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하렘 생존기-62화 (62/375)

〈 62화 〉 망자들의 유산 #4

* * *

[062] 망자들의 유산 #4

“말톤을 찾아야 해, 당장.”

소름이 살가죽을 타고 기어올랐다.

피가 차갑게 식는다.

동굴에 발을 들이자 횃불이 하나둘씩 점화했다.

가까운 곳부터 먼 곳으로. 동쪽에서 터오른 서광(?光)이 사막의 모래알에 생명을 불어넣듯이.

파르스름한 횃불의 행렬은 끝도 없이 이어져서 이내ㅡ

보고 말았다.

석관(??).

공간을 씹어먹을 듯이 창궐한 무채색.

먹구름처럼 시야를 가득 메운 회색.

먹먹할 정도로 무덤덤한 그들은 우리가 숨 쉬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도시의 비밀.

그 많던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가.

사라진 육신은 어디로 갔는가.

그 답이, 눈앞에 있었다.

꼭꼭 숨어라.

꼭꼭 숨어라.

낯선 이방인이여.

추악한 도굴꾼이여.

보물을 찾거든.

우리는 어머니의 품, 대지 아래 비밀을 묻어두었으니.

이곳은 우리의 무덤임과 동시에­

“...요람.”

석관 사이로 삐져나온 비쩍 마른 아이의 팔.

수백 년도 지난 과거의 망령이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

황급히 굴 밖으로 나왔다.

물기를 말릴 새도 없이 옷을 걸치고 배낭을 짊어졌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

하늘은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땅거미가 내려앉고 한기가 드리우면,

이곳은 망자들의 땅이 된다.

“꼬맹아!! 말톤 어딨는지 알겠어?!!”

“모르겠어요!!”

“씨발!!!”

“아마 그리 멀리 가진 않았을 거예요!!”

“일단 높은 곳으로 올라가자!! 어서!!!”

이곳을 벗어나야만 한다. 조금이라도 더 멀리.

고지대로 가면 말톤을 발견하기도 쉬울 터.

산 정상까지 도달한다면 놈들도 쉬이 기어오르진 못할 거다.

나는 느려터진 두 다리를 채찍질해 전력으로 질주했다. 서둘러. 다급히.

앞뒤로 짊어진 배낭이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철퍼덕!

“으윽...!”

“꼬맹아!!”

가파른 계단을 오르던 중, 라디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물에 젖은 옷감이 노면에 얼룩을 남기고, 옷자락이 찢어지며 무릎에서 피가 배어나왔다.

가슴이 미어지는 광경이었지만, 추스를 여유는 없다.

“전 괜찮아요!! 그것보다 빨리 말톤님을...!”

라디가 비틀거리며 일어나 거칠게 앞으로 뛰쳐나갔다.

“크윽...! 젠장!!!”

골목 사이사이를 누비며 질주했다. 무너진 담벼락을 뛰어넘었다. 거인의 치아처럼 각진 건물들이 우리를 집어삼킬 것처럼 음영을 드리우고, 코끝에 선연한 황혼의 공기가 긴박함을 고조시켰다.

폐가 터질 듯 숨이 차올랐지만 지금 멈췄다간 모든 게 끝나고 만다.

“말톤님!!! 말톤님!!!!”

“말톤 어디야!!!! 씨발!!!”

개미굴처럼 어지러이 들이찬 고샅길을 가로지른다. 이 빌어먹게 복잡한 건물들. 군데군데 돋아난 암반은 천혜의 요새와도 같다.

“도란님, 여기에요!!!”

라디가 나를 수로 밑바닥으로 잡아끌었다. 우리는 메말라서 쩍쩍 갈라진 흙바닥을 전력으로 내달렸다.

“빛이...!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어요..!!!”

“신경 쓰지 말고 일단...!”

“도란!!! 라디!!!”

찰나, 수로 건너편에서 익숙한 금발 사내가 튀어나왔다.

“야, 말톤 너 지금까지 어디 갔었어!!”

“알아냈네!!!”

“대체 뭘...!!”

“전부 다...! 알아냈네...!!”

“...가면서 들을게!!”

말톤이 내게서 배낭을 건네받고 뛰기 시작했다. 녀석은 우리와 보폭을 맞추어 달리면서도 황급히 말을 이어나갔다.

“자네들과 헤어지고 난 뒤 나는 한 건물에 들어갔었네! 그리고 그곳 집무실을 뒤지다가 우연히 발견한 지하 공간에서 한 비석과 맞닥뜨렸다네!”

말톤이 잠시 숨을 들이켜더니 내 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자네... 지금까지 한 번도 의문을 품어본 적 없나? 이렇게 큰 도시를 세울 정도의 문명이... 왜 제대로 된 활자 하나 없었는지 말일세.”

“.....”

그러고 보니, 지금껏 미로를 전전하며 여러 부조를 봐 왔지만 그중 활자가 새겨진 건 단 하나도 없었다. 간간이 상형문자가 존재하긴 했으나 이런 문명의 기저를 지탱하는 언어라고 하기엔 조금 부족한 감이 없잖아 있다.

그렇다면 왜?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으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현대의 건축 기술로도 엄두를 낼 수 없는 미궁에, 역방향 운하를 건설하고 고도의 마법까지 구사했을 정도의 문명이... 활자가 없다?

이는 비유하자면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달리는 아이와 다름없다.

“말톤님은... 알고 계시.. 나요..?”

라디가 숨을 헐떡이며 되묻자,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곤 전방을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들은 두려웠던 걸세. 자신들을 파멸로 몰아붙인 존재가 이곳을 찾아낼까 봐. 혹여나 활자로 기록을 남기면 추적당할까 봐. 그들은 역사 속에서 스스로를 지웠네.”

“....그게 네가 방금 알아낸 내용이야?”

“그렇네, 자네가 주었던 종이 기억하는가? 그게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네. 집무실 지하 비밀 공간에서 발견한 비석과 대조하며 내 나름대로 열심히 해석해보았지. 그리고 우리가 품어왔던 의문들에 대한 해답이 바로 거기 있더군. ...썩 유쾌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말일세.”

“...말톤?”

그의 태도에서 위화감이 느껴졌다.

평소와 다른 녀석의 모습에 의아해하고 있자니, 라디가 화제를 되돌렸다.

“일단 그 얘기는 나중에 하시고...! 지금은 도망치는 게 우선이에요!!”

“....그래! 말톤, 어디로 가야 할지 알겠어?!”

“저 바위산 꼭대기의 배를 타고 탈출할 수 있을 걸세! 그리고 저 배에 올라타려면... 입구를 찾아야...”

“저기 있어요 입구!!! 저기 저 동굴 맞죠?!!!”

어지럽게 돋아난 건물 사이, 산 중턱 부근에 시꺼먼 구멍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 안으로 엎어지듯 뛰어들자마자 주변에 널브러진 잡동사니로 입구를 틀어막았다.

“꼬맹아 거기 나무판자!!”

“여기 있어요!!!”

“도란...! 이것 좀 도와주게나!!”

“잠깐 기다려!!!”

“말톤님!! 이곳도 막아야 해요...!!”

다같이 힘을 합쳐 바리케이드를 만들었다. 정신없이 손을 놀리다 보니 어느덧 장애물이 내 키 높이까지 쌓였다. 극적인 효과는 기대할 수 없지만, 잠시 침입을 저지하는 건 가능할 터였다.

“휴우... 이제 한숨 돌릴 수 있으... 려나?”

“아직 안심하기엔 일러요. 그 숫자라면 언제든지 돌파해올 거예요.”

“제길... 그런 곳에 시체들이 숨겨져 있을 거라고 누가 알았겠어...”

바리케이트 너머, 이제는 완전히 빛을 잃은 던전의 하늘을 목도하며 읊조렸다. 이제 잠시 후면 언데드들이 생명의 온기를 찾아 활동을 개시하겠지. 그 수와 맞붙는다면 날이 밝을 때까지 전투를 벌여도 모자랄 거다.

“...그래도 진작 알아내서 다행이었네... 만약 폭포 안쪽에 언데드가 있는 걸 모르고 도시 안에서 밤을 보냈더라면...”

“꼼짝없이 죽었겠네요... 아니, 어쩌면 저희도 저들처럼 망자가 되어 이 도시를 영원히 떠돌았을지도...”

“그러게 말일세. 한데 조금 놀랍군... 폭포 뒤라고 했나? 자네들 그런 곳은 뭐하러 기어들어간 겐가?”

“아.” “아.”

말문을 잃었다.

그도 그럴 게, 둘이서 으샤으샤 할 곳을 찾다가 들어갔다고 어떻게 곧이곧대로 말하겠는가.

슬쩍 돌아보자 라디도 손가락으로 입가에 가위표를 그린 채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그 얼굴이 붉은 건 비단 달음박질 때문만이 아닐 터다.

“도란?”

“그... 아니 그... 물장구치며 놀다 보니 동굴이 보이더라고. 그래서 혹시 보물이 숨겨져 있지는 않을까 해서 들어가 봤지. 근데 보물은커녕 석관들만 가득하더라.”

“그런가? 운도 좋군. 아무튼 빨리 이곳을 벗어나도록 하지. 가면서 내가 알아낸 사실들을 말해주겠네.”

말톤이 랜턴을 점등하자 위를 향해 뻗어나간 계단이 어렴풋하게 빛을 반사했다.

나와 라디는 잠시 시선을 마주한 뒤, 잰걸음으로 그를 뒤따르며 경청했다.

“그 비석에서 알 수 있었던 건... 그들, 이 도시의 주민들이 큰 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네. 죄목은 적혀 있지 않았지만, 매우 무거운 잘못이었다는 건 분명하지. 무려 신들이 직접 나설 정도였으니 말이네.”

“신? 대체 어떤 신이... 지상사에 개입할 정도로 엉덩이가 가벼운 신은 그리 많지 않을 텐데요?”

“그 부분은 비석이 무너져 있어서 해독할 수 없었네. 다만, 자네들이 벽화에서 보았다던 천사를 기억하는가? 천사들을 부려 인간들을 벌한 모양일세. 주민들이 원래 살던 거주지를 떠나 이런 던전 깊숙한 곳에 미궁을 만든 이유도 그 때문이지. 그들의 추격을 피하고자 숨어든 걸세.”

“그런 내막이... 그렇다면 이제야 좀 이해가 가네..”

비로소 한 의문이 풀렸다.

하지만 해소되지 않은 다른 의문이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근데 그러면 같은 거주민을 미라로 만든 건...? 중죄를 짓고 신들에게 쫓기면서까지 이런 땅속으로 숨어들 정도면 삶에 대한 의지가 굉장했다는 건데, 언데드는 오히려 그 반대잖아. ...삶을 버리고 영혼까지 종속되는 거니까.”

“흠... 그에 관해서도 알아낸 내용이 있긴 하네만...”

말톤이 턱을 짚더니 언짢은 듯 미간을 한껏 구기며 말을 이었다.

“조력자가 있었다더군.”

“조력자?”

“그렇네. 변변찮은 밑천도 없이 터전에서 도망쳐온 주민들에게 숨어 살 거처를 제공하고, 던전을 개조해 지형지물을 만들고, 이 미궁을 건설한 것도 전부 그의 작품이었다더군. 단, 조건이 있었지.”

“...조건이요?”

라디가 끝끝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끼어들자 말톤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한 존재를 위탁하는 거였네. 미궁을 건축한 진짜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지. 하여 주민들은 그 존재를 여왕이라 우러르며 따랐네. 그리고 그들이 마지막에 선택한 방법이 뭐였는지 아나?”

“....설마.”

“그럴세. ...언데드, 바로 저 사자(死者)들일세. 그들은 전부 본인의 의지로 미라가 되길 택한 거라네. 죽어서까지 여왕을 보호하기 위해. 언젠가 여왕이 돌아오면 다시 일어서기 위해. 그들은 스스로를... 불사의 존재로 만들었네.”

“무슨 그런 끔찍한 이야기가...”

“.....”

나는 아직 이 세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몇몇 상식은 있다.

언데드.

그건 인류가 맞이할 수 있는 최대한의 불행이다.

죽어서도 구원받지 못하는 신세.

영원한 고통 속에서 쳇바퀴의 축처럼 닳고 닳아도 그저 삐걱거릴 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귓가에 맴도는 이명이 그를 증명한다.

단말마. 산 채로 미라가 되는 걸 택한 자들의 사무치는 한.

대체 무엇이 그들을 그 지경으로 내몰았을까.

광기에 한없이 근접한 믿음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시발, 어쨌든 그 광신도 새끼들이 우리를 노리고 있다는 거 아냐.”

결론은 간단하다.

“그렇네.”

“탈출할 방법은?”

“비석에 적힌 내용에 따르면, 배를 타고 여왕의 안식처로 갈 수 있다더군. 그 근방에 지상과 이어진 통로가 있을 걸세.”

“그래... 지금은 탈출하는 것만 생각하자.”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내 알 바 아니다.

그들에게 무슨 사정이 있었든, 여왕을 위해 영원히 고통받는 삶을 택했든.

어차피 나와는 하등 상관없는 내용이다.

그들의 복수를 이뤄줄 생각은 추호도 없을뿐더러, 같은 언데드 신세가 될 생각은 더더욱 없다.

그저 내 동료들과 안전하게 빠져나가는 것에만 몰두할 뿐.

“도란님 저기...! 뭔가가 있어요!!”

“그래.”

대화를 나누며 빠른 걸음으로 층계를 오르던 중, 드디어 길었던 계단에도 끝이 보이자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속도를 높였다.

하지만 그 끝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던 건 해방이 아닌, 또 다른 시련이었다.

“제기랄...”

“산 넘어 산이군...”

거대한 공동에 발을 들이는 것과 동시에 횃불이 타오르며 그 위용이 드러났다. 대규모 시립 도서관을 방불케 하는 규모에는 천장까지 맞닿은 선반이 가득했고, 그 위를 석제 단지가 책꽂이처럼 물샐 틈 없이 메우고 있었다.

중후한 적막이 흐르는 모습이 도서관을 연상케 했으나, 공기 중에 팽배한 죽음의 기운은 이곳이 그리 만만치 않은 곳임을 여실 없이 드러내었다.

“...카노푸스 단지들이네. 꼬맹아, 코는 괜찮아?”

“....악취가 좀 심하긴 한데 버틸 만해요. 여기 있는 항아리들은 비교적 보관이 잘 된 것 같아요.”

“다행이네. 어서 나갈 방법을 찾자.”

“네... 저 멀리 문 같은 게 보여요.”

“잠깐, 카노푸스... 말인가?”

“아, 그러고 보니...”

말톤은 나와 라디가 미라 공방을 둘러볼 때 지상에서 대기하고 있었지.

공동 건너편에 보이는 문 쪽으로 다가가며 이 항아리들의 용도를 설명하자 녀석이 미간을 찡그렸다.

“....자네가 어떻게 언데드의 제작법을 알고 있나.”

“그거야 뭐... 저번에 말했지? 내가 좀 멀리서 왔다고.”

“그런 게로군... 알겠네. 조금 흥미가 돋는데.. 나중에 자세히 물어봐도 되겠나?”

“그래, 이 미궁을 빠져나가면. 그보다 지금 문제는 이건데...”

아치형의 거대한 돌문이 앞길을 가로막았다. 문 정중앙에는 정교한 뱀 조각상이 튀어나와 있고, 으스스한 부조들이 그 주변을 수놓았다.

“....이 구멍에 뭔가를 끼워 맞춰야 하는 것 같은데요..?”

라디가 뱀 바로 아래에 난 작은 공간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군... 딱 사람 눈동자가 들어가면 좋을 크기군...”

“...재수 없는 소리 마. 아무래도 이 조각에 비밀이 있는 건 확실해 보이는데...”

툭 불거진 뱀 조각상. 작은 비늘 하나에도 공을 들인 모습. 보는 것만으로도 등골을 섬뜩하게 만드는 외눈은, 붉은 보석이 박혀 흉흉한 안광을 내뿜었다.

당장이라도 살아 움직여 목덜미를 깨물 듯 생동감이 넘치는 모습이었지만, 세월 탓인지 한쪽 머리가 뭉개져 원래만큼의 위압감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저 단지들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이걸 보세요.”

라디가 부조를 손짓하며 읊조렸다.

“인간, 자칼, 독수리, 개코원숭이예요. 저 단지들 모양하고 같아요.”

라디의 말대로 뱀 조각상 근처에는 인간과 나머지 세 동물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었다.

“....”

그 광경을 응시하며 잠시 고민하다가 문뜩 고개를 드니 두 녀석 모두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야... 도란님은...”

“도란, 자네는 항상 위기의 순간마다 눈부신 재치를 발휘해왔지. 혹 뭔가 짐작 가는 건 없나? 게다가... 묘하게 이 상황에 익숙해 보이는군.”

“.....”

그야 당연하지.

석관을 봤을 때부터, 아니, 미라 제작 공방에서 벽화를 목격했을 때부터 이런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고 어렴풋이 예상했다.

그야 그 많은 사체들의 장기를 보관할 장소도 필요할 테니까.

방금 라디가 말한 동물이 사실은 독수리가 아니라 매라는 것도.

....설마 이렇게까지 내 기억 속의 지식과 일치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지만.

“....꼬맹이 말대로 단지에 비밀이 숨겨져 있을 확률이 높아. 앞서 말한 네 가지 동물이 아닌 조각상을 찾아보자. 아마 그 안에 해답이 있을 거야.”

명료하게 내뱉었지만, 그에 반해 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어째서일까.

각기 다른 환경, 문화, 역사에서 출범한 문명이 이 정도의 일치율을 보이는 게 가능할까?

이게 정말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

다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건...

지금 당장은 이 기회를 이용해야 한다.

“...꼬맹아 너는 부조를 살펴봐, 혹시라도 추가로 단서가 될 만한 걸 찾을 수도 있으니까. 말톤, 넌 나랑 같이 가. 흩어져서 수상한 단지가 있나 찾아보자.”

“알겠어요.” “알겠네.”

라디를 문 앞에 남겨두고 단지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무리 침입자를 걸러내기 위한 용도라고 한들 말도 안 되는 곳에 열쇠를 숨겨두진 않았을 터, 대상은 시야가 미치는 곳으로 한정된다.

머릿속으로 수색 범위를 좁힌 나는, 개중 한 항아리 앞으로 걸어가 그 안을 열어보았다.

‘...창자.’

케베세누프(Qebekhsennuef). 매의 형상을 한 단지 안에는 꾸덕꾸덕한 창자가 담겨있었다. 마치 방금 뱃속에서 꺼낸 듯 싱싱한 보관 상태. 그 불가해가 불쾌감을 자극했다.

“...꼬맹이를 두고 오길 잘했네.”

비강을 들쑤시는 날비린내를 자각하며 뚜껑을 도로 덮었다. 방금 열었던 단지가 매 형태였던가. 내 기억과 일치한다면 사람 모양 단지에는 간이, 원숭이 안에는 폐가, 자칼 안에는 위가 들어있었을 거다.

....아버지한테 들었던 역사 지식이 이런 데서 빛을 발하게 될 줄이야.

“...방금 뭐라고 했나 도란?”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빨리 흩어져서 살펴보자. 시간이 많지 않아.”

“알겠네, 조금이라도 수상한 게 보이면 바로 부르겠네.”

우리는 서로 갈라져서 본격적으로 수색을 개시했다.

하지만 곧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을 거라는 당초의 예상과는 달리,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열쇠가 담긴 항아리는 고사하고 작은 단서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몇몇 모양이 이상한 단지들을 발견하긴 했으나 오랜 세월에 열화된 것이었을 뿐.

그렇게 점점 조사는 난항에 빠지고, 석제 바닥에 다급한 발소리만이 요란하게 메아리쳤다.

“도란! 뭔가 찾았는가?!”

“아니... 꼬맹아, 혹시 뭐 발견한 거 없어...?”

“......없었어요.. 아무것도...”

“...큰일이군.”

“젠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혹시 내가 착오한 걸까?

어쩌면 처음부터 열쇠 따윈 없었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 지나왔던 미궁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사고가 미치자 머릿속이 꼬인 실타래처럼 뒤틀렸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그때였다ㅡ

“도란님.. 말톤님....”

무심코 바라본 푸른 눈동자에

“썩은... 냄새가 나요...”

두려움이 가득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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