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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225화 (225/233)

〈 225화 〉 노답 삼형제.

* * *

마차가 출발하자, 안드레아가 건네준 성수 병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무슨 성수를 이만큼이나….’

세 상자나 쌓여있는 것을 보며 작게 혀를 찼다. 모든 성수를 직접 만들었는지, 건네주는 안드레아의 얼굴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마치 탈수 증상이 온 사람처럼.

‘너…너무 많은데요?’

‘그냥 물 대신 드셔주세요. 몸에 좋은 거 많이 넣어서 괜찮을 거예요.’

같이 가지 못한다는 것이 마음에 크게 걸렸는지, 안드레아의 눈빛이 너무 애절하여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상자를 받자, 아이처럼 기뻐하던 안드레아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정말 안드레아만 한 여자 없다니까.’

어쩌다 그렇게 참하고 아름다운 여자가 내 부인 중 하나가 됐는지 의문이 들었다.

마침 목이 말랐기 때문에, 성수 병 하나를 따서 마셨다. 성수에서는 익숙한 맛에 더해진 우유 맛이 났다.

‘우유…?’

다 마신 생수병을 상자에 다시 넣고, 곤히 자는 여우를 살폈다.

기운을 상실한 탓인지, 여우는 시간 대부분을 잠으로 보냈다. 저렇게 자다가 중간에 일어나 마치 물을 찾듯 내 물건을 입에 물어 정기를 채운 다음 다시 자는 게 일상이었다.

“그…그럼 상태 좀 보겠습니다.”

여우 옆에 다소곳이 앉은 태양신의 성녀가 말을 더듬으며 여우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불편해 보이는데?’

그냥 옆에 앉아 여우의 이마에 손만 올리면 되는 것을 성녀는 멍청한지, 내 쪽을 향해 엉덩이를 쭉 빼고 엎드린 불편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덜컹!

“…아이코!”

마차가 덜컹거리는 것과 묘하게 어긋난 타이밍에 성녀가 흔들거리더니 슬쩍 쓰러졌다. 그에 성녀의 치마가 한껏 올라갔고 새하얀 허벅지가 드러났다.

“마…마차가 좀 흔들리네요.”

흐트러진 자세로 누운 성녀가 붉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에 나는 성녀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그럼… 바로?”

내 손을 쓰다듬으며 뜻 모를 말을 하는 성녀를 잡아 일으켰다.

“여우 상태는 어떤가요?”

“앗! 그… 그냥 기력을 회복 중이신 거 같아요! 지금 완전 깊이 잠드신 상태에요! 옆…옆에서 막 난리가 벌어져도 절대 모를 정도로 깊이! 엄청 큰 난리요! 막 감자가 떨어지고… 그런….”

내 질문에 성녀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성녀의 말에 작게 안도하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이 마차는 내부에 마법이 걸려 있어. 거의 방 하나만큼 넓었고 의자도 버튼을 누르면 침대로 변했다. 케이트의 말처럼 최고급 중 최고급이었다.

등받이의 폭신함이 내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종말교라….’

출발하기 전 케이트에게 들은 정보를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최근에 대륙에 나타나기 시작한 종교였는데, 모든 게 불분명했다.

대륙 연합 쪽에서는 이번 눈동자 사태에 그들이 연관되어 있을 거라고 보고 있었다.

‘하여튼 종교가 문제야.’

처녀교 때를 떠올리며, 혀를 작게 찼다. 대륙은 무슨 마가 꼈는지, 문제가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 덕분에 영웅인 나만 바빠졌다.

“그…그럼 이제 뭐 할까요?!”

묘하게 들뜬 목소리에 다시 눈을 뜨니, 몸을 비비 꼬며 괴상한 표정을 짓는 성녀가 보였다. 팔꿈치로 가슴을 모아 얼굴을 붉힌.

“예?”

무슨 병이라도 걸린 듯한 모습에 인상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그… 혹시 제가 도울 일이 있나 해서요!”

내 반응에 찔끔 놀란 성녀가 손가락을 비비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 여우만 제대로 신경 써주시면 됩니다.”

“…네.”

뭔가 말할 게 있는 듯, 성녀가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작게 대답했다.

‘쟤도 참 애가 이상하단 말이야.’

그 모습에 작게 혀를 차며 눈을 감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닌닌!”

“살아있었네?”

“닌닌!”

검은 천으로 몸을 잔뜩 두른 닌자 하나가 내 앞에 부복했다.

눈만 빼고 온몸을 검은 천으로 가린 모습이라 정체를 알아보기 힘들어야 하지만, 특출나게 큰 가슴은 신분증과 다름없었다.

‘이름이… 노노하였나?’

“닌닌!”

노노하가 정중하게 긴 종이를 내밀었다. 종이를 받아 읽으니 종말교에 대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그것도 꽤 상세하게 적힌.

“정보가 없다더니만.”

“닌닌!”

“뭐라는 거야.”

“닌닌!”

화를 내봤자 소용없었기 때문에 무시하고 종이를 읽어내려갔다.

‘서쪽에서 시작됐다는 설이 가장 유력함. 이번 눈동자가 발생하기 전 서쪽 끝으로 긴 행렬이 이어져 있다는 점으로 보아 연관 관계가 있다고 예상됨. 그들의 강점은 전염병을 연상시키는 듯한 그 강력한 확장력과….’

대륙 연합 쪽이 아니라 닌자 쪽 정보통인가.

케이트가 말한 것보다 더욱 자세한 정보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스럭.

뭔가 움직이는 소리에 고개를 드니 어느새 나체로 변한 노노하가 무릎 꿇고 있었다. 노노하의 쌍커풀 없는 큰 눈망울이 나를 응시했다.

‘진짜 멍청하게 생겼네.’

두건을 벗은 노노하는 멍청하게 생긴 미인이었다. 큼지막한 두 눈에는 어리숙함이 잔뜩 담긴….

“…뭐야?”

“닌닌!”

내 질문에 노노하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음부 쪽을 가리켰다.

“닌닌!”

그러고는 왼손으로 구멍을 만들고 오른쪽 검지로 넣는 듯한 시늉을 했다. 그 손동작이 너무 빨라 마치 수인을 맺는 듯했다.

“닌닌!”

마지막으로 엄지를 들어올리는 노노하의 모습에 머리가 지끈 거렸다.

“잠…잠깐만요!! 제가 먼저!”

그에 성녀가 손을 뻗으며 외치는 순간.

덜컹!

마차가 크게 흔들렸고, 성녀가 삐끗하여 앞으로 엎어졌다.

성녀의 살집이 조금 붙은 엉덩이가 드러났고, 그 사이에 있는 분홍색 음부에 꽂힌 자그마한 막대가 웅웅거렸다.

“이…이건! 그! 성물이에요! 성물! 순교를 도와주는!! 태양교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거에요! 정말로요!”

엎어진 성녀가 나를 올려다보며 변명했지만, 일어날 생각은 없는지, 양다리를 더욱 활짝 벌렸다.

“…아흣!”

웅웅.

묘한 진동음이 마차를 채웠다.

‘성물이래 시발….’

머리가 지끈거려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

“반갑군. 스칼이라고 하네.”

“반갑습니다. 루크입니다.”

마차의 마지막 칸, 짐을 싣는 곳에 조그맣게 마련된 의자에 앉아 마주한 두 사내는 서로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자네는 어쩌다 여기에 왔나?”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착잡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청년을 보며 스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청년이 설명하진 않았지만, 스칼은 이해할 수 있었다.

“스칼 님은 어쩌다가….”

“나야 뭐. 태풍을 피하고자 처마 밑에 숨은 거지. 물론, 이 처마가 안전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루크가 스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의 대화를 끝으로 마차 안에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잠시 볼을 긁적이던 루크는 드디어 만난 남자를 보며 그동안 꺼내지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

전부터 응어리지듯, 가슴에 맺혀 있었음에도 상대가 없어 도저히 꺼내지 못했던 말을.

이야기한다는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나아지는 듯한 느낌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에이든. 참 좆같은 새끼죠?”

루크의 거침없는 말에 스칼의 잘생긴 눈이 잠깐 커졌다가 이내 호선으로 휘었다.

그도 이런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놈의 말대로 애미 애비 뒤진 새끼지.”

짐칸과 다름없는 자그마한 마차 안에 어색한 침묵은 더는 없었다.

“하하하! 형이라고 부르게! 내 자네 같은 동생이 늘 갖고 싶었으니!”

“그럼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형님!!”

“그래 아우야! 하하!”

에이든이라는 공동의 원수를 둔 둘은 이내 호형호제하며 서로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

어두운 산골짜기의 도로 옆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이곳이 맞나?”

그들 중 제일 덩치가 큰 남자가 물었다.

“확실해. 이 길목이 맞아.”

다른 사내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도로를 확인했다.

깊은 산골짜기에서 음흉한 음모를 꾸미는 듯한 모습은 산적 아니면 도적의 모양새였지만, 그들의 손에는 무기가 없었다.

다만, 그들은 끊임없이 뭔가를 중얼거리며 도로를 확인할 뿐이었다.

‘끝이 도래했다.’

그들 중 유일한 여인은 양손을 곱게 모아 기도하며 머릿속에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계속해서 끄덕였다.

목소리가 들린 것은 여인이 시장에 장을 보러 나갔을 때부터였다. 채소를 확인하던 여인의 엉덩이를 누군가 슬쩍 만지고 지나갔고, 화를 내기 위해 뒤돌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날 이후부터 여인의 머릿속에 뱀 같은 것이 똬리를 틀었다. 밤에 잠을 자면 모든 게 다 불타올라 사라져 텅 비어버린 대륙의 모습이 보였다.

그곳에는 자신도 자신의 남편도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게 끝나는 것을 서서히 인지하게 된 여인은 머릿속의 목소리를 따라 집을 나섰다. 남편이 슬퍼하겠지만, 어차피 남편도 사라질 것 중 하나였다.

모든 게 사라질 것이라면, 그중 가장 의미 있는 행위는 사라지는 것을 돕는 것일 테니까.

‘끝을 도래했다.’

여인이 집을 나선 순간부터 머릿속의 음성은 미묘하게 바뀌었다. 목소리를 따라 움직인 여인은 결국, 한 종교에 몸담았고, 지금은 내려진 임무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끝을 도래했다.”

““끝을 도래했다.””

여인이 작게 중얼거리자, 다른 이들이 메아리처럼 따라 외쳤다.

“그럼 각자 맡은 부분을 알고 있죠?”

눈이 날렵하게 찢어진 사내가 묻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시오. 부인.”

꽤 괜찮은 외모의 사내가 여인의 허리에 팔을 두르며 물었다. 허리를 지난 사내의 손이 거침없이 여인의 음부로 향했지만, 여인은 막지 않았다.

“…네.”

끝이 도래하는 세상에서 정조 관념이란 건 필요 없으니까.

“아빠 빨리 해! 나도 좀 하자!”

“…그래 아들 기다리렴.”

마치 음식점에 줄을 서듯 남자의 뒤로 사람들이 섰다. 남자는 넷이었지만, 여인은 하나였기 때문에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덩칫값 못하네.”

“…크흠.”

“옵니다!!”

여인의 실망 어린 눈빛에 남편을 자처한 사내가 헛기침을 흘릴 때, 제일 뒤에 있던 사내가 외쳤다.

여인은 황급히 치마를 정리하며 미소를 짓고 사내의 팔에 팔짱을 꼈다.

“엄마, 아빠보다는 내가 낫지?”

“확실히 젊은 게 좋아.”

슬쩍 엉덩이를 문지르며 농을 던지는 청년을 보며 여인이 작게 웃었다.

“다들 집중!”

그에 작게 헛기침한 남편이 소리치고는 얼굴을 구겼다.

그들은 위독한 할머니를 보러 황급히 길을 나서는 중, 마차가 부서져 산에 고립된 가족이었으니까.

‘여우를 막아라.’

남자는 임무서에 적힌 내용을 상기하고 손을 비볐다.

이내, 마차보다는 기차와 더욱 흡사한 물체가 나타났다.

마차의 제일 앞에 앉아 있는 세 여인을 보며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가 남자보다 감성에 약하니, 성공 확률이 더욱 올라갔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마차는 이내, 서로의 말이 들릴 정도의 거리까지 다가왔다. 그들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도로로 뛰어들었다.

“멈춰주시오!! 저희를 좀 도와주쇼!! 마차가 고장 났소!!”

남편이라 불린 이는 양손을 크게 뻗으며 애절하게 소리쳤고.

“으아아앙! 엄마아아!!”

“아이야… 괜찮단다.”

방금까지 몸을 교환하던 둘은 엄마와 아들로 둔갑해 보는 이의 눈물을 자극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제발 저희 할머니를 볼 수 있게 도와주세요!!”

“형님!! 너무 무리하지 마십쇼!!”

그들은 숙련된 연기자처럼 금세 역할에 몰입했다.

‘됐다! 이제 저들이 멈추고 내리면 실수인 척 접촉만 해도 끝이야.’

그들은 자신들의 연기에 만족하며 임무의 성공을 예상했다.

마차가 더욱 가까워지며, 세 여인이 사내의 시선에 들어왔다.

‘전도하고 나면 본교에 가기 전… 흐흐.’

태어나 처음 보는 미인들의 모습에 사내의 입꼬리가 휘었다.

***

“우리가 누군지 물으신다면!!”

“대…대답해드리는 게 도리!”

“나는 이지수!”

“나…나는 니하바나!”

“천오….”

양손을 왼쪽으로 뻗은 이지수.

그 옆에는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어진 나하바나가 오른쪽으로 팔을 쭉 뻗고 있었다.

그리고 둘 사이에 쪼그려 앉은 천오는 무표정하게 앞을 보고 있었다.

“거! 군고구마 엘프! 왜 말을 자꾸 쳐 더듬는 겁네까!!”

“못해! 못한다고! 이런 걸 내가 왜 해야 하는데!!”

이지수의 거침없는 손가락질에 니하바나가 붉어진 얼굴로 도리질 치며 저항했다.

“이게 뭐 어려운 것이라고 못한다는 겁네까!! 이런 작은 것도 못 하면서, 어떻게 골든 와이브스에 들어온다는 것입네까!”

“골…골든 와이브스가 도대체 뭔데! 나는 그저 저 인간만 있으면 된다니까!”

더는 참지 못한 니하바나가 소리를 빽 하고 지르며 뒤의 마차를 가리켰다.

딸깍!

“그런 건방진 말 하지 마십쇼! 에이든 동무는 누구의 것도 될 수 없습네다! 골든 와이브스 공동의 것입네다!”

대뜸 총구를 들이미는 이지수를 보며 니하바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싫으면 떠나면 되는 것 아닙네까! 당신 말고도 예비 보지는 많습네다! 이름도 모를 만큼! 물론, 군고구마 냄새나는 보지는 없지만.”

이지수의 호통에 니하바나의 가슴이 시큰거렸다. 이미 자신은 영웅을 짝으로 지정한 상태였다. 그때는 무슨 생각에 그랬는지 몰라도, 짝을 정한 엘프가 짝을 떠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엘프에게 짝은 일생 단 하나였으니까. 떠나면 외로움과 그리움에 시름시름 앓을 게 분명했다.

“그게 싫으면 군소리 말고 따라 하십쇼! 우리가 누군지 물으신다면!!”

다시 가슴골에 리볼버를 집어넣은 이지수가 양손을 뻗으며 기운차게 외쳤다.

‘네가 선택한 짝이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엘프들 사이에 오랜 명언으로 내려오는 말이 떠올라 니하바나의 시야가 흐려졌다.

“빨리!”

이지수의 독촉에 찔끔 놀란 니하바나는 반대쪽으로 양손을 쭉 뻗었다.

“대답해드리는 게 도리! 흡….”

차오른 눈물에 목이 잠겨 말끝이 흐려졌다.

“나는 이지수!”

“니하바나!”

“…천오.”

셋의 자세가 완성됐을 때.

“멈춰주시오!! 저희를 좀 도와주쇼!! 마차가 고장 났소!!”

조그마한 사내 목소리가 들렸고.

덜컹!

“으아아악!!”

“꺄아아악!”

푸직­.

마차가 심하게 덜컹거리며 뭔가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마부를 쫓아내고 자리를 차지한 셋이었다. 그런데 괴상한 자세를 연습하느라 경계를 소홀히 하여, 문제를 일으켰다는 생각에 니하바나가 마차를 세우려 했지만, 이지수가 막았다.

“그냥 고라니였습네다. 자! 그럼 다음 포즈는….”

서늘한 이지수의 눈빛에 니하바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보이는 마차의 바퀴에 선명한 붉은색이 칠해져 있었지만, 니하바나는 그저 고개를 돌렸다.

‘인간이나 고라니나.’

엘프인 니하바나에게는 별 차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고라니 쪽이 더 귀여우려나.’

니하바나는 다시금 눈물을 참으며 자세를 잡았다.

“우리가 누군지 물으신다면!!”

이지수의 앙칼진 목소리가 적막한 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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