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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하렘 생존기-48화 (48/375)

〈 48화 〉 2계층 #5

* * *

[048] 2계층 #5

“아무 말 마세요.”

라디가 고개를 돌렸다.

후드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고사리 같은 하얀 손바닥이 짙은 와인빛 원단에 닿고,

잠시 멈찔했다.

불안하게 올려다보는 시선.

작게 심호흡하더니,

이내 질끈 감고.

후드를 젖혔다.

“......”

귀.

항상 푹 눌러쓰고 다니던 후드 속

그 아래 감춰져 있던 건

자그맣고 앙증맞은 동물의 귀였다.

“......”

“.....”

“...뭐, 뭐라고 말 좀 해봐요...”

“아니, 방금 아무 말도 하지 말라며.”

“그.. 그건 그렇지만...”

내가 빤히 바라보자 녀석이 잔뜩 움츠러들었다. 축축한 손바닥으로 로브 끝자락을 불안하게 매만지더니, 이내 곧 튀어나가기라도 할 것처럼 흔들리는 동공으로 동굴 입구를 힐끔힐끔 쳐다본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모습.

조용히 팔을 뻗자 그 숨이 턱 막히며 이미 잔뜩 움츠러든 어깨가 한없이 더 쪼그라들었다.

이젠 안쓰러울 지경이다.

곽 움켜쥔 라디의 주먹에 내 손길이 닿았다.

녀석이 몸을 크게 움찔하며 두 눈을 질끈 감는다.

나는 그 손을 부드럽게 풀어 맞잡았다. 그걸로 모자라 마디 사이를 곱게 매만지며 미소지어주었다.

잔뜩 찡그렸던 두 눈이 뜨이며 멍하니 쳐다봐온다.

“바보야.”

“.....”

“고작 이거 때문에 꽁꽁 숨기고 다녔던 거야?”

“아...”

이내 깍지를 끼고 살며시 끌어당겼다. 녀석의 작은 몸도 살짝 이끌려왔다.

“정말... 어린애 같은 표정이나 짓고. 난 처음부터 이런 것 따위 신경도 안 썼어.”

두 눈이 크게 벌어졌다.

잔뜩 경직됐던 어깨가 느슨해지며, 떨리던 몸이 가라앉고 굳게 닫혔던 입술이 떨어졌다.

이내 푸른 눈동자에 드리웠던 안개가 걷히자 별똥별이 빠져든 바다처럼 눈부신 물결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고생 많았지?”

이리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라디가 내 품에 안겨들었다.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열을 참는 녀석이 한없이 애처로워 보였다.

알고 있다.

어떤 마음인지.

얼마나 큰 용기를 내었는지.

수인(人).

타고난 신체 능력과 뛰어난 감각을 바탕으로 전투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존재.

특유의 질긴 생명력으로 어느 환경에서든 발군의 적응력을 자랑하는 존재.

이름 난 용병이나 모험가 중에는 수인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 중 일부는 혹독한 차별을 겪는다고 한다.

아마 그런 거겠지.

라디는 한참이나 나를 끌어안고 애타게 울었다.

그 서러운 눈물에서는 지금까지 그녀가 겪었을 애환과 비통, 아픔 따위가 적적하게 배어나왔다.

나는 그 자그마한 등을 토닥이며 끝까지 위로해주었다.

그렇게 동굴 밖으로부터 구슬피 젖어드는 빗발이 조금 뜸해졌을 무렵, 가슴팍 아래서 촉촉하게 젖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알고... 계셨어요...?”

“그래.”

“언제부터요..?”

“좀 됐어.”

“그런가요...”

라디가 천천히 고개를 들자 나는 그녀의 눈가에 맺힌 물방울을 걷어내 주었다. 그러자 녀석은 포근한 미소를 머금으며 다시금 내 품에 얼굴을 묻었다.

처음 라디의 정체를 의심하기 시작한 건 던전에 들어오고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녀석은 누구보다 빠르게 나무 위에 있던 그린 모스 유충을 감지했다. 물론 나도 곧바로 눈치채긴 했으나 녀석의 경고가 없었더라면 발견하는 게 조금 늦어졌을 거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어두운 크누트 선술집의 실내에서 라디는 내 발목에 무장한 코볼트 단검을 정확히 꿰뚫어 봤다. 분명 도적을 처치했을 때 묻었던 희미한 피 냄새를 감지했던 것이리라. 그 외에도 냄새만으로 몬스터의 접근을 알아차린 적은 수없이 많다.

그리고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을 때 확신했다.

그때 라디가 내 손을 쳐냈던 이유는 자신이 수인이라는 걸 들키는 게 두려워서였겠지.

그림자 마물과 조우하기 전 결성했던 토벌대에서 후각만으로 상대가 도적인지 아닌지 여부를 판단하기도 했고, 말톤이 은근하게 눈치를 주기도 했다. 그 정도면 어지간히 둔감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눈치채기 마련이다.

...막상 더 당연한 성별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고마워. 용기를 내줘서. 솔직하게 털어놓아 줘서.”

“...도란님을 속이는 것 같아서 죄송했어요... 더 이상 지체하면 안 될 거 같았어요.. 그런데도 너무 무서워서... 혹시라도 도란님이 절 떠나면 어떡하나 싶어서...”

“내가 먼저 떠나는 일은 없어. 약속할게.”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 사실은 한 가지 더 사과드려야만 하는 일이 있어요.”

라디가 내게 떨어져 다소곳이 무릎을 꿇더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사실은 그때... 도란님이 쓰러지시고 투구를 들쳤을 때.. 머리를 보고... 잠깐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아, 이 사람도 비슷한 고통을 겪었겠구나... 어쩌면.. 어쩌면 이 사람은 나를 이해해 줄 수 있겠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라디가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고르지 못한 호흡과 방울져 흘러내리는 눈물에서 죄책감이 뚝 뚝 묻어나온다.

하지만 그 모습이 남 일 같지 않았다.

이것들은 전부,

내가 했던 생각과도 같으니.

그러니 이건 전부 내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괜찮아. 사실 나도 마찬가지니까.”

“도란님도요...?”

초조해하는 두 손을 맞잡고 다정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 드디어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어. 서로가 서로의 고통을 덜고, 그렇게... 그렇게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

“내가 검은 머리라서... 그리고 널 만나서 정말 다행이야.”

내가 이 세계에 떨어진 지는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라디는 평생을 이 세계에서 살아왔다.

그녀의 사정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내가 밝게 웃으며 책가방을 메고 등굣길을 나섰을 때도 그녀는 모진 핍박과 멸시의 시선을 견뎌야 했을 것이다.

내가 겪어왔던 고통 따윈 비할 바가 아니다.

이 작은 몸으로 그 큰 세상 속에서 치여왔을 그녀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왔다.

그렇게 우리는 또 한 번 서로를 애달프게 끌어안았다.

*

“좀 진정 됐어?”

­끄덕.

라디가 말없이 고개를 기울였다.

모닥불을 바라보며 나란히 앉은 우리.

바스러져 흩날리는 재가 그녀의 연색 머리칼과도 닮았다.

거창한 대화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했다.

그렇게 동굴 천장에 맺혀 떨어지는 무수한 물방울을 감상하고 있노라니 불현듯 그녀가 정적을 깼다.

“도란님...”

“.....”

시선을 내리자 무릎을 끌어안고 앉은 라디가 나를 지긋이 응시해왔다.

마치 그 깊고 푸르른 눈동자에 나를 담아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입술이 열렸다.

“...혹시 제가 도란님한테 해드릴 수 있는 게 있을까요...?”

“.....”

“오늘만... 오늘이라면 그 어떤 요구를 해도 괜찮으니까... 어떤 것이든 딱 한 가지 들어드릴게요.”

“.....”

담담하게 숨을 들이쉬며 고민했다.

아니, 고민하는 척 따스한 불빛이 기운 녀석의 얼굴을 감상했다. 아직 물기가 채 가시지 않아 반짝거리는 눈망울, 선명하게 비친 붉은 문양. 앙증맞게 떨리는 귀...

이런 용모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소녀에게 소원을 빈다면 하나밖에 없겠지.

처음부터 그 선택지 외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심 설레는 마음을 부여잡고 입을 열었다.

“...만지게 해줘.”

“....네.”

“귀! 귀 만지게 해줘!!”

“네...?”

“귀 만지게 해주세요!!!”

소원을 빌라고 한다면 당근빠따지!!

이렇게나 귀엽게 쫑긋거리는 귀를 놔두고서 만지지 말라는 게 말이 되나!

예전부터 궁금했다.

그 촉감이, 그 질감이!

베라스틴에도 수인이 있긴 하지만 상당히 드문 편,

F급 모험가에 더불어 당장 눈앞에 닥친 의뢰를 해결하기 바빴던 나로서는 가까이서 볼 기회도 별로 없었고 말이지.

이 기회에 아주 낱낱이 파헤쳐 주겠다!

“아, 아니 기껏 무엇이든 들어주겠다는데...! 바라는 게 고작 그거에요?!”

“고작 그거?!! 그럼 그거 외에 뭐가 있겠냐!!”

“여, 여러 가지 있잖아요! 그... 그.. 이곳저곳...”

“으아아앙!! 귀 만지게 해주세요!!!”

“아, 알았으니 크, 큰 소리로 말하지 마세요!”

라디가 내 정면으로 기어왔다. 다만 그 얼굴이 평상시보다도 조금 붉다. 게다가 손가락을 쪼물딱거리며 안절부절못하는 게 영 낌새가 이상하다.

“혹시... 싫어?”

어떤 부탁이든지 들어준다고는 했으나 녀석의 기분을 해치는 요구라면 이쪽에서 사양이다.

그럼에도 기대에 비례해 실망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잔뜩 낙담한 목소리로 묻자 녀석이 황급히 손사래쳤다.

“아,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싫어하는 거 아니니 그렇게 침울해하지 마세요! 어휴... 그냥... 누구한테 만져지는 건 처음이라...”

“그래?! 그럼 괜찮은 거지!?!”

부정하기 전에 재빨리 팔을 뻗자 라디는 섬찟 신음하더니 몸을 웅크렸다. 그래도 안 봐줄 거다.

“오... 오오..!”

말캉말캉.

손가락을 접었다 펴자 손바닥 전체에 걸쳐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졌다. 마치 화로에 갓 구운 따끈따끈한 떡을 쭈물거리는 듯한 감각. 라디의 귀는 짤막한 회색 털로 뒤덮여있었는데, 북슬북슬하면서도 매끄러워 모순적인 두 감촉이 공존했다.

신기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무수한 물체를 접했지만 이런 건 처음이다. 만지면 만질수록 빠져드는 중독성이 있어 일주일 내내 쪼물딱거려도 전혀 질리지 않을 것만 같다. 하지만 그랬다간 녀석이 정말로 복날 강아지처럼 늘어질 테니 참아야지.

그런데... 이건 무슨 동물 귀일까? 짤막하고 뭉툭하면서도 도톰한 게 영 짐작이 안 간다.

“...꼬맹아, 근데 너는 무슨 수인이냐?”

“아니... 그것도 모르셨으면서 그렇게 호들갑 떠신 거였어요...?”

“왜, 내가 뭐 어때서. 그래서 어떤 수인인데?”

“...사낭 쥐 수인이에요.”

“그래?”

사낭 쥐라... 들어본 적 없다. 이 세계에만 존재하는 품종 중 하나겠지. 쥐의 먼 친척쯤 되려나?

헤실거리며 손을 놀리고 있자니 라디가 푸른 눈동자를 치뜨며 물어왔다.

“...좋으세요?”

“그래, 너무 좋다...”

“.....”

녀석이 살짝 몸을 일으켜 내게 등을 돌리더니 체중을 실어왔다. 내 허벅지 사이에 쏙 안긴 자세. 훨씬 편하다.

“...혹시라도 불편하면 말하세요..”

“너야말로, 혹시 아프거나 하진 않아?”

“......”

라디는 아무 말 없이 더 기대왔다.

따뜻한 체온이 느껴진다. 뭐야 이거. 너무 좋은데.

그녀에게서 풍기는 은은한 체취에 더불어 손끝에 감기는 쫀득한 촉감 때문에 돌아버릴 지경이다. 이런 걸 모르고 살았다니 인생 절반 손해봤어어...!

...이걸 괴롭히면 어떻게 될까?

내심 장난기가 돌아 귓바퀴를 슬쩍 꼬집었다.

“...읏.”

“.....”

품 안에 담긴 몸이 작게 움찔했다. 하지만 녀석은 내 바지의 봉제선을 한 번 세게 움켜쥐었을 뿐, 불만을 토로하지는 않았다. 허나 그 새초롬한 태도가 나의 내면에 잠들어 있던 가학적인 욕구를 일깨운다.

“....!”

이번엔 조금 더 짓궂게 꼬집자 틀어막은 입 사이로 작은 신음이 비틀려 나왔다. 슬쩍 시선을 내려 얼굴을 훔쳐보자, 녀석은 입을 틀어막은 그대로 새빨갛게 변한 채 굳어 있었다.

조금 아팠나?

천천히 뺨을 쓸어내려 기분을 풀어주려던 순간ㅡ

아.

문뜩 무시무시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어쩌면 이 세계의 근간을 뒤집어 놓을 수도 있는

그런

무시무시한 생각.

“꼬맹아...”

“네, 네! 왜.. 왜요...?! 전 아무렇지도...!”

“너 혹시...”

­...꿀걱.

“꼬리도 있냐?”

“.....”

“....”

“....네.”

“......!!!”

유레카.

번개라도 내리친 듯,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사실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귀가 있다면 꼬리가 있다. 꼬리가 있으면 귀도 있다. 이것은 거룩한 세상의 진리 중 하나.

꼬리 없는 수인은 스프 없는 라면이요, 인력거 잃은 김첨지일지니.

떼려야 뗄 수 없는 둘의 관계를 부정하는 건 만물의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것처럼 부질없는 짓.

녀석, 그런 흉악한 비장의 무기를 로브 속에 감춰두었을 줄이야!

반드시!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다.

“꼬맹아...!”

“아, 안 돼요!! 꼬리는...! 꼬리는 안 돼요!!”

“너.. 너! 그런 무기를 숨기고 있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위험하잖아!!!”

“네, 네?!! 위험할 것까진...?”

니가 위험하다고.

나한테.

“당장 꺼내!!”

“아.. 네...? 보여드리는 것만이라면 문제 없긴 한데... 요...?”

내가 목격했던 수인들은 대부분 가벼운 옷차림을 선호했을뿐더러 으레 과시하듯 꼬리를 내놓고 다녔으니 딱히 보여준다고 해서 수치스럽진 않을 터다. 지금껏 녀석이 내게 꼬리를 감췄던 이유는 사낭 쥐 수인이란 걸 들키면 안 되니까 그런 걸 테고.

라디가 주섬주섬 일어나 로브 앞섶 단추를 풀기 시작하자 사브작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침내 녀석의 손길이 멎고, 잘 숙성된 와인 빛깔의 로브가 사르르 땅에 떨어지자 그녀의 전신이 시야에 들어왔다.

하여 잠시 말문을 잃고 말았다.

저번에 얼핏 본 것 외에 라디의 두꺼운 로브 아래 감추어져 있던 몸매를 제대로 직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게다가 지금은 단단한 레더아머도 잠시 풀어놓은 상태, 즉 가릴 것 없이 체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소리다.

이걸, 이걸... 뭐라 설명해야 하지...

어, 얼굴은 순딩하게 생긴 주제에...!!

아직 소녀 티를 못 벗은 얼굴과는 달리 매우 공격적인 몸매다. 그러고 보니 수인은 하나같이 마음이 넓다고 했던가. 확실히 그러하다.

믿겠다. 넌 수인이 맞군.

“그, 그렇게 빤히 쳐다보면 좀...”

녀석이 한쪽 팔로 제 가슴께를 가리고 섰다. 다 안 가려진다 야. 대체 어떻게 저리 흉악한 물건을 로브로 감추고 다녔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커서 비율을 해치는 것도 아니고.

마음만 같아선 하루종일 세워놓고 감상하고 싶었으나, 그대로 넋 놓고 바라보자니 녀석의 얼굴이 단풍처럼 새빨갛게 물들어갔기에 이제 내 할 일을 하기로 했다.

“꼬리!!”

“아, 알겠어요.. 잠깐만 기다...”

“꼬리잇!!!”

“어휴...”

라디가 살짝 허리를 비틀며 상의 자락을 피더니 곧 뭔가가 뿅! 하고 튀어나왔다.

“꼬리...!”

살랑살랑.

예상했던 일반적인 쥐의 꼬리와는 많이 다르다. 뭐랄까... 러시안 블루 품종의 고양이와 비슷한 느낌. 길고, 말캉말캉하고, 짧은 회색 털로 뒤덮여있다.

“.....”

“...도란님..?”

“....”

“도란님 괜찮으세요...? 숨결이 조금... 거친데..?”

“...질래..”

“네...?”

“꼬리 만질래!!!”

“이, 이건 안 돼요!!!”

녀석이 제 꼬리를 끌어안고 뒷걸음질쳤다.

하지만 어림없지! 이곳은 좁은 동굴 안, 네놈이 도망갈 길은 없다!

손가락을 꿈틀거리며 다가서자 채 몇 걸음도 떼지 않아 라디의 등 뒤가 바위벽으로 가로막혔다. 녀석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벽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이내 겁먹은 눈동자로 가련히 올려다봤다.

그렇게 바라보면 꼭 내가 나쁜 짓을 하는 것만 같잖아.

“도, 도란님 이건..”

“싫어.”

그렇게 애태워 놓고선.

순순히 투항해라!

천천히 발을 내딛자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가 점점 가까워지고, 막 겹쳐지려던 찰나...!

“날 내팽개치고 아주 잘들 놀고 있었군.”

­빠각!!!

“꺼허헉!!! 말톤... 이.. 개자식... 이....”

눈부신 별과 함께 시야가 어두워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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