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218화 (218/233)

〈 218화 〉 나를 잊지 말아요.

* * *

검에 배가 뚫려 피를 계속해서 흘리고 있음에도 마왕은 용사들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용사들을 압도했다.

수천으로 시작한 원정 병사는 계속되는 교전에 겨우 백 조금 남았으며, 제국 제일검의 검은 반 토막 났고, 비키의 뿔은 죄다 뽑혔다.

태양신의 성녀도 그 긴 전투에 신성력이 다 닳아 기절해 구석 어딘가로 밀려났다.

대지신의 성녀 안드레아는 모든 수녀가 쓰러졌음에도 핏발 선 눈으로 계속해서 신성력을 끌어 올렸다.

신성력이 통하는 통로가 불에 탄 것처럼 뜨겁고 고통스러웠지만, 안드레아는 이를 악물고 쓰러지지 않았다. 에이든이 아직 검을 들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마왕의 기세도 한풀 꺾여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그런 마왕에게 다가설 이가 더는 없었다.

피를 흘리면서도 다시 자세를 바르게 세우는 마왕의 모습에 모두가 절망할 때­.

인류의 영웅이 검을 고쳐 잡았다.

그에 지쳐 무릎 꿇고 있던 제국 제일검도 비틀거리면서 일어나 그의 앞에 섰고, 뿔이 뽑힌 붉은 야수는 광소를 터뜨리면서 먼저 튀어 나갔다.

수천의 생명을 가져간 마왕의 손톱을 붉은 야수가 기꺼이 몸으로 막았으며.

마왕의 뒤에서 피어나는 지독할 정도로 어두운 검은 꽃들은 제국 제일검이 반 토막 난 검으로 베어내어 통로를 열었다.

그 길로 인류의 영웅이 뛰었고, 그 뒤를 성녀의 가호가 뒷받침했다.

모두가 간절히 인류의 영웅을 응시하고 있을 때­.

마왕도 천천히 다가오는 자신의 끝을 애달프게 쳐다봤다.

‘…저 검은.’

수천의 세월도 기억하는 마왕은 영웅의 손에 들린 검을 보면서 먼 옛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쓸데없을 정도로 강직하고 정직한 눈빛.’

그리고 분명 같은 사람임에도 전혀 다른 기세와 눈빛을 보며 마왕은 실낱같은 무언가를 생각했다.

그 두 개를 엮어 생각을 늘리자, 아득히 먼 옛날의 전설이 떠올랐다.

자신에게 암시를 걸었던 그 검은 여자.

‘아… 그래. 그렇군… 그런 의미였어.’

마왕은 그제야 온전히 검은 여자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마왕은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릿하게 다가오는 검에서 시선을 돌려 주변을 살폈다.

이미 수천의 생명이 바스러져 땅에 뒹굴고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역사로 기록되기에 충분한 피해였다. 이 수많은 사상자를 만든 마왕에 대한 공포는 이어질 것이며, 그것은 자신을 끝낼 그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이제 마왕의 바로 앞에 검이 놓여 있었다. 유일하게 그녀에게 상처 입힌 용사의 눈빛을 한 채, 똑같은 검을 들고.

마지막 순간에, 뜻을 이해한 마왕은 미소지으며 기꺼이 주사위를 굴렸다.

“…신의 가위질.”

예전에는 어깨의 상처에서 그치던 그의 검이 이번에는 정확히 마왕의 심장을 갈라냈다.

마왕은 전과 다른 그의 검에 감탄했다. 그의 검은 마왕이 피하려고 했어도 못 피했을 정도로 극에 달해 있었다.

“…이루었다.”

모든 이의 염원인 마왕의 심장을 갈라낸 그의 눈빛에 담긴 건, 우습게도 미련을 지운 것에 대한 후련함이었다.

만마 위에 군림하던 자신을 마치 하나의 골칫거리로 여기는 듯한 기색에 마왕은 헛웃음이 나왔다.

“정말이지… 눈치 없고, 질척댄다니까?”

자신의 검은 피를 뒤집어쓴 그를 보며 마왕은 쓰게 웃었다.

“…그럴지도.”

마왕의 피 냄새 가득한 농에 그는 마른 웃음을 짓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뜬 그의 눈은 예의 순수함이 담긴 눈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머뭇거리는 그를.

어쩌면 자신의 구원자가 될지도 모르는 그를 보며 마왕은 천천히 마지막 대사를 골랐다.

‘…마지막 대사가 가장 중요하니까.’

수많은 로맨스 소설을 섭렵한 마왕은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문구를 수천 개 떠올렸다.

아무리 고르고 골라도 그중에는 지금 입에 담고 싶은 게 없었다.

그것들 모두 마왕의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마지막 이야기는 자신이 쓰고 싶었다. 그것이 비록 서툴고 엉망이고 별로일지라도.

검을 잡은 그의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을 보며 마왕은 마음속에 무언가가 차오르는 걸 느꼈다.

그것은 마왕이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라 따로 지명할 말이 없었다.

자신에게 두 번이나 검을 박아넣은 얄궂은 그의 손을 맞잡으면서 마왕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신의 손이 얹히자, 찔끔 놀라 빼려는 그의 손을 붙잡으면서­.

“…나를 잊지 말아요.”

마왕의 마지막 말은 애원이자, 호소였고, 이기심이었으며, 애달픔이었다.

크게 떠진 그의 눈에 조그맣게 담긴 죄책감을 보며 마왕은 안도했다.

마왕인 자신에게도 죄책감을 가질 정도로 여린 그가 해낼지는 미지수였지만.

마왕은 기꺼이 웃으며 마지막 힘을 다해 그의 품에 힘껏 안겼다.

“…부디.”

마치 고슴도치처럼 그를 안을수록 고통스러웠지만, 그 가시 안에 담긴 자그마한 따뜻함에 마왕은 미소지을 수 있었다.

오랜 세월 차가운 고독에 머물렀던 그녀에게 그 정도면 충분했으므로.

“…이겨내기를.”

마왕은 이 눈이 다시 떠졌을 때, 그가 앞에 있기를 간절히 빌며 무거운 눈을 감았다.

다행히도 그의 품은 오랜 세월에 녹슬고 닳은 그녀를 녹일 만큼 따뜻했다.

***

흰 방안에 책상만 덩그러니 놓인 곳.

긴 책상의 양쪽에 의자가 놓여 있었는데, 한쪽 의자에 남자가 앉아 있었다.

레워드는 초조함에 떨리는 다리를 억지로 참았다.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오늘은 레워드가 대륙 연합에 들어가기 위한 면접을 보는 날이었다.

이 면접을 위해 레워드는 근 한 달간 잠도 줄여가면서 필사적으로 준비했다.

‘이번에도 떨어지면 너랑 끝이야! 끝!’

오랜 시간 연애한 연인의 날카로운 말이 그의 머릿속에 맴돌며 긴장을 유지시켰다.

‘…붙으면 내가 너랑 끝이다! 이 망할 년아!’

레워드가 계속해서 중얼거리고 있을 때, 하나 있는 문이 조용히 열렸다. 그리고 들어온 여인을 봤을 때, 레워드는 작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사내라면 누구든 안기고 싶은 풍만한 몸매에 풍성한 갈색 생머리, 거기에 아름다운 얼굴까지.

‘…꼭 입사해야 한다.’

자신의 연인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가진 여인이었다. 거기에 서류를 앞에 들고 있음에도 보이는 뚜렷한 골반까지. 생전 처음 보는 골반 크기에 레워드는 시선이 들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무슨 엉덩이가….’

미인의 엉덩이는 아이가 단번에 점프하면서 나올 정도로 탐스러웠다.

“안녕하세요. 면접관 서아입니다.”

여자는 가볍게 인사하며 레워드의 반대편에 앉았다. 그러자 풍기는 향기로운 냄새에 레워드는 혼미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고 마주 인사했다.

“레…레워드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 레워드 씨. 편하게 계셔도 됩니다. 앉으세요.”

굳은 자세로 일어나 인사하는 레워드에게 여인이 작게 웃으며 손짓했다. 그 미소에 레워드의 지난 한 달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꼭 입사한다! 입사한다!’

들뜬 마음으로 자리에 앉은 레워드는 정자세를 하고 앞에 있는 여인의 얼굴을 훔쳐봤다.

“출생은 제국이고…, 관리직에까지 오르셨다고요?”

“네넷!! 말단이지만, 제국에 2년 정도 있었습니다!”

“으음… 그런 자리를 두고 대륙 연합에 지원한 이유가 있을까요?”

여인의 질문은 레워드가 준비한 것 중 하나였기 때문에, 레워드는 막히지 않고 술술 대답을 이어나갔다. 면접관이 미인이니, 오히려 더욱 마음이 편한….

그런 레워드의 시선에 여인의 왼쪽 손가락에 끼워진 큼지막한 반지가 보였다. 마치 주인 있다고 이름이라도 써놓은 것처럼 정말 큰 반지가.

“…레워드 씨? 아! 이 반지 너무 이쁘죠?”

말을 멈춘 레워드를 올려다보던 여인이 그 시선을 눈치채고 자신의 반지를 쭉 내밀었다.

그러면서 보인 표정과 말투가 조금 전과 너무 달랐기 때문에, 레워드는 미묘한 질투를 느꼈다.

“저희 서방님이 검을 정말 잘 다루어서….”

그 후로도 여인은 한참이나 자신의 남편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았다. 얼마나 과장이 심하던지, 여인의 말에 따르면 남편은 용을 잡고 마왕도 잡고 대륙도 구했단다.

“심지어 서방님의 거기가 이만… 어머! 이건 좀 그런가? 아무튼, 웃을 때는 또 얼마나 귀여우신지….”

그런 말들을 한껏 행복한 얼굴로 하는 여인을 보며 레워드는 속이 불이라도 삼킨 것처럼 뜨거웠지만, 애써 웃으며 여인의 말에 맞장구쳐줬다.

‘저 정도 엉덩이를 가진 여자가 부인이면 다른 여자는 눈에도 안 들어오겠네.’

레워드는 억지로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너무 서방님 이야기만 했나…?! 죄송해요. 제가 서방님 이야기만 나오면 주체가 안 돼서…!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작게 혀를 내밀며 사과한 여인이 예의 그 사무적인 태도로 돌아갔다. 그 일변한 태도가 레워드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종말교에 대해서는 알고 계신가요?”

묻는 여인의 눈빛이 전과 다르게 날카로웠다. 그 변화에 레워드는 마른침을 삼키면서 준비한 말을 꺼냈다.

“예! 최근 대륙에서 발생하기 시작한 신흥 종교로서! 목적 불분명! 규모 미지수! 전파 방법 또한 미지수로 알고 있습니다! 마왕을 해치운 지금 대륙 연합의 가장 큰 문제라 알려져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대책으로는 어떤 게 있을까요?”

여인이 서류에 뭔가를 적어넣으며 갈색 눈동자로 레워드를 응시했다.

저것이 면접 족보에서 레워드를 가장 괴롭혔던 질문이었다.

도대체 이제 막 입사 지원한 놈에게 자신들도 해결하지 못한 종말교의 대처 방법을 왜 묻는단 말인가?

억울해도 어쩔 수 없었다. 아쉬운 쪽은 자신이었으니까.

레워드는 목을 가다듬으며 여인의 얼굴을 다시 한번 훔쳐봤다.

‘저런 미인에 저런 미친 몸매를 가진 여자가 부인이라니… 젠장… 누군지는 모르지만, 존나 부럽군.’

레워드는 이따 연인의 얼굴에 봉지라도 씌우고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준비한 대답을 꺼냈다.

“일단 첫 번째로 경로의 역학 조사가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전파 방법이 알려지지 않았다 해도, 한 명씩 탐문 조사하다 보면 그 끝이 어디인지,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레워드는 자꾸만 끌리는 시선을 애써 붙잡고 준비한 대답을 꺼냈다. 여기서 떨어지면 죽도 밥도 안되니까… 일단 면접이 먼저였다.

레워드의 목이 마를 때쯤, 준비한 대답이 끝났다.

“…잘 들었습니다. 충분한 대답이 됐습니다. 많이 준비하셨나 본데요?”

여인의 얼굴에 그려진 미소가 레워드의 걱정을 한시름 덜어줬다.

“하하! 거의 한 달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습니다.”

“이런 인재가 저희 연합에 지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잠시 앉아 계시면 다음 면접관분이 오실 겁니다.”

작게 고개를 숙인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면접관…? 면접이 두 번이라는 말은 들은 적 없는데…, 혹시 심층 면접?’

이번이 2차 면접이었으므로, 레워드는 여인의 말에 자신이 붙었음을 직감했다.

미인이 나간다는 아쉬움에 레워드는 그 풍만한 뒷모습을 마음껏 훔쳐봤다.

‘허리가 저리 잘록한데, 어찌 엉덩이가 저리… 부럽다! 부러워!!’

그런 시선을 눈치챘을까, 문고리를 잡은 여인이 고개를 돌려 레워드를 응시했다. 그에 레워드는 여인의 엉덩이를 훔쳐보던 시선을 황급히 돌렸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질문이 있는데, 해도 될까요?”

여인의 목소리에 담긴 부끄러움에 레워드는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예예! 뭐든 하셔도 됩니다! 어떤 질문이라도 다 가능합니다!!”

“…풋. 별 건 아니고요. 오늘 서방님을 보러 갈 건데, 저 괜찮나요?”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여인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심장이 내려앉았지만, 그 여인이 향하는 곳에 다시 불이 '확' 하고 올랐다.

“예! 제가 본 그 어느 여자보다 아름답습니다!”

다만, 지금은 참아야 할 때였다.

“고마워요! 그럼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랄게요.”

다시금 부드럽게 미소지은 여인이 문을 열고 나갔다.

밖으로 나와 문을 닫은 서아의 얼굴은 전과 달리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결과는 어떻습니까?”

문밖에 서 있었던 여자는 그 변화에 혀를 내두르면서 사무적인 질문을 했다.

“종말교 첩자입니다. 점점 늘어나는군요. 또 저번처럼 자살하지 않게 조심하세요.”

여인을 발견한 서아의 얼굴에 다시금 부드러운 미소가 자리 잡았다. 서아의 말에 여인이 어딘가로 수신호를 보냈다.

“…종말교는 자신의 존재조차 잊을 만큼 강한 세뇌로 유명한데, 서아 님은 어찌 그렇게 잘 찾는 겁니까?”

여인의 물음에 서아는 손가락으로 턱을 쓸면서 잠시 고민하고 대답했다.

“세뇌당한 이에게서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아요. 진실도 거짓도. 그걸로 찾는 거죠.”

서아의 말에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마지막 질문은 그를 파악하기 위해서…?”

이내 생각의 끝에 다다른 여인이 작게 감탄했다.

“그거는 그냥… 정말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오랜만에 보이는 모습인데 이쁘게 보였으면 해서요. 저 괜찮나요…?”

금세 얼굴이 붉어진 서아의 모습에 여인은 같은 여자임에도 홀릴 것 같아, 작게 침음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본 어느 여자보다 아름다우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럼 고생하셨습니다. 모쪼록 좋은 휴가 되시길.”

종말교의 첩자가 계속해서 섞여 들어오는 상황에서 서아의 빈자리는 크겠지만, 대륙 연합이 세워지고 단 하루도 쉬지 않은 그녀들의 휴가를 거절할 수 없었다.

물론, 그것을 제외하고서라도….

‘뭐?! 내가 쉰다는데 너희가 뭔데?!! 맞을래?!’

이내 한 여자가 떠오른 여인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아는 고개 숙인 여인에게 작게 손을 흔들고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바쁜 날이었다.

마왕을 무찌르고 내려오는 서방님을 마중 나가기로 한 날이었으니.

‘…아까 그렇게 뚫어지라 보는 것을 보니 괜찮은 거겠지?’

혹여나, 전보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아름다움이 상했을까 걱정한 서아는 엉덩이에 슬그머니 힘을 주며 위층으로 향했다.

“야!! 너네!! 일 이따위로 처리할래?!! 내 남편이 누군지 알아?! 내 남편이 용도 잡고 마! 마왕도 잡고! 그런 사람이야!! 그런데 내 말을 무시해?!”

“압니다! 알아요! 제발 진정을 좀….”

“너희가 일을 이따위로 처리하는데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냐고!! 잠이 와?! 잠이 오냐고!! 권력 펀치!!!”

“으아악!! 진정을…!”

우당탕탕!

문을 열기도 전부터 느껴지는 소란에 서아는 작게 웃으며 문을 두드렸다.

“누구야아!!”

“대장 저에요.”

“아! 들어와!”

붙 같이 떨어진 허락에 서아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의 모습은 정말 난장판이었다.

이미 몇 명의 사람들이 남녀 불문하고 얻어터져 땅을 뒹굴고 있었고, 청렴해 보이는 남자 하나는 케이트에게 멱살이 붙잡혀 흔들리고 있었다.

남자의 눈에 든 멍을 보며 서아는 작게 웃었다. 늘 가벼운 티와 편한 바지를 입고 있었던 케이트였지만, 오늘은 특별히 신경 썼는지,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상태였다.

“잠깐만 있어 봐! 이 멍청이들이 일 처리를 개같이 하잖아! 개같이!!”

물론, 그런 화려한 드레스도 불같은 케이트의 성질은 막지 못했지만.

“대장님. 조금 진정하시는 게 좋습니다.”

주변과 위화감이 들 정도로 혼자 단정하게 앉아 서류를 넘기는 혜진이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렸다.

“진정하게 생겼냐고!! 너네! 내가 분명 오늘까지 일 끝내놓으랬지!!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기한을 줬는데 왜 못 끝내냐고!!”

“어…어제 말씀하셨잖아요….”

케이트에게 멱살이 붙잡힌 사내가 억울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작게 항변했다.

“그래서 뭐?! 안 된다고?!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내 남편이 용도 잡고 마왕도 잡았는데!! 너네는 잠이 와?! 너네도 용 잡으러 갈래?! 그게 낫겠지?! 최전방으로 배치 해줘?!”

“아…아무리 그렇게 쪼으셔도….”

“이게 아직 입이 열리지?!! 호가호위 펀치!!”

“으아악!! 아아악!! 하겠습니다! 할게요!! 으아아악!!”

생각보다 길어질 듯한 느낌에 서아는 옆으로 가서 조용히 커피를 탔다.

커피 향을 느끼며 서아는 계속해서 엉덩이에 힘을 줬다 풀었다 했다.

“사…살려줘요!! 제발!! 아아악!”

대륙 연합의 평범한 일상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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