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화 〉 여흥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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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여흥 #7
사건에 휘말릴 수도 있겠다는 걸 직감하고 곧바로 떠올린 생각.
‘이걸 말해야 하나...?’
슬그머니 옆을 쳐다보았다. 니아는 기다란 표범 꼬리를 좌우로 살랑거리며 야무지게 네 번째 접시를 비우고 있었다.
황금빛 눈동자와 마주치자 그녀가 천연덕스러운 눈웃음을 지으며 물어왔다.
“왜, 소년?”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그녀의 뺨에 붙은 밥풀을 떼어주고 고개를 돌렸다.
‘아직 이 화제를 꺼내는 건 시기상조야.’
당장 이 여자의 속내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이상 입을 무겁게 가져갈 필요가 없다. 게다가 알리바이도 전혀 없는 상황 아니던가. 섣불리 말을 꺼내봤자 해결되는 건 없을뿐더러,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럴 경우 라디와 상의를 나눈 뒤에 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델 씨라면 분명 도움을 줄 수 있을 터, 그때까지 최대한 단서를 모으고 나와 라디의 무고를 증명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앞으로 세 시간.. 그 안에 어떻게든... 니아 님, 이곳은 확인했으니 다른 곳으로... 니, 니아 님?”
재빨리 결론을 내리고 옆을 돌아봤으나 그곳엔 깔끔하게 비워진 접시만이 있을 뿐 표범 귀 소녀는 온데간데없었다.
가게 주인이 식기를 물수건으로 닦으며 태연하게 읊조렸다.
“니아 님은 방금 나갔어. 다른 노점을 둘러보러 간다던데?”
“뭣...! 대체 언제...?!”
그 잠깐 사이에?!
서둘러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뭐라 외치며 내 발길을 막는 남자를 뒤로하고 황급히 시장 거리를 질주했다. 이렇게 복잡한 인파 속에서 자칫 그녀를 놓치기라도 했다간 탐문은 고사하고 하루종일 찾아다니기만 해야 할지도 모른다.
“제기랄! 그래도 멀리 가지는 못... 어...?”
우뚝!
“꺄아아아아!! 니아 님! 어쩜 이렇게 귀여우셔!! 이쪽도 한 번 봐주세요!!”
“우왓!! 진짜 니아야!! 이 암시장에 들리길 잘했어! 정말로 붉은 매 길드의 하이랭커를 눈앞에서 구경할 수 있을 줄이야!”
“이야 근데 소문대로 얼굴 진짜 작다.. 이목구비도 진짜 또렷하고... 저런 사람이랑 하루만 데이트해 보면 어떤 기분일까?”
“꿈 깨 인마. 너 같은 놈은 고블린도 거를걸.”
“뭐라고? 너 지금 말 다 했냐?”
“....”
좀전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양손에 꼬치구이를 쥐고 행복하게 입가를 오물거리는 니아의 주변에는 북적북적한 인파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렇게 보니 비로소 그녀의 인기가 체감된다. 마냥 무해한 소동물처럼 보이는 외견과는 달리 능력에 재색은 물론이고 무력까지 겸비한 초인적인 인물이니.
나는 이제부터 저 군중 중심으로 걸어들어가야 하는 건가.
구경꾼들 사이에 섞여 발길을 망설이던 찰나, 니아가 동그란 귀를 쫑긋거리더니 날 발견하고 살갑게 손을 흔들어왔다.
“소년!! 어디 갔었어?! 빨리 와!!”
“....”
홍해처럼 갈라지는 인파에 파르르 떨리는 입꼬리를 억누르며 발을 내딛자 그녀가 손에 든 꼬치를 내밀어왔다.
“이거 엄청 맛있다?! 아~ 해봐 소년!”
“니아 님... 저... 마음은 고맙지만...”
“아 해봐!”
“니아 님... 주변 시선이 좀...”
“왜... 내가 주는 건 싫어...?”
“...아닙니다.”
호박색 눈동자에 닭똥 같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들었기에 하는 수 없이 허리를 굽혀 꼬치구이를 한 입 베어물었다.
니아는 그제서야 장마가 그친 뒤의 하늘처럼 해맑게 웃으며 까치발을 들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때! 맛있지?!”
“.....”
아뇨, 맛을 모르겠는데요.
뒤통수에 구멍을 뚫을 기세로 쏟아지는 시선 탓에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니아가 헤실헤실 미소지으며 들이미는 음식을 얌전히 받아먹자 사방에서 쑥덕거리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자, 잠깐...! 니아 님이 손수 음식을 먹여주다니... 저 새낀 누구야?”
“그냥 길드 단원 아냐?”
“그럴 리가... 로브 디자인도 다르고 휘장도 안 달려있잖아. 게다가 니아 님은 통제가 불가능해서 평소에는 아델 님이 데리고 다니는데... 아델 님이 아니라 남자가 옆에 있다는 건...”
“설마 애인?!”
“그 순수하기로 소문난 니아 님이 이성에 눈을...”
수근수근. 속닥속닥.
“.....”
위장이 뒤틀리는 기분이 이런 걸까?
새삼 실감했다. 지구로 따지면 나는 지금 유명 배우와 같이 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암시장에 머무르며 한창 가십거리에 굶주린 이들에게 별안간 들려온 열애 소식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으리라.
‘...아델 님도 이런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나한테 떠넘긴 건가?’
아니 근데 이러면 굳이 로브를 써서 변장한 이유가 없잖아.
“....니아 님. 이목이 몰렸으니 자리를 피하도록 하죠. 후드도 다시 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움...? 먹을 게 이렇게나 많은데 벌써 가?”
“어쩔 수 없습니다. 이대로라면 업무에 지장이 갈 겁니다.”
“으... 아쉬운데... 아직 다 못 먹었단 말야...”
니아가 물에 젖은 빨래처럼 귀와 꼬리를 축 늘어뜨렸다. 힐끔힐끔 노점에 진열된 꼬치구이를 바라보는 눈동자에선 미련이 흐르다 못해 뚝뚝 떨어질 기세다.
업무 도중 오는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푸는 걸까?
하긴... 한창 자랄 때니...
아니, 겉모습은 어려도 실제로는 나보다 훨씬 연상일 거다.
“....그럼 저희 같이 다른 거 먹으러 갈래요?”
“다른 거?”
“네, 니아 님이 한 번도 안 들려봤을 법한 가게가 있는데... 상당히 외진 데 있거든요.”
“뭔데?!”
*
암시장 중심 거리에서 벗어나 부지런히 걷자 한적한 공터에 다다랐다. 고소한 향기가 잔잔하게 배회하는 빈터에는 같은 상호를 내세운 점포와 냄새에 이끌려 온 행인이 드문드문 흩어져 있었다.
니아가 코를 씰룩거리더니 사냥감을 발견한 육식 동물처럼 눈을 반짝거리며 내 팔뚝을 잡아끌었다.
“우와! 소년!! 엄청나게 맛있는 냄새가 나!!”
“빵 반죽을 굽는 냄새일 겁니다. 그리고 팔 아파요.”
“빵?! 여기도 갓 구운 빵이 있어?! 아델이 던전에서는 못 먹을 거라 했는데...?!”
“아마 암시장 전체를 통틀어도 이곳에서만 팔고 있을 거예요.”
“어디어디?!”
부단하게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니아를 데리고 한 가게로 다가갔다.
노점 의자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던 꼬마는 인기척을 느끼고 우리 쪽을 올려다보다 화들짝 놀라며 점포 안쪽에서 낯익은 여인을 데리고 나타났다.
여인은 나와 니아를 번갈아 보더니 알송달송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머나... 이게 누군가 했더니... 귀한 손님이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이틀만... 인가요? 저번에 골라주신 과일은 덕분에 잘 먹었어요. 고맙습니다.”
“후후...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제가 더 감사하네요. 오늘도 연인분과 드실 과일을 사러 온 건가요?”
그녀가 나긋나긋하게 눈웃음을 지으며 내 옆의 니아를 눈짓하길래 재빨리 덧붙였다.
“이쪽은 제 애인이 아닙니다. 업무 때문에 잠깐 같이 있는 것뿐이에요.”
“그래요? 그런 것치곤 지나치게 사이가 좋은 것 같은데요? 니아 님에게 정인이 생기셨다는 소문이 저잣거리에 파다해요. 하물며 먹거리와 전투 외에는 일절 관심을 두지 않으셨던 분이니...”
아니...
아델 씨가 나한테 니아를 맡긴 진의가 더욱 궁금해졌다.
“...그런 거 아니에요. 그보다 암시장 거리에서 바로 이곳으로 왔는데 어떻게 소문이 벌써 퍼져 있는 거예요? 게다가 체형만 보고 바로 니아 님인지 눈치채고...”
“어떻게긴요.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고들 하잖아요. 안 그래도 가십거리를 좋아하는 상인들에게 이보다 더한 희소식이 있을까요. 게다가 니아 님이야 워낙 유명하니까요.”
“....”
하기야... 방금 그 인기를 몸으로 체험하고 오는 길이다.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힐끗 주위를 곁눈질했다. 도중에 이리저리 골목을 쏘다니며 따돌리긴 했지만 얄팍한 후드 하나로는 그녀의 매력을 감출 수는 없었는지, 어느새 기웃거리는 행인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라디가 오해하지 않도록 잘 설명해야 할 텐데.
아까처럼 소란이 벌어지기 전에 재빨리 이곳에 온 목적을 입에 담았다.
“그건 그렇고... 여기서 꿀빵이랑 쿠키를 좀 사 가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너무 늦게 온 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니아 님이 드실 거라면 없어도 만들어야죠. 다행히 마지막 가마가 돌아가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나 또 여쭤볼 게 있는데...”
“네, 뭐든지 말씀하세요. 혹시 자리를 옮길까요?”
“아뇨, 잠깐이면 됩니다. 다름이 아니라 최근 암시장이 흉흉하잖아요. 혹시 이쪽에서도 피해자가 나왔나요? 아니면 뭔가 짚이는 점이라던가...”
“음... 다행히도 저희 상단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은 없어요. 이 근방 점포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고요.”
“그것 참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아, 그런데...”
여인이 뺨을 짚으며 잠시 망설이더니 나직하게 읊조렸다.
“이곳은 아니지만... 암시장 동쪽에 거주하는 지인 중 한 명이 그저께인가 잠깐 몸이 안 좋았다고 했는데.. 이번 일과 관련이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몸이 안 좋았다고요? 혹시 어떤 증상이었는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음... 제가 듣기로는 뒷목이 좀 당기고 호흡이 불편했다고 그러더라고요. 하지만 하루 쉬고 나니 나았다고... 미안해요. 너무 두루뭉술했죠?”
“...혹시 그 사람 주소를 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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