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아카데미의 노답 유급생-229화 (229/233)

〈 229화 〉 선도는 어디에.

* * *

“허어… 두꺼비가 확실히 종말을 부르는 용이라고 했나?”

세 새 대가리가 혀를 차며 여우에게 되물었다.

“맞다니까. 몇 번을 묻는 거야.”

여우의 짜증 섞인 대답에 세 새 대가리가 찔끔 놀라 목을 뒤로 뺐다.

“사안이 워낙 중대해서 그런 것이니, 마음 상해하지 말아라.”

“도대체 종말을 부르는 용이 뭐길래, 저런 반응이 나오는 거야?”

여우의 물음에 다들 침음성을 삼켰다. 마치 들어선 안 될 것을 들은 것처럼.

“…전부터 내려오는 예언이 있다. 한 용이 종말을 불러올 것이라는.”

“예언?”

“전에 남들이 선도를 하나 먹을 때, 네 개씩 먹던 양반이 있었거든. 덕분에 미래도 보고 꽤 신통했지.”

큼지막한 토끼가 절구로 머리를 긁으며 여우의 물음에 대답했다.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네가 태어나기 전 일이니까. 아무튼, 그 용이 나타났다면 끝이 시작되려나 보네. 근데 시기가 너무 이른데?”

토끼가 말하는 모습이 제법 우스워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맞다. 너무 이르다.”

청룡이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문제가 발생한 게 틀림없어! 여우가 다쳐서 오다니! 이런 건 예언에 없었다고!”

“…그 당시에 여우가 없었잖아. 이 띨빡아.”

“다 참을 수 없지만, 나를 띨빡이라고 부르는 건 참을 수 없다!”

“안 참으면 어쩔건데? 네 동생 앞에서 저번처럼 엉덩이 걷어차일래?”

“오…오해다 여우야! 저번에 진 건 저 간악한 년이 내게 술을 먹이고….”

“지가 마셔놓고는?”

주작의 이죽거림에 얼굴이 벌게진 백호가 양손을 교차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에 주작이 콧방귀 끼며 마주 일어났다.

둘은 금세 기세를 끌어 올렸고, 이내 공기가 가라앉으며 주변을 압박했다. 둘의 흉흉한 분위기 때문에 뒤로 슬쩍 움직였다.

“…조용히 하세요. 지금 장난칠 사안이 아닙니다.”

현무가 전과 달리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운 좋은 줄 알아.”

“너야말로. 동생 앞이라 발톱을 안 꺼낸 것뿐이다.”

그에 둘이 기세를 줄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내려가야 한다. 지금 시기에 종말을 부르는 용이 나왔다는 건, 순리에 어긋난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이니.”

백호가 으르렁거리듯 목을 긁으며 말했다.

“너는 그냥 여우에게 상처 입힌 애를 찾아 목덜미를 물어뜯으려는 거 아니야?”

백호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주작이 말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닥쳐라. 새 대가리.”

“어머! 얘 지금 종족 차별 발언하네?”

“새 대가리를 새 대가리라 부르는 게 무슨 문제지?”

“그래. 강아지 대가리.”

“나는 강아지가 아니라 범이다. 범 중에서도….”

“응 다음 강아지 대가리.”

“이 새 대가리가!!”

“조용.”

청룡의 말에 둘이 서로를 노려보면서 입을 닫았다.

“일단 다른 신수들 의견도 들어보도록 하지. 우리 넷이 결정할 사안이 아니니까.”

둘을 조용히 시킨 청룡이 돌에 둘러앉은 다른 신수들을 둘러 보며 물었다.

“큼큼…. 내려간다면 누가 내려갑니까?”

세 새 대가리가 헛기침을 동시에 세 번 하더니, 진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종말을 부르는 용이라면 될 수 있으면 많이 내려가는 게 좋겠지.”

“그거는 좀 과한 것 같습니다.”

“과하다? 상대가 종말을 부르는 용인데?”

백호의 으르렁거리는 물음에 세 새 대가리가 찔끔 놀라며 목을 뒤로 뺐다가 다시금 내밀었다.

“예. 아래 세상의 무력은 저희와 기준이 다르지 않습니까? 상대가 종말을 부르는 용이라고 하더라도 그 무력을 측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 다 같이 내려가는 것은 괜히 혼란만 가중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세 새 대가리는 잔뜩 움츠린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의견을 관철했다.

“과한 거 같기는 해. 그때 내가 내려갔을 때, 괜찮은 놈이 없더라고.”

주작이 손을 빙글 돌리면서 세 새 대가리의 의견에 동의했다.

‘같은 새라고 편 먹는 건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웃음이 작게 새어 나왔다.

“그거는 종말을 부르는 용과 직접 대면한 여우에게 묻는 게 낫겠군. 여우야 종말을 부르는 용의 무력 수준은 어땠느냐?”

“대…대답하기 힘들면 하지 않아도 된다! 육체의 상처는 내가 만년 하수오! 로 치료했을지라도 정신의 상처는….”

“…정말 강했어요. 두꺼비 아저씨와 내가 단 한 번의 공격을 못 막을 만큼.”

백호를 잠시 노려본 여우가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여우의 말에 신수들 사이에서 작은 소란이 발생했다.

“여우가 어린아이라, 잘 몰라서 저렇게 대답한 게 분명합니다! 두꺼비가 한 수도 막지 못했다니, 그 양반이 술독은 많이 올랐어도 그렇게 나약하지 않습니다!”

토끼가 절구로 땅을 찍으며 강한 목소리로 주장했다.

“신수가 단 한 수도 막지 못했다니…, 그게 사실이라면… 킁킁.”

금 돼지가 냄새를 맡는 것처럼 코를 찡그렸다.

“이것들이! 지금 내 동생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이냐?!”

백호의 호통에 주변의 소란이 금세 사그라들었다.

“백호. 그만하거라. 사사로운 감정을 넣을 사안이 아니다.”

“청룡! 저것들이 내 동생을 무시하지 않느냐!”

“그들도 의견을 제시했을 뿐이다. 앉아라.”

“잡것들이….”

청룡의 담담한 말에 주변을 노려본 백호가 의자가 부서질 듯 거칠게 앉았다.

그에 나머지 신수들이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게 보였다.

‘진짜 개차반 중의 개차반이구나.’

주변의 반응에 평소 백호의 행실이 짐작이 갔다.

“…그리고 우리가 죄다 내려가면 선도는 누가 관리합니까. 우리의 근본이자, 우리의 보물인 선도를요.”

세 새 대가리가 목을 쭉 빼고 말했다.

“맞네! 행여나 누가 선도를 다 먹어버리면 큰일이잖습니까!”

금 돼지가 빠르게 세 새 대가리 의견에 동조했다.

“평소에는 끼니때만 선도에 가던 녀석들이 무슨….”

백호가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차며 이죽거렸다.

“선도를 관리하던 두꺼비가 별이 되지 않았습니까! 다음 관리 담당을 뽑을 때도 됐습니다!”

“쩝. 맞아 두꺼비가 선도로 술은 기가 막히게 담갔는데. 아쉽다 아쉬워.”

주작이 금 돼지의 의견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맛을 다셨다.

이들의 정신 없는 회의는 그 후로도 한참이나 이어졌다. 내려가는 것에 반대하는 쪽은 선도를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는 게 주된 근거였다.

아무래도 두꺼비가 단 한 수도 막지 못했다는 게, 그들의 공포심을 자극한 듯했다.

‘다 데리고 가면 정말 좋을 텐데….’

아직도 열띤 회의를 하는 이들을 보며 머리를 굴렸지만, 딱히 적당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저들이 말하는 선도가 뭔지도 몰랐으니까.

선도가 민감한 주제인 듯, 강하게 주장하던 백호도 혀를 차며 한발 물러섰다.

‘네가 그러면 안 되지! 더 강력하게 주장해야지!’

그에 답답함을 느끼며 가슴을 두드리던 순간.

[아­ 에이든 동무에게 보지 마사지 받고 싶다­.]

머릿속에 돌연 이지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지수?’

[엇?! 에이든 동무?!]

마치 대화를 하듯, 내 생각에 반응하는 이지수 목소리에 지금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뭐야?’

[오옷! 혁명 동지의 정이 깊어져 드디어 마음이 통하는 단계에 이른 것 같습네다!!]

이지수의 열기 가득한 목소리가 머릿속에 쩌렁쩌렁 울려 인상이 절로 찡그려졌다.

“다 내려가면 선도는 누가 키워! 선도는!”

“애초에 선도를 키운 적도 없는 놈이!”

“놈?! 놈?! 그거 지금 돼지 비하 발언입니다! 내 젖이 이렇게나 크고 많은데….”

“치워! 이 더러운 돼지 놈아!”

주변은 아직도 같은 주제로 다투고 있었다.

[에이든 동무 어디 있습네까? 여기 맛좋은 복숭아가 있어서 몇 개 가져다주려고 챙겨놨습네다!]

‘복숭아…? 선도?’

분명 꽃만 있는 동산에 두고 왔는데도, 저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선도로 향한 이지수의 본능에 소름이 돋았다.

“선도는 우리의 근본이자 힘입니다! 다들 선도가 없었으면, 이렇게 오래 살 수 있었겠습니까?“

세 새 대가리의 절절함이 잔뜩 담긴 호소가 울려 퍼졌지만, 금세 다른 언성 높은 목소리에 묻혔다.

‘선도가 신수의 근본이자 힘…?’

이지수가 선도를 먹은 게, 갑자기 머릿속에 이지수의 목소리가 들리게 된 이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이거 맛이 죽입네다! 둘이 먹다 하나가 혁명 당해도 모를 맛입네다! 심지어 지금 열 개를 먹었는데도 배가 하나도 안 부릅네다! 엄청나게 큰 나무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데, 저 혼자 다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습네다! 에이든 동무를 위해서 제가 꼭 챙겨가겠습네다!]

이지수의 잔뜩 신난 목소리에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오를 듯 말 듯 간질간질했다.

“우리 선도 불안해서 못 내려갑니다! 선도 사랑! 신수 사랑!”

“겁쟁이 녀석들! 그럼 선도 관리하는 놈 하나만 두고 가자!”

“쾌적한 선도 관리와 신수 근로 환경에 따르면 최소한 5교대는 해야 합니다!”

회의는 계속 지지부진한 상태였고, 중심으로 보이는 청룡은 눈을 감고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신수, 선도, 이지수….

생각이 정리되며 해결책이 떠올랐다.

‘이지수.’

[혁명 동지 이지수! 여기 있습네다!]

‘그곳에 있는 복숭아를 다 먹어라. 할 수 있겠어?’

[존명! 에이든 동무의 명령이라면, 할 수 있다, 없다가 아닙네다! 해내야만 하는 것입네다! 저만 믿으십쇼! 저 이지수! 공화국의 식성을 제대로 보여주겠습네다!]

이지수의 단호한 대답에 마음이 놓였다. 이제 계속해서 늘어지는 저들의 회의를 보며, 이지수가 선도를 먹어 치우는 걸 기다리면 된다.

‘스무 개 정도 되려나?’

이지수가 단번에 할 수 있다고 대답하는 걸 보니, 선도의 수가 생각보다 적은 듯했다.

“그러니까… 선도 때문에 안 된다니까요!”

“됐다! 필요 없다! 나 혼자서 내려갈 테니!”

“그것도 안 됩니다! 백호 님이 선도의 당도를 제일 잘 관리하지 않습니까!”

“뭐?! 정녕 목덜미가 물어 뜯겨야 정신 차릴 놈이구나!”

“백호! 진정하거라!!”

저 괴물들을 이끌고 위풍당당하게 복귀했을 때, 케이트의 반응이 기대됐다.

‘종말이고 뭐고… 쟤네 끌고 가면 무서운 게 없지.’

해태의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었다.

***

“후… 할 수 있습네다. 저 이지수! 저런 복숭아에 지지 않습네다.”

앞에 놓인 나무를 올려다보며 이지수는 각오를 다졌다.

다른 이도 아니고 에이든의 명이었으니, 무조건 수행해야만 했다. 그래야 다음 절차인 임신까지 수월하게 갈 수 있을 것이다.

몸을 푼 이지수는 나무를 향하여 달려들었다.

이지수가 올라타며 나무가 작게 흔들리는 게, 꼭 나무가 두려움에 떠는 것만 같았다.

이지수는 가장 가까이 있던 복숭아를 입에 넣었다. 그러자 천상의 맛처럼 달콤하며 신선한 육즙이 입안에 가득 터졌다. 다만, 시간이 급했기 때문에 그 맛을 음미하지 못했다.

5초도 되지 않아 복숭아 한 개를 뱃속으로 넣은 이지수는 다음 복숭아를 잡아서 입에 넣었다.

다시 육즙이 터지고.

이지수는 전보다 더 빨리 복숭아를 해치웠다.

이 복숭아는 정말 신기했다. 맛이 달았지만, 질리지 않았고 배에 넣었음에도 포만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허기가 느껴지지 않을 뿐이었다.

그리고 먹을수록 영혼에 뭔가가 차오르는 느낌이 들어 묘한 중독성까지 있었다.

나무에 열린 복숭아는 눈대중으로 봐도 천 개가 넘었지만, 이지수는 두렵지 않았다. 지금 자신은 에이든의 명을 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점점 나무 타는 실력이 늘어난 이지수는 언뜻 보면 원숭이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눈은 오직 복숭아에 고정한 채로.

백 개쯤 먹었을 때, 혀가 조금씩 아리기 시작했다.

질리지 않는 단맛이라 생각했지만, 세상에 질리지 않는 것은 없었다.

손과 입 그리고 온몸에서 복숭아 향이 진동했으며, 분홍색만 봐도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지만, 이지수는 잠시도 쉬지 않았다.

‘에이든 동무의 명입네다.’

이제 이지수는 복숭아를 양손에 두 개씩 쥐어서 단번에 먹는 신기까지 펼칠 수 있었다.

그리고 삼백 개쯤 먹었을 때, 이지수는 뭔가 등이 가려운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에 기침하듯, 뭔가를 펼쳤더니, 옆에 자신이 하나 더 생겼다.

“…뭡네까?”

“뭡네까!”

둘은 동시에 가슴에서 총구를 꺼내 서로를 겨눴다. 잠시 그렇게 대치하던 그들은 깨달음을 얻었다.

“나입네까?”

“혁명!”

“반갑습네다!”

둘은 총구를 다시 가슴골에 넣고 손을 마주 잡았다.

“또 하나의 저. 에이든 동무의 명을 시행하는 중인데 도와주시겠습네까?”

“당연한 것 아니겠습네까.”

둘이 서로를 보며 방긋 웃었다. 입이 두 배로 늘었으니, 시간은 반으로 단축될 게 분명했다.

그렇게 먹다 보니, 등이 또 간지러워졌고, 혁명 동지가 더 생겨났다.

그렇게 자신이 열 개 정도 되었을 때, 이지수는 본능적으로 능력 사용 방법을 터득했다.

그에 복숭아 사라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이내, 이지수라는 벌레로 가득 찬 복숭아나무는 시름시름 앓았다.

그렇게 몇 개를 더 먹었을까.

이지수는 불현듯, 뭔가가 보였다.

세상이 멸망한 듯 셀 수 없이 많은 시체 앞에 쓰러지듯 앉아 피를 흘리는 에이든. 에이든의 빛나는 검은 반으로 부서져 있었고 에이든의 눈에는 절망만이 가득하였다. 그런 에이든을 향해 무언가가 손을 뻗고 있었다.

이지수는 본능적으로 그것이 미래라는 걸 깨달았지만, 고개를 저어 부정했다. 골든 와이브스와 자신이 그렇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나무를 가득 채운 이지수들은 손에 복숭아를 하나씩 쥐고 있었다.

“혁명! 그리고 에이든 동무를 위하여!”

아래에서 그 모습을 대견하게 보던 본체 이지수가 복숭아를 번쩍 들며 소리쳤다.

““혁명! 그리고 에이든 동무를 위하여!””

남은 99명의 이지수가 그를 따라 외치며 복숭아를 입에 넣었다.

“이러면 단번에 100명의 아이를 낳을 수 있겠습네다. 완전 임신 공장입네다.”

““임신 공장!!””

마침내 복숭아를 모두 먹어치운 이지수가 호탕하게 웃으며 배 아랫부분을 두드렸다.

그 행동을 보고 있던 나머지 이지수들이 따라 웃으며 각자 아랫배를 두드렸다.

그렇게 선도가 모두 사라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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