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하렘 생존기-180화 (180/375)

〈 180화 〉 이교도 광장 #4

* * *

[180] 이교도 광장 #4

사람들이 손에 든 짐을 내려놓고 한 곳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단물에 꼬인 개미처럼 바글바글 집결하는 인파를 유심히 살펴보기도 잠시, 라디가 소매를 잡아끌며 말했다.

“으음... 아무래도 연설을 하려는 모양인데요? 다들 모이는 분위기니까 일단 가봐요. 이대로 가만히 서 있다간 의심받을지도 몰라요.”

“그래, 그러자.”

자연스럽게 대열 끝자락에 끼어들었다. 곁눈질로 주위를 엿보며 그들이 향하는 광장 중앙으로 발길을 옮기자 제단 앞에 마련된 자그마한 단상이 보였다.

그런데 그 앞에 선 실루엣이 어딘가 낯이 좀 익다.

“잠깐! 저 인간이 왜 저기에...”

“아는 사람이에요?”

“...그래, 베라스틴의 도서관에서 봤던 사서장이야. 수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여기서 만날 줄은...”

“저 사람도 이교도였구나... 어쩐지 좀 수상했어. 내가 아가사 신전 소속인 걸 밝히자마자 눈살을 찌푸리더라고...”

후덕한 인상의 중년 여인. 가면을 쓰긴 했지만 얇은 판넬을 뚫고 튀어나오는 턱살과 체형은 그 인간이 틀림없다. 언데드에 대한 정보를 모으던 당시 도서관에서 마주쳤던 사서장 말이다.

당시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입을 다물자 마법으로 확성된 인위적인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오홍홍~ 다들 잘 모이셨어요! 오늘도 불철주야 수고해주시는 여러분께 정말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힘을 합친 덕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어요!”

“...저 사람 말투가 왜 저래요?”

“....”

“정말이지 감격스러운 날입니다. 오늘 제가 이렇게 여러분을 불러모은 이유는 ‘위대한 재림’에 대한 소식을 전달해 드리기 위해서예요!”

‘위대한 재림...?’

“다들 그간 지하에서만 지내느라고 힘들었죠? 이제 곧 있으면 다시 밖으로 나갈 수 있어요! 전능하신 플루토님의 부활이 머지않았습니다!! 그리운 여러분들의 가족, 애인, 친구의 품으로 금의환향하는 모습을 떠올려보세요!”

고개를 돌려 물었다.

“...플루토? 아는 놈이야 아리엘?”

“아니... 생소한 이름이야... 지역마다 신의 이름을 조금씩 다르게 부르는 경우도 있으니 내가 아는 신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아직까지는... 누군지 모른다는 거네.”

“애당초 신은 맞는 걸까요...? 어쩌면 가상의 인물이거나 신으로 승격하지 못한 고위 마족일 수도...”

“...일단 계속 지켜보자.”

전방으로 시선을 향하자 사서장이 말을 이었다.

“...플루토님이 강림하시면 이 부정한 땅에 많은 변화가 생길 겁니다!! 타락한 귀족과 성직자, 신을 현세에서 영원히 몰아내고 계급 없이 평등한 사회를 만들 겁니다!! 더 나은 삶, 더 나은 인생을 위하여 저희는 이 고된 인고의 시간을 감내해온 것입니다!! 그 끝에 달콤한 과실이 있을 것을 알기에!!!”

“옳소! 옳소!!”

“지당하신 말씀! 더 이상 관망하기만 하는 신에게 놀아나지 않겠다!!”

“썩어빠진 귀족을 몰아내자! 교회는 부패했다!!”

“세금에 허덕이는 건 이제 지쳤어!!”

“나쁜 놈들... 아가사 님을 모욕하다니...”

아리엘이 까득 이를 갈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군중 사이 유독 호들갑 리액션을 선보이는 인원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아마 군중 심리를 이용하고자 심어둔 심복이 아닐지.

“그리고... 약조했던 보상 말이지요! 플루토님이 무사히 도래한다면 약속대로 모두에게 각각 금화 스무 닢을 증정해 드리겠습니다!!! 소중한 사람과 새 터전에서 새출발을 하기엔 충분한 돈이지요!! 바로 여러분이 일궈낸 유토피아에서 말입니다!!”

사서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나왔다. 내 옆에서 세뇌라도 당한 것처럼 침을 튀기며 열띤 환호성을 내지르는 대엿 살 꼬마를 보자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단 말인가.

‘돈이 그렇게도 중요했나...’

나도 마음이 공허하고 흙탕물로 주린 배를 채우던 시기가 있었지만, 마른 숨을 들이쉬며 굶을지언정 승냥이처럼 다른 사람의 밥그릇을 넘보진 않았다. 순간의 유혹에 눈이 멀어 과오를 범하고 난 뒤의 비참함을 알기에.

여기 모인 인파 중 대다수는 평범한 시민, 친절한 이웃, 길거리에서 한 번쯤은 스쳐 간 인연이었을 터다.

분명 나와 면식이 있는 사람도 섞여 있을 텐데...

“...어떻게 이 인파를 불러모았는지 알겠네. 라디야, 금화를 스무 닢씩이나 나눠준다는 게 가능한 소리야?”

“...아니요. 영주의 재력을 동원한다면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애초에 보상을 지급할 생각이 없을 거예요. 악신이 강림하면 모든 게 끝이니까요. 아마 이들을 제물로 쓰려는 게 아닐까 하는데...”

“...버리는 말이란 소리네.”

“네, 본인들이 접시에 올라갈 운명이라는 것도 모르는 어리석은 양이죠.”

“....”

동정심은 들지 않는다.

어차피 이들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 다른 자들의 희생을 강요했으니까.

잔뜩 고조된 분위기의 이교도를 외면하고 뒤돌아서려는 찰나, 옆에서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기척이 느껴졌다.

의아하게 돌아보자 아리엘이 단상에 삐딱하게 기댄 한 사내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침음하고 있었다.

“기사단장이야... 없길 바랐는데...”

“...얼마나 강해?”

“모험가로 치면 ‘최소’ A랭크. 절대 승산 없는 상대야. 수십 년간 베라스틴의 기사단장을 역임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아무리 도란이 강하다고는 해도 다섯 합도 못 버티고 나가떨어질 거야.

“....”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

A랭크면 이전에 만났던 붉은 매 길드원과 같은 등급이다. 나를 어린애 다루듯 가볍게 제압했던 그 괴물들과 맞먹는 실력자란 뜻. 아니, 그들보다도 상대하기 버거울 거다. 기사 육성을 주로 하는 만큼 최소한 대인전에 있어선 모험가와 비교하는 게 불가능할 테니까.

­.....

일순간 그의 적안과 마주쳐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일단은 물러나야겠어요. 이대로라면 도저히 방법이...”

“젠장...”

수레를 끄는 사람들에 섞여 슬그머니 대열을 빠져나왔다. 주변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구석에서 막막하게 한숨을 내쉬고 있자니 점차 함성이 멎어든다.

슬쩍 내다본 광장에는 집합을 마치고 배식을 받기 위해 취사장 앞에 줄을 선 이교도로 분분했다.

“...무슨 방법 없을까?”

“글쎄다... 서둘러야 하긴 하는데...”

전술의 기본은 상대의 허점을 치는 것. 하물며 지금은 작은 실수 하나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직결되는 만큼 더더욱 치밀해져야만 한다.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제단은 극비 문서가 보관된 은행처럼 철통같고, 의식을 주관하는 고위 사제는 몇 명이 있는지조차 모르는데.

“놈들의 시선을 분산시킬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뭐라도 해 봤을 텐데.

무력하게 주먹을 움켜쥐며 이교도 무리를 응시하던 찰나ㅡ

­쿠구구궁!!!!

“스, 습격이다!!! 적이 쳐들어왔어!! 다들 무기 챙겨서 모여!!!”

“기사들은 집결하라!!! 외부 병력이 쳐들어왔다!!!”

“각 분대 기상!!! 초동조치 부대 즉시 출동해!!!”

‘외부 병력...?’

헐레벌떡 땀에 젖어 광장에 뛰어든 한 사내의 외침을 기점으로 기사와 이교도 사이에서 긴장이 오갔다. 이내 쩔그럭거리는 갑주의 소음이 분주하게 석벽에 메아리쳤고, 분위기가 일변하며 공기가 매섭게 타오르기 시작한다.

아리엘이 내 손목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돼 도란. 절대로.”

“동감이에요. 누가 쳐들어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기사들의 주의가 분산된 지금을 노려야 해요. 당장.”

“...움직이자.”

전황은 돌변한다.

*

부산스러운 군중 속으로 녹아들었다. 우왕좌왕하며 광장을 쏘다니는 인파를 거슬러 나아갔으나 아무도 우리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젠장...! 갑자기 그런 병력이 어디서 나타난 거야?!”

“듣자 하니 수가 꽤 된다던데... 중무장한 적이래. 실력도 예사롭지 않은 모양이야...”

“그래도 기사들이 해치워 주겠지. 이럴 때를 대비해 있는 놈들이잖아. 그리고 우리에겐 기사단장 키론 님이 있으니까!”

“제기랄...! 이제야 좀 남부럽지 않게 사나 싶었는데!!”

이교도가 갈팡질팡하며 혼란에 빠졌다. 어찌나 정신이 팔렸으면 부츠에 발이 밟혀도 신경을 쓸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모습. 기사 또한 갑주를 걸치고 분주하게 돌아다니느라 여유가 없다.

놈들의 이목이 분산된 지금이야말로 적기.

갈라지기로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자 아리엘이 가려한 눈망울로 올려다보며 내 옷단추를 매만졌다.

“도란... 정말로 혼자서 괜찮겠어?”

“그래, 이 순간을 놓치면 두 번 다신 기회가 없을 테니까. 내 걱정은 말고 너희야말로 조심해.”

“...도란님, 다치지 마세요. 꼭 살아서 함께 돌아가요. 아직 함께 못한 게 많이 남아있으니까요...”

“...그래, 조금 이따 보자. 사랑해.”

라디를 꼬옥 끌어안아 용기를 나눈 뒤 두 녀석을 떠나보냈다.

이 병력을 상대로 정면에서 싸움을 거는 건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해야 할 터, 창고를 지키던 기사들이 외적에 맞서려 출동한 사이 라디와 아리엘은 놈들의 식량에 독을 타고 곧바로 탈출할 계획이다.

문제는 나다.

아무리 위급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최중요 시설인 제단에 병력을 분배하지 않았을 리 없다. 붉은 기운이 맥동하는 제단에는 이전보다 수가 현저하게 줄긴 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수의 기사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다.

그렇다고 돌파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잠깐, 넌 누구지? 우리 제사 준비조 일원은 아닌 것 같은데...”

“순찰조의 말톤이라고 합니다. 일손을 도우러 왔습니다.”

“...순찰대 인원이 왜 우리를 도와? 네 일 하기도 바쁠 텐데. 맨날 머릿수 없다고 징징대던 놈들이.”

“침입자가 쳐들어온 상황이잖아요? 기사들이 저희 대신 출동했으니 다른 처부 일이나 도우면서 대기하라는 순찰대장님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순찰대장? 고든님이 그런 지시를 내렸다고...? 그럴 분이 아닌데...”

“순찰표를 새로 짜느라 상당히 분주해 보이시더군요. 머리털까지 쥐어뜯으시면서... 그래서 이걸 제단까지 옮기면 되나요?”

“...아, 그래. 어쨌든 일손이 모자라던 상황인데 잘 됐군... 고든 님을 뵙게 되면 나중에 감사하다고 전해줘. 여기 있는 음식들을 저기 제단 근처로 날라주기만 하면 돼.”

“알겠습니다.”

능숙한 거짓말로 속여넘긴 뒤 테이블 위에 놓인 쟁반을 들어올렸다. 파리도 미끄러질 만치 깨끗하게 닦인 은쟁반의 중심에는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돼지 머리통이 멍청하게 미소짓고 있었고, 블루베리를 올린 타르트나 해기스 등 군침 도는 먹거리가 가장자리를 장식하고 있었다.

주변에서 나와 함께 의식에 쓸 제사 음식을 나르는 이교도들을 의식하며 발을 놀리다 보니 얼마 안 가 제단 근처에 다다랐다.

주위를 살피며 막 쟁반을 내려놓고 재빨리 물러나려는 찰나­

“흠... 자네 잠깐 거기 멈추게.”

검은 가면을 지닌 노년의 사제가 내 발길을 붙들었다.

혹시 정체가 탄로 난 건 아닐까 식겁하며 발을 뺐지만, 그의 입가를 감도는 은은한 미소를 보자 안도하는 동시에 원인 모를 불길함이 샘솟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사제님?”

“흐음... 자네에게서 짙은 사기가 느껴지는군. 마치 플루토 님의 성물을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눈까지 속일 순 없지. 밖에선 무슨 일을 하다 왔는가?”

“...평범한 모험가였습니다. 좋은 벌이가 있다고 해서 이번 일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아내의 치료비를 구해야 했거든요.”

“흐흐... 겸손도 과하면 독이 되지. 내게 거짓말할 필요 없네. 자네가 ‘평범한’ 모험가였을 리가 없잖은가? 걸음걸이부터가 범인과는 격이 다른데 말이야. ...과거를 감추는 걸 보니 어디서 이름 좀 날려 본 암살자라도 되는가?”

“...아닙니다. 혹시 볼일이 없으시다면 이만 물러나 봐도 되겠습니까?”

“허허... 매정한 친구고만. 그러지 말고 잠깐 이 늙은이 말 상대나 해주다 가게나. 자네 한 명 없다고 제사 준비에 차질이 생기는 것도 아니니.”

노인이 바로 옆에 마련된 야외 테이블을 손짓했다. 평소라면 의심을 지우기 위해서라도 그의 말에 따랐겠지만 지금은 시기가 나쁘다. 그야...

“앉게나.”

“저... 죄송하지만 급한 볼일이...”

“내 명령에 불복하겠다는 건가?”

“.....”

‘제길...’

그가 옆에 선 기사를 은근히 눈짓했기에 하는 수 없이 이를 악물며 자리에 앉았다.

조급한 마음을 억누르며 최대한 평정을 가장하자 노인이 찻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그래서, 자네 이름이 어떻게 되나. 제일? 젠슨?”

“...말톤입니다.”

“허허... 말톤이라.. 말톤... 좋은 이름이구먼. 좋은 이름이야. 자네 아버지가 지어주셨나?”

“그렇습니다.”

“그래, 자네 같은 아들을 두다니 참 자랑스럽겠군. 자식이 무럭무럭 자라는 걸 보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지. 나는 비혼이라 이 나이 먹도록 아버지 소리 한 번 듣지 못했지만 말일세. 자네도 기회가 된다면 꼭...”

“절 불러세우신 용건이 뭡니까.”

“....”

노인이 잔을 내려놓더니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자네 로브에 묻어있는 피 말일세. 얼마 안 됐구먼?”

“뭣...”

황급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로브를 강탈할 때 경동맥을 절단했으니 피가 튀긴 했지만, 검은 천이여서 눈에 잘 안 띌뿐더러 분명 말끔하게 닦아냈을 텐데.

돌바닥에 방울방울 떨어져 있는 핏자국을 보자 머리가 아찔했다.

“나는 남들보다 피 냄새에 민감하지. 걱정 말게. 자네를 탓할 생각은 없으니. 가끔은 말로 해결할 수 없는 분쟁도 있는 법이지.. 소란이 일어나지 않은 걸 보니 뒤처리를 깔끔하게 한 모양이구먼?”

“아...”

아무래도 내가 동료 중 누군가를 헤쳤다고 착각하는 것 같은데...

“비밀로...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 그래. 그러고말고. 오늘 같은 기념비적인 날에 자네 같은 청년을 처형하는 건 영 내키지 않으니 말일세. ...그려면 지금까지 사람은 몇 명이나 죽여보았는가? 열? 스물? 아흔아홉?”

“...저는 무고한 사람을 헤치지 않습니다.”

“여간 신중한 친구가 아니로군. 조심스러운 건 좋은 거지. 하지만 자네의 발자취에서 흘러나오는 혈향은 정말로 솔직하군. 너무 솔직해. 그 손을 대체 몇 명분의 피로 적셔온 겐가? 자네가 말하는 ‘무고한 사람’으로 말이야.”

“....”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지껄이는 상판. 노련한 독사의 송곳니처럼 피식자의 내면으로 침투하여 혈관을 더럽히는 듯한 눈동자는 그가 살아온 인생이 녹록지 않음을 드러냈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 음험한 노인 또한 잠시 후면 이곳에서 죽을 테니.

최대한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용건을 마치셨다면 이제 정말 가 보겠습니다.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허허 알겠네. 정말이지 벌꿀처럼 바쁜 청년이구먼. 내 더는 붙잡지 않겠네.”

“....”

그가 어서 가 보라는 듯 손을 휘젓자 가볍게 묵례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지막에 잠깐 해프닝이 있긴 했지만 이걸로 내 계획은 성공했다. 이제 시간이 지나면 놈들은 알아서 파멸할 테니.

잰걸음으로 재빨리 자리를 벗어나려는 찰나­

“그런데... 좀 이상하구만. 잠깐만 거기 서 보게나.”

“...또 무슨 일이시죠?”

“조금 묘해서 말이야... 자네에게서 플루토 님의 기운이 느껴진다고 했던 말 기억나는가? 이번 일을 준비하면서 꽤 오랫동안 동지들 면면을 봐온 내가 자네처럼 걸출한 인물을 여태껏 알아채지 못했다니... 나이가 들어서 안력이 노쇠해진 모양이야. 부서가 어떻게 되나?”

“...순찰조입니다. 제가 좀 바빠서 그런데 이제 정말로 좀 가봐도 되겠습니까? 돌아가서 상관에게 보고해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그런가? 정말로 성실한 청년이군. 내 포상을 줘야겠어. 자네 상관 관등성명은 어떻게 되나?”

“....”

좀전의 사내에게서 들었던 기억을 재빨리 끄집어냈다.

“...고든입니다. 그럼 전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흠... 그런가...? 그거 정말 묘하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턱을 짚고 고개를 기울였다.

초조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대체 뭐가 묘하단 겁니까. 전 이제 정말로 가볼...”

“그야...”

내가 고든이니까 말일세.

“....잠깐, 이거 좀 이상한데..?”

“그러게... 좀 부풀어오른 것 같은데... 돼지 머리가 원래 이렇게 컷던가...?”

“안에 가스라도 찬 거 아냐?”

“에이... 여기에 그런 게 어딨... 어.. 어...?”

“자, 잠깐...! 저 촛대 불길이...!!”

전황은 일변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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