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211화 (211/233)

〈 211화 〉 청년 악마 협회장.

* * *

“비…비겁한 인간 놈들!! 네놈들이 그러고도 용사냐!!”

“거 참 시끄럽네. 안드레아?”

“…조금 따끔해요.”

“하…하지마!! 떨어져라! 인간!! 끄아아아악!!!”

이미 반시체가 되어 의자에 묶여있는 악마의 볼을 안드레아가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언뜻 보면 상처를 입은 악마의 상처를 치료하는 성녀였지만, 악마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안드레아의 뽀얗고 부드러운 손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자 그에 닿은 악마의 얼굴이 타들어 가면서 검은 재가 휘날렸다.

“…끄아아아악!! 끄아아아악!!!”

“크흠… 악마 놈이 제법 입이 무겁군요.”

“…조금 기분이 그러네.”

“사저 마음 단단히 먹어요. 우리는 대륙을 지키러 온 상황이에요. 인정을 두고 그럴 때가 아니에요. 심지어 얘는 악마잖아요.”

“으응… 알지… 아는데… 모양새가 조금 그러네….”

악마가 듣는 것만으로 진이 빠지는 비명을 지르면서 발광했지만, 안드레아는 그저 단아하게 웃으며 계속해서 빛을 뿜어냈다.

천막 안에는 유황 냄새와 고기 익는 냄새로 가득 찼다.

천막 안에는 네임드들이 있었는데, 악마의 살이 불에 타면서 재가 날리는 것을 보며 제각각 다양한 표정을 지었다.

어떤 이는 원한에 가득 찬 눈빛으로 악마를 노려봤고, 어떤 이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떨리는 손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나는.

‘…저녁 먹을 시간인데.’

고기 익는 냄새에 슬슬 허기가 졌다.

악마의 얼굴 가죽이 모두 사라지고 그 안의 검은 피부가 드러날 때쯤, 안드레아가 손을 떼었다.

사지가 뒤틀리고 얼굴 가죽은 다 타들어 간 악마가 공포에 잔뜩 질린 눈으로 안드레아를 보면서 덜덜 떨었다.

“고생했어요­ 안드레아. 자… 그럼 이제 이야기가 통할까요?”

“…끄으윽.”

악마의 앞에 앉았지만, 악마는 덜덜 떨기만 할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저거 눈물인가?’

대강 악마의 눈으로 파악되는 구멍에서 피가 한 방울 또르륵­ 흘렀다.

“자! 여기 보세요! 그러니까… 음… 사천왕의 다섯 번째?”

짝 소리가 나게 박수를 몇 번 치니 그제야 악마의 얼굴이 나를 향했다.

“왜…왜… 이런 끔찍한 짓을 하는 것이냐…!!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쓸데없는 말 하면 안드레아 다시 불러와요?”

“그…그러지 마라! 저 마왕님보다도 지독한 인간 암컷은 제발… 궁금한 게 무엇이든 답해줄 테니! 제발!! 저 악랄한 인간만은…!”

안드레아의 이름만 말했을 뿐인데도, 몸을 덜덜 떨면서 애원하는 악마의 모습에 만감이 교차했다.

‘…악마가 성녀한테 악랄하다니.’

새하얀 천에 손을 닦으며 단아하게 웃는 안드레아와 덜덜 떠는 악마의 모습은 뭔가 잘못된 듯했다.

“끄윽… 악랄한 인간 놈들… 끄으윽….”

“악마가 돼서 약한 척하지 말고. 어차피 우리는 마왕성을 폐쇄하러 온 용역이니까요. 알았어요?”

“도…도대체 왜!! 우리는 그저… 끄으윽….”

“이거 또 이러네. 안드레아?”

“…네? 에이든 님?:”

“제…제발!! 다 말하겠네!! 뭔가 궁금한 게 있으니 나를 생포한 것 아닌가! 다 말할 테니!! 저 여자를 내보내 줘!! 제발!!”

고개를 끄덕이자 악마가 속으로 울음을 삼키면서 몸을 잔뜩 웅크렸다.

악마의 날개가 정력에 좋다는 말에 등 뒤의 날개는 죄다 뜯긴 지 오래였다. 그 이야기를 가장 먼저 꺼낸 이지수가 날개의 큰 부분을 들고 사라진 게 조금 꺼림칙했다.

“…이름?”

“끄읍… 마왕님의 심복 사천왕의 다섯 번째… 마르바스다.”

마르바스라 자신을 소개한 악마가 공포와 고통에 덜덜 떨면서 힘겹게 대답했다.

“그래. 마르바스 이름 멋지네.”

“끄으읍… 닥쳐라!! 네까짓 인간에게… 감사합니다! 제가 심사숙고해 지은 걸 알아주시다니!! 안목이 굉장히 좋으시군요!!”

화를 내다가도 내가 안드레아 쪽을 쳐다보자 금세 돌변하는 녀석을 보며 나는 대강 녀석이 어떤 놈인지 깨달았다.

비굴한 웃음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녀석에게 가장 궁금했었던 것을 질문했다.

“근데 사천왕인데 다섯 번째라니…? 원래 사천왕은 네 명 아니야?”

“그…그게 사연이 있습니다. 원래는 그… 존함이?”

“인류의 영웅! 대륙의 희망! 에이든이다.”

“이…이름이 굉장히 기시군요. 아무튼! 인류의 영웅 대륙의 희망 에이든 님의 말씀처럼 사천왕은 원래 넷이었습니다.”

“그냥 에이든이라고 불러.”

“넵! 원래는 넷이었는데… 대부분 악마는 싸우면서 세대교체가 일어나야 하는데… 마왕님이 중간계의 마왕성에서 나오지 않으시고… 세계 정복도 안 하시니까… 자연히 전투가 줄어들고… 악마의 고령화가 진행됐습니다.”

녀석은 목이 아팠는지 잠시 목을 가다듬으며 내 눈치를 슬금슬금 봤다.

‘악마가 고령화…? 이게 뭔 좆같은 소리야.’

손짓하니 녀석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젊은 악마들은 계속해서 태어나는데… 사천왕들은 죽지도 않고 그 자리에 알박기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심지어 그 늙은이들은 오랜 세월을 지내 단단히 뭉쳐 서열 결투를 걸기에도 부담스러웠습니다. 사천왕의 참관하에 이루어진다는데, 거기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으면 누가 알아줍니까?”

마르바스는 제법 말재주가 있는지, 생동감 넘치게 설명을 이어갔다.

녀석의 말은 제법 재미가 있어, 어느새 주변에 모인 네임드들이 숨죽이며 집중했다.

‘…하긴 어디 가서 지옥 이야기를 듣겠어.’

“그래서 저희 젊은 악마들도 연합을 만들었습니다. 사천왕이 아무리 이름뿐인 직위라 해도… 악마로 태어난 이상! 끝까지 올라가서 마왕님에게 도전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악마의 길인데! 그 늙은이들이 똘똘 뭉쳐서 비켜주지 않으니 답이 안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지옥은 젊은 피와 늙은 피로 다툼이 일어났고, 그 타협안이 사천왕에 세 자리를 추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청년 악마 협회장으로서 다섯 번째 자리를 받은 거고요. 그게 사천왕이 일곱이 된 이유입니다.”

점점 고조되던 녀석은 마지막 부근에 이르러 정말 대단한 업적을 세운 영웅처럼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사천왕이 되면 뭐가 있나?”

아니, …일곱인데 애초에 사천왕이 아니잖아?

“예? 아니요! 그래도 멋있잖아요. 수만의 악마 중 내가 다섯 번째로 강하다! 이런 느낌이니까요. 자고로 저는 지옥에서 올해 청년들이 가장 닮고 싶은 악마 1위로도 뽑혔습니다. 하하.”

금세 기세등등해진 녀석이 우쭐한 얼굴로 자신을 소개했다.

‘저…게 지옥? 그때 수도에 있던 녀석들은…?’

[조…조금 변한 것 같군. 나 때는 저렇지 않았네… 다들 어떻게든 인간을 잡아먹으려는 녀석들밖에 없었는데… 세월이….]

“사천왕의 다섯 번째가 되자마자 저는 좀 더 많은 직위를 만들었습니다. 자고로 계단이 있어야 올라가려는 의지가 생기니까요. 하하핫.”

가죽이 벗겨져 검은 피를 뚝뚝 흘리며 웃는 녀석의 얼굴은 제국의 귀족과 똑 닮아 있었다.

‘…이 새끼들 그냥 놔둬도 되지 않을까?’

[크흠… 다른 건 몰라도 마왕 그 여자는 위험하네.]

저런 게 부하인데 잘도 위험하겠다. 시발.

“그러면 너는 왜 혼자 여기 잠입해 있었지?”

지끈거리는 머리에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다음 질문을 했다.

“…그 개 같은 관료주의 때문입니다!! 썩어빠진 윗 대가리들!! 안전 불감증에 빠져 목에 칼이 들어와도 카드놀이나 하는 놈들!!”

“관…관료주의?”

“마왕님은 세계 정복할 생각도 없고! 또 오랫동안 평화에 찌든 다른 사천왕 놈들은 인간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게 말이 됩니까?! 하지만! 올해의 닮고 싶은 악마 1위! 발로 뛰는 저 마르바스는 그런 꼴 못 봅니다! 저는 뿌리부터 썩어있는 그놈들과 다릅니다!! 작은 불씨를 보고 지나치지 않는 그런 악마가 바로 저입니다!”

잔뜩 열을 올리며 설명하는 녀석의 모습은 아카데미 학생회장 선거에서 봤던 귀족과 비슷했다.

“그래서 헤르메스의 배에 들어가서 잠입했다고?”

“…헤르메이 아닙니까? 아무튼! 정통 클리셰를 훌륭하게 구현해낸 것이죠! 인간의 뱃속에 들어간 악마! 배를 찢고 나오는 악마! 물론… 은 총알은 계획에 없었지만…. 저 눈치 빠르고 영악한 여자만 아니었으면… 끄으윽­.”

“아니었으면?”

“좀 더 멋있게 등장할 수 있었는데! 수천의 군세에 잠복한 악마!! 아마 성공했으면 악마 역사서에 길이 기록됐을 텐데!!”

분통을 터뜨리는 녀석을 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마왕 아래 이런 나사 빠진 새끼들 여섯이 더 있다는 건가? 이건 좀 큰데.’

지금 녀석은 출세에 눈먼 귀족과 비슷한 한심한 모습이었지만, 아까 느껴진 놈의 높은 격은 진짜였다.

만약 헤르메스의 똥구멍에 이지수가 은 총알을 박지 않았으면, 제법 피해가 컸을 것이다.

“…악마 역사서에 기록되면 내년 닮고 싶은 악마 1위도 따놓은 당상이거늘!!”

“그럼 일단 넘어가고 나머지 녀석들에 대해 말해봐.”

“…지금 저한테 악마 진영을 배신하라는 말씀입니까?”

내 질문에 악마의 얼굴이 굳으며 다시금 전의 격이 느껴졌다.

뿌리까지 뽑힌 녀석의 뿔에서 검은 불꽃이 살짝 튀고 얼굴 가죽이 벗겨져 흐르던 검은 피가 역행하는 모습이 제법 화가 난 듯했지만….

“안드레아?”

“…끼이이익!! 배신이라기보다는 내부 고발자가 어감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헤헤…. 썩어빠진 악마 놈들!”

잔뜩 무게를 잡던 녀석이 내가 안드레아를 부르자 재빨리 표정을 풀면서 성호를 그었다.

“앗! 따따따! 이거 안 되는구나!”

성호를 긋던 녀석이 손에 스파크가 튀자 깜짝 놀라 움츠렸다.

‘…진짜 좆같은 세상이야.’

어떻게 이런 놈이 그런 격을 가지고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일단 사천왕의 첫 번째는 음욕을 관장하는 바엘로라는 꼬장꼬장한 할망구인데 약점은….”

녀석이 정말 악마에 어울리는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빠르게 움직였다.

***

“…입니다. 그리고 녀석들은 죄다 자기 급에 취해 있어서 다 개별로 있을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헤헤. 아! 하위 악마들은 먼저 보낸 것이요? 그건 예전부터 내려오던 매뉴얼입니다. 처음부터 전력으로 상대하면 멋진 그림이 안 나오니까요. 투덕투덕하는 맛이 있어야 한다나? 좀 멍청하지만 그런 이유였습니다. 하급 악마들은 주기적으로 물갈이할 필요성도 있고요.”

마침내 사천왕 모두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마친 녀석이 굽신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좆밥이라지만, 수천의 악마들을 먼저 밀어 넣는 모습에 뭔가 꿍꿍이가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까보니 별거 없었다.

“…그럼 다 말한 건가?”

“네! 제가 알고 있는 것은 대륙의 영웅! 인류의 희망! 에이든 님에게 전부 말씀드렸습니다!! 비록 과거에 사천왕의 자리에 올랐던 고위 악마지만! 앞으로 개과천선해서! 절대 중간계를 넘보지 않고 지옥에서 착실하게 살겠습니다!!”

힘겹게 자세를 고쳐 앉은 녀석이 쿵 소리가 나도록 몇 번이나 땅에 머리를 처박았다.

녀석의 이마에서 검은 피가 터져 나오고 벗겨진 가죽이 뭉개졌지만, 녀석은 더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머리를 박았다.

‘…살고 싶은가 보네.’

녀석의 처절한 행동에 나는 황급히 손을 내밀어 녀석의 어깨를 잡아 말렸다.

“인…인류의 희망이시여! 저 같은 악마에게도 자비를 베풀어주다니… 아아 이 얼마나 넓은 아량이….”

“인류의 희망이 아니라… 인류의 영웅이라니까.”

몸을 잃은 녀석의 머리가 땅에 뒹구르르 굴렀다.

‘머리 박고 죽으면 포인트 못 얻잖아.’

분수처럼 쏟아지는 검은 피를 피해 뒷걸음질 치며 녀석에게 얻은 정보를 되새겼다.

‘…사천왕은 총 일곱 명. 그들을 제외하고도 장군급의 악마들이 있지만, 전체 병력의 수는 우리가 앞선다.’

“여…역시 에이든 동무입네다!!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게이라는 이유만으로 똥구멍에 총알을 박아 넣은 이지수가 검은 피가 잔뜩 묻은 나를 보며 박수를 쳤다.

‘…사도!! 포인트 안 들어왔어!! 저 새끼 죽은 척하는 거야!! 빨리!! 터뜨리자!!’

고개를 돌리자 데굴데굴 굴러가는 녀석의 눈과 마주쳤고, 녀석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다… 다 말했잖나!! 이 악마 같은 놈아!! 악랄한 놈! 저주받을 놈! 지옥에 떨어지이이일!!”

뿌직­

마치 토마토가 터지는 소리가 나며 녀석의 얼굴이 터졌다.

“의외로 질기네요. 악마를 잡을 때는 확인 사살을 똑바로 해야겠어요.”

천막 안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지만, 누구도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그들은 악마에게서 얻은 정보를 연합 쪽에 보고하고 새로운 작전을 준비했다.

그런 복잡한 일은 내 전문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새로 배정받은 천막으로 향했다.

꽤 정이 들었었던 천막을 저 악마 놈이 부숴버려서 새로 배급받아야 했다.

새로 받은 천막은 전보다 크고 쾌적했기 때문에, 전의 천막은 금세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천막을 열고 들어가자 치마를 걷어 올리고 책상에 엎드린 누군가가 보였다.

뭔가 익숙한 모습에 나는 먼저 그 새하얀 하체에 흉측스러운 게 달려있는지 확인했는데, 다행히도 아무것도 없이 분홍빛의 음부만 보였다.

‘…다들 바쁠 텐데 누구지?’

내 인기척에 엎드린 여자가 고개를 돌렸고, 나는 그제야 누군지 깨달았다.

“…순교하러 왔어요.”

강아지 수녀가 잔뜩 붉어진 얼굴로 입술을 질끈 깨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가올 고통에 각오한듯한 모습에 괜히 가학심이 차올랐다.

‘…키아나가 오기로 했었는데, 아마 오늘은 바쁠 테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의 벨트를 풀었다.

“치마 더 올리고 엉덩이 더 들어야죠?”

“…네엣.”

…히읏.

‘혜진한테 배운 게 여러모로 쓸모가 많네.’

해를 보지 않은 것처럼 뽀얀 아델라의 엉덩이를 보면서 나는 벨트를 고쳐잡았다.

“오늘 순교는 어제보다 더욱 힘들 거에요. 괜찮죠?”

“할… 할 수 있습니다…!”

잔뜩 기합이 찬 목소리로 대답한 아델라가 까치발을 하여 엉덩이를 삐쭉 들었다.

그에 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벨트를 거칠게 휘둘렀다.

짜악!

“태양신님 부디 저희를 굽어 살피사 앞날에 축복과… 하으으읏! 힘을 빌려주소서….”

기도문을 외우는 아델라가 물을 찔끔 뿌렸다.

역시 순교는 생각보다 재밌고 자극적이었다.

‘야! 네 성녀가 너 찾는다. 푸헬헬헬! 사도야! 감자도 넣어봐 몇 개 들어가는지 태양신이 궁금하데! 꺄하하하!’

***

“…진입합니다.”

키아나의 차가운 목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거의 삼분지 일만 남은 병력이었지만, 여기까지 도착했으니 본래의 의무는 다한 것이다. 그들의 얼굴에 새겨진 공포는 지워지지 않을 듯했다.

“천오 잘 챙겨.”

“알겠습네다! 천오 동무는 제 무기와도 다름없는 것! 무기는 제 부인이니! 부인처럼 챙기겠습니다!”

천오를 품에 안으며 과장되게 대답하는 이지수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밖의 좆밥들은 다 처리했기 때문에 마왕성까지 가는 길에 더는 걸림돌이 없었다.

‘…근데 왜 이렇게 안이 어둡지?’

마왕성의 큼지막한 썩은 나무문이 열렸는데, 안이 얼마나 어두운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라이트 킵니다.”

““라이트 켜!””

병사들이 키아나의 말을 복명복창하며 조명을 켰고 이내 어두운 마왕성의 내부가 훤히 보였다.

마왕성은 언제 지어진 지 가늠도 안 될 정도로 낡아서 무너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용했다. 희미하게 마나가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마법으로 유지되는 듯했다.

제일 앞에 있던 키아나가 거침없이 마왕성 안으로 걸음을 옮겼고, 바로 뒤에 있던 나도 따라 들어갔다.

‘…뭐지? 이 익숙한 기시감?’

마왕성 내부에 들어가자마자 어디선가 느껴본 기시감이 느껴지며 눈앞이 흐려졌다.

‘이 좆같은 악마 개새끼가…!’

악마가 모든 진실을 실토했다고 했지만, 함정은 말하지 않은 듯했다. 믿었던 악마에게 배신당했다는 충격에 손이 떨렸다.

“애미 터진 하암저엉이다아….”

기이한 기시감을 참으며 뒤쪽에 경고하려고 할 때, 돌연 주변의 모습이 바뀌었다.

그제야 나는 그 기시감이 이전에 아카데미에서 포탈을 탈 때 느꼈던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을 감았다가 뜨니, 나는 어느 큼지막한 홀의 중앙에 서 있었다.

다만, 뒤쪽에서 끔찍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소름 끼칠 정도로 깊고 어두운 존재감에 내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마왕 바로 앞으로 소환된 듯한 존재감에 절망이 나를 가득 채웠다.

‘…키아나! 비키?! 안드레아! 시발! 왜 아무도 없어!’

나는 다급히 다른 사람을 찾았지만, 여기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나와 저 괴물밖에 없었다.

“…애미 시발. 좆같은 세상.”

어김없이 문제가 발생했다는 생각에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검 손잡이를 꽉 잡았다. 우습게도 욕지거리를 하니 긴장이 조금 가라앉았다.

­ …진정해라 소년! 흥분해서 싸운다고 이길 상대가 아니다!!

나도 알아 시발.

진정해도 저 거대한 존재감을 내뿜는 녀석을 내가 혼자 어떻게….

검 손잡이의 차가운 촉감에 조금이나마 정신이 돌아왔고, 그에 황급히 검을 뽑아 마치 물 먹은 것처럼 무거운 몸을 억지로 움직여 뒤돌았다.

다만, 뒤의 모습은 내 예상과 달랐다.

“쿠우울…쿠우울….”

홀의 삼분지 일을 채울 것처럼 덩치가 큰 뚱보 하나가 넓은 침대에 퍼져서 자고 있었다. 녀석이 숨을 쉴 때마다 그 큰 덩치가 커지며 끔찍한 벌레들이 튀어나왔다가 다시 들어갔다.

분명히 지금도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공포에 손이 덜덜 떨릴 만큼, 거대하고 어두운 존재감을 내뿜었지만, 너무 무방비한 상태였다.

“…뭐야? 이 시발 돼지 새끼는?”

나는 고민하지 않고 덜덜 떨리는 손을 빠르게 움직여 녀석의 목을 베었다.

혹시나 함정이 또 있을 수도 있었지만, 지금 녀석을 죽이지 않으면 이기지 못할 것만 같은 예감에 망설이지 않았다.

녀석의 큼지막한 목을 단번에 베기 위해 모든 신성력과 기운을 빠르게 끌어올려 선명한 검강을 두르고 휘두르니, 저항이 있긴 했지만, 단번에 베어낼 수 있었다.

“…꾸이!”

목이 베인 녀석이 괴상한 숨 빠지는 소리를 내며 사그라들었다. 녀석의 큼지막한 살덩이에서 기이한 벌레들과 작은 악마들이 튀어나와 나는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그 작은 악마들과 벌레들에게서 느껴지는 존재감도 범상치 않았다.

‘와…! 사도야!! 포인트 대박이야!! 이…이게 다 얼마야!! 최고다! 최고! 사도야 최고야!! 야!! 그 요트 얼마라고?!“

녀석의 존재감이 사라지자, 나는 그제야 숨을 편히 쉴 수 있었다.

…지금 나 사천왕 잡은 건가?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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