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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하렘 생존기-234화 (234/375)

〈 234화 〉 불청객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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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불청객 #3

중후한 응접실 문이 열렸다.

문턱 밖으로 발을 내디디자마자 황급히 달아나는 밝은 주홍빛 머리칼의 접수원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재빨리 녀석의 손목을 낚아채며 읊조렸다.

“어디 가 인마.”

“읏... 도, 도란.. 대화는 잘 끝난... 힉...!”

“...보시다시피.”

카렌은 천연한 모습을 가장하고자 했지만, 니아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벼락 맞은 토끼처럼 까무러졌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허리춤에 매달아두었던 보따리를 건넸다.

“자.”

“이, 이건... 이게 뭐야...?”

“직접 열지 않는 게 좋아. ...저번에 수주했던 고블린 토벌 의뢰. 설마 까먹은 건 아니겠지? 이것 때문에 진짜 죽을 뻔했는데.”

“아, 아아... 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지...!”

“....”

보아하니 새까맣게 잊고 있었구먼.

“...근데 죽을 뻔했다니? 서쪽 숲에서?”

“그래, 이따가 열어보면 알겠지만 죄다 홉고블린 귀로만 모아왔어. 고블린 킹도 한 마리 섞여 있고. 이상 사태야.”

“이상 사태... 혹시 고블린 중에 촉수를 달고 있는 녀석도 있었어...?”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

눈매를 좁히자 카렌이 내 안색을 살피며 고민했다.

그녀는 내게 팔짱을 낀 니아를 의식하고는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그건 나중에 얘기하자.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길드도 요즘 그것 때문에 난리야. ..그보다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는데... 도란, 너 니아 님.. 과는 무슨 관계야?”

“관계라고 할 것도 없어. 그냥...”

“친구!!”

“...라고 하네.”

카렌이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니아가 악수를 건네자 얼떨떨하게 손을 맞잡았다.

“앞으로 잘 부탁해~!”

“아, 아 네.. 넷...!”

그녀가 눈빛으로 설명을 촉구했지만 나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아니 그럼 또 뭐라고 해명해야 하는데.

“...그럼 난 이만 가볼게. 당분간 퀘스트 수주 못 할 것 같으니까 그렇게 알고, 요즘 어수선한 모양이니까 성벽 밖에 혼자 돌아다니지 마. 고블린 부락은 나올 때 식량에다가 독을 타 두었으니 아마 재건하기는 힘들 거야.”

“....나중에 제대로 얘기 들려줘.”

“그래.”

손을 내저으며 층계로 향했다. 이 아래로 내려가면 사람들이 쫙 깔려있을 테지만, 선택지가 없다.

창문으로 뛰어내릴까도 고민했지만 이미 건물 밖에는 인파가 쫙 깔린 상태고.

이럴 땐 괜히 피해 다녀서 소문을 무성하게 만드는 것보단 정면돌파 하는 편이 낫다.

착잡한 심경으로 난간을 짚으며 내려오자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차츰 명료해졌다.

“...야, 아까 그 모험가가 올라간 지 얼마나 됐냐?”

“글쎄... 한 십 분 정도 지난 거 같은데 더 걸리려나?”

“대체 무슨 사이길래... 이곳에 니아 님이 방문했다고 해서 하던 일도 전부 내팽개치고 달려왔는데. 붉은 매 길드원이 베라스틴에 방문한 건 최초 아니야?”

“아마 그럴걸...? 이런 변방 도시에 누가 관심이나 갖는다고.. 그 도란이란 새낀 대체 뭐야? 혹시 입단 제의를 하러 온 걸까?”

“에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듣자 하니 걘 F등급이라던데. 붉은 매 길드원은 비전투원도 최소 C랭크 이상부터 받는 거 못 들었어? 게다가 반년 넘도록 승급 한 번 못했다잖아.”

“잠깐 도란? 아까 올라간 모험가 이름이 도란이었어? 도란이라면 분명...!”

“도둑놈이다!! 치유소의 여신을 훔쳐 간 거로도 모자라서 양다리까지 걸친...!!”

“제기랄!! 설마 니아 님마저!!!”

­벌컥!!!

“호외요!! 다들 주목!!! 지금 베이커 탐정 길드에서 도란이라는 남자의 신원을 조사해봤는데 몇 달 전 지하수로에서 코볼트 킹을 쓰러뜨렸다던 의문의 신인이랍니다!!! 심지어 지난번 얼음 호수에서 폭주한 정령과도 관련이 있을 거라는 제보가...!!”

““뭣이...! 그렇다면 정말로 입단 권유를....!!””

“.....”

정면돌파고 나발이고 그냥 조용히 피해 다닐걸.

로비까지 단 몇 걸음을 앞두고 잠시 망설였지만, 찰나 나무 발판이 움푹 꺼지며 나는 계단 아래로 넘어지듯 발을 내디뎠고­

“.....”

““......””

수많은 시선과 정면으로 맞닥뜨렸다.

잠시간 묵직한 침묵이 흐른 뒤, 한 남자가 떨리는 손가락을 들어올려 내 머리칼을 가리켰다.

“검은... 머리....?”

“....”

이렇게 된 이상.

“....잠깐 실례 좀 하겠습니다.”

“소년...?”

­덥석.

나는 오른팔에 안긴 니아를 끌어당겨 밀착시켰다.

그녀는 우아한 황금빛 눈동자를 빠르게 깜빡였으나 이내 배시시 눈웃음지으며 내게 기대고는 살그머니 꼬리로 허리를 휘감았다.

푹신하고 바람직한 무언가가 팔뚝에 느껴졌지만 불가항력이다.

즉각 사방에서 격한 반응이 터져나왔다.

“뭐, 뭣이...!! 설마 진짜로 연인 사이었어?!!”

“저, 저...! 저놈이 천사처럼 순진무구한 니아 님을...!!”

“응징해야 해!! 감히 세 치 혀로 아무것도 모르는 니아 님을 꾀어내다니! 결투다!!”

“...어떻게 하게. 너 저번에 그랬다가 줫털렸던 거 기억 안 나?”

“저놈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크흑...! 치유소의 여신이랑 귀여운 수인 소녀로도 모자라서 이제는 니아 님까지...!! 절대 용서 못 한다!!”

“......”

모험가들이 눈에서 피눈물을 쏟아낼 기세로 날 노려보았다. 마치 철천지원수라도 본 듯한 표정.

하지만 저번에 당한 게 있는 탓에 섣불리 다가오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래서 조기 교육이 중요하다는 건가.’

나는 니아를 팔에 매단 채 천천히 길드 로비를 거닐었다. 도중에 몇몇 모험가가 말을 걸 요량으로 접근했지만, 차갑게 노려보자 압도되어 더 이상 다가오지 못했다.

큰 키와 진한 이목구비, 유명 하이랭커를 연인으로 거느린 정체불명의 인물에 대한 의문과 생소한 흑발의 존재감이 더해지자 겉으로 느껴지는 포스가 장난 아니었을 테니.

마른침을 삼키며 우물쭈물하는 모험가들을 넘어서 정문 밖으로 나오자 여전히 옥신각신하는 엄 뭐시기 사내와 구경꾼이 보였다.

“다들 꺼져!! 오늘은 쥐새끼 한 마리 안 들일 줄 알아!!! 아카이아 길드에 들어가려면 우선 이 강철 주먹 엄베르크를 꺾어야...!”

­툭툭.

“누구냐!! 아까부터 이 몸을 쿡쿡 찌르는... 도, 도란 님...?! 다, 당신입니까!?!”

“그래, 그동안 수고했다.”

“투, 투구는 대체 어디... 그, 그보다 니아 님?!!”

“안녕!”

그녀가 쾌활하게 손을 흔들었다.

동시에 길드 내부로 난입하고자 벼르던 사내들로부터 함성이 튀어나왔다.

그들은 베르크 일행을 뿌리치고 달려들었으나, 다정한 연인처럼 날 끌어안은 니아를 보고 우뚝 자리에 멈춰섰다.

한 남자가 손을 부들부들 떨며 날 가리켰다.

“니, 니아 님... 만나 봬서.... 영광입니다... 한데.. 그 남자와의 관계는...?”

“....”

그녀는 곧장 대답하려 했으나 내 얼굴을 한 번 올려다보곤 무슨 꿍꿍이인지 새침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글쎄... 잘 모르겠네...? 무슨 사이인지 네가 한 번 맞혀볼래?”

“그, 그... 그럼 설마 소문이 사실...”

“움? 무슨 소문?”

“.....”

니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더욱 끌어안자 남자는 입술을 달싹이다 얼굴을 붉히며 물러났다.

이에 몇몇 호기로운 남성들이 뒤편에서 대열을 치고 나와 한바탕할 기세로 다가왔으나, 니아가 눈을 가늘게 떠 희미한 살기를 흘려보내자 말 그대로 맹수 앞에 선 먹잇감처럼 까무러쳤다.

나는 입을 쩍 벌리고 아연실색한 엄베르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난 이제 가볼게. 고생했어.”

“다, 당신은 대체...”

“뭐... 그렇게 됐다.”

“....”

그는 여러모로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차마 날 멈춰 세울 용기는 내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앞길을 가로막은 인파를 내려다보며 고했다.

“꺼져.”

““.....””

힘들이지 않고 얼어붙은 군중을 지나쳤다.

길드 부지를 벗어나자 늦게나마 소란을 듣고 몰려든 사람들이 까치발을 세워가며 난리를 피웠지만, 내게 꼭 안겨 있는 니아를 보고 못 박힌 듯 자리에 굳어버렸다.

“.....”

이제 내가 검은 머리라는 소문이 도시에 쫙 퍼지겠군.

그녀를 한쪽 팔에 매단 채 동쪽 가도를 부지런히 나아가 인적이 뜸한 장소까지 도달했을 무렵, 나는 주변에 듣는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며 입을 열었다.

“...아까 왜 대답 안 한 거예요?”

“응? 뭐 말이야?”

“무슨 관계냐고 물었을 때 말이에요. 사람들이 오해하잖아요.”

“응? 오해하라고 한 건데? 소년도 그럴 생각으로 나한테 팔짱 낀 거 아니었어?”

“.....”

묘한 데서 눈치가 빠르단 말이지...

그녀의 말대로 사이좋은 모습을 연출했던 건 의도된 행동이었다. 어차피 같이 돌아다니다 보면 나에 관련된 소문이 도시에 쫙 퍼질 텐데, 기왕 이렇게 된 거 차라리 연인으로 오해받는 편이 낫다.

그래야 어쭙잖게 이상한 수작을 부리는 놈이 줄어들 테니.

나야 뭐 그렇다 쳐도 연인이라는 루머가 퍼져나가면 니아가 불편할 수 있으나 무턱대고 찾아왔으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네. 전 표면상으론 F랭크라 사람들이 얕잡아 보니까요. 그쪽이랑 특별한 사이라고 오해받으면 적어도 니아 님이 두려워서 함부로 덤비지는 못할 거 아니에요.”

“음... 나야 상관없지만... 내가 던전으로 돌아가고 나면 어떻게 할 건데?”

“그건... 젠장.. 일단 나중에 생각해봐야죠.”

“그래? 소년도 고생하네!”

그녀가 해맑게 웃으며 더욱 안겨들었다.

반대로 내 심정은 착잡해졌지만.

망연히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문뜩 니아가 내 허리춤을 쿡쿡 찌르며 물어왔다.

“음... 소년, 근데 지금 나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뭐... 일단 아까 말했던 대로 식당이라도... 하아.”

“....?”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오기 전 라디와 아리엘과 같이 점심을 먹기로 했던 게 기억났다.

그렇다고 집에 들르면 필연적으로 니아를 데리고 가야 할 텐데 그건 싫다.

오늘 오후에는 두 녀석과 오붓하게 보내기로 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일단 오늘은 대충 배만 채우고 숙소를 찾아드릴 테니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하지만 저도 베라스틴을 자세히 아는 건 아니니 어느 정도 감안...”

“괜찮아! 왠지 소년이랑 돌아다니면 재밌는 일이 잔뜩 생길 것 같아!”

“그럼 그건 그렇다고 치고... 돈은 있어요?”

“돈?”

“네, 설마 무일푼으로 여기까지...”

“음... 일단 아실리한테 조금 받아온 게 있긴 한데 내가 물가를 잘 몰라서... 이 정도면 충분할까?”

­쩔그덕.

그녀가 꼬리를 움직여 숏팬츠의 뒷주머니에서 자그마한 동전 지갑을 꺼냈다.

아마 금화라도 든 모양인데...

“뭐, 챙겨왔다면 다행이고... 한번 확인해볼...”

­털썩!

찰나, 지갑을 열자마자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주머니 안에서 쏟아진 건­

“배, 백금화...?”

금화보다 조금 더 커다랬으며, 영롱한 백금빛 광채를 내뿜는 동전이었다.

시야가 울렁인다.

“왜 소년? 무슨 일 있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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