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212화 (212/233)

〈 212화 〉 갈라진 파티 (1).

* * *

‘…공간 이동.’

키아나는 마왕성에 발을 들이자마자 느껴지는 기시감에 황급히 에이든에게 손을 뻗었다.

‘사제…!’

키아나의 손은 닿지 못했고 특유의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에이든이 사라졌다.

‘아니… 내가 이동한 것인가?’

습관적으로 검 손잡이를 잡은 키아나는 주변을 빠르게 확인했다.

어느새 처음 보는 홀로 이동해 있었다. 주변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잔뜩 널브러져 있었다.

‘수갑…? 채찍…? 이런 것들이 왜?’

“으음… 포탈인가.”

“이 악마 놈들!!”

“잠깐! 나야 나! 자네 왜 그러는가!”

“아… 기습인 줄 알았네. 자네가 워낙 험악하게 생겼어야지.”

“그러는 자네의 얼굴도 만만치 않네. 자네의 부인이 밤에 자네 얼굴 보고 몽둥이를 휘둘렀다고 하지 않았나!”

키아나의 뒤로 속속히 연합의 병사들이 나타났다.

‘우리를 나눌 속셈인가 보군.’

잠시 시간이 지나자 꽤 많은 인원이 뒤에 나타났는데, 전부 키아나가 얼굴을 모르는 이들이었다.

‘대부분… 상급 용병들인가.’

문득, 키아나는 소환된 인물 중에 여자는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제국 제일검님.”

“다행이군. 제국 제일검님이 계시니 우리는 무사할 거야!”

키아나를 발견한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키아나 뒤로 움직였다.

“…다들 긴장하세요.”

때마침 느껴지는 거대한 기운에 키아나는 얼굴을 굳히며 검을 뽑았다.

그게 신호가 된 것처럼 수십은 되는 사람들이 동시에 각자의 무기를 뽑았다. 그들은 베테랑 용병들답게 금세 장난기를 버리고 주변을 경계했다.

“꺄하하하하하하!! 꺄하하하하!! 건방진 인간 놈들이 왔구나!! 재밌군! 재밌어!!”

마치 준비라도 한 듯, 천장의 천막에서 길고 늘씬한 여인 하나가 천천히 내려왔다. 다른 악마들과 다르게 여인의 외형은 흉측하지 않고 대단히 아름다웠다.

가리지 않은 여인의 창백한 가슴은 봉긋 튀어나와 있었고, 꼭지에서는 붉은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사람의 뼈처럼 튀어나온 뿔들과 등 뒤에 달린 날개에서 떨어지는 피가 여성이 악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강하다.’

키아나는 여인에게서 느껴지는 강대한 기운에 기운을 돌리며 검을 고쳐잡았다.

“어머… 이렇게 아름다운 인간이 있네?”

키아나를 본 여인이 마치 신기한 장난감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눈을 반짝였다.

“감사합니다. 사천왕입니까?”

여인의 칭찬에 습관적으로 감사를 표한 키아나가 되물었다.

“푸하핫… 사천왕이라니… 일곱 마리인데도 아직도 사천왕이란다! 요즘 애들은 어찌나 바보­ 같은지­ 그렇지 않니?”

마치 노래하는 듯한 여인의 간드러진 목소리에 키아나의 정신이 살짝 혼미해졌다.

‘아름다운 외형에 사천왕의 원년 멤버… 사천왕의 첫 번째라는 음욕의 악마 바엘인가.’

여인의 정체를 파악한 키아나는 아까 얻은 정보를 머릿속으로 빠르게 복기했다.

바엘은 사천왕의 첫 번째라는 직위에 맞게 무력도 제일 강했지만, 상대를 발정시키는 특수한 권능이 더 까다롭다고 들었다.

‘…번거로워지겠어. 사제한테 빨리 가야 하는데.’

홀린 듯한 눈빛으로 여인을 쳐다보는 주변 사내들을 보면서 키아나는 속으로 작게 혀를 찼다.

“자아… 그 작은 꼬맹이들처럼 아름다운 아이야. 그 완벽한 얼굴에서 흥분에 못 이겨 허덕이는­ 절정하는­ 작품을 보여줄래?”

불길한 미소를 얼굴에 담은 여인이 등 뒤에 달린 피투성이 날개를 활짝 폈다. 날개에서 뿌려진 피가 사방으로 튀어 바닥을 붉게 칠했다.

“…다들 정신 단단히 잡으세요.”

키아나는 여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불길한 기운에 황급히 소리쳤지만, 이미 늦은 듯했다.

후우­후우­

뒤에서 들리는 사내들의 들뜬 숨소리에 키아나는 상황이 귀찮아진 것을 직감했다.

“자자… 아이들아… 안에 있는 욕망을 꺼내보렴. 마치 한 폭의 작품처럼 아름다운 저 아이를 어떻게 하고 싶니?”

여인이 녹을 것처럼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조용히 말했다.

키아나는 자신에게 들어오려는 불길하고 더러운 기운을 신념을 일으켜 떨쳐냈다.

“…개처럼 따먹고 싶습니다.”

“나…나도 박고 싶어! 왜 그 좆같이 생긴 놈만 저런 아름다운 여인들이랑 뒹구는 거냐고!”

“영웅이면 다냐! 왜 혼자 모든 미인을 죄다 가지는 거냐고! 심지어 얼굴도 별로인 놈이!”

‘…사제는 잘생겼는데?’

뒤에서 들리는 욕망이 그득한 목소리에 키아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꺄하하하! 애들이 너를 보면서 속으로 애간장을 많이 태운 듯하구나! 아이야! 어서 너의 속에 있는 욕망에 몸을 맡기려구나! 뒤에 너를 만족시켜줄 사내들이 저렇게 많잖니?”

“죄송하지만, 그런 취미는 없습니다. 여러분! 정신 차리십시오. 마왕을 잡으러 온 사람들이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면 어떻게 합니까!!”

키아나는 자신을 충동질하려는 듯한 여인의 말을 단호하게 거절하고 소리쳤다.

“어…어째서 너는 아무렇지 않은 것이냐? 음부가 뜨겁고 남성의 성기가 마구 쑤셔주길 원하지 않는 것이냐!! 분명히 내 권능이….”

자신의 권능을 가볍게 떨쳐낸 키아나가 의문이었는지, 여인이 경악했다. 조금은 상투적인듯한 여인의 반응에 키아나는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제게 남자는 하나입니다.”

굳게 잡은 키아나의 검에서 무형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무슨… 그런 소설에도 안 나올 법한 느끼한 말을… 아이야! 너는 부끄럽지도 않니?”

여인이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며 몸을 배배 꼬았다. 여인의 반응에 키아나의 얼굴이 뜨거워졌다.

“뭐… 아이도 같이 즐기면 좋겠다만, 강제로 범해져서 모멸감에 부서지는 얼굴을 보는 것도 좋지! 아이들아! 너희의 본능을 따르렴!”

여인이 날갯짓하자 전의 불길하고 농밀한 기운이 다시 한번 홀을 가득 채웠고, 그 짙은 농도에 신념으로 정신을 보호하던 키아나도 작게 휘청였다.

“나…나도 박을 거야! 제국 제일 암캐한테 박을 거야!!”

“제국 제일 암캐라며… 한 번만 제발 한 번만 하게 해주세요!”

뒤에 있던 수십의 사내들이 이지를 잃은 것처럼 키아나를 보며 끔찍한 욕망을 드러냈다.

‘…제국 제일 암캐라니!!’

순간, 사내들의 입에서 나온 ‘제국 제일 암캐’라는 단어에 키아나의 얼굴에 힘줄이 섰지만, 애써 가라앉혔다.

‘저들은 그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 것뿐이다. 사제는 괜찮을까?’

다가오는 남성들을 보면서 키아나는 검을 고쳐 잡았다.

“…미리 죄송합니다. 바쁜 상황이라 손속에 사정을 두기 힘들 것 같습니다”

끔찍한 욕망을 여실히 드러내며 접근하는 수많은 사내에게 키아나는 고개를 작게 숙였다.

“잘린 부위는 되도록 알아서 챙겨두시면 후에 안드레아가 치료해줄 겁니다. 그게 안 된다면… 케이트가 보상을 따로 해줄 겁니다.”

숨을 작게 내쉰 키아나가 땅을 박차고 사라졌다.

“…아무튼, 죄송합니다.”

그 깃털처럼 가벼운 발걸음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다시 나타난 키아나는 사내들의 뒤편에 서 있다.

키아나가 나타나고 잠시 뒤 모든 사내가 천천히 무너졌다.

“끄아아아악!! 내 발!!!”

“크아아악!”

사지가 잘린 고통이 악마의 유혹을 깼는지, 정신을 차린 사내들이 피 웅덩이에서 몸을 뒤틀며 비명을 질렀다.

“…강하구나­ 아이야. 하지만 네가 이것도 버틸 수 있을 것 같니? 욕망을 지닌 이라면 절대 뿌리칠 수 없을 것이야. 꺄하하하!”

여인이 자신감에 넘치는 웃음을 지으며 눈을 크게 떴다. 그러자 여인의 보석처럼 검은 눈동자가 순식간에 피처럼 붉은색으로 변했고, 무형의 기운이 키아나에게 뿜어졌다.

여인의 권능은 자신에게만 집중되어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밀도를 보였지만, 키아나는 그저 검을 고쳐잡았다.

이내 피하지 않은 여인의 권능이 키아나를 덮쳤다.

“보지가 뜨겁지? 가렵지? 사내가 마구 쑤셔줬으면 좋겠지? 뒤에 있는 저 모든 자지를 네가 다 쓰고 싶지?! 어서 달려가서 저 사지가 잘린 불쌍한 사내들의 욕망을… 아니 너!! 어찌 멀쩡한 것이냐!!”

힘을 쏟은 자신의 권능이 통하지 않은 것에 큰 충격을 받았는지, 여인은 악을 쓰며 키아나를 향해 몇 번이나 기운을 뿜어냈다.

“…죄송하지만, 그런 것은 통하지 않습니다.”

그에 무형의 기운이 계속해서 쏟아졌지만, 키아나는 피하지 않고 검을 잡은 손에 힘을 더하며 걸음을 옮겼다.

이내 발을 세 번 차면 닿을 거리에 키아나가 도착하자, 화를 내던 여인이 차분해졌다.

“…아무래도 성 불감증인 아이인가 보구나! 어쩔 수 없지! 야만적이지만, 내 직접 너에게 음욕을 알려주겠다!!”

혀를 차며 포기한 여인이 장난기를 지우고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여인에게서 풍기는 격이 아득할 정도로 높았지만.

키아나는 그저 다시 한 걸음을 내디뎠다.

키아나의 신념도 여인의 권능을 모두 막지 못했는지, 여인의 말처럼 하복부가 뜨겁고 간지러웠지만, 키아나는 사내의 손길을 원하지 않았다.

‘어제 바빠서 못 갔으니까… 오늘 내 차례겠지?’

키아나는 그저 한 사내를 원할 뿐이었다.

“오거라!! 성 불감증 아이여!! 내가 직접 상대해줄 터이니! 영광인 줄 알거라!! 꺄하하하하!!”

여인이 손에서 일반 장검만 한 길이의 긴 손톱을 뽑아내며 광소를 터뜨렸다. 그 길쭉한 손톱에서 서늘한 날카로움이 느껴졌다.

사천왕 중의 제일이라는 직위에 걸맞게 압도적인 격이었지만, 정작 그와 홀로 대적하는 키아나는 두렵지 않았다,

소중히 다룬 듯, 잔뜩 윤기가 흐르는 키아나의 레이피어에 담긴 신념은.

‘정의’ 였기 때문에.

***

“이…이게 무슨 일이야.”

“마왕성 내부인가?”

“대장…대장은 어디 있나! 제국 제일검 님은 어디에 있어!!”

“다들 조용!! 집중해라!!”

정신없는 기사들 사이에서 한 사내가 크게 소리쳤다.

사내의 목소리에는 묘한 힘이 담겨 있어서, 소란스러움은 금세 잠들었고 모두가 사내에 집중했다.

‘…휴리 보르네라고 했나? 에이든 님은?!’

안드레아는 소리치는 사내를 흘겨보고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몇 번이나 뭉쳐있는 사람들을 살폈지만, 바람과 다르게 에이든은 없었다.

“스칼렛 언니! 괜찮아요?!”

“괜찮아… 머리 아프니까 큰소리치지 말고 아가사. 너희들도 괜찮니?”

“수녀! 헤이즐리! 괜찮습니다!”

“…마샤. 괜찮.”

“저…저도 괜찮아요!”

“태양신의 성녀?”

“…네넷! 맞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태양신의 성녀가 왜 여기에…?”

소란스러움에 고개를 돌리니 수녀 단이 한 번에 이동한 듯했다. 그 외의 인물들은 제국 출신의 기사들이었다.

그중 이름을 알릴 정도의 무력을 지닌 이는 휴리 보르네밖에 없었다.

‘…이러면 다른 쪽이 다치면 손을 쓸 수 없는데. 에이든 님이 다치신다면….’

에이든 걱정에 초조해진 안드레아는 손톱 끝부분을 씹으며 방법을 모색했다.

“오랜만의 손님이군.”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모든 이의 귀에 중후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높은 격이 느껴졌고,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낀 사람들이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긴 홀의 끝부분, 사람의 머리를 모아 만든 화려하고 끔찍한 샹들리에 아래 외눈 안경을 쓴 중년의 미남자가 삐딱하게 앉아 있었다.

‘…빌어먹을 정도로 강하군.’

사내의 격에서 느껴진 압도적인 강함에 휴리 보르네는 욕지거리를 뱉었다.

‘여기서 그나마 제일 강한 게 나다. 그런 우리가 저 괴물을 상대할 수 있을까?’

휴리 보르네는 머릿속으로 계산을 돌리면서 등에 멘 양손 도끼를 꺼냈다.

성녀가 둘이나 있으니,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지만, 문제는 중년 사내의 기세에 압도당한 기사들이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 담겨 있었고 검 끝은 아래로 처져 있었다.

일생을 전쟁터에서 살아온 휴리 보르네에게는 익숙한 모습이었다. 자신의 범주를 벗어난 적을 만났을 때 공포에 젖어 대항할 기세조차 잃어버리는….

휴리 보르네도 그런 적이 있었기에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의기를 잃는 것은 자살과 다름없었다.

‘…이래서 나랏밥 먹는 놈들은 안 된다니까.’

휴리 보르네는 혀를 차면서, 그들의 정신을 깨울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이럴 때는 욕 한 바가지 해주면 대부분 정신을 차리니까.

“좆달린 것들이… 마왕을 잡으러 왔으면서 저런 악마 하나에 쫀 거예요? 그냥 다들 좆떼고 기사 작위도 떼세요. 형편없기는….”

‘너…너무 강하게 말했는데? 분명 나는 정도를 지키려고….’

상스럽고 거침없는 욕에 순간 놀란 휴리 보르네는 냉큼 입을 닫았다.

“나랏돈을 받았으면 시간 없으니까 빨리 저 느끼하게 생긴 악마한테 처박으라고. 팔이 잘리든 다리가 잘리든 뒤지지만 않으면 살려줄 테니까. 빨리!!”

입을 닫았는데도 욕이 들리자 갸웃거리던 휴리 보르네는 이내 자신이 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누…누가 제국의 기사들을 상대로 이런 거친 욕을….’

그에 화들짝 놀란 휴리 보르네는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초조함에 못 이겨 자신의 손톱을 물어뜯으며 악마를 손가락질하는 대지신의 성녀 안드레아가 보였다.

“뭐하세요?! 빨리 가서 싸우라고!”

짜증이 잔뜩 섞인 안드레아의 호통에 휴리 보르네는 다급하게 악마를 향해 뛸 수밖에 없었다.

“사지가 잘려도 괜찮으니까! 제대로 들고 오기만 해요! 괜히 남의 것 들고 왔다가 번거롭게 하지 말고! 뭐해요?! 가서 싸우라고요!”

뒤에서 들리는 앙칼진 목소리에 휴리 보르네는 안드레아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걸 느꼈다.

늘 단아한 미소를 지으며 병사들을 치료해 병사들 인기 순위에서 키아나와 1~2위를 다투던 안드레아였는데….

‘…저게 성녀?’

휴리 보르네는 충격에 흩어지는 집중을 애써 모아 아직 여유롭게 앉아 있는 악마를 향해 양손 도끼를 휘둘렀다.

그런 휴리 보르네의 옆에는 안드레아의 호통에 찔끔 놀라 뛴 기사들도 같이 검을 찔러넣고 있었다.

“격의 차이도 모르는 우매한 인간들.”

따분한 표정의 악마는 다가온 적들을 향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고.

“끄아아아악!!!”

그러자 마치 무형의 칼날이 수십 개 쏘아진 것처럼 사내의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이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그나마 모두 한 가닥 하는 인물들이라, 급소가 베이는 것은 막을 수 있었지만, 완벽히 피해낸 건 휴리 보르네밖에 없었다.

무형의 기운을 피해 낸 휴리 보르네는 온 힘을 담은 도끼를 휘둘렀지만, 사내는 가볍게 손가락을 들어서 막았다.

‘…이건 무리군.’

마치 벌레를 보는 것처럼 얼굴에 잔뜩 경멸을 담은 악마를 보며 휴리 보르네는 속으로 쓰게 웃었다.

사내의 손짓 한 번에 달려들던 기사들 대부분이 사지를 잃고 쓰러졌고, 그중 제일 강한 자신의 공격도 사내의 손가락에 막혔다.

‘염병할… 어쩐지 느낌이 안 좋더니만.’

사내가 휴리 보르네를 향해 손가락을 움직일 때, 돌연 따뜻하고 찬란한 기운이 홀을 가득 채웠다.

“…잘린 부분 붙이고 있어요! 그쪽! 그만 울고 붙이라고요!”

“…아가사 그래도 다친 분들이잖니.”

“답답하잖아요! 그거 하나 잘렸다고 어휴… 에이든은 팔 잘린 거로는 눈도 깜짝 안 하는데. 야! 너희 기절한 사람들 붙여!”

“수녀! 헤이즐리!”

“…마사.”

“넵! 성녀! 아델라! 이잇! 붙어랏!”

“이…이게 무슨… 어찌 이런 힘이?”

휴리 보르네에게 손가락을 내밀던 악마가 인상을 찡그리며 손을 거뒀다.

그에 잠시 여유가 생긴 휴리 보르네는 상황을 파악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악에 받쳐서 소리 지르던 성녀 안드레아가 예의 그 청순하고 고고한 모습으로 돌아가 홀의 중앙에서 무릎 꿇고 눈 부신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주변의 수녀들이 바삐 움직이며 사지가 떨어진 기사들의 팔이나 다리 같은 것을 맞추고 찬란한 빛을 쐬자, 거짓말처럼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자자! 치료되신 분들은 다시 저 느끼한 악마한테 가시고! 목만 조심하세요. 목만! 아저씨! 일어나라고요! 겁먹지 말라니까! 신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어요! 일어나! 가라고! 진짜 함께한다니까!”

아가사라고 불린 소녀의 호통에 정신을 차린 휴리 보르네는 도끼를 고쳐 잡았다.

자신에게 힘을 주는 찬란한 빛이 악마에게는 고통스러운 듯 잔뜩 인상을 찡그린 악마를 보며 휴리 보르네는 자그마한 승기를 느꼈다.

우습게도 정말 신이 자신들과 함께하는 듯했다.

‘이 일이 끝나면 성당이라도 가봐야겠어. 기왕이면 저런 아름다운 수녀가 많은 곳으로 말이야.’

도끼를 잡은 휴리 보르네의 팔뚝에 핏줄이 굵게 섰다.

***

“…진짜 뒤졌나 봐.”

에이든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든 가죽을 발로 차며 중얼거렸다.

‘다들 좆밥들인거 아니야?’

어제 잡은 놈도 격은 아득히 높았지만, 피해 하나도 없이 잡았는데, 지금 저놈은 그보다 더 격이 높았지만, 오히려 더 쉬웠다.

‘…그래도 아까 느껴지던 격은 진짜였다.’

혹시나 해서 녀석의 머리를 발로 밟아 터뜨릴까 했지만, 알아서 쪼그라들어 사라졌다. 포인트도 적립되었다고 하니, 정말 해치운 게 맞는 듯했다.

이내 문이 없던 홀의 벽에 큼지막한 검은색 네모가 생겨났다. 그는 누가 봐도 다음 단계로 가는 문 같았다.

‘…존나 불안하게 생겼네.’

나는 꺼림칙함을 애써 접으며 검은 피가 묻은 검을 털었다. 돼지 녀석의 지방이 얼마나 꼈는지, 검에 기름기가 잔뜩 묻어 있었다.

­ 방금 굉장히 맛있는 피였어. 특급 피라고 볼 수 있겠군.

그렇겠지, 딱 봐도 존나 돼지던데.

검에 묻은 기름기를 다 닦고, 네모를 향해 걸으려 할 때, 허기짐이 느껴졌다.

‘생각보다 빨리 잡았으니까… 시간이 좀 있겠지?’

나는 대충 닦은 검을 검집에 넣고 주저앉아 뒷주머니에서 오늘 아침에 안드레아가 건네준 샌드위치를 꺼냈다.

[이런 환경에서 밥을 먹는다고…?]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말이야. 그리고 먼저 가봤자, 고생만 더 할 뿐이지. 사람이 부지런하면 오래 못 살아요.

안드레아가 싸준 샌드위치는 익숙한 맛이 났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역시 요리는 서아라니까.’

벌레가 기어 다니는 곳에 있었기 때문에, 체하지 않기 위해 샌드위치를 꼭꼭 씹어먹고 안드레아가 준 성수로 입가심을 했다.

남은 성수를 모조리 꺼내 검에 덕지덕지 바르고 내 몸에도 향수처럼 뿌렸다.

‘…미묘하게 안드레아 냄새가 나네.’

몸이 충분히 젖자, 나는 빈 성수 병을 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두려웠지만, 애써 참으며 네모로 걸어 들어갔다.

‘나는 대륙을 구할 영웅이니까.’

달콤하면서 씁쓸한 맛이 나는 영웅이라는 단어를 곱씹으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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