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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222화 (222/233)

〈 222화 〉 종말에 관하여.

* * *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비가 거칠게 쏟아지는 어느 섬.

한 사내가 비를 맞으면서 걷고 있었다. 그는 비를 맞는 게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지, 주변을 구경할 정도로 발걸음이 느긋했다.

‘…이게 정녕 인간이 한 일인가?’

마녀의 위업은 단편적인 기억으로 사내의 머릿속에 있었지만, 실제로 보는 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사내가 걷는 섬은 본래 최고의 휴양지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던 섬이었는데, 지금은 그저 수백… 아니 수천 개의 폭탄이라도 터진 듯 뒤집혀 있었다.

사람들이 뜨거운 해를 피해 숨던 야자수 나무들은 이미 뿌리까지 뽑혀 바다로 떠내려간 지 오래였고, 하얀색으로 통일되어 시원한 인상을 주던 집들은 무너져 모래로 변해 있었다.

그렇게 생기가 없어진 섬에 남은 것은 각양각색으로 죽은 드래곤의 시체들이었다.

어떤 시체는 불에 타죽었는지, 온몸이 그을렸고 어떤 시체는 무거운 것에 깔려 죽었는지, 짓이겨 진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내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붉은 드래곤의 찢어진 날개를 보며 입맛을 다시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드래곤의 시체들은 일정한 방향으로 이어져 있었다. 사내는 마치 드래곤의 안내를 받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그 시체로 이루어진 길을 따라 걸었다.

한참을 걸어 20여 구의 시체를 지나쳤을 때쯤, 사내의 걸음이 멈췄다.

멈춘 사내의 앞에는 마치 산맥을 거꾸로 박은 것처럼 깊고 넓게 패인 구덩이가 있었다.

그 큼지막한 구덩이에는 거인이 손으로 뜯은 것처럼 잘게 찢어진 드래곤의 시체들이 흩어져 있었고, 중앙에 검은 머리 소녀가 엎어져 있었다.

소녀는 잠이라도 자는 듯, 비를 그대로 맞으며 땅에 얼굴을 박고 누워 있었다.

일어나라는 듯, 비가 계속해서 소녀를 거칠게 두들겼지만, 소녀는 마치 죽은 것처럼 작은 미동도 없었다.

사내는 뛰어난 시력으로 거친 빗줄기 속에서도 소녀의 등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확인했다.

소녀를 발견한 사내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천히 구덩이로 향했다. 이내 구덩이 앞에 도착한 사내는 무릎을 꿇고 미끄러지듯이 내려갔다.

잘게 부서진 돌들에 사내의 무릎이 찢어지고 피가 흘렀지만, 사내의 얼굴에 나타난 감정은 환희였다. 사내는 마치 경배하듯, 조심스럽게 소녀에게 다가갔다.

“아아….”

이내, 목소리가 닿을 거리에 도착한 사내가 메마른 목소리를 내었다. 그 목소리에 담긴 것은 기쁨 같기도, 애절함 같기도 하여 모호했다.

“…뭐야.”

땅에 얼굴을 박고 있던 소녀가 얼굴만 빼꼼 들어 사내 쪽을 응시했다. 본래 소녀의 검은 눈에 가득했던 총기는 사라져 있었고, 그 자리를 무거운 피로가 채우고 있었다.

“…멍청한 마녀시여.”

사내는 입을 뻐끔거리다, 앞말은 삼켰다.

사내와 눈이 마주친 소녀는 사내에게 담겨 있는 자신의 흔적을 보았다. 그 마나 배열은 뚜렷하게 자신의 흔적이었지만, 자신보다 격이 높아 묘했다.

“아.”

자신의 마나지만, 그 격이 높은 희한한 상황에 잠시 미간을 찌푸리던 소녀의 얼굴이 펴졌다. 소녀의 명석한 두뇌는 찰나에 상황을 파악하고 제일 합리적인 분석을 내놓았으니.

“…3회차였네.”

사내는 소녀의 말에 동의하는 듯, 작게 감탄하며 땅에 깊숙이 머리를 박았다.

소녀는 이내 흥미가 다한 듯, 사내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 모습이 마치 고장 난 것처럼 삐꺽거렸지만, 소녀는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기이한 각도로 꺾여 있던 소녀의 발목이 천천히 본래 자리로 돌아왔다.

마침내 소녀는 일어났고, 사내는 그런 소녀의 아름다운 눈망울 아래 깊게 자리한 검은 피로를 확인했다.

그에 사내는 머릿속에 자리 잡은 기록을 빠르게 훑었고, 이내 소녀의 문제점을 깨달았다.

‘잠을 못 자나 보군,’

매일 밤, 소녀는 자신의 품에서 피를 토하며 죽어가던 자신의 전부인 그의 모습이 떠올라 잠을 자지 못했으리라. 그녀도 그랬으니.

“…너무 짧았는데.”

기어코 반듯이 선 소녀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 작은 목소리에 담긴 것은 찰나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눈에 굵은 빗물이 들어갈 텐데도 소녀는 깜박이지 않고 그저 갈라지는 하늘을 응시했다.

사내는 자신이 그녀를 찾아온 이유를 떠올렸다.

“끝이 또다시 왔습니다.”

“상관없어. 다시 죽이면 되니까.”

망설임 없는 소녀의 대답에 사내는 쓰게 웃었다. 어쩌면 그녀답기도 했다.

“…이번에는 당신이 아니라 그가 해야 합니다.”

잠시 머뭇거리며 꺼낸 사내의 목소리에 그제야 소녀의 시선이 돌아갔다.

“아니, 내가 해. 뭐든 다 내가 할 수 있어. 에이든은 아무 걱정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모두 내가 하면 되니까. 응 에이든은 내가 지킬 거야.”

“…그가 해야 합니다.”

급격하게 무거워지는 공기에 사내는 마른침을 삼키며 억지로 말을 끄집어냈다.

사내를 응시하는 소녀의 가라앉은 검은 눈망울은 의중을 파악하려는 것처럼 가장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는 듯했다.

잠깐의 적막이 지나고, 소녀는 작게 침음성을 내었다. 아마 전 회차의 자신이 뜻하는 바를 깨달았으리라.

왜 그가 마지막을 장식해야 하는지, 그녀가 그에게 어떤 것을 바라고 있는지…. 설명 하나 없이도 소녀는 완벽하게 추론했으리라.

“그게 그녀의 의지야? 멍청하고 이기적이네.”

회차가 다르더라도 자기 자신을 멍청하다고 부르는 소녀의 말에 사내는 어찌 반응해야 할지 잠시 머뭇거렸다.

“멍청한 쓰레기. 나는 그런 이기적인 쓰레기와 달라. 에이든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니까. 고작 이기심에 에이든에게 그런 무게를 지게 하지 않을 거야.”

…다 내가 하면 되니까.

작게 중얼거린 소녀가 손을 가볍게 휘저었다. 그러자 물에 잔뜩 절어있던 소녀의 로브가 언제 그랬냐는 듯, 뽀송뽀송해졌고 내리는 비도 그녀에게 닿지 않고 옆으로 튕겨 나갔지만, 그녀의 눈 아래에 자리 잡은 피로는 그대로였다.

“…응 내가 다 할 수 있어.”

마치 다짐이라도 하는 것처럼 작게 중얼거린 소녀가 하늘에 또렷이 떠오른 눈망울을 보며 손을 저었다.

그러자 사내와 소녀가 동시에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섬은 다시 조용해졌다.

마치 무덤처럼.

***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을 가르고 나타난 검은 눈망울을 보며 모두가 본능적으로 ‘종말’을 떠올렸다.

대륙 위에 있는 이 중에 그 눈망울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다가올 종말에 대한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어떤 이는 단순히 현재의 굶주림을 풀기 위해 부잣집의 곳간을 털었고.

어떤 이는 연인과 손을 잡고 집에 틀어박히기도 했다.

어떤 이는 모든 걸 포기하고 먼저 목을 매기도 했다. 이는 종말 이후에 죽으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꽤 급증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포기하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강함과 정신력은 비례하지 않다는 말처럼 그중에는 강자도 있고 약자도 있었다.

그들은 당면한 위기 앞에서 누가 부르지 않았음에도, 대륙의 제일 큰 축인 ‘제국’으로 향했다.

더는 태양이 뜨지 않았지만, 대륙의 태양이라 불렸던 제국으로.

각자의 강함과 상관없이 그들은 위기를 헤쳐나가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유례없이 많은 이들이 모인 제국의 분수대 앞에 덩치가 곰처럼 큰 사내가 멍하니 앞에 붙은 종이를 보고 있었다.

사내는 눈을 비비며, 종이에 쓰여 있는 글자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어이­ 왜 멍하니 있어! 늦게 가면 기합 받는다니까!”

검을 등에 두 개나 맨 남자가 그런 사내의 등을 툭­ 하고 쳤다.

“아아… 칼트. 알겠어.”

그제야 곰처럼 큰 사내가 큰 눈을 끔벅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튼 곰처럼 느려서는… 뭘 보고 있었던 거야?”

“그게… 아는 이름이 보여서 말이지.”

칼트라 불린 이의 물음에 사내가 굵직한 손가락으로 앞에 크게 붙은 종이를 가리켰다.

“아­ 저거 출정식이잖아. 근데 저기에 네가 아는 이름이 있다고?”

칼트의 눈에 담긴 의문에 사내는 쓰게 웃었다.

하급 용사인 자신이 아는 인물이 출정식 명단에 있을 리가 없다는 건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아니겠지.’

익숙한 세글자에서 꺼내진 오랜 기억을 애써 집어넣으며 사내는 쓰게 웃었다.

“그냥 친구 이름과 같아서. 이름만 같은가 보군.”

“크흐흐­ 당연하지! 저기에 하급 용사인 우리가 아는 인물이 있을 리가 있나! 그만 넋 놓고 빨리 오게! 이러다 늦는다니까! 또 저번처럼 단체로 기합받으면 이번에는 쉴드 못 쳐줘.”

“그래, 가자고!”

사내는 칼트를 따라 움직였다. 사내처럼 중무장 한 사람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생각 없이 걸어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내는 마치 물길에 휩쓸린 것처럼 멍하니 움직이면서 옛 인연을 떠올렸다.

이내 사내는 바짝 군기가 든 병사들이 모인 곳에 도착하였다.

모인 병사들은 굳은 얼굴로 앞을 보며 각자의 병장기를 매만지고 있었다. 공간을 가득 채운 쇠 냄새와 땀 냄새에 인상이 절로 찡그려졌다.

“거기! 놀러 왔어?! 입 닫아!”

“뛰어! 뛰어! 뛰어! 어쭈? 걷는다?”

“잘못했습니다!”

“정신 바짝 차려!!”

곳곳에서 들리는 호통과 악에 받친 목소리가 자꾸만 분위기를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용사 아카데미랑 비슷하면서도 다르네.’

강압적인 분위기는 언뜻 비슷하기도 했지만, 어깨를 짓누르는 공기는 더욱 무거웠다. 아카데미와 달리 이들은 목숨을 걸고 모인 것이므로.

“젠장, 비 오는데 모아놓고, 출정식이라니 악취미구먼.”

“완전… 애미 시발이지.”

칼트가 옆에서 사내에게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그에 사내가 작게 웃으며 어울리지 않는 비속어를 입에 담았다.

“…자네가 그런 욕도 할 줄 알았나? 의외군.”

사내의 거친 욕에 칼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친구에게 배웠거든.”

“…조용!! 시작합니다!”

앞쪽에서 들리는 호통에 사내는 입을 닫았다.

이내 광장 앞에 마련된 단상으로 누군가가 걸어 올라왔다. 풍성한 금발에 작은 키, 터질 것처럼 큰 가슴. 이제는 완연한 숙녀가 된 얼굴.

‘…케이트?’

여인은 자그마한 덩치에도 불구하고 수천 명 앞에 나와 홀로 당당히 단상에 섰다. 여인의 옆에서 보좌하던 인물이 오히려 더 긴장했는지, 얼굴이 굳어 있었다.

홀로 단상에 서서 오연한 눈빛으로 군중을 훑어보는 그 시선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위축되게 만들었다.

마치 짬이 많이 찬 장군을 보는 듯한….

“부대 차렷!!!”

앞쪽에서 들리는 호통에 사내는 황급히 자세를 바로 세웠다.

“통합 지휘 사령부 장관님을 향하여 경례!!”

““대륙!””

잔뜩 기합이 찬 병사들의 입이 하나가 된 듯, 큼지막한 함성이 광장을 가득 채웠다.

‘…장관?’

경례를 올리면서 사내는 여인의 지위에 감탄했다. 제국의 황녀라고 해도 어린 나이에 대륙 연합의 장관까지 올라가다니, 본신의 능력이 대단한 듯싶었다.

“…부대 쉬어.”

광장이 흔들릴 정도의 큰 경례를 받았지만, 여인은 표정 변화 없이 담담하게 말하며 손을 휘저었다.

“부대 쉬어!!!”

호통에 마치 한 몸처럼 병사들이 일제히 뒷짐을 지었다.

침묵 속에서 여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반갑다. 통합 지휘 사령부 장관 클레어 아리안 비헨 드 에포닌이다.”

조용히 침묵하며 집중하는 병사들을 보며 여인은 말을 이었다.

“여기에 온 것 하나만으로 그대들은 자부심을 품어도 좋다. 종말이니 뭐니 떠들면서 포기하고 울기만 하는 녀석들이 대부분이니까 말이야.”

‘…정말 다른 사람 같네.’

사내는 담담히 말을 이어나가는 과거의 인연을 보며 감탄했다.

“…저 훔쳐보는 괴상한 눈동자가 어떤 위협이 될지 모르지만, 그것은 전에 없을 정도로 큰 위협이 될 것을 그대들도, 나도 알고 있다. 어쩌면 예상과 다르게 위협이 안 될 수도 있겠지.”

태양이 사라지기 전의 맑은 하늘을 연상시키는 여인의 푸른 눈동자가 빛났다.

“하지만, 나는 나의 직감과 지휘부의 분석을 믿는다. 우리는 멀지 않은 시기에 저 눈동자가 우리에게 뚜렷한 위협으로 다가올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니, 우리는… 뭐야?”

담담히 말을 이어가는 여인의 등을 검은색 머리의 여자가 두드렸다.

‘…혜진?’

그 얼굴도 사내가 과거에 알고 있던 인물과 닮았다. 자꾸만 등장하는 과거의 인물들에 사내는 자신의 친우를 떠올렸다.

‘어쩌면…?’

소문으로 친우의 이름이 들려올 때도, 이름만 같은 사람이라 치부하고, 계속해서 찾았던 자신의 제일 친한 친구.

“…아니 걔가 원한다 해도 또 무슨 꼴을… 알았어. 후­ 그래 사기 증진에도 좋으니까. 오라 그래. 애가 왜 갑자기 연설에 맛 들여서….”

이내 여인이 작게 한숨을 쉬면서 손을 저었고, 검은 머리 여인이 고개 숙이고 뒤로 내려갔다.

“…대륙을 구하겠다는 의지로 모인 그대들 앞에 소개할 인물이 있다. 그대들도 모두 알고 있을 거니까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겠지.”

인상을 찡그린 여인이 뒤를 힐끗 보더니 다시금 말을 이었다.

“…영웅 에이든이다.”

여인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여기에 모인 모두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태양이 사라진 지금, 대륙의 태양이라 불리는 자.

단신의 힘으로 용의 머리를 잘라낸 자.

오랜 시간 인류의 위협으로 자리했던 마왕을 끝낸 자.

영웅이라는 두 글자만 말해도 모두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이름.

““와아아아아!! 인류의 희망!!””

여인의 뒤로 등장한 훤칠한 영웅의 모습에 관중이 환호했다.

영웅은 빛으로 만든 것처럼 빛나는 망토를 휘날리면서 굳건한 걸음걸이로 천천히 단상에 올라왔다.

관중은 그런 영웅의 기세에 압도당해 감탄을 흘렸다.

여인과 뭐라 작게 속삭인 영웅이 단상 위로 올라섰다. 여인은 뭔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영웅을 흘겨보고 단상에서 내려갔다.

단상 위에 선 영웅은 모두를 짓누를 정도로 압도적인 기세를 풍기며 그의 이름만큼 유명한 붉고 빛나는 눈으로 천천히 관중을 훑어봤다.

그런 영웅의 모습을 본 관중들의 마음속에 자그마한 희망이 타올랐다.

모인 사람을 훑어본 영웅은 만족스럽게 웃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관중들은 숨 쉬는 것도 잊고 영웅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대했다.

현재 대륙에서 제일 유명하고 명예로운 영웅이 과연 자신들에게 어떤 말을 해줄지, 모두가 눈을 빛내며 집중했다.

어쩌면 역사에 기록될 순간일지도 모르는 지금.

작게 숨을 들이쉰 영웅이 고개를 끄덕이고 목소리를 내었다.

“…저 애미 애비 터진 눈동자를 부수러 갑시다!!”

영웅의 입에서 나온 험악한 말에 어떤 이는 경악하여 입을 닫는 것도 잊어 침이 줄줄 흘렀고, 어떤 이는 그 천박한 말투가 입에 달라붙어 금세 따라 외쳤다.

그리고 곰처럼 덩치가 큰 사내는­

“아….”

자신이 가장 걱정하고 찾았던 친우의 성장한 모습에 눈물을 훔쳤다.

그 큰 덩치와 맞지 않게 사내는 눈물이 많은 듯,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영웅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박수쳤다.

밑바닥을 전전하는 자신과 다르게 친우는 닿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곳에 올라 밝게 빛나고 있었고, 그런 친우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것밖에 없었으므로.

손에서 피가 터질 때까지 사내는 박수를 쳤다.

“뭐야… 자네! 왜 우는가?! 아는 사람인가?”

자신의 동료가 우는 모습을 처음 본 칼트는 당황하며 사내의 등을 두드렸다.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사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니 모르는 사람일세. 영웅의 모습이 너무 훤칠하군. 정말….”

하급 용사인 자신과의 친분은 그에게 득 될 것이 없으리라.

“근데 왜 우나! 빨리 눈물 닦게. 약한 모습 보이면 앞으로의 생활이 힘들어질 테니!”

칼트의 말에 사내는 눈물을 닦고, 자랑스러운 친우의 모습을 기억하기 위해 두 눈을 부릅떴다.

“이거 참… 곰의 힘 케일이 이렇게 울보였다니! 다들 비웃을 거야.”

“저 위에서 몰래 훔쳐보는 기분 나쁜 관음 눈동자를 터뜨려 버립시다! 눈동자의 애미 애비처럼 말이다!!”

몰라볼 정도로 성장한 모습과 다르게 여전히 거친 친우의 욕설에 케일은 배까지 부여잡고 크게 웃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우는 걱정했던 자신이 우스울 정도로 밝게 빛나고 있었지만, 그 안은 그대로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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