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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하렘 생존기-235화 (235/375)

〈 235화 〉 불청객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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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불청객 #4

길거리로부터 들려오는 소음이 일그러졌다.

이교도를 도륙하고 내장을 뒤집어썼을 때도 멀쩡했던 속이 뒤틀렸다.

식은땀 한 줄기가 등골을 타고 흘러내린다.

“무슨 일 있어 소년? 표정이 안 좋은데?”

“이, 일단 주워 담죠...!”

황급히 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주워담았다. 주머니 안에서 나온 백금화는 총 다섯 닢. 내 기억이 맞다면 금화 100개와 맞먹는 액수다.

일반 서민의 주택을 몇 채나 사들이고 남을 거액을 이 여자는 용돈 삼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닌다는 얘기.

행여나 누가 볼까 봐 재빨리 그녀의 뒷주머니 안에 동전 지갑을 쑤셔박았지만, 이미 주변에는 니아의 목소리를 듣고 온 구경꾼이 몰려있었다.

나는 예상외로 가녀린 그녀의 손목을 다소 난폭하게 움켜쥐며 말했다.

“젠장...! 일단 여기서 벗... 뭐야! 얼굴은 갑자기 왜 붉히고 그래요?!”

“으, 으응? 그... 소년 방금 네가...”

“일단 달려요!! 불평은 나중에 들어줄 테니...!!”

잽싸게 내달렸다.

아무리 A랭크인 니아라고 하더라도 압도적인 금전은 사람들의 판단력을 흐리곤 하니까.

만일 그녀가 강도나 소매치기라도 당한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만 해도 두렵다.

‘아마 하루종일 바닥에 묻은 피를 닦아내야 하겠지.’

그녀가 상대를 피떡으로 만들어버릴 테니.

아직 정오도 되지 않은 시간부터 냅다 뜀박질하자 행인들이 우리에게 의아한 시선을 보내왔지만, 곧 내 옆 인물의 정체를 깨닫고는 탄성을 터트렸다.

나는 몰려드는 인파를 뿌리치고 숨이 차올 즈음에야 무릎을 짚으며 자리에 멈춰섰다.

“헉.. 헉... 이제 다 따돌렸나? ....괜찮아요?”

“.....”

슬쩍 옆을 쳐다봤지만 니아는 귀신처럼 땀 한 방울조차 흘리지 않았다.

그녀가 아리송하게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응... 방금 왜 뛴 거야? 놀이?”

“그게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무방비하게 지갑 좀 꺼내지 마세요! 금화도 모자라서 백금화라니... 베라스틴에선 잘 쓰이지도 않는 통화를...”

“응? 먼저 보여달라고 한 건 소년이었잖아?”

“그땐 그렇게 많이 들고 왔을 줄 몰랐죠! 금화 정도였으면 그냥 웃으며 넘겼겠는데...”

“근데 그게 왜?”

“왜라니 그걸 말이라고! 혹시 니아 님이 소매치기랑 시비가 붙어 싸우기라도 하면...”

아니.

하이랭커에게 상식을 강요한 것부터가 잘못이다.

나는 내 실책을 깨닫고는 한숨을 내쉬며 화제를 돌렸다.

“아니 그건 그렇고... 싸움하니까 생각난 건데 니아 님 건틀릿은 어디다 두고 오셨어요?”

“응? 아, 그거? 아실리가 가지고 있어.”

“네? 아니스 님이요?”

“응, 난 힘 조절이 미숙해서 건틀릿을 끼면 스치기만 해도 사람이 터지거든! 넌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고 하면서 뺏어갔어. 모험가한테서 무기를 압수하다니 정말 너무하지 않아?”

“...그러네요.”

정말 현명한 판단이었습니다.

아까 얻어맞고 아직도 얼얼한 등을 매만졌다. 만약 그녀가 쇳덩어리를 손에 낀 상태였더라면 지금쯤 나는 삼도천을 건너고 있었겠지.

내 어떤 점이 그녀를 즐겁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니아는 손바닥으로 입가를 가리고 쿡쿡거리더니 꼬리를 살랑이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음... 그래도 확실히 이곳에 오길 잘했어!”

“...왜요.”

“응? 그야 벌써 재밌어지기 시작했는걸? 베라스틴이란 곳에도 처음 와보고, 여러 사람도 보고, 누군가랑 팔짱을 끼고 걸어보는 것도 처음이고! 그리고 또...”

니아가 살그머니 꼬리 밑동을 매만지며 얼굴을 붉히더니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의아하게 바라보기도 잠시, 이번엔 그녀가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빨리 밥 먹으러 가자 도란! 내가 살게!!”

“음... 뭐 드시고 싶으신데요? 혹시 원하시는 종류라도 있어요? 고기라던가...”

“아무거나!! 어젯밤부터 쉬지 않고 달려왔더니 배가 등딱지에 달라붙을 지경이야! 꼬르륵거리는 소리 들려?”

“...그러면 고급 레스토랑으로 안내해 드릴까요? 너무 싼 데는 좀 그렇죠?”

“응? 난 정말로 아무거나 괜찮... 킁...”

불현듯 니아가 코를 움찔하더니 눈을 감고 냄새를 맡았다.

그녀가 내 손을 붙잡고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크헉?! 자, 잠시만 니아 님!!”

“따라와 소년!!!”

“으흑...! 이, 이러다 팔 빠지겠어요!!”

태풍에 휩쓸리는 가로수처럼 이리저리 휘날리며 따라가다 보니 니아가 한 점포 앞에서 급격하게 멈춰섰다.

그녀가 관성으로 튕겨나가는 내 목덜미를 붙들며 외쳤다.

“소년! 이거 보여?!!”

“우읍... 저 잠시... 속이....”

“엄살은...! 정신 차려!!”

­팡!

“커헉?!!”

어째 손바닥이 고블린 킹보다도 맵다.

화끈거리는 등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들자 뒤집게를 손에 든 채로 굳어버린 노점상 주인이 보였다.

그의 앞에는 잘게 썬 야채와 고기가 뒤섞인 반죽이 철판에서 노릇노릇하게 익어가고 있다.

“...부침이네요. 밀가루 반죽에 잘게 썬 재료를 넣고 기름에 부쳐 낸 음식이에요. 이곳에선 흔한데 한 번도 못 먹어봤어요?”

“부침? 처음 봐... 맛있겠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주위를 둘러보니 이 골목 일대가 전부 노점이었다.

일단 니아를 데리고 화려한 간판들을 지나쳐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자 간단히 먹거리를 가져와 먹을 수 있도록 마련된 벤치가 나왔다.

그녀를 의자에 앉히며 말했다.

“여기 앉아 계세요. 금방 돌아올 테니까 어디 딴 길로 새지 말고요.”

“응? 어디 가게? 설마 날 버리고 가는 건...!”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그런 짓을 해요. 가서 음식 주문해올 테니까 얌전히 기다리고 계세요. 말도 안 하고 사라지면 저 진짜 화낼 거예요.”

“응! 알겠어!!”

“.....”

못 미더운데...

그렇다고 딱히 좋은 수가 있는 건 아니지만.

한숨을 푹 내쉬며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자 좀전의 포장마차가 보였다.

허리를 숙여 차양막 아래로 들어서니 노점 주인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손가락질했다.

“다, 당신은... 방금..!!”

“네, 그건 그렇고... 이거 2인분 주시겠어요?”

“아, 아니 그보다...!! 조, 조금 전 그 아름다운 수인 소녀는 소, 소문의 니아 양이 맞나...?!”

“아뇨, 그냥 비슷한 사람이에요.”

“그럴 리가!! 지금 베라스틴에 니아 양이 방문했다고 소문이 파다한데! 그렇게 닮은 인물이 또 있을 리가 없지 않나!!”

“.....”

나는 슬쩍 주위를 둘러보고는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며 나직하게 물었다.

“아니... 무슨 연락망이라도 있어요?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골목까지 소식이 퍼져요?”

노점성이 국자로 반죽을 저으며 대답했다.

“나도 방금 안 걸세. 지금쯤이면 손님들이 몰려들어야 정상인데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게 아니겠나. 그래서 뛰어가는 한 청년을 붙잡고 물어보니 니아 양이 이곳에 와서 죄다 구경하러 몰려갔다지.”

“아니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대체 어떻게 한눈에 바로 알아본 건데요?”

지구처럼 사진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그가 당연하다는 듯 호통치며 말했다.

“옛끼! 아무리 모험가가 아니라고 해도 니아 양을 모를 리가 있나! 토끼 궁뎅이처럼 둥그스름한 귀! 보석처럼 커다랗고 똘망한 눈망울! 천금을 들여서라도 한 번 만져보는 게 소원인 호피 무늬 꼬리! 누가 보아도 니아 양이지 않나?! ....서쪽 광장에 가보면 화가들이 그녀를 모델로 한 초상화를 팔고 있을 거야.”

“초상화라...”

그래서 다들 한눈에 알아봤구먼.

이렇게 들으니 그녀의 인기가 새삼 체감된다.

턱을 짚으며 납득하자 상인이 국자를 퍼올리며 말했다.

“...그래서, 고기가 섞인 거랑 야채만 들어간 게 있는데 어떤 거로 하겠는가?”

“아, 고기로 주세요. 가능한 한 많이 담아주시고요. 돈은 먼저 낼 테니 요 근처 다른 점포에도 다녀올 동안 포장해 주실 수 있으세요?”

“그래, 니아 양이 먹는 거니 내 특별히 푸짐하게 담아주지! 다른 것도 사갈 거면 저기 저 파란 간판 보이나? 내 친척이 운영하는 꼬치구이 가게인데 저기서 사가게. ...편견 없는 녀석이니 아마 별말 없을 거야.”

“...감사합니다.”

그가 내 머리를 힐끗 쳐다봤기에 멋쩍게 고개를 숙여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후드조차 없이 대로에서 머리칼을 드러내고 다니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지만, 라디에 더불어 아리엘마저 날 긍정해준 게 요인했나 보다.

모두가 날 기피한다고 한들 그녀들만큼은 곁에 남아주리라는 걸 아니까.

결정적인 계기는 니아가 부추긴 탓이지만은.

노점상 아저씨가 일러준 대로 옆 점포에서 꼬치구이까지 구매한 뒤 니아가 기다리는 테이블로 향했다.

한가득 퍼담은 군것질거리에 두 손이 묵직했지만 그에 반해 발걸음은 가벼웠다. 아무리 불쑥 찾아왔다고 한들 니아는 내 은인이고, 그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게 싫을 리 없으니까.

하지만 막 벤치에 돌아왔을 때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몇 살이야?”

“그러지 말고 한번 들어 봐. 내가 좋은 걸 아는데...”

“....”

모히칸 헤어스타일에 피어싱. 비쩍 마른 사내와 문신투성이 거한. 가벼운 언동에선 경박함이 묻어나왔고, 어깨와 팔목에는 징이 잔뜩 박힌 장신구를 하고 있다.

‘신종 자살법인가...?’

더 볼 것도 없겠지.

나는 손아귀에 든 먹거리를 내려놓고 다가가 거한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야, 너희 뭐냐.”

“까, 깜짝이야! 사람이 말을 걸 땐 인기척이라도...”

“닥치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

“부외자는... 커흑?!!”

발등을 짓밟자 살이 뭉개지는 감촉이 밑창을 타고 내달렸다.

남자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튕기듯 물러났지만 나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대로 복부에 주먹을 올려치자 거구가 들썩였고, 놈이 고꾸라지기 전에 오른발을 감아차 날려보냈다.

거한은 그것만으로 담벼락을 부수고 혼절했다.

“.....”

이런 삼류 양아치를 상대로는 검을 뽑을 필요도 없다.

자세를 고쳐잡으며 노려보자 나머지 한 놈이 허둥지둥 달아났다.

“히이이익...!! 사람 살려!!”

“...어딜.”

발치의 돌멩이를 차올려 정확히 종아리를 가격하자 사내는 균형을 잃고 성대하게 넘어졌다.

나는 천천히 다가가 놈의 멱살을 붙들고 담벼락에 처박았다.

“야.”

“으, 으아악!! 사, 살려주세요...! 저, 저희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변명할 여지가 있나?”

“저, 정말입니다 믿어 주세요...! 이, 이것 좀 보십시오!!”

“뭔데 이건 또. 만약 개수작을 부리는 거면...”

“히익...!”

남자가 웬 양피지를 건네왔기에 손아귀에서 힘을 풀고 내용을 확인했다.

양피지에 적힌 글귀를 읽어내리자...

....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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