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하렘 생존기-89화 (89/375)

〈 89화 〉 생존 #4

* * *

[089] 생존 #4

서늘한 오한이 등줄기를 타고 올랐다.

­아우우우우우우!!!!

­우우우우우ㅡ!!!

능선 저편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

공명하듯 섬뜩한 하울링이 설원에 울려퍼졌다.

“씨발!!”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금 늑대 무리와 맞닥뜨렸다간 분명히 죽는다. 아까 보았던 무스 사체처럼 처참하게.

하늘은 이미 어두워졌고, 시야를 밝힐 등유 랜턴도 없는 상황.

하다못해 작은 횃불이라도 있었더라면...

아니,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겠지.

깊이를 알 수 없는 크레바스가 사방에 산재했다. 지금 성급하게 움직였다간 몇 걸음 떼지도 못하고 반드시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하고 만다.

조금 전은 기적적으로 살아나왔지만 이번에도 운이 좋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체력은 이미 한계에 달했고, 추위에 몸이 오들오들 떨렸다.

그렇다면 어젯밤처럼 땅굴을 파고 버티는 건 어떨까?

“....젠장.”

불가능하다.

굴을 다 파기도 전에 늑대들이 들이닥칠 터, 설령 설동을 완성하더라도 놈들의 후각 앞에선 금방 들통나고 말 거다. 비좁은 굴 안에서 포위당하면 그때는 정말 제대로 된 저항 한 번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진퇴양난. 사면초가.

불길한 결말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포기하면 안 된다지만, 이런 상황에 대체 뭘 어떻게 하란 말인가?

­아우우우우우우우우!!!!!

“제길!!!”

늑대 울음소리가 더욱 가까이서 들렸다. 놈들이 표적을 정한 듯하다. 그 대상이 누구인지는 너무나도 자명하다.

‘생각해... 생각해라 도란... 분명 방법이...’

맞서 싸우는 건 말도 안 된다. 도망쳐도 금방 따라잡힌다. 숨을 장소도 없다. 체력마저 바닥났다.

최악 중 최악의 상황이지만, 옛말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으니...

잠깐.

“땅이 꺼진다...?”

기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아니, 기막히다기보단 위험천만한 발상이었지만 지금은 가릴 처지가 아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재빨리 허리춤으로 손을 뻗었다. 파우치에서 빠져나오는 내 손아귀에는 우둘투둘한 알갱이 하나가 잡혀있었다.

플래시 골렘의 핵.

은은한 불꽃을 머금은 광석. 골렘을 해치우고 앞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물건. 그 위력은 도적단의 추격에서 벗어날 때 라디를 통해 실감한 바 있다.

이걸 크레바스가 가득한 빙하 지대에서 함부로 터트렸다간 뒷일은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이젠 정말로 시간이 없다.

나는 근처의 갈라진 틈새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진 다음, 단도로 핵의 중심을 긋고 비스듬히 던져올렸다.

곧이어 츠츠츠츳... 도화선이 타들어가는 듯한 치찰음이 들려오고....

­콰아아아아앙!!!!!!

거대한 섬광이 발발했다.

지축을 뒤흔드는 폭음. 진동하는 대기.

바짝 엎드린 등 너머로 눈부신 불빛이 폭사했다. 묵직한 충격이 지면을 휩쓸자 뱃전이 울리고 적설이 난폭하게 파도쳤다.

십여 미터 밖에서 폭발했는데도 이 정도.

지근거리에서 터졌다간 충격파에 완전히 무력화되고 말 터. 왜 모험가들이 비싼 돈을 주고서라도 이 물건을 보험 삼아 소지하고 다니는지 여실히 실감했다.

나는 이명이 들이차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쉴 시간은 없다. 늑대도 섬광을 목격했을 터, 놈들이 떼거리로 몰려오기 전에 찾아야만 한다.

크레바스 아래, 발을 디딜 만한 장소를.

폭발로 인해 눈더미가 쓸려내리자 시꺼먼 틈새들이 드러났다. 사방에 빼곡히 들이찬 균열을 보자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지금까지 이런 곳을 지나온 건가. 용케 여기까지 도달한 게 신기하다.

나는 머리에 쓴 복면도 벗은 채 서둘러 갈라진 틈 사이를 넘나들었다.

“제발... 제발...!”

분명 이 수많은 크레바스 중에서도 상부가 돌출된 구조가 있을 터, 새까만 낭떠러지 도중 하얗게 눈이 퇴적된 곳을 찾으면 된다.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플래시 골렘의 핵으로 발밑을 비춰봤지만 없느니만 못했다.

­아우우우우우우!!!!!!

­컹...! 컹...!!

“씨발!!”

시간이 없다.

늑대가 짖기 시작했다는 건 동족 외에 다른 동물을 발견했다는 의미. 늑대는 개와 달라서 허투루 짖는 일이 없다. 놈들이 울부짖으면 곧 싸움이 임박했다는 소리다.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긴장감이 점점 고조되고, 눈 위를 달리는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놈들의 기척을 뚜렷하게 감지한 순간­

“...찾았다!!!”

협소한 틈 사이로 내비친 적설. 눈이 쌓일 만한 지형이 낭떠러지 아래 있다는 뜻이다. 어쩌면 단순히 빙설이 뭉쳐 발판처럼 보인 걸 수도 있겠으나...

­컹!! 컹컹!!!

­크르르.... 컹!!!

“에라 모르겠다!!!”

목덜미에서 불어오는 뜨끈한 입김에 나는 양손에 단검을 쥐고 크레바스 아래로 뛰어내렸다.

­휘이이이이잉...

“어, 어...? 잠깐...?!”

붕 뜨는 머리칼. 휘몰아치는 풍압.

예상외로 길게 지속되는 부유감에 당황하며 단검을 암벽에 꽂아넣으려던 찰나­

­풀썩!

고운 눈이 흩날렸다.

나는 단단하게 하중을 받친 기반의 감촉에 안도하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자마자 식겁할 수밖에 없었다.

고작 한 평밖에 안 되는 발판 아래로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꿈틀거렸기에.

하지만 당장 그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있었으니­

­컹! 컹컹!!

­크르르르...!

“윽...!”

머리 위에서 샛노란 안광이 비쳐왔다. 눈동자가 무려 네 개나 되는 늑대. 놈들이 난폭하게 짖으며 당장에라도 뛰어들 듯이 고개를 들이밀자 눈더미가 우르르 쏟아졌다.

그 수는 어림잡아도 열이 넘고, 몸집은 황소에 맞먹는다.

조금이라도 뛰어내리길 망설였다간 죽었을 터. 주둥이에서 질질 늘어지는 걸쭉한 타액을 보자 두려움이 앞섰지만, 이내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야 이 장소라면 날개라도 달린 게 아닌 이상 쫓아오지 못할 테니.

“십년감수했네... 이대로 아침이 올 때까지 버티....”

ㅡ오싹.

위구심. 동공에 맺힌 끈적한 집념을 보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콰르르르!!!

아니나 다를까, 놈들이 딛고 있는 지반이 무너지며 큼지막한 얼음덩어리가 쇄도했다. 급박하게 탈출구를 모색했지만, 협소한 절벽 아래 비좁은 발판에선 오도 가도 못 한다.

황급히 칼집을 들어올려 막아냈으나 맹렬한 고통이 얼어붙은 손을 타고 전해지고 악다문 이 사이로 신음이 새어나왔다.

“크윽...!”

­컹컹!! 크르르르...!

­컹 컹!!

늑대들의 비웃음이 대기를 타고 번져나갔다. 내가 저항할 수 없다는 걸 알자 놈들은 아예 본격적으로 얼음을 이빨로 물어뜯어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치가 떨릴 정도의 지능.

­데구르르!

­콰각! 콰르르!!

머리통만 한 얼음이 육박했다. 도중에 서로 부딪힌 파편이 날카롭게 깨져나가 쏟아졌다. 검집으로 최대한 막아보려 애써보지만 다 흘려낼 수 있을 리가.

“윽?!!”

얼음 조각이 팔뚝을 길게 찢었다. 흘러나온 선혈이 빙판 위를 적셨다. 점점 몸에 자잘한 생채기가 늘어나고, 손가락에 피멍이 들었다. 갈라진 입술 사이로는 고통스러운 비명이 새어나왔다.

이대로 가다간 얼마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 터. 서둘러 해결책을 찾아야만 한다.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씨발!!!”

재빨리 소지품을 뒤졌다. 남은 골렘의 핵은 다섯 개. 이걸 쓴다면 일시적으로 늑대들을 쫓아낼 순 있겠지만, 이 비좁은 협곡에서 폭발이 발발하면 내가 딛고 있는 발판마저 무너지거나 크레바스 전체가 붕괴할지도 모른다.

배낭의 무스 고기로 유인할까도 생각해봤지만, 놈들이 이 정도로 만족할 리 없다. 늑대들이 지금 내게 하는 행태는 사냥이 아니라 유희 그 자체. 고양이가 쥐를 괴롭히며 노는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유일한 원거리 무기인 라디의 크로스보우가 떠올랐지만, 내겐 볼트가 없다.

모든 방법을 검토해봐도,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내겐 저 멀리서 일방적으로 공격해오는 늑대들에게 대항할 방법이 없다.

“염병할...”

절망적인 상황에 머리를 싸매며 고개를 들자 두 놈이 합심해서 사람 크기만 한 얼음덩어리를 옮기고 있었다. 저게 내 머리 위로 굴러온다면 압사당하는 건 둘째치고 발판이 떨어져 나갈 거다.

최후의 발악으로 발치의 얼음 쪼가리를 주워 내던져 저항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막의 순간은 착실하게 다가왔다.

곧 거대한 그림자가 내 머리 위까지 당도한 찰나­

­깨갱...!

내가 던진 얼음에 턱주가리를 얻어맞은 새끼 늑대 한 마리가 발을 헛디뎠다. 놈은 빙판 위를 미끄러지더니 이내 비좁은 틈새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문제는...

녀석이 내 쪽으로 낙하해 온다는 것!

“시, 시팔...!”

시커먼 덩어리가 곤두박질쳤다.

나는 비좁은 공간이나마 뒤로 물러서려고 애썼고, 녀석은 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내가 주저앉은 빙벽 끄트머리에 안착했다.

“꺼져!!!”

­깨갱 깽...!!

부츠 밑창으로 매몰차게 걷어차자 곧바로 구슬프게 울부짖으며 미끄러졌지만­.

놈은 발판 모서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절박하게 저항했으나, 내 완강한 발길질에 못 이기고 결국 저 아래로 떨어져내렸다.

...3미터 밑으로.

“....?”

내 바로 아래에도 발을 디딜 공간이 불거져 있었던 모양. 워낙 어둡고 급박해 보지 못했다.

­크르르르...!

안전하다는 걸 깨달은 늑대가 복수라도 하겠다는 듯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이내 크게 도약하며 내가 있는 발판까지...

­깨갱...!

“....?”

성대하게 미끄러졌다.

녀석은 매끄러운 얼음을 박차고 오르는 게 쉽지 않은지 한참을 바동거렸다. 이내 차분하게 발톱을 박아넣으며 올라오고자 시도했지만, 딱히 여의치는 않아 보였다.

“....야.”

­...컹?

“야 이 개새끼야.”

­커겅!! 컹 컹!!

얼음 쪼가리를 주워 전력으로 투구했다. 얼빠진 표정으로 올려다보다 난데없이 미간을 얻어맞은 늑대는 있는 힘껏 험악하게 짖어댔다.

샛노란 눈동자에 서린 살기를 보자 살짝 움츠러들었지만, 나는 곧 마음을 추스르고 시선을 마주보았다. 놈은 날 헤칠 수 없다.

“...옳지, 너 잘 걸렸다.”

­컹..?

얼음 덩어리를 주워 세차게 내던졌다. 발판 위의 얼음이 다 떨어지자 단도로 빙벽을 긁어모았다. 이곳에 널리고 널린 게 얼음. 이젠 내가 일방적으로 후드려 패는 입장이다.

­깨갱!! 깽!!!

“이 새끼가 뭘 잘했다고 울어? 너 아까 신나서 나 괴롭혔지? 넌 좀 더 맞자.”

추위도 잊은 채 얼음을 던지다 보니 재미가 쏠쏠했다. 놈들이 왜 나를 괴롭혔는지 알 것 같다. 머리 위 늑대들도 제 동료가 다칠까 봐 더 이상 내게 위해를 끼치지 못했고, 나는 그럴수록 더 신나서 돌팔매질에 몰두했다.

­컹 컹!!!

­크르르르...! 컹!!

“닥쳐!!! 이 새끼 뒤지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끼잉...

늑대들이 단체로 꼬리를 내렸다. 과연 집단 생활을 하는 동물답게 동료를 끔찍이도 아끼는 모습. 게다가 눈앞의 이 녀석은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새끼니 더 그렇겠지.

얼음에 코를 얻어맞을 때마다 서글프게 울부짖는 모양새가 썩 불쌍했지만, 내가 겪은 일을 생각하면 당해도 싸다.

늑대들의 공격만 없다면 이곳에서 오늘 밤을 지새우는 것도 무리가 아닐 터.

나는 난데없는 행운에 감사하며 서늘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추워...”

싸늘한 공기가 온몸을 휘어감았다.

칼날 같은 냉기가 옷깃 사이로 파고들었다.

입김이 얼어붙어 생긴 성에가 눈썹을 하얗게 물들였다.

“.....”

늑대의 습격으로부터 간신히 벗어난 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아니 이걸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오들오들 몸을 떨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검푸른 빛깔의 균열 너머로는 새하얀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나는 여전히 절벽 사이에 고립된 상태고, 좌우의 빙벽에서 뿜어나오는 한기가 천천히 나를 죽여갔다. 간혹 크레바스 입구로부터 실낱같은 바람이 흘려들어올 때면 심장이 멎는 듯했다.

배낭에 넣어놨던 땔감은 축축하게 젖어 불도 피우지 못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손발 끝이 썩지 않도록 쉬지 않고 꿈틀거리는 게 고작.

하다못해 작은 촛불이라도 있었더라면...

7계층에 도달하고 눈을 떴던 동굴. 그 동굴에서 피웠던 모닥불이 간절하게 그리워졌다. 지금 입고 있는 옷을 촉매 대용으로 쓰면 어찌어찌 불을 피울 수 있겠지만, 나는 끝끝내 고개를 저으며 단념했다. 옷을 불태우면 지금 당장은 따뜻할지언정 얼마 못 가 동사하고 말 거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방안을 고려할 정도로 나는 벼랑 끝에 몰려 있었다.

“......”

추위에 이를 맞부딪히며 하염없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갈라진 틈 너머에서는 바람이 끊이질 않았다.

늑대들은 눈보라를 견디지 못하고 물러났지만, 지금 밖으로 나가는 건 불가능하다. 분명 설동을 파기도 전에 얼어 죽을 터, 바람이 진정되기 전까지는 이 절벽에서 꼼짝없이 버텨야 한다.

“.....”

피로한 나머지 잠시라도 눈을 붙이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지만, 나는 졸음이 몰려올 때마다 살점을 꼬집어 버텼다. 지금 잠들었다간 영영 깨어나지 못할 테니까. 한 번은 꼬집은 팔뚝에서 피가 줄줄 새어 나와 식겁하기도 했다. 추위에 피부가 얼어붙은 탓이다.

“조금만... 조금만 더 견디면 돼...”

아마 다섯 시간쯤 뒤면 해가 뜨지 않을까?

이 추위와 어둠 속에 더 머물러야 한다는 현실에 눈앞이 캄캄해졌지만, 나는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다. 아니, 놓을 수 없었다. 이 앞에 라디가 기다리고 있을 상상을 하면 가슴이 미어졌기에.

녀석과 만난 이후가 아니었더라면 버티기 더욱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휘이잉...

“으윽...”

바람이 불어오자 옷깃을 더 단단히 동여맸다. 바닥의 냉기를 막기 위해 깔고 앉은 배낭은 이미 얼어붙어 단단해졌다.

이대로 가면 안 된다.

나는 몸을 일으켜 벌써 몇 번째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살갗을 저며내는 추위와 몽롱한 정신 속에서 지친 몸을 움직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최대한 열을 발생시켜 심부 체온을 올려야만 했다.

“.....”

­......

한 평 남짓 비좁은 공간. 좁은 틈 사이로 거친 눈발이 자아내는 희미한 광채를 받으며 몸을 데우다 보니 샛노란 네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녀석은 곧바로 고개를 내리깔며 시선을 회피했다. 또 자신에게 화풀이를 할까 봐 두려운 걸까?

“....옛다.”

나는 배낭에서 상한 고기 한 점을 때서 놈에게 던져주었다. 특별한 의도를 지니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측은지심이 들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변덕에 지나지 않았을 뿐. 잠시나마 이 추위를 잊게 해준다면 뭐든지 할 가치가 있었다.

­끼잉... 낑..

녀석은 군말 없이 내가 던진 고기를 받아먹었다.

단단하게 얼어붙은 고기를 게걸스럽게 집어삼키는 늑대의 모습이 그럭저럭 보기 괜찮았다. 이에 나는 단도로 살코기 한 점을 더 잘라내 던져주었다. 녀석도 곧 이 절벽에서 생을 마감하게 될 텐데 마지막 한 끼 정도는 괜찮겠지.

녀석은 그 고기도 허겁지겁 받아먹고는 다소곳이 않아 기대감에 찬 눈으로 올려다봤다. 썩 애교스러운 모습. 배가 많이 고팠던 걸까? 눈싸라기가 흩날리는 걸 보니 꼬리도 흔들고 있는 듯하다.

“잠깐... 어쩌면 이거...”

미친 생각이 떠올랐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