에 오히려 전보다 더 상대하기 수월했다.

‘…얘네는 왜 순차적으로 병력을 보내는 거지? 나였으면 단번에 모아서 붙었을 텐데.’

악마의 찢어진 주둥이에서 뿜어지는 검은 피를 피하고자 땅을 박찼다.

[…나 때도 그랬다. 순차적으로 보내는 건 악마들의 특징인 듯하군. 덕분에 마왕의 손에 죽었지만.]

불길한 소리 하지마.

“여…영웅이시여.”

“대륙을 위하여.”

방금 베어진 놈의 배에서 튀어나온 병사 하나가 나를 올려다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으… 끈적거리겠네.’

그에 나는 경례를 작게 올려주고 다시 포인트를 쌓기 위해 더 깊숙이 움직였다.

‘성녀의 처녀 값도 해야 하니까….’

뿜어지는 신성력에 지치지 않는 나는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사제! 너무 깊어!”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니 주변이 악마로 가득 차 있었다. 포인트에 신이 나서 너무 깊숙하게 들어온 듯했다.

좆밥 악마에게 둘러싸여 있다고 해도 위험하지 않았지만, 다급한 키아나의 목소리에 장난기가 발동했다.

“…아악! 사저!!”

“사제!!”

장난스럽게 낸 비명이 끝나기도 전에 내 앞에 키아나가 서 있었다. 마치 전쟁의 여신처럼 숭고함과 아름다움이 극에 달한 키아나가 눈에 잔뜩 걱정스러움을 담고 나를 응시했다.

‘…보이지도 않았는데?’

키아나의 무력이 한껏 차오르던 내 자신감을 가볍게 밟았다. 괜히 케이트가 아무 걱정 없이 나를 마왕성으로 보낸 게 아니었다.

콰아앙!!

“캬하하하하하!!!”

큰 굉음이 나더니 수십의 악마가 공중으로 치솟았다. 그 아래로 한껏 신나서 웃는 비키를 보며 나는 슬그머니 검 끝을 내렸다.

“괜찮아?! 사제?!”

키아나가 내게 한 발을 내디디니 주변에 가득 찬 악마가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작은 공터가 만들어졌다.

…방금 검격도 보이지 않았다.

‘시발. 내 기 세워주려고 일부러 적당히 한 거였어?’

문득, 악마들에 한해서라면 내가 최고라며 우쭐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사제? 무슨 일이야?”

내게 다가온 키아나가 내 얼굴과 팔을 확인하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엉망진창 된 주변의 모습에 마른침을 삼키며 키아나의 검을 곁눈질했다.

키아나의 검에는 검은 피가 단 한 방울도 묻어 있지 않았다.

“그냥 갑자기 아름다운 사저의 얼굴이 보고 싶었어요.”

“뭐…뭐야 사제!”

내 말에 금세 얼굴이 붉어진 키아나가 슬그머니 내 볼을 꼬집고 뒤돌았다.

“…피곤하면 쉬고 있어도 돼 사제. 비키와 나만 있어도 충분하니까.”

검을 고쳐 잡으며 슬쩍 미소짓는 키아나는 그 누구보다 아름답고 든든했다.

“꺄하하하하!! 최고야! 최고!”

키아나의 뒤로 보이는 비키는 악마의 주둥이를 손으로 잡아 손쉽게 찢어냈다. 그 모습은 다른 의미로 든든했다.

“…부인들이 일하는데 남편이 놀 수 없죠. 아… 사저는 그냥 암캐지만.”

“사제! 우리 둘이 있을 때만 그렇게 부르기로 했잖아!”

투구 안으로 보이는 키아나의 얼굴이 순식간에 터질 것처럼 붉어졌다. 키아나는 언제 놀려도 반응이 뛰어났다.

“자! 제국 제일 암캐! 출동!”

“…사제!!”

키아나 갑옷의 엉덩이 부근을 치며 외치자 키아나가 붉어진 얼굴로 잠시 노려보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뒤, 키아나가 사라진 쪽에 있던 악마들이 아주 작은 조각으로 갈라졌다.

‘…오늘은 키아나가 오겠네.’

마치 화풀이한 것처럼 잔뜩 조각이 난 악마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웅님!! 저도 왔습니다!”

사라진 키아나 뒤로 검은 피가 잔뜩 묻은 헤르메스가 나타났다.

‘…얘도 제법 강해졌네. 속도가 생각보다 훨씬 빠른데?’

마치 우상을 보는 것처럼 눈을 반짝이는 소년의 무력을 눈대중으로 측정했다.

분명 저번 전투까지만 해도 비실비실대던 놈이 이제는 제법 네임드의 태가 났다.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빠른 성장 속도였지만, 일단 호재였다.

‘…역시 사춘기 소년에게는 미인의 나체만 한 동기가 없지.’

아마 어제 내가 시켜준 성교육이 한창기 소년의 성장을 촉진 시켰으리라.

만약, 저 비정상적인 성장 속도가 유지된다면 머지않아 마왕을 상대할 때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이미 전력은 충분했지만, 쓸모 있는 패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테니.

‘압둘라의 나체로 저 정도의 성장이라면… 제국 제일 암캐 키아나의 나체나 파멸적인 비키의 가슴을 보면 대륙 연합의 큰 힘이 될 게 분명하다.’

“이 잡것이 감히!!!”

고민하는 내 뒤로 접근한 악마를 소년이 거침없이 베어냈다. 그 동작이 조금 아쉬웠지만, 검의 예리함이 그를 메꾸었다.

‘…구경 정도는 시켜줄 수 있지. 다른 건 절대 안 되지만.’

내게 개처럼 박히는 게 어린 소년에게 적나라하게 보여 부끄러워 죽으려는 키아나의 모습이 기대됐다. 비키는 신경 쓰지 않겠지만.

악마를 베어내고 다시 나를 올려다보는 소년의 눈에 가득 담긴 충성심에 고민을 끝냈다.

지금까지 만난 인물 중에서 제일 정상적이고 뛰어난 성장 속도를 보이는 소년이 스스로 내 수족을 자처하는데, 거두지 않으면 병신이 분명했다.

“이따 저녁에 내 처소로 오거라.”

“흐읍…!! 알겠습니다!! 제가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내게서 좀 떨어지고 포인트 모아야 해.”

“네! 영웅님!! 이따 뵙겠습니다!!”

내 의도를 깨달았는지, 사춘기의 소년이 잔뜩 흥분하여 고개를 끄덕이고 악마들 사이로 냉큼 사라졌다.

소년이 사라진 쪽의 악마들이 어설프지만, 반으로 갈라졌다.

‘…근데 뭘 모신다는 거지?’

묘하게 걸리는 녀석의 마지막 말에 의문을 표하며 검을 움직였다.

수십 개의 손에 병사들을 쥐고 있던 악마가 욕심 때문에 병사를 놓지 않아, 내 검에 그대로 반 토막 났다.

물론, 병사를 놓았어도 별 차이는 없었겠지만.

“대륙을 위하여.”

땅에 떨어진 병사들의 시선에 최대한 진중하게 말하고 걸음을 옮겼다.

존나 멋있는 영웅의 뒷모습이었다.

[크흠….]

“천오 브레스!!”

“웨에에엑­.”

“이…인간 도대체 아이에게 뭘 시키는 것인가!”

멀리서 들리는 이지수의 우렁찬 목소리는 애써 무시했다.

***

이지수는 골든 와이브스에 보고서를 올리기 위해 에이든의 천막으로 향했다.

매일매일 올려야 하는 보고서에는 제법 상세한 목록이 있었는데, 이지수는 그를 철저히 지키고 있었다.

‘일단 정액량이랑… 혈색… 동침 여부… 오줌 맛… 너무 많은 것입네다.’

이지수는 복잡한 목록을 되새기며 에이든의 천막을 열었다.

다만, 천막 안의 풍경은 이지수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웬 간나 새끼 하나가 나체로 책상에 엎드려 엉덩이를 들고 있었다. 그는 평상시 에이든의 천막과 별 차이 없었지만, 없어야 하는 게 간나 새끼에게 달려있다는 게 문제였다.

“영웅님… 준비는 모두 마쳤습니다.”

간나 새끼가 한껏 들뜬 목소리로 중얼거리고는 손을 엉덩이 쪽으로 내렸다.

앞에 보이는 흉한 모습에 이지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머릿속으로 빠르게 골든 와이브스 행동 수칙을 떠올렸다.

마지막 문항을 떠올린 이지수는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가슴 사이에 넣어둔 은색 총을 꺼냈다.

“게이살(Gay?).”

탕.

이지수의 은빛 총구가 혁명의 불을 뿜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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