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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216화 (216/233)

〈 216화 〉 저 남자 누구야.

* * *

이지수의 은빛 리볼버가 불을 뿜어내자,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내게 박히던 마왕의 그림자에서 뭔가가 천천히 올라왔다.

그것은 금발의 미남자였는데, 피부가 마치 시체처럼 창백하여….

‘아니. 그냥 시체인가?’

그림자에서 나타난 미남자의 얼굴이 미묘하게 익숙했다. 멍청할 정도로 정직하게 생긴 외모. 강직하게 생긴 코까지.

[…잘 생겼지?]

일단 나는 마왕의 잘록한 허리를 눌러 내 물건을 빼내고 허리춤에 걸린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뿌려진 피에 하반신이 시원했지만, 애써 외면했다.

미남자는 그림자에서 어깨까지 나와 있었다.

미남자는 아무것도 담기지 않는 눈빛으로 이지수를 보며 검을 뻗었다.

급격하게 기운을 운용하여 진탕되는 속을 애써 삼키며 마왕의 탐스러운 엉덩이를 밟고 이지수 쪽으로 뛰었다.

챙.

미남자의 검이 이지수가 자랑하던 은 총알을 가볍게 막았고, 녀석은 그에 그치지 않고 검을 부드럽게 돌려 이지수에게 찔러 넣었다.

‘무슨 검의 수준이….’

나는 그 동작에 담겨 있는 검술의 깊이에 눈살을 찌푸리면서 녀석을 뛰어넘어 이지수 앞에 도착했다.

미남자의 검이 이지수의 목을 꿰뚫기 전, 아슬아슬하게 내 검이 녀석의 검을 막았다.

챙!

녀석과 검을 마주하자 진탕된 속이 더욱 심해져 내 입가로 핏줄기 하나가 그어졌다.

내가 막자, 녀석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검을 틀어 내 검을 밀면서 좀 더 짖쳐들었다.

‘애미 시발.’

묘하게 녀석의 검술은 눈에 익어, 경로를 예측하기 쉬웠지만, 녀석의 검에 담긴 깊이가 나보다 깊어 막는 것만으로 내상이 쌓였다.

[…몸에 새겨진 검술만 있나 보군. 발전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십여 합을 겨뤄 내 몸에 붉은 선들이 그어졌을 때, 마왕의 입이 열렸다.

“멈춰 벨.”

내 목에 찔러넣던 녀석의 검이 우뚝 멈췄다.

‘…시발 너무 안 좋게 시작했어.’

이지수를 살리기 위해 급하게 움직이는 바람에 진탕된 속을 안고 시작하여 처음부터 불리한 싸움이었다.

“…당신?”

나를 보는 마왕의 눈빛에는 다양한 감정들이 골고루 섞여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 속에는 배신감도 있었고 증오도 있었고 아직 지우지 못한 애정도 있었다.

‘무슨 만난 지 하루도 안 됐는데, 유난은….’

그 눈빛에서 느껴지는 죄책감을 욕지거리로 애써 지우며 머리를 굴렸다. 그런 내게 마왕과 그 옆에 있는 미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까지 속삭였던 사랑의 말들과 내게 의미를 줬던 말들이… 전부 거짓이었어?”

단단히 화가 났는지, 마왕의 기세가 전보다 흉흉해지며 깊어졌다.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살 떨리는 그 존재감에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합리적으로 다수가 모여 마왕을 상대로 합공하지 않으면 사별시킬 수 없다. 최소 비키와 키아나는 있어야 해.’

오롯이 내게 쏟아지는 무거운 마왕의 기세를 버티며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얼굴에는 방금 본 마왕과 똑같은 표정을 하고.

마왕 옆에 부복한 미남자를 가리키며.

“저 남자 누구야!!”

‘내가 피해자야 이 년아.’

슬픔이 가득 찬 내 목소리에 가늘게 떴던 마왕의 눈이 큼지막해지며 슬쩍 내 시선을 피해 내리깔았다.

“저 남자 누구냐고!! 왜 내 시선을 피해?!”

“그…그게 자기야. 그냥 내 부하 중 하나야.”

“솔직히 말해! 누구냐고!”

“진…진짜 그냥 부하야 자기야!”

방금까지 살을 찌르던 마왕의 기세는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다시 아름다운 여인으로 돌아온 마왕이 내게 덜덜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나한테 거짓말하는 거야?”

둘의 사이는 모른다. 정말 마왕의 말처럼 부하 중 하나일 수도 있었고, 아니면 정분을 나누는 사이일 수도 있었지만, 둘 다 상관없었다.

지금 내 기분이 상했다는 게 더 중요하니까.

“그냥… 몇 번… 아니 몇백 번 정도 쓴 게 다야! 저 녀석은 기억이 없는… 영혼만 담긴… 도구… 그래! 그냥 자위도구야! 자기야! 내 자위도구! 봐봐!”

[미친… 저게 무슨…?]

마치 남편과 생이별하는 것처럼 절절히 슬픔이 녹아 눈 옆으로 흐르는 마왕의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절절하게 했지만.

“그…그럼 교미를 한 남자를 그림자에 넣고 있었다는 거야?! 나와 사랑을 나눌 때도?!”

나는 그런 모습을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절박했다.

“그거는….”

내게 뻗던 마왕의 하얗고 가는 손가락이 공중에서 멈췄다.

“달링한테 전 남자들이 있는 건 이해할 수 있어! 나도 여자들이 있으니까! 그런데… 나와 사랑을 나누면서도 남자를 그림자에 넣어둬?!”

“그…그런 게 아니라… 그냥 잊고 있었던….”

‘…반응이 뭐 저리 격하지?’

정말로 평생의 반려자에게 버림받은 것처럼 마왕은 덜덜 떨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오늘 만난 내게 왜 저런 감정을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물러설 수 없었다.

나는 가장 고전적인 방법을 꺼냈다.

“나 인류의 영웅… 아니 그저 한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 에이든은 자네에게 결투를 청하는 바이다!”

나는 기사들의 흔한 개짓거리들처럼 장갑을 벗어서 미남자에게 던졌다. 날아간 장갑은 무미건조한 표정을 짓고 있는 미남자의 가슴팍에 부딪혀 떨어졌다.

‘…애미 시발. 이런 말을 기사들은 어떻게 하는 거야?’

내가 말했음에도 느끼해서 올라오는 닭살을 애써 참으며 최대한 분노한 표정을 지었다. 이 표정은 마치….

‘내가 비키 가슴 주무르는 것을 본 루나의 표정이 이랬었지.’

아련히 먼 기억처럼 떠오른 기억에 속으로 쓰게 웃었다.

“…어머!”

마왕의 입에서 어울리지 않는 기묘한 신음이 나왔고, 나체인 마왕의 사타구니는 다시 피범벅이 되었다.

‘통했네.’

마왕이 미남자의 귀에 뭔가를 작게 속삭였다. 물론 작은 목소리였지만, 한껏 긴장하고 있는 내게도 들렸다.

“절대 우리 자기 몸에 상처 하나 내지 마. 적당히 하란 말이야. 적당히. 알았지?”

일관되게 무미건조한 미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나왔다.

그런 미남자 옆에서 나를 보는 마왕의 눈빛은… 자신을 두고 싸우는 남자들을 보는 아녀자의 시선과 비슷했다.

‘진짜 애가 마왕성에 오래 박혀 있으니 맛이 가도 단단히 갔네.’

도무지 마왕이라는 칭호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살기 위해서라면 그 장단에 맞춰야 했다. 나사가 빠진 듯 보여도 아까 언뜻 보였던 마왕의 강함은 진짜였으니.

“이지수 너는 저기 뒤로 가 있어라. 아무것도 하지마 아무것도!”

“…넵! 알겠습네다!”

뭔가 아쉬운 눈빛으로 자신의 리볼버를 보고 있던 이지수가 내 호통에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멀리 떨어졌다.

골칫거리 하나를 치운 나는 내 앞에 선 미남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내 그대를 이겨 달링의 과거를 지우고 달링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겠소.”

‘애미 시발….’

내가 말을 하면서도 좆같았지만,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

“아아… 당신은 제 과거까지….”

내 말에 다시 감동하였는지 주변을 피바다로 만들며 부들부들 떠는 마왕과.

“크흑­ 영웅은 진정한 남자군! 여자의 과거까지 받아들인다니 말이야!”

“인류의 기둥! 인류의 기둥!”

“내 여기서 살아나가면 영웅의 업적을 널리 퍼뜨리리!”

‘…미친 새끼들 시발.’

마치 마을의 빨래터에 모여 앉아 떠들던 아줌마들처럼 호들갑 떠는 기사들에 정신이 혼미해졌지만, 이를 악물고 검을 고쳐잡았다.

“그대의 과거… 내가 지우리라.”

진탕된 속은 신성력으로 다 회복한 상태였고, 전의 교전과 달리 자세도 안정되었다.

“…벨이다.”

여전히 무미건조한 표정을 지은 사내가 오라는 듯 검을 까닥­ 흔들었고.

나는 선공을 사양하지 않고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하체에 기운을 터뜨리며 수 미터는 되는 거리를 단 한걸음에 주파해 사내의 앞에 도착했다.

사내는 그때까지도 검의 끝을 내리고 있는 상태였다.

땅을 디딘 오른발에 힘을 주며 상체의 온 힘을 다해 사내에게 검을 휘둘렀다. 내 검에는 이미 검강이 넘실대고 있었다.

사내의 목을 베어내기 바로 전 사내의 검이 움직였고, 빛처럼 빠르게 내 검을 쳐냈다.

카앙­!

‘무슨 깊이가….’

사내의 검에 담긴 힘에 검을 쥔 내 손아귀가 찢어지며 피가 튀었다. 다만, 나는 검을 놓치지 않았다.

그거면 충분했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내 정신을 바짝 세웠고, 나는 사내의 다음 검에 집중했다.

분명 내가 먼저 공격을 시작했지만, 사내는 단 한 번의 교전으로 금세 기세를 가져갔다.

사내의 검이 내 가슴을 노리고 베어졌는데, 그 동작과 검술이 너무 익숙했다.

‘저기서 오른발을 반보.’

사내의 경로가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여 나는 사내에 맞춰 왼발을 내디디면서 몸을 틀었다.

분명 사내의 검은 내가 반응 못 할 빠르기였지만, 나는 무의식적으로 느껴지는 사내의 검로에 피해낼 수 있었다.

‘…여기서는 찌르기?’

사내의 검이 물 흐르는 듯 연계되어 내게 짓쳐 들었지만, 나는 그를 정말 손쉽게 피하거나 막을 수 있었다.

물론, 막는 순간 내 손바닥은 찢어지고 속은 진탕됐지만, 괜찮았다. 고통은 제법 익숙하니까.

나는 살기 위해 고통과 어깨동무하고 사내의 검을 막았다.

캉!캉!쾅!

“무…무슨 수준이….”

“저것이 인류의 기둥 검술 실력?”

“불공평하군. 그런 거근과 검술 실력 둘 다 가지고 있다니.”

“그런데 원래 인류의 영웅 아니었나…?”

사내의 검은 보면 볼수록 눈에 익었고, 그 모습은 내 머릿속에 잠들어 있던 뭔가를 깨우는 듯했다.

‘거기가 아니라 여기지!’

나는 사내가 섞은 허초를 손쉽게 파악하고 미리 검을 움직여 사내의 다음 검을 막았다.

카앙­!

사내의 무미건조한 눈이 살짝 이지만, 커졌다. 그 모습에 나는 성취감을 느끼며 검을 움직였다.

캉!

처음으로 사내에게 역습했지만, 사내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사내가 막는 것을 기다렸다.

‘이건 몰랐지!! 애미 터진 새끼야!’

상남자 검술을 이용하여 사내의 팔뚝에 길게 상처를 만들어냈다. 사내의 은빛 갑주의 팔뚝 부분이 베어졌고 그 안의 살이 드러났다. 썩어 문드러진 사내의 팔이.

[그… 소년 상대에 대한 예의를 조금….]

나는 기세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다시금 검을 찔러 넣었지만, 사내는 한발 후퇴하면서 내 검을 강하게 쳐냈다.

분명히 아는 검로였지만, 피할 수 없어 맞부딪친 사내의 검에 담긴 깊이가 다시 한번 내 속을 뒤흔들었다.

‘그래도… 상대할 수 있다.’

사내와의 교전은 내게 잊고 있던 뭔가를 떠올리게 했다. 마치 오래전에 풀었던 문제의 답안지를 보는 듯한 묘한 기분.

사내와 검을 나누며 내 검술의 미진한 부분이 좀 더 보완됐고. 나는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이는 꽤 오랫동안 막혀 있던 나에게 단비 같은 기회였다.

[오래라고 해봤자….]

닥쳐 천재인 나한테는 오래니까.

타오르는 갈증에 웃으며 사내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그렇게 몇 번이나 검을 나눴을까, 내 피가 바닥에 흥건하게 뿌려졌을 때, 나는 사내와 검을 맞부딪혀도 더는 속이 진탕되지 않았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사내와 검을 더 나누자, 나는 사내의 모든 경로를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었다.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니까.

챙!

더는 무겁지 않은 사내의 검을 힘들게 막는 척하며 뒤쪽을 확인했다.

‘…아직도 안 왔어? 뭘 하는 거야.’

아직 비키와 키아나가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좀 더 시간을 끌어야 했다.

“인류의 기둥!! 저런 시체 같은 놈한테 지지 말게!”

“여자의 과거는 다 불태워야지!”

이미 주변은 죄다 나에게 감화되어 응원하고 있었고.

“날 위해 저렇게까지… 벨! 살살하래도!”

마왕마저 내 편이 되어 있었다.

물론, 앞에 있는 사내는 주변에 별 영향을 받지 않는 듯했지만.

‘너무 뻔히 보이잖아.’

내 오른쪽 복부를 노리는 사내의 검을 애써 힘겨운 척하며 막아냈다.

‘그러면 다음은 왼발을 내디디면서 내 가슴을 노리겠지.’

일정 수준에 오르자 사내와의 전투는 하품이 나올 정도로 따분해졌다.

물론, 겉으로는 둘이 일생의 적을 만난 것처럼 보이겠지만.

‘애가 검이 너무 정직하네. 좀 무딘 구석도 있고. 이 정도면 여자한테 인기 없었겠어.’

[무…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소년! 크흠….]

‘어쭈? 방금 막혔는데도 또 똑같이 검을 찔러넣네. 병신인가?’

[말을 왜 그렇게… 소년! 검을 나누는 신성한 결투 아닌가! 상대를 좀 더 존중….]

‘허어­ 발전이 없네… 쯧! 얘는 안 되겠다!’

[젠장! 저 머저리 새끼는 지난 세월 동안 뭘 한 거야!]

사내는 마왕의 말처럼 기억이 없어 몸에 각인된 검술만을 사용하는 듯했다. 시체가 되기 전 사내의 검술이 끝에 달할 정도로 높은 수준이었는지, 그 검술의 깊이조차 깊었지만….

‘이건 뭐 정답을 알고 싸우는 것 같잖아.’

사내의 검술이 내게 훤히 보인다는 게 문제였다. 심지어 사내의 검술은 정도의 극의를 걸었는지, 심하게 정직해서 더 쉬웠다.

‘좆밥이네 좆밥이야. 쯧.’

[…빌어먹을! 기왕 살릴 거면 좀 더 그럴듯하게 살렸어야지! 고추 크기는 마음에 들지만…!]

정직하게 찌르는 사내의 검을 쳐내고 사내의 발을 걸어 슬쩍 미니 사내가 휘청거렸는데, 그 꼴이 마치 몸치가 추는 춤 같아 속으로 크게 웃었다.

사내는 그에 굴하지 않고 전처럼 정직하고 투명한 검으로 내게 달려들었다.

[힘을 내라! 벨!! 지지 말아라! 너는 마왕에게 상처 입힌 유일한 용사다! 젠장!! 이런 쓰레기 같은 소년에게 질 인물이 아니란 말이다!]

‘이… 미친 새끼가 지금 누굴 응원하는 거야?’

순간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우습게도 목소리의 염원이 사내에게 닿았는지, 사내의 기세가 일변했다.

“…신의 가위질.”

사내의 검에 무형의 무언가가 담겼고.

이내 내게 그어졌다.

그것은 단순히 모든 걸 베어냈다.

공간까지도.

[좋다!! 그거야! 그거를 못 쓰면 벨이 아니지! 잘했다!! 비록 신념은 못 쓰지만! 할 수 있다!]

사내가 검에 담긴 무언가를 내게 긋는 것을 보며, 시간이 다시금 느리게 흘렀다.

‘아… 저거였군.’

정도의 극에 달한 사내의 검은 꽤 오랜 시간 가려웠던 곳을 시원하게 긁어줬다.

사내의 검에서 움직이는 기운을 보며 나는 잊고 있었던 무언가를 검에 담았다.

잊고 있었을 뿐인 그것은 순식간에 검에 타고 흘렀고, 사내가 검을 뿌리는 순간, 같이 완성되었다.

시원한 감각이 내 손을 타고 흘러 검에 타올랐고, 이내 나는 손이 길어진 듯한 느낌에 크게 웃었다.

‘…이 느낌이었어!’

내게 이것을 보여준 녀석에게 감사함을 느끼며.

들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진 검을 버티며.

다시 한 계단 올랐다는 성취감에 광소하며.

“…귀신의 칼질!”

검을 뿌렸다.

[…신의 가위질이다! 신의 가위질이야! 귀신의 칼질이 아니란 말이다!! 젠장! 아니라고!]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둘의 검이 교차했다.

***

구름들로 가득 찬 어느 곳.

한 소녀가 엎어져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소녀의 옷은 잔뜩 헝클어져 있었고 머리는 잔뜩 엉망이 된 상태였다.

다만, 그 얼굴의 아름다움만은 절대적이라 상하지도 빛이 덜하지도 않았다. 소녀가 흘린 눈물은 땅을 더욱 비옥하게 만들었다.

“끄윽…끄윽….”

소녀는 구름에 얼굴을 묻고 꺼이꺼이 울었다.

“그… 대지신?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우리 끝난 거 아니잖아?”

“…처음부터 저 사고뭉치를 고르는 게 아니었어.”

“우리가 골랐냐?! 대지신의 그 미친 성녀가 다 잡아 온 거지! 아무튼! 대지신 저것과 얽히는 게 아니었어!! 우리 이제 다 좆됐어! 좆됐다고!!”

“그… 성녀들이니까 보지 됐다…가 옳지 않을까? 우리도 여성체니까….”

“지금 그게 할 말이야?! 어휴­ 이런 답답이들이랑 같이 묶였다니….”

대지신은 주변의 목소리도 듣지 않고 그저 구름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

‘내 명품 가방들도… 저택도… 요트까지… 다 사라졌어.’

사실 처음 상태로 돌아온 것뿐이지만, 가지고 있었던 것을 뺏기니 그 상실감은 도무지 채워지지 않았다.

결국, 대지신은 참지 못하고 다시 목청 놓고 울었다.

“으허어어어어엉!! 내 사도 개 시발 새끼!!!”

주변의 소녀들이 그런 대지신을 각자 다른 눈빛으로 응시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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