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8화 〉 불청객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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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 불청객 #7
뒷목이 얼얼하다.
아니나 다를까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니아 님이랑 단둘이 투숙... 부럽다..”
“둘이서 거품 목욕... 격렬한 운동... 부럽다..”
“대체 얼마나 격하면 방음 설비를 신경 쓸 정도로...! 역시 그렇고 그런 사이가 맞았군! 부럽다...”
“부럽고 나발이고 빨리 베이커 탐정 길드에 제보해야지! 특종이야!”
“.....”
나는 주변 시선에도 불구하고 니아의 어깨를 움켜쥔 채 구석으로 끌고 갔다.
그녀를 벽에 몰아붙이며 언성을 높였다.
“니아 님! 갑자기 왜 그런 소릴 한 거예요?!”
“응 뭐가?”
“아니...! 둘이서 목욕이라느니 침대는 튼튼한 게 좋겠다느니 방음 설비라느니... 그런 소릴 들으면 누구나 오해하잖아요!!”
“우음? 그야 욕조는 크면 클수록 좋고, 침대에서 방방 뛰노는 것만큼 재밌는 것도 없고... 잘 때 시끄러우면 누구나 싫잖아...?”
“....사실 다 알고 말한 거죠.”
“움? 뭐 말하는 거야 소년?”
“.....”
니아가 정말로 모르겠다는 듯 눈동자를 끔벅거리며 올려다봤다.
눈가를 짚으며 벽에 기대고 있자니 접객원이 식은땀을 흘리며 다가왔다.
“저... 혹시 저희가 도와드릴 게 있으시면...”
“....”
반쯤 체념하며 내뱉었다.
“...아까 말한 조건의 방이 있어요?”
“예... 현재 저희 호텔에서도 최고 객실인 스위트룸이 비어 있습니다. 두 분이 이용하시기에 최적화되어 있고, 매 끼니마다 최고의 주방장이 손수 요리한 코스요리 제공은 물론, 상시 운영되는 미니 바에서 언제나 다양한 스낵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또 객실에 마련된 대형 욕조에서 오붓하게...”
“...얼만데요?”
“추가 요금 없이 하루 숙박에 금화 한 닢입니다.”
“.....”
금화 한 닢.
말이 쉽지,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4인 서민 가구가 반년 동안 일을 안 해도 먹고살기에 충분한 액수. 잘만 아끼면 한 해를 보내는 것도 무리가 아니고.
나 또한 유적에서 발굴한 술을 팔기 전까지는 금화를 만져본 적도 없었다.
하물며 일주일도 아니고 1박에 금화 한 닢이란다.
하지만...
‘....나쁘지 않은데?’
숙박하는 데 그리 많은 돈을 써야 하는지와는 별개의 문제로, 이런 초호화 호텔의 최고급 스위트룸에 묵는 데 금화 한 닢이면 충분히 참작할 수 있는 액수다.
어쩌면 백금화를 목격하고 난 후라 금전 감각이 이상해졌을지도 모르지만...
결정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편리해.’
호텔에서 삼시 세끼도 제공된다고 하니 매번 식사 때마다 번거롭게 니아를 데리고 나오지 않아도 된다. 괜히 사람들이랑 마주쳐서 소란을 피울 일도 없고, 상인들과 얼굴을 붉혀 가며 흥정할 필요도 없다.
여러모로 폭탄과도 같은 사람이니 돌아다닐 빌미를 주어서 일을 크게 벌일 필요도 없고.
조금 냉정하게 말하자면 어차피 내 돈도 아니고.
“...도란, 입꼬리가 씰룩거리는데?”
“아뇨, 음... 조건이 맘에 드네요. 숙박료가 비싸긴 하지만 니아 님의 재력이면 감당 못 할 금액도 아니고... 일단 객실부터 보고 결정하죠. 안내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접객원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손짓했다.
그의 안내를 받아 호텔 내부로 들어가자 융단 깔린 회랑이 나타났다. 양옆의 복도를 따라 늘어선 통유리로는 고즈넉한 정원의 풍경이 한눈에 내다보였고, 멀리서 푸른 반사광이 외벽에 일렁거리는 걸로 보아 실외 수영장까지 갖춰져 있는 듯했다.
중간중간 강철 이음매가 있긴 하지만 매우 투명한 유리의 품질에 감탄하고 있자니 접객원이 자랑스러운 어조로 설명했다.
“이 유리는 전부 테오다란 공국에서 공수해온 물품입니다. 최고의 드워프 장인이 수작업으로 만들어낸 작품이죠. 운송해오는 데만 해도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어갔습니다.”
“...대단하네.”
우리 저택에도 곳곳에 유리창이 있긴 하지만 이 정도로 좋은 물건은 아니다. 상당히 고품질인 건 맞지만 이 세계의 유리들이 그렇듯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세한 불순물이 눈에 띄곤 했으니까.
하지만 이 통유리 회랑도 곧 마주한 광경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복도 끝에 도달하자 기사 두 명이 지키고 선 대문이 나왔다. 그들을 지나쳐 문 안쪽으로 발길을 내딛자 두 평 남짓 작은 공간이 드러났다.
잠시 서서 기다리자 발바닥에 부드러운 충격이 와닿았다.
“앗...! 소년!! 방이 움직이고 있어!!”
“......”
이건...
시선으로 설명을 촉구하자 접객원이 자랑스러운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이건 마석을 이용한 승강 장치입니다. 특별히 산업용으로 허가된 불 마석의 힘으로 도르래를 움직여 이 방을 통째로 들어올리는 거죠. 아, 물론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혹여나 폭발이 일어나도 끄떡없게끔 안전 설비를 갖추고 있으니까요.”
“신기해! 이런 건 처음 봐 소년!!”
“.....”
다소 진중한 어조로 물었다.
“...혹시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더 상세하게 알 수 있습니까?”
“죄송합니다. 이 장치는 저희 호텔의 상징과도 같은 물건이라 자세한 정보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개발자가 누구인지만이라도 듣고 싶군요. 가능할까요?”
“예, 물론입니다. 이 장치는 연금술사이자 발명가로 유명하신 라프노님이 고안해내셨습니다.”
“.....”
라프노...
던전에서 나온 직후 라디와 들렀던 여관의 신식 배수 시설을 개발한 사람도 같은 이름 아니었나?
“...조금 유념해둘 필요가 있겠네.”
“응, 소년? 무슨 말 했어?”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서 객실은 어디죠?”
“이 층 전체가 스위트룸입니다.”
“네...?”
전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승강기가 멈춰 선 장소에는 중후한 문이 가로막고 있었고, 접객원이 품에서 꺼낸 황금 열쇠로 잠금장치를 열고 들어가자 호화찬란한 객실의 전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금테 자수가 들어간 식탁보, 무지갯빛 광휘가 아롱거리는 보석 촛대, 투명한 크리스탈 샹들리에가 매달린 천장을 올려다보며 읊조렸다.
“이게 전부 객실...?”
호화롭다 못해 사치스럽다.
이곳에 들어간 금과 보석을 떼어내면 방 하나를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푹신한 슬리퍼로 갈아신고 천천히 내부를 둘러보자 더욱 감탄만 나왔다.
체스와 비슷한 보드게임을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룸과 다양한 탕이 완비된 최고급 사우나, 호텔 부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대리석 테라스 등 이 세계 아니, 지구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설비들뿐이다.
사치를 극한까지 부리면 어떻게 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한 광경.
‘이 정도면 내가 부탁해서라도 꼭 하루만 자보고 싶을 정돈데...’
테이블 위 메뉴판에 적힌 코스요리 목록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자니 니아가 명랑하게 외쳤다.
“소년! 나 결정했어! 이곳으로 할래!!”
“...나중에 후회하지 않겠어요?”
“응!!”
그녀는 서슴없이 백금화를 꺼내 접객원에게 건넸다.
“열흘 치 한꺼번에 계산할게! 이거면 됐지?”
“아... 예, 옛! 감사합니다!”
접객원도 선뜻 이런 거액을 건네받을 줄은 몰랐는지 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그는 신중하게 백금화를 손수건으로 감싸 품 안에 갈무리하더니 객실 열쇠를 건네며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거스름돈은 곧바로 시종을 통해 전달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귀 좀 내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
욕실을 둘러보러 객실 안쪽으로 향하는 니아를 힐끔 쳐다보고 의아하게 다가가자 그가 속삭여왔다.
“...안쪽 침실의 서랍장을 열면 손님께 드리는 선물이 있으니 부디 요긴하게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선물...?”
“그럼 부디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접객원이 객실에서 물러나자 나는 광활한 공간에 홀로 남겨졌다.
‘뭐... 고급 와인이라도 넣어놨나?’
서서히 카펫 위를 거닐었다.
확실히 괜히 금화를 숙박료로 받는 건 아닌지 객실을 수놓은 장식물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서민이 평생 벌어도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고가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소시민인 나로서는 혹여나 망가뜨리면 어쩌나 뒷걱정이 먼저 들었지만.
도자기가 진열된 장식장을 신중하게 지나쳐 접객원이 말한 침실로 접어드니 그곳엔 초대형 침대가 떡하니 방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었다. 침대 위에서 길을 잃는다는 표현이 무슨 뜻인지 절로 실감할 정도.
덩치가 작은 니아나 라디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저게 그 남자가 말한 서랍장인가.’
주위를 둘러보자 침대 머리맡 부근에 상아로 제작된 가구가 눈에 들어왔다.
별생각 없이 다가가 서랍을 열자
“...오우 쉣.”
황급히 도로 닫았다.
나는 옷소매로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식은땀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하,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 이걸 만약 니아가 먼저 발견했..”
“소년~! 뭐해?”
“....!!”
가슴이 철렁였다.
재빨리 뒤돌아서며 외쳤다.
“니, 니아 님...! 여긴 어쩐 일로...?”
“어쩐 일이긴~ 이곳저곳 둘러보고 있지! 있잖아, 여기 정말 마음에 쏙 들었어! 지금까지 내가 들렀던 숙소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아!”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네요. 게다가 요 몇 달간 던전 안에서만 생활하시지 않으셨어요?”
“응응! 씻을 때나 잘 때나 늘 불편했거든! 이왕 나온 거 여기서 푹 쉬고 가야겠어. 근데 소년 지금 뭐 해~?”
“네, 네? 뭐가요?”
“으음 뭐랄까~ 왠지 당황한 냄새가 나! 혹시 뒤에 뭐 있어?”
니아가 웃으며 다가오자 나는 황급히 손사래 치며 대답했다.
“아, 아무것도 없어요...! 그리고 뭐 그런 냄새가 다 있어요?!”
“그치만 정말인걸? 뭐 숨겼어? 나도 볼래!!”
“정말로 아무것도 없어요. 빨리 여기서 나가죠. 니아 님은 피곤하실 테니 이제 얼른 씻고 쉬셔야죠.”
“흐음... 수상해.”
“진짜라니까요. ...그럼 이제 방도 구했겠다. 저도 이만 슬슬 돌아가 볼게요. 오늘 하루 수고하셨어요.”
그럭저럭 잘 둘러넘겨서 다행이다.
그녀를 데리고 막 방을 빠져나오려던 찰나
“에잇~!”
니아가 귀여운 외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완력으로 날 침대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그녀가 향한 방향에는...
“아, 안 돼!!”
“돼!”
니아가 재빨리 달려가 서랍을 열었다.
그녀는 서랍 내부에서 나온 물건을 보고 눈을 크게 뜨더니 순식간에 표정을 지우고 순진무구한 얼굴로 내 쪽을 돌아보았다.
방금 내가 본 게 맞다면 분명 아~ 하며 피식 웃은 것 같았는데...
니아가 털 달린 수갑과 안대 따위를 손에 쥐고 물었다.
“흐음... 소년, 이게 뭐야?”
“....몰라요.”
“진짜 몰라?”
“네.”
“그럼 왜 뭔지도 모르면서 감추려고 했었어?”
“.....”
아니 당신 사실은 다 알면서 묻는 거지.
어색하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알긴 아는데 그건 니아 님이랑 관련이 없는 물품이니까 넣어두세요.”
“그래? 그럼 나도 알려줘! 요 줄줄이 구슬 달린 건 뭐야? 이 수갑에는 왜 털이 북슬북슬하게 달려있어? 이 옷은 왜 구멍이 송송 뚫려있고! 이상하다 그치~?”
“.....”
“대답 안 해줄 거야?”
“...그냥 그런 게 있어요. 아직 일러요 니아 님한텐.”
“우음?”
그녀가 양손에 형형색색의 기구를 늘어뜨린 채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애써 무시했다.
이대로 방치하면 평소처럼 곧 흥미를 잃겠지.
하지만 그녀는 내 예상을 뛰어넘고 폭탄 선언을 내뱉었다.
“그럼 소년이 직접 가르쳐줄래? 내 몸으로.”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집어 넣어요!! 당신 진짜 다 알면서 일부러 그러는 거지?!!”
“우음...? 어디에 집어넣는데?”
“서랍에요!!!”
“....?”
“하아...”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말했다.
“...전 이제 진짜로 가볼 테니까 푹 쉬고 계세요. 괜히 돌아다녀서 문제 일으키지 말고요.”
“응응! 내일은 언제 올 거야?”
“오후쯤에 올게요.”
“너무 늦어!!”
“...정오. 저도 이 이상은 안 돼요.”
“알았어!! 약속한 거다? ....아 그리고 소년.”
“....왜요?”
막 문턱을 나서려는 순간 생소한 목소리가 날 불러세웠다.
고개를 돌려 등 너머를 바라보자 니아가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일전에 본 적 없는 성숙한 표정으로
“...고마워. 오늘 너무 즐거웠어.”
“.....”
나는 부드럽게 미소지어 대답하고 객실을 나섰다.
이제 라디와 아리엘을 만나러 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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