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화 〉 학살극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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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학살극 #7
풀썩!
거대한 불사조가 대지를 휩쓴 후.
잿더미가 된 세계 속에서 시커먼 팔 하나가 불쑥 솟아올랐다.
팔은 개미의 더듬이처럼 지면을 더듬거리고 쏙 들어가더니 잠시 후 아래서 반나체나 다름없는 흑발의 사내가 기어나왔다.
“커흐흐흡...!! 쿨럭...! 쿨럭!! 시발 이번엔 진짜로 뒤지는 줄 알았네... 커헉...!”
나는 입안에 가득 찬 재를 토해내며 갈탄 숨을 들이켰다.
사실 내가 살아남은 것은 요행에 가까웠다.
거대한 화조가 덮쳐오기 전, 나는 노래기를 불러들여 녀석의 몸속으로 파고들었고, 두꺼운 방공호처럼 온 힘을 쥐어짜내 소환한 덩굴로 겹겹이 전신을 감싸 대비했다.
그럼에도 불길은 수 미터에 이르는 그림자 장벽을 모조리 불사르며 쇄도했다.
결국 내 목숨을 구한 건 살라만더의 가죽 보호구와 홍옥이었다.
푸른 불사조의 기운을 흡수해 이제는 파란 기운마저 일렁이는 구슬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나는 한 가지 위화감을 감지했다.
“...로닌 너 무사하냐?”
....
“괜찮으면 대답 좀 해봐.”
.....
“시발...!”
스쿠버다이버처럼 재빨리 잿더미 아래로 파고들었다. 필사적으로 팔을 움직여 재 속을 뒤지자 얼마 안 가 사람 발목 비스무리한 것이 손에 잡혔다.
온 힘을 다해 잡아당기자 곧 금발 소년이 딸려 올라오며 거친 숨을 토해냈다.
“끄허어어어억...!”
“...괜찮냐.”
“쿨럭...! 쿨럭!! 저, 점액질이...! 독해서 수, 숨이... 안 쉬어져...”
“...참아.”
녀석은 노래기의 위액과 그을음으로 범벅되어 끔찍한 꼬락서니였지만, 적어도 팔 한쪽이 떨어져나가거나 신체 일부가 녹아내리지는 않아 보였다.
고개를 들자 일변한 광장, 아니 이제는 폐허라고 부르는 게 더 바람직한 풍경이 보였다.
‘이게... 단일 공격이라고...?’
후두둑. 암반이 녹아내려 떨어졌다. 상공에서는 고운 잿가루가 낙진처럼 흩날렸다. 바닥에 널렸던 시체는 흔적도 없이 증발했으며, 마법의 여파로 푸른 불길이 이글거리는 대지에서는 거대한 골짜기가 일직선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마치 이 일대가 오븐으로 변한 듯 공기가 후끈 달아올라 호흡을 들이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입가로 치미는 재를 손으로 틀어막으며 말했다.
“시발... 이런 게 가능하다고...? 마법사 수십 명의 마법을 합친 것보다도 더 세잖아.”
“쿨럭...! 저자는 살아있는 기사의 교과서 같은 사람이라고요. ...이젠 반역자지만.”
“...일단 잡담은 나중에 하자.”
수북한 재를 젖히고 빠져나와 간신히 두 다리를 딛고 섰다. 상급 기사의 마법에도 끄떡없던 살라만더의 가죽 갑옷이 바짝 타들어간 모습을 보자 비로소 죽음의 문턱 직전까지 도달했었다는 것이 실감 났다.
빠르게 몸을 추스르고 불길이 이끄는 곳으로 향하자 그곳에는 한 사내가 귀신처럼 땀 한 방울조차 흘리지 않고 서 있었다.
나와 로닌이 검날을 드리우자 그가 선선히 입꼬리를 올렸다.
“살아있었군.”
“...당연하지. 이런 공격 따위, 열 번 맞아도 끄떡없어.”
“그런가. 그럼 열 번 더 간다.”
“뭐, 뭣...?!”
“농담이다.”
나와 로닌이 허둥대는 찰나, 키론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제법 서슴없는 태도에 얼빠진 얼굴로 쳐다보니 그가 창대로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나는 이 기술로 과거 케르미야 전투에서 지휘관을 포함, 도합 오백이 넘는 적군을 일격에 몰살했다. 그 공으로 지금의 직위까지 오를 수 있었지. 방금 걸 맞고도 살아있다는 건 적어도 그대들이 나와 동등한 높이에 설 잠재력을 갖췄다는 거다. 축하한다.”
“.....”
어째서일까.
묵묵히 고하는 키론의 눈동자는 어딘가 후련해 보이기도, 슬픔과 대견함이 뒤섞여 보이기도 했다.
마치 오랜 제자를 송별하는 듯.
어쩐지 마지막 작별을 앞둔 것만 같은 태도에 로닌은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세차게 고개를 젓고는 콧잔등을 한껏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반역자... 너는 우릴 평가할 자격이 없다. 너는 네 이념을 위해 국가 및 폐하를 반역하고 시민을 사교로 이끌었다. 변명할 여지가 있나?”
“없습니다 로닌 하이젠베르그 도련님. 이 지하에서 희생당한 사람, 불법 마물 육성, 지상의 언데드 모두 제 책임입니다. 문책을 회피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크윽...! 그럼 대체 왜 이런 짓을 벌인 거야!! 그렇게나 잘 알고 있으면서...! 도중에 멈출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
키론의 어깨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창대를 꽉 부여잡는 그의 손아귀에서는 미련과 후회, 자신에게 엄격한 실망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자 나는 저도 모르게 로닌을 제치고 앞으로 나서고 있었다.
지금껏 쌓여왔던 의문이 구체적인 윤곽을 갖추는 걸 느끼며.
“형...?”
“물을 게 있다 키론. 잠시 괜찮겠나?”
“말해 보아라. 너희는 내 마지막 시험을 통과했으니 가능한 한 모두 답해주겠다.”
“약속할 수 있어?”
“...약속 말인가?”
“그래, ‘답해줄 수 있는 건’ 모두 답해주겠다고.”
“.....”
돌연 키론이 입가에 묘한 웃음을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내 추측에 힘이 실리는 걸 느끼며 입을 열었다.
“당신... 처음부터 악신의 부활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지?”
“뭐...? 말톤 형 잠깐만!”
로닌이 화들짝 놀라며 내 쪽을 돌아보았다.
“형!! 지금 혹시 키론 경을 감싸주려는 건 아니지!?! 그랬다간 형마저 반역죄로 잡혀가!! 빨리 그 말 취소...!”
“넌 잠자코 있어. 그런 거 아니니까.”
“.....”
복잡한 눈길로 쳐다봐오는 로닌을 뒤로 하고 키론을 응시하자 그가 잔잔히 입을 열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그야 당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플루토를 언급한 적이 없었잖아. 아니, 딱 한 번 있었지. ...계속 시간을 끌다간 모든 게 늦어버릴 거라고. ‘악신’이 강림하면 지킬 수 없다고. 그치?”
“.....”
내가 확신했던 이유.
내 일행과 로닌, 틋콩, 지하 감옥에서 만난 노예상 외의 극히 소수를 제외하면 지금까지 그 누구도 악신이란 표현을 쓰지 않았다. 그야 이교도한테는 플루토야 말로 선한 신일 테니까.
이뿐만이 아니다.
그간 내가 이 광장에서 마주쳤던 인간을 크게 세 부류로 나누자면 사제, 이교도로 전향한 시민, 기사 정도가 될 터. 이들에게는 제각각 이번 일에 뛰어든 동기가 존재했다.
사제들은 플루토 신을 향한 맹목적인 믿음이, 일반 이교도는 금전에 대한 욕망이, 기사는 출세에 대한 야심 정도로 볼 수 있겠지.
하지만 기사단장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부와 명예, 권력 삼박자를 모두 갖춘 그가 사교에 발을 들인 계기라고 함은 그릇된 신앙심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철저한 베그디아교 신자였을뿐더러, 이것이 위장이었다고 하더라도 지금껏 쌓아온 모든 명예를 져버리면서까지 악신의 부활을 획책했다기엔 단 한 번도 그에 걸맞은 집착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플루토를 ‘악신’이라 거론하고, 그가 부활하면 모든 생명을 지킬 수 없을 거라는 부정적인 대사를 했을 정도니.
아귀가 맞질 않는다.
로닌이 눈을 크게 뜨고 나와 기사단장을 번갈아 보던 도중, 키론이 입을 열어 긍정했다.
“...그렇다. 플루토의 부활은 재앙이다.”
나는 머릿속의 퍼즐이 들어맞는 걸 느끼며 준비해두었던 다음 질문을 입에 담았다.
“처음 문답을 나눌 때 당신은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는 말을 강조했어. 세상은 원하는 데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고. 마치 당신의 의지에 반하는 것처럼. 맞나?”
나는 ‘반하는’에 강조를 두어 물었다.
의향과 무관하다는 표현과 반대된다는 말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뉘앙스를 품고 있기에.
만약 후자라면 시종일관 수동적이던 그의 행보와도 직결된다.
키론은 내가 제 부하들을 살육했을 때도 막지 않았다. 그가 지금까지 행동에 나선 경우는 딱 두 번. 마석 폭발로 자신을 제외하면 더 이상 제단을 지킬 인원이 남지 않은 현재와, 내가 광장을 탈출하다 이교도에게 붙잡힐 뻔했을 때다.
결과적으로 중상을 입긴 했지만 그는 나를 놓아주었고,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건 아니지만 라디와 아리엘 모두 살아있다.
마치 우릴 구해주려고 한 것처럼.
“.....”
키론은 이번 물음에도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 질문이다.
“당신의 의지에 반하는데도 악신을 부활시키려 했다는 건... 누군가의 사주가 있었기 때문이겠지. 혹시 누구의 명을 받들어 이런 짓을 했는지 말해줄 수 있나?”
아니, 당신은 대답할 수 없다.
당신은 ‘답해줄 수 있는 건’ 모두 답해주기로 했으니까.
키론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조용히 웃으며 침묵했다.
나는 말했다.
두근거리는 심장으로ㅡ
“사람이 아니군.”
그에게 악신의 부활을 명한 건 사람이 아니다.
보다 더 높은 차원에 있는 존재.
앞선 문답은 모두 이 대답을 이끌어내기 위함이었다.
노련한 멧돼지를 사냥하듯 조심스럽게 포위망을 좁혀 덫으로 유도하기 위한.
퇴로를 차단해 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키론 역시 스스로 덫에 걸려들도록 했다는 점이지만.
로닌이 당황하며 내 래더아머를 움켜쥐었다.
“자, 잠깐...! 형! 지금 얘기가 어떻게 돼가고 있는 거야...? 따라가기가 벅...!”
“키론 경이 최종 흑막이 아니야.”
“그, 그게 무슨...”
“이번 일에 더 큰 배후가 있어. 키론 경도 이용당한 거고.”
나는 단도를 어둠 속으로 갈무리하며 말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그가 최종 흑막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하는 건 쉽다. 하지만 키론 경 같은 자를 휘두를 수 있는 인물은 얼마 없다. 그 정도쯤 되는 거물이라면 베라스틴의 영주를 떠나서 최소 국왕쯤은 되어야겠지.
그리고 국왕이 아니라는 건 방금 확인했다.
“하, 하지만 왜 그러면 지금까지 말 안 한 건데...?! 처음부터 진작 털어놓았으면 좋았...”
“야 이 멍청아 당연히 무슨 수를 써둔 거겠지. 사실대로 고하면 즉사하는 저주에 걸렸다던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를 왕창 인질로 잡고 있다던가.”
“그,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그래서 사람이 아니라고 직접 확인까지 시켜줬잖아.”
“사람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건...”
로닌은 이내 뭔가 깨달았는지 머리에 망치를 한 대 얻어맞은 표정으로 키론을 쳐다보았다.
키론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자아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당신은 어떡할 거야. 이제 사정도 알았고, 꼭두각시 노릇을 계속하기엔 시간도 없는데. 곧 있으면 악신이 강림한다며? 그리고 내 애인 어디다 숨겨놨는지부터 빨리 불어.”
“그래, 라디와 아리엘이라고 했던가? 그 둘은 이곳 지하 3층 비밀 공간 안에 있다. 마석에 마력을 불어넣으면 숨겨진 방이 드러나는 구조지. 너를 던져두었던 시체 구덩이 근처에 있으니 찾기 쉬울 거다.”
“젠장... 바로 코앞이었잖아. 진작 그것부터 말할 것이지.”
“자, 잠깐 말톤 형!”
툴툴거리며 서둘러 찾으러 갈 채비를 하자 로닌이 우물쭈물하며 내 손목을 붙들었다.
“왜.”
“그, 그냥 갈 거야...? 일단 키론 경을 어떻게 처우할 건지 논의...”
“야 인마, 그건 네가 해야지. 너 왕실 특무 어쩌고 아니었어? 난 그냥 F랭크 나부랭이고. 저기 틋콩도 있으니까 알아서 잘 해봐.”
성가신 표정으로 제단을 턱짓하자 로닌이 홱 고개를 돌렸다.
내 시선이 향한 장소에는 사태가 묘하게 흘러감을 짐작하고 홀가분해진 가방을 끌어안은 채 우리를 지켜보는 갈색 머리 남성이 있었다.
한데 막 자리를 뜨려는 순간 제단에서 붉은 파동이 뿜어나오며 키론의 신형이 무너져내렸다.
“쿨럭ㅡ!!”
“키, 키론?!!”
로닌이 황급히 부축하려 했지만 그는 손을 뻗어 제지했다.
“괜찮.. 습니다. 어차피 이렇게 될 거라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으니...”
“그게 무슨 소리야?!! 키론!! 키론?!! 추, 출혈이...! 이 피는 대체 다 뭐야?!! 어떤 저주가 이렇게...!!”
“이건 폐하와 백성의 신의를 저버린 대가입니다. 저는 응당 받아야 할 벌을 받는 겁니다.”
“안 돼!!! 그 이상의 말은 내가 허락하지 않겠다!! 시, 신전!! 빨리 지상으로 올라가자!! 아가사 신전에 가면 치료할 수 있어!! 내가 폐, 폐하께 탄원서도 써 줄 테니까...!”
아니, 이건 치료 따위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칠공에서 피를 내뿜기 시작한 키론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없다. 이는 단순한 저주 따위가 아님을 알고 있기에.
헌신짝처럼 그를 이용하고 버린 존재에게 지독한 불쾌함을 품고 있자니, 키론이 입을 열었다.
“로닌 하이젠베르그 도련님. 염치없다는 건 알지만 마지막으로 하나만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아니, 절대 안 돼!! 내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빨리 지상으로 올라가면...!!”
“저를 도와 제단을 파괴하는 걸 도와주십시오. 제단은 의식이 완성되기 직전, 모든 사기가 악신의 강림을 위한 동력으로 전환되었을 때가 가장 취약합니다. 지금 저와 도련님이 힘을 합치면 깨부술 수 있습니다.”
“아, 안 돼!! 그럼 당신은...!”
“도련님!!!!”
순간ㅡ
어마어마한 성량이 키론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는 어깨를 크게 움찔한 로닌을 다정한 눈길로 어루만지며 말했다.
“제 가르침을 기억하십니까?”
“.....”
“말씀해 보십시오.”
로닌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진정한 기사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옳은 일을 행해야 한다... 그릇된 일을 용인하지 아니하고, 재물과 음욕에 눈이 멀지 말며,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
“지금이 바로 올바른 일을 행해야 할 때입니다. 제가 어지럽힌 순리를 바로잡을 기회를 주십시오.”
“....내가 뭘 하면 돼?”
“간단합니다. 어린 시절에 저와 함께했던 마력 수업 기억하십니까? 그때처럼 같이 이 창대를 쥐고 마나를 흘려보내 주시면 됩니다. 저는 도련님의 마력과 제 마력을 합일해 제단을 무너뜨릴 마법을 준비하겠습니다.”
키론이 로닌에게 창을 내밀었다. 파란 창날 아래 붉은 새의 꽁지깃털이 가미된, 가히 예술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창. 변화무쌍한 궤적으로 우리를 농락했던 바로 그 무기.
키론이 웃으며 말했다.
“도련님은 어릴 때부터 이 무기를 가지고 싶어 했지요. 이제 당신 겁니다.”
“.....”
“심정이 어떠십니까.”
“....바라지 않았어. 이런 건...”
“.....”
한 줄기 액체가 로닌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녀석의 눈물을 못 본 척하고 발길을 돌렸다. 이 자리에 남아있는 건 실례라 생각했기에.
하지만 내가 채 걸음을 떼기도 전에 중후한 목소리가 발길을 붙들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
“혹시 당신의 진짜 이름을 알 수 있겠습니까?”
“....”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도란.
...그게 제 진짜 이름입니다.”
“그렇군요. 도란... 도란 공이라”
키론은 잠시 내 이름을 되뇌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굳건한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에게도 요청할 것이 있습니다. 나가면 말톤에게 제 꼴사나운 최후를 전해주십시오. ...꼭 부탁드립니다.”
“.....”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광장을 빠져나왔다.
잠시 후, 등 뒤로 그 어느 때보다도 푸른 섬광이 터져나왔고,
무너져내리는 잔해 사이로 오열하는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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