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5화 〉 대륙의 기둥.
* * *
“자자! 일렬로 줄을 맞춰서 선다! 실시!”
““실시!””
이해 못 할 에이든의 명령이었지만, 다들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일단 따랐다.
‘저 새끼가 또 무슨 짓을 하려고….’
루크는 그런 에이든의 모습에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일단 참았다.
“빨리빨리 움직여! 우리 달링 기다리는 거 안 보여?!”
에이든이 슬쩍 마왕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호통쳤다.
“어머 자기. 나는 괜찮아. 인간들이 멍청한 게 한두 번도 아니고….”
“그래도 옆에서 보고 있는 내가 마음이 아프잖아. 달링.”
도저히 용사와 마왕의 대화로 들리지 않는 닭살 돋는 내용에 루크는 헛구역질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도대체 저 새끼한테 뭐가 있길래….’
마왕이지만, 그 외모만큼은 대륙 제일미라고 불리는 키아나에 비견될 정도인데, 도대체 저런 마왕이 왜 에이든에게 푹 빠진 지 의문이었다.
‘심지어… 시간이 만 하루도 되지 않았거늘.’
“야!! 거기 빨리 안 움직여?!”
인상을 찡그리던 루크는 에이든의 호통에 황급히 움직였다.
저 녀석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선이라는 게 있을 터이니 루크는 일단 따르기로 했다.
“자자! 본인의 음역이 높은 편이다! 이쪽으로! 낮은 편은 반대로! 빨리빨리!”
“어머! 자기 뭐 하려는 거야?”
“조금만 기다려봐 달링. 거기! 빨리 움직이라고! 본인 음역 몰라?!”
도무지 이해 못 할 에이든의 말에 작은 소란이 발생했다.
“…음역? 노래 부르는 걸 말하는 건가?”
“멍청아! 음식 역대 최고 줄임말이잖아! 자네는 팥을 못 먹으니 음역이 낮은 거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음역은 노래 목소리가 맞잖아!”
“다 닥쳐! 이 애미 애비 다 터진 놈들아! 본인이 노래를 잘한다! 이쪽부터 서!”
떠들고 있던 병사들이 에이든의 호통에 찔끔 놀라 서둘러 움직였다. 루크도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일단 분위기에 맞춰서 움직였다.
“음역이라… 내 소싯적에 노래 좀 했었지 끌끌.”
오른쪽이 제일 음역이 높은 곳이라 루크는 당연히 그쪽으로 이동했다. 지금까지 뭐든 루크가 못하는 게 없었으므로.
“달링 조금만 기다려봐. 네 놈! 간단하게 노래해보거라!”
“네넷! 잠든 태양 아래~.”
“왼쪽으로 가! 음치잖아!”
“악! 알겠습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왕에게 맞서 목숨을 건 용사들이었지만, 금세 동네 연극 오디션장으로 바뀌었다.
마왕은 그저 의자에 앉아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런 에이든을 보고 있었다.
에이든은 병사들의 노래를 한 소절 듣고 빠르게 배치했다. 생각보다 그 능력이 출중한 듯해 루크는 조금 놀랐다.
“영감님 노래 제법이신데요? 이쪽에 서시죠.”
“끌끌… 인류의 영웅에게 그런 소리를 듣다니 영광이구먼.”
“너! 노래해 봐!”
마침내 노인의 차례까지 끝나고 루크의 순서가 왔다. 자신을 지목하는 에이든을 보며 루크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천천히 목을 가다듬었다.
자신은 못 하는 게 없는 천재였으므로.
“그 밤.”
“에이! 싯팔… 좆같이 못하네! 저기 왼쪽 끝으로 가!”
“뭐뭣?! 그게 무슨 말인가! 내가 못하는 게 있을 리… 아악!!”
“어디서 큰 소리야! 우리 달링 놀라면 책임질 거야?”
“어머 자기! 나는 괜찮대도!”
“내가 안 괜찮아 달링. 우리 아이를 생각해야지.”
“어머….”
루크는 에이든에게 얻어맞은 머리가 아파서 눈물이 나온 것인지, 인류의 영웅이라는 놈이 마왕과 2세 계획을 가진 것 때문인지 분간되지 않았다.
“빨리! 확 씨!”
“알았다! 알았다고!”
또다시 검집을 꺼내는 에이든의 모습에 루크는 화들짝 놀라 제일 왼쪽으로 갔다.
“아무튼, 능력을 과장하는 놈들이 있다니까. 큼큼… 자리 잡았으면 목을 풀면서 들어라. 이쪽부터 시작해서….”
에이든은 그 후로 나눠진 병사들을 보며 한참이나 노래의 가사와 음에 관해서 설명했다.
잠시 뒤.
“아아… 그 검은 머릿결은 마치 밤하늘을 녹여 정수로 만든 듯해.”
““아아… 검은 머릿결….””
루크는 마왕을 잡으러 온 자신들이 한 데 모여서 마왕의 미모에 대한 찬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심지어, 노래하며 마왕의 미모에 감화돼 눈물까지 글썽거리는 놈도 있었다. 이대로 조금 더 지속하면 당장이라도 마왕군에 투신할 놈이 나와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리고… 저 빌어먹을 놈은 왜 노래를 잘하는 건데?’
마왕의 앞에 무릎 꿇고 손을 내밀며 솔로 파트를 부르는 에이든의 모습은 유명 극단의 배우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얼마나 감정이 절절히 담겼는지, 방금까지 깔깔 웃던 마왕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하늘이 우리 사이를 질투해 이렇게 용사와 마왕이라는 억겁의 굴레를 씌웠지만, 나는 그대를 이렇게 만난 것만으로 그에 감사하다오….”
장난스러운 미소가 담겨 있던 마왕의 얼굴이 점점 깨어지고 그 안의 숨겨진 여인의 모습이 아득히 오랜만에 표면으로 떠올랐다.
그 정도로 에이든의 노래에는 사람의 감정을 절절히 뒤흔드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루크는 에이든이 노래를 잘한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니 하늘이 강제로 씌운 이 억겁의 둘레를 뜯어내어 피가 흐르더라도… 내 이 말은 꼭 해야겠소,”
““꼭 해야겠소~.””
넋 놓고 보고 있던 루크는 황급히 목소리를 내었다. 하마터면 단체 파트를 놓칠 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왜 자신이 마왕에 대한 찬가를….
“그대르을 사랑하오.”
에이든의 마지막 구절에는 슬픔이라는 감정을 몇 번이나 끓여서 그 정수를 모아 담은 것만 같은 절절함이 담겨 있었다.
““사랑하오.””
마지막 구절을 따라 부르는 병사들의 목소리도 촉촉이 젖어 있었다. 물론, 루크도 서둘러 따라 불렀다.
“크흑… 용사와 마왕 사이에 그런 슬픈 사연이….”
“어쩌면 마왕이 마왕성에서 나오지 않은 것은 인류의 영웅을 기다린 것 아닐까?”
“그 억겁의 시간 동안 말인가…? 그런 순애보 적인 것을 모르고 우리는 그저 마왕이라는 이유로… 크흑….”
‘이 우매한 것들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저저… 빌어먹을 놈 도대체 무슨 짓을….’
주변의 분위기에 루크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뱉으면서 애써 싱숭생숭한 마음을 다잡았다. 이건 그저 저 빌어먹을 놈의 또 다른 장난질일 뿐이다.
“….”
“…달링?”
한쪽 무릎을 꿇은 에이든이 내민 반지를 마왕은 그저 복잡한 감정이 담긴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반…반지는 또 언제? 아니 정말 처음부터 준비한 것인가?!’
에이든의 손에 들린 반지는 귀족인 루크가 보기에도 고급스러웠다. 평상시에 저런 반지를 주머니에 넣고 다닐 이유가 없으니 준비를 했다는 것인데, 이는 지금 상황을 에이든이 꾸몄다는 것이 된다.
‘도대체 이놈은 어디까지 보고….’
생각이 끝에 도달한 루크는 팔뚝에 돋은 닭살을 손바닥으로 쓸었다.
***
‘시발! 왜 안 받는 거지?! 스페어로 준비한 반지라 그런가?! 분명 비싸게 주고 산 건데?!’
에이든은 자신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마왕을 보며 속으로 마른 침을 삼켰다.
에이든은 저번 합동결혼식 이후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니, 늘 주머니에 세 개 이상의 반지를 가지고 다녔다.
어차피 돈은 넘치도록 많았으니. 반지는 억 소리가 나올 정도로 고급이었지만, 인간이 아닌 마왕의 눈에도 찰지는 의문이었다.
‘노래까지 완벽했다. 분위기도 완벽했어. 근데 왜 안 받는 거지?’
에이든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마왕의 검은 보석처럼 아름다운 칠흑의 눈동자가 마치 지옥문처럼 보였다.
‘저저 애미 터진 루크 새끼가 삑사리 내서 그런가? 저 새끼는 도대체 할 줄 아는 게 뭐야 시발!’
속으로 루크를 몇 번이나 찢어 죽였지만, 표정은 진중하고 초조하게 보이도록 유지했다.
이 반지를 운명의 반쪽이 받아주지 않을까, 두려움에 가득 찬 눈빛으로.
“…달링?”
마왕의 반응이 없어 불안해진 에이든은 슬쩍 마왕을 불렀다.
“아아… 아.”
그에 마왕은 마치 처음 말하는 것처럼 메마른 목을 가다듬으며 덜덜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그에 에이든은 속으로 작게 안도를 하며 마왕의 새하얀 손가락에 반지를 끼웠다.
‘…미안하지만, 너는 사별이다. 시발.’
1.0 키아나에 준하는 마왕의 뛰어난 외모가 아까웠지만, 자신은 인류의 영웅이었다. 그 누구보다 명예롭고 고결한 영웅의 부인 중에 마왕이 있다는 것은 큰 흠이 될 게 분명했다.
그리고 만약 마왕이랑 결혼한다면.
‘사도 꺠썌끼! 어미 터진 새끼! 씹새끼! 내 포인트 내놔아아아! 내놓으라고!! 으허어엉! 이 꺠썌끼! 내가 해준 게 얼만데! 이렇게 내 뒤통수를 쳐?! 으허어어엉!! 내 성녀 씹창내고 암컷으로 만든 것으로도 모자라서 내 포인트까지 다 가져갔어!! 이 순 나쁜 새끼!! 왜?! 아주 그냥 나까지 암컷 타락 시키지?! 그냥 나도 씹창내버려! 씹창 내라고!! 으허어어어엉!!’
평생 저 시끄러운 목소리가 따라다닐 게 분명했기 때문에, 정신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마왕을 사별시켜야 했다.
“고…아니 감사해요. 저의 길고 무저갱처럼 깊은 삶에 이런 의미가 있었을 줄이야….”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보며 마왕이 미소지었다. 그 아름다운 미소에 순간 에이든의 마음이 약해졌지만, 이내 마왕의 검은 눈에서 눈물 대신 쏟아지는 피에 정신이 돌아왔다.
‘그래… 이미 부인은 요일별로 쓰고 남을 정도로 충분해. 더 받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아쉽지만, 이미 충분히 먹었잖아.’
속마음과 다르게 에이든은 마왕을 따라 눈물을 흘리며 애써 미소 지었다. 그에 마왕이 작게 놀랐고 이내 에이든의 볼을 부드러운 손길을 감싸 쥐며 입을 맞췄다.
‘애미 시발… 무슨 입에서 피 냄새가 나냐.’
자신의 입안을 어색하게 희롱하는 마왕의 혓바닥에서 물씬 풍기는 피 냄새에 에이든은 일그러지는 얼굴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그녀가 말한 의미가 이거였군요. 금과 피 그리고 어둠의 기다림… 아아… 마침내 나는….”
입맞춤이 끝나고 행복하게 웃는 마왕의 얼굴은 마왕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음에도 죄책감을 심어줄 정도로 아름다웠다.
‘아니야! 저건 시발! 찢어 죽일 마왕이다! 이쁘다고 현혹되면 안 된다! 나는 임무 수행 중이다! 대륙을 구하는 중이야! 나는 프로 영웅이다!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해!’
에이든은 마왕의 아름답고 초라한 미소에 자꾸만 뒤흔들리는 감정을 다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앞으로 끝이 올 때까지 당신과 마왕성에서 영원히….”
작게 중얼거린 마왕의 목소리가 에이든의 정말 티끌만 한 죄책감을 지웠다.
‘그래! 이 밤마다 귀신이 나타날 것 같은 집에 살 수 없지! 어쩔 수 없다! 너는 사별이다! 사별!’
에이든은 속마음을 숨기고 따라 미소지었다.
“…그럼 첫날 밤이라는 걸 해볼까요?”
에이든의 미소에 소중히 반지를 쓰다듬던 마왕의 붉은 입술이 호선으로 휘었다.
“…네? 여기서요? 그게 보는 눈도 많고 아까도 실컷 했는데….”
“그렇다기에는 이렇게 다시 단단해졌는걸요?”
“그…그런 달링이 너무 아름다워서….”
‘시발… 공략이 쉬워도 너무 쉬운 거 아니야?’
에이든은 마왕의 칠흑처럼 검은 눈동자에 담긴 따뜻한 애정이 당혹스러웠다. 시간을 끌기 위해 던진 무리수였지만, 효과가 생각 이상으로 과했다.
마왕은 마왕성에서 혼자 살았나 싶을 정도로, 정에 굶주려 있었다. 아니 정이라기보다는 의미라는 것에 굶주려 있었다. 문제는 타인의 눈을 아예 신경 쓰지 않는 것이었다.
‘…애미 시발. 그냥 지금처럼 이야기나 주고받으려고 했지.’
한껏 들뜬 마왕이 부드러운 손길로 내 바지를 벗겼다. 물론, 힘이 부족한 에이든은 그 손길을 거부할 수 없었다.
***
“오오… 몇백 년간의 사랑의 정수를 내 눈으로 보다니….”
“마왕은 애액도 핏빛이구먼.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야. 마치 자신의 심장이 녹아 흐르는 듯한….”
“내 생전에 저런 미인의 나체를 볼 줄 몰랐군.”
“인류의 영웅은 또 어떠한가! 저건 인류의 영웅이 아니라 인류의 기둥이라고 불러야 하겠군.”
“역시 영웅은 사소한 곳까지 완벽해야 하는가….”
‘…젠장. 저거였군.’
마치 거리의 예술 공연처럼 대놓고 펼쳐지는 교미에 루크는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궁금증이 풀렸다. 도대체 저런 놈 옆에 왜 그리 많은 미인이 붙어 있었나 했는데….
자신의 팔뚝만 한 물건이 기똥차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루크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허리를 열심히 움직이는 에이든의 표정이 너무 경건하여 아름다운 마왕이 나체로 신음하는데도 음심조차 들지 않았다.
에이든은 그저 한 악기를 혼을 다해 연주하는 예술가 같았다.
‘…저놈은 경지에 올랐다.’
비록 아직 여자를 안아보지 못한 루크였지만, 죽을 것처럼 신음하는 마왕의 모습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럼 그 미인들이 죄다… 젠장.’
문득, 에이든의 옆에 있었던 미인들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루크의 마음속에 지울 수 없는 패배감이 차올랐다.
이미 저 압도적인 기둥을 본 순간부터 루크는 자신의 강함과 상관없이 끝까지 저 녀석을 이기지 못할 거란 걸 깨달았다.
“꺄흐흐으으읏! 자기!!”
“오오… 마왕이 절정하니… 피분수가 솟는구먼!”
“인류의 기둥이 마왕을 교미로 물리칠 셈이다! 끝없이 절정시켜 죽일 속셈이야!! 우리도 힘을 보태야만 해!! 인류의 기둥! 안 외치고 뭐 해!”
““인류의 기둥! 인류의 기둥!””
혼란스러운 분위기에 루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마, 이 저 거대한 기둥은 루크를 끝까지 따라올 듯했다.
‘이럴까 봐 혜진 때도 억지로 보지 않았거늘….’
그때, 옆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엇?! 에이든 동무?!”
그에 황급히 고개를 돌리니 에이든을 항상 쫓아다니던 갈색 여자가 흰색 아이를 품에 안고 서 있었다. 그 모양새가 마치 무기를 든 듯하여 조금 이상했다.
그 옆에는 넝마가 된 병사들이 쓰러져 있었는데, 그 수가 거의 수백은 되었다.
***
‘…또 꽝이네. 비키나 키아나는 뭐하고 있는 거야 도대체.’
나타난 사람들을 보며 에이든은 혀를 찼다. 이지수와 천오 그리고 군고구마 엘프까지 있었지만, 정작 에이든이 필요로 하는 인물이 없었다.
“꺄흣! 자기! 아는 인간이야?”
에이든은 자신을 돌아보는 마왕의 검은 눈동자에 담긴 서늘함에 식은땀이 흘렀다.
“으응… 그냥 조금?”
“흐응 그래? 거기! 좀 더 깊이! 좋아!”
마왕은 정신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절정하면서도 끝까지 몸에서 힘을 빼지 않았다. 에이든은 허리를 움직이며 아까부터 기회를 보고 있었지만, 마왕이 좀처럼 틈을 보이지 않았다.
“에이든 동무!! 저희 왔습네다!! 마왕을 따먹는 중입네까?! 역시 에이든 동무 답습네다!!”
‘제발… 오지마라! 좀!’
겁이 없는 모양인지, 해맑게 웃으며 달려오는 이지수에게 작게 고개를 저었지만, 이지수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그리고 보통 이렇게 교미하고 있으면 자리를 좀 피해 주지 않나?’
마침내 바로 앞까지 다가온 이지수가 박히며 신음하는 마왕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외모가 절벽녀만큼 되지만, 가슴은 더욱 큰 것 같습네다! 완벽에 가까운 미모입네다! 확인 차 묻는 것인데, 마왕 맞습네까?”
내게 깔린 마왕과 눈을 맞추며 이지수가 해맑게 물었다.
‘애미 시발… 마왕입니까 라니.’
아찔한 정신을 애써 부여잡고 이지수를 물리기 위해 입을 열었다.
“잠…잠깐 이지수! 우리 지금 좀 바빠….”
“으흥 아니 괜찮아. 자기가 아는 사람이라는데…, 내가 마왕이란다 아이야.”
위에 올라탄 에이든에게는 마왕의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아서, 마왕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안 보였다.
“자기라니… 에이든 동무 그새를 못 참고 또 늘린 겁네까?! 대단합네다! 그럼 마왕 동무 제가 몇 가지 질문을 해도 되겠습네까?”
“…또? 자기야 저건 무슨 말이야? …아흣.”
몸을 잘게 떤 마왕이 고개만을 돌려 나를 쳐다봤다. 기이하게 반 이상 꺾인 목과 그 무저갱 같은 눈동자에 나는 아래의 힘이 풀리는 걸 억지로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죄다 달링을 만나기 전 일이지! 내 마음 알지 달링? 나는 달링을 만나고 나서야 삶의 의미를 깨달았으니까!”
신음하는 마왕 앞에 쪼그려 앉아 고개를 끄덕이는 이지수에게 고개를 저었지만, 이지수는 엄지를 들어 올릴 뿐이었다.
“…그렇지? 흐응 그래 아이야 질문이 뭐니?”
“그럼 첫 질문부터 드리겠습네다! 혹시 에이든 동무 이전에 다른 수컷과 교미를 가진 적 있습네까? 여기에는 동물, 언데드, 인간 등등 모두를 포함합네다.”
마왕의 얼굴을 응시하는 이지수의 눈빛은 이전에 내가 알던 모습과는 사뭇 달라 괜스레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에 마왕의 정신이라도 빼놓기 위해 허리를 더욱 열심히 움직였지만, 마왕은 몸을 덜덜 떨고 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목소리는 평온했다.
“흐음… 언데드도 포함이면… 꽤 많지? 벨과 악마들과 심심풀이 삼아 잡아 온 천사들과… 그래도 그중에서 나를 이렇게까지 느끼게 하는 이는 없었어. 자기. 나도 자기를 만나고 의미를 얻었으니까.”
“그럼 그럼. 우리는 서로를 만나면서 새로 태어난 것이니까.”
마왕이 또 기이하게 꺾인 목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윙크했다. 그에 나는 애써 웃으며 허리를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내 하체는 이미 피투성이가 된 지 오래였다.
‘…벨? 어디서 들어봤는데?’
[…크흠.]
“아하! 그렇군요. 음… 슬프게도 마왕 당신은 첫 질문부터 탈락하셨습네다!”
뜬금없는 이지수의 말에 나와 마왕이 동시에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은색 리볼버를 손에 든 이지수가 보였다.
탕!
“사형! 비처녀는 지옥에 가서 사죄하는 것입네다!!”
이지수의 은빛 리볼버가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불을 뿜었고.
‘…미친년!!’
늘 그렇듯 에이든의 계획은 온 힘을 다해 한껏 일그러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