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7화 〉 고블린 사냥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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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고블린 사냥 #5
한걸음, 또 한걸음.
통로를 나아갈수록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려왔다.
일정한 운율로 울려 퍼지는 강철의 노래가 협소한 통로에 메아리쳤다.
“도란님, 이건...”
“...그래.”
단조.
이 소리는 대장간에서 쇠를 벼릴 때 나는 소리다.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고,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의구심이 들었다.
대체 누가 이런 장소에서 쇠를 벼리고 있을까?
어두운 지하, 고블린 틈새에서.
뜨거운 열풍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즈음 우리는 드디어 소음의 진원지에 다다랐고, 나는 굳건한 철문을 걷어차며 단숨에 돌입했다.
그리고 목격한 건
“찾았다.”
어깨에 촉수가 돋아난 근육질 체구의 원로 고블린과 그 아래 놓인 시뻘건 모루.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촉수 달린 고블린.
하지만 나는 곧 맹렬한 위화감에 사로잡혔다.
“.....”
고블린이 조악한 돌도끼나 창을 만들어 쓰는 경우는 봤어도 대장일을 하는 고블린 따위 금시초문이었으니까.
그뿐만이 아니었다.
놈은 빛바랜 풀여치처럼 탁한 암녹색 눈동자로 내게 눈길을 한 번 주었을 뿐, 다시 눈앞의 무구를 단야하는 데 집중했다.
마치 불과 쇠 외에는 무가치하다는 듯이.
내게 일말의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그 모습에 떨떠름하게 응시하고 있자니, 아리엘과 라디가 제각각 무기를 겨누고 대장간 안으로 뛰쳐들어왔다.
“도란!!”
“저희도 가세할...! 도란님..?”
“.....”
손을 들어올려 가로막자 라디가 의아하게 올려다봤다.
하지만 곧 녀석도 이상을 눈치채고는 쇠뇌를 떨구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대장장이 고블린이라니...”
“...금속제 화살촉을 본 시점부터 혹시나 했지만 정말로 마주칠 줄은... 당연히 모험가 시체에서 약탈하거나 인간 대장장이를 납치한 줄 알았는데...”
“도란... 저 촉수는...”
“.....”
언제라도 뛰쳐나가 목을 벨 수 있도록 대비하던 중, 고블린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음을 눈치채고 숨을 들이켰다.
마법이 판치는 세상이니 고블린 대장장이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예로부터 병장기는 인간의 전유물이었기에.
수많은 검사의 이면에는 늘 대장장이가 있었다.
그들이 있었기의 강철 무구가 빛을 발하고 날카로운 칼날이 적을 멸했다.
그렇기에 특출난 것 하나 없는 인간이 몬스터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몬스터가 본격적으로 무기를 연마하기 시작했다면 어떨까?
복잡한 심경으로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천천히 놈에게서 시선을 떼자 그제야 대장간의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 넓은 홀 중앙에는 천장까지 맞닿은 용광로가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고, 숫돌과 집게를 비롯해 각종 손때 묻은 대장 용품이 구석에 정돈되어 있었다.
쇳덩이의 비릿한 향기와 연기 속여 섞여 나오는 철매, 시야가 일그러질 만치의 열화 속에서 갈탄 숨을 들이마시고 있자니 라디가 땀을 훔치며 내 귓전에 속삭였다.
“도란님... 아무래도 가까이서 확인해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렇긴 한데... 왜 얌전하지..? 지금까지 만난 고블린들은 전부 호전적이었는데...”
“저 촉수의 영향일까...?”
“...일단 말이라도 걸어볼게.”
검을 겨눈 채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해머를 내려칠 때마다 튀어오른 불똥이 로브에 맞닿을 정도로 근접했지만, 고블린은 여전히 작업에만 몰두할 뿐이었다.
“...야.”
....
“저기...? 괜찮다면 잠시 시간 좀...”
.....
코앞에서 말을 걸어봤지만 놈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손바닥을 흔들며 관심을 끌어봐도 마찬가지.
고블린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칼자루를 매만지며 난감하게 내뱉었다.
“자아가 없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냥 저희한테 관심이 아예 없는 것 같아요.”
“촉수 때문일지도 모르니 한 번 베어볼까?”
날끝으로 촉수를 절단하고자 팔을 뻗은 순간, 드디어 반응이 있었다.
그는 천천히 망치를 내려놓고 무심하게 우리를 곁눈질하더니 테이블 아래서 낡은 보따리를 하나 꺼내들었다.
그가 주머니를 뒤엎자 나무토막이 와르르 쏟아졌다.
고블린이 연매 낀 검녹색 손가락으로 나무토막을 골라내자 아리엘이 탄식했다.
“그건...!”
“...아는 거야?”
“.....”
아리엘이 대꾸도 하지 않고 성큼성큼 다가와 내 옆에 섰다.
“언니 위험...!”
“괜찮아. ...아마도.”
그녀가 고블린이 골라낸 나무토막을 들어올리자 단면에 적힌 글자가 보였다.
아리엘이 살짝 입술을 깨물며 단어를 읽었다.
“...뜨겁다, 철, 치다. 철을 쳐서 뜨겁게... 이건 아니고.. 철을 뜨겁게 치면? 이것도 아닌데...”
“...철은 뜨거울 때 쳐라?”
“앗...?!”
라디가 어깨를 움찔하며 반걸음 물러났다. 나 또한 고개를 드니 녀석이 놀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눈앞의 고블린이 미소를 지어 보였기에.
어금니가 불거진 탓에 다소 기괴했지만, 그건 틀림없는 웃음이었다.
고블린도 우리와 대화가 통한다는 걸 깨닫자 살짝 들뜨기라도 한 건지 이번엔 조금 더 빠른 동작으로 더듬더듬 퍼즐 조각을 맞춰나갔다.
“...이번엔 뭐야.”
“음... 인간, 우호적, 처음...?”
“이건 무슨 뜻인지 바로 알겠네요...”
“이 녀석은 대체...”
어째서 내 주변에는 이렇게 기이한 일이 자주 벌어지는 걸까.
망연히 고블린을 쳐다보고 있자니 이번엔 아리엘이 나무토막을 추려냈다.
고블린은 아리엘이 고른 단어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고개를 주억거리며 손을 놀렸다.
어렵사리 입술을 뗐다.
“뭐라고 한 거야 아리엘...?”
“그냥 인삿말. 그리고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물었어.”
“.....”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대답 여하에 따라 그간의 의문이 해소될 수도 있다.
우리는 침착하게 고블린이 동작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고, 뜨거운 대장간 안의 열기에 흘러내린 땀줄기가 턱을 타고 떨어질 즈음ㅡ
탁.
“어디 보자 그러니까...”
“같이 봐요 언니!!”
“나도...!”
대장, 전쟁, 보석, 신, 변화, 생물, 저주, 준비....
전혀 맥락을 파악할 수 없는 단어의 나열이었다.
라디가 땀에 젖은 머리칼을 넘기며 난처하게 말했다.
“...이걸로는 모자라요. 좀 더 구체적인 정보가 있다면 모를까... 다른 내용은 없어요...?”
“그렇다고는 해도 여기에 적힌 단어가 전부라...”
“잠깐만... 이렇게 된 거 아예...”
허리춤에 고정해두었던 수통을 떼어냈다. 돌킨에게 선물 받은 물품. 마나를 차단하는 미다스 금속이 다량 첨가된 고가의 물건이다.
혹여나 정령의 마력을 눈치채고 고블린이 몰려들까 봐 부락 내부로 들어오고 나서는 드러내는 걸 꺼렸지만...
됴란!
“그래, 갑갑했지? 란이야, 나오자마자 미안한데 잠시...”
.....
말을 멈췄다.
란이가 고블린을 발견하자 평소의 해맑은 모습에서는 상상할 수 없이 슬픈 표정을 자아냈기에.
고블린 또한 입을 다물며 내 품에 안긴 란이를 애석하게 쳐다보았다.
라디가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구전 중에 정령은 마물과 의사소통할 수 있다는 내용이...”
“...지금 란이가 고블린하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거야..?”
“어디까지나 구전이에요. 정령은 워낙 베일에 싸인 종족이니까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란이가 내 옷깃을 세차게 잡아당기며 고블린을 손짓했다.
정확히는 그의 어깨에 돋아난 검보랏빛 촉수를.
됴란...! 됴란!!
“도와달라고?”
“촉수를 떼어달라는 걸까요...? 란이도 감염되었던 경험이 있으니까 동질감을 느끼는 걸지도 몰라요...”
“...란이의 부탁이면 어쩔 수 없지.”
적이니 결국 척을 질 상대지만, 당장 동심을 지켜주는 것쯤은 해줄 수 있다.
검을 칼집에 갈무리하고 다가가려는 찰나, 고블린이 손바닥을 날 들어올려 막아세웠다.
얼떨떨하게 쳐다보자 그는 중금속의 독성으로 잔뜩 부르튼 손가락을 움직여 새로운 단어를 맞춰나갔다.
“...죽다, 곧, 할아버지..”
“....고블린의 수명은 기껏해야 열두 살 정도예요. 그중 대부분이 청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죽는 걸 고려하면 이 고블린은 부족 안에서도 상당히 원로한 편에 속할 거예요.”
“어차피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건가...”
평소 고블린이라면 치를 떨 만큼 증오하지만, 어째선지 이 고블린까지 미워할 수는 없었다. 그의 입가에 맺힌 선한 웃음을 보고 있자면 메라와 해일, 울시 등 몬스터임에도 내게 호의를 보내왔던 그리운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잠시간의 문답이 끝나자 그는 힘겹게 숨을 몰아내쉬며 다시 눈앞에 집중했다.
식어버린 철덩이를 부집게로 집어 불길이 이글거리는 화로에 달구고 재차 단조질을 시작한다.
아리엘이 물망초빛 눈동자에서 마력 특유의 광채를 발하며 그를 진찰하더니 입술을 꾹 다물며 안타까워했다.
“생명이 꺼지기 직전이야... 정말 얼마 남지 않았어. 앞으로 한 시간도 못 버틸 거야.”
“...검이 거의 완성되어가고 있어요. 마지막 혼을 불태워서 작품을 마무리하려나 봐요.”
“.....”
대장장이는 대장간에서 죽는다.
비록 고블린이었지만 그는 어엿한 대장장이였다.
공기중에 딱한 침묵이 감돌자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감을 짐작했는지 란이가 다급하게 내 로브를 잡아끌었다.
됴란!! 됴란!!!
“...안 돼.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대.”
됴란!!!!
“....우리도 어쩔 수 없어.”
.....
란이가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녀석이 내 어깨를 두드리고 잡아당기며 투정을 부렸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등을 토닥여주는 것밖에 없었다.
아리엘이 애틋하게 말했다.
“...저 촉수가 생명력을 빨아들여서 일찍 노쇠하게 만든 것 같아. 어쩌면 지능이 올라간 이유와 관련이 있을 수도...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것도 저 촉수의 마력 때문이지만.”
“...기생하면서 양분으로 숙주의 생명력을 흡수한다는 얘기야..?”
“응... 적어도 마력시로 봤을 땐 그래. 지금 이 순간에도 고블린의 기력을 빨아들이고 있어. 대신 혈관에 이상한 마나를 불어넣는 중이고... 모종의 폭주 상태라고도 할 수 있을 거야.”
“...그럼 그때 란이를 조금만 더 방치했었더라면...”
“응... 틀림없이 죽었을 거야.”
“.....”
나는 내 품 안에서 훌쩍거리는 작은 생명체를 세게 끌어안았다.
이내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았다.
살이 익을 듯한 열기에 덧바른 진흙이 흘러내렸지만 누구 하나 의식하지 못했다.
고블린이 자신의 육체를 장작 삼아 생명을 불꽃을 불태우는 광경은 기묘하고, 또 장엄했기에.
불길이 흐르는 대장간과 비강을 파고드는 강렬한 쇠와 불의 냄새, 그의 망치질에 따라 서서히 변화하는 쇳덩어리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가 종막에 다다랐다.
그가 땀방울 뒤섞인 양동이에 뜨거운 날붙이를 담금질하자 물이 끓어오르며 자욱한 연기가 시야를 가렸다.
안개가 걷히고 난 뒤 내가 목격한 건 자신의 마지막 걸작을 들어올리며 흡족하게 웃는 한 장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곧 그의 몸체가 기우뚱 무너저내렸다.
재빨리 뛰어들어 부축하자 라디가 외쳤다.
“도란님! 나무패를 어서!!”
“.....”
망치를 쥐듯 구부러진 손가락에 목패가 든 주머니를 쥐여주자 그가 알음알음 단어들을 맞춰나갔다.
본인, 동료, 강요, 무기, 만들다.
이, 검, 가치, 인정, 너의 것.
앞, 강력, 대장, 저주.
조심, 방심, 금물.
정령, 소중.
무운.
.........
그 말을 끝으로 그가 움직이는 일은 없었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영원히.
“.....”
나는 천천히 그의 눈동자를 감겨주었다.
서서히 그를 품에 안고 일어섰다.
끔찍하게 날뛰는 촉수를 떨쳐내고는 담담하게 걸어 불타오르는 용광로로 향했고
장례를 치뤄주었다.
대장장이의 상징과도 같은 시뻘건 불길 속으로.
격벽을 닫아 완전히 그를 작별하고 뒤를 돌아보자, 란이를 끌어안고 진정시키는 아리엘과 차갑게 식은 단검을 들고 날 올려다보는 라디가 보였다.
그녀가 나직하게 읊조렸다.
“...도란님 거예요.”
“.....”
다가가서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어때요?”
“....딱 맞아.”
손안의 무구를 들여다봤다.
고전적인 대거 형태의 양날 단검. 날이 죽기 쉬운 컨벡스 그라운드형 구조임에도 첨예하게 날끝이 서 있다.
잔 기교를 부리지 않은 외형은 자칫 투박해 보일 수 있었으나 크로스 가드에는 붉은 보석이 박혀있었고, 일체가 한 몸으로 이루어진 회색 도신은 금속 재질이 분명함에도 석재를 연상시켰다.
이교도 광장에서 기사단장의 일격을 받고 녹아내린 코볼트 단검의 빈자리를 채울 무기.
“.....”
검은 눈동자에 신념이 서렸다.
나는 로브를 휘날리며 발길을 돌렸다.
이 앞에 도사리고 있을 무언가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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