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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하렘 생존기-237화 (237/375)

〈 237화 〉 불청객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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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 불청객 #6

물어보기가 망설여졌다.

그녀의 동공에 서린 이채가 섬뜩한 빛을 띠었기에.

아마 지금 나누는 대화는 한없이 붉은 매 길드의 기저에 근접한 내용일 터. 외부인은 알아선 안 되는 이야기라는 직감이 들었다.

A랭크 집단의 창립 이유.

하지만 결국 호기심이 앞섰다.

“그... 목표라는 게 뭐에요? 원래는 제가 알면 안 되는 내용이죠...?”

“그야 그렇기는 하지만~ 그렇게 겁먹을 필요는 없어! 언젠가 세상을 지배하겠다! 같이 거창한 건 아니거든. 솔직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한 범죄자를 쫓고 있어. 붉은 매 길드는 그 사람을 잡기 위해 아실리가 만든 집단이야.”

뭐야...

“....걱정했던 것만큼 대단한 이유는 아니었네요. 그걸 왜 비밀로 하는 거예요? 범죄자를 잡는 거면 대외적인 명분도 충분하고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은데.”

“음...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대상이 문제야. 여러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서 선뜻 공표할 수가 없거든! ...라고 아실리가 말했어.”

“그 범죄자가 누군데 그래요?”

“거기까진 말해줄 수 없어! 네가 우리 길드의 정식 단원이 된다면 모를까~.”

“.....”

아니, 잠깐만... 이와 비슷한 얘기를 이전에도 들었던 것 같은데...

“...설마 그 남자 머리가 붉은색이에요? 던전 2계층에 출몰했던 대규모 도적단의 수장을 맡은...”

“어, 어어...? 소년이 그걸 어떻게 알아...?”

“.....”

적중했나.

붉은 매 길드가 던전에 방문한 것은 계층 공략만이 목적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하위 계층 진출에 집착하지 않고 암시장에 머무른 행보도 이해가 간다. 아마 줄곧 그 도적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있었겠지.

하지만 그 남성이 아니스 님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을 줄이야.

‘그러고 보니... 둘 다 머리색이 같았지.’

아니스와 도적단 수장 모두 붉은 머리칼이었던 것이 떠올랐다. 이곳에선 적발이 그리 드문 것도 아니니 간과했지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문뜩 한 기억의 편린이 뇌리를 스쳤다.

톱날 단검.

아니스와 도적단 수장 모두 톱날 단검을 소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남자와 아니스가 같은 공작 가문 출신이 아니었을까.

내 가정이 맞다면 조금 전 니아가 말한 ‘여러 이해관계’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녀가 명확히 범죄자라고 지칭했으니 남자는 아마 가문에서 제명된 상태일 터.

그리고 이는 아니스 가문의 터부일 것이 분명하다. 아무리 파문되었다고는 하나 공작 가문의 혈육이 모반죄로 치부될 수도 있는 행위를 저지르고 다니다니.

그렇다면 아니스가 그 남자를 추적하기 위해 붉은 매 길드를 창립했다는 것까지 모든 아귀가 들어맞는다.

하지만...

‘왕실특무대를 조직해서 쫓게 할 정도면 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틋콩과 로닌 또한 그자를 추적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던전 2계층에서 거대 마물과 싸우던 날 발견했던 것이니까. 심지어 도적단 수장도 자리를 뜨기 전에 누군가가 자신을 뒤쫓고 있다는 뉘앙스의 말을 했다.

귀족처럼 곱상한 얼굴에 묘하게 세련된 어조라 생각했던 것도 전부 혈통 때문이었을 줄이야.

순간 머리를 강타하는 듯한 충격에 발길을 멈추었지만, 문뜩 아래쪽에서 소맷자락을 잡아당기는 감촉이 느껴졌다.

고개를 내리자 니아가 걱정스러운 눈망울로 날 들여다보고 있었다.

“...소년 괜찮아? 방금 얼굴이 엄청 무서웠는데...”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쨌든 말톤이 그 범죄자를 쫓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는 거죠?”

주변에서 들러붙는 시선을 무시하고 멈추었던 발걸음을 이어나가자 니아가 검지를 세우며 대답했다.

“응! 아무래도 최근엔 조금 난항에 빠진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지. 상대가 상대인걸?”

“.....”

말톤 그 자식 나한테는 별일 아니라더니만.

‘...완전 위험한 일이었잖아.’

복잡한 심경으로 여러 생각을 되뇌며 걷던 도중 돌연 니아가 손뼉을 마주쳤다.

“...아! 내 정신 좀 봐! 소년, 아까 얼마 나왔어?”

“네? 군것질거리 말이에요?”

“그래! 내가 사기로 했는데 결국 네가 냈잖아. 지금 갚을 테니까...”

호주머니를 뒤지는 니아를 손바닥으로 제지했다.

그녀가 의아하게 올려다보자 나는 다소 어이없다는 어투로 말했다.

“아니... 백금화만 들고 있는 사람이 뭔... 대충 얼마 나왔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으음... 금화 한 닢? 비쌌어? 만약 모자라면 나중에라도 내 저금통에서 뺄 테니까...”

“역시나...”

금전 감각이 없어도 너무 없다.

지근거리는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무슨 먹을 거 하나 사는데 금화가 들어가요. 이전에는 대체 어떻게 살았어요?”

“어떻게 살았다니?”

“물건을 계산하거나 할 때 말이에요.”

“음... 아델이 옆에 있었어!”

“...혼자서 뭔가를 사본 적은 없죠?”

“어... 그러고 보니 항상 누가 곁에 있었어. 내가 뭐만 사러 간다고 하면 기겁하면서 따라오더라고. 아니면 길드에 후불로 청구하라고 엄포를 놓던가.”

“.....”

나는 오늘만 해도 벌써 몇 번째 한숨을 내쉬고는 니아와 눈높이를 맞추며 말했다.

“니아 님, 저랑 약속 하나만 해요. 적어도 베라스틴에서 무언가를 살 때는 저한테 먼저 상의하기로.”

“우응? 왜?”

“안 그러면 허구한 날 상인들한테 뒤통수 맞고 다닐 거 아녜요! 벌써 빈털터리가 돼서 울먹이는 모습이 눈에 훤한데!!”

“아하 알았어 알았어. ...근데 그 말은 계속 날 보러 와준다는 소리지?”

“뭐... 따지고 그렇게 되겠지만...”

“아하하! 너무 좋아 소년!!”

“.....”

니아가 내 목덜미를 꼭 끌어안으며 맑은 웃음을 터트렸다.

반면 나는 고개를 떨구며 체념했고.

어마무시한 인기와 무력과는 정반대로 하는 짓은 완전 어린애라 자꾸만 페이스에 말려들게 된다.

아니, 혹시 이 모든 게 연기라면?

문뜩 이전에 아델이 니아를 두고 ‘불여우 같은 년’이라고 했던 것이 기억났다.

실제로 평소 아이 같은 말투와는 달리 유랑단의 텐트에서 유창하게 언어를 구사하는 모습도 봤었고.

하지만 순진무구하게 커다란 눈동자를 끔뻑거리는 모습이나 기분 좋게 미소지으며 내 허리춤에 뺨을 부비는 모습을 보자면 무해한 소동물 그 자체인데...

‘진짜 알다가도 모르겠네...’

도리도리 고개를 젓고는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북쪽 구역의 시작을 알리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과연 부자들이 모여 사는 동네답게 가도에는 매끈한 벽돌이 깔려있었고, 호화로운 마차가 중앙선을 따라 끊임없이 오갔다.

나는 그중 호텔을 상징하는 표지판이 세워진 갈림길로 발을 들이며 입을 열었다.

“...슬슬 숙박업소 거리가 나오니 잘 보세요. 혹시 원하시는 설비가 있어요? 욕조가 있는 곳이라던가 전망이 좋은 곳이라던가.”

“음... 소년이 추천하는 데는 없어?”

“저도 이곳에 와본 건 처음이라 잘 몰라요. 니아 님이 올 줄 알았으면 미리 좀 알아봤을 텐데...”

주변을 둘러보자 목욕 시설 완비나 조식 제공 등 다양한 조건을 내세운 간판이 곳곳에 걸려있었다.

행인도 부유한 중장년층이나 고급스러운 드레스, 보석 붙은 꼬따르디 등을 입은 부자의 비율이 높아진 건 기분 탓이 아닐 터. 이전이었다면 제대로 눈도 못 마주쳤을 존재들이다.

하지만 이젠 나도 전혀 꿀리지 않는다.

“저, 저기 봐...! 니아 님이야!!”

“과연 듣던 대로 아름다운 용모로군... 옆의 남자는 바로 그 소문의 남성인가?”

“대체 누구길래 니아 님과 단둘이 있는 걸까...?”

“떠도는 풍문으로는 엄청난 대귀족의 자제거나 숨은 하이랭커라는 말이 있더군요. 어쩌면 둘 다거나. ...한데 남자 쪽 용모도 니아 님에게 전혀 뒤쳐지지 않으니 대단하군요. 미남 미녀가 모여있으니 꼭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합니다. 허허...”

“이곳에 단둘이 왔다는 건 설마 그렇고 그런 관계라는 건가...!”

“.....”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쳐다봤지만 정작 당사자인 니아는 전혀 개의치 않고 씩씩하게 나아갈 뿐이다.

하기야... 그녀쯤 되는 인물이라면 이러한 관심에도 익숙할 테니까.

나 역시 어깨를 펴고 걸었다. 구경꾼의 시선이 신경 쓰이긴 하지만, 그들에게 흠잡을 여지를 줘봐야 좋을 게 없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까.

선망의 시선을 흘려넘기며 길을 걷던 도중, 나는 가로수 아래서 담소를 나누는 두 여인을 발견하고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 실례합니다.”

“...그러니까 그때 내가.. 응? 앗...! 무, 무슨 일이시죠...?!”

여자는 대화에 열중하다가도 내 얼굴을 마주하자 화들짝 놀라며 손에 있던 과실 음료를 떨어뜨렸다.

나는 음료가 담긴 컵을 부드럽게 허공에서 붙잡아 돌려주며 물었다.

“여관을 하나 찾고 있는데 혹시 이 근방에서 며칠 숙박하기 좋은 데가 있을까요?”

“아 네, 네... 혹시 일행이 있으... 니, 니아 님?!”

“하하...”

여자가 내 뒤에 선 니아를 발견하자 망부석처럼 굳어버렸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녀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 보이곤 시선이 마주치자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여자는 그것만으로 사르르 풀어지더니 꼴깍 침을 삼키며 격양된 목소리로 물어왔다.

“그, 그... 두 분이 함께 사용하실 건가요...?”

“아니요, 저는 따로 거처가 있어서 이쪽 숙녀분만 묵을 거예요.”

“아하... 다행.. 아, 아니.. 그렇군요! 저쪽으로 쭉 나아가면 정문에 금 장미가 수놓아진 호텔이 하나 나올 거예요! 거기가 이 근처에선 제일 좋은 숙박업소라 들었어요. 아마... 그쪽 분도 만족하시지 않을까 하는데...”

“고마워요. 덕분에 찾을 수고를 덜었네요.”

“아, 저 혹시 이후에 시간이 있으...”

“가자 소년! 나 빨리 쉬고 싶어!!”

“네? 아까는 전혀 안 피곤하다더니... 그럼 이만 감사했습니다.”

니아가 막무가내로 내 손목을 붙잡고 앞서나갔다.

나는 여인들에게 가볍게 묵례하고는 달리다시피 그녀의 보폭에 맞추며 외쳤다.

“니아 님...! 잠시 속도 좀...!! 갑자기 왜 그렇게 서둘러요?! 아까까지는 천천히 못 가서 안달이더니...”

니아는 그제야 발을 늦추더니 힐끔 내 얼굴을 돌아보며 물었다.

“으음... 소년은 의외로 여자 경험이 많아?”

“네? 아뇨 그럴 리가요. 지금 만나고 있는 두 명이 전부인데요?”

“그래? 근데 그런 것치고는 상당히 능숙해 보이던데?”

“뭐가요... 길 물어보는 것쯤이야 누구나 하잖아요.”

“소년은 머리 때문에 사람을 꺼리는 게 아니었어?”

“....”

머쓱하게 뺨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뭐...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제 이 정도는 괜찮아요. 지금은 트라우마도 많이 극복했거든요. 애초에 니아 님이 옆에 있으니 사람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요.”

“아니... 그냥 소년 얼굴 보고 반한 것 같던데...”

“또 터무니없는 소릴... 저처럼 흑발인 사람을 누가 좋아해요. 농담으로도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흐음.. 진짠데... 봐, 지금도 주변에서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잖아...! 탄성까지 질러가면서!!”

“니아 님 때문에 그런 거겠죠.”

“.....”

니아가 입을 벌리며 질겁하더니 고개를 돌리고 뺨을 긁적였다.

그녀가 간신히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으음... 얘도 중증이네.”

“...이상한 소리 말고 저기나 봐봐요. 저 건물이 바로 그 호텔 같은데... 생각보다 규모가 훨씬 큰데요...?”

“그러게! 빨리 가보자!!”

“자, 잠시만...!!”

니아가 내 손목을 붙잡고 재차 달려나갔다.

다행히 이제는 그녀의 돌발 행동에도 익숙해져 난데없이 휘말리는 일은 면했지만...

‘좀만 지나면 어디 하나 부러져 있을 거 같은데...’

“응? 뭐라고 말했어?”

“별거 아니에요.”

니아와 함께 정문 앞에서 멈춰섰다.

얼얼한 팔뚝을 어루만지며 전방을 올려다보자 장미의 모습을 형상화한 금빛 철창 옆에는 순백 라이트메탈 갑주를 껴입은 기사들이 나열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한 기사가 날 못마땅하게 쳐다보며 막아세우려 했으나­

“야, 인마 지금 뭐 하는 거야!!”

“네? 하지만 규정에 따르면 검은 머리는...”

“빠, 빨리 통과시켜!! ...들어가십시오.”

상급자로 보이는 다른 기사가 정중하게 예를 갖추며 철창을 젖혔다.

그의 얼굴이 마치 괴물이라도 본 것처럼 하얗게 질려있기에 의아하게 뒤를 돌아보니 니아의 발치에 불온한 기류가 맴도는 것이 보였다.

정문을 통과하며 슬쩍 귓가에 속삭였다.

“...무슨 짓 했어요?”

“아니? 아무것도 안 했는데?”

“무슨... 기사가 사색이 다 되었던데.”

“이번엔 정말 아무것도 안 했어!”

“....”

믿을 수가 있어야지.

마음은 고맙다만...

무심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손을 뻗다가 멈춰섰다.

귀를 쫑긋거리며 아쉬운 표정으로 올려다보는 니아를 짐짓 헛기침해 무시하곤 호텔 부지를 거닐자 아름다운 정원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우윳빛 석재 분수대 근처에는 종달새가 머물다 갈 수 있도록 작은 휴식처가 마련되어 있었고, 잔가지 하나 없이 다듬어진 관목은 일류 정원사의 손길이 닿았음이 명백했다.

산책로에는 금박이 입혀진 마석등이 가장자리를 장식해 은은한 불빛을 자아냈다.

아마 밤이 되면 더욱 수려하겠지.

하지만 산책로가 끝나고 호텔 건물 내부로 들어오자 최고급 대리석과 황금으로 꾸며진 로비에 살짝 압도되었다.

“자, 잠깐...! 여긴 너무 비쌀 것 같은데요...? 니아 님의 재력은 알지만 다른 곳을 찾아보는 게...”

“괜찮아 괜찮아.”

니아가 쾌활하게 손짓하고는 당당하게 데스크로 걸어갔다.

이내 접객원이 인사를 끝마치기도 전에 대뜸 내뱉었다.

“여기서 제일 좋은 방으로 줘! 욕조는 둘이서 거품 목욕을 즐길 수 있을 만큼 큰 걸로! 침대도 폭신폭신하고 격하게 움직여도 거뜬할 만큼 튼튼했으면 좋겠어! ...아, 그리고 꼭 방음 시설이 잘되는 방으로!”

“.....”

아이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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