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 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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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 라디 #3
꼬맹이가 배낭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려고 하길래 일단 말렸다.
녀석이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번엔 또 뭔가요. 설마 시덥잖은 이야기면...”
“일단 밥부터 먹자. 배고파 미칠 것 같다. 너도 여기까지 오느라 아무것도 못 챙겨 먹었을 거 아냐.”
“아... 그러고 보니...”
라디가 제 배를 움켜쥐었다. 녀석 역시 공복인 모양.
텅 빈 위장 탓에 날카로운 창날로 창자를 찌르는 듯하다.
어제 마차에서 간단한 건량으로 허기를 때운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못 먹었다. 꼬박 하루 굶었으니 배가 고픈 것도 당연하지. 숙취로 울렁거리던 속도 어느 정도 진정된 데다가 사방에서 풍겨오는 향긋한 냄새를 맡자 자제심이 바닥났다.
적당히 빈 공터를 골라 던지듯이 배낭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야 말톤, 너도 배고프지? 네 것도 사 올 테니까 나중에 절반 내라.”
“알겠네, 마침 출출하던 참인데 잘 되었군.”
“아... 저, 저는...”
순간 꼬맹이가 뭐라 말을 하려던 것 같기도 하지만 무시했다.
나는 이미 달려나가고 있었으니까!
“끌끌... 이게 얼마만의 고기냐...”
오는 길에 잡은 늑대를 해체해서 먹긴 했지만 그건 논외다.
그야 그건 제 돈 주고 사 먹은 게 아니니까.
이제껏 모험가가 된 후에는 고기를 입에 대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다. 그나마 떠올려 보자면 말톤과 함께 의뢰를 수행하던 도중 사냥한 짐승을 구워 먹거나 어쩌다 여관 주인의 기분이 좋았던 날 밍밍한 소금 수프에 들어있다고 주장했던 무언가가 전부겠지.
그마저도 참새가 살짝 발을 담그려다 말았을 게 분명했고.
하지만 이번엔 다를 거다.
“16실링이라...”
꼬맹이한테 뜯기고 문짝 수리비용과 마을 입장권 등 생각지도 못한 지출이 있었긴 했지만 아직 이만큼이나 남았다. 말톤에게서 2실링을 받아내서 다행이었지.
이 정도면 이번 한 번쯤은 포식해도 될 거다.
식사는 중요하다. 초짜 모험가일수록 장비에 정신이 팔려 전투 외적인 측면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지만, 포만감을 비롯해 컨디션을 최적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도 전투의 기본 중 하나다.
잘 먹어야 잘 싸울 수 있다는 게 괜히 나온 말이 아닌 바, 우린 던전 입장을 목전에 두고 있는 만큼 든든히 먹어줘야 한다.
군것질에 대한 합리화를 머릿속으로 뇌까리며 왔던 길을 거슬러 달리다 보니 미리 점찍어두었던 점포에 도착했다. 붉은색 도료로 덧칠된 간판 아래 화로에선 버섯과 파, 살집이 통통하게 오른 몬스터의 고기가 쇠막대에 끼워진 채 지글지글 익어갔다.
꿀꺽.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파와 그 위를 수놓은 고기의 지방이 한데 어우러져 피어오르는 폭력적인 향기가 식욕에 불을 지폈다.
둘이 먹다 둘 죽어도 모른다는 건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거겠지.
군침이 고이다 못해 흘러넘칠 지경이다.
꼬치에 꽂혀 있는 살코기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저씨, 이건 어떤 고기에요?”
“어서옵쇼 손님!! 이건 점핑 래빗이라고 하는 녀석입죠! 던전에서 막 나온 신선한 녀석이올시다.”
“점핑 래빗?”
아마 토끼의 친척쯤 되는 몬스터겠지.
망설이지 않고 6인분을 주문했다. 가격은 총 24페니로 싼 편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 지출은 괜찮을 거다. 어쨌거나 내일은 던전에 들어가는 만큼 든든히 먹어둬야 하니까.
“다음에 또 오시오! 형씨!”
“감사합니다.”
노점 주인이 건넨 꼬치구이를 받아들고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역전 개찰구 앞처럼 붐비는 인파를 가로지르며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보니 잔디가 드러난 공터에 배낭을 깔고 앉은 말톤과 라디가 시야에 들어왔다.
살갑게 다가가 음식을 내려놓으며 외쳤다.
“이 몸 등장!”
“왔군.”
“.....”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가져오는 도중에 한두 개 집어먹을까 갈등했지만, 꼬맹이가 눈치채고 뭐라 할까 봐 간신히 참았다.
손바닥을 맞비비며 말했다.
“자, 뜨거울 때 먹자! 3인분만 주문하면 모자랄 것 같아서 일부러 많이 시켰거든? 이따가 각자 8페니씩 주면 돼.”
“오오!!!”
포장재 대용으로 쓴 나뭇잎을 펼치자 말톤이 탄성을 내질렀다. 동시에 맛있는 냄새를 동반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고기 표면의 반질거리는 윤기가 텅 빈 위장으로 하여금 미친 듯이 요동치게 만들었다.
꿀꺽.
“잘먹겠습니다!!”
누가 말릴 새도 없이 꼬치를 양손에 움켜쥐고 큼지막하게 한 입 베어 물었다.
“....!!!”
이 무슨...!
육즙이 터져나온다.
농후한 감칠맛이 물감 번지듯 사르르 퍼져나갔다.
간장과 유사한 소스를 덧바른 파의 풍미가 고기의 감칠맛을 돋구었다. 숯불 내음을 흠뻑 머금은 버섯이 느끼함을 잡아주었으며, 재료 전반에 스며든 고기의 육즙이 내용물을 한데 뒤섞어 완벽한 조화를 이끌어냈다.
그야말로 진(?) 삼위일체!
이 점핑 래빗 고기를 이것보다 더 맛있게 조리할 방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겠지.
눈앞의 꼬치구이를 살아생전에 마하트마 간디가 먹었더라면 유레카를 외치며 한 손엔 카레를, 다른 한 손에는 비브라늄 바주카포를 든 채 세인트 폴 대성당에 융단폭격을 쏴재꼈을 것이다!
그야말로 맛의 Be 폭력!
“아흐흐흐...”
“오, 이거 상당히 괜찮군...! 평소 자네가 해주던 요리에도 견줄 수 있을 정도일세. 흠... 인간들이 이런 조합을 생각해내는 걸 볼 때면 매번 신기하단 말이지.”
“흐흐... 헐겠다 인마!”
“진심일세. 자네는 평소 본인의 요리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네. 내가 보장하건데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테지. 헌데 평범한 노점에서 이 정도 맛이라니... 제법이로군.”
“크흐흐.. 뭐 네가 그렇다면야. ....근데 넌 뭐하냐?”
막상 배고프다던 꼬맹이는 무릎을 끌어안고 앉은 채 고기엔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배낭에서 딱딱한 비스킷을 꺼내 씹는 모양새는 버림받은 다람쥐처럼 쓸쓸한 분위기를 풍기기까지 한다.
게다가 녀석이 물고 있는 저 비스킷, 나도 예전에 먹어 봤는데 무슨 짱돌을 씹는 줄 알았다니까? 아마 펜던트 대용으로 목에 걸고 다니면 총알도 한 번 막아줄 게 분명하다.
녀석이 힐끗 쳐다보더니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둘이서 다 드세요.”
“이거 진짜 맛있어. 그런 돌멩이나 씹고 있지 말고 와서 한 번 먹어봐.”
“....전 괜찮아요.”
“독 안 탔으니 안심해라. 아니면 막 너도 비건 뭐 그런 거냐?“
”.....“
꼬르륵.
녀석이 뭐라 말하려 했지만, 소리가 새어나오자 황급히 배를 틀어쥐고 입을 다물었다. 고기를 싫어하는 건 아닌 모양. 비스킷을 씹는 내내 녀석의 눈동자는 나와 말톤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꼬치구이를 쫓고 있었으니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정말 안 먹을 거냐? 이렇게나 맛있는데. 내가 다 먹어버려도 모른다?”
“.....”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봐. 아까는 입만 살아서 그렇게나 떠들더니 왜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됐냐.”
“....없어요.”
“뭐라고? 좀 더 크게...”
“아이 씨, 돈 없다고요!!! 둘이서 마음껏 드세요!!”
“깜짝이야. 싫으면 싫다고 하지 왜 느닷없이 소리를 지르고 그래?”
정서불안인가?
손에 든 꼬치를 내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뭔 돈이 없어. 너 아까 나한테 2실링이나 삥 뜯어갔잖아. ...너 혹시 사채라도 빌려 썼냐? 빚쟁이였어?”
“빚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시고요. 아무튼 저는 돈 못 내겠으니 남은 건 먹든 버리든 마음대로 하세요!”
녀석이 홱 고개를 틀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터부를 건드린 모양. 아까 내게서 받아낸 것도 있고 무엇보다도 말톤한테 30실링을 받아갔으니 돈이 모자라진 않을 텐데...
누군가에게 빚을 지거나 도박에 쓸 자금을 마련하려는 게 아닌 이상 설명이 안 된다. 그렇지만 녀석이 도박에 빠질 성격은 아닌 것 같고... 혹시 부양해야 할 가족이라도 있나?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 정말 그거 먹고 배 안 고프겠냐? 내일 아침 일찍 던전에 들어가야 하니 그때는 밥 먹을 시간도 거의 없을 텐데.”
“.....배고픈 건 익숙하니 걱정 마세요. 제 역할은 다 할 수 있으니까 그거면 된 거잖아요.”
“.....”
어째서일까.
녀석이 안쓰러워 보였다.
주린 배를 틀어쥔 채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모습이 얼마 전까지의 나와 겹쳐 보여서일지도 모른다.
이 세계에 오고 매 순간순간을 굶주림과 함께했다. 어느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 지독한 허기가 오랜 친구처럼 느껴질 정도로. 배고픔은 늘상 꼬리표처럼 내게 따라붙어 괴롭혔다.
굶주림.
허기.
상실감.
과거에는 몰랐었다.
배부르게 먹는다는 게 이렇게나 힘든 것이었는지.
텔레비전에서 아프리카의 굶주리는 아이들에 대해 아무리 열심히 떠들어도 별 관심 없었다. 내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이 세계에 오고 나서야 알게 됐다.
공포(??).
그건 불쌍하겠거니, 안타깝다느니, 힘들겠다거니 그런 미적지근한 감정이 아니었다.
극렬한 공포.
매 순간순간 아사(?死)의 두려움이 깊은 수렁처럼 내 목을 옥죄였다.
매일 밤, 잠에 들면 눈을 뜨지 못할까 봐 무서웠다. 어느새 잘 움직이지 않는 왼팔이 무서웠다. 공기가 무거워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더 이상 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하게 되자 내 몸이 스스로를 녹여 영양분 삼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아귀(??)가 되었다.
앙상한 갈비뼈. 늘어진 거죽. 비천한 몸뚱어리 하나밖에 없던 시절.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먹은 지 정확히 이주일째가 되던 날이었다. 이제 더 이상은 한계였고, 신중해야 한다고 온몸이 외쳤다. 이대로 가다간 죽는다고. 머나먼 땅에서. 홀로 쓸쓸하게.
사흘 밤낮을 가리지 않고 땅을 팠다. 아니, 나흘인가. 어쩌면 그보다 짧았을 수도 있다. 그저 땅만 팠다. 혼신의 힘을 다해. 내 모든 것을 걸고.
더 이상 팔이 움직이지 않던 순간, 함정에 처음 보는 짐승이 걸렸다.
짐승이었다.
그건 짐승이었다.
그 짐승은 날카롭게 깎은 나무창에 꽂혀 옴짝달싹하지 못하면서도 아직 숨통이 끊어지지 않아 애처롭게 울부짖었다.
짐승이었다.
그건 짐승이었다.
녀석이 팔다리를 휘저으며 저항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녀석이 뭐라 뭐라 말을 걸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겐 선택권이 없었고, 녀석도 선택권이 없었다.
녀석은 내가 정확히 필요로 하는 것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짐승이었다.
그건 짐승이었다.
그래야만 했다.
그래야
내가 이성을 유지할 수 있을 테니.
손톱 사이사이에 낀 살점.
입안을 맴도는 역겨운 생고기의 맛.
살려줘.
그때 나는 분명히ㅡ
“도란!!!!”
“어, 어... 어 왜 말톤. 미안, 뭐라고?”
“....자네 괜찮은가?”
“내, 내가 왜? 미안, 잠깐 정신이 팔려서...”
“....아무것도 아닐세.”
“.......”
볕이 드는 공터에는 어울리지 않는 침묵이 팽배했다.
힘겹게 입술을 때어 정적을 깼다.
“...야 꼬맹아.”
“왜요.”
“너 그냥 이거 다 먹어라.”
“아니, 제가 지금까지 한 말을 귓등으로...”
“돈 필요 없으니까 먹으라고.”
“네?”
녀석의 눈동자가 크게 벌어졌다.
살짝 식은 꼬치구이를 강제로 손아귀에 쥐여주었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 그냥 먹어. 돈 안 받을 테니까.”
“...갑자기 왜..?”
“아이 씨, 그냥 내가 다 먹어버린다?”
“부, 분명 돈 안 받는다고 했죠?! 그, 그럼.”
“그래.”
녀석이 쭈뼛거리며 조심스럽게 한 입 베어 물더니 어깨를 움찔했다. 이내 허겁지겁 먹어치우기 시작한다. 마치 이틀은 족히 굶은 사람처럼 콧망울에 묻는 것도 개의치 않는 모습.
“천천히 먹어라, 그러다 체하겠다.”
“켁...! 크흑...!”
말하기가 무섭게 녀석이 캑캑거리며 가슴을 두드리기에 수통을 건네주었다.
“그럴 줄 알았다, 자.”
“가, 감사...”
꿀꺽꿀꺽.
녀석이 허겁지겁게 물을 들이켜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자연히 한숨이 새어나왔다.
“에휴... 너 잠깐 이리 와봐.”
“뭐, 뭐하느....!!”
기왕 친절을 베푸는 거 확실하게 해 두는 게 났다. 어차피 최소 한 달 동안은 좋든 싫든 같이 붙어서 지낼 건데 사이가 원만해져서 손해 볼 건 없으니까.
주변에 굴러다니던 잎사귀를 주워다 코끝에 묻은 소스를 닦아주었다.
“....어?”
“다 컸다는 얘가 칠칠맞기는... 이러니까 꼬맹이란 거지.”
짙푸른 벽안에 내 투구가 비쳐 보였다. 숨결이 훅 와닿을 정도까지 다가가자 어디선가 달달한 체취가 물씬 풍겼다. 그렇게 잠시 마주 보고 있자니 오크통 안의 와인처럼 붉은 로브 아래로 곱상한 얼굴이 단풍처럼 서서히 물들어간다.
...얘 남자 맞지? 왜 이렇게 예뻐.
지금껏 푹 눌러쓴 후드 탓에 얼굴을 잘 살필 수 없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녀석이 얼마나 예쁜 얼굴인지 실감났다.
그래, ‘잘생긴’이 아니라 ‘예쁜’ 얼굴이다.
희고 고운 뺨을 간질이는 잿빛 머리카락은 모닥불의 재와 닮았다. 꼬치구이 소스가 묻어 번들거리는 콧방울은 살짝만 꼬집어도 붉은 자국이 남을 듯 투명했고, 잘게 부서진 얼음 위를 흐르는 빛처럼 푸른 기운이 맴도는 눈동자는 겨울 바다를 보는 듯했다.
어쩐지 아픔을 간직한 듯한 그런 눈빛.
음... 만약 녀석이 지구에 살았더라면 온갖 여장 콘테스트에서 상이란 상은 죄다 휩쓸지 않았을까? 전혀 위화감이 없다. 동성 친구보단 누님들에게 쉬이 귀여움받을 법한 그런 외모.
이런 녀석이 남자로 태어나다니...
통탄할 노릇이군...!
“뭐, 뭐... 뭐하시는 거예요...?!”
“코에 소스 묻었다.”
“호,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
꼬맹이가 내 손에 든 나뭇잎을 홱 채가자 잿빛 머리카락 아래로 언뜻언뜻 엿보이던 붉은 페인팅이 드러났다.
녀석에 뺨에는 마치 작은 생쥐의 수염을 본뜬 듯한 세 줄기의 붉은 페인팅이 그려져 있었다.
비슷한 걸 예전에도 봤던 것 같은데... 그래, 아프리카 부족들이 비슷한 걸 전신에 그리는 걸 목격한 적이 있다. 아마 부족 간 신분증처럼 쓰이거나 용기를 증명하기 위해 새긴다고 했었을 거다.
다만 그들의 문신은 무섭고 강인한 느낌인데 반해 이 꼬맹이의 페인팅은 소동물처럼 귀엽기만 할 뿐이다.
설마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려고 그린 거면 완벽한 오산이군.
녀석은 내 시선이 꽤나 신경 쓰였는지 등을 돌리고 잎사귀에 비비적비비적 얼굴을 문대기 시작했다.
“야, 꼬맹아.”
“...뭐요.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말 바꿀 생각 하지 마세요. 저 진짜 돈 안 낼 거예요. 괜히 이제 와서 친절한 척 해 주셔도 소용없어요.”
“아니, 내가 그리도 못 미덥냐. 돈 받을 생각은 없으니깐 안심하고 많이 먹어. 그래야 키도 크고 근육도 붙고 하지. 너는 너무 말라서 탈이야. 형처럼 멋진 남자가 되려면 일단 많이 먹어야 한다?”
정적.
“어... 왜?”
“푸하하핫!!! 끄윽...! 흑..!! 도, 도란...! 여, 역시 자네는 내 기대를 배반하는 적이 없군!! 자네가 최고일세...!”
말톤이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녀석은 뭐가 그리 웃긴지 눈물을 찔끔 흘린 채 옆구리를 움켜쥐고 잔디 위를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겸연쩍게 뒷덜미를 긁적이며 말했다.
“왜, 왜 갑자기 처웃고 지랄인데? 시발 사람 무안하게... 야, 나 정도면 괜찮지!!”
어디까지나 주관적이지만 나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키는 이 세계 평균 신장보다 훨씬 큰 편이고, 어릴 적부터 단련해온 근육으로 몸매도 나쁘지 않다. 흑발 탓에 천대받긴 하지만 얼굴 본판도 나름 괜찮은 편이고.
“야, 쟤 왜 저러는지 알...?”
고개를 돌리니 날 복잡한 표정으로 빤히 바라보는 꼬맹이와 눈이 마주쳤다.
녀석의 후드 안쪽이 쫑긋거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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