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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213화 (213/233)

〈 213화 〉 갈라진 파티 (2).

* * *

‘…함정인가?’

연합군의 천인장 한슨은 주변을 둘러보며 상황을 파악했다.

순식간에 거대한 홀로 이동해 있었는데, 주변은 경기장처럼 꾸며져 있었다.

덩치 큰 마물이 씹은 것처럼 사지가 뜯긴 인간과 마물의 시체가 주변에 가득 쌓여 있었고, 거기서 나온 진물에 구더기나 벌레들이 들끓고 있었다.

그런 끔찍한 모습과 악취에 한슨은 도망치고 싶었지만, 표정 관리하며 억지로 참았다. 자신은 일반 병사가 아니라 천인장이었으니까.

“우욱­ 이게 다 뭐야.”

“맙소사… 끔찍하군….”

“아아­ 신이시여.”

그런 한슨 뒤로 눈에 익은 병사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었다.

새로 생겨난 이들은 끔찍한 주변 모습에 구역질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뭘 멍하니 있어!! 병신들아! 빨리 방패 들고 줄 맞춰! 오와열!”

한슨의 속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명령했다.

강압적인 한슨의 명령이었지만, 명령을 듣는 병사들은 오히려 기뻐했다. 그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이끌어 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에 안도했다.

‘…월급을 개 같이 많이 준 이유가 있었군.’

전에는 그렇게 올라가고 싶었던 제국의 천인장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 굵은 목줄이었다.

“야이! 병신들아! 정신 안 차려?! 거기! 똑바로 서라! 경계 늦추지 말고! 뒤지고 싶어?!”

한슨이 다시 한번 강한 척 소리치자, 찔끔 놀란 병사들이 빠르게 줄을 다시 맞췄다. 군대에서는 줄이 생명이니까.

그때­.

거대한 무언가가 뒤편에서 일어났다.

황소일까, 호랑이일까. 아니면 독수리일까.

그 혼란스러운 괴물이 꾸드득­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체는 황소처럼 굳건했으며 몸통은 호랑이처럼 털이 늘여져 있었다. 그리고 등 뒤에는 독수리처럼 큼지막한 날개가 달려 있었는데, 전체적인 덩치가 얼마나 큰지 일어나니 홀의 천장에 닿았다.

그리고 그 얼굴은… 전형적인 악마였다.

머리에 큼지막한 뿔들을 달고 입에서는 불길을 내뿜고 보는 것만으로 구역질이 올라오는 역겨운 얼굴.

‘…끝났군.’

한슨은 악마에게서 느껴지는 강대한 기운에 쓰게 웃었다. 악마를 본 병사들이 전의를 상실하고 무기를 떨어뜨렸지만, 한슨은 호통치지 않았다.

무슨 짓을 해도 저 악마를 이기지 못할 것을 느꼈기 때문에. 한슨은 그저 천인장이라는 자존심 하나로 무거운 검을 쥐고 있을 뿐이었다.

“아아… 신이시여… 저희를….”

“시발! 젠장! 빌어먹을!”

“가슴 큰….”

잔뜩 공포에 절은 병사들은 욕조차 악마의 눈치를 보며 작게 했다. 그 모습은 마치 주인의 눈치를 보는 노예와 별반 다를 것 없었다.

‘…스스로 죽으면 영혼이라도 구원받지 않을까?’

한슨은 오랜 시간 자신과 함께했던 검을 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마침내 결심을 내린 한슨이 검을 자신의 배에 박으려고 할 때­.

“안돼! 시발! 나는 이대로 못 죽어!! 시발년에게 복수해야 한단 말이야!! 다른 아이의 자식을 가진 그년이 내 부모 재산 가지고 떵떵 거리며 사는 꼴 못 봐!!”

일반 병사 하나가 악을 지르며 앞으로 뛰어나왔다. 그는 서 있는 것조차 버거운지 연신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얼굴에 서린 각오만은 진심이었다.

“나…나도 안된다! 순이 가슴 만지기 전에는 못 죽어!! 천국 가서 고작 B컵 만진 게 최고라고 자랑할 수 없다!!”

그 병사 옆으로 하나가 더 튀어나와서 나란히 검을 들고 섰다. 병신 같은 이유였지만, 일반 병사인 그들은 맞서기를 택했다.

‘…이 어찌 추태인가.’

한슨은 압도적인 벽 앞에서 대항을 택한 일반 병사들을 보며 손에 든 검이 부끄러워졌다.

‘이럴 때를 위해서 그 많은 녹봉을 받았던 것인데….’

한슨은 두려움에 쪼그라들었던 자신감과 긍지를 다시금 피워올렸다. 이유가 이상하기는 했지만, 일반 병사들조차 포기하지 않았으니 그들을 관리하는 천인장이 검을 떨굴 수 없었다.

“검을 들어라!! 이 미련한 놈들아! 애초에 우리는 마왕을 상대하러 온 것 아닌가! 그저 영웅들 뒤에서 따라다닐 생각만 한 것이냐! 죽음 앞에서도 기꺼이 검을 들고 악마와 맞서면 그대들도 영웅이다! 검을 들어라!! 좌절하지 마라! 끝까지! 맞서 싸운다! 우리는 가족을… 대륙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 선 것이다!! 우리는 대륙의 태양을 다시 뜨게 만들 것이다!!”

한슨은 처음 검을 잡았던 날을 떠올리며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발을 억지로 움직여 병사들 앞으로 나섰다.

악마는 그저 아이들 재롱 보듯 제 자리에 서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은 멋있게 가는군,’

어린 시절 용사 전기를 보고 검의 길을 선택한 순간부터 꿈꾸던 순간과 흡사했다.

대륙을 위하여 악마와 싸우는.

‘비록… 새드 엔딩이지만.’

실제로 악마 앞에 서니 그 압박감에 숨도 쉬기 힘들었다. 두 다리는 덜덜 떨렸고 검을 든 손은 너무 무거워 핏줄이 선 상태였다.

‘…그 영웅은 정말 대단하군.’

이런 악마들 앞에 홀로 당당히 뛰어들던 인류의 영웅을 떠올리면서 한슨은 검을 고쳐 잡았다. 태생부터 영웅인 그 자와 자신은 너무 달랐다.

‘애초에 우리는 시간벌기용이었다. 대륙은 영웅들이 지킬 것이니.’

현실을 되새긴 한슨은 쓰게 웃으며, 자식을 생각했다. 부디 자식이 아비 없는 놈이 아니라 용사의 자식이라는 이야기를 듣길 원하며 기운을 끌어올렸다. 악마의 앞에서 죽음을 결심한 한슨은 영웅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그가… 어떻게 말했더라…?’

“…대륙을 위하여!”

마침내 한슨의 검이 밝게 빛났다.

“…젠장. 어차피 뒤질 거 에라 모르겠다!! 대륙을 위하여!!”

“발버둥이라도 쳐야지! 그냥 뒤지면 부모님 볼 면목도 없다!”

“어쩐지 오늘 아침밥이 유독 맛있더라니! 젠장!”

그런 한슨을 보며 병사들이 떨어진 무기를 다시 줍고 앞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대륙을 위하여!””

이제는 입에 익은 그 구호를 외치며 수백의 병사가 한슨의 뒤에 섰다.

그들의 얼굴에는 목숨을 건 굳은 각오가 담겨 있었다. 대륙은 그들을 못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 있는 서로가….

“잠시 몸 좀 풀었더니, 이것들 뭐야? 걸리적거리지 말고 다 뒤로 꺼져.”

돌연 짜증 섞인 여자 목소리에 한슨은 검을 놓칠 뻔했다.

“내 말 안 들려? 꺼지라고 저거 내 꺼니까.”

병사들 사이로 붉은 머리의 여자가 짜증이 잔뜩 섞인 얼굴로 걸어 나왔다.

‘…붉은 야수 비키.’

여자의 말도 안 되는 큰 가슴과 피처럼 붉은 머리칼,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뿔을 보며 한슨은 그녀가 누군지 눈치챘다.

연합군내에서 그녀에게 작업 걸었다가 귀가 뜯긴 인물만 해도 이미 다섯이 넘어 공문까지 내려온 적 있었다.

한슨은 양손으로 귀를 가리며 냉큼 옆으로 비켜섰다.

당당한 걸음으로 악마의 앞에 나선 비키가 천천히 목을 돌렸다.

“외형처럼 몸도 단단했으면 좋겠네.”

중얼거리던 비키가 순간 자리에서 사라졌고.

콰아아앙!!

굉음이 나며 악마가 벽으로 날아갔다. 그 큰 악마가 벽에 부딪히자 순간 먼지가 크게 일면서 홀이 뒤흔들렸다.

“…크아아아아!!”

“나랑 비슷한 느낌이네? 재밌겠어.”

악마가 입에서 불길을 내뿜으며 거대한 앞발을 휘둘렀고 비키는 그에 지지 않고 마주 주먹을 뻗었다.

둘의 덩치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차이가 컸지만, 비키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쾅!

굉음과 함께 악마는 뒤로 넘어졌고 비키는 땅을 뒹굴었다. 금세 다시 자리에서 사라진 비키가 악마의 얼굴 앞에 나타났고.

콰아아앙!

쾅!

“캬하하하하! 재밌다! 재밌어!! 단단해!!”

“크아아아!!”

굉음이 연달아 터지며 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악마가 뿜어내는 불길이 홀의 중앙을 가로지르며 시체나 진액들을 태웠고 비키가 뒹구는 바닥은 크게 파였다.

피해를 입을 때마다 악마는 더욱 크게 분노하며 기세가 강해졌지만, 그와 상대하는 비키 또한 점점 힘이 강해지는 듯했다.

인외 격인 둘의 원초적인 싸움에 병사들이 끼어들 틈은 없었다.

벽이 부서지고 땅이 파였으며 주변의 시체들이 터져나갔다.

“다…다들 벽에 붙어!! 벽 붙잡고 기도해!!”

한슨은 천인장의 의무감에 소리치고 냉큼 제일 단단하고 악마에게서 먼 벽에 달라붙었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건, 다시 자식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밖에 없었다.

“시발년 꼭 파멸시킬 거야….”

“…순이 가슴.”

바로 옆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한슨은 괜히 불안해졌다.

***

사천왕의 일곱 번째를 담당하고 있는 아몬은 앞에 나타나는 인간들을 보며 군침을 흘렸다.

비록 종족 할당제로 사천왕의 마지막 자리를 얻어냈지만, 그에게는 다른 사천왕들보다 뛰어난 지략이 있었다.

심지어 종족 할당제라는 제도조차 그가 만든 것이니, 멍청한 악마들 사이에서 그가 얼마나 똑똑한지 굳이 설명할 필요 없었다.

식탐을 담당하는 아몬은 질을 원하는 다른 멍청한 악마들과는 다르게 양을 원했다.

그에 아몬이 요구한 것처럼 넓은 홀은 수천은 되는 일반 병사들로 가득 찼다.

갑작스러운 이동에 어리둥절한 인간들을 보며 아몬은 속으로 크게 웃었다.

물론, 종족 할당제로 사천왕의 끝자리를 차지한 아몬에게는 수천의 병사를 상대할 무력이 없지만, 그보다 뛰어난 두뇌가 있었다.

“크헤헤헤헤헤헤헤헬!!”

아몬은 인간이 두려움을 느끼도록 최대한 기운을 끌어올리면서 광소했다.

사천왕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무력이었지만, 부풀린 격에 인간들은 절망할 것이다.

“끝…끝이야… 저런 괴물을 우리한테 상대하라니….”

“도망가! 밀지 말라고! 움직이라고!”

아몬은 부풀린 기세에 잔뜩 겁이 먹어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는 인간들을 보며 더욱 크게 웃었다.

수천의 수였지만, 성에 특별히 뇌물까지 먹여 부탁해놓았으니 그들 중 강자는 몇 명 없을 것이다.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인간들을 씹어 삼키면 기세가 넘어올 것이고 그러면 강자도 제대로 힘을 발휘 못 할 게 분명했다.

그를 위해서 아몬은 뒤쪽에 한 명 정도 지나갈 만한 문을 만들어뒀다.

만약 도망칠 곳이 없다면 인간들은 악에 받쳐서 저항할 게 분명했으므로, 간신히 한 명 정도 지나갈 만한 문을 만들어 그들에게 뒤를 만들어줬다.

수천의 인원이 저 문을 통과하기에는 한세월이었고, 저곳을 통과한다고 해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또 다른 자신의 방이었으니까.

아몬은 자신의 완벽한 계획에 만족하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식탐의 권능을 받아 하도 먹어서 살이 뒤룩뒤룩 쪘지만, 나쁘지 않았다.

권능 덕분에 입에 넣는 것은 모두 자신의 힘이 되므로.

‘이 인원을 다 먹게 된다면… 사천왕에 어울리는 힘을 갖게 될 터이다.’

두려움에 뒷걸음질 치는 인간의 수를 세며 아몬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몬은 무거운 몸을 움직여 옆에 준비해둔 큼지막한 도끼를 집었다. 본디 사천왕은 무기를 안 쓰지만, 부족한 아몬은 써야 했다.

“진정해라! 상대는 고작 악마 하나야!!”

“문…문이다! 빨리 나가!!”

“도망가라고! 저걸 우리가 어떻게 이겨!”

중간에 소리친 인간에 아몬은 찔끔 놀랐지만, 그 목소리는 금세 문을 발견한 다른 인간에게 묻혔다.

“크하하하하하하하!!”

아몬은 자신의 흉측한 뱃살을 뒤흔들며 도끼를 붕붕 휘둘렀다. 두 번 휘둘렀음에도 힘이 빠졌지만, 밖으로 티 내지 않았다.

문을 발견한 인간들끼리 서로 달려가면서 부딪치고 넘어지며 알아서 힘을 빼고 있을 때­.

탕!!

돌연 총소리가 울려 모두가 동작을 멈췄다.

“이 멍청한 간나 새끼들!! 어딜 도망가는 겁네까!! 마왕을 잡으러 왔다는 놈들이 악마 보고 도망가는 꼬라지 참 보기 좋습네다! 한 발자국만 움직여 보십쇼! 내가 바로 머리에 구멍을 시원하게 뚫어줄 테니!”

구릿빛의 여자가 돌연 총구를 사람들에게 향하며 크게 소리쳤다.

‘뭐…뭐야 저 인간은!’

“크하하하! 아무도 도망 못 간다! 모두가 내 뱃속으로 들어가 씹히고! 녹고! 문드러질 것이다!!”

그에 위기감을 느낀 아몬은 서둘러 도끼를 휘두르며 입가에서 침을 질질 흘렸다. 시각적인 효과만큼 공포를….

“천오 동무!! 브레스!!”

“웨에에엑­.”

‘저…저게 무슨!!’

구릿빛의 여자가 돌연 옆에 있는 작은 꼬마를 들더니 문 쪽을 향해 내밀었다.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꼬마의 입에서 나온 괴상한 마나 집합체가 아몬이 마련한 문 위를 부수더니 문을 막아버렸다.

“자! 이제 도망갈 곳도 없습네다! 자고로 혁명이란 피가 동반되는 것입네다!! 다들 무기를 들고 혁명합세다! 혁명!! 으아아아!!”

구릿빛 여자가 크게 함성을 외치더니 꼬마를 들고 아몬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멍청한 인간들… 악마 앞에서 도망가려고 하다니! 긍지란 코빼기도 안 보이는구나!!”

그러자 제일 먼저 문 쪽으로 뛰었던 엘프가 얼굴을 붉히면서 커다란 망치를 꺼내고 아몬 쪽으로 뛰었다.

“두…두렵지도 않은 것이냐!! 감히 이 몸에 대적하다니!! 정말 우매하고 멍청하구나!!”

그에 당황한 아몬은 황급히 남은 기운을 끌어올리며 억지로 몸집을 크게 부풀렸다.

“저 이지수! 등은 에이든 동무에게 뒤치기할 때밖에 보이지 않습네다!! 천오 동무 브레스!!!”

“웨에에엑­.”

아몬은 자신에게 쏘아지는 마나 집합체의 높은 밀도에 당황하며 도끼들 들었다.

‘…젠장. 무섭게만 만들어달라 했더니 정말 내구도를 신경 안 썼을 줄이야.’

흉측한 외관만 주문했던 아몬의 도끼는 마나 집합체에 손쉽게 녹았고.

“혁명의 불길입네다!!”

탕!!

이지수의 은빛 총구가 불을 뿜었다.

“미친! 어차피 도망갈 곳은 없다!! 다들 무기 들어!!”

“여자들이 싸우는데 사내가 돼서 도망칠 수 없지…!”

“으아아아!! 대륙을 혁명시키자!!”

“…대륙을 지키자 아니야?”

그게 신호탄이 된 듯, 도망치던 인간들이 무기를 다시 쥐고 아몬 쪽으로 뛰었다.

구릿빛 여자가 쏜 총알이 턱에 박혔고, 따끔거리는 통증에 아몬은 눈물이 핑­ 돌았다.

***

“끌끌… 공간 이동이구만.”

루크는 옆에서 중얼거리는 마법사를 흘끗 보고는 재빨리 주변을 파악했다.

뒤에 속속 다른 인간들이 등장하고 있었지만, 아는 얼굴은 옆의 늙은이 마법사밖에 없었다.

‘그렇다는 건 네임드 급은 이 노인밖에 없다는 건가.’

루크는 무리에 에이든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그 질긴 녀석과 떨어진 것이다.

“호호호! 인간들이 왔구나!”

때맞춰서 아름다운 여인의 형색을 한 악마가 나타났고.

루크는 재빨리 마나와 기운의 중앙에 있는 도력을 돌렸다.

에이든에게서 벗어나겠다는 일념 아래에 필사적으로 수련한 도력은 이제 제법 경지에 오른 상태였다.

“다들 진열 정비하고 버티시게! 내 마법을 준비할 터이니!”

루크의 빠른 반응을 본 마법사도 주문을 캐스팅했고, 그 앞을 기사들이 굳은 얼굴로 막았다.

“건방진 것들이 통성명도 하지 않고 공격부터 준비해? 어디 한번 고통에 몸부림쳐 보아라!!”

조금 전까지는 아름다운 여인의 행색이었던 악마의 주둥이가 길게 찢어지며 맹수처럼 날카로운 이빨이 튀어나왔다.

누런 이에서 뚝뚝 흐르는 침이 여인의 턱을 타고 땅으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 흉측한 모습을 곁눈질하던 루크는 고개를 작게 저었다.

‘역시 여자들이란… 겉과 속이 너무 다르군.’

도력을 움직인 루크의 손에 기이한 힘이 맺혔고.

루크의 뒷머리에 한 움큼의 머리카락이 빠지며 큼지막한 땜빵이 생겼다.

***

“끄응… 불안한데.”

한 발을 검은 네모에 올려둔 에이든은 턱을 긁으며 고민했다.

‘…방금 걔가 좆밥이었으니까, 그다음 단계도 쉽겠지?’

에이든은 불길한 느낌을 애써 접고 천천히 검은 네모 속으로 들어갔다.

‘…다른 이가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이미 샌드위치도 먹고 잠깐 휴식도 해서 더는 시간을 끌 것도 없었고 여기에서 할 것도 없었다.

[…나 때는 이런 게 없었는데 말이야. 마왕성도 많이 바뀌었군.]

불안한 느낌이 드는 목소리를 끝으로 익숙한 기시감이 에이든을 덮쳤다.

눈을 뜨니 처음 보지만, 어딘가 익숙한 홀로 이동해 있었다.

그 낯익은 느낌은 이내 섬뜩한 불길함으로 바뀌었고.

“어머! 이게 얼마만의 손님이야!”

듣는 것만으로 녹을 듯한 달콤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에 고개를 돌리니 빨간색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 보였다.

세상의 모든 빛을 꺼뜨릴 것처럼 검은 머리칼,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숱이 많은 속눈썹, 그리고 피처럼 붉은 입술까지.

여인의 미모는 1.0 키아나 점수를 받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키아나보다는 좀 더 농익은, 매혹적인 느낌을 주는 여인이었다.

그런 여인에게서 에이든은 아무런 위험도 격도 느낄 수 없었다.

이게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애미 시발.’

그렇게 인류의 영웅 에이든은 단독으로 마왕과 마주했다.

[…좆됐군 소년.]

‘와아­! 대박 포인트!! 심지어 혼자 다 먹을 수 있다니!! 우리 사도가 최고야! 으쌰라! 으쌰! 우리 무적의 사도는 마왕도 혼자 해치운다네~ 빠밤!!’

개 좆 됐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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