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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하렘 생존기-108화 (108/375)

〈 108화 〉 귀환 #8

* * *

[109] 귀환 #8

반응할 겨를도 없었다.

­푸화아아아아아아악!!!!!!!!!!!

설동이 폭발했다.

표산하는 눈송이. 어둑어둑한 야음 사이로 새하얀 눈발이 들이찼다. 휘몰아치는 세찬 돌풍에 흑발이 흩어진다.

쏟아지는 눈이 모닥불을 덮기 직전, 내가 목격한 건­

“씨, 씨발...! 저게 뭐야!!!”

단단한 등껍질과 우둘투둘한 피부. 두꺼운 뒷다리와 동충하초처럼 전신에 돋아난 녹색 줄기.

거북이와 두꺼비를 이종교배하면 저런 생명체가 튀어나오지 않을까.

놈들이 촉수를 뻗어 공격해왔다.

“도란님!!!”

“제길!!”

라디를 끌어안았다. 껴안고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자리에서 벗어나기가 무섭게 녹색 줄기가 착탄하며 눈송이가 흩뿌렸다.

­컹컹!!! 크르르르...!! 컹!!!!

“염병할...!”

재빨리 지면을 구르며 일어나 자세를 바로잡았다. 단도를 움켜쥐자 칼날 같은 냉기가 뺨을 스친다.

“꼬맹아!! 저놈들 약점이 뭐야?!!”

“모, 모르겠어요...”

“뭐라고...?”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창백하게 질린 라디가 보였다.

“새, 생전 처음 보는 몬스터에요...! 게다가...”

녀석이 마물에서 눈을 떼고 내 얼굴을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독... 마비독 냄새가 나요...”

“씨발!!!”

지금껏 봐왔던 몬스터들은 대부분 기존에 알던 짐승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허나 눈앞의 생명체는 사뭇 다르다.

­꾸그르극...! 개굴!

­끄르륵!! 끼이이이익!!!

개구리를 쭉 잡아당겨 빨래판에 문대는 듯 기괴한 소음. 목울대의 울음주머니가 팽창하자 괴이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팽만하게 부풀어오른 복부는 들개라도 잡아먹은 듯하다.

혹, 기생충에 감염된 건 아닐까.

열 마리나 되는 변종 두꺼비들이 전신에 난 촉수를 한차례 수축하고는 재차 마수를 뻗어왔다.

­푸확!!!!

“씨이발!!!”

단검을 휘둘러 떨쳐냈다. 칼날이 닿기가 매섭게 녹색 가닥이 터져나갔다. 하지만 촉수에는 통각 세포가 없는지, 두꺼비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 손목을 휘감고자 시도했다.

결국, 훌쩍 뒤로 뛰어넘어 거리를 벌릴 수밖에 없었다.

‘제길... 난데없이 이런 새끼들이 튀어나와선...’

상황이 좋지 않다.

하필이면 지금은 설원을 가로지르며 쌓인 피로가 누적된 상태. 눈보라 탓에 제대로 서 있는 것조차 힘들다. 노면 상태라도 좋으면 뭐라도 해보겠지만, 발이 푹푹 빠지는 눈밭에서 미지의 적과 싸우는 건 리스크가 너무 크다.

그렇다면...

‘일단 서너 마리 정도 수를 줄여놓고 상황을 봐야겠어.’

그나마 다행인 건 놈들이 재빠른 타입의 마물이 아니라는 점. 지금 당장 도망친다면 무사히 목숨을 건사할 순 있겠지만, 대신 식량과 장작을 포함해 지금까지 모은 짐을 몽땅 잃어버리게 된다.

아무런 땔감도 음식도 없이 이 설원을 나아가는 건 자살행위. 수를 줄여놓는다면 라디와 늑대를 시켜 짐을 챙기고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겠지.

놈들이 지레 겁먹고 알아서 도망치면 더할 나위 없고.

“....간다.”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칼자루를 움켜쥐며, 꾸물거리는 형체들을 눈에 담은 순간­

­투화아아악!!!

눈꽃이 솟구쳤다.

바닥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눈의 하얀 궤적이 포물선을 그리며 시야 구석으로 흩어진다. 상대의 주요 공격수단은 촉수. 저 촉수에 관통당하지만 않게 주의하면 큰 문제가 없을 터였다.

“도란님!!!!”

“괜찮으니까 물러나 있어!!!”

자세를 낮춰 더욱 근접했다. 불리한 상황이라고 하나, 아예 승산이 없지는 않다. 그렇게나 막강했던 스노우 타이거도 쓰러뜨리지 않았는가.

­투두두둑!!!!

녹색 줄기가 기괴한 각도로 꺾이며 쇄도했다. 허리에 탄성을 이용해 회피한다. 후두둑 뒤늦게 내리꽂힌 촉수가 지면에 구멍을 만들고, 녹회색 증기를 피워올렸다.

나는 숨을 틀어막고 질주했다.

지척까지 다가간 순간, 회전을 실어 목표물의 배후로 뒤돌아갔다.

“일단 한 놈!!”

아무런 의심 없이 등딱지에 단도를 내리그은 순간­

­까아아아앙!!!!!

“...!!!!!”

검명음. 전혀 예상치 못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저릿한 감각이 손목을 타고 전해지고, 크게 뜨인 두 눈동자엔 새빨간 불똥과 함께 온전한 갑각이 비쳤다.

단도가 먹혀들지 않을 줄이야, 대체 얼마나 단단...!

“위험해요!!!”

“뭐, 뭣...?! 잠깐...!!!”

­슈화아아악!!!

단도를 역수로 움켜쥐고 재차 시도하려던 차, 돌연 등껍질이 좌우로 벌어지며 그 안에 있던 수많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노란 동공과 보랏빛 홍채가 뒤섞인 불쾌한 시선. 그 희번뜩한 안구들이 내 육신을 포착한 순간, 탁한 독무에 뒤덮였다.

“크읍...!!!”

왼손으로 재빨리 호흡기를 틀어막았을 땐 이미 늦었다. 따개비처럼 돋아난 돌기에서 뿜어나온 독안개가 코와 입속으로 파고들었다. 일시적으로 후각이 마비될 정도로 짙은 독기를 정통으로 뒤집어쓰자, 시야가 일그러졌다.

“도란!!!!”

찢어지는 비명. 탄력을 잃은 바이올린 현처럼 소리가 길게 늘어진다. 손발의 감각이 서서히 둔탁해지고, 불투명한 이명이 머릿속을 서서히 잠식해나간다.

떨리는 눈꺼풀을 비집어 간신히 실눈을 뜨자 상단에서 치밀어오는 녹색 궤적들이 보였다.

어금니를 깨물며 조속히 후방으로 도약해 물러났지만,

­퓨슉!!!

“──!!!!”

왼쪽 어깨로부터 타오르는 듯한 고통이 치밀었다.

이어서 허벅지. 복부. 눈보라 사이로 찐득한 점액이 반질거린다. 차가운 눈 위를 구르자 촉수가 뺨을 스쳤다. 꿈틀거리는 줄기에서 뿜어나오는 증기를 쐬자 독한 알코올을 눈에 들이부은 듯 안구가 화끈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뾰족한 첨단이 옆구리를 옅게 도려내자 지금까지의 미온한 생각을 송두리째 날려버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고통이 몰아닥쳤다.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린다.

단도를 전방위로 휘둘렀다. 필사적 발악. 질꺼덕거리는 촉수들은 검신에 닿자 삽시간에 터져나가며 비릿한 체액을 흩뿌렸다. 나는 놈들의 공격이 잠시 뜸해진 틈을 타 황급히 거리를 벌렸다. 쩔뚝거리는 다리를 내디딜 때마다 뜨거운 통증이 끓어오른다.

“도란님 이쪽으로!!!”

라디가 내 허리끈을 붙잡고 거칠게 잡아끌었다. 그녀가 쇠뇌를 발사하며 견제했지만, 열 마리나 되는 놈들을 떨쳐내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곧 사방에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염병... 할....”

찢겨나간 옆구리를 부여잡고 신음했다. 환부가 부지깽이로 달구기라도 한 듯 뜨겁다. 열기 어린 호흡에 눈송이가 녹아내리고 시야가 일그러졌다.

어긋난 태엽 하나가 괘종시계를 망가뜨리듯, 촉수에 닿은 부분으로부터 서서히 마비독이 차오른다.

스노우 타이거를 쓰러뜨렸을 때처럼 덩굴을 소환하고자 시도했지만, 검은 기운은 형체를 이루지 못하고 흩어질 뿐. 늑대도 사방을 뛰어다니며 최대한 이목을 끌어봤으나 짙은 독안개에 다가가지 못하고 멀찌감치서 짖어대는 게 고작이었다.

낭패.

두꺼비들이 촉수를 꿈틀거리며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점점 가까워져 온다.

“꼬맹.. 아... 무슨 방법 없냐...?”

“이 상태로는..”

“....젠장.”

최악의 상황. 이대로 가다간 수를 줄이기는커녕 전멸하고 말 거다. 상대의 특성도 모르고 덤빈 게 패인.

무겁게 입을 열었다.

“....꼬맹아.”

“...말씀하세요.”

“내가 시간을 끌 테니까, 가서 짐 챙겨.”

“그, 그렇게 할 수는...”

“내 말 들어.”

라디와 시선을 마주했다.

지금 이대로 계속 싸워봤자 승산은 없다. 나는 물론이고 늑대와 라디의 목숨마저도 위험하다. 우리가 살아날 방법이 있다면, 내가 시간을 끄는 사이 물자를 챙겨 도주하는 것.

“하, 하지만 도란님이 무슨 수로...”

“괜찮아, 아직 나한텐 이게 있거든.”

허리춤의 파우치에서 플래시 골렘의 핵을 꺼내들었다.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정말 신중하게 써야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대체 언제 쓰란 말인가.

“....알겠어요.”

라디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녀석이 능숙하게 볼트를 장전하며 늑대에게 신호를 보냈고, 내가 단도로 핵을 그으며 공중으로 던져올리자­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섬뜩할 정도의 광채가 발발하며 대지를 흔들었다.

“이때야 어­!!!”

“알...­!!”

­컹─!!!

이명이 귓가를 맴돌았다. 밝은 조명이 소멸하자 그 반동으로 칠흑의 어둠이 내리깔렸다. 어마어마한 파동이 전신을 흩었고, 눈더미가 파열하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인근에서 핵을 터트리는 바람에 충격을 뒤집어썼지만, 덕분에 놈들을 동요시키는 데 성공했다.

“.....”

나는 암전된 시야 속, 전의를 갈무리했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마비독이 오감을 어지럽혔지만 견뎌내야 한다.

이를 악물며 고개를 든다.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던전의 밤이 도래한 세상, 모든 감각을 이용해 적의 기척을 쫓는다.

시간을 끌어야 한다.

­투확!!!

발을 박찼다. 옷깃이 바람에 휘날린다. 암흑 너머에 있을 적들을 향해 질주했다. 뒤틀린 감각과 정적이 공존하는 세계 속에서 증속한다.

­콰르르르!!!

꾸득거리는 유기체의 소리. 촉수가 날아들었다. 나는 더욱 가속해 뿌리쳤다. 불규칙한 각도를 그리며 사선에서 육박해 오지만, 새하얀 코볼트 단검을 발도해 찢어발겼다.

이에 두꺼비들이 더욱 맹렬하게 공격을 쏟아부었으나­

“......”

나는 놈들의 주의를 한계까지 끌어들인 뒤, 앞으로 도약함과 동시에 단도를 찔러넣었다.

­꾸륵­.!!!

지면이 불안하게 울렁인다. 공기가 맹렬히 떨려왔다. 신체를 움직이며 움직일수록 점점 독이 퍼져나가는 걸 느꼈지만, 멈출 수 없다.

나는 흔들리는 몸뚱이를 바로세우며 단도를 치켜올렸다. 날끝에 미묘한 저항감이 느껴지고, 그대로 힘을 주어 절삭하자 높은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파스슥...!

역풍을 맞으며 베고, 휘청거리며 악천후를 거슬렀다. 끈적이는 액체가 내 뺨에 흩뿌려졌지만, 이것이 내 혈흔인지 마물의 체액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조명을 잃은 세계 속에선 맹렬한 고통만이 유일한 이정표일 뿐.

­꾸르르륵­!!

­끄륵!! 끄르르­.!!!

“크윽...!”

별안간 날카로운 고통이 침습해왔다. 옆구리에 하나, 허벅지에 둘. 짐승의 울음처럼 방향성 없는 외침이 입술 사이로 비틀려 나왔다. 맹렬한 고통이 지독하게 늘어지지만 쓰러질 순 없다. 조금, 아주 조금만이라도 시간을 더 끌어야 한다.

“...­..­.!!”

코앞에 당도한 물체를 피해냈다. 두꺼비의 촉수였을 수도, 혹은 말라비틀어진 고목의 나뭇가지였을지도 모른다. 여유가 없다. 복부에 흘러내리는 끈적한 액체의 정체조차도 분명치 않다.

‘젠...장...’

점점 뭉개져 가는 감각 속, 이제는 내가 땅을 딛고 서 있는지도 확실치 않다. 독이 혈관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 전신을 잠식했다. 호흡이 무뎌지고 자잘한 열상들이 피부를 타고 전해진다. 치열하게 저항해 보지만, 뒤이어 무언가가 내 복부를 꿰뚫었다.

“....”

한계.

나는 슬슬 끝이 임박했음을 직감했다.

자칫 공멸할 심산으로 골렘의 핵을 움켜쥔 순간­

[.....]

온기.

핵을 쥔 왼손에 따스한 온기가 겹쳐졌다.

조금 애틋하고 그립기도 한 감각에 말문을 잃었다.

마비되어 버린 오감 사이에서도 그 감촉만은 여실했다.

이윽고 주변의 기척들이 하나둘씩 저물어갔다. 방 안 가득한 촛불을 끄듯 불쾌하게 흔들리던 존재감들이 하나하나 사라져간다. 정숙하게, 때로는 조금 거칠게.

형용하지 못할 그 감각에 멍하니 서 있자니 세찬 바람을 뚫고 익숙한 손길이 나를 잡아끌었다.

“...란님 서둘.. 이쪽...!!”

“라디...?”

“그대로 계세요!!”

라디가 다급하게 날 썰매에 눕혔다. 밧줄로 묶어 단단히 고정한 뒤, 늑대와 연결된 끈을 잡아당겼다.

“달려 늑돌아!!!!”

­컹!! 컹!!!

눈발이 휘날린다. 늑대가 설원을 질주하기 시작하자 빠른 속도로 광경이 뒤바뀌고 소리가 멀어져 간다.

흐릿한 시야 속, 내가 마지막으로 목격했던 건,

칠흑의 기운을 전신에 두르고 나를 대신하여 두꺼비를 도륙하는 한 소녀의 모습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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