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221화 (221/233)

〈 221화 〉 파멸을 부르는 태풍의 핵.

* * *

“흐으윽… 끄으윽….”

마치, 어디 팔려 가는 사람처럼 서럽게 우는 서아의 손을 잡고 천막으로 향했다.

천막 앞에 서 있던 여인들이 인상을 찡그렸지만, 너무 서럽게 우는 서아를 보며 혀를 차고 자리를 비켜줬다.

“죄송해요. 제 아내 상태가 심각해서.”

“흐어어엉… 심…심각해요?! 참고 있었던 거에요?! 흐어엉….”

걸음 마다 눈물을 흩뿌리며 우는 서아를 잡아끌어 천막으로 들어섰다.

“눈 감으라고 했습네다!!”

“아…아니 눈을 감고 진료를 어떻게 보라는 말인가!”

“손도 대지 마십쇼!! 이건 주인 있는 보지입네다!”

“그럼 나가게! 손도 안 대고 눈도 안 뜨면 어떻게 진료를….”

딸깍!

“살고 싶으면 알아서 방법을 강구하십쇼! 오 초 드립네다.”

“이…이게 무슨….”

“오!”

안쪽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쟤가 왜 여기에 있어.’

안쪽에 덧댄 천을 거두자 이지수가 은색 리볼버로 스칼의 미간을 겨누고 있었다.

“사!”

“잠…잠깐만 시간을 주게! 어떻게든 방법을 마련할 터이니….”

“삼!”

“잠깐만 기다려 달래도! 대체 오 초 안에 어떻게…!”

“이!”

“알았네! 알았어! 깨달았어! 방법이 있네!”

“일!”

“끄아아악!!”

“이지수!”

잔뜩 화가 난 이지수가 스칼의 미간에 총알을 박아 넣기 전에 황급히 나섰다.

“무능함에 대한 대가로… 앗! 에이든 동무!”

“흐어억!!”

스칼이 자리에 주저앉으며 공기 빠지는 소리를 내었고, 나를 발견한 이지수는 아무렇지 않게 총을 갈무리했다.

“여기서 뭐해?”

마치 정말 죽음을 본 것처럼 숨을 헐떡이는 스칼을 힐끗거리며 이지수에게 물었다.

“아! 에이든 동무에게 서프라이즈 이벤트로 처녀막 10개를 새로 들일까 해서 와봤습네다! 소문이 날 정도로 꽤 유능한 듯했는데, 저를 희롱하려는 것 아니겠습네까? 그래서 혁명시키려고 했습네다!”

이지수가 의자에서 냉큼 일어나며 해맑게 웃었다.

‘애미 시발… 처녀막 10개를 들인다는 건 또 뭐야.’

이지수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 하나하나가 내 정신을 혼미하게 했다.

“그런 이벤트는 굳이 안 해도 돼. 보지 마법사! 정신 좀 차려봐요!”

“제…제발… 허어억! 자네군!”

“그래도 남정네들은 처녀막을 좋아하지 않습네까? 기왕이면 많은 게 좋다니까….”

땅에 웅크려 중얼거리는 스칼의 어깨를 두드리자, 화들짝 놀란 스칼이 뒷걸음질 치다가 나를 발견했다.

“어쩐지. 이상한 손님이 왔다 싶었더니… 역시 자네가 문제였어.”

스칼이 두려움이 가득 섞인 눈빛으로 마치 격파하듯 손을 붕붕 흔드는 이지수를 흘겨보며 중얼거렸다.

“그게 무슨 섭섭한 소리예요. 이렇게 다시 보니까 좋네요.”

“…그래 그럼 이만 억!”

“또 어디를 도망가려고 해요! 진짜 아니라니까!”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려는 스칼의 뒷덜미를 잡았다.

“저번에도 그렇게 말했지만, 암흑 시장이 아예 사라지지 않았나! 젠장! 이거 놓게! 도망가야 해! 나는 아직 더 살고 싶다고!”

스칼이 내 손을 털어내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보지 마법사에 불과한 스칼이 내게서 벗어날 수 있을 리 없었다.

‘…맞는 말이긴 하네.’

스칼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됐건 암흑 시장이 없어지긴 했으니까.

이 억울함을 풀지 않으면 그 모든 게 정말 내 탓인 것만 같아, 황급히 입을 열었다.

“아니, 다 사연이 있다니까요! 그리고 이번에는 진짜 아무 일도 없을 거라니까. 이런 얼음만 있는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겠어요.”

“그것과 상관없이 자네에게서 멀어져야 오래 산다니까! 아직 보지 만져서 번 돈 쓰지도 못했는데…! 벌써 죽기 싫네! 이것 좀 놔주게!”

도대체 얼마나 돈을 많이 쌓았으면 저렇게 억울할까 싶었지만, 그렇다고 놔줄 수 없었다.

“뭔 사내가 말이 그리 많습네까! 혁명시키기 전에 조용히 하십쇼!”

“도…도대체 이 여자는 누군가! 왜 자꾸 내 머리에 총구를 겨누는 거야!”

이지수가 짜증 난 목소리로 소리치며 총구를 겨누자, 스칼이 황급히 양손을 들어 올리며 내게 물었다.

“총 좀 치워봐. 내가 아는 사람이야.”

“에이든 동무 덕분에 산 줄 아십쇼!”

살짝 인상을 찡그린 이지수가 가슴골에 은색 리볼버를 쑤셔 넣었다. 그 큰 리볼버가 가슴골 사이로 사라지는 건 언제봐도 신기했다.

“후우­. 도망 안 갈 테니 이거 놓게.”

깊게 한숨을 내쉰 스칼이 내 손을 툭툭 쳤다.

“다 사연이 있다니까요.”

“알았네. 알았어! 그런데 도대체 저 여자는 누구인가?”

“아­ 그때 못 봤었지. 제 부인 중 하나에요.”

“…부인 중 하나? 아… 자네의 결혼 소식은 들었네, 아니 대륙에 있는 이라면 다 들었겠지. 축하하네.”

“하하! 감사합니다. 다 스칼이 강화해준 이 물건 덕분이에요.”

“잘 쓰고 있다니 다행이군.”

이제야 진정한 듯한 스칼이 분주히 움직이며, 차를 준비했다.

“서아, 서윤도 앉아요.”

“흐윽…흐윽….”

그에 나는 중간에 놓인 식탁에 앉아, 옆자리를 가리켰다.

내 말에 서아가 결심한 듯 표정을 굳히더니, 내가 가리킨 의자가 아니라 흉측하게 생긴 진료용 의자에 가서 앉았다.

서럽게 울면서도 주섬주섬 진료 의자에 앉아 입술을 질끈 깨문 서아의 모습이 퍽 귀여워 그냥 내버려 뒀다.

“…보지 마법사라고?”

“응. 내가 예전에 알던 사람이야.”

“참… 인맥하고는.”

나와 약간 떨어진 의자에 앉은 서윤이 혀를 찼다.

“보지 마법사가 어때서? 온 김에 너도 진료 좀 받자.”

“…뭐라는 거야. 꺼져.”

서아가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서윤의 말투는 예전처럼 날카로웠다.

“보지 모양 도구를 이렇게 늘여 놓다니, 저 사내는 참말로 변태가 분명합네다.”

추운 날씨에도 거의 헐벗은 이지수가 보지 모형들에 손가락을 넣는 게 더 이상했지만,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그것 비싼 것들… 아니네… 아니야.”

그런 이지수를 보며 허망하게 중얼거린 스칼이 우리 앞에 찻잔을 놓고 건너편에 앉았다.

“그래. 그럼 다른 여성분들도?”

“네. 다 제 부인이에요. 얘는 서윤. 저쪽은 서아. 저기에 있는 가슴 큰 애는 이지수.”

“혁명!”

“…강아지 부르듯 부르지 말지? 짜증 나니까.”

“서윤은 이렇게 투덜대다가도 이렇게 여기를 주물러주면….”

“흐아앗! 뭐야! 손 떼! 뭐 하는 거야!”

“이것 봐요. 귀엽죠?”

배꼽 부근을 손으로 문지르자, 금세 얼굴이 붉어진 서윤이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내 손을 쳐냈다. 그 모습이 마치 잔뜩 날이 선 고양이 같아 우스웠다.

“…그래.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군.”

“스칼은 어쩌다 이런 좆같이 추운 곳까지 왔어요?”

“그게 다 자네… 아니지 아니야. 그냥 그런 일이 있었네.”

내 질문에 잠깐 울컥했던 스칼이 차를 마시며 진정했다.

“보지 마법사의 삶도 기구하네요. 이런 변방까지 떠밀려 오다니. 수도에서는 보지 마법사 경쟁에서 진 건가요?”

“지기는 누가 져! 내가 유일하고 제일인 보지 마법사인데! 거의 보지 대 마법사네! 하여튼 그런 일이 있었네. 자네는 왜 여기에 있나?”

손가락으로 찻잔을 쓸면서 묻는 스칼을 보며 나는 아직 내 자랑을 듣지 못한 상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큼큼…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스칼을 만나고 나서부터….”

나는 천천히 예전 일을 떠올리듯, 기억을 되짚어가며 설명했다.

“…자네가 진짜 용을 잡았다고? 허허 당연히 부풀려진 줄 알았건만.”

“진짜로 좆같이도 큰 용이었는데, 내가 딱하고 나타나서!”

“딱 말입네다! 딱!”

“검을 들고! 갈라져라!! 하니까!”

“우오오오! 갈라져라!! 한 것입네다!”

“용이 정확히 반반이 된 것 아니겠습니까! 하하 이것 참!”

“끄응… 대단하군.”

스칼이 옆에서 호응하는 이지수를 곁눈질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용을 잡고 나서는 대륙 연합을 위해서 엘프 왕국으로 향했는데… 아! 스칼 그거 알았어요? 엘프의 애액은 냄새가 다 다르다는 걸. 레몬향도 있고 군고구마 향도 있어요.”

“…처녀교 때 그런 연구를 듣긴 했었네만, 구하기 힘들어 표본이 부족했었지.”

“생긴 것도 꽃봉오리처럼 생겨서 아름답더라고요.”

“그런가? 나는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

“흐어어어엉!! 죄송합니다! 서방님! 보지가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그 어떤 고통스러운 수술이라도 받을 테니 제발 절 버리지 말아 주세요!!”

흉측한 의자에 앉아 울고 있던 서아가 돌연 언성을 높이며 애절하게 소리쳤다.

“…자네 부인은 하나같이 대단하군.”

“원래 저런 여자가 아닌데, 그냥 제가 장난을 좀 쳐서 그래요. 아무튼, 그다음에는 마왕을 잡으러 마왕성으로 향했는데… 아! 그리고 그 마물한테 따먹혔던 드숀 기억해요? 제가 그놈 출세시켜줬어요.”

“그… 엉엉 울던 소년 말인가?”

스칼은 점점 내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그럴수록 난 신이 나서 더욱 열을 다해 말했다.

이미, 내 주변 인물들은 내 이야기에 더는 반응하지 않았기에, 스칼은 좋은 대화 상대였다.

“허어­ 정말 공화국의 수장이 되었단 말인가?”

“뭐… 약간 바지사장 느낌이기는 하지만 일단은요. 그러다가 마왕성으로 가서… 마왕의 배를 딱! 피가 쫙!”

흉물스러운 의자에 앉아 엉엉 울던 서아는 내가 ‘서아 보지 이뻐요!’라고 외치고 나서야 눈물을 그쳤다.

의자에서 일어난 서아는 제집처럼 과일을 꺼내와 언제 울었냐는 듯 다소곳이 앉아 과일을 깎았다.

그런 서아의 변화에 스칼은 찜찜한 표정으로 고개를 작게 젓고는 다시 내 이야기를 경청했다.

심심함을 견디지 못한 이지수는 보지 모형을 다섯 개 정도 깨부수었고, 스칼은 이미 포기한 듯 말리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스칼과의 이야기는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재밌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던 차가 중간에 식었지만, 서아는 몇 번이나 새로 내왔다.

안주인이 바뀐 모양새였지만, 스칼은 딱히 불평하지 않았다.

“…봐봐요. 아무 일 없죠? 별일 없을 거라니까.”

“크흠. 아직 모르는 일 아닌가. 고작 반나절밖에 안 지났는데.”

“애초에 이런 얼음밖에 없는 곳에 발생할 사건이 뭐가 있어요. 심지어 마왕까지 제가 처리하고 왔는데.”

“…그렇기도 하군.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말이야.”

고개를 작게 끄덕인 스칼이 찻잔에 남은 차를 입에 털어 넣었다.

“이러고 있지 말고 저희 숙소로 가죠. 제 나머지 부인들도 소개해줘야 하니까. 그리고 서아가 요리를 기가 막히게 잘해요.”

내 칭찬에 미소지은 서아가 작게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지금이 딱 좋은 듯한데.”

“무슨 겁이 이리 많아졌어요? 처녀교 내부 고발하던 스칼 맞아요?”

“…최근에 이상한 놈을 만난 적 있어서. 아! 자네 이야기 아니네. 물론 자네도 이상하지만.”

잠시 고민하던 스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오랜만에 만났으니, 대륙을 지킨 영웅이 된 친구에게 내가 뭐라도 해줘야지. 내 보지 대마법사의 명예를 걸고 자네 부인들의 보지를 새것처럼 깨끗이 만들어주겠네.”

물품을 챙기는 스칼의 얼굴은 전설 속의 명의처럼 사명감과 엄숙함이 깃들어 있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그…그렇다고 외간 남자에게 그곳을 보이는 것은 제 가치관에 어긋나는 일이라….”

서아가 내 뒤로 숨으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까 저 여자가 내 머리에 총구를 겨누는 순간, 큰 깨달음을 얻었으니…, 저는 그대들의 보지를 건드리지도, 보지도 않을 겁니다.”

용도를 알 수 없는 기이한 물품까지 가방에 넣은 스칼이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역시! 총은 늘 해결책을 알고 있습네다! 안 그렇습네까?”

스칼의 대답에 또다시 손에 리볼버를 쥔 이지수가 켈켈­ 거리면서 웃었다.

“…처음에는 부러웠는데, 이제는 별로 안 부럽군.”

이지수를 곁눈질한 스칼이 작게 말하고는 가방을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오늘 진료 끝났습니다! 당분간 진료 없을 예정이니 그렇게들 알고 계세요.”

“안 돼요! 처녀라고 그이한테 말해뒀단 말이에요 내일 동침하기로 했는데!!”

“그…그럼 피가 나오는 물약이라도!”

밖으로 나가자, 여자들이 당황한 얼굴로 스칼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당신! 저번에도 처녀막 받아가지 않았습니까! 자꾸 그렇게 처녀라고 사기 치고 다니면 큰일 날 수 있어요! 이미 소문은 날만큼 났을 텐데!”

“하…하지만, 그렇게 해야….”

“자! 다들 돌아가세요! 오늘 진료 끝났습니다!”

그 후로도 여인들은 미련을 못 버렸지만, 이지수가 총을 꺼내 겨누자 화들짝 놀라며 도망쳤다.

“…역시 총은 답을 알고 있습네다.”

명대사처럼 중얼거린 이지수가 리볼버를 다시 가슴골에 집어넣었다.

“정말 아무 일 안 일어나는군.”

천막의 문을 기묘한 도구로 잠근 스칼이 묘한 눈길로 나를 쳐다봤다.

“그렇다니까요! 제가 무슨 사고만 치고 다니는 줄 알아요? 저도 피해자라니까요.”

그런 스칼의 반응에 내 혐의가 벗겨진 듯하여 작게 안도했다.

‘역시 그동안의 사고들은 내 잘못이 아니었어.’

“신기하군. 나는 자네가 파멸을 부르는 태풍의 핵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이렇게 아무 일 없다니, 이상해… 세상이 멸망이라도 하려는 건가?”

“제가 무슨 대재앙도 아니고…, 그런 불길한 소리를 해요?”

스칼이 침침한 눈으로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에 나도 따라 시선을 돌렸다.

하늘은 여전히 어두운 먹구름에 태양이 가려져….

“애미 시발?”

마치 스칼의 말이 신호라도 된 듯, 굵게 깔려있던 먹구름들이 꾸물거리면서 옆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왕을 잡았기 때문에 늦게라도 구름이 걷히나 싶었지만, 거기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마치 누군가 모래를 뭉치듯 굵은 먹구름들이 서로 똘똘 뭉쳐 양옆으로 밀려났고, 그 자리에는 모두가 기대한 따스한 햇볕이 아니라 서리처럼 차가운 느낌의 검은빛이 있었다.

검은빛이라는 역설적인 단어만큼 저것에 어울리는 것이 없으리라.

세상을 가리던 먹구름은 점점 밀려 시야 밖으로 사라졌고, 그 자리를 검은빛이 가득 채웠다.

검은빛에서 느껴지는 불길함에 나는 습관적으로 검 손잡이를 잡았다.

이내, 검은빛이 깜박였고, 그제야 나는 그것이 뭔지 깨달았다.

하늘을 뒤덮은 것은 하나의 큰 눈망울이었다. 그 크기가 너무나 커서, 대륙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듯했다.

불길한 눈망울은 마치 유리병 속에 가둔 물고기를 쳐다보듯,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역시! 자네가 문제야! 자네가 문제라고!! 빌어먹을! 종말이라니!!”

나를 지목하며 길길이 날뛰는 스칼의 목소리에 항변하고 싶었지만, 하늘의 눈동자가 너무 또렷하여, 할 말이 없었다.

그 불길한 하늘의 눈동자는 지상 모든 이의 가슴에 서늘한 단어 하나를 깊이 꽂아 넣었다.

‘종말.’

“왜 하필 자네랑 자꾸 엮이냐 이거야! 젠장!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아직 보지 만진 돈, 쓰지도 못했는데!!”

억울함이 가득 담긴 스칼의 목소리가 허공을 맴돌았다.

“그… 일단 저녁이나 먹으러 갈까요?”

스칼의 울부짖음이 더욱 커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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