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하렘 생존기-171화 (171/375)

〈 171화 〉 지하 납골당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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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지하 납골당 #3

문 너머로 언데드가 없는지 살핀 뒤 배낭을 욱여넣었다.

개구멍을 비집어 본격적으로 카타콤 내부에 접어들자 자잘한 돌 부스러기에 더불어 새것처럼 반짝거리는 끌과 망치가 보였다.

“...이걸로 구멍을 뚫은 모양이네. 심지어 사용한 지 얼마 안 됐어. ...자, 여기 손.”

“아, 고마워요.”

통로를 비집고 나오는 두 녀석을 부축해 일으켜주었다. 이후 라디의 로브에 묻은 돌가루를 부드럽게 털어주고 가방을 메어주자 아리엘이 묘한 눈빛으로 쳐다봐왔다.

“왜.”

“...아무것도 아냐. 그건 그렇고.. 여기가 바로 그 유골 안치소구나... 솔직히 좀 섬뜩해.”

“꼭 석빙고에 들어온 것만 같아요. 오래 있어서 좋을 곳은 아니네요... 그런데 왜 문을 이런 식으로 만들었을까요? 아니 애초에 이걸 문이라고 부를 수 있으려나...”

라디가 탁한 공기에 기침하며 방금 지나온 석벽을 매만졌다. 녀석의 말대로 굳건하게 자리를 지킨 그 자태에선 머리카락 한 올 통과할 이음매도 찾아볼 수 없었다. 문이라기보단 오히려 격벽이란 단어가 어울리지.

마치 이 안에 있을 무언가를 세상으로부터 격리라도 한 것처럼.

“뭐...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수용하는 데 한계가 와서 그랬을 수도 있고.”

“그럴까요...”

짧은 정비를 마치고 다시 부지런히 앞길을 나아갔다. 식료품을 넉넉하게 챙겨오긴 했지만, 이곳에 얼마나 체류할지 모르는 이상 아무리 서둘러도 늦지 않다.

하지만 절로 몸이 떨릴 정도의 추위를 헤치며 전진하기란 쉽지 않았다.

‘꼭 스스로 냉동창고에 뛰어드는 참치가 된 것 같네.’

어두컴컴하고 습한 카타콤 내부엔 입김조차 얼려버릴 것처럼 오싹한 한기가 흘렀다.

불쾌한 기운이 스멀스멀 정신을 좀먹어 오는 걸 자각하며 냉랭한 마석등 불빛에 의존해 걷고 있자니 통로 한켠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인골 무더기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거 갑자기 움직이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글쎄요... 갑자기 느닷없이 되살아나지는 않을 것 같지만... 장담은 못 하겠네요. 이미 전에 그런 경우를 겪어봤으니...”

“일일이 다 깨부술 수도 없고... 아리엘, 좋은 수가 없을까?”

“음... 정화 마법을 사용하면 언데드로 변하는 걸 방지할 수 있지만... 마나가 너무 들어. 그래도 쓰는 게 좋을까...?”

“그래? 그럼 됐어. 대충 보이는 것만이라도 부숴놓지 뭐.”

부츠 끝자락에 달린 강철로 두개골을 분쇄하며 회랑을 거닐었다. 열악한 환경에 오랫동안 방치되어서 그런지 건드리는 족족 부서지는 해골 덩어리. 시간을 조금 잡아먹겠지만 뒤탈을 남기는 것보단 낫다.

실제로 유적에서 미라가 되살아나는 걸 목격한 전적도 있으니.

그렇게 음산한 추위와 인골이 산재한 공간을 알음알음 헤집어 가던 도중...

“다들 멈춰!!”

“도란님...?”

“쉿...!”

공허한 적막, 일정하게 울려 퍼지던 두개골의 파쇄음 사이로 이질적인 소음이 들려왔다. 철과 철이 맞부딪히는 금속음. 병장기 특유의 쇳소리.

­쩔그럭.. 쩔그럭...

“뭔가가 나타나려는 모양인데...”

“기사일까요? 하지만 그런 것치곤...”

“.....”

전투태세를 갖추고 경계하자 사위스러운 메아리가 점점 더 크게 울려퍼졌다. 불길한 소음의 주인은 점차 우리가 있는 장소를 향해 다가왔고, 긴장을 머금은 심장 박동 소리도 덩달아 크게 들려왔다.

마침내 마른침이 울대 아래로 넘어간 순간, 낯선 무리가 눈앞에 도래했다.

“저건... 병사?”

­쩔그럭.

창백한 백골. 하지만 지금까지 봐왔던 스켈레톤과는 다르다. 일반인의 두 배는 될법한 두께의 뼈마디에선 전사의 풍채가 엿보였으며, 누리끼리하게 변색된 여타 해골과는 달리 표면에 반질거리는 윤기가 흘렀다.

생전에 우유 꽤나 마셨을 법한 외견.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특징적인 건...

“...어떻게 언데드가 무기를 가지고 있죠?”

놈들이 전신에 장비한 각양각색의 무구였다.

혹여나 기사들이 언데드로 변한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곧바로 검을 고쳐잡으며 부정했다. 만일 그랬더라면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백골로 변해버렸을 리 없으니까.

심지어 착용한 장비도 기사치고는 하나같이 생소한 것투성이다.

“슬링이라... 저걸 실전에서 쓰는 건 처음 봤는데...”

“커틀러스... 베라스틴 영지 소속 기사들의 제식 무기 중에는 저런 곡도가 없어. 게다가 좀...”

“낡았네.”

“...확실히 요즘 물건은 아니에요.”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언데드는 전부 골동품 상점에서 대충 집어온 것처럼 해묵은 병장기를 들고 있었고, 구시대 느낌이 물씬 풍기는 가죽 방어구를 장비했다.

원래의 색을 가늠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녹이 슨 날붙이에선 둔탁한 광채가 흘렸으며 삐딱하게 쓴 뿔 투구는 바이킹을 떠올리게 한다.

아무리 옛날이라고는 해도 베라스틴에서 쓸 만한 무장은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잡생각도 잠시, 한 스켈레톤이 석궁을 들어 우리를 겨냥했다.

“젠장! 일단 해치우고 보자...! 아리엘, 축복 좀 부탁해!!”

“응!!”

­슈화아악!!!

팔을 내두르기가 무섭게 시퍼런 화살촉이 날아왔다. 발사 타이밍을 예측하여 납작 엎드리자 약속이라도 한 듯 언데드들이 차디찬 회랑을 내달려 왔다.

하급 스켈레톤 따위와는 비교조차 불가능할 정도의 신속함.

“엄호 부탁해!!!”

나 또한 그에 응수해 달려나갔다. 등 뒤에서 격발된 은빛 볼트가 투구를 스치며 해골 병사의 미간으로 빨려들어간다. 나는 두개골에서 부글부글 거품을 내뿜는 인골을 걷어차며 놈들에게 치달았고, 은빛 호선을 그리며 묵직한 칼집을 내리찍었다.

­까가아아앙!!!!

“뭣?!!”

막았어...?

시뻘건 불꽃이 파르스름한 석제 통로를 밝혔다. 내 표적이었던 해골이 예상을 웃도는 반응속도로 대방패를 치켜세운 탓. 이내 놈이 체중을 실어 내 몸을 밀쳐내는 것과 동시에 뒤엣 놈이 쇄도했다.

그 완벽에 가까운 연계에 식겁하며 발을 뒤로 물리자 어둠 너머로부터 흉흉한 소음이 발발했다.

“치잇...!”

“도란 물러서!!!”

­타앙!!

진동하는 빛막. 가죽끈에 무게추를 매달아 만든 원시적인 볼라가 발치로 날아들었다. 순간 아리엘이 재빨리 보호막을 펼쳐주지 않았더라면 위험했을 일격.

설마 균형이 무너진 그 잠깐 사이를 노리고 공격한 건가...?

‘아니, 상관없어.’

급격하게 제동하며 맹진. 놈들이 체계적인 전술을 구사한다면 그에 맞게 대처하면 되는 일이다. 나는 칼집을 짧게 걸머쥐며 질주했고, 큼지막한 대방패와 몸이 일직선상으로 교차한 순간 재빠르게 도약해 실드를 움켜쥐고 뜯어냈다.

뼈만 남은 언데드가 내 근력을 이겨낼 리 없으니까.

­우드드득..!

“같잖은 새끼들이...!”

강제로 방패를 들어내고 연거푸 칼집을 내려찍으려던 찰나─

­오싹.

싸늘한 전류가 등골을 헤집었다.

공허한 눈구멍 수십 개가 날 노려보고 있었다.

이내 기다렸다는 듯이 무수한 날붙이의 연회가 펼쳐진다.

“시발!!!”

황급히 바닥을 굴러 상황을 모면했다. 필사적으로 돌바닥을 나뒹구는 내 몸뚱이 위로 날카로운 바람이 횡행한다. 섬뜩한 불똥이 코앞에서 튀어오르고, 무딘 칼날이 허벅지를 얕게 베자 부지깽이로 달구는 듯 뜨거운 고통이 몰아닥쳤다.

간신히 라디 앞에 다다라서야 부축을 받고 일어서며 외쳤다.

“무슨 이딴 새끼들이 다 있어!!!”

이질적인 존재. 지금껏 마주쳤던 그 어떤 몬스터와도 다르다. 둔중하기 짝이 없고 지성이 흐릿하던 그간의 스켈레톤과도 판이하다.

생명의 기척을 쫓아 천천히 옥죄여 드는 타고난 전사들.

이게 진정한 언데드란 건가.

­덜컥..! 덜그덕!!

­카가각...! 카가가각!!

“제기랄!!!”

숨 돌릴 틈 따위는 없다. 곧바로 놈들이 밀집 대형을 갖추고 전진해왔다. 커다란 방패를 든 해골 두 마리가 전위로 나서서 라디의 쇠뇌를 봉쇄했고, 석궁에 아기살을 메기는 사수와 위협적으로 슬링을 돌리는 투척병이 후방에서 우리가 빈틈을 보이기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온 쇠구슬이 보호막을 강타한다.

­콰아아아앙!!!

“윽..!”

빛의 장막이 당장에라도 부서질 것처럼 요동쳤다. 실드를 펼쳐두면 잠깐 놈들의 공격을 무력화하는 건 가능하지만 그건 나 또한 매한가지. 한쪽의 타격만 일방적으로 막아내는 편리한 마법 같은 건 동화책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니까.

아리엘의 마력도 한계가 있는 바, 전선이 고착되면 고착될수록 불리...

“위야 도란!!!”

일순간, 고성과 함께 검은 형체가 날아들었다. 끄트머리에 추가 달린 그물. 지나치게 사기적이라는 이유로 한때 검투사 사이에서 금지까지 됐던 무기.

마물의 가죽을 엮어 만든 밧줄은 오랜 세월과 습기에 찌들어 군데군데가 삭아있었지만, 잠시간 내 행동을 봉쇄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투척용 도끼와 창날이 빛무리를 가격하자 유리창이 깨져나가는 듯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보호막이 깨져나갔다.

­키키키킥!!

­카가각..!! 딸칵..!

“염병!!!”

숨이 멎을 정도로 영리하다. 극도로 치밀한 연계를 구사하는 상대. 이대로 멀뚱히 서 있다간 원거리 공격에 표적이 될 뿐이라지만, 그렇다고 무식하게 돌진하면 저 굳건한 대방패에 농락당할 게 분명했다.

진형을 파훼하고 안쪽으로 파고들 수단을 강구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백은보(白??).”

도약하며 기척을 감췄다. 순식간에 질주해 놈들에게 치닫는다. 날카로운 살기를 피어올리며 목전으로.

나는 비스듬히 기운 방패를 박차고 뛰어올랐고, 허공에서 선회하며 창날을 회피했다. 잇따라 도끼날이 쇄도했지만 고개를 기울여 빗겨낸다.

이내 뺨에서 핏방울을 흩뿌리며 착지하는 것과 동시에 있는 힘껏 칼집을 내려찍었다.

­콰지지지지직!!!!!!

­까가가각..! 카칵!!

무너져내리는 형체. 석궁병의 경추를 끊어놓자 손바닥으로 둔탁한 감촉이 전해져왔다. 뼈가 바스라지는 소음이 울려퍼지며 도자기를 깨부수는 듯한 타격감에 나는 방금 전 일격이 유효했음을 직감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표정은 밝지 못했다.

‘내가 공격해올 걸 알고 있었어...!’

검을 내두르는 게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쓰러져 있는 건 나였을지도 모른다. 칼집을 내려찍는 순간 놈은 이미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고, 생전이었다면 불가능했을 각도로 관절을 꺾어 날 겨냥하고 있었다.

“염병...!”

기본적으로 생명 추적 내비게이션을 탑재한 언데드에게는 기척을 감춰 봤자 무용지물이란 건가.

재빨리 일행 쪽으로 물러나며 복기하고 있자니 놈들이 유기적인 생명체처럼 진형을 바꾸었다. 내게 원거리 공격 수단이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거대한 할버드와 양날 도끼를 든 전사가 앞으로 나와 진로를 틀어막았고, 석궁병의 쇠뇌를 주워든 해골과 창병이 후열에 자리를 잡았다.

제일 선두에 선 방패병이 턱뼈를 덜렁거리며 명백한 조소를 자아냈다.

“.....”

상황이 좋지 않다.

놈들에 반해 우리는 수적으로 열세인 상황. 협소한 통로와 굳건한 진형, 긴밀한 연계라는 악조건이 겹쳐진 탓에 도무지 파고들 수가 없다. 늑대 스승님에게 배운 기술은 체력 소모가 심해 짧은 시간 내에 연속으로 사용하는 건 무리일뿐더러 이번에는 반드시 파훼되고 말 거다.

슬링을 빙빙 돌리며 시끄럽게 뼈마디를 마찰하는 해골을 참담한 심정으로 노려보고 있노라니 등 뒤에서 아리엘이 소리쳤다.

“도란! 시간 좀 벌어줘!! 잠깐이면 되니까...!”

“...무슨 뾰족한 수라도 있는 거야?!”

“응!! 오 분이면 충분해!”

“....”

그래, 그 정도라면 얼마든지.

다시 한번 검집과 바스타드 소드를 연결한 가죽끈을 이빨로 동여매었다. 오른손으로는 종아리에서 은빛 코볼트 단검을 뽑아 역수로 쥐었다. 아무런 피해 없이 단신으로 놈들을 격파하는 건 벅찰지도 모르지만, 단순히 시간을 끄는 것 정도라면 할 수 있다.

­카각..!

­휘이이이익!!

투척병이 팔을 놓았다. 소형 동물을 사냥할 때나 쓰이던 원초적인 무기가 사람을 죽이는 살수로 변모해 섬뜩한 파공성을 일궈냈다. 나는 바닥에 튕기며 불규칙한 궤적으로 육박하는 볼라를 도약해 피해낸 다음, 번뜩이는 불빛 속으로 뛰쳐들었다.

길게 늘어진 마석등의 불빛을 반사해 요란하게 반짝이는 병장구의 향연 속으로.

­카가가각!!

우선 닥쳐오는 공격을 처리한다. 좌로 약진해 도끼날을 회피. 검집을 치켜들어 커틀러스를 방어. 반석을 박차며 이탈했다. 사선에 적수를 두어 연달아 날아드는 화살을 틀어막고, 공허한 시선과 눈이 마주치자 허리를 비틀어 스켈레톤의 갈빗대 사이로 불쑥 솟아오른 창날을 빗겨냈다.

­휘이이익!

놓치지 않겠다는 듯 마수를 뻗어오는 그물망. 검집으로 무게추를 쳐올려 튕겨낸다. 짙은 흑안으로 살수를 읽어내며 다음 수를 준비했다. 왼손 건틀릿으로 공격을 틀어막으면, 즉각 태세를 전환해 검집의 위치를 오른손으로 전환하고 강타했다.

찰나에 이루어진 치열한 공방. 나는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며 상대의 노림수에 대응했고, 코볼트 단검을 내던져 투척병의 흉부를 꿰뚫었다.

­달칵달칵달칵달칵달칵!!!!!

시종일관 날 귀찮게 굴던 투척병. 놈이 성스러운 기운에 꿰뚫리고 평범한 뼈 무더기로 되돌아갔다. 나는 그 신세를 한껏 비웃어주며 공격에 대응했다. 하지만 여유도 잠시, 곧바로 묵직한 중량을 지닌 할버드가 상공에서 떨어져내린다.

즉각 두 다리로 바닥을 굳게 디디며 검집으로 틀어막았지만, 그 순간 기다란 곡도가 내 허리를 훑고 지나갔다.

“윽...!”

평소라면 중상을 입고도 남았을 일격. 하지만 잔뜩 녹이 슨 칼날은 샐러맨더의 가죽으로 된 레더아머를 뚫지 못했고, 큼지막한 피멍을 남기는 데 그쳤다.

잇따라 엄습한 대방패를 발로 걷어차 순식간에 거리를 벌리며 읊조렸다.

“무기는 항상 날카롭게 손질해야지... 그게 전투의 기본 소양 아니겠어?.”

“덜컥..! 덜컥..!!”

­카가가각!!

사 분 남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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