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하렘 생존기-81화 (81/375)

〈 81화 〉 전조 #6

* * *

[081] 전조 #6

“...이게 정말 될까요?”

“돼야지.”

“만약 실패하면...”

“죽겠지.”

“.....”

“....성공해도 높은 확률로 죽을 테고.”

라디가 떨리는 시선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정확히는 내 손에 쥐어진 은색 통을.

그 뚜껑 상단에 붙은 라벨에는 반듯한 글씨체로 이러한 글귀가 적혀 있었다.

‘나가의 심장 분말.’

아마존 강가에 서식하는 나가의 심장을 적출해 곱게 빻은 물건.

뱀과 흡사한 외형을 띈 나가는 특유의 페로몬으로 먹잇감을 유인해 잡아먹는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놈은 체내에서 합성한 페로몬을 심방(心?)에 저장하는데, 강의 폭군이라고도 불리우는 나가의 풍부한 고기와 부산물을 얻기 위해 매년 전문적으로 조직된 사냥꾼들이 카약을 타고 강기슭을 거스른다.

지금 내 손에 있는 건 고작해야 캔커피 정도의 크기지만, 그 사용 여하에 따라서 사제 폭탄 이상의 파괴력을 내는 것도 가능하다.

던전에 들어오기 전, 라디의 소지품을 검사할 때 이미 본 바 있지만, 그때는 설마 이런 용도로 쓰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지.

곧 이 벼랑에 벌어질 참사를 생각하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 그래도... 그건...”

라디가 마른침을 삼키며 안절부절못했다.

“왜, 안 될 거 같아?”

“....너무 잘될 것 같아서 문제에요... 피 냄새 나죠...?”

“피 냄새? 그야 지금은...”

“육식성 몬스터는 대개 피 냄새에 이끌려요. 안 그래도 큰 소란이 났으니 숲속의 마물들이 이쪽을 주시하고 있을 텐데 여기에 나가의 분말까지 더해지면...”

라디가 바로 옆의 무성한 잡목림을 초조하게 곁눈질했다.

열길 앞이 채 보이지 않는 한밤의 수풀 속에선 무엇이 도사릴지 모르는 법이다.

하물며 녀석은 내가 목격했던 발자국에 대해서도 전해 들은 바.

“짐승 악취가 나요... 고약하고... 역겨운....”

푸른 눈동자가 두려움으로 젖어들었다.

보이는 거겠지.

이치를 벗어난 존재.

걸쭉한 타액을 질질 늘어뜨리는 거대한 마물들이.

“...이제 이 방법밖에 없어. 놈들을 끌어들이는 거야. 도적들이 몬스터를 상대하느라 정신 팔린 사이 우리는 약을 찾고 도망치자.”

이판사판이다.

호락호락하게 체스 말이 될 생각은 없다.

이래도 저래도 안 된다면 판을 뒤엎어 주겠다.

나만의 방식대로.

“....알겠어요. 여기까지 왔으면 말톤님이 있는 곳하고도 상당히 떨어졌으니 잠깐은 괜찮을 거예요. 여는 건 제가 할게요. 그리고... 도란님.”

의아하게 돌아보자 라디가 결연한 표정으로 올려다봐왔다.

“꼭 셋이서 돌아가요. 지상으로.”

“...그래,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 보이겠다.

“......”

녀석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곤 내게서 받아든 은통의 뚜껑을 비틀었다.

용기가 살짝 기울어지자 인간의 혈액을 연상케 하는 적색의 파우더가 스르륵 무너지며 고혹적인 자태를 드러냈다.

“...명심하세요. 극히 소량이라도 피부에 닿으면 안 돼요. 자칫 묻기라도 했다간 냄새를 맡고 온 몬스터들의 표적이 될 테니까 옷자락으로 건드리지 않게 조심하시고요. ...잠시만 물러나 주실래요?”

사뭇 진지한 어조에 발을 뒤로 빼자 라디가 한걸음 다가왔다. 녀석은 내 발치에 고인 피웅덩이에 분말을 반절 쏟아붓더니, 나뭇가지를 주워들고 신중하게 휘저었다.

가루는 잠시 저항감을 머금고 수면 위에 머물더니 한순간을 기점으로 설탕처럼 사르르 녹아내렸다.

“...이거면 된 거야?”

“네, 이제 잠시 후면 냄새를 맡고 마물들이 들이닥칠 테니 여기서 벗어나야 해요. 당장.”

“그래.”

도박수(??手).

이걸로 정말 몬스터가 몰려올지는 장담할 수 없다.

오랜 보존 기간 동안 가루의 효력이 다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코볼트나 놀 같은 허접한 잔챙이만 꼬일 수도 있다.

마물을 불러들이는 데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살아날 수 있을 거란 보장은 전무하다.

허나, 말톤을 구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늘어난다면...

“거기 누구냐!!”

“저기 바위 뒤에 누군가 있다!!!”

“젠장!! 뛰어 꼬맹아!!!”

“그러고 있어요!!!”

서둘러 자리를 뜨던 도중, 인근에서 거친 고함이 터져나왔다. 곧바로 도적들 간에 난폭한 노성이 오가고, 추격대가 결성되었다.

쩔그럭 쩔그럭.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혀오는 병장기의 소음에 청각을 곤두세우며 외쳤다.

“제길...! 따라오고 있어! 얼마나 기다려야 해?!”

“냄새가 완전히 퍼지기까지 좀 더 시간을 벌어야 해요!! 한 오 분 정도만...! 그때까지만 버티면 돼요!!”

“오 분? 그래... 그렇단 말이지...?”

사납게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후방을 돌아보았다.

적은 열 명 남짓. 활을 든 상대는 둘.

불꽃을 반사해 선명한 궤적을 그리며 날아드는 화살을 검면으로 쳐내며 외쳤다.

“꼬맹아!! 저 두 놈 맞출 수 있겠어!?!”

“....네!”

라디가 대답을 끝마침과 동시에 쇠뇌를 발사했다. 희미한 격발음을 남기고 손아귀를 떠난 대못은 짧은 비명과 함께 밤공기 속으로 녹아들었다.

“잘했어! 뒤에서 엄호 부탁해!!”

흙바닥에 긴 발자국을 늘어뜨리며 급격히 제동했다.

검을 뽑아들고 대치하자 놈들 사이에서 동요가 번져나갔다.

“저 투구는...! 아까 그 새끼다!! 다들 조심해!!!”

“방패 뒤로 엄폐!!! 원거리 무기를 쓰는 계집이 있다!!”

“고작 두 놈이야!!”

“둘 다 싸잡아서 족쳐!!! 케른의 복수를 할 시간이다!!”

도적들이 제각각 사망한 동료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달려들었다.

“도란님...!”

“그래.”

다리에 열상을 입었다. 어차피 따라잡힐 운명이었다. 숨어서 시간을 버는 데 실패한 시점에서 이 난국을 타개할 유일한 방법은...

“...감히 내 동료를 건드려?”

반격(反?).

일순간, 질주했다. 이를 악물어 통증을 감내하고 가속했다.

불타오르는 전경을 눈에 담고. 발바닥으로 단단한 지면의 감촉을 느끼며. 잔디 위를 맹렬히 질주해ㅡ

“저, 저건 뭐야...!!”

“날았어?!”

커다란 바위를 딛고 그들의 머리 위로 뛰어올랐다.

허벅지가 욱신거리고, 간신히 지혈했던 상처가 벌어진다.

제 발로 사지에 쳐들어가는 꼴이었지만­

“좆까!!”

“으헉...?!”

허공에서 몸을 비틀어 쇄도하는 창날을 빗겨내었다. 속도를 살려 히터 실드에 드롭킥을 내다꽂았다. 괴상한 비명을 내지르며 나자빠지는 도적. 놈의 안면을 세차게 걷어차고 손아귀에 든 방패를 어거지로 잡아 뜯어 강탈했다.

방패를 빼앗긴 도적이 잔디밭을 기며 코피를 훔쳤다.

“저, 저 새끼가 내 실드를...!!”

“죽여!!”

사방에서 도적들이 덮쳐들었다.

나는 검날을 중단으로 들어올리며 그 광경을 관조했다.

입가에 불손한 미소를 피어올리며­

“방패라...”

좋은 무기지.

여윳돈이 조금만 더 충분했어도 지금쯤 내 등에 하나쯤 걸려 있었을 텐데.

­콰드드득!!!

실드를 내세워 육박하는 창격을 틀어막았다. 오른손을 유연하게 돌려 검지와 엄지로 크로스가드를 파지했다. 그대로 전진. 방패로 몰아붙이며 대퇴근에 힘을 싣는다. 능숙하게 공격을 흘려내며 롱소드를 내지르자 뱃거죽이 꿰뚫린 도적이 시뻘건 창자를 쏟아내며 허물어졌다.

“이, 이 버러지 같은 새끼가...!!”

­슈화악!!

측면에서 칼날이 쇄도해왔다. 장검을 역자세로 회수해 가드했다. 이어 크게 벌어진 눈동자에 조소하고는 허리를 틀었다. 오른발을 내디뎌 중심을 바꾸고, 능숙하게 자세를 돌변해 공격으로 연결한다.

“끄으으읏!!!! 내, 내 팔이?!!”

“다구리!! 다 함께 덮쳐!!!”

방패 아래 틈. 불시에 검을 내찔러 멱을 꿰뚫었다. 회수. 칼날을 비틀어 손목을 긋는다. 적이 정면으로 덤벼들자 실드를 내려찍어 모서리로 발등을 절단했다. 어깨로 들이받아 몸부림치는 적을 자빠뜨리고, 방패를 크게 휘둘러 접근을 뿌리쳤다.

즉각 도적 서너 명이 정면에서 단창을 찔러왔지만­

­카가가가가강!!!

­카드득!!

봉쇄. 방패를 기울여 날붙이를 흘려냈다. 상대가 회수하기 전에 창대를 걷어찬다. 스탭으로 역동작을 걸어 빈틈을 유도하고, 단김에 전진해 강습한다. 적이 경화 처리한 가죽 보호구로 검날을 막아내면, 힘을 싣고, 크게 휘둘러 통째로 베어냈다.

군동작이 절제된, 철저히 방어 위주의 검술.

이제껏 내가 구사했던 전투 방식이 맹수의 사냥법과 닮아있었다면, 지금 나는 철저히 이론에 입각한 대인전의 기저를 행하고 있었다.

‘...등을 보이지 말라.’

다수의 적과 상대할 때의 기본은 뒤를 잡히지 않는 것. 사방에서 도적이 옥죄여 올 때마다 후방으로 도약해 최대한 많은 적을 시야에 담았다.

날아드는 냉병기를 방패로 요격해 차단하고, 안정성의 이점을 살려 더욱 맹렬하게 공격을 시도했다.

방패를 쥐고 싸우는 건 오랜만이라 걱정했는데 기우였던 모양이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기억하고 나섰으니.

“덤벼, 버러지들아.”

“이, 이.. 이 씹새끼가...!!”

“강하다...!”

“다들 뭣들 하는 거야!! 쪽수가 안 되면 증원군을 불러!!!”

도적들이 대열을 갖추고 일시에 공격해왔다. 나는 가소롭게 웃으며 검을 거칠게 뽑아 피를 흩뿌렸다. 뒤로 물러서 공간을 확보하고, 순식간에 한 점을 몰아붙여 진형을 파훼한다. 서늘한 날붙이가 사방에서 쇄도할 때면 낮게 도약해 사선에서 벗어났다.

“다들 비켜봐!! 이 마검으로 단번에...!”

낯익은 도적 한 명이 나서서 시퍼런 불똥이 틱틱거리는 단검을 휘두르고자 했지만­

“꺼으으윽....!”

번갯불이 채 치솟기도 전에 피거품을 내뿜으며 거꾸러졌다.

그의 목둘레에는 강철 볼트가 화염을 반사해 은은하게 빛났다.

“잘했어!!!”

돌진했다. 능동적으로 히터 실드를 타격에 이용한다. 팔의 각도를 비틀어 내려찍히는 칼날을 흘려낸 다음, 방패 끝으로 턱을 후려쳐 의식을 빼앗았다. 사각에서 서슬 퍼런 창날이 옆구리를 노리고 쇄도해, 방패를 휘두른 기세에 저항하지 않고 몸을 회전해 회피했다. 목을 절삭한다.

“어림없다!!!”

고작 이런 새끼들이.

검을 치켜세워 관통. 방패를 감아올려 파쇄. 가속에 체중을 실어 판금 갑옷을 우그러뜨리며, 완력으로 갑주의 이음매를 찢어내. 살점을 비집고. 공격 일변. 가슴팍을 걷어차 신형을 무너뜨리고, 발등을 즈려밟아 구속하고. 복부에 검을 찔러넣었다.

“......”

광소했다. 사납게 입가를 비틀어 적의를 꺾고. 칼날로 방패를 두드려 의지를 부러뜨리고. 약진. 성난 황소처럼. 들이받아 날려보내면, 발아래 널브러진 적의 숨통을 끊고. 검날을 추켜올려 돌진을 저지. 그대로 들이밀어 파훼. 다시금 반복. 반복.

쇄도하는 공격을 철옹성처럼 방어해내며 적의 숨통을 끊었다. 검을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바닥에 쌓인 시체들이 늘어간다. 천천히, 발을 내딛자 도적들이 주춤주춤 물러났다. 포식자에게 쫓기는 치어 떼처럼 내 주위로 빈 공간이 내려앉았다.

동요.

“무, 무슨 이런 무지막지한 새끼가...!!!”

“섣불리 공격하지 마!!”

“도, 동료들이 오고 있어!! 그때까지만 버티면...!!”

먼발치서 소란을 감지하고 달려오는 도적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일렁이는 횃불. 성난 고함. 사슬 갑옷의 치찰음.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 뒤돌아서 내뺐을 테지.

나는 느긋이 서서 그 광경을 관망했다.

짙어져 가는 핏물의 내음을 맡으며­

­....! .....!! .....!! ......!!!!

“....잠깐, 지진..?”

“다들 입 다물어봐!! 지금 뭔가 들렸어...”

“숲이... 조용해졌다...?”

전조.

대지가 진동했다.

피웅덩이에 파문이 일었다.

전장의 소음이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나무가 흔들리자 까마귀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와요.”

어둠에서 나온 라디가 마른침을 삼키며 읊조렸다.

“그래.”

나는 두 팔 벌려 곧 다가올 광경을 맞이했다.

입가에 초승달 같은 광오를 자아내며­

웃었다.

이제 아무도 막을 수 없다.

아무도 감당할 수 없다.

누가 감히 대적하겠는가.

재앙(災?)이

지금 이 순간, 이 땅에─

당도하였노라.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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