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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하렘 생존기-138화 (138/375)

〈 138화 〉 여흥 #6

* * *

[138] 여흥 #6

뭔가 조금 이상하다.

‘이상한데...’

막 할 일이 떠올랐다는 듯 급하게 떠난 것도 그렇고, 후련해 보이는 표정도 그렇고...

이래서야 나한테 골칫덩이를 떠넘기고 간 것만 같지 않은가.

‘에이 설마...’

그 아델 누님이 그럴 리가...

나는 마냥 귀여워 보이는 표범 소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럼... 니아 님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이제 저희는 뭘 하면 되는 겁니까?”

“응.. 글쎄~? 뭘 하면 좋을까?”

“네...? 범인 수색을 하고 있던 게 아니었어요?”

“아! 그렇지!! 그럼 제일 먼저 저 가게부터 가보자!!”

니아가 내 손목을 잡아끌며 길가의 한 노점을 가리켰다. 직접 탐문이라도 할 생각일까?

느긋한 감상을 품기도 잠시, 태풍에 휘말리는 가로수처럼 무지막지한 악력에 저항도 못한 채 끌려가 착석하자 두건을 쓴 요리사가 반갑게 맞이해왔다.

“어서 옵쇼!! 갓 잡아 신선한 모듬 초밥 세트가 단돈 24페니!! 이 미궁에서만 맛볼 수 있는 희귀한 생선도... 뭐야? 니아 님이셨잖습니까!”

“안녕! 오랜만이야 초밥 아저씨!!”

“사흘만이로군요!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그리고 아델 님도 여전히 아름다우십... 십.. 어...?”

남자가 내 쪽을 돌아보며 살갑게 미소짓던 그대로 얼어붙었다.

“다, 당신은... 누구...?”

“하하...”

멋쩍게 뺨을 매만지고 있자니 가게 주인이 제멋대로 납득했다.

“아아... 같은 길드 사람이구나... 하긴... 니아 님도 중직이시니 가끔은 길드 단원과 업무를...”

“응? 소년은 같은 길드 아닌데?”

“소년? 아... 그럼 이 청년하고는 대체 무슨 관계십니까?”

“그야 당연히...! 음... 응...? 그러게? 무슨 사이지?”

니아가 꼬리를 물음표 모양으로 말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내 슬쩍 내 쪽을 올려다보곤,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굉장히 비밀스러운 관계야!! 그리고 엄청 소중해!!”

최악의 방향으로ㅡ

“아니!! 그렇게 말씀하시면 오해하잖아요!!!”

반사적으로 그녀의 어깨를 붙들고 외쳤으나, 니아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의아하게 되물어왔다.

“왜? 맞잖아. 소년에 관한 건 아니스가 비밀로 하라고 했단 말야! 소중한 손님이니 잘 대해주라는 말도 했고!”

“그럼 그렇게 끝까지 말씀하셔야죠! 아무 맥락 없이 대뜸 그런 식으로 말해버리면...”

망연하게 옆을 돌아보자 망부석처럼 굳어버린 가게 주인이 보였다.

그는 내가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도 미동조차 안 하더니 한참이 지난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비상사태야. 니아 님을 따사롭게 지켜보는 모임을 소집해야겠어..”

“.....”

그거 뭐야. 무서워.

남자가 횟집 두건을 꽉 졸라매고는 결연한 표정으로 얼굴에 음영을 드리우며 읊조렸다.

“자네... 이곳엔 무슨 일로 왔지? 혹시 염장이라도 지르러 온 거면 미리 경고 하나 하지. 언제까지 시시덕거리며 웃을 수...”

“아니 염장이고 자시고 전 이미 애인이 있습니다. 지금 니아 님과 같이 있는 건...”

“자랑이냐? 이미 애인도 있는 새끼가 니아 님을 꼬셨단 말이지? 이런 쓰레기를 봤나! 아무리 하이랭커나 귀족들에겐 일부다처제가 일반적이라고 해도 우리 평민에겐...”

“아니...”

안 되겠다.

꽉 틀어막힌 게 꼭 비아투스 영감을 보는 것만 같다. 한 가지 사고에 매몰되어 자기 말만 늘여놓는 타입.

나는 그가 대답할 시간을 주지 않고 밀어붙였다.

“저는 잠시 아델 님의 대타로 동행하는 것뿐입니다. 니아 님과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고 어떻게 해볼 마음도 없으니 안심하세요.”

“뭐야...! 그럼 우리 암시장의 귀염둥이 니아 님에게 매력이 없다는 거냐?!!”

아 성가셔.

인상을 팍 찌푸리고는 등을 젖히며 함묵하자 니아가 태연하게 외쳤다.

“초밥 아저씨 나 배고파! 맛있는 것 좀 해줘!! 돈은 저번처럼 길드가 대신 내 줄 거야! 아, 그리고 소년도 내 거랑 같은 걸로!”

“넵! 길드 앞으로 청구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침 신선한 횟감이 들어왔는데 잘됐군요! 그리고 이쪽은...”

남자는 돌연 얼굴에서 웃음기를 싹 거두며 그녀에게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속삭였다.

“...명심하는 게 좋을 거야 형씨. 만약 니아 님을 울리기라도 했다간... 이 암시장 뒤편에 무덤 한 구가 늘어나게 될 테니까.”

“아, 예 예...”

“그럼 어디 실력 발휘 좀 해보실까?”

요리사는 그제야 후련하게 앞치마를 졸라매더니 초밥을 만드는 데 몰두하기 시작했다. 과연 장황하게 말을 늘여놓을 정도의 실력은 있는지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지런히 정렬된 초밥 세트가 나왔고, 니아를 뒤따라 조심스레 한 젓가락 뜨자­

‘맛있어...!’

입안에서 살점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찰기 넘치는 쌀알과 와사비처럼 톡 쏘는 양념의 조합이 가히 일품이다. 그러고 보니 얼마 만에 먹어보는 쌀이던가. 베라스틴은 벼농사를 할 만큼 물이 풍부하지 않은 탓에 밀을 중점으로 재배하니까.

‘그리고... 해산물도 정말 오랜만이야.’

베라스틴에서 동쪽으로 나아가면 해안가가 나오기는 하지만, 거리가 먼 까닭에 신선도 보장이 어렵다. 더군다나 바다엔 강력한 마물이 많은 만큼 아무래도 해산물이 비싸질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즉, 평소라면 초밥을 먹는 건 꿈도 못 꿨을 일이지만 던전이기에 맛볼 수 있는 진미란 것이다.

...나중에 라디도 데리고 와봐야겠는데.

횟감 특유의 신선한 감칠맛을 음미하며 느슨하게 입가를 풀고 있자니 가게 주인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맛있냐?”

“네, 뭐 솔직히... 괜찮네요. 노점에서 이 정도 퀼리티의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당연히 그래야지. 네가 지금 먹고 있는 그거 2실링짜리야.”

“무, 뭣?!! 아니 처음엔 분명 24페니라고...!”

“니아 님에게 진상하는 요리에 싸구려 재료를 쓸 순 없지. 전부 오늘 새벽에 4계층에서 직접 공수해 온 최고급 횟감이야.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거기에 해수호가 있거든.”

“아니... 24페니도 충분히 비싼데...”

2실링이면 이전의 내가 두 달은 먹고 살 수 있는 금액이다. 막대한 부를 지녔을 하이랭커의 한 끼 식비로는 다소 검소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간 보리빵 하나 사 먹을 돈도 없어 쫄쫄 굶던 내게는 터무니없는 과소비처럼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원래 내가 먹은 건 내가 내려고 했는데... 그냥 조용히 묻어가야겠다.

“가격을 알고 나니까 맘 편히 먹지를 못하겠네... 총 열여섯 조각이니까 한 점당 대략 12페니... 12페니면 약초채집 의뢰보다도 비싼데... 니아 님은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움냠냠... 웅? 뭐가?”

“...아무것도 아니에요.”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행복하게 초밥을 음미하는 니아를 보자 할 말을 상실했다. 게다가 그 잠깐 사이에 그녀의 옆자리는 빈 접시가 무려 두 개나 쌓여 있었다.

요리사가 새 초밥 세트를 그녀의 앞에 세팅해주며 말했다.

“니아 님은 엄청난 대식가시지. 이쪽 골목 노점의 매출을 책임져주는 아주 고마운 분이시라고.”

“...어쩐지 지나치게 반가워한다 싶더니..”

대체 저 많은 음식이 어디로 가는 걸까? 키는 라디보다도 더 작으면서. 설마 가슴에 능력치를 몰빵한 걸까.

어려 보이는 외견과는 달리, 흉악한 무기를 겸비한 그녀를 힐끗 곁눈질하고 있자니 이번 동행의 원래 목적이 떠올랐다.

“아니, 그러고 보니까... 니아 님? 식사 중에 죄송하지만...”

“응? 왜?”

“저희 탐문하러 여기 온 거 아니었어요...?”

“탐뮨?”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게 뭐야? 먹는 거야? 라고 말하는 듯 올망똘망한 호박색 눈동자를 마주하자니 임무 따위 아무래도 좋아졌다.

아니, 정신 차리자 도란. 저 귀여움에 속아선 안 된다.

어쨌든 보수까지 받아가며 하는 일이고, 무엇보다 이대로 가다간 추후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만일 나중에 변사체가 또 발견되어 책임을 물을 때 니아가 일과 도중 근무를 게을리하고 나와 놀러 다닌 게 밝혀지면 얼굴을 들 자신이 없으니까.

나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

“저기... 요리사님, 혹시 말씀 좀 물을 수 있을까요?”

“음? 뭔데 갑자기.”

“그... 이번 암시장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 들어보셨죠? 다름이 아니라 저희가 이곳에 온 이유도 그 사건을 조사하러 온 거였거든요. 혹시나 뭔가 알고 있는 게 없을까 해서...”

“뭐야, 너 아까까지는 붉은 매 길드원이 아니라면서. 네가 왜 그걸 묻고 앉았어?”

“그게... 완전히 관련이 없는 건 또 아니거든요...”

“흠...”

머쓱하게 뺨을 긁적이자 남자는 턱을 괴며 유심히 내 얼굴을 살피더니 어깨를 으쓱이고는 답했다.

“뭐, 니아 님도 있는데 괜찮겠지.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난리야. 손님도 줄어든 게 체감될 정도고. 요 옆에 점포 보여?”

“점포? 저 폐자재 더미 말이에요?”

“그래, 원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점주가 엊그제 숙소에서 송장으로 발견됐거든. 그러니까 사람들이 몰려와서 자기네 노점에 쓴다고 천막 떼어가고 목제 뜯어가고 하니까 저렇게 된 거지... 젊은 친구였는데.. 안됐어.”

“혹시 짐작 가는 범인은 없나요? 원한 관계라던가.. 죽기 전에 이상 행동을 보였다던가...”

“에이 설마... 성격도 참 밝아서 이 근처 점주들하고는 두루두루 친하게 지냈어. 시체로 발견되기 전날에도 평소처럼 일 마치고 퇴근한 게 전부고. 그런데 독살이라니.. 아닌 데 날벼락이지.”

잠깐.

‘독살?’

처음 듣는 정보가 나왔다.

무의식적으로 옆을 돌아보자 니아가 볼에 밥풀을 묻힌 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 소년은 못 들었어? 독살이 확실하데! 죽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온몸이 마비돼서 각목처럼 뻣뻣하게 굳은 채로 발견됐거든! 근육이 마비되니까 숨을 못 쉬어서 입에는 부글부글 거품이 가득하고.. 마지막까지 생생하게 고통스러워하며 죽었을 거라던데?”

“.....”

잠깐, 그거 분명 어디선가...

“조금 마셔봤자 몸에 큰 지장은 없어요. 그냥 뒷목이 좀 땅기고 호흡이 불편한 정도? 아, 그래도 너무 대량으로 흡입하면 구토에 근육 경련이 오고, 혀가 마비돼서 말을 못 하거나 호흡 곤란으로 죽을 수도 있으니...”

“니아 님, 그거 혹시 복어 독 아니에요? 증상이 제가 아는 거랑 비슷한데...”

“아, 맞아! 아델도 똑같은 소릴 하더라고. 그 뭐였지...? 테트... 테트라...?”

테트로도톡신.

지구의 언어와 이 세계의 언어가 달라서 외우는 데 조금 고생했지만, 과거에 내 머리를 본 모험가가 이 독으로 날 암살하고자 시도한 전적이 있기에 기억하고 있는 이름이다.

라디는 분명 한 노점에서 버리려던 걸 공짜로 얻어왔다고 했지.

“그렇다면 니아 님. 이 암시장에서 복어 요리를 취급하는 음식점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요? 아마 그 식당하고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농후...”

“아, 그것도 아델이 제일 첫 번째로 조사해 봤는데 아니래. 이 암시장에서 복어 요리를 파는 음식점은 딱 두 군데 있거든. 근데 피해자 중 아무도 그 식당에서 밥을 먹은 사람이 없다는 거야.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그래요? 그렇다면 그 가게에서 일하는 종업원이나 제삼자가 남는 복어를 빼돌려서... 제길.”

말을 하던 도중에야 깨달았다.

꼭 식당에서 밥을 먹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독에 중독될 수 있다. 누군가가 악의를 품고 복어의 내장을 빼돌려 타인에게 투여했다면.

살인에 사용된 독이 복어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명된 이상 붉은 매 길드는 해당 점포를 예의주시하고 있었을 테고­

‘라디는 그런 곳에서 복어 부산물을 받아왔단 말인가. 독을 추출해낼 기구까지 갖춰놓고...’

어쩌면 이미 용의선상에 올라 있을 수도 있다.

“이거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사달이 날지도 모르겠는데...”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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