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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하렘 생존기-73화 (73/375)

〈 73화 〉 꼬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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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3] 꼬리 #1

내가 어떻게 되어버린 걸까.

이 앞에는 뭐가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날의 꿈을 꾸었다.

새하얗고 소복한 눈이 세상을 조용히 뒤덮는 겨울이 열여섯 번 오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는 한 해의 끄트머리 달이 일곱 번 떠오르고.

주홍빛 등불이 눈 위를 따스하게 물들이는 초야경 무렵.

소박한 오두막에서 맞이하는 나의 다섯 번째 생일.

내 부모님은 기사들에게 살해당했다.

어째서였을까? 하필 왜 우리 가족일까.

단순 유흥에 지나지 않았을지, 나름 유복했던 우리 집의 재산을 노린 걸지.

방탕하고 외설에 찌든 기사들에게, 시골 마을 변두리에 떨어진 우리 가정은 손쉬운 표적이었을 테니.

폭풍우처럼 억센 손길이 대문을 두드렸다. 차가운 겨울 공기에 얼어붙은 날붙이의 치찰음이 오두막을 둘러쌌다. 나무창이 터져나가고 그 너머로는 천박한 웃음과 허여멀건 눈동자가.

내가 마지막에 목격한 부모님은, 그 먹먹할 정도로 그리운 얼굴들은.

못 미더운 석궁 하나를 손에 쥐고 수십 기사들에 대항하는 아비와, 모성 어린 웃음 뒤에 눈물을 감추고 나를 장롱에 밀어넣으며 당부하는 어미의 모습이었을지니.

정신을 차리고 보면 많은 게 바뀌어 있었다.

잘려나간 손가락이 내 방바닥을 뒹굴고, 낭자한 피웅덩이가 자그마한 맨발을 적시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식탁은 볼품없이 부서졌으며, 천장은 무너져내려 내 마음과 같이 큰 구멍으로 차가운 눈을 흘려보냈다.

그 중심에 서서 형체를 알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망가진 부모님의 주검을, 얼어붙은 손으로 어떻게든 조각을 맞추어 붙들고 오열하는 나는.

피처럼 붉은 로브를 뒤집어쓴 정체 모를 은인이 도우러 오지 않았더라면 똑같은 신세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하루아침에 혼자가 되었다.

세상 물정 모르던 다섯 살 소녀는 수도원에 몸을 의탁하게 되었다.

작은 마을에 자리 잡은 작은 수도원이었지만 모자람 없는 곳이었다.

밥은 따스하고 풍족했으며,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에는 상실이 없었다.

수도원장 노부부는 진심 어린 애정으로 날 대했고, 매일 밤 베그디아 신님의 가르침을 들으며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그 무엇도 한번 뚫려버린 가슴속의 천공을 메우지는 못했을지니.

그리하여 나는 맹세했다.

스스로 뺨에 핏빛 낙인을 새기며.

굳건한 각오를 담아 한 줄기.

뇌쇄한 슬픔을 실어 한 줄기.

맹렬한 원념이 담긴 한 줄기.

그렇게 세 줄무늬 문양을 뺨에 새기고. 복수를 이루기 전까진 지우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가녀린 손끝에 독과 피를 묻히고,

악착같이 기사들에 대적할 재산을 모으고,

스스로를 사지로 내몰며,

다시는 자신을 돌보지 않으리라 다짐했거늘.

어째서 이 남자는 내 앞에 나타난 걸까.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진 그 남자가 부서질 듯 가느다란 몸을 끌어안았다. 끌어안고 다독여 주었다. 그의 커다란 어깨가 신형을 가리고, 듬직한 등판이 의지가 되었다.

차가운 밤공기를 지우는 그의 온기는 너무나 따뜻해서, 머리칼을 쓸어내리는 손길은 또 너무나 다정해서.

그만 고개를 들어 흘러넘치는 눈물을 가렸다.

이 사람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이 미련할 정도로 솔직하면서 서투른 남자라면 괜찮지 않을까.

맹렬하게 소용돌이치는 감정 속에서도 막 싹트기 시작한 연심만은 뚜렷해서.

조금은 솔직하게.

살짝 어깨를 기대면 어떨까 생각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다.

내 모든 걸 베풀고 싶다.

함께 떠들고 손을 맞잡은 채 잠자리에 들며,

가을 밀밭을 나란히 거닐면서 행복을 공유하고,

복숭아나무 아래서 사랑을 속삭이기도 하며,

솔직한 웃음과 간혹 흘러나오는 눈물에

같은 시간, 감정을 향유하며

함께 늙어가고 싶다.

내가 어떻게 되어버린 걸까.

이 앞에는 뭐가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장애물로 가득한 가시밭길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훗날 이 결정을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 결말을 알고 싶어졌다.

“도란님, 오늘 했던 말... 기억하세요? 어떤 소원이든 들어준다고.”

“그 소원을 지금 빌게요.”

“안아주세요.”

“온기를 느낄 수 있게, 더는 외롭지 않게.”

“저를 꼭 안아줘요.”

*

나, 도란은 그녀를 마주보았다.

그녀는 푸른 물그늘이 아른거리는 눈망울로 내게 고했다.

자신을 안아달라고.

그 간결한 문장에 여러 속뜻이 담겨 있다는 것쯤,

지금 그녀가 중요한 기로 앞에서 갈등하고 있다는 것쯤은,

나도 알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그녀에게 확신을 줄 수 있을까.

사람이 단풍 잎사귀처럼 죽어나가고, 이별 또한 잦은 이 세계에서.

그런 그녀에게 확신을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그 답을 알고 있다.

“꼬... 아니, 라디야.”

“사랑해.”

“죽을 만큼 널 사랑해.”

“언제까지나 너와 함께하고 싶어.”

“이런 나라도 괜찮겠어?”

그 물음에,

라디는ㅡ

“네...!”

“도란님... 아니, 도란..”

“나도 널 좋아해.”

“사랑해 도란.”

“사랑해요.”

“라디야...” “도란...”

서로의 이름을 연호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사랑을 속삭이는 언사가 겹쳤다.

이어서 바닥에 내려놓은 손등이 덧씌워지고.

어스름한 달빛이 두 남녀를 비추고 나면,

서로의 입이 포개어졌다.

입술과 입술이 맞닿을 뿐인.

그래서 더욱 애절한.

입맞춤.

손가락과 손가락이 깍지를 껴 마주하고.

비스름하게 기울었던 몸이 완연하게 서로를 향하고.

맞닿은 피부로 숨결, 온기, 애정을 나누어.

살풋 눈을 떠보기도 하고.

잠시 고개를 때어 서로의 시선을 마주하고 나면.

다시 가까워져 키스했다.

천천히 혀를 내밀었다. 그녀의 여린 입술에선 희미한 멘테 향이 풍겼다. 라디는 부끄러워 손깍지에 힘을 주면서도 서서히 구문을 열어 내게 응한다. 천사의 깃털 베개보다도 부드러운 그녀의 상순과 하순 사이를 비집으면, 말랑한 혀가 날 맞이해왔다.

“하읍...”

“....”

달뜬 한숨이 묘연하게 흘러나왔다. 숨결에는 옅은 물소리가 섞였다. 머릿속에서 종이 울린다.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황홀감이 전신을 저릿하게 주무르자, 강렬한 감정이 몸을 지배했다.

하지만 신중하게. 성급하지 않게 서서히 그녀의 입안을 탐험했다. 라디는 수줍어하면서도 알음알음 내 혀를 감아 보답했다. 타인의 손때가 묻지 않은 그 풋풋함이 감정을 극대화했고, 경직된 몸을 서서히 풀어가며 잔 안에 담긴 포도주를 들이켜듯 그녀의 매혹을 음미했다.

“....라디야.”

“....”

“사랑해.”

“....저도요.”

라디가 숨을 쉴 수 있게 배려하면, 나는 그녀의 목덜미로 향했다.

목둘레를 애무하며 라디의 허리에 왼팔을 두르고 상냥하게 쓸어내렸다.

그러다가 그녀의 호흡이 조금 안정을 되찾으면­

끌어당겨 다시 키스. 도망가지 못하게 허리를 부여잡아. 깍지 낀 손가락을 움직이고. 단단한 바위에 밀어붙여. 고개의 각도를 틀고. 설렘을 공유하고. 다시금 사랑을 속삭이고. 찬 바람이 머리칼을 흩날리고 나면 서툴게 이를 맞부딪히기도 하며. 다시 입을 맞추고.

날씨가 추워서 다행이다.

쌀쌀한 공기가 뜨거운 열기를 식혀주었으니.

라디 또한 오갈 데 잃은 오른손을 내게 얹더니 천천히 뺨을 쓰다듬었다. 이어 목과 눈썹, 귓불을 어루만지기도 하며 내 몸을 탐구했다. 그리고 조금 용기를 내었는지 내 왼손을 붙잡아 자신의 가슴에 가져다 댔다.

“...만져도 돼요.”

“.....”

“도란님이 원하신다면 세게 주물러도 돼요.”

은연한 눈빛이 내게 고했다.

나는 그에 화답해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손가락을 구부렸다. 한 손으로는 다 잡을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과실이 손바닥 전체에 느껴졌다. 비록 속옷에 둘러싸여 있어 감촉을 선명하게 느낄 수는 없었지만, 두꺼운 천으로도 태생의 부드러움은 감출 수 없었다.

“읏...”

“...미안, 아팠어?”

“아..니요... 흣, 그.. 그냥...”

라디가 말끝을 흐리고 내 입술을 덮었다. 낯설지만 서서히 내 입속으로 침투하는 혀에서는 다소 적극성이 묻어나왔다. 나는 그에 순응해 천천히 감아올리며 그녀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었다. 라디의 가슴을 주무를 때마다 멈찔멈찔 떨려오는 골반으로 그 혀동작에 이전과 살짝 다른 감정이 실려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와 타액을 교환하던 중, 살포시 감았던 눈을 뜨니 소리 없이 바닥을 두드리는 꼬리가 보였다. 러시안 블루 품종을 연상시키는 기다란 회색 꼬리.

지금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나는 라디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은밀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회색 털뭉치를 움켜쥔 순간ㅡ

“꺄으읏..?!!”

그녀가 신음을 내뱉으며 허리를 한껏 젖혔다.

확 뜨인 눈동자에는 새빨간 당혹과 불똥이, 옷주름이 질 정도로 강하게 부여잡은 손가락에서는 다분한 동요가 묻어나왔다.

나는 그 반응을 목도하며 왜 그토록 라디가 이 부위를 내주지 않았던 건지 단박에 깨달을 수 있었다.

‘성감대였구나...’

오랜 의문이 풀리자 무거운 짐을 덜어낸 기분이다.

살짝 심술궂은 마음이 들기도 해, 나는 꼬리를 살살 주무르며 키스의 여운이 남아 있는 입으로 음언을 속삭였다.

“...꼬맹아..”

“읏...! 흐응.. 흣..! 그, 그렇게.. 갑자기이이...”

“...좋아? 이래서 계속 숨겨왔던 거구나.. 우리 한번 어디가 약한지 알아볼래?”

“그, 그런.. 너무... 짓궂.. 흣...?!”

라디의 등허리가 재차 움찔거렸다. 기댈 곳을 찾아 이리저리 방황하다 끝끝내 내 허리를 부둥켜안았다. 그 갑판 위의 활어처럼 생생한 몸동작을 보면, 그만 입꼬리를 웃음을 머금을 수밖에 없다.

이어 손속에 변화를 가미했다. 처음엔 천천히. 끝부분부터 시작해 밑동까지 타고 올랐다. 아프지 않도록 꼬집어도 보고, 엄지로 살살 구부리고, 중간중간 멈춰서 반응을 구경하며.

내 손이 토끼처럼 먹음직스러운 꽁무니에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몸부림 역시 덩달아 커져갔다.

“흐으응...! 하읏..! 흣..?!”

라디의 입에서 달뜬 교성이 흘러나왔다. 좀처럼 들어본 적 없는 음색에 오싹한 감정이 들끓었다. 그녀는 내 손놀림에 따라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쾌락을 감내해야만 했지만, 원초적 본능에 저항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닌지라­

라디의 허리가 들썩였다. 쭉 뻗은 한쪽 다리를 접었다 편다. 이내 동그란 귀를 쉴 새 없이 쫑긋거리며 흐려진 눈동자를 요리조리 헤매더니, 살짝 원망스러운 눈길로 내 얼굴을 쳐다보고는 다시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였다.

자기도 모르는 새에 골반을 내 무릎에 비비고 있다는 얘기를 해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흐트러진 웃옷 사이로 엿보이는 쇄골과 붉게 상기된 피부는 또 얼마나 야릇한가.

꼬리의 정체는 사실 조이스틱이 아니었을까.

종국엔 팔에서 힘이 빠져나갔는지, 내 허리를 놓치고 발정 난 고양이처럼 엎드린 라디를 보자 내 참을성도 바닥을 보였다.

“...꼬맹아.”

“읏...! 후읏... 흐앙.... 네, 네...?”

“벗길게.”

“아....”

라디는 그제야 이성 한 조각이 되돌아왔는지 내 눈동자를 마주 봤지만, 슬며시 시선을 피하고 하찮게 고개를 까닥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 나는 다소 격하게 뒷머리를 쓸어주고는 옷자락에 손을 댔다. 라디는 꿀꺽 침을 삼키고 팔을 위로 뻗었다. 그녀가 보조해준 덕에 나는 손쉽게 셔츠를 벗겨낼 수 있었고, 곧 연연한 반라 차림이 달빛 아래 훤히 드러났다.

수줍게 고개를 내미는. 이제는 속옷 위로도 감출 수 없는. 앙증맞은 돌기.

나는 그에 그치지 않고 짧게 키스한 뒤,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

“마저 벗길게.”

“.....”

그 대답이 어떠했을지는 달밤의 정사를 몰래 훔쳐보던 풀벌레들도 흡족히 고개를 끄덕일 만한 것이었으리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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