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하렘 생존기-65화 (65/375)

〈 65화 〉 망자들의 유산 #7

* * *

[065] 망자들의 유산 #7

“이 규모는...”

“...압도적이로군.”

봉인된 몬스터가 득시글거렸던 회랑을 지나자 동굴이 끝나고 외부와 연결된 장소가 나왔다.

날카로운 칼바람이 옷자락을 헤집는 바윗길을 조금 더 걸어 산 정상에 도착하자 발아래로 웅장한 미궁의 전경이 내려다보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시선을 잡아끄는 존재가 있었으니...

“...지리네.”

범선, 타이타닉호를 연상케 할 정도로 거대한 갤리선이 눈앞에 있었다.

선두와 선미를 한눈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 그 원대한 스케일에 탄복하며 선체와 연결된 널빤지를 딛고 배 위로 향했다.

­삐걱.. 삐걱...

“조심하게나.”

“그래, 꼬맹아 괜찮냐?”

“아니요.”

“....”

널빤지는 잔뜩 낡고 노후되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법해 보였다. 발을 내디디는 곳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새어나왔으며, 모퉁이 너머로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도사리고 있어 멀쩡한 사람도 고소공포증에 걸릴 지경이었다.

하물며 라디는 어떠할까.

‘...춤추나?’

호달달 힘없이 떨리는 라디의 다리를 보고 있자니 내가 다 안쓰러울 정도다. 마음만 같아서는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지만, 지금은 판자 폭이 좁아 나란히 걸을 수도 없다.

어찌어찌 간신히 배 위로 오르자 라디가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처럼 바닥에 축 늘어졌다.

“잘했다 꼬맹아.”

“으으... 높은 데는 질색이에요... 이럴까 봐 지금까지는 의뢰도 어지간하면 평지로만 다녔는데...”

“그랬어?”

“네, 예전에 산간 지역에서 이끼 골렘을 사냥하는 퀘스트를 받아들인 적이 있었는데, 하필이면 거기가 크고 작은 낭떠러지가 많은 지형이라 일주일 내내 고생했어요.”

‘한번은 절벽이 통째로 무너져서 얼마나 식겁했던지’ 자그맣게 중얼거린 라디가 몸을 추슬렀다.

내가 녀석을 부축해 일으켜주는 사이, 말톤이 선내를 두리번거리며 중얼거렸다.

“한데... 이곳이라고 해서 특별할 건 없군. 이제 어쩌면 좋겠나 도란?”

“...그러게, 여기 오면 뭐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배에 올라탄 것까지는 좋았지만, 막상 도착하고 나니 막막한 건 여전하다.

중후함이 감도는 다갈색 원목 선체. 목제임에도 불구하고 칼날이 쉬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한 덕에 수백 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온전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남자라면 누구나 이런 배를 타고 바다를 누비는 로망이 있을 테지만, 우리끼리 이 선박을 모는 건 불가능하다. 애초에 여긴 지하 한복판이 아니던가?

“말톤, 네가 봤던 비석에 어떻게 하라고 안 나와 있었어?”

“흠... 비석에는 이 배를 통해 여왕의 안식처로 갈 수 있다는 사실만이 명시되어 있었을 뿐, 그 방도는 적혀 있지 않았네.”

“...결국 또 일일이 찾을 수밖에 없다는 건가요?”

“어쩔 수 없네. 일단 뱃머리부터...”

그때였다.

­쿠웅!

별안간 선체가 크게 요동치더니 묵직한 진동이 아랫배에 느껴졌다.

“뭐, 뭐야 시발!!”

“흠...?”

“무, 뭐죠..?!!”

재빨리 갑판 끄트머리로 가 난간을 짚고 내려다보자 그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나, 날았어...?”

바상(?上). 선체가 서서히 상승하고 있었다. 첨탑처럼 솟은 바위산 꼭대기가 점점 멀어지자 우리가 방금 딛고 온 널빤지가 절벽 아래로 맥없이 추락했다.

이어 선박 하단에 무수하게 돋아난 노들이 느릿하게 허공을 저었고, 범장으로부터 펼쳐진 돛이 저절로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귀신이 곡할 노릇.

“허... 이런 건 나조차 생전 처음 보는군...”

보는 것만으로도 경외감이 들 만큼 커다란 범선이, 밤하늘을 가로지른다. 동굴 천장에 돋아난 발광 이끼와 형광 식물이 은하수처럼 형형한 빛을 내뿜었으며, 시원한 바람이 머리칼을 스치고 별무리를 흩날렸다.

어릴 적, 책장이 해질 정도로 돌려보았던 만화 속의 한 장면처럼, 나는 지금 유년 시절 꿈꾸었던 몽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태양의 배라... 과연 그 이름값을 하네...”

“낭만이 살아있구먼. 꼭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일세.”

“...네 어릴 때면 뗀석기로 토끼 잡던 시절 아냐?”

“어허.”

말톤이 능청스럽게 웃으며 눈동자를 빛냈다. 녀석도 이 놀라운 절경 앞에선 천진난만한 아이에 불과했다.

초대형 갤리선을 타고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별 속에 파묻히는 경험.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하나도 안 낭만적이에요.”

비록 라디는 달팽이처럼 배낭을 등에 이고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지만.

“...꼬맹아, 너는 구경 안 할 거냐?”

“안 해요!”

“아쉽네... 미로가 훤히 내려다보이는데... 야 말톤, 저기 경사로가 우리 처음 들어왔던 곳 맞지?”

“흠...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군. 그리고 아마 저쯤에 술 항아리를 발견했던 창고가 있을 걸세. ....지금 돌아보니 누구 하나 다치지 않고 온 게 용할 따름이군.”

어스름한 시야 너머로 미궁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드높은 장벽이 빼곡히 들이찬 미로. 그 모습은 마치 정교한 전자회로를 가져다 놓은 것만 같다.

난간에 몸을 기댄 채 하릴없이 그 광경을 구경하고 있자니 장난기가 샘솟았다.

어릴 적 사자가 나오던 애니메이션을 흉내 내어 라디의 겨드랑이 사이에 팔을 둘러 들어올리자, 녀석이 사정없이 떨리는 동공으로 쳐다봐왔다.

“도, 도란님...? 대, 대체 뭘...”

“....”

­저벅저벅.

“도, 도란님 자 자자.. 잠깐...!”

“.....”

“이, 일단 진정하시고 말로... 윽!!”

장난기 다분한 미소를 지으며 난간 쪽으로 향하던 찰나, 명치에서 강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라디는 전력을 다해 내 가슴팍을 때린 거로도 모자라서 손등을 세게 깨물고는 쪼르르 배 구석탱이로 달려가 웅크리고 벌벌 떨었다.

“방금은 자네가 심했네.”

말톤이 속 편하게 지껄였다.

*

어느덧 시간이 흘러 선체의 진동이 멎었다.

꿈만 같았던 때가 지나고, 옷깃을 스치는 바람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환상 속에서나 존재할 줄 알았던 배가 우리를 인도한 곳은, 천장에 인접한 동굴의 한구석이었다.

“저기로군.”

밧줄과 판자가 스스로 의지를 지닌 것처럼 움직여 발판을 만들자 그 너머 바위로 이루어진 선착장이 보인다. 멀찌감치서 올려다봤을 땐 그저 자연 구조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는 조심조심 짐을 챙겨 배에서 하선했다.

“드디어 도착했네... 체감상 이십여 분은 날아온 것 같은데...”

“지면이 울렁거리는군. 꼭 아직도 배에 타고 있는 것만 같네.”

“....땅이 최고예요.”

라디가 자리에 엎어지더니 그 단단함을 만끽이라도 하는 것처럼 돌바닥에 부비부비 뺨을 비볐다.

나는 녀석을 일으켜주며 앞길을 재촉했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으니까 힘내. 어서 이 지긋지긋한 미궁에서 벗어나자고.”

감회가 새롭다. 이젠 정말 마지막이다.

미궁의 최심부. 최상단. 탈출까지 딱 한 걸음만을 남겨둔 상태.

우리는 저마다 배낭을 짊어지고 앞으로 나아갔다.

제법 넓은 공간이었지만, 주변에 보이는 구조물이라고는 단 하나밖에 없었기에 발걸음에 막힘이 없었다.

하지만 얼핏 실루엣으로만 보이던 형상이 점차 가까워지고, 뚜렷한 명암과 색조를 더해감에 따라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라디가 신음하며 읊조렸다.

“이곳이 바로...”

여왕의 안식처.

이번 여정의 종착지가 바로 이곳에 있었다.

베라스틴의 성문 규모를 아득히 웃도는 아치형 석문. 불가사의한 광택이 흐르는 표면은, 정체불명의 재질로 이루어져 드래곤조차 쉬이 파괴하지 못할 듯하다. 또한, 기둥을 떠받치는 초석은 너무나도 거대해 트롤 수십여 마리가 동원되어도 운반하기 쉽지 않아 보였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난 미궁을 돌파하며 보았던 그 어떤 신비(??)도 이곳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는 것을.

그 엄숙함 앞에선 시끄럽게 요동치던 삭풍도 고개를 조아렸다.

폐부도 들이차는 공기에서도 묵직한 중량감이 느껴졌다.

미온했던 공기조차 열기를 잃고 서늘하게 식었다.

그리고 마침내ㅡ

적막(??).

바닷속에 잠겨버린 문명처럼, 소리가 색채를 잃은 세계 속. 심해 아귀에게 이끌리는 피식자처럼 내가 천천히 발을 내디디던 찰나, 돌연 사방이 밝아지더니 말톤과 라디가 동시에 내 목덜미를 잡아끌었다.

놀라서 소리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멀뚱히 쳐다보고 있자니, 말톤이 조용하게 턱짓한 방향을 보고 나서야 왜 두 녀석이 날 말렸는지 깨달았다.

금빛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한 횃불이 오밀조밀하게 아로새겨진 부조를 비추자 거대한 두 몬스터의 석상 또한 시야에 들어왔으니까.

두 조각상은 수호자처럼 문을 사이에 두고 좌우로 나립해 있었다.

“....히드라와 키메라일세. 성장 여부에 따라서는 토벌 난이도 S등급 이상까지도 올라가는 놈들이지. 베라스틴의 모든 모험가와 기사들이 몰려들어도 저놈을 토벌하기란 불가능할 걸세.”

“...대체 이곳은 어떻게 되먹은 거야...”

굳이 말톤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저 마물들이야말로 최악의 재앙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만약 저놈들의 봉인이 풀리면 던전을 넘어서 이 왕국 일대가 모조리 초토화되겠지.

두 존재 앞에 선 것만으로도 개미처럼 짓눌려 터질 듯한 위압감이 느껴진다.

무수한 몬스터 군대에 더불어 하늘을 나는 배, 원대한 규모의 안식처, 화룡점정으로 히드라와 키메라까지.

두 눈이 파업을 한 게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압도적인 풍경이지만, 그런 우리를 현실로 끌고 온 건 다름 아닌 잔혹한 사실이었다.

“...말톤님, 저기 석상 아래로 나 있는 구멍... 탈출구 같지 않아요...?”

“그렇군... 저들 중 하나가 바깥으로 연결된 모양일세.”

두 석상의 받침대 하단, 각각 자그마한 통로가 나 있었다.

“어떡하지...”

이곳은 미궁의 최상부.

아래로는 깎아 지르는 듯한 벼랑이 있을 뿐이고, 주변을 둘러봐도 구조물이라고는 이 문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다른 길이 있을 리도 만무.

“...아무래도 저 구멍을 지나는 게 맞는 모양이로군. 놈들이 봉인되어 있어서 다행일세.”

“...그러게요. 여기까지 와서 오도 가도 못 할 뻔했는데... 천만다행이에요.”

“내가 잠시 살펴보도록 하지. 잠깐 여기서 기다...”

­쩌저저저저적!!!!

“....!!!”

말톤이 문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선 순간, 커다란 균열이 조각상을 가로질렀다.

녀석이 황급하게 발을 걷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떨림을 멈추는 석상들.

“...아무래도 일정 간격 이상으로 다가가면 봉인이 풀리는 구조인가 보군...”

말톤이 조각상 발치에 바스러진 회반죽 덩어리들을 응시하며 표정을 구겼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에게 있어 몹시도 가혹했다.

“어, 어떡하죠...? 주변은 이미 다 둘러봤는데... 저 통로가 아니라면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이...”

“...곤란하군.”

이 유적을 벗어나려면 필시 석상 근처로 접근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랬다간 두 마물의 봉인이 풀려날 터, 재빨리 구멍 안쪽으로 몸을 던진다고 하더라도 녀석들이 추격해온다면 이 던전에 도망갈 곳은 없다.

최악의 상황.

저 통로 외에 다른 루트로 탈출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다시 배를 타고 미궁으로 돌아가는 게 가능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어쩌면 처음 이 유적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침입자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설계되었는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그토록 염원하던 탈출구를 목전에 두고 모두가 발만 동동 구르던 찰나­

“도란님...?”

“도란?”

“.....”

[....]

나는 핏빛 시선과 눈길이 마주쳤다.

꿈에서 깨어나듯 서서히 붉은 눈을 뜨는 그림자.

동굴에서 나와 격전을 벌였던 그 존재가,

내게서 늘어진 음영 안에 있었다.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지.

녀석이 날 응시했다.

슬픈 눈으로.

[.....]

그리고 이 순간, 나는 무얼 해야 할지 깨달았다.

“도란님!!”

발걸음을 내디뎠다. 전방으로

­쩌적... 쩌저적...!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석상에 날카로운 균열이 생겨났다. 살얼음처럼 살벌한 소음이 적막한 묘소 앞에 선연했다. 사방에 비치되었던 횃불이 불길한 전조를 머금고 일렁거리며, 그 흔들림이 자아내는 음영의 떨림이 혹독하게 몰아친다.

이내 껍질을 부수며 다시금 생명을 거머쥐는 존재들. 이어서 뜨거운 심장이 느릿하게 박동하고, 일순간 샛노란 눈이 뜨이며 무자비한 세상을 눈에 담았다.

과거, 한 시대를 호령했을 재액(災?)들이, 지금ㅡ

“도란...!! 안 돼!!!”

“도란!!!”

풀려났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고막이 파열될 듯한 소음. 두 마물의 우렁찬 포효가 대기를 찢어발기자 말톤과 라디의 신형이 휘청거렸다.

두 녀석은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버티는 와중에도 날 구하고자 손을 뻗었지만, 나는 그런 녀석들에게 표표히 웃어 보였다.

“도란... 님...?”

곧이어 두 재앙이 완전하게 모습을 갖추고, 희번덕거리는 수십 개의 눈동자를 내게 향했다. 그 시퍼렇게 날 선 시선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에 마비가 올 듯 싸늘한 한기를 내뿜었다.

만약 내가 착각한 거라면, 이 그림자가 내게 거짓말을 고한 거라면,

나는 죽겠지.

허나ㅡ

날카로운 이빨이 내 살점을 갈기갈기 물어뜯는 일도, 커다란 피웅덩이가 퍼져나가 말톤의 발치를 스멀스멀 적시는 일도, 그걸 본 라디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는 일도 없었다.

두 마물은 내게 고개를 들이밀다 크게 움찔하고는, 냄새를 맡았다. 이내 히드라는 아홉 머리를 의아하게 갸우뚱거렸고, 키메라는 꼬리에 돋아난 독사를 물음표처럼 곡선으로 휘었다.

어쩌면 지금쯤 내 그림자 속에 담겨있는 존재를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

­.......?!!

­......!!!

돌연 두 괴물이 태도를 바꾸어 내게 달려들었다. 다만, 해하려는 의도는 보이지 않는다. 지옥의 마수를 연상시키는 키메라는 방정맞은 시골 강아지처럼 납작 엎드려 배를 까보였고, 히드라는 아홉 개나 되는 머리통을 뻗어 내게 비비적거렸다.

“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도란... 지금.. 무슨 일이...”

히드라 침에 범벅이 되어가며 키메라의 배를 긁어주고 있자니 떡 벌어진 말톤과 라디의 입 사이로 신음성이 새어나왔다.

S급 몬스터. 더군다나 굉장히 난폭하고 포악하다고 알려진 두 마물이 인간을 적대하는 거로도 모자라, 오랜만에 돌아온 주인을 반기는 것마냥 낑낑대며 안달복달하고 있으니.

­끼이잉... 끼잉...

­킁...

이렇게.

“저, 저... 제가 잘못 보고 있는 거 아니죠...? 게다가 저 노란 액체는... 설마... 키메라가 기뻐서 오줌 지리는 광경을 제가 보고 있는.. 거예요...?”

“...개라고 해도 믿겠군... 어떻게 이런 일이...”

이건 몬스터가 아니라 그냥 동네 똥개가 아닌가.

무슨 S급 몬스터, 그것도 두 마리나.

말톤이 소맷자락으로 식은땀을 훔치며 물어왔다.

“....도란, 슬슬 설명해줬으면 좋겠네만...”

“아, 이거...? 나도 이런 반응까지는 예상 못 했는데....”

나 또한 지금이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니, 이전부터 머릿속 한구석에서 의심해왔던 것 같기는 하지만.

그림자 마물.

애초에 이 유적을 발견하게 된 계기가 뭐였던가.

던전 2층으로 넘어오는 도중 그 괴물과 조우하고 쓰러뜨린 뒤, 이상한 힘에 눈을 뜨게 된 것이 원인이다.

녀석은 우리를 죽일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고, 기이한 감각으로 하여금 날 미궁으로 이끌었다. 도중부터는 망자들의 속삭임이 앞길을 인도했고, 종국에는 이 장소에 도달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 녀석은 처음부터 날 이곳에 데려올 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던 게 아닐까.

자신을 찾아주기를 바라며.

긴 세월을 인고하고, 이 순간을 고대하며.

이곳에서.

이 어두컴컴한 공간 속에서.

홀로.

외로이.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나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그때 동굴에서 만났던 부정형 몬스터의 정체가 이 미궁의 주인, 그러니까.. 여왕이었고... 그 뒤로 도란님의 그림자가 짙어졌던 이유도 저희가 추측했던 대로 마물이 그 안에 들어가 있어서 그랬다는 거예요...?”

“음... 아마?”

“아마라니...!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뭐 그럼 어떡해, 그게 아니면 얘네들은 어떻게 설명할 건데.”

“그, 그건...”

­푸릉!

히드라가 콧김을 내뿜었다.

키메라에 이르러서는 얌전히 내 손길에 몸을 맡긴 채 고양이처럼 갸르릉거리고 있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라디의 동공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도란, 솔직히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버겁네만... 그럼 그 키메라와 히드라가 우리를 공격하지 않는 이유도 전부 자네 그림자에 반응해서 그런 거라는 겐가?”

“음...? 아마 그렇겠지? 얘네 주인이잖아.”

“...혹 나한테 숨기고 있는 건 없는가 도란. ....나쁜 의도로 한 말은 아닐세. 자네가 악한이 아니라는 건 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괞잖아, 무슨 말인지 아니까. 근데 진짜 난 아무것도 몰라. 얘네랑 만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고. 내 전 재산을 걸고 맹세할게.”

“자네에게 전 재산이라고 해봤자 동전 몇 푼이 전부이지 않은가... 한데, 그럼 왜 그 여왕이 자네를 이곳으로 불러온 겐가.”

“글쎄... 거기까진 나도 모르겠어. 그야 내가 믿음직하니까 그런 게 아닐까? 어쩌면 단순하게 이곳을 구경시켜주고 싶었을 수도...”

“그 괴물이 숨을 거두는 순간, 아니, 자네에게 인사를 건넨 순간 이름을 불렀다고 하지 않나. 마치 자네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것처럼.”

“...그러네?”

고개를 내려 그림자를 바라봤지만, 녀석은 빨간 눈을 멀뚱히 끔뻑거릴 뿐이었다.

“...어쩌면 도란님은 정말 악마가 아닐까요...? 실은 기억상실증에 걸린 마족이라거나...”

“그게 말이 되냐. 장난으로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마 인마.”

라디가 재수 없는 소리를 하길래 얼른 말을 끊었다.

내가 진짜 악마였다면 왜 F급 모험가로 그 고생을 했겠냐.

“....이 미궁에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의문만 걷잡을 수 없이 늘어가는군... 그렇다면 도란, 여왕의 방으로 들어갈 순 있겠나?”

“음... 어... 나 들어가도 될까?”

두 몬스터에게 쭈뼛거리며 물어봐도, 녀석들은 서로 시선을 맞추며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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