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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하렘 생존기-219화 (219/375)

〈 219화 〉 소동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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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소동 #2

눈 깜짝할 사이에 포위망이 완성되었다.

모험가들이 나와 아리엘을 반원 형태로 둘러쌌다.

곧이어 인간 장벽 너머에서 한 험상궂은 남성이 옷소매를 걷으며 걸어나왔다.

“어이 형씨. 잠깐 물어볼 게 있는데...”

“....?”

“거기 그... 여성분은 우리가 늘 신세를 지는 사람이라서 말이야... 나 같은 모험가들이 좀 많이 아끼거든. 혹시 무슨 관계인지 말해줄 수 있겠나?”

“.....”

대답하려는 찰나 입을 다물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아리엘이 내 팔뚝을 강하게 끌어안으며 빼꼼 내다봤으니까.

그녀가 불안하게 날 올려다보자 모험가 사이에서 흉흉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호오... 정말로 사이가 좋아 보이는군 형씨. 돈독하다는 건 좋은 거지. 그래 좋고말고... 그래서 대답은?”

“.....”

나는 한숨을 내쉬며 전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마찰 없이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할 터.

걱정하는 아리엘을 상냥하게 쓰다듬어주고 사내에게 내뱉었다.

“보다시피, 설명이 필요해?”

“크윽...!!”

“지, 진짜로 설마 그렇고 그런...!”

“안 돼!! 나의 아리엘 님이 저딴 놈한테... 이, 이건 말도 안 된다고...!!”

“이건 꿈이야!!! 제길!! 깨어나라!!!”

“어이, 다들 진정해.”

모험가들이 패닉에 빠지려는 찰나, 눈앞의 남성이 손바닥을 들어올리며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아직 아리엘 사제님의 대답을 못 들었잖아. 이 남자가 하는 말만 듣고 섣불리 단정 지을 셈이야? 어쩌면 남매일지도 모르잖아.”

“아하!! 남매라고 하니까 이해가 되네. 그렇죠 사제님?”

“.....”

아리엘은 느닷없이 건장한 수십 남성들의 시선을 뒤집어쓰자 어깨를 움츠렸지만, 곧 결심한 듯 자그맣게 입을 열었다.

“...맞아요.”

“예헤이! 거 봐!! 내 말이 맞잖아!!”

“어후 십년감수했네... 하기야 그렇게나 순수한 여신님이 남자를 만날 리 없...”

“남자친구 맞아요.”

“.....”

­정적.

일순간, 장내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누구도 섣불리 말을 꺼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모두가 굳어버린 머리를 굴려 방금 아리엘의 발언을 이해하고자 필사적이었다.

그리고 한 모험가의 괴성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들끓었다.

“우... 우오오오오오!!!”

“그, 그게 무슨 말이오!! 사귄다니...! 그렇게나 철벽같던 사제님이?!!”

“비상경보 코드 고블린 발령!!! 베라스틴 모험가들 싸그리 다 불러와!!!”

“씨발!! 늬들은 사제님이 이렇게 될 동안 대체 뭐 하고 다닌 거야?!!!”

“뭘 하긴!! 그럼 니는?!! 지도 아무것도 안 했으면서!!!”

“뭐 인마?!!”

“조용!!! 다들 조용!!!!”

눈앞의 남자가 우렁차게 외쳤으나 소란이 잦아들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짐짓 헛기침하여 목소리를 깔더니 애써 태연한 어조로 말했다.

“이 씨발... 흠흠... 형씨가 아리엘 사제님께 소중한 인물이란 건 잘 알겠군. 하지만 그렇다고 넙죽 알겠습니다 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나와 내기 하나만 하지 않겠나?”

“내기? 내가 왜.”

“그야 형씨도 이대로 돌아갔다간 곤란하지 않겠어? 이 녀석들이 아리엘 사제님을 건드린 사람을 그냥 놔둘 리 없거든. 어쩌면 야밤에 누군가가 뒤통수를 벽돌로 후려갈길 수도 있잖아?”

“그래그래!! 우리는 강함을 증명할 기회를 주는 거라고!! 사제님을 차지할 자격이 있는지 말이야! 우리가 형씨를 힘으로 꺾을 수 없다는 걸 알면 깔끔하게 포기하고 물러날 테니까.”

“그게 무슨 억지...!!”

­스윽.

부드럽게 손을 올려 아리엘의 뒷말을 가로막았다.

나는 눈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어깨를 다독여준 뒤 서서히 발을 옮겼다.

성난 군중 한복판으로.

“호오... 할 마음이 들었나? 솔직히 내뺄 줄 알았는데... 배짱 하나만큼은 칭찬하지.”

“그래, 한 판 붙자.”

“시원시원해서 좋군. 하지만 모험가로선 실격이야. 용기와 만용을 구별할 줄 모르는 놈들은 대개 일찍 죽었거든. ...규칙은 오랜 전통대로 하면 되겠지? 무기 없이 맨손으로. 상대가 항복하거나 기절할 때까지.”

“나야 문제없지. 길드 기물이 파손되면 변상은 누가 할 거야?”

“내가 하도록 하지. 물론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겠지만...! 사제님이 보는 앞에서 이 엄베르크 님이 손수 곤죽이 될 때까지 패주지!! 크하하하!!”

그가 본색을 드러냈다. 애초부터 증명이니 뭐니 했던 건 허울 좋은 명분에 불과할 터.

자기네들이 잠깐 도시를 떠나 있는 사이 생판 처음 보는 남자가 사모하던 여성의 옆자리를 꿰찼으니 어련할까.

주변을 둘러보니 그에 동조해 잔뜩 달아오른 모험가들이 보였다. 한껏 흥분해 발을 굴러대는 사내들은 꼭 말벌에 쏘인 오소리를 연상케 했다.

그토록 내가 아리엘의 면전에서 무참하게 얻어터지는 걸 보고 싶겠지.

아리엘이 등 뒤에서 조마조마하게 외쳤다.

“도란...! 그러지 말고 그냥 원만하게...”

“괜찮으니까 보고 있어. 금방 끝낼게.”

“하지만...!”

“괜찮다니까. 나 알잖아.”

여유롭게 몸을 풀었다.

나도 아무 생각 없이 제안을 받아들인 건 아니다. 아리엘이 모험가 사이에서 유명하다는 건 알고 있었던 만큼, 그녀를 연인으로 맞이하면 이런 트러블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것쯤은 예상했다.

끈질기게 들러붙는 머저리들을 떨쳐내고 문제의 여지를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내 이름을 들은 몇몇이 정체를 눈치채고 동요했다.

“잠깐...! 도란? 지금 사제님이 도란이라고 했냐...?!”

“도란이면... 그 새끼잖아...”

“저 투구랑 키... 깜둥이 맞는 거 같은데...?”

“뭐야, 걔가 누군데 그래?”

“그 왜 있잖아... 누더기에 낡아빠진 철검 하나 달랑 들고 다니던 놈. 무장이 달라져서 못 알아봤는데...”

“그런 모험가가 우리 길드에 있었어? 근데 그게 어쨌는데.”

“그게... 한 작년 봄 즈음부터 이 길드에 나타났는데 성깔이 엄청 더러워서 상위 모험가도 어지간해서는 안 건드려. 만년 F급인 주제에 이상하게 또 실력은 좋아서... 게다가 소문대로라면 저 투구 안에는... 아, 시작한다.”

“.....”

전방에서 사내가 손가락 뼈마디를 우드득 꺾으며 다가왔다. 가학적인 충동이 번들거리는 눈동자와 경쾌한 발걸음에선 약간의 주저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걸까.

놈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지껄였다.

“기회를 주지. 어디 먼저 한 번 공격...”

“그래? 땡큐.”

“....?!!”

사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룻바닥을 박차고 튀어나갔다. 그는 정말 곧바로 덤벼들 줄은 몰랐는지 눈을 크게 뜨며 당황했지만, 즉각 두 팔을 들어올리며 응전 태세를 취했다.

예상했던 대로의 반응.

나는 비릿하게 미소지으며 하단으로 육박해 무방비한 복부에 정권을 때려박았다.

­퍼어어억!!!

“으허헉?!!”

사내가 경악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날아가 테이블을 부수며 착탄했다.

먼지를 뒤집어쓴 모험가들이 콜록거리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자, 잠깐 뭐가 저렇게 빨라...?!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한 건가!?”

“아, 아니야...! 저놈은 방금 마나를 쓰지 않았어!! 완력이라고!!”

“바, 방금 뭔가 검은 게 몸 주위에서 일렁이는 것 같았는데...”

“이거 혹시 엄베르크가 지는 거 아냐...?”

“에이 설마... 그래도 C랭크 짬밥이 있는데. 저기 봐! 바로 일어나잖아!”

­콰드득..

남자가 잔해더미 사이에서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는 애써 자세를 바로잡고 반원 공간 안으로 돌아왔지만, 관자놀이에 굵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놈이 터진 입술을 손등으로 훔치며 읊조렸다.

“제, 제법이군...! 그래도 이젠 내 차례다! 이 엄베르크 님에게 도전한 걸 평생 후회하게 해주마!! 크하아아압!!!”

“.....”

그가 멧돼지처럼 저돌해와 주먹을 휘둘렀다. 나는 가뿐하게 최소한의 동작으로 회피하며 상대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놈이 무릎을 차올려 좌로 도약했고, 성급하게 머리를 노리자 고스란히 드러난 하복부를 팔꿈치로 강타하며 회전했다.

사내가 고통으로 찡그렸던 눈꺼풀을 크게 뜨며 황급히 가드를 들어올렸지만­

“늦었어.”

­뻐어어어억!!!

발차기의 궤도를 비틀어 관자놀이를 가격하니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가뿐하게 사내를 처리하고 고개를 들자 붕 떠버린 관중이 보였다.

나는 그중 입을 쩍 벌린 채 굳어버린 한 모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내뱉었다.

“야.”

“어.. 나, 나...?”

“그래, 너도 덤벼.”

“가, 갑자기 나는 왜...”

“왜긴 왜야. 너 아까 나한테 깜둥이라고 했지? 이외에도 불만 있는 놈들은 지금 덤벼. 한꺼번에 와도 상관없으니까 나중에 딴소리하지 말고.”

“.....”

모험가들이 멀뚱히 서로를 마주보았다. 하지만 열심히 눈알만 굴려댈 뿐 앞으로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기야, 나름 실력자로 통하는 인물이 쪽도 못 써보고 당해버렸으니.

하는 수 없지.

“야.”

“뭐, 뭐...?! 이번엔 아무 말도 안 했...!”

“나 꺾으면 이거 줄게.”

­티잉!

품 안에서 꺼낸 금화를 손끝으로 튕겨올리자 격한 반응이 터져나왔다.

“그, 금화...?! 저거 진짜 금화야!?!”

“이기기만 하면 금화를 준다고?! 완전 꿀이잖아!!”

“거짓말은 아니겠지...?”

“비켜!! 내가 간다! 오늘 의뢰는 이걸로 끝이다!!”

“.....”

단순한 놈들.

몇몇 모험가가 인파 사이에서 뛰쳐나왔다. 놈들은 서로를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동시에 삼면에서 쇄도했다. 마나 소양이 있는지 제법 위협적인 기세로 달려오는 사내들.

하지만 내가 누구던가.

기사 수백과도 단신으로 맞섰던 몸이다.

“뒤져라아아앗...! 커헉?!!”

“무, 뭐?!! 방금 뭐가 지나갔... 끄아아아악!!!”

“잠깐...! 난 그냥 다시 돌아갈... 푸커헉?!!”

“.....”

쉽다.

단도의 기운으로 가속하며 강타하자 놈들은 내 신속에 반응하지 못했다.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지는 모험가들을 보고 있자니 강해진 게 실감이 난다.

어쩌면 기사단장과 격전을 벌였던 게 실력을 한층 더 날카롭게 만들어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이후로도 부주의하게 몰려드는 모험가들을 상대하다 보니 활기가 넘쳤던 길드 건물은 어느새 바닥을 구르며 신음하는 환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나는 반파된 테이블에 걸터앉은 채 나지막이 읊조렸다.

“더 없어?”

한 모험가가 창백한 얼굴로 주춤주춤 물러나며 중얼거렸다.

“이, 이 정도로 압도적이라니... 혼자서 이렇게나 많은 수를...”

“...저 남자 이름이 뭐라고 했던가, 도란?”

“어떻게 저런 모험가가 아직 F급에 머물러 있지...?”

“.....”

반응을 보아하니 끝난 모양.

천천히 일어서자 사내들이 움찔했다. 그들은 얌전히 물러서며 내게 길을 터 주었고, 나는 맨 처음 시비를 걸었던 엄 뭐시기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의 멱살을 붙들고 일으켜 세웠다.

“야.”

­.....

“야!!”

“흐어억...!! 대, 대체 무슨... 히이익!?!”

“정신이 좀 드냐?”

“자, 잘못했어!! 내, 내가 졌으니까 제발...!”

“그러게 왜 되지도 않는 객기를 부려서... 앞으로는 기어오르지 말고 변상은 네가 해라.”

“알겠어!! 알겠으니까 이것 좀....!”

“.....”

천천히 손아귀에서 힘을 풀었다. 뚜둑거리는 허리를 펴고 주변을 둘러보니 다채로운 시선이 느껴졌다.

개중에는 압도적인 무력에 선망의 시선을 보내오는 이도, 두려워하는 이도, 그새 도박장이 열렸는지 판돈을 긁어모아 싱글벙글하는 웃는 이도 있었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광경.

한데 막 옷매무새를 다듬고 아리엘에게 돌아가려는 찰나, 길드 입구 쪽에서 소란스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누구냐?! 자꾸 누가 뒤에서 밀치는 거... 허윽?!!”

“뭐야 또 누가 왔어? 헉!!”

“어, 엄청난 미소녀다!! 이런 모험가가 우리 길드에 있었어?!”

“사제님의 빈자리를 메울 새로운 여신님이다!! 뭐해!!! 다들 안 받들어 모시고!”

““여신!! 여신!!””

“모두 길을 터라!!!”

“.....”

모험가들의 머리통 너머로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은 새로 등장한 신예를 찬양하며 기꺼이 길을 내주었다. 그 많던 인파가 썰물처럼 갈라지는 광경은 모세의 기적을 방불케 할 정도.

그리고 정체불명의 인물이 내 목전까지 도달하자­

“...이건 또 무슨 소란이에요.”

“아, 왔냐? 라디야.”

“네, 다녀왔어요 도란님. ...이 사람들 시끄러운데 죄다 내쫓으면 안 돼요?”

““.....””

모험가들의 절규가 울려퍼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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