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 고대 유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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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 고대 유적 #2
“끔찍하군.”
거대한 모래폭풍이 주기적으로 미궁을 휩쓸고 지나갔다.
사풍이 불어닥칠 때마다 우리는 천 조각으로 눈코입을 틀어막고 통로 구석에 납작 엎드려 바람이 멎기만을 기다렸다. 간혹 날카로운 돌멩이가 투구를 스치기도 했으나, 다행히도 아직까지 큰 피해를 입은 사람은 속출하지 않았다.
그렇게 도달한 것이 지금.
“...완전히 빼빼 말랐구먼. 꼭 말라비틀어진 고목을 보는 것 같네.”
“으... 이건 통나무처럼 사지가 몽땅 잘려나가 있어요. 만약 당사자가 사후에 이 모습을 봤더라면 엄청 원통하겠는걸요?”
폭풍이 지나가면서 모래에 묻혀 있던 송장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시체들은 하나같이 온몸의 수분이 메말라 있었고, 포장에 공을 들인 과일들처럼 낡디 낡은 거적때기나 아마포로 감싸져 있었다. 전형적인 미라의 모습.
“...전부가 장례를 치른 건 아닌 모양인데? 몇몇은 천갑옷 같은 걸 입고 있어. 기후 때문에 썩지 않고 그대로 유지됐나 봐.”
“이 시체는 어느 시대 사람일까요...?”
“적어도 몇백 년은 됐을 테지. 도중에 유물을 훔치러 온 도굴꾼이 아닌 이상 대전쟁 이전일 가능성이 높을 걸세.”
“몇백 년...”
이제는 누더기가 되어버려 분간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시체들이 걸친 의상을 자세히 살펴보니 요즘 사람들이 입는 옷과는 아예 판이한 디자인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이 사람들은 이 문명의 주민이었을까 아니면 우리처럼 일확천금을 노리고 온 약탈자들이었을까.
“...혹시 이것도 가져다가 팔면 돈이 좀 나올까?”
“설마... 잘라가시게요...?”
내가 미라의 팔을 들어올려 요리조리 살피자 라디가 질겁했다.
“왜? 돈만 된다면 이 정도야.”
“...관두는 게 좋아요. 혹시라도 병이 옮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럴까? 하긴 별로 비싸게 쳐줄 것 같지도 않네.”
혹여나 싶어 시체 허리춤에 매달린 곡도를 뽑아봤지만, 검신에 잔뜩 녹이 슨 데다 중간부터는 아예 똑 부러져 있어 포기했다. 이런 건 고철상도 매입을 거절하겠지.
얌전히 다시 칼집 안에 넣어주고 제 갈 길을 가려던 차, 말톤이 의아하게 눈썹을 추켜세우며 메이스를 붙잡았다.
“음...? 도란, 물러나게.”
“왜?”
“아니 방금... 분명 시체가 꿈틀거린 것 같았는데... 바람 탓인가? 흠... 내 착각이었나 보네.”
“그래...? 그러면.”
서걱!
고민하지 않고 미라의 목을 베었다. 수분이 메말라 가벼워진 머리통은 바람 빠진 배구공처럼 힘없이 모랫바닥 위를 나뒹굴었다.
“도란님...? 왜 멀쩡한 시체를 베고 그래요. 저주라도 받으면 어쩌려고...”
“저주는 무슨... 항상 영... 문헌에 따르면 이런 걸 내버려 뒀다가 화근이 생기더라고. 막 언데드처럼 되살아날 수도 있잖아? 그럴 바엔 확실하게 해 두는 편이 낫지.”
뻔하디뻔한 클리셰에 넘어가지 않겠다!
영화에서 단골 소재로 우려먹는 빈약한 플롯의 피해자가 될 의향은 추호도 없다. 내가 경박한 발걸음으로 통로를 오가며 미라들의 목을 도륙하자 라디가 어이없다는 눈길로 쳐다봐왔다.
“정말... 가끔 보면 영문 모를 짓만 벌인다니까요...”
서걱!
그러면서도 할 건 다 하는 게 녀석답다.
우리는 유적지에 제 이름을 새겨 넣는 몰상식한 관광객처럼 조우하는 시체마다 저만의 증표를 남기며 미궁을 전전했다. 말톤이 지나간 자리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가죽 덩어리가, 나와 꼬맹이의 뒤로는 목이 없는 시체들이 통로바닥을 나뒹굴었다.
한 손으로는 세기 벅찰 정도로 함정들과 맞닥뜨리기도 했지만, 최첨단 내비게이션을 장착한 내 앞에서는 다소 번거로운 수준에 그쳤다.
그렇게 계속 전진하던 도중...
“도란님, 잠깐만요.”
갈림길. 평소처럼 개의치 않고 목소리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찰나 라디가 날 멈춰 세웠다. 배낭끈을 움켜쥐며 의아하게 응시하자니 녀석은 두 눈을 감으며 집중하고는 이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 그래?”
“음... 이상한 냄새가 나요. 지금까지랑은 조금 다른데...”
“함정은 아니고?”
“네, 함정이라기보단... 어쩌면 먹을 게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저쪽이에요.”
라디가 반대편 갈림길을 가리켰다. 언뜻 봐서는 지금까지 지나쳐왔던 길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그래, 한 번 가보자. 혹시 모르니까 조심하고. 거기까지 가면 좀 쉬는 게 좋겠어.”
“동감일세. 곧 던전의 밤이 찾아올 조짐이 보이네. 발광 이끼들이 완전히 빛을 잃기 전에 이쯤에서 야영 준비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
“그러네요... 솔직히 슬슬 피로하던 참이었는데...”
찜통 같은 더위 속에서 꼬박 한나절을 헤맸다. 건조한 기후와 예고 없이 몰아닥치는 모래폭풍 탓에 입술은 메말랐고, 빈번하게 마주치는 함정과 시체들은 갯바위에 이는 파도처럼 야금야금 정신력을 깎아내었다.
발바닥 가득 배긴 굳은살이 아니었다면 내 샌들은 모래 알갱이에 진즉 피투성이가 되고도 남았을 테지.
이빨에 씹히는 돌조각을 뱉어내고 전진하던 차, 이상을 감지했다.
“정지. ...함정이야.”
“물러나야 할까요..? 하지만 저건...”
“...확인해 보는 게 좋겠어. 네가 말했던 냄새는 저기서 풍기고 있는 거지?”
“네...”
라디가 전방을 쳐다보았다.
녀석의 시선이 맞닿은 곳에는 다 쓰러져가는 낡은 건물이 한 채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화살이나 구덩이 트랩을 제외하면 그간 미로를 전전하며 마주친 첫 번째 인공물이다.
다만 그 앞길을 함정이 가로막고 있다는 게 문제지만.
“무슨 종류인지 알겠나 도란?”
“아니... 거기까진 모르겠어. 꼬맹아 알 것 같아?”
“...아니요.”
“그럼 한 번 발동시켜보지 뭐.”
여느 때처럼 적당한 돌멩이를 주워들었다. 이내 대수롭지 않게 내던졌지만, 온통 모래로 뒤덮인 바닥에서는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잠잠하네요.”
“그러게, 뭔가가 있다는 건 확실한데...”
“잠시 비켜 보게.”
라디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있자니 이번엔 말톤이 앞으로 나섰다. 녀석은 손바닥으로 조심스레 바닥의 모래를 헤집고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뇌까렸다.
“....역시 그랬군.”
“뭔가 알겠어?”
“이건 유사(??)라네. 발을 내딛는 순간 그대로 가라앉을 테지. 온갖 구멍이란 구멍으로 모래가 들이찰 뿐만 아니라 희생양의 숨통을 천천히 죄어오는 질 나쁜 함정이라네.”
“어쩐지 바닥 상태가 좀 이상하더라...”
비슷한 걸 영상에서 본 적이 있다. 늪지대나 강가에서 간혹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었던가. 물론 눈앞의 함정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것일 테지만. 멀쩡한 겉보기와는 달리 수많은 망자가 저 아래 잠들어 있겠지.
섣불리 행동하기 전에 깨달아서 다행이다.
“근데 이거... 건널 수나 있나?”
함정의 종류를 알아내긴 했지만 마땅한 돌파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널빤지처럼 가볍고 부피가 큰 물체를 딛고 건넌다면 모를까, 미로 한가운데에 그런 게 존재할 리도 없고.
“어떡하지...? 이대로라면 곤란한데...”
“음... 도란님, 제게 좋은 생각이 있는데요.”
“오, 뭔데? 말해봐.”
라디가 손가락을 펴며 자신있게 읊조렸다.
“제가 로프를 몸에 묶고 건너...”
“안 돼.”
“네...? 하지만...”
“안 돼, 절대로.”
“아니, 끝까지 들어보세요!”
단호하게 일축하자 녀석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저는 몸이 가벼우니까 혼자라면 충분히 기어서 통과할 수 있어요! 그다음 바위에 로프를 묶어서 고정하면 도란님이랑 말톤님도 건너갈 수 있을 거고요...!”
라디가 수렁 건너편에 돋아난 바위를 가리켰다. 확실히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다만,
“안 돼, 너무 위험해. 무슨 일이 벌어지면 어쩌려고 그래. 모래 늪 아래에 뭐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어쩌면 이중 함정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있고.”
“그, 그건 그렇지만요...”
라디가 말꼬리를 흐렸다.
녀석한테 그런 위험천만한 일을 맡기고 싶지 않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충분히 일리 있는 계획인 건 사실이었으나 무엇보다도 내가 내키지 않았다. 어쩌면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 아니, 분명 그럴 것이다.
“아쉽지만 포기하자. 굳이 그런 리스크를 감수할 필요.... 말톤...?”
“흐흐... 도란 자네도 사랑꾼 다 됐군. 이전이라면 유물을 찾아야 한다면서 인정사정 가릴 것 없었을 텐데 말이야. ...그 두 눈으로 똑똑히 봐두게.”
말톤이 묘한 웃음을 흘리더니 기괴한 동작으로 몸을 풀었다. 이내 천천히 뒤로 물러서고는 돌연 놀라우리만치 빠른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어...? 야, 야!!”
녀석은 차마 붙잡을 새도 없이 문자 그대로 높게 뛰쳐오르더니, 벽을 박차고 치솟아 허공을 질주했다.
“어...?”
“나, 날았어...?!”
마치 한 마리의 백표범을 연상시키는 광경. 녀석은 장장 15미터가 넘는 수렁을 가뿐히 뛰어넘어 반대편에 착지했다. 신체 능력을 극한까지 활용한 몸놀림.
“어떤가, 가끔은 나도 멋있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하지 않겠나?”
뒤돌아선 그의 녹안이 날카롭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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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톤이 묶어준 로프에 의지해 모래늪 건너편에 도달했다.
다 건너고 나니 내심 등골이 서늘했다. 로브에 체중을 실었음에도 몸이 푹푹 빠지는 게, 그냥 건넜더라면 꼼짝없이 가라앉았을 게 분명했다.
“....이걸 무식하게 뛰어서 돌파하는 놈은 너밖에 없을 거다.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어쩔려고...”
“흐흐... 자네도 요령만 알면 할 수 있네.”
“그러고 보니 말톤님도 크누트 길드 금 랭크를 달성하실 정도의 실력자였죠... 특이 취향만 아니었더라면 지금쯤 상급 파티의 일원으로 활약하고 계셔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데...”
“그러게... 평소 하는 모습만 보면 그냥 팔푼이인데...”
“팔푼이라니, 자네 둘이 함께 덤빈다고 한들 아직 나한텐 안 되네. 그리고 그 얘긴 나중에 하도록 하고 지금은 저기부터 확인하도록 하지.”
말톤이 정면의 구조물을 턱짓했다. 작은 창고 크기의 건축물은 단단한 석재로 지어져 제법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잔뜩 풍화된 외벽으로 세월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전위에 설게, 말톤 넌...”
“함께 돌입하도록 하지. 라디, 자네는 후방 경계를 부탁하네.”
“알겠어요. 도란님은 말톤님하고 보조를 맞춰주세요. 절대 무리하지 마시고요.”
“...알겠어.”
미지의 공간. 이 미궁에 들어오고 첫 번째로 마주친 인공 구조물이다. 어쩌면 이 유적의 후손이 은둔해 있을지도 모르고, 최악의 경우 일전에 만났던 괴물과 동급의 마물이 존재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익숙하게 서로 시선을 교환한 뒤, 단번에 문짝을 걷어차며 안으로 돌입했다.
쾅!
“꼼짝 마라!!”
즉각 말톤과 어깨를 맞댄 채 두리번거리며 어둑한 실내를 살폈다.
하지만 비좁은 건물 내부는 문짝이 엎어지며 피워올린 먼지만이 자욱했을 뿐, 어떠한 기척도 들려오지 않았다.
“.....빈집 같은데?”
“그런 것 같군... 다행일세.”
천천히 검을 갈무리하고 등불을 켰다.
약 다섯 평 정도 넓이의 허름한 폐옥은 이미 오래전에 사람의 손길이 끊긴 듯 수북하게 쌓인 모래와 알 수 없는 악취만이 탁하게 맴돌았다.
무의식적으로 코를 틀어막았다.
“이 냄새는...”
“저 항아리들에서 흘러나오고 있어요.”
어느새 다가온 라디가 로브자락으로 입가를 가리며 선반에 놓인 항아리들을 손짓했다.
“...창고로 쓰던 건물인가 보네. 식료품 저장고인가 봐. 이걸로 이 유적에도 사람이 살았다는 건 확실해졌네.”
벽을 매만지자 말라붙은 회반죽 덩어리들이 바스러졌다. 신이 설계한 듯 흠잡을 구석이 없던 장벽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 명백한 인간의 작품이다.
이내 구석에 놓인 항아리들을 막 열어보려던 차, 라디가 내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왜?”
“...몇몇 항아리들에서 미약하지만 톡 쏘는 향이 나요. 아마 독극물일 텐데... 함정이라기보단 벌레나 쥐를 쫓으려고 넣어둔 걸 거예요.”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 오랫동안 보관하려면...”
“네, 그래서 제가 그런 건 골라내고 드릴테니... 윽...! 근데... 으읍...! 대부분.. 썩은... 것들이라.. 우욱...!”
항아리에 얼굴을 들이대고 냄새를 맡던 라디가 코를 틀어막으며 기겁했다. 어렴풋한 불빛으로도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 게 보일 정도다.
“...새삼 느끼는 건데, 너 그동안 나랑 있을 때 어떻게 참았냐.”
“그야... 들키면 안 되니까.... 윽...! 이것도 상했... 읏.. 이것도..!”
라디가 필사적으로 헛구역질을 참았다.
돌이켜 보니 예민한 후각 탓에 곤혹스러운 순간도 많았을 텐데 녀석은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다. 당장 배낭에 넣어둔 도마뱀 마물 소재만 해도 악취가 장난 아닐 텐데.
녀석도 고생이구나.
“도, 도란님... 이것들 좀 밖으로.. 대신 옮겨주실 수... 읍...!”
“그래 알겠다.”
울상짓는 라디를 대신해 항아리들을 밖으로 운반했다. 도중에 호기심을 못 이기고 하나 열어봤는데, 비강을 스트레이트로 들쑤시는 듯한 악취와 함께 허여멀건한 덩어리들이 잔뜩 보여 재빨리 다시 덮었다.
...꼬맹이는 이걸 온전히 느끼고 있다는 건가? 그야말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윽..!
“말톤 너 거기서 뭐해!!! 빨리 안 덮어?!!”
“오... 이건 상한 유제품으로 보이는군, 몇백 년 전에 제조된 치즈라... 이렇게 귀한 물건이...”
“시끄럽고 빨랑 덮어!!!”
“이건... 빵인가..? 단단하군! 이런 걸 그냥 먹었다간 이빨이 남아나질 않을 테지...!”
말톤이 항아리 뚜껑을 들춰가며 감평했다. 시야를 꼬릿꼬릿하게 물들이는 악취에도 불구하고 놈의 표정은 덕력 높은 수도승처럼 평온했다. 나도 어디 가서 비위가 약한 편은 아니라고 자부하지만, 녀석은 인간이 아니다.
엘프니 진짜 인간이 아니긴 하지만.
“야 이 귀쟁이 깐프 새끼야!! 빨리 안 닫아?!!”
“윽...! 내, 냄새... 대체 어떤....!!”
“아, 위험한 건 아니니 괜찮네. 내 걱정은 말고 마저들 하게.”
““당장 여기서 꺼져!!!”요!!”
“에힝... 알겠네..”
기어코 저 멀리 항아리들을 끌고 가 호기심을 충족하는 말톤을 외면하고 다시금 창고 안으로 들어오자 라디는 새빨개진 코를 붙잡고 씨근거렸다.
“괜찮아...?”
“.....냄새가 너무 독해요..”
“가서 몇 대 쥐어박고 올까?”
“아니요, 그것보단... 이 안 공기도 너무 탁해서.... 일단 맑은 공기 좀 쐐야겠어요.”
녀석이 날 밖으로 끌고 나오더니 참아왔던 숨을 몰아쉬었다. 가쁜 호흡이 들락거릴 때마다 흉부가 크게 오르내린다. 시선을 눈치챈 라디가 곧바로 팔뚝을 꼬집었지만.
오 분쯤 지나자 창백했던 얼굴에 핏기가 돌아왔다.
“물 마실래?”
“...고마워요.”
수통을 건네주자 녀석이 꿀꺽꿀꺽 물을 들이켜고 입가를 훔쳤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네요. 아까는 정말...”
“고생했다, 혹시 뭐 찾아낸 거 있었어?”
“아... 네, 아마도요. 이리 와 보세요.”
라디가 은근하게 미소짓더니 내 소맷자락을 붙잡고 창고 안으로 잡아끌었다. 정리가 끝나 텅텅 비어버린 실내에는 항아리 한두 개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녀석이 그 항아리들을 손짓하며 말했다.
“저 도자기들은 역한 냄새가 안 나요. 뭔가 먹을 수 있는 게 들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같이 한번 열어보실래요?”
“그래, 조금 묵직하네. 셋 세면 뚜껑을 들 테니까 마음의 준비 하고 있어.”
마른침을 삼켰다.
고대 유적에서 발견한 물품 중에 그나마 처음으로 정상인 게 나왔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물론 다른 항아리들의 내용물을 보아하니 엄청난 행운까진 기대하기 어려웠으나, 뭐가 됐든 먹을 수 있는 게 들어있을 확률이 높았다.
건조된 콩 정도만 되어도 지금은 감지덕지지.
긴장되는 순간,
뚜껑에 부착된 부적을 뜯고 고급스러운 문양이 덧칠된 항아리를 열자ㅡ
“이, 이건!”
“회... 횡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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