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하렘 생존기-56화 (56/375)

〈 56화 〉 고대 유적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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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6] 고대 유적 #6

육중한 석문이 소름끼치는 소음을 내며 바닥을 긁었다.

한바탕 굉음이 지나간 후에는 전모를 알 수 없는 향이 코끝을 스치고 사라졌다.

문 너머로부터 석벽에 그득했던 결로가 얼어붙을 정도의 한기가 느껴진다.

“그럼... 들어가 볼까..?”

“네...”

혹여나 함정이 있을 걸 대비해 벽돌을 안으로 굴려봤으나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안전을 확인한 나는 장검을 뽑아든 채 랜턴을 앞세워 천천히 그 안으로 들어섰다.

은빛 도신에 번뜩이는 노란 화광이 어두컴컴한 방 안에 기다란 잔상을 드리우고 간헐적으로 반사되어 물체가 있음을 알렸다.

이윽고 불안하게 흔들리던 등불이 제자리를 찾아가자 내 눈에 들어온 건ㅡ

“이제 그 미라들이 어디서 왔는지 알겠네...”

작업장.

그게 내 첫인상이었다.

벽면에 정갈하게 걸려 있는 톱, 갈고리, 집게 등 내장을 끄집어낼 때 쓰는 도구들과 부서진 황동 저울. 갖가지 동물을 형상화한 도자기와 방 전체를 뒤덮은 정체 모를 얼룩.

허나 그중 단연코 이목을 사로잡았던 건, 중앙을 차지한 석제 작업대와 그 위에 드러누운 백골의 존재였다.

나는 그간 미궁을 전전하며 보았던 미라들의 존재에 곧바로 이 밀실의 용도를 짐작했으나, 모두가 그랬던 건 아닌가 보다.

“이곳에도 사체가... 여긴 대체 어떤 목적으로 쓰이던 공간일까요...? 어쩐지 속이 메스꺼운데...”

“미라를 제작하는 곳이겠지.”

“미라를... 제작해요...?”

라디가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듯한 표정으로 올려다봤다.

“왜?”

“아, 아니 그게... 인위적으로 미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건 금기잖아요? 언데드를 제작하다니... 어떻게 이 방만 보고도 그걸....”

“.....”

그야 당연하지.

나도 실물로 직접 보는 건 처음이지만, 여러 매체를 통해 많이 접해봤으니까.

이 유적에 발을 들이고 난 뒤부터 느끼던 기시감.

그래, 이곳은 내 세계의 고대 이집트 문화와 닮았다.

미라의 존재. 상형문자. 부조. 식문화와 건축 양식까지.

그 외 자잘한 사항을 열거하자면 끝도 없다.

“냄새가 독해요... 저 항아리들에서 나오고 있는데... 살충제 같아요.”

“그렇겠지.”

“이 동물 모양 단지 안에는 뭐가 들었을까요...? 부패한 냄새가 나는데...”

“열지 마.”

“네..?”

“내장이야.”

적출한 장기를 모아둔 카노푸스 단지다.

“....그럼 저건...”

“전부 미라를 만들기 위한 도구들이야. 장기들을 꺼내서 방부처리를 하고, 그 안을 톱밥이나 천으로 채워 넣는 거지. 저기 보이는 구멍은 피를 흘려보내기 위한 배수로고.”

이제 알겠다. 왜 녀석들의 약점이 심장인지.

미라를 제작할 때 유일하게 남겨두는 장기가 바로 심장이다. 고대인들은 지능과 감정이 심장에서 나온다고 생각했으니까.

삐걱삐걱, 낡은 등유 랜턴을 움켜쥔 채 항아리 안에 담긴 향유와 송진 가루를 살피고 있자니 문뜩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라디를 쳐다보자 녀석은 복잡한 표정으로 날 응시하고 있었다.

“....왜.”

“...도란님은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아시는 거예요..?”

“내가 있던 곳에서도 장례의식으로 미라를 만들었거든. ...정말 오래전에 있던 문화지만.”

고고학자 아버지를 둔 덕에 일반인들이라면 무심코 흘려들었을 법한 내용까지 알게 됐다. 이따금씩 오지에서 함께 야영할 때면 어김없이 화톳불 앞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잠들곤 했으니까.

허나 방금 발언은 실수였던 모양이지.

“....도란님 대체 정체가 뭐에요...? 장례의식으로 언데드를 만드는 풍습 따위 들어본 적도 없어요. 대체 어떤 지역에서 고인의 육신을 언데드로 만든다는 거예요...”

쯧.

속으로 혀를 찼다.

이전부터 문화 차이를 실감하고 경계했지만, 설마 이 시점에서 쌓여왔던 고름이 터질 줄이야.

하지만 지금은 시기가 너무 나쁘다.

“...꼬맹아, 잘 들어. 믿기는 어렵겠지만 사실 나는 매우 먼 곳에서...”

“믿을게요.”

“뭐...?”

“...제가 도란님을 못 믿을 리 없잖아요. 나한테 어떤 존재인지 잘 알면서...”

시선이 마주쳤다. 광망한 대양을 들여다보듯 짙푸른 눈동자. 굳건한 신뢰가 담긴 푸른 빛.

“...그래, 나중에 다 설명할게. 그러니 지금은 조사에 집중하자. 어쩐지 여기에 오래 머무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네, 알겠어요.”

침체된 공기도 그렇고, 장기간 폐쇄되었던 공간이니 혹 미지의 병원균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최대한 단시간에 필요한 정보를 찾고 나가야만 한다. 미궁 탈출의 실마리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으니까.

랜턴을 기울이며 작업대를 살폈다.

거대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석제 테이블. 새하얀 백골이 안치된 단면은 대리석처럼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었고, 시야가 잘 미치지 않는 하단에는 거무튀튀한 자국이 잔뜩 눈에 띄었다.

외상없이 온전하게 유지된 해골을 관찰하고 있자니 라디가 얼룩에 손가락을 문지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건... 피 일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약품이 굳어서 생긴 자국일 수도 있겠지.”

작업대에 별다른 조각이나 그림이 없다는 걸 확인하자 이번에는 공구들이 걸린 벽으로 향했다. 하나같이 정교할뿐더러 섬세하게 제작된 도구들은 비록 오랜 세월에 녹슬었을지언정 첨단의 날카로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도란님, 여기에도 부조가 있어요.”

끄트머리가 U자 형태로 휘어진 갈고리를 들여다보던 중 라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에 든 공구를 원위치에 되돌리고 돌아보자 그곳엔­

“...가림막?”

거대한 칸막이가 한쪽 벽을 가리고 있었다.

“...도란님, 이것 좀 치우게 거들어주세요. 물기를 먹어서 그런지 너무 무거워요.”

“그래, 셋 세면 잡아당기는 거다?”

“네.”

낑낑거리는 녀석을 도와 가림막을 붙잡고 잡아당겼다. 습하고 밀폐된 공간에 방치된 터라 나무틀은 손에 닿기가 무섭게 으스러져 마치 젖은 신문지 뭉치를 주무르는 기분이었다.

그 불쾌한 촉각에 곧바로 미간을 찌푸렸으나 곧바로 조금 전 감상이 얼마나 미온했는지 깨달았다.

방 한구석을 차지한 카노푸스 단지도, 앞서 보았던 잔인한 벽화도 뒤이어 펼쳐질 광경에 비하면 약과였으니.

가림막을 치우자 충격적인 정경이 전모를 드러냈다.

처음엔 그것이 뭔지 몰랐다.

“이건... 공동묘지를 묘사한 걸까요...?”

“.....”

하지만 등불의 심지가 타들어가며 그을음을 피워올릴수록, 점차 그 벽화가 의미하는 바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

사해(死?).

족히 수백 수천을 넘는 미라가 석관에 잠들어 있었다.

엄지손가락 크기였던 관들은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넷으로 점점 수를 불려나갔다.

이어 증식을 거듭하고 거듭해 방 전체를 아우르게 되었다.

처음엔 단순한 얼룩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전부ㅡ

사자(死者)들이었다.

그리고 문뜩 든 생각.

나, 도란은 벽화를 흑안에 담으며 사고했다.

설마 이것들이 단순한 조각이 아니라면?

만약 저마다 의미를 부여받은 모종의 상징이라면?

아무런 의도도 없이 고대인들이 공방에 조각을 남겼을 리 없다.

장기가 든 항아리. 사용감 역력한 도구들. 각종 보존제와 미라 제작소.

그리고, 마침내 한 가지 추론에 당도하기에 이르렀다.

“...꼬맹아.”

“네?”

“...한 가지, 만약 네가 고대인이었고... 이 공방에서 작업하던 기술자라고 해보자.”

“....”

“만약 상부에서 미라를 제작하라는 명령이 떨어지면 어떡할 거냐.”

“음... 그거야...”

라디가 내 질문에 의아하게 눈동자를 깜박이면서도 성실히 대답했다.

“저는 언데드 제작 방식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요... 지금까지 알아낸 정보를 토대로 나름 추측을 해 보자면... 일단 수레 같은 걸 이용해 사체를 이곳까지 운반했을 테고.”

라디가 등 뒤 통로를 힐끗 쳐다보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아까 도란님이 항아리에 장기가 담겨있다고 했으니 쉽게 부패하는 내장들은 미리 빼둔 게 아니었을까요? 저 도구들은 전부 그걸 위한 것일 테고... 화학 약품을 써서 살이 썩지 않도록 방부처리를 했겠네요. 그러고 보니 미궁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제가 맡았던 보존제 냄새가...”

“그래, 그렇게 미라를 만들고 나서는.”

“음... 그다음이요? 아마도 다시 지상으로 올려보내겠죠? 이 아래에는 수납할 공간이 없으니까요.”

“그래, 근데 정말 그게 전부일까?”

“네? 무슨 말이 하고 싶으신...”

“네가 그 당사자라고 생각, 아니... 비유하기 쉽게 예를 들면, 네가 희귀 독충 표본을 채집하기 위해 멀리 떠났다고 가정을 해보자.”

랜턴을 낮게 드리우며 말을 이었다.

“일주일 내내 정글을 헤매다가 마침내 목표물을 발견하고 거처로 돌아왔어. 그럼 어떻게 할 거야?”

“으음...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는데요.. 굳이 말씀드리자면... 아마 독은 뽑아내고 나머지 빈 껍데기는 박제하지 않을까요? 며칠 동안 고생해서 힘들게 찾아낸 거니까요... 촛농이나 밀랍을 얇게 코팅하거나...”

“근데 만약 네가 소유할 수 없다면.”

“뭐 그렇다면 아쉬운 대로... 양피지에 그 외형을 상세하게 기록하거나 그림으로 남기... 잠깐, 혹시 도란님이 말하고 싶은 게...”

“.....”

그래.

미라 제작은 최소 70일 이상을 요구하는 고된 노동이다.

뜨거운 기온에 사체가 쉽게 부패하는 걸 막기 위해 빛도 안 들어오는 서늘한 지하에서 작업해야 했으며, 시체를 파먹으러 온 온갖 곤충과 악취에도 시달려야 했을 것이다.

또한, 이세계인의 관점에서 생각해 본다면, 자신의 손으로 지인의 주검을 훼손해 언데드로 만든다는 죄악감에 시달렸을 거라 추측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바로 조금 전 라디가 의문했던 것처럼, 죽음을 또 하나의 축복으로 여겼던 고대 이집트와는 달리 이곳엔 명백하게 언데드라는 불온한 존재들이 실체하니까.

그래서.

그렇게 힘들게 제작한 미라를 아무 고별도 없이 지상으로 올려보냈을까?

아니, 나라면 그러지 않을 거다.

사형집행인이 처형을 거행할 때마다 그 횟수만큼 제 몸에 문신을 새기는 것처럼,

라디가 독병에 라벨을 붙이고, 내용물을 다 쓴 뒤에도 그 띠지를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미라 제작이 끝날 때마다 장인은, 이 공방 벽에 고인을 상징하는 조각을 하나하나 끌과 망치로 새겨 나갔던 것이다.

미어지는 애환을 담아 하나, 맹렬하게 타오르는 집념을 담아 하나,

우리가 알지 못할 연고로 자신의 식구, 지인, 거주민들을 언데드로 만들며.

하나, 다시 또 하나.

하나, 다시 또 하나.

하나, 다시 또 하나.

그렇게 이 방을 빼곡히 채운 뒤엔ㅡ

나는 작업대 위에 올라가 있는 백골 한 구를 내려다보았다.

그 텅 빈 눈구덩이, 벌어진 턱뼈와 마주쳤다.

그건 마치 내 꼴을 비웃는 듯했다.

그리고 이명(??).

유적에 가까워지고 난 뒤로부터 느낄 수 있었던 속삭임이, 목소리가, 마침내 형상을 갖추었다.

폭소.

그건 웃음이었다.

낯선 남성이 턱뼈를 덜그럭거리며 폭소했다.

통로에 즐비했던 미라, 그들이야말로 내게 길을 인도했던 목소리의 주인이었고,

그 음산한 웃음은 하나둘씩 늘어나고, 범람해,

뼈대를 거머쥐고, 살을 불리며, 명암을 더해,

군중(?)이 되었다.

오래전에 사라졌어야 할 이야기가 나를 부르고 있다.

머나먼 과거로부터.

나를 원하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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