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하렘 생존기-142화 (142/375)

〈 142화 〉 여흥 #10

* * *

[142] 여흥 #10

우리가 있는 관객 상단으로 한 사내가 다가왔다.

공연의 주연을 맡았던 남자는 뜨거운 무대의 조명 탓에 송골송골 배어나온 땀방울을 훔치며 정중하게 무릎을 굽혔다.

“안녕하십니까 니아 님, 모험가 님. 악셀브 유랑단 소속 배우 페클이라고 합니다. 붉은 매 길드의 귀인분께서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거 봐 내 말이 맞지?!! 주인공이 맞잖아!! 어때 소년!”

“아니... 이럴 수가...”

비록 내가 예상했던 고양이 귀 수인은 아닐지라도 저 많은 배우 중 하필이면 니아가 점찍었던 인물이라니.

그녀가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말했다.

“히히... 사실 공연 끝나고 배우들끼리 대화를 나눌 때 몰래 엿들었지롱~? 수인의 귀를 무시하지 말라구!”

“아니! 그럼 반칙이잖아요?!”

“에이~ 그런 말 없었잖아! 약속은 약속! 그럼 어떤 소원을 빌어볼까나~! 흥흥!”

“....”

보란 듯이 귀를 쫑긋쫑긋거리며 약을 올리는 니아를 보고 있자니 저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 일단 진정시킨 뒤에 입을 열었다.

“...그 얘기는 나중에 하고 지금은 업무에 집중하도록 해요. 충분히 쉬었잖아요. ...그럼 페클 씨, 잠깐 시간 괜찮을까요?”

“예,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다만 이곳은 대화를 나누기에 적절치 못하니 자리를 옮겨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그럼... 니아 님, 이동하도록 하죠.”

손을 뻗어 니아를 에스코트했다. 나와 그녀를 발견하고 한 번, 우리가 커플석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또 한 번 경악하는 관중들을 지나 무대 뒤쪽으로 접어들자 천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장치들이 눈에 들어왔다.

니아가 줄 달린 도르래를 가리키며 내 팔을 잡아당겼다.

“우와... 신기해! 저건 뭐야?!”

“음... 글쎄요? 아마 연극 기구 중 하나일걸요? 아야, 그리고 팔 좀 잡아당기지 마세요. 아파요.”

“저건 비행 연출에 쓰이는 도구입니다. 배우가 옷 안에 하네스를 입고 그에 밧줄을 연결하면, 무대 뒤에 있던 보조자가 이 레버를 돌려 배우를 공중으로 들어올리는 겁니다.”

“아하...”

베그디아란 신 역할을 맡은 배우가 무대 위쪽에서 등장했을 때 썼던 건가.

“그럼 저 성검은요? 막 빛이 나던데.”

“저건 도신 안쪽에 광속성 마석을 박아넣어 특수 제작한 모조 검입니다. 저희 유랑단의 소유물 중에서도 제일 값비싼 물품 중 하나입니다.”

“신기하네...”

그 외에도 화려한 장식이 가미된 장식용 갑주나 장정 세 명이 들어가서 움직이게 설계된 드래곤 인형탈 등 흥미로운 물품을 지나쳐 조금 더 걷자 천막 내부에서도 가림막으로 구분해둔 별개의 구역에 다다랐다.

페클이란 사내를 쫓아 천을 젖히고 들어가자 달금한 향기가 솔솔 풍겨왔다.

“우음... 맛있는 냄새가 나!”

“그러게요... 페클 씨, 이 공간은 뭐죠?”

“저희 유랑단에 귀한 손님이 오실 때를 대비해 마련한 응접실입니다. 두 분을 맞이하기엔 한없이 조촐하지만 부디 화를 거두어주셨으면 합니다.”

“조촐하긴요... 분에 넘치는 환대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실 간단한 내용만 묻고 떠나려고 했는데...”

이쯤 되면 살짝 미안할 정도다.

그가 건넨 홍차를 공손하게 받아들고는 다과가 든 접시를 니아 앞에 밀어주며 입을 열었다.

“우선... 정말 멋진 공연이었습니다 페클 씨. 제가 본 연극 중에 단연코 손에 꼽을 만한 연기였어요. 배우 간의 호흡도 정말 잘 맞아서 공연 내내 감탄했습니다.”

“분에 겨운 말씀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전부 훌륭한 연기자들이 함께 노력해서 일궈낸 결과입니다. 모두의 피나는 연습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겁니다.”

“...겸손하시네요.”

입가에 어렴풋한 미소가 감돌았다.

그의 말끝에서는 숨길 수 없는 진심이 우러나왔다. 과연 외모만 수려한 것이 아니라 성품 또한 대형 연극의 주연을 맡을 만한 남자다. 광대가 극구 부인하며 범죄를 저지를 사람이 아니라고 했던 게 곧바로 이해가 갈 정도.

더 붙잡고 있어도 미안하니 서둘러 본론으로 들어갔다.

“공연을 마친 뒤라 피곤할 텐데 시간을 뺏어서 죄송합니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죠. 우리가 오늘 이곳에 방문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최근 암시장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서입니다. 페클 씨도 소문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이곳에서 원인불명의 변사체가 발견되고 있다는 풍문 말입니까?”

“...맞습니다. 알고 계시다니 얘기가 빠르겠군요. 저희는 사망 원인을 독살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또한 며칠 전 페클 씨가 이 범행의 표적으로 지목됐을 거란 것도 말이죠. 정확히 지금으로부터 이틀 전 말입니다. 혹시 짚이는 구석이 없으십니까.”

“그건...”

페클이 뜸을 들이며 시선을 피했다. 명백히 숨기는 게 있는 표정. 혹시 범인이 누구인지 아는 걸까.

“선뜻 대답해주시기가 힘든 건 압니다. 하지만 저희한테 협조해 주셔야 무고한 피해자가 추가로 속출하는 일을 면할 수 있습니다. 이 암시장에는 상인 견습으로 온 어린아이 또한 존재한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윽...”

과연 방금 발언이 그의 양심을 자극했는지, 페클이 고개를 푹 내리깔고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다.

“....그 말이 맞습니다.”

“그렇다면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꼭 좀 부탁드립니다.”

“.....”

그가 씁쓸하게 차를 머금은 뒤 입을 열었다.

“...이틀 전은 공연이 없던 날이었습니다. 전날 밤늦게까지 연극을 하고 잠든 탓에 정오가 다 된 시간이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기상한 뒤로는 유랑단 단원들과 함께 무대를 정비했고, 그 뒤로는 홀로 암시장에 나가 공연에 필요한 소모품을 구매했습니다.”

“...계속하시죠.”

“네... 그렇게 물품 구매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가 오후 3시 무렵이었을 겁니다. 숙소에 들어와서는 줄곧 혼자서 대본 연습을 했고, 무대 장치 점검까지 마친 뒤에는 단원들과 모두 모여 다 같이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직후에 으슬으슬 몸이 떨려와 진통제와 수면제를 먹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증상은.. 뒷목이 당기고 호흡이 불편했다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예... 그 말 대로입니다.”

“으음...”

잠시 테이블 위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와 페클 모두 섣불리 말을 꺼내려 들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직후부터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 문장이 시사하는 가능성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

먼발치에서 들려오는 암시장의 소음만이 유일하게 응접실을 메운 가운데, 니아가 정적을 깼다.

“움... 그럼 이 연극 단원 중 한 명이 범인이라는 거네?”

“그럴 리가 없습니다!!”

페클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쳤다.

“저희 악셀브 유랑단은 전부 고아 출신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서로를 의지하며 한솥밥을 먹고 자라온 가족이자 둘도 없는 친구입니다!! 제 식구 중에 악의를 품고 남을 헤칠 사람이 없다는 건 제가 제일 잘 압니다!! 게다가 정말로 저희 유랑단 중 한 명이 범인이라면 제가 피해를 입은 걸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페클 씨... 일단 흥분을 가라앉히시고...”

“안 됩니다!! 아무리 붉은 매 길드라고는 해도 제 가족을 살인범으로 몰아가다니요!! 설령 제가 대신 잡혀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만큼은 안 됩니다!!!”

“...페클 씨. 일단 진정...”

“제기랄!! 아무리 하이랭커라 해도 이런 행패는!!!”

그가 내 멱살을 움켜쥐고자 팔을 뻗은 순간─

“인간─.”

­콰과아아아아아앙!!!!!!!!!!!!!!!

테이블이 산산조각나며 굉음이 터져나왔다.

비산하는 나무토막과 깨져버린 찻잔, 갈가리 찢겨나간 가림막, 그리고 그 중심에 선 여인.

찬란한 황금빛 마력광을 전신에 두른 니아의 눈동자에는 그 어떤 극지방의 빙설 폭풍보다도 오싹하고 싸늘한 빛무리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인족 꼬마. 네게 묻지. 넌 언제부터 이 몸 앞에서 무례를 범할 수 있는 입장이었나.”

그녀가 한 보 내딛자 공기에 중압이 실렸다.

“대답해라 인간.”

“허으윽...”

땅에 엎어진 페클이 제 목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했다.

니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에게 다가가 흉흉한 기운이 맴도는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너는 끝까지 본좌를 우롱할 셈이냐. 나의 소중한 사람... 이 될 수도 있는 이를 헤치려 들다니. 죄 많은 자여. 네가 저지른 실수를 실감하겠느냐.”

“니아 님!! 잠시만...!”

“말리지 말거라. 그대를 해하려 든 죄. 내 필히 이 손에 피...냐아아앗?!!”

니아가 말을 잇지 못하고 돌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녀가 잔뜩 울상이 된 채 머리를 매만지며 날 노려보았다.

“왜, 왜 방해하는 것이냐?!! 내 방금 멋진 대사를...! 게, 게다가 방금 본좌의 귀를 떡 주무르듯 만졌겠다...! 수인한테 귀가 얼마나 중요한 건지 모르는 것이더냣!!”

“아니, 말로 안 들어먹으니까 그렇죠. 그리고 그렇게 험한 말 함부로 내뱉는 거 아니에요. 게다가 말투 바뀌었어요.”

“으, 윽...?! 니, 니아는 아무것도 모르는 일이니라.. 니... 모, 몰라!”

“....”

과연... 꼬리까진 아니어도 귀 역시 민감한 부위인 건 수인 공통인가 보다. 그리고 방금 말투만 바뀐 게 아니라 어휘도 상당히 유창해졌는데...

나중에 아델 님한테 물어봐야지.

“왜, 왜 갑자기 막은 거야?! 저 사람이 방금 소년을 때리려 했다고!!”

“저 혼자서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어요. 진짜 위해를 끼치려는 의도도 아니었고요. 그리고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일반 시민을 해하려 들면 어떡해요. 방금 반쯤 진심이었죠?”

“으으...”

“잠깐 자숙하고 계세요.”

터벅터벅 힘없이 구석으로 가 시무룩하게 늘어진 니아를 잠시 무시하고 바닥에 쓰러진 페클을 일으켜주었다.

“...괜찮아요? 어디 다친 덴 없죠?”

“네... 으윽... 마력 때문에.. 순간적으로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죄송해요. 제 상사...가 피해를 끼쳐버렸네요. 깨진 도자기와 탁자는 제가... 붉은 매 길드에서 변상해줄 거예요. 잠시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하, 하지만 정말로 저희 단원 중에는 범인이...”

“알겠습니다.”

“네...?”

“생각을 정리하느라 대답이 늦어졌지만, 아마 이 악셀브 유랑단의 일원 중에는 범인이 없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에 관해서도 대화를 좀 나누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페클 씨?”

“.....”

그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

해가 지기 시작한 거리를 거닐었다.

땅거미가 드리우자 암시장은 제각기 방풍 랜턴을 내걸고 끝물 장사를 준비하는 상인들로 분주했다. 빨랫줄에서 삐걱삐걱 흔들리며 환한 불빛을 자아내는 등불은 오징어잡이배의 집어등과 닮았고, 부드럽게 바람에 남실거리는 칠흑색 차양막이 밤바다의 물살을 연상시켰다.

그래, 마치 어스륵한 바다 위를 걷는 듯 몽환적인 거리였다.

조명이 기운 하얀 얼굴들 중에서도 유달리 빛나는 금발 소녀가 투레질하며 읊조렸다.

“우음... 벌써 약속했던 시간과 가까워졌네... 아쉽다..”

니아가 힐끔 날 올려다보더니 살갑게 팔뚝을 끌어안으며 물었다.

“그런데... 소년은 어떻게 연극단 사람 중에 범인이 없다고 확신한 거야? 말만 들어보면 분명히 그 안에 있을 것 같은데..”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지만 복어 독은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보통 세 시간이 넘게 걸리거든요. 숙소로 돌아오고 저녁 식사 직후에 호흡 곤란 증세가 왔으면 적어도 유랑단 내부 사람은 아니라는 거죠. ...치사율은 절반 정도인데 운이 좋았네요.”

‘그, 그걸 어떻게...?! 마, 맞아! 그러고 보니 시장에서 물품 구매를 마치고 돌아오기 전에 노점에서 군것질거리를 사 먹었어요! 그러니까 분명... 민물 생선 소금구이였을 텐데...’

페클이 얼굴을 창백하게 물들이며 허둥대던 광경을 떠올리고 있자니 문뜩 의문이 들었다.

“...니아 님.”

“움? 왜 소년?”

“만약... 만약에 그 남자가 절 진짜로 때렸으면 어떻게 하실 거였어요?”

“죽여야지.”

“.....”

“....하지만 그러면 아델이랑 아실리한테 엄청 꾸지람 들을 테니까 따끔하게 혼쭐내는 선에서 그치지 않았을까? 그 나쁜 새끼는 그래도 싸!”

니아는 아직도 분한 듯 미간을 찡그리고 씩씩거렸다. 그렇게나 내가 다치는 게 마음에 안 들었던 걸까.

나는 그녀의 볼을 쿡 찌르며 짐짓 점잖은 척 읊조렸다.

“니아 님 고운 말. 어린 애는 나쁜 말 쓰는 거 아니에요.”

“내, 내가 너보다 연상이거든?!”

“하는 짓 보면 완전히 앤데요 뭐. ....근데 왜 그렇게까지 화내신 거예요? 그래봤자 전 만난 지도 얼마 안 된 사이잖아요.”

“몰라! 그냥 널 헤치려 하니까 굉장히 화가 났어!”

“.....”

잠시 대화가 끊겼다. 눈이 부시도록 순수한 이 소녀의 호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밤의 아름다움이 드리운 거리를 묵묵히 걷던 중, 나지막히 입술을 뗐다.

“...그래도 꽤 낭만 있네요. 유랑단이라는 거. 한마음인 동료들과 함께 전국 곳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닌다는 거잖아요. 저는 머리색이 이래서 늘 혼자였거든요. 물론 지금은 둘도 없는 친구와 사랑하는 연인이 있지만요.”

“그래? 그러면 너 진짜 진짜 우리 길드에 들어오면 안 돼? 우리라면 얼마든지 널 받아줄 수 있어. 붉은 매 길드에 입단하면 방금 네가 말한 것처럼 믿음직한 동료들과 함께 전국 이곳저곳을 누빌 수 있고... 소년은 싫어?”

“....그건 아까 말했던 소원이에요?”

“아니, 나는 소년의 마음을 묻고 있는 거야. 소년이 원하지 않은 선택으로 괴로워하는 건 바라지 않으니까.”

“.....”

나는 굳게 입술을 다물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행인의 목소리가 땅 아래로 저물고, 사라졌다. 왁자한 모험가의 웃음, 짤랑거리는 장신구, 매대의 진열품을 비추던 불꽃은 흑백으로 변모하고 서서히 온기를 잃었다.

침묵하여 단절된 세상 속에선 나와 그녀만의 숨소리가 선연했고, 시간이 흘러 다시금 우리를 아름다운 색채로 물들여가기 시작했을 때­

나는 다시금 고개를 내려 니아를 마주보고는 복사꽃처럼 투명한 웃음을 자아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사양할게요. 아직 더 해보고 싶은 게 세상에 많이 있거든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이런저런 곳도 여행해 보고 싶고, 제 스스로의 힘도 증명해보고 싶어요. 무엇보다 제겐 아직 풀어야 할 숙원이 있거든요. ...그러니 니아 님의 제안은 마음에만 담아두도록 할게요. 하지만...”

훗날 도무지 제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닥친다면, 그때는 잠시 기대어도 괜찮을까요?

“.....”

내 물음을 들은 니아는 조용히 밤하늘을 올려다보더니­

­끄덕.

찰나에 사라지고 마는 첫눈처럼 덧없는 미소를 지어보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리고는 내 팔을 세차게 끌어안으며 넉살을 떨었다.

“흠흠... 그럼 우리 후배님의 앞날을 위해 투자 좀 해볼까? 혹시 소년은 뭐 가지고 싶은 거 없어? 무기라던가 옷이라던가... 7계층에서 죽다 살아난 지 얼마 안 됐으니 필요한 게 많을 거 아냐? 듣자하니 장비도 모두 망가졌다면서.”

“네? 아니... 괜찮아요. 이미 비아투스 님에게 많이 받았거든요. 게다가 니아 님께 선물을 받는다니 너무 황송해서...”

“에이~ 그러지 말고! 정말로 없어? 그러면 내가 임의로 고른다?!”

“....그랬다간 혹시 먹을 거만 잔뜩 주시는 거 아니에요?”

“우음...? 아마도? 나는 다른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니까...”

“....아, 그러면 혹시 암시장에서 가죽을 고르고 있었는데 조언 좀 해주실 수 있으세요?”

“가죽?”

“네, 니아 님 말마따나 장비가 모조리 망가져서 레더아머를 새로 맞춰야 하거든요. 이곳에서 소재를 구해다가 주문 제작을 맡기려고 하는데... 싸고 가성비 좋은 가죽 좀 추천해주세요.”

“음... 그래? 그렇단 말이지?”

“...니아 님?”

“응! 알았어!! 나중에 알려줄게!!”

니아는 뺨을 짚으며 잠시 고민하더니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그 어떤 조명보다도 밝은 웃음을 어여쁜 입가에 머금었다.

그 미소에 시간의 흐름이 무색해지는 걸 느끼며 재빨리 말을 돌리려던 찰나, 문뜩 주변을 둘러보니 페클이 말했던 장소에 근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니아 님, 이제 다시 집중하도록 하죠. 이 모퉁이만 돌면 그 점포가 나와요. 혹시라도 가게 주인이 도망치려고 하면 곧바로 구속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그래, 알았어. 나만 믿어!”

“네, 그럼 동시에 튀어나갈 테니까 혹시라도 낌새가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붙잡아 주셔야 해요? 그럼...!”

­파바박!!

노점이 빼곡하게 들이찬 골목을 질주했다. 복잡한 인파 사이를 단걸음에 주파해 페클이 이상 증세를 겪었다던 노점에 도착한 순간, 그곳에 있던 건ㅡ

“...왔냐.”

“트, 트라함...?! 네가 왜 이곳에...”

“...아델 님이 너 좀 보자더라.”

“자, 잠깐 일단 설명 좀...”

“라디 씨도 같이 있어. 지금 당장 붉은 매 길드 막사로 뛰어오래.”

“.....”

나는 뭔가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