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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223화 (223/233)

〈 223화 〉 벽을 넘은 스칼.

* * *

종말을 가장 두려워 하는 이들은, 가진 것 많은 이들이었다.

다른 이들보다 미련이 많은 그들은 종말을 막기 위해 대륙 연합에 막대한 지원을 쏟아부었고, 덕분에 대륙 연합은 유례없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였다.

몸값이 비싼 마법사들과 드워프 들이 대륙 연합 건설에 기꺼이 참여했고, 그 덕에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제국 수도의 배는 될법한 크기의 성이 세워졌다.

그 크기가 얼마나 큰지, 하루 안에 다 보지 못할 정도였고, 그 덕에 자의적으로 모인 병사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었다.

다양한 종족이 모여, 잡음이 끊이질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질서가 세워졌다. 종족을 넘어선 강한 규칙이 그들을 묶었으며 다가올 미지의 위기 앞에 그들은 서서히 하나가 되어갔다.

하늘에 떠오른 불길한 눈동자를 파악하기 위해, 대륙의 현자들과 마법사들 그리고 이야기꾼들이 모두 모여 매일같이 회의했지만, 마땅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

저런 하늘을 덮을 정도로 크고 불길한 눈동자는 어느 역사서에도 기록된 적 없었으므로.

대륙 연합은 발 빠른 이들을 모아 대륙 각지로 흩어지게 해, 모든 이상 현상들을 조사했다.

그렇게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는 대륙 연합의 가장 깊은 곳. 철통같은 경비가 세워져 있어, 접근할 수 있는 이가 한정된 곳에 검은 천을 눈에 두른 남자가 묶인 손을 더듬거리며 움직였다.

천 아래로 드러난 날렵한 콧대와 턱선이 남자가 미남이라는 것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었다.

‘…젠장. 마력 탈수 증상이라니.’

남자는 복부에서 느껴지는 탈력감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안 보이는 거 맞죠? 잘 부탁드려요.”

사근사근한 여자 목소리가 들렸지만, 남자는 웃지 못했다. 저 여자는 검은 천을 눈에 두른 자신이 정말 안 보이는지 확인하기 위해 뺨까지 때렸던 여자이므로.

‘도대체 이 여자들은….’

남자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앞쪽에서 앉는 소리가 들렸다.

저 여자에게 처녀막 치유 마법을 시술한 게, 불과 한 시간 전이었다. 근데 또 처녀막 치유 마법을 받으러 왔다니…?

“아흑! 어떻습네까! 에이든 동무! 제 열다섯 번째 처녀막은 쫄깃합네까?!”

귀를 파내고 싶은 천박한 대화에 남자는 한숨을 쉬며 얼마 남지 않은 마나를 돌렸다.

‘…내가 왜 여기를 따라와서.’

스칼은 마나를 돌리며, 천천히 기억을 되짚었다. 처음에는 정말 에이든의 말처럼 근사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대접받았다.

그 식사 자리에 여자가 너무 많아 정신 사납기는 했지만, 정말 뛰어난 요리 솜씨는 주변의 소음을 지우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예상보다 에이든의 부인이 많기는 했지만, 그래도 열 명쯤은 거뜬했다.

다만, 처녀막 재생 마법의 맛을 본 여자들의 반응이 문제였다.

‘어머… 세 번 밖에 안 드렸어요? 저는 다섯 번인데….’

‘젠장! 고귀한 엘프인 나의 처녀막과 인간인 너의 처녀막이 같은 값어치일 리가 있나! 엘프의 처녀막은 열 배로 쳐야 해!’

‘그러시던지요. 뭐… 풋.’

처녀막 재생 마법을 받은 여자들은 에이든에게 뚫린 처녀막의 개수로 경쟁했다.

결국, 불붙은 과도한 경쟁에 스칼은 매일같이 마력 탈수 증상을 체험해야 했다.

물론 때려치우고 나가도 되지만, 보지 대마법사라는 명예가 그를 자꾸만 가로막았다.

‘이런 미인들의 처녀막 부탁을 거절한다면, 나는 보지 대마법사가 아니다.’

스칼은 머리에 쓴 왕관 때문에 결국, 그녀들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이제 마나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다만, 지금은 정말 한계였다.

“앗! 그런가요? 가능하면 그… 그 마법도 받고 싶었는데….”

주저하는 여자의 목소리에 스칼은 여인이 원하는 마법이 뭔지 눈치챘다.

“…조임 마법까지 사용한다면, 당신이 마지막입니다. 뒤에 기다리시는 분은 없습니까?”

“네. 다들 기절해서요. 제가 마지막이에요.”

“아흑! 개수작 부리지 마십쇼! 처녀막 1위를 제가 놓칠 것 같습네까?! 압도적인 1위의 격을….”

“저 아이는 무시해도 되니까요. 그렇죠?”

스칼은 여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준비를 마친 마법을 시전했다.

몇백 번을 넘게 펼친 마법은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마나가 움직이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눈을 가린 채, 상대와 손을 닿지도 않고 그저 경험에만 의지하여 마나를 움직이는 그 모습은 대마법사라고 불려도 부족함이 없었다.

‘이미 태풍은 시작됐다.’

스칼은 부드럽게 마나를 움직이며, 생각을 천천히 정리했다. 눈동자를 본 누구라도 느끼는 것처럼 스칼도 종말이 다가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스칼은 기이하고 흉측하게 생긴 마물을 베어내며 자신을 지키던 에이든이 떠올렸다.

‘살기 위해서라면, 태풍의 핵 주변에 있어야 한다.’

생각을 마친 스칼은 허공에 매달린 손을 부드럽게 저었다. 스칼의 마법은 여인의 음부를 새것으로 만들고 미개봉의 증거까지 붙여줄 것이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눈을 가리고 손을 닿지도 않고 상대를 모르는 체 마법을 펼칠 수 있으면….’

문득, 생각의 흐름을 타고 희미한 곳에 도착한 스칼의 사고가 길어지며, 천천히 무언가를 부숴나갔다. 만약, 스칼이 검을 들었다면 그것은 신념의 경지였을 것이요. 일반적인 마법이었다면 대마법사에 오를만한 경지였다.

다만, 스칼은 보지 마법사였다.

“…어엇? 어머?!”

그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여인의 음부에 얼마 없던 털이 죄다 떨어지며 솜털이 자라났다. 그리고 살짝 이지만, 벌어져 있던 그 모양이 꽉 다문 모양새로 변했다. 단 한 번도 벌어지지 않은 것처럼.

“어…어려졌어?”

여인의 음부는 시간을 역행하여 점차 태초의 것처럼 탄력과 생명력을 머금었다.

타인의 시간을 역행시키는 것은 기적과도 같아 마법 역사서에 기록돼도 부족함 없을 업적이었지만, 스칼은 보지 마법사였다.

“앗! 거…거기가 완전 내 어릴 적 때처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것은 분명 경이로운 기적임에도 스칼에게 되돌아온 것은 미인의 감사뿐이었다. 심지어 냉큼 다른 남자에게 달려가 처녀를 바칠.

고개를 작게 끄덕인 스칼은 방금의 여운을 천천히 음미했다.

‘…그곳 한정이지만, 방금 나는 벽을 넘었다. 어쩌면 꿈의 경지로….’

그저 음미만 했다.

“서아 씨? 너…너무 쪼이는 거 아니에요? 잠깐만요!”

옆에서는 방금 만든 기적을 시식했고.

딸깍.

“뭔 마법을 한 것네까! 저도 빨리 저걸로 부탁합네다! 에이든 동무 표정이 이상합네다!”

또 다른 이는 협박을 했다.

***

그 정신 나간 난교는 한 여인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끝났다.

이지수와 엘프가 싸우는 모습이 퍽 웃겼던 에이든은 둘을 끌어안게 하고 번갈아 가며 쓰고 있었는데, 돌연 피투성이의 여인이 떨어졌다.

“…여우님?”

상대를 확인한 에이든은 황급히 손을 내밀어 여인을 받았다. 분명 커 보였던 여우는 에이든의 품에 쏙 들어왔다.

그 작은 덩치가 덜덜 떨리는 모습이 괜스레 마음에 걸렸다.

“막…내.”

에이든의 품에 안긴 여우가 떨리는 눈빛으로 올려다보며 작게 중얼거리더니 의식을 잃었다.

그 눈빛에는 평소의 당당함과 자신감은 없었고 무언가를 잃은 것에 대한 슬픔과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에잇! 군고구마 엘프 옆으로 좀 가십쇼! 냄새가 너무 심하지 않습네까!”

“누…누구는 너 같은 인간과 붙어 있고 싶어서 붙어 있는 줄 알아?! 저 인간이 명령하니까 어쩔 수 없이….”

“…안드레아!”

에이든은 의식을 잃은 여우를 안고 급하게 천막을 나섰다.

아마, 지금쯤이면 회의를 하고 있을 것이다.

에이든은 거침없이 움직이며 회의장으로 향했다. 중간에 만난 사람들이 경악했지만, 그를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마침내, 회의장에 도착한 에이든은 거침없이 문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 안건은.”

거칠게 열린 문에 회의장에 있는 이들이 때아닌 나체의 불청객을 응시했다.

침묵이 잠시 흐르고.

“저 멍청이가!! 지금 여기를 왜 나체로 와!!”

“크으… 역시 영웅은 그곳도 다르구만.”

“어머­ 여자들 많은 이유가 있었군요.”

“대륙의 기둥….”

감탄사와 비명이 섞인 반응을 무시하고 에이든은 황급히 안드레아를 찾았다.

안드레아는 제일 끝쪽에 앉아 몽롱한 눈빛으로 에이든을 쳐다보고 있었다.

에이든은 거의 날 듯이 테이블을 뛰어넘으며, 안드레아에게 향했다. 그러자 눈앞에서 거칠게 흔들리는 거대한 물건에 모두가 경악했다.

“에이든 님…!”

“…안드레아! 급해요!”

“아아… 알겠습니다. 다른 이의 눈을 파버리고 싶지만, 에이든 님이 원하신다면.”

안드레아가 내 말에 돌연 성녀 복의 치마 부근을 잡아 올렸다.

‘뭐라는 거야 시발.’

이해 못 할 안드레아의 행동에 에이든은 황급히 안드레아 앞에 여우를 눕히고 치마를 걷어 올리는 안드레아의 손을 잡아 멈췄다.

“…? 아!”

“아니! 안드레아! 이 여자 좀 봐줘요!”

내게 손이 붙잡히자, 돌연 입을 벌리며 고개를 숙이려는 안드레아에게 다급히 외쳤다.

“아? 아! 그…그렇군요! 치료! 제가 치료는 잘하니까요! 그래서 데리고 오신 거군요! 그렇겠죠! 아…!”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진 안드레아가 말을 더듬거리며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일단 상태부터 확인하겠습니다.”

이내,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온 안드레아가 붉어진 얼굴을 숙이며 여우를 확인했다.

그 모습에 한시름 놓고 안심한 내 어깨 위로 누군가가 코트를 올렸다.

“…이 멍청아!! 이런 꼴로 나타나면 어떡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고개를 돌리니, 케이트가 잔뜩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어깨에 걸쳐진 것이 케이트의 코트인지, 그 길이가 짧아 간신히 엉덩이를 가렸다.

나는 그제야 내가 무슨 일을 벌였는지, 자각했다.

온 종족이 모이는 회의장에 나체로 난입한 정신 나간 노출증 변태가 바로 나였다.

‘애미 시발… 또 괴상한 소문 나겠네.’

회의장에 앉아 있는 다양한 종족의 인물이 각자 다른 표정을 지으며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눈빛이 내게 무언가를 원하는 것 같기도, 빨리 나가줬으면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무언가를 말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나는 코트를 여미며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대륙의 영웅 에이든입니다! 애미 애비 터진 눈동자를 터뜨리자! 와아!”

그 무거운 분위기에 반쯤 농을 섞어서 주먹을 흔들며 구호를 외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너는 그냥 입을 닫고 있으라니까.”

이를 악문 케이트가 속삭였다.

“…그게 낫겠네.”

케이트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나를 보며 케이트가 혀를 차고 고개를 돌렸다.

“다 눈 깔고 나가!!”

케이트의 호통에 그제야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그날 이후로 영웅의 하반신에 전설의 검이 잠들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

“…그렇다고 나체로 돌아다녀?! 이 멍청아!”

케이트가 뜨거운 콧김을 뿜어내며 내 정강이를 발로 찼다.

“아악!! 상황이 급했다니까. 안드레아 어때요?”

“신수라 인간과는 다르겠지만, 일단 안정세입니다. 애초에 상처도 없었고요. 피는 여우의 것이 맞는 듯하지만….”

흰 드레스에 피가 덕지덕지 묻은 안드레아가 단아하게 웃었다.

한 번의 호통으로 회의를 끝낸 케이트는 우리를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갔다.

‘이거 시발 비리 아니야…?’

거의 한 층을 통째로 쓰는 것처럼 큼지막한 케이트의 방에 나는 슬그머니 케이트를 훔쳐봤다.

‘이런 넓은 방이 있으면서 왜 밤마다 베개를 들고 내 방으로 와서 자는 거야.’

“이것 좀 드시면서 하세요.”

서아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차를 권했다.

“고마워요.”

감사를 표하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 따뜻함이 조금이지만, 진정시켰다.

“그래서 얘는 또 누구라고? 너는 도대체 여자가 몇 명이야!! 열 명으로도 부족해?! 부족하냐고!! 아주 그냥 여자로 마을을 만들겠어?!”

“…아니 이 여자는 너도 알잖아! 예전에 용사 아카데미에서 우리 납치했던 여자!”

“걔가 얘라고?! 머리색은 비슷한데, 느낌이 다른데?”

케이트가 검지로 여우의 볼을 콕콕 찔렀다.

“…그다음에는 처녀교에서 나 구해줬었고. 인간이 아니라 신수래.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신수? 그게 무슨….”

“아! 신수!”

내 말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서아가 손을 들었다.

“서아 씨 혹시 아는 거 있어요?”

“예전에 책에서 읽은 건데, 영물과 비슷한 존재라고 알고 있어요. 인간은 못 가는 꿈의 섬에 모여 살며… 순리에 어긋나는 것들을 바로 잡아 세상을 지탱하는 인외의 존재라고.”

“인간이 못 가지는 않아.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거지. 물론, 허락해준 적 없지만.”

서아의 두루뭉술한 설명을 꿀이 발라진 것처럼 달콤한 목소리가 보충했다.

“아! 일어났어요?”

“…응 막내. 안녕?”

고개를 살포시 꺾어 흰 목덜미를 살포시 드러내며 인사하는 여우의 모습이 내 애간장을 녹였다.

그 모습에는 수십 번의 교미를 치른 내 물건이 딱딱해질 만큼의 요염함이 담겨 있었다.

“흐…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는 무슨!! 정신 안 차려?! 야! 넌 뭐야!”

내가 흔드는 손을 잡아 내린 케이트가 눈을 부라렸다. 그 날카로운 눈빛에 나는 괜스레 기가 죽어 시선을 내렸다.

“…아이야, 너는 누구?”

“얘 본부인이다. 넌 뭔데 남의 남자한테 꺼드럭거려!”

분명, 신수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케이트는 전혀 기죽지 않았다.

“…막내 결혼했어? 내 처녀를 가져갔으면서 어떻게 나한테 그런….”

슬픔이 잔뜩 섞인 여우의 목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사무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에 대역죄인이 된 듯하여 황급히 무릎이라도 꿇으려는 나를 케이트가 잡았다. 어정쩡하게 선 나는 케이트의 살벌한 눈초리에 찔끔 놀라 한 발짝 물러섰다.

“…뻔한 수작 부리지 말고. 뭔데 피투성이로 내 남편 앞에 나타났냐고.”

“꺄하하하! 그때도 그랬지만, 정말 재밌는 아이구나.”

“뭐…뭐야! 이거 놔!!”

여우가 손을 내밀어 케이트를 부드럽게 껴안고 얼굴을 비볐다. 케이트가 안에서 발버둥 쳤지만, 여우는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 모습이 제법 보기 좋았다.

“남편!! 이것 좀 어떻게 해봐!!”

“좋으면서 내숭 부리기는.”

“뭐라는 거야! 이 손 치우라고!”

그 개차반 케이트를 장난하듯 굴리는 여우였지만, 평소와 분위기가 달랐다.

여우에게서는 더 이상 전과 같은 힘이 느껴지지 않았고, 지금의 발랄함은 꾸민 듯한 느낌이었다.

마치 흉터를 가리기 위해 덧칠한 듯한….

“…무슨 일입니까?”

내 물음에 여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그 눈은 맑았지만, 가라앉아있었다.

나와 눈을 마주한 여우는 주저하며 입을 달싹거렸다. 그러다 결심이 섰는지, 붉은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나 집에 가야 해. 막내야, 도와줄래?”

힘이 전혀 담기지 않은 여우의 투명한 눈이 나를 애절하게 쳐다봤다.

내 심금을 울리는 자태에 나는 냉큼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뭐래?!! 너는 또 왜 고개를 끄덕여!! 마차 타고 가던지! 누구 남편한테 데려다 달라는 거야!!”

여전히 여우의 품에 안긴 케이트가 길길이 날뛰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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