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화 〉 베라스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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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베라스틴 #1
“이, 이게 무슨...”
“...이럴 수도 있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요...”
처음 변화를 짐작했던 건 던전을 지나던 도중이었다.
도적 떼와 잔혹한 혈투를 벌였던 벼랑 위에는 튼튼한 다리가 지어져 있었고, 악어가 득시글했던 습지는 개간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었다.
던전 내부까지 들어와 활개를 치기 시작한 상인 무리를 지나쳐 마차가 왕복할 수 있을 정도로 확장된 종유석 동굴을 거스르자 드디어 출구에 도달했다.
그렇게 막 던전을 벗어났을 때 마주한 광경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하... 말이 안 나오네...”
즐비한 건물.
기억 속의 낙후된 풍경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분명히 내 머릿속의 던전 입구는 협소한 바위 틈새의 샛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등 뒤를 돌아보니 신전을 연상케 하는 석조 구조물과 각종 모험가 편의 시설이 눈에 들어왔다.
끝없는 행렬과 매표소가 자리했던 공간에는 매끈한 대로와 대리석 빌딩이 들이찼다.
마치 베라스틴의 번화가 한가운데에 와 있는 듯한 풍경.
던전에서 체류한 지 두 달이 넘은 만큼 소정의 발전은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이렇게나 많은 변화가 일어났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아무리 사람이 사람을 불러모으는 법이라지만...’
공항 입국장을 연상시키는 나무 칸막이를 헤치고 나오자 보급 소대를 이끌던 사내가 호쾌하게 소리쳤다.
“자, 자 아직 안 끝났어! 다들 신속히 움직이자고! 1분대는 어디 보자... 반센 상단이랑 계약하기로 되어있었지? 대로변을 따라서 가다가 광장에서 우측으로 꺾어! 2분대하고 3분대는... 쭉 직진하면 아펜니노 상단 건물이 있을 거야!! 4분대는 나랑 같이 간다! 자, 어서 해치우고 주점에서 모이자고! 다들 해산!!!”
““알겠습니다!!!””
“빨리 마무리하고 쉬자!! 벌꿀 미르 주점 선착순 다섯 명까지 내가 쏜다!!!”
“가자 가자!!!”
“도란!! 우린 이만 가볼게! 다음번에 또 보자!!”
“도란, 라디! 고마웠어. 잘 살아남아야 해?”
붉은 매 길드 단원들은 던전을 빠져나오자마자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그들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일 터, 수많은 모험가와 경쟁하며 상인과의 치열한 입찰 전쟁을 벌여야 할 테니.
보급 부대를 총괄하던 책임자가 나와 라디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둘 다 고생했어. 아니스 님이 너희를 부탁할 땐 무슨 연유인가 싶었는데... 라디, 네가 미리 마물의 접근을 감지해준 덕에 수월하게 헤쳐나올 수 있었어. 도란 네가 지난밤 해주었던 멧돼지 통구이는 진짜 꿈에 나올 정도로 환상적이었고. 단원 사기 유지에 엄청 큰 도움이 됐어. 고마워.”
“천만에요. 저희야말로 함께해서 영광이었습니다.”
“덕분에 저희도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개 숙여 인사하자 눈앞의 남성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우리에게 많은 편의를 베풀어준 덕에 편안하게 던전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단원들이 마치 제 길드원인 것마냥 우리를 살갑게 대해준 까닭도 있고.
그가 옐로우 리자드가 이끄는 짐마차를 눈짓하며 씁쓸하게 읊조렸다.
“그래, 마음만 같아서는 같이 느긋하게 주점에서 회포라도 풀고 싶지만... 보다시피 우리 보급 소대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서 말야. 앞으로 사흘 정도는 족히 바쁠 거야. 너희는 곧장 이곳을 떠나야 한다고 했었지?”
“네... 만약 다음번에 기회가 되면 꼭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그래... 다음번에는 너희를 붉은 매 길드에서 다시 봤으면 좋겠네. 우리 보급 계원들은 전부 두 발 벗고 나서서 환영할 거야. 그럼 이만... 그대의 앞길에 베그디아 님의 가호가 함께하길.”
그가 우리에게 성호를 그려 작별한 뒤 부대원을 이끌고 떠나가자 나와 라디는 석제 대로에 홀로 남겨졌다.
시끌벅적하던 동행과 헤어져 살짝 적적한 기분으로 무수한 행인의 중심에 횅댕그렁히 서 있자니 산더미만 한 짐이 어깨를 짓눌러왔다.
라디가 불안하게 떨리는 시선으로 올려다보며 물었다.
“음... 저흰 이제 어쩌죠...?”
“글쎄다...”
일단 밥이라도 먹을까.
*
막 던전을 빠져나온 우리가 뭘 알 턱이 없다.
한가한 발걸음으로 포장도로를 거닐다 보니 광장 구석에서 봇짐에 두루마리를 잔뜩 싣고 행인을 붙잡는 꼬마를 발견했다.
나와 라디는 잠시 시선을 마주한 뒤 꼬마에게 다가갔다.
“던전 지도 팝니다!! 길드에서 파는 싸구려가 아니에요! 무려 저명한 A급 모험가 크론슨이 직접 매핑한 지도!! 한 계층당 단돈 30페니에 모십니다!!”
“꼬마야.”
“지금 지도를 사시는 분들껜 코코 열매를 덤으로... 앗 까, 깜짝이야..! 마, 마법사이신가요...?”
꼬마는 후드를 푹 눌러쓴 나와 라디의 행색을 보고 화들짝 놀라더니 꿀꺽 목을 다시며 긴장한 어조로 물었다.
라디가 쪼그리고 앉아 꼬마와 시선을 맞추며 상냥하게 읊조렸다.
“그냥 지나가던 모험가야. 막 던전에서 빠져나온 참이라 배가 많이 고픈데... 혹시 적당한 식당을 알고 있으면 가르쳐 줄 수 있을까?”
“어.. 아... 네, 넷! 엄청 예쁜 누나!! 저기 저 도로를 쭉 따라가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분수가 있는 광장이 나와요! 거기 주변이 전부 고급 레스토랑이니까 거기로 가면 돼요!!”
“그래? 고마워. 이건 보답이야.”
라디가 손 위에 쩔그럭거리는 구리 동전을 두 개 올려주자 꼬마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 정도만 해도 녀석한텐 제법 쏠쏠한 액수일 터. 수익을 올리더라도 대부분은 고용주가 챙겨갈 테니까.
소년이 동전과 라디를 번갈아 쳐다보고 내 눈치를 살피더니, 다시금 라디를 올려다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저... 혹시 옆의 분은 남자친구신가요? 만약 아니라면... 이따가 저랑 차라도 한잔 어떠신지...”
“뭐...?”
당돌한 꼬마의 발언에 이번에는 라디가 당황했다. 갑자기 작업을 걸어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후드 아래로 귀가 바짝 섰다.
나는 딱딱하게 굳은 녀석의 허리를 노골적으로 휘어감으며 대신 대답했다.
“남자친구 맞는데. 문제 있어?”
“...쳇!”
꼬마는 그런 날 째려보며 혀를 차고는 재빨리 대로 너머로 사라졌다.
나는 멀어져가는 꼬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여전히 얼타고 있는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뭘 그렇게 당황해. 고작 꼬마인데.”
“아니 그게...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일면식도 없는 사람한테 그런 소리를 들게 될 줄은 몰라서...”
“그래? 잠깐 딴생각을 품었던 건 아니고?”
“그, 그럴 리가 없잖.... 꺄흐읏..!”
로브 너머로 꼬리를 움켜쥐자 라디가 새된 비명을 내지르며 주저앉았다. 녀석은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며 목격자가 없는 걸 확인하고는 목청을 낮추며 내 앞섶을 움켜쥐었다.
“무, 무슨 짓이에요 도란님...! 읏... 이런 대로 한복판에서...!!”
“그런 녀석이 그때 호숫가에선 잘도 먼저 유혹...”
“그, 그건 상황이 다르죠!!!”
라디가 재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배낭을 도로 짊어졌지만, 내가 꼬리를 놓아주지 않자 허벅지를 오므리고 꼼지락거렸다. 다급하게 로브를 잡아당겨 주름을 펴봐도 마찬가지. 이제는 옷 위로도 꼬리 위치를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거든.
“읏.. 저기 도란님... 놔 주시면... 안 될까요...? 사람이.. 너무 많은데...”
“벌이야. 식당에 도착할 때까지는 이러고 걸어.”
“그, 그건 또 무슨...! 우읏... 아, 알겠으니 조금만 살살...!”
“.....”
역시 라디는 괴롭혀야 제맛이다.
라디는 허리를 꼬며 비척거리면서도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가장하며 착실히 나아갔다.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기도 하고, 다들 제 갈 길이 바쁘다 보니 아무도 모를 거다.
그렇게 남들에게 밝히기에는 다소 부끄러운 행위를 지속하며 꼬마가 일러준 광장에 도착하자 수많은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던전의 암시장에서 보았던 간이 노점 따위가 아니라 진짜 음식점.
우리는 그중 고기 요리 전문점이라고 쓰인 레스토랑으로 발길을 돌렸다.
“어서 오십쇼 모험가님! 일행은 두 분이신가요?”
“네.”
“이쪽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들어오시죠!!”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정장을 입은 점원이 쾌활한 얼굴로 맞이해왔다. 분명 예전에는 내가 음식점에 입장하면 똥 씹은 표정으로 응대받는 경우가 다반사였는데...
역시 옷이 날개라더니 복장이 달라지니 대우부터가 달라진 기분이다.
식탁 옆에 구비된 무기 거치대에 바스타드 소드를 세워두고 앉자, 점원이 메뉴판을 놓고 물러났다.
“음... 칠리 꿩 콘소메.. 타룬 비프 스튜.. 안티 카우 찜? 하나같이 생소한 음식들이네... 라디 넌 어떤 게... 혹시 삐졌어?”
“....”
정면에 앉은 라디를 쳐다보자 와인색 후드 아래 치켜뜬 눈동자와 마주쳤다.
녀석이 흥 고개를 돌리더니 책망하는 듯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꼬리는 민감하다는 거 알고 계셨으면서.”
“미안, 미안... 귀여워서 그랬지. 맛있는 거 먹고 화 풀어.”
“...다음부터 밖에서 만질 거면 미리 말하고 만져주세요.”
안 될 건 없다는 건가...
“...알았어. 그나저나 우리 뭘 주문해야 할까? 솔직히 이렇게 번듯한 식당에 들어와 보는 건 처음이라...”
그간 가난에 찌든 나머지 주점에서 파는 안주나 밍밍한 스튜로 끼니를 때운 적은 있어도 이런 전문점에서 식사하는 건 처음이다.
하지만 그건 라디도 마찬가지인지 녀석이 목덜미를 매만지며 난처하게 읊조렸다.
“그러게요... 저도 거의 처음이라...”
“...그래? 그간 저축한 금액도 꽤 된다며.”
“그건 그렇지만... 식비는 최대한 아꼈으니까요.”
“그러니까 그렇게 말랐지... 너는 조금 더 먹어도 돼. 오늘은 내가 살 테니까 마음껏 먹어.”
“말씀만이라도 감사해요. 그럼 어디 맛있어 보이는 게...”
라디가 어렴풋하게 미소짓더니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즐거운 듯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이러한 고급 음식점에 방문한 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한 우리로서는 쉬이 메뉴를 결정할 수 없었고, 결국 점원에게 추천 요리를 골라 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예상치 못한 지출이지만 원래 던전에서 돌아온 직후에는 조금 사치를 부리는 게 정석이니.
최고급 송아지를 베이스로 한 비프스튜와 촉촉한 꿩 구이로 한껏 배를 채우고 가게를 나서자 포만감에 몸이 나른해졌다.
“그럼... 이제 맡겨둔 짐을 찾으러 가볼까? 마차편도 미리 예약해두고. 네가 살던 곳이 분명 빌헴 마을이라고 했었지?”
“네, 이렇게나 발달했으면 마을간 정기편도 활성화되어있을 테니까요. 그나저나 물품보관소가 어디 있으려나... 없어지지 말았어야 할 텐데.”
“그러게...”
다행히 사람들에게 알음알음 길을 물어 라디의 짐을 맡겼던 물품보관소를 찾을 수 있었다. 두 달 반이라는 기간 동안 자리를 비운 탓에 보관료가 꽤 나왔지만 이제 이 정도는 웃으며 지불할 수 있다.
라디의 짐을 되찾은 뒤에는 근처 역참에서 역마차를 알아보았다. 일반 서민은 도보로 마을을 왕복하거나 달구지를 이용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다행히 짐마차를 개조한 정기편 말석에 자리를 예약할 수 있었다.
“자, 그럼 이제 여관을 알아보러 가자. 내일 새벽 출발이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까.”
“네, 그러네요... 두 달 전만 해도 이 근처엔 여관은 고사하고 천막밖에 없었는데... 저희도 공터에 텐트를 치고 잤었잖아요.”
“하긴... 여기가 이렇게 단시간에 개발이 될 줄 누가 알았겠어... 여기 영주는 지금쯤 기뻐서 기절했겠지?”
고개를 들자 드높은 건물이 시야를 한가득 메웠다. 활기 넘치는 행인과 회반죽 기둥을 타고 뿜어져나오는 검은 연기는 막 개발된 탄광촌을 떠올리게 만든다. 던전이 가져다주는 부수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다름없는 바, 앞으로 이 지역엔 거대한 도시가 지어지겠지.
복잡한 구조물이 자아내는 회색 음영 너머, 한창 새로 건설 중인 성벽을 응시하며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여관 거리가 나왔다. 대로를 따라 늘어선 숙박업소 부지에는 홍보 문구가 적힌 팻말이 그득했고, 떼를 이루어 몰려다니는 모험가와 취기 맴도는 흥얼거림이 오갔다.
모두 지나쳐 조금 더 걷자 다소 한적한 거리가 나왔다.
“좀 뭐랄까... 다들 한가락 하는 사람들 같아요.”
“...하이랭커에 귀족, 대상인들인가..”
이국적인 가로수로 장식된 가도 주변에는 전신을 푸른 갑옷으로 치장한 전사와 상질의 튜닉을 걸친 상인 등 얼굴에 여유가 가득한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여기부터는 고급 여관이 들어선 거리인 모양이지.
발길을 망설이는 라디를 이끌고 그중 한 건물을 골라 들어가자 데스크에 서 있던 종업원이 밝은 미소로 맞이해왔다.
“어서 오세요! 루구두눔 여관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일행은 두 분이신가요?”
“네, 같이 묵을 방을 구하고 있어요.”
“네, 잘 찾아오셨습니다! 저희 여관에서는 다른 숙박업소에서 누릴 수 없는 최상급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모든 고객에게 조식이 기본으로 제공되며, 약간의 추가 금액을 지불하시면 따끈한 온욕과 스파 또한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숙박 비용은 이쪽의 표를 참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 잠깐... 하루 숙박에 20실링...?! 도란님... 다른 델 찾아보는 게...”
“....”
라디가 가격표를 보고 아연실색하며 내 소매를 잡아끌었다. 20실링이면 상당한 거액, 적당히 쓸 장비를 마련하고도 남을 돈이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갑에서 금화를 꺼내들었다.
“네, 내일 아침까지 묵을 거예요. 온욕이라고 하셨죠? 여기서도 목욕을 할 수 있나요?”
“네, 물론입니다 모험가님! 저명한 연금술사이신 라프노 님이 개발한 배수 시설 덕분에 귀족들의 전유물인 목욕을 저렴한 가격에 경험해보실 수 있습니다! 저희 여관의 자랑과도 같은 설비이니 두 분이 꼭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네, 그럼 부탁할게요.”
“감사합니다 모험가님. 언제든지 필요하실 때 말씀해주시면 시종을 통해 객실에 마련된 욕탕으로 온수를 운반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외에도 다른 서비스를 원하신다면 객실에 구비된 책자를 참고해주시면 됩니다. 혹시 더 궁금하신 내용이나 문의하실 점이 있으신가요?”
“아니요.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신원 증명을 위해 모험가 패를 보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모험가 패? 아, 젠장... 라디야, 너 가지고 있어?”
“.....”
라디가 말없이 품에서 크누트 은 플레이트를 꺼내 건넸다.
이어서 자잘한 수속을 마치고 붉은 융단이 깔린 복도를 지나 객실에 들어가자마자 녀석이 문을 닫으며 따져왔다.
“도란님!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곳에 체크인한 거예요?! 20실링이면 얼마나 큰 돈인지 잘 아시면서...!”
“....”
나는 웃으며 잿빛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우리가 가진 소재들이 어디 어지간하냐. 혹시 모르니까 그렇지.”
그 말대로, 나와 라디의 배낭에는 스노우 타이거 모피를 비롯해 각종 희귀 소재가 가득하다. 방범 대책이 잘 되어있지 않은 숙박업소에서 잤다간 강도의 표적이 될 수도 있을 터, 아무런 생각 없이 무턱대고 비싼 여관에 발을 들인 건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 사흘간 둘이서만 있을 시간이 모자랐잖아? 앞으로 한 달 정도는 못 볼 테고. 그 전에 최대한 기억해놔야 하지 않겠어?”
“....변태.”
라디가 거칠게 배낭을 내던지며 키스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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