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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하렘 생존기-130화 (130/375)

〈 130화 〉 불야 #1

* * *

[130] 불야 #1

“좀 진정되셨어요?”

“.....”

“하여간... 다 큰 어른이 애처럼 펑펑 울기나 하고...”

“....”

“괜찮아지셨으면 일어나요. ...다리 저려요.”

“.....응.”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따스한 감촉이 멀어졌다.

라디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내 뺨을 붙들고 상냥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로브 자락에 가득한 눈물 자국을 보니 얼굴이 달아오른다.

‘내가 무슨 짓을...’

괜찮은 줄만 알았더니 제법 취한 모양이지.

후련함과 허탈함, 술기운에 지워졌던 수치심이 몰려든다.

굴러다니는 빈 병을 원망스럽게 노려보자니 라디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힘들어요? 피곤하면 이만 주무시는 게...”

“...아냐, 그냥.... 넌 괜찮아..?”

“네, 살살 취기가 돌긴 하지만 아직 거뜬해요.”

녀석이 술잔을 들이키며 웃음지었다. 두 뺨은 살짝 상기되었을지언정 푸른 눈동자에는 맴도는 투명한 총기를 마주하니 얼굴을 들기가 힘들다. 아무리 그래도 연하의 연인 앞에서 울고불고 매달린 것도 모자라 추태를 보이다니.

어디서나 술이 문제다.

암시장에서 사 온 와인을 마실 때까지는 멀쩡했으나 고대 유적에서 출토된 과실주가 문제였다. 4골드라는 어마무시한 거액이 책정된 물건답게 녀석은 제 값어치를 톡톡히 증명했다.

오죽했으면 아직도 그 짙은 취향이 공터를 맴도는 것만 같이 느껴질까.

라디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슬슬 정리하죠. 도란님은 먼저 들어가 계세요.”

“아냐 같이 하자, 거기 병 좀 주워줄래?”

“...네, 알겠어요. 무리하지는 마세요.”

발치의 흙을 뒤엎어 모닥불을 끄자 타다 남은 재 사이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쓰레기들을 대충 한곳으로 모은 뒤 양치질을 위해 냇가로 향하자 흐르는 물에 병을 세척 중인 라디가 보였다.

“설거지는 내일 하지... 차가울 텐데...”

“괜찮아요. 7층에 있었을 땐 눈으로 목욕도 했는데요 뭐.”

녀석이 물기가 흐르는 유리 표면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앞으로 저 와인병이 맹독을 담을 용기로 탈바꿈한다고 생각하니 살짝 등골이 저려왔다. 만약 오밤중에 착각하고 실수로 들이키기라도 하면...

“자, 어서 들어가요 도란님.”

“...그래.”

세면세족을 마치고 아늑한 텐트 내부로 돌아오자 쌀쌀한 밤공기에 질렸던 피부가 혈색을 되찾았다. 자칫 방심하다간 감기에 걸리기 딱 좋은 날씨. 그간 우리가 7계층에서 겪었던 추위에 비하면 온실 수준이지만.

피식 웃으며 침대 모퉁이에 주저앉자 라디가 물어왔다.

“바로 주무실 거예요 도란님?”

“음... 글쎄? 딱히 할 것도 없긴 한데... 그러고 보니 이렇게 한가롭게 쉬는 것도 오랜만이네.”

“그래요? 그러면 저희 좀 더 이야기하지 않을래요?”

“나야 좋지. 어디 적당히 앉을 만한 데가...”

“아, 그 전에 잠시 저는 씻고 올게요. 아까부터 좀 찝찝했거든요.”

라디가 부드럽게 내 흑발을 어루만지더니 갈아입을 옷을 챙겨 천막 밖으로 향했다.

홀자 남은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적당한 장소를 물색했다.

간이 침대는 삐걱거려서 장시간 앉아있기 불편하고, 바닥엔 잔디가 그대로 드러나 있어 조금 곤란하다.

목제 프레임에 두꺼운 면직물을 덮었을 뿐인 침상과 축축한 바닥을 흘겨보고 있자니 시야 한구석으로 새하얀 물체가 보였다.

‘그러고 보니 그게 있었지...!’

즉시 스노우 타이거 모피를 펼쳐 바닥에 깔자 그것만으로 훌륭한 이부자리가 완성되었다. 적당한 무게감 덕에 밀려나지도 않고 푹신하기까지 하니 최고급 헤스텐스 침대가 무색해질 정도.

“이거 그냥 여기서 자도 되겠는데...?”

모피 위에 드러누워 천장을 쳐다보았다. 끼익 끼익 흔들리는 랜턴이 천막에 동그란 음영을 드리운다. 기울어지는 그림자가 발치를 지날 때면 술기운에 심장 소리가 크게 들려왔고, 뺨에 맞닿는 부드러운 털과 포근한 햇살 냄새에 솔솔 졸음이 몰려왔다.

쌕쌕거리던 숨소리가 점차 안정될 때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잠에서 깨어난 건 조금 더 뒤의 일이었다.

­사박..

천이 스치는 듯한 소음. 가슴팍에서 간질거리는 감촉이 느껴졌다.

“으음... 라디야...?”

맨살에 와닿는 서늘한 한기에 눈을 뜨자 불 꺼진 실내가 보였다. 캄캄한 텐트 내부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했고, 광원이라곤 천막의 이음매 사이로 들어오는 달빛이 유일했다.

가슴을 누르는 답답한 무게감에 고개를 들자­

“으헉...?! 깜짝이야!!”

날 똑바로 쳐다보는 두 푸른 눈동자와 마주쳤다.

“뭐, 뭐야! 꼬맹이 네가 왜...!”

“....고요.”

“뭐...?”

“꼬맹이 아니라고요..”

“자, 잠깐 라디야...?!”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야 한기의 정체를 눈치챘다. 옷가지가 어느새 전부 풀어 헤쳐져 있었던 것.

간신히 하나 남은 속옷을 움켜쥐며 새된 목소리로 외쳤다.

“너 혹시 취, 취했어?!”

“...저는 주량이 세다고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그렇다면 혹시...

“흥분.. 했어?”

“.....”

라디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푹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일주일이에요.”

“.....”

“도란님이 7계층에서 빠져나올 때 저를 구하려다가 중상을 입고 의식을 잃은 지 일주일 만에 깨어나셨어요. 그간 제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해보셨어요?”

“....”

“항상 제 몸 바쳐 희생하고... 추울 텐데 저한테 옷가지도 전부 양보하고... 불쑥 제 마음을 설레게 흔들어놓곤 자각 없이 웃고. 오늘도 조금 더 함께 있자고 돌려서 말했는데 먼저 자빠져 자기나 하고...”

“그.. 라디야...”

“시끄러워요. ...조금 전에 흥분했냐고 물었죠?”

라디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다시금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맞추었다.

불에 달궈진 사파이어처럼 새파란 광채를 내뿜는 눈동자에는 격정적인 애욕이 남실거렸다.

“네, 조금 발정기가 왔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녀가 내 입술을 덮쳤다.

뜨거운 혀가 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자 들끓는 감정이 전해져왔다. 별개의 생물처럼 느껴지는 설근이 애타게 입안을 훑었고, 말캉한 혀와 혀가 서로 얽혀들며 찌릿한 전율을 선사했다.

멘테 향 뒤로 어렴풋한 무화과의 향기가 풍기는 라디의 입술.

농밀한 키스가 끝나고 그녀가 살며시 고개를 들자 은빛 실이 늘어졌다.

“...느껴져요?”

라디가 내 오른손을 잡아당겨 제 가슴에다가 가져다 댔다.

터질 듯 가쁘게 뛰는 심장의 박동을 느끼며 마른침을 삼키자 그녀가 내 흑발을 걷어주며 속삭였다.

“이게 다 도란님 때문이에요.”

“도란님이 계속 다정하게 구니까... 살갑게 웃어주니까..”

“그때마다 제 심장이 이렇게 괴로워지잖아요...”

라디가 천천히 손을 들어올려 제 목둘레로 향했다.

가녀린 손끝이 황금빛 단추를 풀어내고, 새빨간 로브마저도 벗겨내자 비로소 그 아래 감춰져 있던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밤새 내려와 고요하게 세상을 덮은 눈처럼 새하얀 나신을.

달콤한 체취가 물씬 풍겨와 코끝을 간질였다. 그녀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붉은 로브 아래엔 평소의 단정한 레더아머 대신 순백색 알몸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 괴리감이 배덕감이 되고, 배덕감이 욕망으로 변모하여 성욕에 불을 지피려는 찰나,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너... 그건 어디서 났어..?”

란제리.

막 피어오른 정욕에 기름을 퍼붓는 야시시한 속옷이 라디의 소중한 부위를 가리고 있었다. 보자마자 남성을 홀린다는 목적 하나만으로 제작된 의류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

골반 위에 살짝 걸친 매듭에선 노골적인 의도가 엿보였으며, 체형에 딱 달라붙어 굴곡진 그녀의 몸매를 여실하게 드러내었다. 실크와 벨벳이 적절하게 조합된 검은색 소재는 주인을 까다롭게 가릴 듯했지만 새하얀 라디의 살결과 대비되어 고혹적인 매력을 배가시켰다.

정작 본래 목적인 몸을 보호한다는 기능은 전무하나 그렇기에 음심을 자극하는 만듦새.

라디가 입을 열었다.

“아델 씨가 가게 주소를 가르쳐주셨어요. 이거 하나면 도란님을 한순간에 포로로 만들어버릴 수 있을 거라고. 그 말이 완전히 틀리진 않았나 봐요.”

라디가 꼬리를 살랑거리자 하늘하늘한 장식이 나비처럼 유려한 잔상을 자아냈다. 도발하듯이 도도하게 흔들리며 언뜻언뜻 내비치는 비부는 원초적인 충동을 이끌어냈다.

필사적으로 유혹을 떨쳐내며 라디의 어깨를 붙잡고 밀어냈다.

“자, 잠깐...! 너 진짜 취한 거 아냐...?! 평소랑 너무 다르잖아! 흥분한 건 알지만 조금 진정...”

“평소...”

“라, 라디야...?”

돌연 그녀의 입에서 서늘한 음색이 흘러나왔다. 그 온도 차에 당황하던 찰나, 라디가 내 손을 잡아끌어 제 국부에 가져다댔다.

그녀의 회음부 바로 아래서 손가락이 멈추자 후끈한 달아오른 공기 뒤로 끈끈하게 망울져 흘러내리는 꿀물이 얽혀들었다.

“느껴져요...?”

“....”

“이전부터 줄곧 이 상태였어요. 홀로 설원에 고립되고 모든 게 막막하던 때, 도란님이 절 구하기 위해 절벽에서 뛰어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확신했어요. 아, 이 남자라면 평생을 동반자로서 함께할 수 있겠구나... 내 모든 걸 내어줘도 되겠구나...”

“.....”

“그 뒤로 상냥하게 제 머리를 쓸어 줄 때마다, 맑게 웃어줄 때마다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아세요? 당장에라도 넘어뜨리고 싶은데.. 던전에서 짐이 되면 안 되니까.. 꾹 참고.. 또 참고... 욕망을 꽁꽁 감추고...”

“라디야...”

“그런데... 이제 여긴 안전하잖아요?”

“우읍...?!”

갑자기 들이닥쳐 온 기습 키스. 라디가 강렬하게 내 입속을 탐미하며 아래로 손을 내렸다. 세밀한 손의 감촉이 울퉁불퉁한 복근을 타고 그대로 이어지고 내 하반신에 도착한 순간, 뱀처럼 팬티 속으로 빨려들어가 기립한 남근을 움켜쥐었다.

그녀가 살짝 입을 떼고 속삭였다.

“흥분하셨네요.”

“.....”

“저 때문에 이렇게 되신 거네요? 기뻐요...”

라디가 손을 들어올리자 투명한 쿠퍼액이 찐득하게 늘어졌다. 그녀는 손가락에 묻은 아기씨를 보고는 내게 눈웃음을 지어보이더니 손바닥을 넓게 펼쳐 귀두 끝부분을 감싸고 부드럽게 마사지하듯 펴발랐다.

잔잔한 물결처럼 부드럽게 퍼져나가는 쾌감에 무의식적으로 라디의 허리를 움켜잡기도 잠시, 그녀는 엄지와 검지를 동글게 말아 귀두 아랫부분에 끼우더니 위아래로 왕복 운동을 시작했다.

“...기억하세요? 저희 둘이서 함께 생존할 때요. 그 비좁은 눈굴 속에서 도란님이 제게 시켰던 일이요.”

“.....”

“그때도 이렇게 몸을 맞대고 서로를 위로했잖아요.. 도란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아예 숫처녀였는데... 덕분에 기분 좋은 걸 잔뜩 알아버렸어요.”

“....”

“다 도란 오빠 때문에.”

­치덕..

라디가 속도를 높였다. 텐트 안에 희미한 물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한다. 나는 그녀의 뒷목을 끌어당겨 입을 맞추었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한 손으로 다 잡기 어려울 정도의 가슴을 손에 담자, 손바닥 전체에 느껴지는 마시멜로처럼 부드러운 감촉에 찌르르한 전율이 일었다.

오랫동안 참아왔던 욕구와 평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극적인 그녀의 태도가 맞물려 다분한 사정감이 차오르던 찰나, 돌연 손길이 멎었다.

고개를 들어 쳐다보자 맹랑하게 올라간 입꼬리가 보였다.

라디가 상냥하게 알주머니를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안 돼요. 그냥 싸버리면 아깝잖아요.”

“라디... 야..?”

녀석이 내 입술에 가볍게 뽀뽀하더니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내 허벅지 사이에 무릎을 꿇고는 걸리적거리는 트렁크를 종아리까지 잡아당겼다.

이어 요란하게 껄떡거리는 내 분신을 볼가 근처에 가져다 대며 도발하듯 치뜬 눈동자로 유혹해온다.

“도란님 그거 아세요? 세상 모든 남자한테는 독이 있데요. 그 독은, 아주 치명적인 맹독이라 가만히 놔두면 신체를 좀먹고 끝내는 머리까지 퍼져 행동을 지배하게 된데요.”

“그래서 제가 지금부터 그 무시무시한 독을 빼내 드릴 거예요.”

“바로 이 구멍으로.”

라디가 새침하게 웃더니 양손 검지로 제 입을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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